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11
2부 489화
– 11 –
며칠만 있으면 새해가 온다. 조선을 비롯한 각국 사신들이 북경으로 몰려와 황제에게 새해 인사를 올리는 날이다. 이미 모든 객사는 각국에서 모인 사절들과 그 일행들로 가득하다.
더구나 올해는 근래에 유례가 없는 해다. 새로 귀순한 공을 높이 사서 1년 1공을 허락받은 일본국왕 원의소가 보낸 사신까지 찾아왔기 때문이다.
“공물도 상당한 양을 가져왔더군요. 지난 전쟁에서 입은 피해가 우리 생각만큼 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예부상서 범겸(范謙)이 일본 사신이 가져온 공물 목록을 다른 상서들에게 보여주었다. 산호, 공작새, 원숭이 등 사치품이 즐비한 것을 본 병부상서 석성이 코웃음을 쳤다.
“조선군한테 져서 쑥대밭이 된 주제에 허세는…주제를 알고 토산품이나 보내라 하시오. 아, 원숭이는 일본에서도 난다고 했던가? 그럼 토산품이긴 하군.”
석성이 비웃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과거 일본 사신단은 일본에서 직접 배를 몰고 왔지만,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보낸 사신들은 조선 사신들이 탄 배에 편승해서 왔다. 조선이 사신 파견 전용으로 운용하는 중국식 배 말이다.
숙소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사신이 입조하지 않은지가 너무 오래되어 일본인들을 수용하기 위한 별도의 숙소 따위는 북경 내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일본 사신들은 조선인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해동관(海東館), 일명 조선관(朝鮮館)에 함께 머무르고 있다.
본래 조선 사신들은 여러 나라 사신을 모두 접대하는 관아인 ‘회동관(會同館)’에 유숙했다. 하지만 몇 해 전 조선왕이 황제에게 올린 국서가 사정을 바꿔버렸다.
‘저희 사신은 1년에 3번씩이나 북경을 찾으며 모두 합치면 반년은 족히 머무는데, 유숙하는 곳은 다른 사신들과 돌려가며 사용하니 심히 불편합니다. 자비를 베푸시어 따로 머물 수 있는 집을 한 채 내려주시옵소서.’
보고를 받은 만력제는 즉각 북경성 내에 있는 100칸짜리 저택 하나를 비워 ‘해동관’이라는 이름을 짓고 조선인들에게 전용으로 내주게 했다. 명나라가 생긴 지 200년은 물론이고 그보다 과거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도 이런 특혜를 받은 번국이 또 있었을까 싶었다.
“조선왕이 폐하께 국서를 올릴 때마다 국고가 축이 납니다. 엄연히 따로 쓸 데가 있어 걷은 세금을 자꾸 조선왕에게 군자로 내주시니, 저는 조선 사신이 또 왔다는 소식만 들으면 심장이 두근거려 청심환을 먹어야 할 참입니다.”
한숨을 푹푹 쉬던 호부상서 양준민이 품에 넣고 다니는 나무상자를 꺼내 보였다. 정작 그가 꺼내든 청심환은 조선산이었지만, 그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명나라에서 만든 청심환은 워낙 가짜가 많아서 돈깨나 있는 이들은 모두 조선에서 들어온 물건을 복용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조선에 원조할 은자를 염출하느라 우리 군사들에게 제대로 보수를 지급하지 못할 지경 아닙니까? 이 문제에서는 석 상서께서 정말 할 말이 많으실 듯합니다.”
좌중의 시선이 병부상서 석성에게 쏠렸다. 하지만 석성은 황제가 조선에 더욱 많은 도움을 주도록 부추긴 장본인 중 하나다. 그는 호부상서의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않고 짐짓 딴청을 부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조선 사신은 이제 알현이 끝났소? 폐하께서 우리를 만나주실는지 여쭈어야 하잖소.”
“아직…끝나지 않았습니다.”
병부상서가 자신에게 폭탄을 돌릴 줄은 몰랐던 예부상서 범겸이 깜짝 놀라 답했다.
“조선 사신을 불러들이신 시각이 사시(巳時, 9~11시)였는데, 지금 신시(申時, 15~17시)가 다 끝나가지 않소? 그런데 아직도 알현이 안 끝났다고?”
상서 6명 중 최선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부상서 손비양이 시무룩한 얼굴로 물었다. 범겸이 쩔쩔매며 대답했다.
“그러합니다. 이번에 조선에서 보낸 정사(正使) 이덕형이 지난 출병에 직접 종군했음을 이미 천자께서 알고 계셔서, 이덕형이 왔음을 아시고 특별히 불러들여 지난번 전쟁 이야기를 직접 듣고 계십니다.”
이덕형은 비록 문관이나 지난 원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체찰사로서 원정군의 후방 지원과 함께 규슈 통치를 맡았고, 전쟁을 마무리하는 강화협상까지 담당했다. 만력제가 듣고 싶어 할 만한 이야깃거리가 엄청나게 많을 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조선왕이 보낸 모형선을 남해(南海)에 띄워놓고 수전을 즐길 정도였다. 왜선 대신에 적당한 나룻배를 띄워놓고 조선이 진상한 왜인 포로들을 태운 뒤, 조선 전선에서 활과 화포를 쏘아 살상하게 하면서 재미있어했다. 그만큼 조선이 치른 전쟁 이야기를 좋아했다.
“아무래도 조선왕이 의도적으로 사신을 선별한 듯합니다. 폐하께서 가장 듣고 싶어 하시는 이야기를 가장 잘 들려줄 사람으로 말입니다.”
이덕형은 이미 사신으로 몇 차례 북경을 오갔었고, 덕분에 그 사람됨에 대해서 상서들도 잘 알고 있었다. 경박하지 않게, 차분하고 순리에 맞는 대화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면서 상대를 설득하는데 뛰어난 사람이다.
“조선왕이 불랑기(佛狼機 : 중국에서 포르투갈-스페인 계열 유럽인들을 가리키는 명칭)와 홍모인(紅毛人 : 중국에서 영국-네덜란드 계열 유럽인들을 가리키는 명칭)들의 나라에 사신을 두 번 보냈었는데, 이덕형은 두 번 전부 뽑혀서 다녀왔다지요. 두 번째 다녀올 때는 불랑기에서 첩도 하나 데려왔다고….”
“석 상서, 지금 그런 이야기나 할 때가 아니잖소!”
손비양이 역정을 냈다.
“우리가 그 많은 돈을 조선에 퍼부었는데, 조선 사신이 불랑기인 계집을 첩으로 데려왔다는 이야기나 할 상황이오?”
손비양은 처음부터 조선에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왜구 때문에라도 조선 원조를 반대하지 않기는 했지만, 조선이 세력을 확장하는 건 경계했다. 그래서 건주위가 조선에 버금가는 공을 세우게 해서 조선을 견제하려고 했는데, 양호와 이여백이 다 망쳐 버렸다.
조선군 수뇌부를 적절히 제어하라고 보낸 양호는 황제에게 감화를 받았는지 이순신 앞에서 해롱거리기만 하다가 돌아왔다. 건주위를 움직여 전공을 세우게 하라고 보낸 이여백은 물욕에 미쳐 날뛰다가 망신만 당하고 돌아왔다. 그나마 챙긴 재물은 대부분 독차지했다.
조정에서는 그 많은 군비를 조선에 주느라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군사비 지출이 줄고 급료가 연체되자 탈영병이 줄을 이었다. 임시로 부과한 증세 때문에 백성들은 불만이 커졌다.
이 두 가지 요인이 겹쳐지자 당연한 결과로 민란과 도적이 폭증했다. 관군이 토벌에 나서긴 하지만, 관군도 급료가 밀리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으니 이참에 수입을 보충하려고 들곤 했다. 관군이 벌이는 토색질 때문에 보는 피해가 도적이 주는 피해보다 큰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이건 약과다. 아예 한술 더 떠서 진압하러 간 관군이 현장에서 반란군에 합류하기도 한다. 그러면 반군의 세는 급증하고, 관군은 더 많은 병력을 다시 파견해야 한다. 당연히 현지 백성들이 입는 피해는 더 커진다.
이런 문제들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정작 군무를 책임진 병부상서라는 작자는 엉뚱한 이야기나 하고 있으니, 이부상서인 손비양이 역정을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우리 천병이 워낙 엉망진창이라 지금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모두 진압하려면 조선군을 차병(借兵)이라도 해야 할 판이오! 그런데 병부상서는 조선 사신의 불랑기인 첩 이야기나 하고 있으니, 속도 편하시오!”
조선 원조는 차라리 약과일지도 모른다. 황제는 자기 무덤을 만드는 데만 이미 400만 냥을 퍼부었으니까. 차라리 조선에 은을 보내면 조선의 호감이라도 얻을 수 있지만, 무덤에 파묻은 은은 오직 황제 개인의 만족감을 위해서 쓰일 뿐이다.
“이부상서, 진심이십니까? 조선에 차병을 해서 반란을 진압하자고요?”
예부상서 범겸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무리 지금 사정이 좋지 않다지만, 그런 일을 벌인다면 대국으로서 가지고 있던 체면은 어떻게 되겠는가.
“못 할 건 뭐요? 달자 놈들도 고려군을 불러들여 장오왕을 토벌하지 않았소?”
장오왕(張吳王)은 생전에 오왕(吳王)을 칭한 원나라 말의 반란자 장사성(張士誠)을 가리킨다. 원에 맞서 반란, 투항, 재반란을 반복하던 장사성은 주원장과 맞서던 마지막 경쟁자였고, 결국 주원장에게 패하고 잡혀 죽었다. 그 뒤에 주원장은 명을 세우고 황제 자리에 오른다.
원 조정은 한참 세력을 떨치던 장사성을 진압하느라고 고려에까지 병력을 보내라고 했었다. 이때 지원군을 이끌고 온 장수가 바로 최영이었다.
“달자 놈들은 고려에 준 것도 없으면서 필요하니 고려군을 불렀소. 우리는 1700만 냥이나 되는 은을 주었으니 군사 몇천 정도는 언제든 불러들여도 될 빚을 안긴 게요.”
“하지만 이부상서 대인, 대국으로서 보여야 할 아량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은을 대줬으니 군사들의 피로 그 빚을 갚으라’ 하면 조선이 반발하지 않을까요?”
범겸은 어떻게든 손비양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석성도 입을 꾹 다물고 눈치만 보고 있는 참에 그렇게 나섬은 실로 상당한 용기였다. 하지만 황제의 태만과 빈발하는 민란 탓에 짜증이 치솟을 대로 치솟은 손비양은 생각을 바꿀 의사가 별로 없었다.
“이건 빚 독촉이 아니오! 저들에게 황제의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는 것이지. 천자를 위해서 몸 바쳐 봉사함이 어찌 값진 일이 아니겠소? 공을 세운 이에게는 벼슬로 치하하면 될 거요.”
소소한 민란이야 어떻게든 관군으로 진압하겠지만, 만약에 발배의 난 같은 대규모 반란이 또 일어난다면 지금의 관군으로는 벅차다. 속수무책으로 쩔쩔매기보다는 조선군을 불러들이는 편이 정말 더 나을지도 모른다.
병부상서 석성이 쏘아보는 손비양의 시선을 피해서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조선 사신들과 어울리는 일을 군무보다 더 좋아하는 저런 자가 어찌 병부상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라고 생각한 손비양이 그 뒷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 12 –
“그래, 요시아키 공이 결국 명나라에 머리를 숙였군.”
일본국왕으로 책봉을 받은 이상, 언젠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이제 명나라에서 칙서가 오면 그 앞에 요시아키 본인이 꿇어 엎드리는 일도 해야 하리라.
명나라 황제 따위는 일본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다. 이에야스도 교토에 있는 천황이라면 몰라도 저 멀리 바다 건너에 있는 명나라 황제 따위를 경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차라리 조선왕에게 절을 하는 게 낫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혼다 마사노부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강화협상에서 조선인들을 대하면서 조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된 만큼, 마사노부는 이에야스에게 한층 더 중요한 심복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조정의 반발은 아직도 강한가? 조정에 있는 공경 중에 한 사람도 자기가 사신으로 가겠다고 하지 않아서 구로다 요시타카 공이 가도록 만들어 놓고도?”
“과거 요시미츠 공이 처음 책봉을 받았을 때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때와 똑같습니다.”
교토에 있는 귀족들은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국왕으로 책봉을 받자, 천황을 제쳐놓고 자기가 감히 국왕이 되었다고 무척 싫어했다. 힘을 쥔 요시미츠가 무서워서 대놓고 반발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교토의 귀족들은 일본을 점령한 조선군을 몰아내기 위해서 요시아키가 명나라 황제에게 일본국왕으로 책봉을 받는 데까지는 묵인했지만, 자신들이 그 일에 협력해서 명나라 황제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일은 거절했다.
교토의 조정과 공경들에게 있어서 요시아키는 진서대장군일 뿐이다. 명나라 황제가 책봉한 일본국왕으로서의 요시아키는 그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고, 따라서 사신으로 나서야 할 이유도 없다. 요시아키가 옛날 요시미츠처럼 힘을 가지고 있다면 별문제였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굴욕은 요시아키 공 혼자서만 당하라 이거로군. 자기들은 계속 교토에 앉아 고고한 척하고 계실 작정이고.”
이렇게 말하는 이에야스 자신도 요시아키가 진 짐을 나눌 생각은 전혀 없었다. 요시아키가 좋다고 걸머진 짐이니 뒷수습도 자기가 알아서 하면 되는 거다. 규슈에는 여러 친 요시아키파 인사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이들로 막부를 꾸리고 운영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명나라, 조선과의 형식적인 관계 유지는 요시아키가 맡는다. 자신은 오사카를 통해 별도로 꼭 필요한 교류만 진행하면 충분하다. 이쪽에는 복잡한 격식 같은 건 필요 없다.
“오사카에 세우는 강화비는 비각까지 작업이 완료됐습니다. 조선 쪽에서도 동래에다 똑같은 비를 세웠습니다.”
강화조약 전문을 새긴 비는 양측이 각자 부담으로 세우기로 했다. 오사카에 세운 비는 현지 상인들이 제작비를 댔다. 이제 자유를 얻었으니 비석 하나 세우는 비용쯤은 약과일 터였다.
오사카에는 이제 영주가 없다. 일단 이에야스의 대관이 주재하기는 하지만 세금을 걷을 뿐, 시정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옛날 사카이 시대로 돌아가는 셈이다.
“수고가 많았네. 그런데 지금 주고쿠 쪽 상황은 어떤가? 식량부족 문제로 주민들이 잇키를 일으키려는 기세는 없나?”
“도이들이 준 피해가 워낙 심해서 잇키를 일으킬 여력도 없습니다.”
히데요시와 모리가 지배하던 중부와 서부 영지는 모조리 지배자가 바뀌었다. 모리가 가지고 있던 120만석 영지는 주고쿠 최서단에 있는 나가토 1국, 13만 석만 제외하고 모두 빼앗겼다. 남은 영지는 이에야스에게 귀순한 옛 노부나가, 히데요시의 신하들에게 주어졌다.
다만 이들이 받은 땅은 대부분 약탈에 나선 도이들의 파괴와 이들과의 교전으로 폐허가 된 상황이다. 당분간은 허리띠를 졸라매 가며 재건에 몰두해야 하리라.
함께 서정에 참가한 다테, 사타케, 우에스기에게는 히데야스의 영지였던 아이즈 50만 석을 갈라서 분배했다. 대신 히데요시의 측근들이 독점하고 있던 긴키 일대 영지는 모두 이에야스 휘하 직신들에게 돌아갔다. 히데야스도 장모 오이치의 오우미 44만 석을 받았다.
당장은 아이즈를 잃은 이에야스의 손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긴키 일대는 주고쿠만큼 전란의 피해를 심하게 입지 않았다. 피해를 복구하고 나면 일본의 중심은 이에야스가 확실히 틀어쥐게 된다.
“준비가 다 되면, 초소카베부터 쳐야겠지?”
“물론입니다.”
시코쿠는 촌구석이다. 하지만 초소카베 따위가 섬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멋대로 굴도록 놓아둘 수는 없었다. 그 섬에 보낼 수 있는 영주가 몇 명인가?
“초소카베를 제압하고 나면 시마즈는 알아서 무릎을 꿇게 될 겁니다. 강화조약에서는 우리 일본의 내정에 조선이 개입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아놓고 있으니까요.”
규슈는 일단 진서대장군 요시아키의 관할이다. 하지만 요시아키가 실제로 갖는 비중은 전혀 없다고 봐도 된다. 그 틈을 노리면 이에야스가 영향력을 미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천천히 해나가도록 하세. 시간은 있으니까.”
“예, 주군.”
생각보다 빨리 정이대장군이 되어 막부를 열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이제부터는 좀 천천히 앞으로 가도 된다. 노부나가처럼 대륙을 정복하겠다고 설칠 것도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