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18
2부 496화
– 7 –
안남에서 올라온 외수사 교역선들이 부지런히 짐을 내렸다. 부두에 나간 정준석은 선단을 인솔하는 도방으로부터 진남성에 내려놓을 물품목록을 받아들었다.
“안남미 3천 석, 물소 3백 두, 코끼리 4두…모두 기재된 그대로구려. 오다가 배에서 폐사한 녀석들도 거의 없군. 좋소. 아주 만족이오.”
“모두 무사히 운반하느라 애쓴 저희 수고도 좀 생각해 주십시오.”
“물론이오. 하역이 끝나는 대로 성으로 들어오시오. 그대는 물론이고 선인들 모두에게 아주 거하게 차린 주안상을 대접할 테니.”
당연히 연회에는 술과 음식만 나오는 게 아니다. 흐벅진 가슴과 엉덩이를 가진 토인 계집을 품을 기회임을 선인들도 잘 알고 있었다.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들으며 정준석은 먼저 성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남도 이주가 시작된 지 만으로 5년이다. 지난 2년은 을미동정과 그에 이은 규슈 이주 등 사정이 겹쳐 본국에서 추가로 인력을 보낼 수 없었지만, 그전에 3년 동안 보낸 인원만으로도 대남도 경략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지금 대남도에 거주하는 이들 중에서 조선에서 건너온 백성 수는 3만 명이다. 이 정도 수만 있어도 대남도 북부 일대를 제패하기에는 충분했다. 무기와 훈련에서 토인들보다 훨씬 월등한 만큼, 충돌에서도 대개는 우세를 점했다. 물론 어느 정도 손해는 피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여기에 외인 노비 2만 명이 더해진다. 전투에서 붙잡혔거나 동맹 관계인 아타얄에게 물자를 주고 사들인 토인 여자와 아이들이 1만, 작년에 왜국 원정이 끝난 뒤에 이쪽으로 보내진 왜인 남녀가 1만 명이다. 다만 왜인들은 젊은이는 없고 죄다 환갑을 코앞에 둔 중늙은이뿐이었다.
“그래도 그 정도면 뭐, 쓸 만은 하니까.”
왜인들은 중늙은이라고 해도 칼도 잘 쓰고 싸움에 임할 때 보이는 두려움도 없다. 맞싸움을 벌이면 젊은 조선인 병사들이 도저히 이길 수 없을 정도다. 이쪽에 활이나 총이 없다면 만약 반란이 일어난다고 해도 대처가 어려우리라.
“늙은이들이 좋은 점도 있습니다. 적당히 쓰고 치울 수 있으니 말이죠.”
“옳은 말이긴 하지.”
부친 정일한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초대 대남도 관찰사로 부임하고 벌써 5년, 풍토에도 꽤 익숙해지고 토인들 말도 조금은 익혔다. 사람 잡는 북변의 추위보다는 푹푹 찌는 이곳 더위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더위로 사람이 타죽지는 않으니까.
“우리가 이 땅을 개척함은 우리 조선 백성들을 이주시킬 터전이 필요해서인데, 젊은 왜인을 데려오면 왜인들이 수를 불려 이 땅을 점할 것이 아니냐. 나이든 자들은 후사를 볼 수 없으니 적당히 활용하다가 완전히 쓸모가 없어지면 허드렛일이나 시키면 그만이다.”
정일한은 북변에 있으면서 야인들을 상대한 경험이 많았다. 통제가 어려운 이민족은 숫자가 조선인에 비해 적을수록 좋은 법이다.
“그나마 야인들은 수십 년 동안 우리 지배를 받으면서 어느 정도는 교화된 상태였지만, 저 왜인들은 처음으로 왕화를 받는 처지인지라 다루기가 쉽지 않다. 아직 우리 백성 숫자도 많지 않은 상태니, 젊고 사나운 왜인 수천이 온다면 감당이 어려웠을 것이다.”
“아버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정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야 왜인 천 명을 받기보다 코끼리를 한 마리 받기를 훨씬 더 원하니, 지금 상황이 꺼려질 리 없었다.
외수사가 안남에서 실어온 코끼리는 벌써 11마리에 달한다. 오늘 4마리가 더 왔으니까 이제 15마리, 본국에 있는 코끼리가 불과 4마리에 불과한 데 비하면 거의 4배가 되었다.
이 코끼리들은 외수사가 왜국에서 얻은 왜군의 병장기와 포로로 잡은 왜병들을 안남, 섬라 등지에 팔고 그 대금의 일부로 받아온 것들이다. 지금 숫자는 수컷이 9마리, 암컷이 6마리다.
“아쉽게도 이번 배로 온 코끼리가 외수사에서 사다주는 마지막 코끼리라고 합니다. 만약 더 필요하거든 우리가 직접 코끼리 값을 벌든지, 새끼를 치든지 하라는군요.”
정준석은 외수사 도방의 말을 전하여 매우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남도에서 코끼리는 매우 중요한 역축(役畜)이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평을 받고 있어서다.
코끼리가 하는 일은 많다. 숲을 개간하고 목재를 운반하며, 아무리 단단하게 굳은 땅이라고 해도 거침없이 쟁기를 끌어 고랑을 판다. 소 열 마리가 끄는 것보다 더 무거운 수레를 혼자서 끌고, 토인들과 전투를 벌일 때는 갑옷을 입고 싸움에도 나간다.
10여 마리나 되는 코끼리가 코를 들어 크게 울부짖으며 돌진하면 어떤 토인들도 그 자리에 서서 버티지 못했다. 토인들의 가벼운 화살 따위로는 모전(毛氈)으로 만든 코끼리 갑옷을 뚫지 못했고, 대응책이라고 하면 고작 함정을 파서 코끼리를 빠트리려고 시도하는 것 정도다.
코끼리를 먹이는 비용도 생각보다는 많이 들지 않는다. 하루에 먹는 양은 700근(420kg)에 가깝지만, 사방에 초목이 널린 데다 감저와 땅콩을 캐고 남은 잎과 줄기, 볏짚 따위를 먹이면 충분하다, 새로 재배하기 시작한 사탕수수도 좋은 먹이다.
단 한 가지 골치 아픈 문제라면 가끔 수코끼리가 발정이 나서 난동을 부린다는 것 정도다. 그럴 때는 사슬로 묶어둔 채 모두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말이라면 거세라도 시킬 텐데, 감히 자기 손으로 코끼리를 거세하겠다고 나서는 간 큰 용자는 없었다.
어쨌든 정준석은 토인들을 제압하는 데 코끼리를 써서 그동안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그런 까닭으로 부친 정일한을 통해서 본국 조정에 코끼리를 추가로 공급해달라고 청해서 알겠다는 답을 받았는데, 그게 이제 끝이 난 것이다.
정일한은 토인들이 모은 대군과 들판에 모여서 회전을 벌일 것도 아니니까 15마리만 해도 충분하지 않으냐고 아들을 다독였다. 정준석은 어쩔 수 없이 수긍하긴 했지만, 아쉬운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다. 부친의 방을 나와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상사(象舍)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오셨습니까, 나리.”
마침 하루에 한 번 있는 목욕 시간이라서 코끼리들은 전부 강가에 목욕하러 나가고 없었다. 넉가래와 빗자루를 들고 빈 코끼리 우리 바닥을 청소하던 왜노가 허리를 굽실거리며 정준석을 맞이했다.
이 왜노는 어찌 익혔는지 몰라도 조선말이 능숙하기에 옆에 두고 부리기로 한 중늙은이다. 대남도에 온 지 1년 남짓 지났지만 이름 외에 자기 과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아마 예전 신분이 꽤 높았기에 지금 신세가 부끄러운 모양이다.
“아직도 똥을 덜 치웠나. 습기 더 차기 전에 바로바로 내가서 잘 쌓아놓으라고 했잖아!”
청소가 덜 된 데 짜증이 난 정준석이 발을 들어 걷어차자 왜노가 똥 더미 위에 자빠졌다. 코끼리가 하루에 누는 똥은 200~300근(120~180kg)이나 되는데, 거의 풀 그대로라 잘 말려서 연료로 쓴다. 어린애 머리만큼 덩어리가 크고 무거워서, 삼태기에 일일이 담아 운반해야 한다.
코끼리 11마리가 우리 안에서 누는 똥만 해도 매일 1500근은 족히 된다. 이 왜노가 온종일 하는 일이 우리 안을 청소해서 똥을 건조장에 가져다 쌓고 마장(馬場) 등 우리 주변에 흘리고 다닌 똥을 모아오는 일이었다.
“원산, 이놈! 제때 밥을 먹고 싶으면 일을 제대로 해!”
“예, 나리.”
이 왜인은 자기 이름을 ‘모토야마’라고 했다. 조선식으로 읽으면 ‘원산(元山)’이 된다.
한 대 더 맞을까 봐 두려웠는지, 원산은 얼른 일어나서 계속 굽실거렸다. 한참 욕지거리를 퍼붓던 정준석이 겨우 나갔다. 대남도의 왕자나 다름없다 보니 태도가 무척이나 거칠었다.
“북변에서는 눈 치우는 일이 끝이 없더니 여기서는 똥, 그것도 코끼리 똥 치우는 일이 끝이 없구나.”
똥투성이가 된 원산, 아니 원균이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 8 –
오래간만에 나온 미행이다. 혹시 내 얼굴 알아보는 놈이 있을까 봐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차려입었다. 평범한 철릭 입고, 겉에는 솜을 두어 누빈 무명 두루마기를 입었다. 그리 두껍게 입으니 속에 입은 경번갑이 전혀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전하, 그래도 너무 번화한 곳으로 가시는 게 아니옵니까?”
“전하라 하지 마라. 그냥 나리라고 부르라지 않았느냐?”
한주동은 내가 이제까지 데리고 다닌 호위 중 가장 편한 녀석인 듯하다. 다지처럼 압도적인 다수를 상대로도 무쌍을 찍는 강자는 아니지만, 도성 안에서 호위 노릇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리니까 나이든 별감이나 선전관들보다 대하기 편하다.
“어디, 다점 분위기 좀 보러 갈까.”
상희네 가게는 ‘반촌다점’으로 간판을 걸었다. 이름이 ‘다방(茶房)’이 아니라 ‘다점(茶店)’이 된 이유는 궐내에서 차를 담당하는 ‘다방’이라는 관청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주로 판매하는 메뉴는 커피, 녹차, 스페인식 빵과 과자다.
커피는 결국 ‘가배(??)’라는 이름으로 팔기로 했다. 원래 이름과 비슷하면서 멋들어진 새 이름을 짓기에는 나와 상희 두 사람 다 창의력이 빈곤했다. 결국, 본래 역사에서 우리가 알던 그 이름대로 짓고 말았다.
이 다점은 11월 말에 개점했는데 열자마자 도성에 존재하는 온갖 기존 점포를 물리치고서 단연 최고의…핫플레이스가 되었다. 그 소문이 하도 자자해서 나도 구경하러 나왔다. 순전히 커피만 마실 거라면 그냥 상희 처소로 가면 되겠지만, 그곳 분위기를 직접 보고 싶었다.
한껏 부푼 기대감 속에 찬 바람을 뚫고 반촌에 도착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충격을 맛봤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자리가 없습니다. 대신 여기 번호가 적힌 목패를 드릴 테니 입구에서 호명하면 들어와 주십시오.”
중노미, 즉 가게에서 심부름하는 사내놈이 건넨 목패에는 87번이라고 적혀 있었고, 입구에 걸린 목판에는 지금 입장할 순서가 35번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니, 겨우 커피 한 잔 마시려고 얼마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야?
주변을 둘러보니 확실히 붐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나처럼 번호표를 받아들고 아직 차례가 되려면 멀었냐며 투덜거리는 한량들이 한 무더기 있는가 하면, 새빨개진 얼굴로 어정거리면서 대문을 걸어 나오는 청년도 있었다. 왜 그러는지 짐작이 간다.
왁자지껄한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문득 궁금해졌다. 유럽에서도 웨이트리스 같은 건 분명히 급이 낮은 직업인데, 롤리타의 시녀들이 어떻게 여기서 일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과연 저 안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아니, 나리께서 여기 계실 줄은! 뭘 기다리고 계십니까? 어서 들어가시지요.”
갑자기 누가 옆에서 내 손을 움켜잡았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리니 이항복이 싱글거리며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얼결에 칼을 뽑으려던 한주동도 얼른 칼손잡이를 쥔 손을 놓았다.
“번호표를 받아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던데….”
“하하! 제가 해결할 테니 마음 놓으시지요.”
이항복은 호언장담하면서 한주동이 들고 있던 내 번호표를 받아갔다. 도대체 무슨 수단으로 아직도 40명 넘게 남은 입장 차례를 뛰어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정작 실제로 드러난 이항복의 해결책은 실로 허탈했다.
“어, 조금 늦게 온 내 일행일세.”
중노미는 얼른 고개를 숙이면서 길을 열어주었다. 이항복이 얼마나 자주 왔는지, 현관에서 손님을 정리하는 중노미는 물론이고 안을 오가는 시비들도 하나같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우고 허리가 부러지라고 인사를 했다. 이놈, 내가 주는 녹봉을 전부 여기다 갖다 붓기라도 하나?
들어가며 보니, 다점 내부는 커다란 입식 대청 하나와 그 주변을 둘러싸는 별실 여러 개로 되어 있었다. 다만 별실도 주렴으로 입구를 가렸을 뿐, 문은 달지 않아서 안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조금만 신경을 쓰면 들을 수 있게 해놓았다. 그 안에서 비밀 이야기는 못 나누겠다.
“손버릇 못된 손님이 방 안에서 다녀(茶女)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지요.”
내가 주변을 둘러보는 의도를 눈치챈 이항복이 잽싸게 설명했다. 그리고 커피가 별로 맛이 없다느니, 가게에서 내는 과자가 서반아에서 먹어본 것과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느니 하며 한참 주절거렸다.
마침내 이항복이 빌린 별실로 들어가서야 겨우 숨을 돌렸다. 빙긋 웃은 이항복이 주방으로 연결된 끈을 당겨 종을 치자 머릿수건과 에이프런을 두른 조선인 시비가 급히 달려왔다.
“여기 나리께 가배 새로 한 잔, 아주 연하게. 과자는 골고루 담아 한 접시. 그리고 도로테아 보고 오라고 하게.”
주문을 받은 시비가 고개를 숙인 뒤 바로 사라졌다. 커튼을 친 창문으로 가게 안을 살피니 스페인인과 조선인 종업원들이 뒤섞여서 쟁반을 나르고 있었다. 손님들은 왁자지껄하면서 그 하얀 얼굴을 넋이 나간 채로 보고 있고.
당나라 때 장안의 술집에서도 서역 미인, 호희(胡姬)들이 손님에게 술을 따랐다지? 이태백 작품 중에도 중앙아시아 쪽 미녀들이 나오는 술집에서 즐긴 일을 노래한 시가 있다. 여기서 스페인 여자들을 구경하는 사내들의 심리도 태반은 호기심일 거다.
사실 흰 피부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게 백인의 외모를 좋아한다는 건 아니다. 취향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도리어 우리와 전혀 다른 머리카락 색깔과 이목구비를 징그럽게 여길 수도 있다. 이항복 역시 그 점을 정확히 짚었다.
“사실 서반아 여인네들을 미색(美色)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색(異色)이라고 여겨 구경하러 오는 자들이 더 많습지요. 나리께서도 사실 그러신 게 아닙니까?”
“아니, 난 저들도 충분히 미색이라 여기네만….”
나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때 허리까지 닿을 만큼 긴 갈색 머리 아가씨가 큰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탁자 위에 음식을 차리고는 이항복을 향해서 싱긋 웃더니 스페인어로 뭔가 빠르게 지껄이기 시작했다. 이항복도 스페인어로 받았고, 난 졸지에 국외자가 되었다.
커피잔을 든 채 두 사람이 바쁘게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갑자기 번쩍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지금 금위사장은 이항복이 아니라 박헌의 증손자 박희성이다. 하지만 여전히 금위사 내에는 이항복의 영향력이 크다. 그렇다면?
어쩌면 이항복이 뻔질나게 여기 드나드는 건 끄나풀을 심어두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장안 한량들과 성균관 유생들이 몰려들어 미어터지는 가게, 밀실이 없어서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실내구조, ‘조선말을 잘 모르는’ 외국인 종업원.
유럽에서 커피하우스가 그랬듯이 이 반촌다점도 불평이 많은 먹물들이 모여들어 투덜거리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그럼 당연히 금위사로서도 여기를 주시할 수밖에 없다. 끄나풀을 심어 손님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수집하고자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도로테아라고 하는 종업원은 의자에 앉지 않고 선 채로 1각(15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다 나갔다. 이곳 규칙으로 다녀는 절대 손님 옆에 동석할 수 없다고 한다.
“색주가 논다니와는 전혀 다르다는 게 방침이니까 말입니다.”
유녀(遊女)라고 좀 점잖게 표현해도 될 텐데, 논다니라고 대놓고 말하다니. 역시 이항복은 언변이 무척 직설적이다. 그만큼 솔직하고 알아듣기 쉬운 건 좋지만.
“무슨 이야기를 그리 즐겁게 주고받았는가?”
“그냥 지내기 어떤지, 추근거리는 질 나쁜 손님은 없는지 물어봤습니다.”
의심스러웠지만 진상을 알 수는 없다. 젠장, 나도 스페인어 배워야 하나.
잠시 더 대화를 나누다가 밖이 어두워지기에 환궁하러 문을 나섰다. 계산은 이항복이 했고, 단골이라고 장부에 포인트 도장 찍는 모습까지 봤다. 10개 찍으면 커피 한 잔 나중에 공짜로 준다고 한다. 이거 정말 시대를 앞서는구먼. 이러다 테이크아웃까지 나오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