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07
2부 485화
– 2 –
“올해 농사는 무난히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수확기에 태풍이 불지도 않았고, 햇볕도 적당히 쬐었습니다.”
벌써 10월이다. 각 지방에서 수확을 마무리하고 올해 작황에 관해 보고를 올려보내고 있다. 결과는 이미 예상한 바와 거의 같다. 평년작이다.
“올해 조세를 거두면, 나라 살림에 필요한 액수를 모두 지출하고도 대략 6백만 석은 각지의 관고에 비축할 수 있을 듯합니다.”
“호조판서의 보고를 들으니 실로 마음이 놓이는구나.”
경인년 이후, 4년 동안 계속 풍년이 들었다. 5년째인 올해도 날씨로는 풍년이 들 만했으나 전쟁으로 일손이 빠져나간 덕에 수확이 좀 줄었다. 게다가 워낙 지출이 많았으니까, 비축했던 곡식이 이 정도 선을 유지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지금 시급한 일은 원정에 참여한 군사와 장수들에게 상을 내리는 일입니다. 이조에 설치한 심사청에 일을 맡기시어 그동안 정리한 공적을 심사하고 포상을 정하게 하소서.”
“옳은 말이다. 그리 하라.”
심사청은 공적 심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한 관청이다. 그동안 올라온 모든 장계를 확인하여 공을 세운 장병들의 공적을 집계, 정리하고 있다. 보훈처 역할인 셈이다.
“장수들에게는 벼슬과 품계, 노비를 내림이 옳다. 옛 전례를 따라 저화를 듬뿍 내림도 좋을 것이다. 다만 군사들에게는 토지를 내리려 하는데 어찌들 생각하는가?”
군사들에게 주는 토지란 별거 아니다. 이번에 새로 획득한 규슈 북부 3개 주 ? 일본에서는 ‘쿠니(國에)’라고 부르지만, 우리가 그렇게 부를 순 없지 ? 일대의 비어 있는 토지다.
대마도와 일기도는 원래 일본계 주민이 그대로 남아있다. 하지만 치쿠젠, 히젠, 부젠은 왜구 방지를 명분으로 하카타와 다자이후만 빼고 눈에 보이는 마을과 도시를 모두 싹 비워버렸다. 추방당한 주민들은 치쿠고, 분고, 히고 등 중부지역으로 쫓겨났다.
그런데 이것도 역시 천칭의 양 끝 같은 조치라, 한쪽이 내려가니 반대편은 올라가는 효과가 나왔다. 중부지방 영주들, 특히 분고를 받은 사나다 마사유키는 이 추방된 주민들을 환영하며 자기 영지에 받아들였다. 전쟁 통에 줄어든 인구를 보충하는 확실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중부 세 지방 중 치쿠고는 타치바나 무네시게의 땅이라 처음부터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 히고 지방은 거의 시마즈의 통제 아래 들어가서 역시 큰 피해는 보지 않았다. 하지만 오토모 씨가 다스리던 분고는 완전히 초토화를 당했다.
오사카로 가는 조선 원정군은 하카타에 상륙, 육로로 이동해서 오토모 령의 수도인 후나이 일대에 모였다가 배를 타고 동쪽으로 갔다. 당연히 분고 지방 전역은 원정군의 분풀이 대상이 되어 철저히 약탈당했고, 재산뿐만 아니라 인명 손실도 컸다.
마사유키로서는 큰 영지를 받은 것은 좋지만 앞으로 재건할 길이 막막한 상태고, 무엇보다 일손 부족이 절실했다. 그러던 참이었으니 북부 3주에서 쫓겨나는 수십만 인구가 눈물 나도록 반가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오나 전하, 저들이 고향에서 쫓겨난 원한을 계속 품는다면 어쩌겠습니까? 영주 사마유가 그 민심을 외면하지 못하고 군사를 일으켜 반기를 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공조참판은 아직도 왜인들을 잘 모르는구나. 왜국 영주들은 백성들의 민심 같은 것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북부 3주에서 쫓겨난 왜인들의 한 같은 것은 염려하지 마라.”
마사유키가 새 영민(領民)들의 복수를 위해 반기를 들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다. 성공할 가능성도 없지만, 성공하면 도리어 자기 백성이 줄어드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보다는 왜인들이 월경해서 자리를 잡는 쪽을 경계하는 편이 훨씬 나을 거다. 기껏 현지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쫓아내서 수천 리 무인지경을 만들었는데, 그 빈 자리에 우리 백성들을 얼른 집어넣지 않으면 또 왜인들이 스멀스멀 숨어들어올 게 뻔하다.
“지금 구주에 있는 군사들에게 현지에 땅을 주어 둔전병으로 삼겠다 함은 이미 비변사에서 논의한 바다. 허나 겨우 5만으로는 그 땅을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 수가 없다. 적어도 백성 수십만은 더 보내야 하리라.”
지금 규슈에 남겨둔 병력은 복수군 3만, 왜별기 1만, 경군 1만이다. 왜별기야 뭐 고향에 간 셈이니 딱히 덧붙일 말이 없고, 경군과 복수군은 조선에 재산이 없는 군사들이 주로 자원해서 남았다. 이들에게는 1인당 토지 1결을 지급하고, 가족들도 따라가게 한다는 약속이 있었다.
1결이면 수확이 300두, 1석이 15두니까 20석에 달하는 수입이 생기는 셈이다. 오군영 소속 일반 군사들이 받는 연봉이 저화로 12석이니, 이건 상당한 소득이다. 땅도 없는 빈민들에게는 눈이 돌아가기에 충분한 액수라고 본다.
일본 측에서 넘겨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번에 얻은 규슈 북부 3개 주의 석고는 대략 78만석 정도 된다. 일본 석은 분량이 조선 석의 2배라 하니, 우리 식으로는 넉넉잡아 155만 석이다.
이 기준에 맞춰 토지를 지급하면 77,500명에게 1결씩 나눠주면 맞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 27,500명만 더 보내면 되는 건 아니다. 왜별기 대부분은 곧 제대해서 중부 3주로 이주할 계획인 탓도 있고, 우리 군사들이라고 혼자서 1결을 농사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전가사변을 시킬 필요는 없을 듯하다. 비록 왜인의 땅이라 하나, 구주는 북변이나 남변에 비하면 본국에 가까울뿐더러 기후도 온난하지 않으냐. 그러니 자발적으로 가려는 자들이 제법 많을 것이다.”
“진실로 전하께서 하신 말씀이 옳사옵니다.”
북변은 부여주, 연해주, 속말주 3주를 뜻한다. 남변은 대남도, 행정구역상으로는 대남주다. 규슈 3주는 그냥 ‘구주’로 부르면 되겠지 싶다. 3주를 합치면 넓이가 경상남도 정도쯤 되니까, ‘구주 관찰사’를 한 명 임명하는 정도면 충분하리라.
기존 조선 8도, 아니 13도에 해당하는 본국과 5주의 외부 영토라는 이원적인 체제가 아직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마치 일본 본토를 내지(內地), 여타 식민지를 외지(外地)로 구분해 통치했던 제국주의 일본 같긴 하지만 이 정도야 뭐 괜찮겠지.
“구주로 이주하는 자들은 3년간 조세를 면하여주는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원정에서 붙잡은 왜인 포로들을 노비로 주어 토지를 경작하게 하면 어떨까 합니다.”
괜찮은 제안이다 싶었는데 신하들 간에 의견이 갈렸다. 곧바로 반대론이 나왔다.
“구주에 살게 된다면 언제 군사로 동원될지 모르니 조세를 면해 주는 건 좋사옵니다. 허나 왜인을 노비로 주면 그놈들이 도주하거나 반기를 들 수 있으니, 이는 재고하시옵소서. 붙잡은 왜병들은 본래 계획대로 본국에서 노비로 쓰거나, 남만에 매각하시는 편이 좋겠사옵니다.”
규슈에서, 오사카에서, 그리고 수전에서 포로로 잡은 왜병은 총계 4만 명 정도다. 경인왜란 때 잡은 숫자보다는 조금 많지만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적다.
우리가 못 싸워서 포로가 적은 건 아니다. 도리어 너무 잘 싸운 탓이다. 팔다리가 날아가는 등, 제대로 써먹지 못할 정도인 중상자가 많아서 몽땅 석방해버리고 멀쩡한 놈들만 남긴 수가 이 4만이다. 폐질자(廢疾者) 따위를 끌고 와서 어디다 쓰겠는가? 팔리지도 않을 텐데.
지금 이 포로들은 불타버린 나고야성을 정리하고 간몬 해협을 가로막는 요지인 후나지마에 요새를 건설하고 있다. 본격적인 축성은 보안 문제 때문에라도 우리 인력으로 하겠지만, 지금 하는 건 잔해를 정리하고 기반을 다지는 정도니까 포로들에게 시켜도 무방하다.
우리가 후나지마를 먹고 간몬을 장악하는 건 협상 중에 양해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섬은 본래 주고쿠에 속하는 나가토(長門), 즉 다른 말로 조슈(長州) 지방의 일부라는 게 문제였다. 우리가 점령할 땅은 요시아키 관할인 규슈로 한정하는 편이 아무래도 명분상으로 나았으니까.
해법은 간단했다. 우리 압력을 받은 일본 조정은 8월 말에 포고령을 내려 나가토에 속하던 후나지마를 ‘이제부터 부젠에 속한다’고 선언했다. 고로 9월 7일에 강화조약을 체결할 시점에 후나지마는 합법적으로 우리 세력권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일단은 내년 봄까지 각 지방에 명을 내려 이주할 자를 모으도록 하라. 스스로 이주하려는 자가 충분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전가사변을 실시하겠다.”
어차피 올해는 전가사변이 없을 테니까, 보내도 내년에 보낸다. 그리고 당분간 전가사변을 집중할 영토 1순위를 규슈로 할 생각이다. 다른 지역은 미개간지를 새롭게 개척해야 하지만, 규슈는 이미 정리된 농토와 마을을 폐허가 되지 않게 유지해야 한다. 그게 더 급하다.
그러고 보니 농사지을 농민들만 보낼 게 아니라 해안에 마을을 이루고 고기를 잡고 소금을 만들 어민들도 보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무인도와 포구에 또 해적이 터를 잡는다.
이번에 손에 넣은 섬까지 사람을 채우려면 아무래도 각 도에 이주민 할당이라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승전 후의 뒤처리는 역시 이번에도 만만하지 않구나.
– 3 –
남대문 앞에는 지금 커다란 석조 구조물이 세워지고 있다. 이번 전쟁 승리를 기념해서 만든 개선문이다. 예수회 선교사 중 건축에 소양이 있는 이들을 기용해서 로마식 개선문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아직 완성은 못 했다.
“크네. 로마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만큼 큰 것 같은데?”
“일부러 그 정도 크기로 만들어달라고 했어. 넌 그거 직접 본 적 있어?”
“응. 교수님 모시고 학회 참석하러 갔을 때.”
‘국제 전통의학 촉진협회’라는 기구가 로마에서 총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에 처음 건너오기 딱 한 해 전이었다나.
“말이 학회 참석이지 그냥 교수님 관광차 나간 거나 마찬가지였어. 한의학회에서 나온 경비 가지고 참 잘도 놀더군. 그 F…”
원한깨나 사무쳤는지 입 밖에 교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자동으로 욕이 이어졌다. 그래도 주변에서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게 영어로 하기는 했다. 상희한테는 거의 30년 전 일이면서도 아직도 어제 있었던 일처럼 선명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더니 생각났다. 기억 고정됐지 참.
상희는 나보다 더 오래 살았다. 매번 나보다 먼저 각성하는 바람에 실제 나이는 거의 60에 가깝지만, 천녀 덕분에 27세 시점 현대에서의 기억은 절대 잊지 않는다. 나처럼.
“오래간만에 같이 나온 건 좋은데…왜 나랑 같이 나왔어? 공무잖아. 내가 아니라 사역원에 있는 역관이랑 같이 나와야지. 데이트야 나중에 해도 되는데.”
전쟁 중에는 데이트를 한 번도 못 했다. 데이트는커녕 중궁전에도 후궁전에도 들지 않았다. 자식들 문안은 받았지만, 가족 나들이를 나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경인왜란 때도 그랬듯, 내가 임금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끝나고 개선식까지 치른 뒤에야 처음 중궁전에 들었다. 그리고 이틀은 상희 침소에 들었고, 오늘도 상희한테 갈 예정이다. 다른 후궁들은 다음 차례다. 이 방문 순서에 대해서는 다들 그러려니 하고 있다. 우리는 둘이서만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까.
“오늘 거기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개인적인 거라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거든.”
인간 대 인간으로 솔직히 주고받는 대화를 굳이 역사 기록에까지 남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역관을 대동하면 내용이 남들에게 알려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오셨습니까, 전하.”
“왜추는 아직 살아있는가?”
“그러합니다.”
히데요시, 가토,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세 사람은 개선식 날 저녁에 용산 앞 모래밭에 세운 기둥에 결박당했다. 내 지시대로 목에는 소금물이 든 호리병을 걸었고, 입에는 보릿짚을 잘라 만든 빨대를 꽂은 재갈이 물려 있다. 소리는 지를 수 없지만 물은 마실 수 있다. 소금물.
“수길과 륭경(다카카게) 모두 환갑 내외의 노인입니다만, 나름 전장에서 구르던 무장이라서 그런지 아직 버티고 있습니다. 첫날은 몸부림도 심하게 쳤습니다만 어제는 약해졌고, 오늘은 지쳤는지 조용히 매달려 있습니다. 숨은 쉬고 있습니다.”
지금은 10월, 양력으로는 11월이다. 낮에도 쌀쌀하고 밤에는 무척이나 춥다. 그런데도 사흘 동안 매달려 버티고 있다니 대단한 놈들이다. 다카카게는 히데요시보다 4살 위라고 했으니까 63세인데…뭐, 지금은 나이가 큰 의미도 없지만.
“다른 놈들은 두고, 수길의 재갈만 잠시 끌러 주어라. 내, 놈과 잠깐 독대를 해야겠다.”
“어명이시라면 따르겠습니다만…역관을 아니 데려오시지 않았습니까?”
“여기 이 소의가 할 것이다.”
처형장을 지키고 있던 금부도사의 두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토를 달 배짱은 없는지, 휘하 나장들을 시켜 히데요시의 재갈을 풀게 했다.
재갈이 풀렸음에도 히데요시는 고개를 숙인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내 옆으로 돌아온 내금위 군사 한주동에게 일러 소금물이 아닌 맑은 물을 한 그릇 가져다주게 했다.
“정신이 드느냐?”
물 한 사발을 다 비운 히데요시가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앞에 선 나와 시선이 마주쳤지만 내가 누구인지 알아본 것 같지는 않았다. 사흘 동안 선 채로 흘린 대소변 냄새가 풍겼다.
“내가 바로 조선의 임금이다. 너희가 임해군을 앞세워 쓰러트리고자 했던 장본인이지. 내가 여기 온 건 네게 꼭 듣고 싶은 대답 몇 가지 때문이다. 너는 이제 곧 죽을 것이니, 솔직하게 말해 보아라.”
수많은 시선이 내게 쏠리고 있다. 나장과 내금위 군사들이 왜인들이 죽는 모습을 구경하러 몰려와 욕설을 퍼붓고 침을 뱉던 백성들을 목소리가 안 들릴 거리까지 밀어내긴 했지만, 아예 시야 밖으로 몰아낼 수는 없었다. 여기는 도성 옆, 한강 기슭에 펼쳐진 모래밭이니까.
“너는 왜 내게 잘못을 빌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느냐? 정녕 내가 일본을 공격하지 않을 줄로만 여겼느냐?”
히데요시는 그동안 의금부 뇌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철이 경인란록 개정작업에 필요한 구술자료를 채록하려고 몇 번 찾아갔지만, 매번 외면한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정철이 고니시를 더 애지중지하게 됐고.
내 질문을 받은 히데요시는 잠시 우물거렸다. 그리고 상희가 잘 알아듣기 힘들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대답했다.
“어떻게 오른 천하인의 자리인데…그대에게 숙일 수는 없었소. 만약…그대에게 내가 고개를 숙였다면, 5…년은커녕 2년도 되…기 전에 쫓겨났을 거요.”
결국, 자존심과 허세 때문에 스스로 신세를 망친 셈이다. 그러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들으려니 왠지 측은지심이 약간은 솟았다. 하지만 어쩌랴, 모두 이놈이 자초한 횡액인 것을. 그보다 좀 더 개인적인 궁금증 쪽이 앞섰다.
“다음 질문이다. 네놈은 도대체 왜 그 쓸모없는 비곗덩어리 원균을 그렇게 챙긴 거냐? 그 무능하고 욕심만 많은 놈을?”
원균이 자기 대신 화살에 맞고 정치적인 곤경에서도 구해줬으니 그게 고마워서 친하게 지낼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게 노부나가의 분노에서 구해주고 영주 자리를 주고 도망과 패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지켜 줄 가치가 있는 일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본인의 대답이 듣고 싶었다.
“원 공은…일본에서 가질 수 없는 친구였소. 일본 내 사정과 아무 상관이 없는 외부인이라 마음 편히 대하며 온갖 이야기를 할 수 있었소. 마에다 공 같은 이와는 또 다른….”
아무리 친하다 해도 마에다 토시이에는 그 역시 노부나가의 신하였다. 그러니 편하게 나눌 수 있는 화제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원균과는 어떤 이야기도, 심지어 자신이 모시는 주군인 노부나가에 관한 험담이나 오이치에 대한 연정도 자유롭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고 했다.
“알겠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네가 진정 연모하는 상대는 오이치냐, 차차냐? 주변에서 혼란스러워하지 않더냐?”
나도 혼란스러웠다. 차차한테 듣기로는 엄마를 포기하고 자기한테 치근덕거린다고 했는데, 원정군에서 들어오는 보고로는 여전히 오이치라면 죽고 못 산다고 했으니까 말이지.
중요한 사안은 어차피 고니시가 다 알고 있으니 굳이 히데요시를 심문할 것도 없다. 자기가 죽을 줄 몰랐던 고바야카와가 그전에 심문 때 신나게 지껄인 내용도 있고, 구로다 요시타카도 서면을 통해서이긴 해도 이쪽 질문에 비교적 성실하게 답하고 있다. 그러니 이런 거나 묻지.
하지만 히데요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흙빛이 된 얼굴을 수그려 감췄을 뿐이다.
“설마 모녀를 동시에 품을 생각은 아니었을 텐데…됐다. 이거 하나 알려주지. 지금 차차는 이에야스의 아들 히데타다와 혼인해서 이미 아들을 낳았다고 말이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나가마루라던가?”
실제 역사라면 히데요리가 되었을 히데요시의 아들이겠지. 하지만 이쪽 세상에서는 엄연히 이에야스의 손자다.
사실 히데요시에게 ‘난 미래인이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저쪽 세상에서는 네놈이 어떤 식으로 살았는지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아예 안 든 건 아니다. 어차피 재갈이 물린 채로 죽을 테니 이놈의 입으로 비밀이 누설될 리도 없고.
하지만 그건 할 짓이 아니기에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히데요시가 믿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 짓을 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없다.
“내금위장, 다시 놈에게 재갈을 채워라. 그리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절대로 풀어주지 말라.”
이제까지 나와 상희 사이에 오간 대화는 모조리 영어였다. 목소리가 들리는 범위 안에 아직 내금위장과 금부도사가 있었고, 나와 히데요시가 나눈 대화 내용이 저들을 통해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내가 준 물 한 그릇 덕분에 아마 히데요시는 다른 둘보다 하루쯤 더 숨이 붙어 있겠지. 그 뒤에는 소금에 3년쯤 묻어서 물기를 뺄 거다. 그리고 나면 다카카게와 함께 강무관에 전시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