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08
2부 4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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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가 한강변에서 말라 죽어가는 와중에도 일본 관련 업무는 계속됐다. 추방할 지역에 거주하는 일본인 중 아직 쫓겨나지 않은 여자나 어린애들은 현지에 정착하는 우리 군사들에게 일부 나누어주어 노비 또는 첩으로 삼게 하자는 안이 올라와 승인했다.
“땅을 계속 비워둘 수 없으니 당장 사람이 필요하고, 구주에 정착하겠다고 나선 군사 중에 가족이 없는 이들도 있는 데다, 가족을 보내려 해도 겨울 바닷길이 험해 바로 보낼 수 없다. 왜인 일부를 그대로 두어 살게 하자는 호조의 제안에 옳은 면이 있으니, 그리 처리하라.”
그 구역에 남은 왜인은 아직 상당수다. 경상남도만큼 넓은 땅에 고작 5만 병사를 투입해서 인종청소(나치처럼 다 죽이는 건 아니지만)를 마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현지에 주둔할 왜별기는 대략 6천 명 정도가 될 듯하다. 우리 군에 속해 있던 왜별기 중에 타치바나나 사나다, 시마즈 가신들은 전부 빠져나가지만, 규슈 북부나 혼슈 출신들은 굳이 내 밑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전쟁에서 새로 귀순한 놈들도 좀 있어서 말이다.
여기에 한 몫 보탠 게 사나다 노부유키다. 이놈이 사나다 본령(本領)에 있던 본가 가신들을 잔뜩 데려오는 바람에, 사나다 령으로 들어가려던 왜별기 다수가 계획을 바꿔야 했다. 이들을 몽땅 받아들이기에는 영지가 좀 부족했던 탓이다.
이런 놈들은 우리 군사들과 같이 직책에 따라 토지를 나눠주고 정착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왜별기 밑에 들어가는 하인이나 소작농으로 일부 일본인들이 남는 것도 허용했다. 이래저래 예외를 허용하다 보니, 북부 3주도 순수하게 조선인으로 채워지지는 않을 듯하다.
사실 혈통은 크게 중요하진 않다. 본인이 나라에 품는 소속감이 더 중요하지. 지금 대마도 왜인들은 충실한 조선인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이에 반해서 이여송 일가는 조선 혈통이면서 충실한 중국인으로 살고 있다. 여기서 심사 종료다.
“붙잡아온 왜장 중에서 충성을 서약하는 놈들은 구주로 보내 아소 씨 밑에 넣는다. 아직은 그쪽 영지 배분이 확정되지 않았으니, 적당히 선별해서 보내라.”
물론 경인년에 대민범죄를 악질적으로 저지른 놈들은 안 봐준다. 그런 놈들은 몽땅 머리를 잘라 강무관 수장고에 갖다 넣었다. 경인년에 잘라둔 수급 무더기에 보태서 패거리들과 다시 만나게 해줬다. 기둥에 묶어둔 가토도 말라 죽으면 수급만 강무관 수장고로 보낼 생각이다.
“구주에서 올해 겨울은 무난히 보낼 수 있겠는가?”
“군량을 넉넉히 남겨두고 왔으니 괜찮을 것입니다.”
규슈에 갖다 놓은 물자를 몽땅 도로 싣고 오려면 우리도 힘들다. 그래서 무기나 화약류만 거의 챙겨오고 식량이나 포목 같은 건 꽤 많이 남겨두고 왔다. 잔류한 우리 군사들도 먹여야 하고, 친조선파 영주들도 지원해야 하니까.
혼슈야 기근이 터지건 말건 알 바 아니다. 주고쿠를 쑥밭으로 만든 여진족 비정규 기병대 ? 비공식적으로 붙은 별명이 황충군(蝗蟲軍, 메뚜기떼)이었다 ? 때문에 지옥도가 펼쳐졌다지만 거긴 내 영역이 아니니까. 뭐, 돈을 들고 온다면 곡식을 팔아줄 용의는 있다.
피골이 상접한 정여립이 돌아와서 보고한 바에 따르면, 여진족 놈들은 모리 군이나 주고쿠 백성들과 싸운 100여 일 동안 전체 병력 1만 기 중에 7천 기를 잃었다. 최대한 넓은 지역을 약탈하고 물자를 원활히 보급하려고 병력을 분산시킨 대가다.
“병판, 야인들이 거둔 전과는 얼마라 하였는가?”
“포로 3만 명, 소와 말 1만 두, 곡식 4만 석, 그 외 재물이 은 10만 냥 어치입니다, 곡식은 동래에서 저화로 바꿔주었고, 가축은 놈들이 직접 몰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포로는 배에 실어 나르도록 도와주는 중입니다.”
노획한 물품이 생각보다 적은 이유는 뭐 간단하다. 적당히 털어서 제때 빠져나올 줄 몰랐던 놈들은 너무 많은 약탈품을 걸머지고 허덕거리다 추격당해 잡히거나 함정에 빠져 몰살당했기 때문이다. 약삭빠른 놈들은 수시로 해안에 설치한 거점으로 돌아와 노획물을 놓고 다시 갔다.
포로 3만을 잡았다고 하지만, 전사 7천을 잃었으니 부여주에서 여진족 세력은 이제 완전히 뼈대가 꺾인 거나 마찬가지다. 오도리랑 왜인여진 빼면 ‘여진족 남자’ 숫자가 탈탈 털어도 1만 명이 안 되지 싶다. 떠돌이 산적들이야 뭐 당연히 별개고.
지금 바로 이 시점에 북방 통제를 강화해서 여진족들도 전부 군현으로 편제하고 ‘성저야인(城底野人)’으로 만든다. 전가사변도 계속 시행해서 북변 인구를 늘릴 거니까, 그러면 적어도 두 세대 안에는 부여주 여진족들이 거의 동화될 거다.
속말주야 전쟁 치르면서 아예 청소되다시피 했으니까 그 문제가 없어졌고, 연해주 토인들은 애초에 수도 적고 폭력적이지도 않으니 굳이 일부러 동화시킬 필요 없을 듯하다. 조선 조정이 제공하는 조건이 마음에 들면 그놈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텐데 뭘.
그렇지 않아도 연해주에서는 이미 스스로 동화가 진행되는 중이다. 스스로 감영을 찾아와서 호적을 등록하고 씨감자를 얻어가는 야인들이 줄을 지어 나타나고 있다.
“건주위는 자기들 땅으로 복귀하였는가?”
“평안감사에게 파발이 왔습니다. 이틀 전에 포로와 가축을 모두 끌고 압록강을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놈들도 고생이 많았다.”
이번 전쟁에 참전한 건주위 병력은 정확히 절반, 1500기를 잃었다. 슈르하치는 이번에 자기 직속부대만 거느리고 왔다고 했는데, 이로써 엄청난 타격을 입은 셈이다.
노획물도 얼마 안 된다. 포로는 4천여 명, 가축이 5천 필, 곡식 8만 석, 재물 2만 냥뿐이다. 처음부터 자기들 몫만 챙겼다면야 훨씬 짭짤하게 벌었겠지만, 초기에 이여백이 뜯어간 액수가 워낙 커서 마지막에 정말 미친 듯이 쓸고 다녔어도 얼마 벌지 못했다.
건주위가 유독 곡식이 많은 건 우리한테 나이가 들었거나 허약한 포로를 팔고 저화로 바꾼 액수가 많아서 그렇다. 그렇게 건주위에서 사들인 포로들은 우리가 집계한 포로 4만 명에는 포함되지 않았고, 대남도나 연해주로 보내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막노동을 시킬 예정이다.
“그중 일부는 구주에 그대로 두어 우리 군사들을 시중들게 하시옵소서. 젊고 건장한 사내도 아니니, 소요를 일으키는 일도 훨씬 드물지 않겠습니까?”
“알겠다.”
늙었다고 해서 그동안 익힌 싸움 솜씨가 어디로 가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눈치도 빠르겠지. 늙은 포로들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 규슈에 일부 남겨도 될 듯하다. 우리 군사들에게 늙은 머슴을 하나씩 나눠주는 셈이 되겠군.
“그보다 건주위가 추후에 어찌 움직일지 살펴야 한다. 이번 원정에서 건주위 군사들이 싸운 모습에 관해 보고를 들으니, 그 기량이 우리 정예와 비해 떨어지지 않았다. 평안도와 속말주, 부여주에 영을 내려 늘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하라.”
“예, 전하.”
해서부가 소멸했고 일본을 두드려 패서 쓰러트렸으니 이제 내 주변에는 명나라와 건주위만 남았다. 명나라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사실상 남은 상대는 건주위 하나뿐이다.
하지만 전부터 누누이 이야기했듯 나는 지금 건주위까지 제거할 생각이 없다. 당장 그래야 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건주위 제거 후 명나라와 직접 국경을 맞대게 되었을 때 우리가 겪을 피곤함이 당장이라도 눈앞에 보일 듯하다.
한반도에서 중국과 국경을 맞대서 재미를 본 국가가 누가 있었지? 고구려는 결국 중국과 싸우다 망했고, 신라는 완충지대로 발해를 두었다. 발해는 그냥저냥 지냈지만, 그건 당나라가 전성기를 지나 쇠퇴기에 들어선 덕분이었다.
지금 명나라는 아직 안 망했다. 조선이 욕심을 부리려면 명나라가 망해야 하는데, 건주위가 완충지대 노릇을 안 하면 그 혼란 속에 본의 아니게 말려들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만약에 치고 나가기로 마음을 먹으면, 굳이 직접 육로로 진격할 필요도 없다. 수군이 있으니까.
“노을가적(老乙可赤, 누르하치)에게 서한을 하나 써라. 아우 서이합제(舒爾哈齊, 슈르하치)가 이번 원정에서 분전하였음을 치하하고, 그 아들인 대선(다이샨) 역시 어린 나이에도 용맹하게 싸워 다른 군사들에게 모범이 되었다고 말이다.”
다이샨이 이번 원정에서 보인 태도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부대대장은 때로 대대장 대신에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혈통에서 나오는 위세를 고려해서 판단해도 충분히 훌륭한 지휘였다. 그동안 내 옆에 두고 왕자들, 부마들과 함께 가르친 보람이 있다.
이만한 역량이라면 내 사위로, 그리고 장차의 건주위 통치자로 성장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슬슬 본격적인 관리에 들어가야 할 듯하다.
휴우, 외정에 관해서는 여기서 잠깐 생각을 멈추자. 한동안 손을 뗐던 내정도 다시 살펴야 하니까. 봄이 오면 새롭게 시작할 사업 리스트가 줄을 잇고 있다. 하나씩 확인해 보자.
“도성에서 평양까지 포장도로를 만드는 일은 어찌 진행되고 있는가?”
“설계를 마쳤사옵고, 자재를 준비하고 인부를 동원할 계획을 마쳐 두었습니다.”
맨땅에 벽돌만 깔면 포장도로가 되는 게 아니다. 땅을 파서 돌과 진흙으로 기초를 다지고, 양쪽 옆에 배수로까지 완비한 뒤에 포장재를 깔아야 제대로 된 도로를 만들 수 있다. 도성과 개성, 평양 시내에 있는 주요 도로도 모두 그렇게 정비했다.
튼튼한 도로가 생기면 역마차 시스템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고을과 고을을 잇는 수레는 지금도 다니지만, 길이 좋아지면 더 크고 튼튼한 수레가 오갈 수 있다. 더 많은 짐을, 더 많은 승객을 도로로 수송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가면 철도 부설이 가능해진다. 레일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철 조달이 문제지만, 산업 육성을 제대로 시작하면 그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한반도에도 철광석 매장량이 상당한 편이고, 이제 규슈를 얻었으니 엄청난 석탄을 캐낼 수가 있다.
내가 군함도 말고 다른 탄광은 정확한 위치를 하나도 모르지만, 규슈 북부에 많은 석탄이 묻혀 있다는 건 안다. 이미 일본인들이 채굴 중인 광산도 있다고 들었다.
더구나 규슈에는 무연탄만이 아니라 역청탄도 많이 묻혀 있다. 역청탄으로는 코크스를 만들 수 있고, 코크스가 있으면 고로를 만들어서 제철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조선에 많은 무연탄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코크스 만드는 법? 역청탄을 숯 굽듯이 구워서 안에 든 탄소 외의 성분을 몽땅 날려버리면 코크스가 된다. 어릴 적에 읽은 카네기 위인전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다만 그 책에서는 ‘몇 도로 몇 분이나 구워야 하는지’까지는 안 나와 있었지만, 뭐 해보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한 가지 아쉬운 건 아직 증기기관 소형화는 좀 어렵다는 거다. 제법 작게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대신 출력이 안 나온다. 이제 전쟁이 끝났으니, 그동안 대포 제작에만 쓰던 수력 천공기를 증기기관 개량에 돌리면 좀 더 향상되지 않으려나 싶다.
증기기관차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 끄는 철도마차도 크게 나쁘진 않다. 목제 레일을 타고 달리긴 하지만, 탄광이나 기와 굽는 가마 같은 시설에서는 지금도 조랑말이 끄는 철도마차를 구내용으로 잘 쓰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염전에서도 소금 운반에 쓰고 있고.
아무튼, 이제 전쟁이 끝났으니 이런 산업 발달에 본격적으로 눈길을 돌릴 때가 됐다. 기껏 치트로 발명한 증기기관을 가지고 양수기랑 기중기 동력원으로만 쓰지 말고, 다른 용도도 좀 개척해 보자.
– 5 –
지금 조선교구에 속해 있는 성직자는 신부 14명이다. 유럽에서 온 예수회 선교사가 11명, 평신부가 3명이다. 평신부 3명은 모두 부안에 있는 유럽인 마을에 있고, 예수회 선교사들은 한양과 개성에 머무르면서 수시로 지방 도시를 왕래하고 있다.
“아직은 도시 사이를 이동할 때 조선 관리를 꼭 대동하게 하는 걸 보면, 우리가 간첩행위를 할까 봐 경계하는 듯합니다.”
“어쩔 수 없지요. 5년 전에 일본에 있는 형제들이 침략군을 도왔으니.”
예수회 일본 지부는 노부나가를 위해 군함과 선원, 대포와 포수를 조달해주었다. 일본에서 기껏 얻은 선교의 자유를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조선 측에서 보기에는 예수회가 양다리를 걸쳤다고 판단하기에 충분했으리라.
그 뒤로도 딱히 조선 정부에서 교회에 불이익을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걸려 있던 제약을 풀어주지도 않았다. 조선 교구 신부들로서는 그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기며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신자들을 돌보며 사목활동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도나 히메네스가 알려주기를, 국왕은 우리 교회에 여전히 큰 호감을 품고 있다 했습니다. 이제 일본과의 전쟁도 다 끝났으니, 평화를 즐기는 분위기가 되면 그동안 우리가 소망해 오던 신학교 설립과 여러 지방까지 걸치는 선교의 자유도 허락해 줄 거라고요.”
‘도나 히메네스’는 이덕형의 첩이 된 스페인 귀족 아가씨, 롤리타 히메네스를 가리킨다. 이 나라에서는 아내가 남편 성을 따르지 않고, 게다가 롤리타는 이덕형의 본처가 된 것도 아니다 보니 한양에 있는 유럽인들은 그녀를 지칭할 때 그냥 본래 성으로 불렀다.
“도나 히메네스는 궁궐에 자주 드나들지요. 그녀가 한 말이라면 아마 사실일 겁니다.”
롤리타는 국왕의 총애를 받는 이 소의와 무척 가깝게 지낸다. 이덕형이 전장에 나가고 없는 동안은 사흘이 멀다 하고 궁궐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이 소의도 국왕만큼이나 유럽을 잘 알고 있더라면서, 무척 놀랍더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지금 시중에는 도나 히메네스를 궁으로 불러들이는 사람이 이 소의가 아니라 국왕이라는 소문도 암암리에 돌고 있습니다. 그 미모에 반해 정부로 삼았다는 거지요.”
“신하의 아내를 국왕이 탐하는 일은…유럽에서는 흔한 일이지요. 하지만 조선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마 사실이 아닐 겁니다.”
팔레데스 주교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지난 10여 년 동안 알고 지낸 조선 국왕은 다윗 왕이 아니었다. 아무리 미인이라 해도 신하의 아내를, 그것도 이덕형처럼 총애하는 신하의 아내를 건드릴 사람이 아니라고 보았다. 더구나 조선 귀족들은 도덕심이 매우 강한 편이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저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로카넬라 신부는 얼른 화제를 바꿨다. 이 나라는 절대군주가 다스리는 나라다. 외국인에다 성직자라고 해도, 국왕을 모독하는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이 국왕의 첩보원들에게 알려진다면 그다지 재미있는 일은 없을 게 뻔했다. 출처를 추궁당하고 추방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 형제인 아우구스티노 공이 곧 죽음을 맞을 테니 마음이 무척 편치 않습니다. 어떻게 구명할 방법이 없을까요?”
아우구스티노는 고니시의 세례명이다. 조선에 건너온 예수회 신부들은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경우가 많았고, 그 도중에 개항장인 나가사키에 가까운 데다 독실한 신자인 고니시의 영지에 들러 인사를 나누곤 했다. 이들 두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만드는 책이 완성되면 아우구스티노 공은 처형당합니다. 본인은 이미 목숨을 포기한 듯하지만, 이대로 죽게 두기는 가엾지 않습니까.”
로카넬라 신부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는 태도였다. 하지만 옆에서 조용하게 듣고 있던 알라르콘 신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우구스티노 공은 군인으로서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 하고 있소. 그러니 공연히 나서지 않는 편이 좋소. 게다가….”
잠시 망설이던 알라르콘 신부가 무겁게 말을 이었다.
“국왕 개인은 우리 교회에 호의를 품고 있다고 하지만, 고관 중에는 여전히 우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많소. 우리가 다른 사람도 아닌 일본 장군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여기 조선의 정치에 개입하려 들면, 그런 이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게 될 거요.”
그저 사람 하나를 살리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이 나라를 침공한 외국군의 핵심 수뇌부를 구출하는 일이다. 더구나 이 나라는 그 죄인에게 이미 사형을 선고했고, 지금은 집행을 잠시 유예했을 뿐이다.
“순교는 아니지만, 아우구스티노 공의 의연한 죽음은 더 많은 신자를 자라게 하는 씨앗이 될 거요. 그리 믿고 공이 당당한 최후를 맞을 수 있게 돕도록 합시다.”
“알겠소이다.”
로카넬라 신부가 한숨을 쉬었지만 사실 정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문제이긴 했다. 조선처럼 인구 많고 강력하면서 수수께끼 같은 놀라운 비밀을 잔뜩 가진 나라를,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어떻게든 버티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