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28
2부 506화
– 1 –
파리를 둘러싼 성벽은 제법 육중했다. 센 강을 따라 자리 잡은 도시 전체가 견고한 보루와 석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높이가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보다 2배는 족히 될 듯했다. 그저 장식용으로 만든 성채가 아니라, 실제로 강력한 요새임이 분명했다.
“한 번도 전란을 겪지 않은 우리 한양과 달리, 이곳 파리는 천여 년도 더 전부터 수십 번이 넘는 외침을 겪었소. 그러다 보니, 이처럼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쌀 수밖에 없었다 하오.”
이번 견서사는 지난 1, 2차와는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방문하는 대상이 남유럽 일변도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1차 견서사는 사실상 스페인과 로마만 방문했다. 빈에 잠깐 들르긴 했지만, 신성로마제국 황제 예방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것도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친척이자 유럽에서 황제 지위를 칭하는 단 한 사람이라는 특별한 이유 때문이었다.
2차 견서사는 1차에서 들른 세 곳 외에 프라하, 스페인령 네덜란드 등도 들렀다. 조선에서 필요한 인력을 구한다는 구실이었지만 모두 압스부르고(합스부르크) 왕실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번 3차 견서사에서는 드디어 그 제약을 벗어났다. 물론 유럽의 관문(조선의 입장에서)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인과 로마를 거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다음 방문처는 바로 이곳 파리가 된 것이다.
“전하의 통찰력은 실로 범인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듯합니다. 이역만리 머나먼 조선에서 프랑스 내란이 이 시기쯤 끝나리라고 짐작하시다니.”
이덕형이 파리 성문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발했다. 그가 참가했던 지난번 2차 견서사 때도 이항복이 프랑스를 지나갔었지만, 내란이 한참 치열한 상황이라 파리를 방문할 수는 없었다.
“나도 놀랍소. 어떻게 이 시기를 딱 맞춰서 그대들이 유럽에 찾아왔는지 말이오. 스페인과 영국 사이의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프랑스에서도 내란이 끝나는 이 시점에.”
프랑스 내란은 바로 한 달 전에야 완전히 끝났다. 앙리 4세는 위그노 군대로 가톨릭 군대를 완파하여 승기를 잡았고, 민심을 회유하여 프랑스 전역을 손에 넣었다. 가톨릭 신앙으로 다시 복귀하면서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지지를 얻었다. 교황이 내린 파문도 취소되었다.
하지만 스페인은 반대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지 않았고, 앙리 4세는 결국 스페인을 상대로 선전포고했다. 3년을 끌던 스페인과의 전쟁은 앙리 4세가 확고히 우세를 점하면서 한 달 전인 5월 초에 강화조약이 체결되고 끝을 맺었다.
그 전인 4월에는 위그노에게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낭트 칙령이 선포되었다. 종교를 놓고 수십 년이나 계속된 내란을 완전히 마무리하고 모든 백성이 화합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조치였다. 모든 것이 수년 전부터 상감께서 예측하신 그대로였다.
“프랑스 국왕이 가톨릭으로 개종, 아니 원복하고 전토를 평정하리라는 전하의 예상은 이미 마마께서 유럽을 향해 배에 오르시기 전부터 분명했습니다. 기억하실 텐데요.”
“그렇기는 하지만, 이토록 정확히 맞아들어갈 줄은….”
이덕형 앞자리에 사제복을 입고 앉아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광해군이었다. 이번에 견서사가 오면서 조선에서 이혼 허가서가 도착했고, 광해군은 완전히 과거를 청산하고 안정적인 성직자 신분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광해군은 신학생 자격으로 로마 대학에 재학했다. 동방의 왕자님이라고 하여 명성이 자자했고, 로마 사교계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그러면서도 일절 염문을 일으키지 않아 한층 더 존경을 받았다.
문성군부인 유씨와는 서로 만나지도 않으며 거의 남으로 지낸다. 대외적으로는 두 사람 다 혼인 뒤에 비로소 신앙에 귀의하였고, 수도자로 살고 싶은 마음에 자연스럽게 헤어지기로 한 것으로 꾸몄다. 그 뒤로는 가끔 소식은 들어도 따로 연락하거나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로마에서 이덕형과 다시 만난 광해군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교황청에서는 광해군에게 휴가를 주어 견서사가 유럽을 도는 동안 함께 여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저희도 놀랍습니다. 저와 백사를 비롯한 몇몇 사람에게만 전하신 말씀이지만, 천 리 밖의 일에 관한 예측이 어찌 이토록 정확하게 맞아들어갈 수가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물론 선교사가 알려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책으로 접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다 지나간 옛일이라면 모를까,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관한 일을 파악하는 능력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통찰력이었다.
“신하로서는 정녕 무엄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오나…이번 견서사가 수행해야 할 임무를 미리 논하는 자리에서 백사가 딱 한번 전하께 대놓고 여쭙기는 했습니다. 유럽에서 장래에 일어날 사건과 변화를 어찌 그리 정확히 꿰고 계시느냐고 말이지요.”
“상감께서 뭐라고 하시었소?”
광해군이 호기심을 표했다. 잠시 한숨을 쉰 이덕형이 대답했다.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꿈에 천녀가 나타나 알려주었다….’고 하시었습니다. 딱 그렇게만 답하시고 그 뒤로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천녀? 아, 천사일지도….”
잠시 멈칫하던 광해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는 일찍이 수많은 임금과 예언자들의 꿈에 나타나 미래를 보여주신 바가 있었다. 하느님께서 사자를 보내 상감이 꾸는 꿈에 나타나게 하시고, 세상의 미래를 보여주셨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역시 조선이 동방의 이스라엘이 됨은 주님께서 예정하신 바가 틀림없소. 그렇지 않고서야 금상과 같은 군주가 어찌 나타나실 수 있었겠소? 선교를 허용하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왕실 종친인 이 몸이 출가하는 것까지 허용하시니 이는 역시 주님의 역사하심이오.”
“전하께서는 별로 그리 생각하지 않으시는 듯합니다. ‘백성이 믿는 것은 상관하지 않겠으나 군주 된 자는 어떤 믿음도 가져서는 안 된다’라고 늘 언명하고 계십니다. 세자 저하께도 예에 따라 하늘과 조상을 섬기는 외에는 누구도 받들어서는 안 된다고 늘 강조하고 계십니다.”
“허허, 그 하늘이 곧 하느님, 주님인 것을….”
광해군이 한숨을 쉬었다. 일행을 먼저 돌려보내고 이곳 로마에 머무는 4년 동안, 광해군의 신앙심은 점점 더 깊어졌다. 만사를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도피처로 찾았던 신의 품속이, 이제는 정말로 광해군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고 있었다.
“하루빨리 주상께서도 다른 조선 백성들과 함께 주님을 영접하셨으면 좋겠지만, 역시 아직 그런 날이 오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해야 할 것인가.”
광해군이 혼잣말을 하면서 한숨을 쉬는 동안에, 견서사 일행이 탄 마차 행렬은 앙리 4세가 보내준 기병들의 호송을 받으면서 파리 성벽 서쪽 출입문인 생토노레(Saint-Honore) 성문을 통과했다. 무술년 5월, 유럽 달력으로는 1598년 6월 초순이었다.
– 2 –
이번 견서사가 카디스에 도착한 시기는 정유년 11월, 유럽 달력으로 1597년 12월이었다. 덕분에 롤리타는 4년 만에 만난 부모와 함께 카디스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
여정에 걸린 시간은 1년하고도 3개월, 그만하면 충분히 빠른 속도였다. 네덜란드 선원들이 감탄할 정도로 바람이 시의적절하게 잘 불어준 덕분으로 미숙한 조선 선원들이 배를 모는데도 별 사고 없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세 번이나 유럽 땅을 밟게 된 이덕형은 한숨을 쉬며 뱃전을 내려섰다. 그리고 그동안 해온 상례에 따라 펠리페 2세를 먼저 알현했다. 이제 70세가 된 국왕은 수도인 마드리드 안에 있는 왕궁 대신, 도시 밖에 있는 엘 에스코리알 궁전에서 사절단을 환영해 주었다.
통풍에 시달리느라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힘겨워하는 펠리페 2세를 본 사절단의 눈에는 안타까운 감정이 몰아쳤다. 이덕형의 눈가에는 잠시지만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관대하면서도 친절했던 군주가 늙고 쇠약해진 모습을 보았으니, 안쓰러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인삼을 그렇게 많이 선물했는데도 별 차도가 없었다니, 안타깝소.”
“그나마 인삼 덕분에 증상이 많이 완화되었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워낙 고령이다 보니, 그 효험에도 한계가 있는 듯합니다.”
인삼이 정말로 불로장생의 영약이었다면야 조선에서 늙고 병들어 죽는 사람이 없었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인삼이 영험한 약재라고 해도 수명이 다 된 사람을 되살리는 효험은 없었다. 펠리페 2세는 이미 연로한 데다, 그동안 국사에 몰두하느라 진이 빠질 대로 빠진 사람이다.
이덕형은 정중하게 상감이 보낸 친서와 건강을 비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국왕에게 바치는 선물로 가져온 인삼과 차를 전했다. 펠리페 2세도 기쁘게 받았다.
“법왕께서는 아직 건강하시더군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직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실 때가 되지 않아 그런 듯하오. 인삼을 장복하신 효과도 있지 싶고.”
교황 클레멘스 8세는 1536년생으로, 62세다. 펠리페 2세에 비하면 확실히 젊은 나이였다. 하지만 인삼에 관한 광해군의 말도 거짓이 아니었다. 교황은 동방에서 온 신비한 약초 덕분에 자신이 이토록 원기 왕성하게 교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짐짓 너스레를 떨곤 했다.
교황의 인삼에 대한 평가는 주변 사람들의 호기심을 확실히 자극했다. 광해군에게 쏟아지는 인기도 인삼 덕이 컸다. 그와 친해져서 어떻게 인삼 한 뿌리 얻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매달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덕분에 조선 사절단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인삼을 구하려는 사람들도 줄을 섰다. 하지만 사절단에서는 여러 나라 국왕들에게 선물할 양도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반인들에게는 공식적으로 인삼을 나눠주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구멍이 있었다.
“나도 깜짝 놀랐소. 예로부터 대국에 찾아가는 사신단에서 늘 하던 일이 아니오.”
“그러니까 도리어 당연한 일인 것이지요.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보낸 선물이 아니니, 얼마에 팔건 자기 능력껏 하는 겁니다.”
예로부터 명나라를 찾는 사신들은 진상품을 황제에게만 바쳤다. 아무리 조선 물품이 명나라 상하 관민에게 인기가 좋다고 해도, 진상품은 황제가 일단 받았다가 신하들에게 베푸는 거지 사신단이 직접 진상품 일부를 시장에 판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사신단을 수행하는 역관이나 시종들이 개별적으로 인삼이나 포목 같은 것을 가져가 명나라 시장에서 물건과 바꾸는 건 스스로 경비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용인되어왔다. 유럽으로 오는 견서사에서도 그 관행은 유지되고 있었다.
사절단에서는 ‘수행원들이 개인적으로 소지한 인삼’이라는 명목으로 막대한 양을 암거래로 팔아치웠다. 마드리드와 로마에서 판 양을 합치면 적어도 1천 근은 되는데, 그만큼 많은 양이 어떻게 전부 수행원들이 가져온 휴대품일 수 있겠는가.
“그리고 네덜란드인들이 따로 싣고 온 물량도 있습니다. 그건 암스테르담에 가서 풀겠다고 하더군요. 외수사에서 2천 근 정도 따로 실어주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인삼 대금은 견서사 유럽 체류 비용으로 쓸 예정이다. 따로 싣고 온 모피나 가구도 모두 형식상으로는 이 네덜란드인들이 조선에서 매입해온 물건으로 되어있다. 명목상은 외교사절인 견서사가 직접 장사를 한다는 건, 아무래도 모양새가 안 나기 때문이다.
“그건 상관없지만, 우리 하인들이 자기 소지품을 몰래 파는 일은 분명 수입세를 내지 않은 밀수인데 용케 문제가 되지 않았구려. 스페인 세관은 무척이나 깐깐한데.”
“카디스에서 한번 문제가 되긴 했습니다만…히메네스 백작이 손을 써준 데다, 저희 인삼을 사고 싶어 하던 귀족들도 나서서 뭐라고 하는 바람에 세관리들이 물고 늘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대가 장인 덕을 톡톡히 보았구려. 하긴 법왕께서도 개의치 않으셨지요.”
클레멘스 8세는 제사를 묵인한 덕분에 조선에서 가톨릭 교세가 늘었다는 소식을 4년 만에 돌아온 조선 사절단에게 직접 듣고 무척 기뻐했다. 인삼 밀수 따위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세관에서 감히 조선 사신들을 붙잡을 수 있을 리 없다.
“예수회에서 보낸 보고서를 통해 사정은 알고 계셨지만, 조선 고관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는 건 다르니까 말이오. 로마에서도 했던 말이지만, 기왕이면 저번 방문 때 성하께서 직접 세례를 베풀어주신 베드로 공이 이번에도 함께 왔으면 무척 반가워하셨을 텐데.”
‘베드로’는 김류의 세례명이다. 이덕형은 김류가 이번 견서사에 포함되지 못해 자신도 무척 아쉽다고 광해군에게 유감을 표해야 했다. 그 일에 관해서는 이미 몇 번이나 유감을 표했으나 광해군으로서도 미련을 떨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되도록 유럽에 와본 적이 없는 이들을 보내서 시야를 틔우게 한다는 게 전하께서 세우신 방침입니다. 다음에는 김 공도 다시 올 수 있을 테니, 그때를 기다려 주십시오. 법왕께서 몸을 잘 보하고 계신다면 다시 만나실 수 있겠지요.”
그래도 이번에 따라온 시종 중에는 가톨릭 신자가 여럿 있다. 이들은 교황을 알현할 기회가 오자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했고, 로마를 떠나기를 아쉬워했다. 그래서 이덕형이 몸소 나서서 아직 조선으로 안 돌아갈 거고, 여행 말미에 다시 로마에 들른다고 다독여야 했다.
이번에 방문할 나라들은 스페인 → 로마 → 포르투갈 → 프랑스 → 네덜란드 → 잉글랜드 순이다. 돌아갈 때는 이 경로를 그대로 역순으로 거치게 된다.
교통편은 조선에서 몰고 온 800톤급 갈레온 3척. 육로 이동은 하지 않고, 이 배들로 해로만 이용해서 움직인다. 파리까지 오는 여정도 순전히 해로였다. 2차 때처럼 남프랑스에서 육로로 올라오지 않고, 대서양 항로를 따라 루앙까지 온 후 루앙에서 비로소 마차를 탔다.
도중의 해로는 대서양이건 지중해건 안전했다. 중무장한 대형 갈레온 3척이 함대를 이루어 움직이니 악명 높은 바르바리 해적도 섣불리 덤벼들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매번 한 차례씩은 해적을 만났었던 듯한데?”
“예, 그렇습니다. 호송을 맡은 서반아 병사들이 고생이 많았지요. 이번에는 저들에게 호위를 부탁하느라 폐를 끼칠 일도 없을 겁니다.”
이번에는 우리 배를 타고 왔으니 처음부터 승선 인원에 여유가 있었다. 호송을 맡을 군관과 수졸도 조선에서부터 잔뜩 타고 왔다. 이번에 호위를 책임질 장수로는 안위가 뽑혔다. 당연히 그 혼자만 온 건 아니다.
안위는 10년 전 1차 견서사에 뽑혔지만 갑작스러운 배앓이 탓에 충청도도 벗어나지 못하고 이탈한 전력이 있다. 그 일이 한이 맺혔는지, 이번에 대상자로 뽑히자 뛸 듯이 기뻐하며 절대 이번 기회를 헛되게 하지 않겠다고 벼르면서 바다를 건너왔다.
“그렇게 이를 갈면서 세상 반대편까지 왔는데, 오는 도중에 해적선 하나 만나지 못했다고 여태 풀이 죽어 있습니다. 아마 경기수사 정 공이 해적을 물리쳤다는 공으로 서반아 국왕에게 하사받은 보검이 무척이나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견서사가 출발할 때, 정발은 경기수사를 맡고 있었다. 예하에 둔 전력은 경상도나 전라도에 있는 수사들보다 적지만, 경기수사는 엄청난 요직이다. 경기수영 본영이 있는 교동도는 한강 입구를 틀어막는 요지 중의 요지다.
“그야 또 기회가 있겠지. 오늘은 그만 가서 쉬도록 하게. 내일은 프랑스 국왕을 알현해야 하지 않나. 자네 내자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얼굴을 붉힌 이덕형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밤인사를 했다. 이덕형을 롤리타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보낸 광해군은 잠시 창밖을 보았다. 루브르궁의 커다란 지붕 위로 별이 반짝이는 동쪽 하늘을 보며 잠시, 아주 잠시 짧은 한숨을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