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42
2부 5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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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 동안, 북방의 사정도 나름 긴박감 넘치게 변화했다. 가뭄 탓에 우리는 방어 외에 딱히 개입할 상황은 아니지만 말이다.
북방을 뒤엎은 사태의 시초는 게으름뱅이 황제 만력제였다. 우리가 일본 원정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고서 뭔가 자극을 받았는지, 뜬금없이 몽골 토벌령을 내렸다. 조정 신하들의 동공을 뒤흔들어놓은 조치였다.
「조선왕이 왜구 소굴을 토벌하니 왜구의 위협이 사라졌도다. 지금 달자들이 소란을 피워서 우리 변경을 시끄럽게 하고 있으니, 우리 천병도 달자들의 본거지를 토벌하여 다시는 국경이 소란하지 않게 하라.」
뭔가 제대로 준비를 시키기라도 하고 원정 명령을 내렸으면 모르겠다. 신하들이 이게 몇 달 만인지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오랜만에 조회에 나와서는 딱 저 말 한마디만 던지고 후궁으로 휙 돌아가 버렸다. 과연 그 뒷일이 어떻게 진행되었겠는가?
칙명이 내렸으니 원정 준비를 해야 한다. 조선에 보내던 원조가 끝나서 이제 겨우 숨을 좀 돌리려던 명나라 재정이, 난데없이 떨어진 몽골 원정 명령에 당연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작년 봄에 귀환하는 동지사 편으로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이거였다.
“천자께서 어디 아프신 게 아닌가?”
나도 참…몇십 년을 조선의 왕으로 살다 보니 속으로 하는 말이야 어쨌든 겉으로는 수위를 조절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명나라 황제를 거론할 때는 말이다.
만약 내 신하들 앞이 아니었다면, 상희와 둘만 있는 자리였다면 이렇게 표현했겠지. 나중에 실제로 그렇게 말한 것처럼.
“그 돼지새끼가 미쳤나?”
하지만 저 정도 표현으로도 의미는 충분히 전달됐다. 이 정도만 해도 만력제가 정신이 나간 것 아니냐는 내 본의를 신하들이 알아채고도 남았다. 하지만 이 발언이 나온 배경이 배경이고 보니, 내 태도를 지적하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더구나 이 소식에는 더욱 어처구니없는 후반부가 있었다. 뭐냐고? 뻔하지 않은가? 조선군을 출동시켜 원정군 우익을 맡아달라는 요구였다. 정예 기병 3만기를 동원해서 속말주에서 출격, 북원의 중심지인 화림(和林, 카라코룸)에서 이여송이 지휘하는 명군과 합류하라는 거였다.
정신 나간 소리지만 작전 목표만 무리한 게 아니다. 출병에 드는 비용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물자 지원 여부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대로라면 우리 스스로 모든 물자를 마련해야 했다. 심지어 사령관은 이순신으로 하라는 요구까지 덤으로 붙었다.
“출병은 안 됩니다. 3년을 내리 닥친 가뭄 때문에 우리 코가 석 자인데 어찌 군자를 마련해 대군을 보낼 수가 있겠습니까? 설사 백성들을 쥐어짜서 억지로 군자를 마련한다고 해도, 우리 군사들은 화림까지 가본 적도 없는데 어찌 출병하겠습니까?”
군부에서야 당연히 반대하리라 예상했다. 삼정승 중 군무를 담당한 우의정 이항복도 반대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상국에서 요청을 받았으니까 다소 고민하는 태도 정도는 보일 줄 알았던 병조판서 김명원부터가 쌍수 들고 반대할 줄은 몰랐다.
“과거 평양군이 건주위를 길잡이로 삼아서 군사를 거느리고 달자들을 크게 토벌하여 전하의 위명을 드높이고 돌아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 군사들이 발걸음을 미친 권역조차도 화림까지 가는 여정 전체에 비하면 반의반도 아니 되옵니다. 출병은 불가합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더구나 흉년을 틈타서 도적이 준동할 염려도 있으니, 북방에서 치안을 유지하는 우리 기병을 함부로 뺄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3만 기병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중앙군을 움직이지 않고도 조달할 수 있다. 북방 3주 주둔 관병과 왜인여진 속오군, 우리 통제 아래에 있는 번호(藩胡) – 이제는 옛날처럼 두만강 일대에만 번호가 있진 않다 ? 일부만 차출해도 된다. 명나라가 바라는 그 ‘정예’는 아니지만.
명나라가, 아니 총사령관 이여송이 요구한 ‘정예 기병’이란 뻔하다. 양호가 보고 간 비호군, 맹서군, 오도리를 보내라 이거다. 아차, 오도리는 이제 이름이 강철군으로 바뀌었지 참.
중앙군 3대 기병인 이 세 병종을 다 합쳐도 당연히 3만기가 안 된다. 대규모 확장을 포기한 맹서군 쪽은 딱 80기밖에 없고, 강철군은 상번군(도성에 주둔한 인원)과 하번군(고향에 내려가 휴식하는 인원)을 합쳐서 1만 2천 기다. 비호군은 5천 기쯤 되고.
내가 미치지 않은 이상 중앙군 기병을 탈탈 털어 이여송한테 갖다 바칠 일은 절대로 없다. 게다가 파병이 겨우 기병 3만기로 끝날 리가 없지 않은가? 치중까지 온전히 우리 부담이라면, 보급부대로 2만 명은 더 따라붙어야 한다.
신립이 원정했을 때랑은 다르다. 그때는 아예 작정하고 벌인 약탈원정이었고, 비교적 우리 땅에서 가까운 지역만 휩쓸고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몽골 초원 깊숙이 파고들어야 한다. 작전 시행일도 정해져 있을 테니 우리 마음대로 움직이기도 어렵다.
여기서 어떤 결말이 날지는 뻔하다. 우리 역사에서도 명나라가 무리하게 세워둔 작전계획에 조선군이 끌려다니다가 피를 본 전투가 실제로 있지 않았는가? 사르후 전투 말이다.
“신이 견식이 짧아 대국에 곽거병(?去病)이 재림한 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천자께서 도독 이여송을 그만한 명장으로 보셨으니까 총수로 삼아 원정을 명하신 게 아니겠습니까? 빈약한 우리 군사를 보내면 명장이 마음껏 활약하지 못할 테니, 보내지 아니함이 실로 옳습니다.”
이항복은 아예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다른 중신들이 표현을 조심하라고 눈치를 조금 주기는 했다. 하지만 일단 이항복이 조정 서열 3위인 우의정인 데다, 내가 먼저 웃어젖히니 신하들도 대놓고 뭐라고 막지는 못했다. 내가 좀 웃고 나서 못을 박았다.
“달자들이 무엄하게 대국을 침노(侵擄)하여 천자께서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셨다면야 마땅히 전력을 다해서 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국이 그리 위태로운 상황은 아니지 않으냐? 더구나 우리 사정도 좋지 않으니, 출병을 거부함이 옳다.”
“그럼 바로 답신을 보내시겠사옵니까?”
“아니다. 얼마 뒤면 성절사가 갈 때니, 그편으로 보내면 충분하다.”
그 뒤에 좀 더 알아봤더니, 전해인 정유년(1597)에 누르하치가 할하부를 털어서 한 건 올린 일도 만력제에게 영향을 끼친 모양이었다. 어떻게 이야기가 왜곡됐는지, 단순한 약탈원정이던 그 사건이 몽골군 주력을 완전히 궤멸시킨 대승리로 알려져 있었다.
만력제는 ‘이참에 북원의 허리를 꺾어 놓으라’면서 십만 대군으로 카라코룸까지 원정하라고 했고, 조선과 건주에 동원령을 내렸다. 내가 이순신은 상중이고 가뭄이 들어 출병이 어렵다고 했더니, 요구 병력은 1만 기로 줄이고 지휘관도 황진으로 바꾼 2차 요구를 든 칙사가 왔다.
두 번째 출병 요구도 당연히 거부했다. 그냥 거부만 한 게 아니고, 도저히 실현 가능성이 없는 무모한 계획이라고 조목조목 까는 답변서를 만들어 들려 보냈다. 애초에 만력제가 직접 작성하지도 않았을 칙서, 내 답변서라도 올라가면 혹시 원정을 취소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꼭 필요하지도 않은 몽골 원정을 하느니 양응룡의 난 진압이나 서두를 것이지.”
묘족 출신 토관(土官) 양응룡은 신묘년(1591)에 본거지인 파주(播州, 사천과 귀주 사이)에서 처음 반기를 든 이래, 귀순과 재봉기를 계속 반복하며 간을 보고 있다. 나 같으면 다른 일은 일단 제쳐놓고 이런 놈부터 멱을 따 버릴 텐데, 만력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동안 귀에 들어온 정보를 바탕으로 추리해보면, 양응룡을 내버려 두는 건 만력제의 밀덕 기질 때문인 모양이다. 만력제의 취향을 만족할만한 멋진 전쟁은 강대한 외적을 상대로 하는 것이지, 너절한 반란군 따위에는 흥미가 없다 이거다.
그런 게 아니라면 굳이 이 시점에 10만 대군으로 몽골 원정 같은 걸 벌일 리가 없지 않나? 하여튼 내가 그렇게 뜯어말렸음에도 이여송이 지휘하는 북벌군은 작년 가을에 장성 이북으로 출정했다. 황명에 따라서 적을 쳐부수고 황제의 위명을 드높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당당하게 출격한 병력 중 살아 돌아온 수는 절반 이하인 4만 여에 불과했다. 얼마나 큰 결전을 치렀냐고? 결전은 개뿔, 몽골 주력군을 만나지도 못했다. 순전히 행군하고 기습만 당하다가 5만이 넘는 병력을 잃었다.
출정 준비에만 1년 가까이 끈 데다가, 기밀 유지도 제대로 못 한 게 치명타였다. 체첸 칸은 적을 맞을 준비를 아주 단단히 하고 기다릴 수 있었고, 명군을 함정으로 끌어들여 철저하게 농락했다. 우물을 메웠으며 초원을 불태웠고 후방을 기습했다. 사람과 가축은 미리 피난했다.
물과 식량도 제대로 조달하지 못하고 허덕이며 황야를 헤매던 명군은 카라코룸까지 절반도 가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겨울이 찾아온 초원의 추위는 혹독했고, 몽골군은 기진맥진한 명군의 측방과 후방을 신나게 두들겼다.
명군은 적의 추격으로 막대한 병력과 물자를 잃었고, 총사령관 이여송까지 혼전을 치르다가 전사했다. 남은 병력은 간신히 질서를 유지하면서 궤주를 면하고 장성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본대와 별도로 움직이던 이여백의 요동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만한 참사가 벌어졌으면 당연히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하리라. 하지만 이 원정이 만력제의 무리한 명령 때문에 실행되었음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만력제는 실패한 원정 뒤처리 따위는 관심이 없다는 듯, 원정이 실패했다는 보고를 듣고도 신하들 앞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출병 계획을 실제로 수립하고 실행한 당사자로서 병부상서 석성이 모든 책임을 지고 삭탈관직, 투옥되었다. 그 외에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 일견 이해할 만하면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마무리가 되었다.
“석성은 아직도 형부 감옥에 갇혀 있다 했느냐?”
“그러하옵니다, 전하.”
만력제가 태업 상태다 보니 황제의 판결이 필요한 모든 재판이 중단된 지가 오래다. 그러니 석성도 여전히 미결수 신분으로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명나라 조정 쪽에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석성이 쫓겨나는 바람에 우리 쪽에서는 상당한 손해를 보았다. 석성은 갈수록 반조선 성향이 강해져 가는 명나라 조정 내에서 사실상 유일한 친조선파 주요 인사였기 때문이다. 석성이 실각하자 우리 처지가 당장에 나빠졌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우리가 동원령을 받고서도 씹어버렸던 일도 석성의 입지를 깎는데 크게 작용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번호라도 좀 보내서 인사치레하고, 석성이 자리는 지킬 수 있게 해주었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끝난 일인 것을.
우리는 그렇다 치고 건주위는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했느냐고? 나보다 명나라에 더 얽매인 처지인 누르하치는 별 군소리 없이 동생인 슈르하치를 내보냈다. 요동군에서 차출된 이여백의 병력과 함께 우익을 맡았는데…이놈이 말 그대로 이여백의 뒤통수를 쳤다.
슈르하치가 거느린 기병 1만 기는 카라코룸 방면으로 가지 않았다. 늘 터는 몽골 동부 일대 부족들만 적당히 약탈하고, 슈르하치가 낙마해서 부상을 입었다는 핑계로 귀환해버렸다.
잔뜩 믿고 있던 건주위가 그냥 돌아가 버리자 이여백은 당황했다. 본대에 있는 이여송과도 연락이 안 되어 머뭇거리다 역시 큰 피해를 보고 말았다. 이들 역시 소수만 살아서 철수했다.
건주위가 왜 명군에게 엿을 먹였는지, 확실한 정보는 없다. 슈르하치가 을미동정 때 있었던 일로 이여백과 요동군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는 거야 나도 알지만, 그저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칙명을 거스르는 저런 짓을 저질렀을까?
유성룡과 이항복과도 의논해봤지만, 역시 슈르하치가 개인적으로 벌인 돌발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자신의 원한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겠지만, 역시 형 누르하치가 내린 밀명에 따라 의도적으로 엿을 먹인 게 맞아 보인다.
누르하치가 이런 지시를 내린 이유는…역시 명군이 약해지기를 바랐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개입을 피한 게 아닐까 싶다. 몽골이 명나라를 상대하는데 전력을 집중할 수 있도록, 자기네 병력은 진격하는 척만 하다 만 거다.
내 추측이 맞는다면, 누르하치는 대놓고 반기를 들지는 않으면서 명군을 아주 효과적으로 약화시켰다. 건주위를 직접 견제하는 역할을 맡은 요동군 전력은 그렇지 않아도 악화 일로를 걷고 있던 참에 치명타를 받았다. 남은 병력이 4만이 안 된다.
이에 반해 건주위, 아니 만주가 보유한 병력은 10만이 넘는다. 요동군은 사실상 누르하치를 통제할 군사력을 상실했다. 물론 명나라 본국에서 동원할 수 있는 막대한 전력이 아직 배후에 있으니 완전히 무시당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동안 쥐고 있던 고삐는 끊어진 거나 마찬가지다.
다만 한 가지는 의문이다. 명나라가 약해지는 거야 누르하치 그놈이 원했다 치는데, 승세를 탄 몽골이 강성해지는 건 괜찮은 건가? 몽골이 강성해지면, 그동안 자기를 수시로 털어먹은 누르하치를 그대로 둘 리가 없지 않은가? 이 문제에 관해 그때 이항복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노을가적도 나름대로 생각한 끝에 일을 저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전하께서 신과 이제까지 나누신 대화는 모두 헛짓거리로, 노을가적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가 아우가 멋대로 저지른 일을 보고 수습하느라 애먹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잠시 두고 보소서.”
그래, 확실히 두고 보는 수밖에는 없겠지. 명나라 통제에서 벗어난 누르하치가 혹시 미쳐서 내 영토를 탐내기라도 하면 때려잡아야 하니까.
장성 이북에서 이런 난리가 벌어지는 동안 우리는 가뭄 대책으로 머리를 쥐어짜면서 국경만 열심히 지켰다. 명나라가 설마 그 정도로 참패할 줄은 몰랐고, 혹시 명군이 이기기라도 하면 몽골 패잔병이 속말주 쪽으로 몰려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다 끝난 뒤에야 사태의 전모가 전달됐지만, 그 상태로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싶어서 거절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명나라 조정에 사신을 보내서 북경을 지키기 위한 파병을 제안했지만, 역시 필요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긴, 이 정도 패배를 당했다고 명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만리장성을 지킬 정도 군사력은 넉넉히 남아있으니까. 하지만 군사 수만 명, 군자 수백만 냥이 날아간 손실은 쉽게 메워지지 않을 터였다. 고로 앞으로 명나라에서 뭔가 얻어먹기는 완전히 틀린 듯하다.
“와라부 달자들이 나타난 건 아무래도 천병이 패한 작년 원정과 상관이 있을 듯합니다.”
유성룡이 심각한 표정으로 진언했다.
“자칭 북원의 대한이라 하는 철진한(徹辰汗, 체첸 칸)은 작년에 거둔 승리로 크게 기세를 올렸습니다. 건주위 도독 노을가적도 올해는 출병하지 않고 얌전히 자기 땅만 지키고 있으며, 장성 일대를 지키는 천장들은 각자 구역을 지키는 일만도 힘에 겨울 지경이라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도 들었다.”
비변사 회의실에는 내게 그 보고를 들고 온 예조판서도 당연히 임석하고 있다. 음, 금위사 첩보는 아무래도 국내, 정권 안보에 특화되어 있다 보니 해외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는 예조를 통한 공식적인 경로로 입수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게 좀 느릴 때가 잦다는 거다.
금위사는 그 본질이 비밀경찰, 수사기관이니만큼 역시 해외정보 수집에는 적절하지가 않다. 아무래도 정보수집을 전담하는 조직을 별도로 만들고 이를 통해 비공식 라인으로 흘러나오는 정보까지 모을 필요가 있다.
‘역시 익문사라고 하는 게 좋으려나.’
대한제국 말기에 창설한 통신사를 위장한 정보조직 이름이 ‘익문사(益聞社)’였다. 해외정보 수집 및 외국으로 보내는 고종의 밀서 운반을 맡았다고 했다. 내가 이걸 만든다면, 조보에다 게재할 해외 소식을 수집하는 창구로 운영할 수 있을 듯하다. 조보도 더 재미있어지겠지.
어차피 나라가 다시 안으로 쪼그라들지 않게 하려면 계속해서 외부 소식이 들어와야 한다. 정보수집 외에 외신을 빠르게 들여오는 기능만으로도 익문사는 존재가치가 있다. 유럽에 현지 특파원을 두는 것도 괜찮을 테고 말이다.
어쨌든 이건 좀 나중 이야기다. 지금은 와라부, 오이라트 문제에 집중해야겠다.
“지금 할하부는 기가 살아서 만리장성 각지를 공격하고 있으나, 서쪽에 있는 와라부를 어찌 대하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사옵니다. 저들이 진정 와라부에서 보내온 사자라면, 할하부를 치는 일에 도움을 구하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영상이 하는 말이 옳은 듯하구나.”
속말주에서 온 장계에서 이르기를, 오이라트 사자들은 말이 아니라 배를 타고 왔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할하부가 지배하는 초원을 지나오는 대신 멀리 북쪽으로 돌아서 왔다는 소리다. 이들이 여행하는 목적을 할하부가 알면 막아섰으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좋다. 일단 올려보내라 하되, 만약 무도한 소리를 하거든 묶어서 황제께 바치도록 하겠다.”
신하들도 동의했다. 어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어나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