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27
2부 505화
– 11 –
해삼위에서는 지금 겨울이 한창이다. 11월이면 이미 사방이 눈으로 덮여 있어서, 나다니는 사람은 대개 세 부류뿐이다. 도적이거나, 도적을 잡으러 다니는 토벌군이거나, 짐승을 잡으러 다니는 사냥꾼이다.
“우리는 셋 다 아니지만.”
이순원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말을 몰았다. 이들은 왜택(倭宅)에 있는 왜인들을 찾아가 놈들이 지내는 상황을 탐문하고 오라는 관찰사의 명을 받은 참이었다.
“전임이시던 정 대감 같았으면 이 엄동설한에 왜택에 다녀오라는 명 같은 건 절대로 내리지 않으셨을 텐데. 역시 새로 온 양반은 곤란해. 너무 열성적이거든.”
10년 세월을 연해주 관찰사로 보낸 정효신은 작년 가을에 드디어 도성으로 돌아갔다. 후임 관찰사는 함경도 관찰사로 재직하던 송언신(宋言愼)이라는 사람인데, 능력은 뛰어나지만 다소 교활하고 탐욕스럽다는 평이 있었다.
그런데 그 탐욕에는 물질적인 욕심만이 아니라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싶다는 욕심도 포함된 모양이었다. 10년 동안 무난히 연해주를 다스린 정효신을 뛰어넘고 싶었는지, 날씨가 어떻든지 상관없이 동왜포 왜택을 살피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본래 왜택에는 1달에 1번씩 담당 관원이 방문하여 왜인들의 숫자를 확인하고 혹시 숨겨둔 금제품은 없는지, 물자는 충분히 있는지 등을 살피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동안에는 겨울에는 조사를 생략하는 게 관례였는데, 신임 관찰사인 송언신은 전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네들은 저~멀리 북방의 겨울도 겪었으니 이곳 해삼위의 추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라니, 그게 사람이 할 소립니까요.”
반차원이 투덜거렸다. 물론 흑룡강의 겨울과 비교한다면야 이곳 추위는 추위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추운 건 추운 거였다.
“그 북방 토인들이 키우는 커다란 사슴…전하께서 순록이라 하셨지요? 그걸 데려다 제대로 키우면 어떻겠습니까? 발이 넓고 털이 길게 나 있어서 눈밭에 빠지지 않는 게 참 좋던데요. 몇 마리 기껏 데려왔더니 다 병들어 죽어버려서 정말 유감입니다.”
눈밭에 발이 빠진 말 때문에 애를 먹던 반차원이 한숨을 쉬었다. 북방에서 타본 순록은 좀 다루기 어렵기는 했지만, 눈이건 진창이건 빠지지 않고 잘 돌아다니는 점이 대단했다. 본보기 삼아서 네덜란드 배에 몇 마리 실어왔는데, 그만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다 죽고 말았다.
“아니, 난 순록이 싫다. 괜히 타보다가 떨어져서 체면만 구겼단 말이다.”
이순원이 치를 떨었다. 작년 겨울에 흑룡강에 머무를 때 수십 명이나 되는 토인들 앞에서 낙마, 아니 낙록(落鹿)하는 창피를 당했던 탓이다.
순록은 성질은 순해서 낯선 사람도 올라타기 쉽다. 하지만 말과 달리 등이 둥글어서 주의를 게을리하면 나뒹굴기에 십상이다. 낯선 짐승을 탔다는 긴장감이 사고를 더 유발하기도 해서, 이순원은 풍부한 승마 경험이 있음에도 처음 올라탄 순록에서 멋지게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벼락의 신이 꼴사납게 땅바닥을 뒹굴었으니 창피도 그런 창피가 없었지만, 이순원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눈을 털기도 전에 우렁차게 열변을 토했다.
“‘이 사슴은 그대들 어웡키의 하늘신이 그대들에게 주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남방에서 온 벼락의 신이니, 하늘신이 내린 하사품과 상극인 것이 당연하다. 실로 이 사슴은 영물이로다!’라고 하셨지요?”
그 잊고 싶은 일을 반차원이 들춰내 키득거렸다. 얼굴을 붉힌 이순원이 짐짓 헛기침하더니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여보게, 원 참위! 이 사람이 이리 짓궂네그려. 자네라도 내 편을 들어야 하지 않겠나!”
원사웅은 북방을 무사히 살피고 돌아온 공으로 종7품 참위가 되었다. 탐북사였던 이순원은 정4품 정령에서 종3품으로 가증을 받았고, 반차원은 정5품 참령이 되었다. 이들 외에 북방에 다녀온 다른 대원들도 새 직제에 맞춰 승진과 포상을 받았다.
“소인이 생각하기에도 정령 나리께서 그때 하신 행동은 실로 훌륭한 임기응변이었습니다. 그 토인들은 앞으로도 뇌신(雷神)이 순록에서 떨어진 그 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자네까지 날 놀리긴가? 자네 중신 안 서줄 걸세!”
스물셋이나 되었건만 원사웅은 아직도 홀몸이다. 부친의 죄를 용서받고 관직도 얻었다고는 해도, 대역죄인의 아들로 백의종군 처분을 받았던 몸이고 보니 혼처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그 자신은 혼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모친이 애가 탈 뿐이다.
“저야 혼인하지 않고 그냥 살아도 상관없습니다만.”
싱글거리며 웃는 원사웅을 향해 이순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한마디 하려는 참인데 앞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부하들이 기쁨에 차서 지르는 소리였다.
“도착했습니다! 왜택입니다!”
세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돌렸다. 빽빽하게 치솟은 나무 사이로, 높게 치솟은 목제 망루와 성채 외벽이 보였다.
“어서들 오시지요. 눈 속을 헤치고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왜택을 맡아 책임지는 관수(館守), 고토 노부야스(後藤信康, 후등신강)가 밖에 나와 일행을 맞았다. 왜택은 부산에 있는 왜관과 같은 위치로 취급되기 때문에, 운영을 담당한 우두머리를 왜관과 같이 관수라고 칭한다.
부산 왜관은 왜란을 치르고도 폐쇄되지 않았다.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가는 도항이 늘면서 하카타와 오사카가 두 나라 사이에서 교역 중심지로 떠오르기는 했지만, 조선으로 건너오는 일본 상인이나 조선 학문을 배우려는 유학생도 끊이지 않았던 탓이다.
조정 일각에서는 왜관을 폐쇄하고 왜인의 입국을 일절 금지하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단호히 거절한 주상의 결단으로 각하되었다. 화의를 맺기로 했으면 전쟁 전에 허용하던 정도로까지는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게 주상께서 내리신 명이었다.
“별다른 일은 없소? 양식은 충분하시고? 맹수에게 사람을 잃거나 하지는 않았소?”
“괜찮습니다. 여기서 보내는 겨울이 처음도 아니고요.”
이 왜택이 처음 들어선 해는 경인년이다. 올해는 정유년이니까 이곳 왜인들은 여기서 8번째 겨울을 맞이하는 셈이다.
대부분은 중간에 교대하여 새로 온 사람이지만, 개중에는 8년째 여기서 사는 자들도 있다. 현재 머무르는 인원 3백 명 중에서 20명 정도가 그런 인원들이다. 노부야스는 비교적 최근에 부임하여 올해가 3번째 겨울이다.
“어째 인원이 갈수록 줄어드는 듯하오? 본관이 북방에 가기 전에는 1천 명은 되었잖소.”
“본국에서 인원이 필요한 일이 많아서 말입니다. 교역도 예전 같지 않고….”
을미동정이 끝나자 조일교역은 전쟁 이전처럼 돌아갔다. 그 결과 일본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사람이 바로 다테였다.
먼저 독점이 깨졌다. 다테가 독차지했던 북쪽 항로 외에 본래 주된 무역로였던 남쪽 항로가 다시 열렸다. 조선과 일본을 오가는 교통로로는 동래에서 대마도를 통하는 남쪽 길이 당연히 유리했고, 북쪽 길로 오는 상품이 크게 줄어들었다.
과거 다테가 돈을 긁어모을 수 있었던 요인은 항로를 독점하고 밀수를 하기 때문이었는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하카타, 오사카와 경쟁하면서 막부에 관세도 내야 한다. 당연히 수익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다테 스스로 상선단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을미조약은 왜구 방지를 위해서 일본 내에서 오직 막부만 수군을 보유할 수 있다고 규정했는데, 이에야스는 이 조항을 근거로 해서 그동안 다테가 상선으로 쓰려고 건조한 배들을 몽땅 몰수해버렸다.
날벼락을 맞은 다테로서는 펄쩍 뛰고도 남을 일이었지만, 같이 맞서줄 세력이 없었다. 다들 그동안 대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다테가 폭리를 취하는 데 불만이 많았고, 다테가 선심 쓰듯 나눠주는 이익보다 이에야스가 떼어준 영지 쪽이 훨씬 큰 수익이었기 때문이다.
경쟁자가 늘고 교역량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게 된 것만도 타격인데, 전쟁의 후폭풍으로 시장에서의 구매력까지 줄었다. 다테가 주로 교역하는 도자기 같은 사치품을 사들일 여유도 없어졌다. 적어도 당분간은 교역으로 재미를 볼 수 없는 상황이 왔다.
“대신 사람값이 크게 올랐으니 말입니다.”
병사도, 일꾼도 모두 모자란다. 어디서도 원하는 만큼 사람을 충분히 구할 수 없었다. 지금 사람을 충분히 가진 이가 있다면 사람만 가지고도 돈을 벌 수 있다.
다테는 재빠르게 세태를 읽고 돈을 받고 사람을 보내주는 인력파견업을 시작했다. 영지에서 동원할 수 있는 유휴인력을 모조리 뽑아내서 병사나 일꾼으로 대여하고 대가를 벌어들였다. 연해주에 주류하는 인원들 역시 차출 대상이었다.
“그렇게 사람을 뽑아내면 귀하들의 본령이 위태해지지 않소?”
“이에야스 공이 올해 봄에 케이조 엔부(慶長偃武)를 선포하며 ‘전란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천하의 전란이 끝났다고 쇼군께서 선포하셨는데 감히 누가 다테 령을 치겠습니까?”
이에야스 때문에 입은 손해는 이에야스에게 기대서 벌충한다. 다테의 놀라운 사업수완에 세 사람은 혀를 내둘렀다.
“교역이 줄어들어서 귀측에서도 고민이 많은 줄 압니다. 하지만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니, 좀 참고 기다려 주십시오.”
“알겠소이다.”
한때는 일본에서 들어오는 쌀이 연 10만 석에 달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 양이 3만 석 내외로 줄어들었다. 다테만큼이나 연해주 관아에서도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연해주 인구는 10만. 일본에서 교역으로 들어오는 쌀이 없어도 인구를 유지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다만 그동안 먹던 쌀밥 대신 옥수수밥을 먹고, 청주 대신 옥수수 막걸리와 담저 소주를 마셔야 할 뿐이다. 일종의 인공적인 기근에 맞선 적응인 셈이다.
일본 내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무기고 봉인 상태와 식량 재고를 점검한 조선인 세 사람이 성채 문 앞에서 말에 올랐다. 노부야스가 정중하게 배웅하며 이들 일행을 떠나보냈다.
“어떤가, 저놈들이 관찰사가 걱정하는 것처럼 소동을 일으킬 것 같은가?”
“그럴 일은 없어 보입니다. 그 양반이 왜놈들을 직접 대하는 게 처음이라서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거지요.”
귀로에 오른 이순원과 반차원은 거침없이 송언신을 혹평했다. 비록 벼슬은 더 낮아도 이곳 사정에 관해서는 자신들이 훨씬 잘 파악하고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러하네. 저 친구들은 왜병이라기보다 장사치에 가깝고, 우리와 사이좋게 지내야 두고두고 많은 재물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지. 우리가 억울하게 궁지로 몰아넣지 않는 한, 소요를 일으키지는 않을걸? 원 참위, 자네 생각은 어때?”
원사웅은 두 사람이 아옹다옹할 때는 대개 조용히 따라오기만 했다. 질문을 받으면 그제야 입을 열어 대답했다.
“소관의 생각에는, 관찰사께서 이리 빡빡하게 구시는 건 조그만 구실이라도 잡으면 왜택을 왜구 소굴로 몰아 토벌할 의도가 아니실까 싶습니다. 왜택에 쌓인 재물을 일거에 털어 교역이 줄어서 입은 손실을 보충하고, 전하께 전공을 칭찬받을 셈이 아닐지요?”
송언신은 두 차례 왜란에서 모두 전공이 없었다. 그리고 하필 송언신이 부임한 후에 그동안 번영하던 교역이 갑자기 퇴조로 접어들었다. 이 두 가지 상황을 종합해보면, 송언신이 왜택을 토벌하고 싶어 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그런 짓을 하면 교역이 아예 끊기지 않는가? 우리 배를 보낼 수도 없을 텐데?”
“왜국에 가는 우리 교역선을 종전처럼 이달(다테)의 땅으로 보내지 않고 최상(모가미)이나 상삼(우에스기)의 영지로 보내면 그만입니다. 을미약조에서 선태(센다이)를 교역장으로 명시해 놓기는 했으나, 그거야 합의해서 변경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이달에게 왜구 혐의를 씌워 재물을 몰수하고 교역 상대를 바꾼단 말이지? 관찰사가 정말 그런 계략을 꾸미고 있다면, 말 그대로 날강도라고 할 수 있겠구먼.”
과거에 대놓고 도적 떼를 몰고 다녔던 이순원이 관찰사의 흉계를 비판하자 반차원이 옆에서 폭소를 터트렸다. 태연하게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듯한 말을 하니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소관도 그리 탐탁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왜인들에게 빌미가 잡힐 짓은 하지 말라고 언질을 주고, 내년 봄에 출발할 사민단을 잘 이끌어 충분한 수익을 올리게 하면 관찰사 대감도 괜히 충돌을 빚어내기보다는 북쪽 일을 잘 해보려고 생각하시게 될 겁니다.”
왕명에 의해 조직된 북방 사민이 내년부터 개시된다. 연해주, 함경도 일대에서 모집한 백성 500명이 일차로 흑룡강 하구에 정착할 예정이다. 토인들과 잘 조율하면서 마을을 만들어 북방 국경을 방어할 거점을 만드는 게 목표다.
이들은 밭을 갈아 둔전을 일구는 둔전병 노릇과 더불어 고기잡이와 모피 획득, 사금 채취도 수행하게 되어있다. 계획대로 진전된다면 대일교역 감소로 인한 손해쯤은 가볍게 벌충하고도 남으리라.
– 12 –
“조정 생활은 어떤가?”
“일에 치여 끝이 없네. 군영에 있을 때가 도리어 편했다고 저녁마다 생각할 지경일세.”
“그럼 군영으로 다시 돌아가지 그러나.”
“아이고, 출세해야지. 평생 대대 향도만 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날 수는 없지 않은가.”
을미동정 이후, 성균관에서 나온 서기관들도 모두 향도로 호칭이 바뀌었다. 그리고 군제가 바뀌면서 성균관 출신 향도들도 종7품 참위를 받게 되었다. 소속은 당연히 육조 중 병조다.
원래대로라면 김류와 김상헌도 참위가 되었겠지만, 이들에게는 경인년부터 계속 복무하면서 쌓은 공이 있었다. 견서사에 다녀온 실적도 인정받아서 이들 둘은 종6품 부위로 임명받았다.
향도를 그만두고 아예 관로로 돌아오면서는 한 등급씩 품계를 더 올려받았다. 김류는 정6품 이조좌랑이 되었고, 김상헌도 역시 정6품 사헌부 감찰을 제수받았다. 무관이었다면 정위다.
원칙적으로 따지면야 정식으로 성균관에 재학했던 김상헌과 성균관에 들어가지 못한 김류의 출세 속도가 달라야 하리라. 하지만 김류는 하남벌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김여물의 아들이었고 부친의 후광이면 그 정도는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과거에도 붙었다.
“좀 늦었지만, 덕분에 순전히 음서로 출세했다는 말을 듣지는 않게 되었지.”
“40이 넘어서도 과거에 매달리는 이들은 사방에 널려 있네. 자네 정도면 준수하지.”
가배잔을 들고 김류를 격려하면서도 김상헌의 눈은 지나가는 서반아 다녀의 뒤를 쫓았다. 피식 웃은 김류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 번 두드리자 김상헌이 깜짝 놀라 몸을 추스렸다.
“어흠, 흠, 그것이….”
“됐네. 사내가 오랜만에 이국의 미녀를 보고 혹할 수도 있지.”
싱긋 웃은 김류가 이태백의 시를 흥얼거렸다.
“오릉의 소년들 금시 동쪽을 지날 때, 은안장 백마 타고 봄바람을 가르네. 떨어진 꽃 짓밟고서 어디로 놀러가나, 웃으면서 들어가니 호희의 술집이네(五陵年少金市東 銀鞍白馬度春風 洛花踏盡遊何處 笑入胡姬醉肆中)…견서사 갔던 생각이 나는군.”
두 사람은 2차 견서사로 파견되어 마드리드, 로마 등 유럽 여러 도시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견문한 수많은 경험은 이들의 생각을 크게 바꿔 놓았다.
“세상은 둥글고, 중심은 하나가 아니다…그 생각은 지금도 확고하네. 대명과의 관계도 이제 탈피해야 해. 명은 받들어 모실 상국이 아니라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이웃일 뿐이네. 저번 왜란만 해도, 만약 우리가 왜적을 통과시켰으면 손해가 2천만 냥으로 끝났었을 듯싶은가?”
명나라 조정에서 경인년 이후 조선에 지원한 돈을 아까워하는 분위기가 있음은 요즘 들어서 조선에도 흘러들어왔다. 심지어 그 대가로 조선군을 끌어내자는 주장이 명나라 조정에서 한때 제기되었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당연히 조선 조야가 발끈했다. 조선 관리들, 특히 최근 10년 이내에 발탁된 젊은 관료들과 직접 싸움에 나섰던 무장들 사이에서는 은근한 반발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네 말이 맞기는 하네. 우리가 왜군을 그대로 명으로 보냈으면 2천만 냥이 아니라 2억 냥 정도는 가볍게 넘는 피해가 났을지 모르지.”
“바로 그거란 말일세. 우리는 피를 흘려서 명을 지켜주었는데, 돈 타령이나 하는 게 대국의 풍모인가?”
김상헌의 동조를 얻어낸 김류가 팔짱을 끼고 콧방귀를 뀌었다. 역시 스페인어로 대화하니까 옆에서 누가 엿들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조선말로 나누는 대화라면 도저히 이렇게 대놓고 명나라를 비판하지 못했을 것이다.
“뭐, 돈 받아서 쓴 건 사실이니 그 문제는 이쯤 하세. 그보다 다음 견서사에는 지원할지 안 할지나 고민하는 게 어떻겠나? 5년마다 파견한다고 하셨으니, 4년 뒤 신축년(1601년)일세.”
김상헌은 아직 명나라를 비판하는 대화가 불편했다. 친구의 의도를 알아챈 김류도 별 불만 없이 화제를 바꿨다.
“당연히 지원해야지. 갔다 오면 품계도 오르고, 승진에도 도움이 될뿐더러 신기한 세상을 보고 오는 재미도 있지 않나. 로마와 프라하가 다시 한번 보고 싶군.”
김류가 아련히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소식은 아직 없지만, 지금 3차 견서사가 그쪽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