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43
2부 5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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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속말주에 있는 오이라트 사절단은 말을 타고 올 거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달리더라도 그놈들이 한양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두 달 정도는 필요하다. 녀석들을 도성으로 올려보내라는 교지를 휴대한 파발이 여기서 속말주까지 가는데도 한 달은 걸리니까.
그동안은 일단 다른 일을 챙기면서 기다려야겠다. 대륙 방면 신경 쓰는 거 말고도 할 일은 많으니까 말이지. 4년째 가뭄을 겪고 있다고 해서 가뭄 해소에만 주력할 수는 없다.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두루 살피고 우리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도 세워야 한다.
“왜인들은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자기들끼리도 별다른 분쟁은 벌이지 않고, 지난번 전쟁 때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 데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 저 왜놈들이 당장 무슨 일을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철저하게 감시하지 않고 있다가는 후회할 일이 또 생길 수도 있다.
“왜국의 주도권은 여전히 정이대장군 가강(이에야스)에게 있는가?”
“그러합니다. 왜국 본주(혼슈) 중부 및 서부가 전부 가강의 영역이 되어 그 신하들이 영지를 차지하니, 가강이 호령하면 삽시간에 20만 대군이 모입니다. 어찌 다른 영주들이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4년 동안에 일본도 제법 회복이 됐다. 물론 전쟁으로 줄어든 생산연령층 인구가 다시 늘어나려면 한참 남았지만, 엉망진창이 된 마을과 논밭은 웬만큼 정리한 상태다. 조선에 계속 흉년이 닥친 상황도 일본을 부흥시키는 데 좀 도움이 되었다.
요 몇 년 동안은 일본에서 쌀을 상당한 양 수입했다. 예전에는 구리와 유황 수입에 중점을 두었지만, 전쟁이 끝났으니까 이제는 군수물자가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가장 필요한 물자는 흉년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식량이었다.
일본에 지급할 쌀값으로는 은이나 인삼보다 훨씬 실용적인 물품, 면포를 줬다. 일본인들은 면포를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다 보니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조선 면포를 많이 샀었다. 정확히 말하면 개전 직전까지도 면포와 구리를 실은 배가 열심히 서로 오갔으니까 말이다.
일본 내에서도 식량이 넉넉하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그놈들도 감자, 고구마, 옥수수를 손에 넣었기에 그만한 쌀을 우리한테 수출하면서도 그럭저럭 백성들이 대량으로 굶어 죽지는 않는 듯하다. 감자와 고구마를 손에 넣은 게 아마 지난 전쟁에서 일본이 거둔 가장 큰 수확이겠지.
“다만 가강의 가내에서는 요즘 들어서 다소 소란이 있는 듯하옵니다. 가강의 후계자인 아들 수충(秀忠, 히데타다)이 시녀를 자기 침소로 불러 동침했는데, 이 일로 수충의 본처가 강짜를 심하게 부려 강호성 내에 한동안 날카로운 고함이 끊이지 않았다 합니다.”
히데타다의 본처는 차차를 말한다. 차차가 권력욕이 심했던 건 알지만, 질투도 심했던가? 실제 역사에서야 애초에 자기가 측실이었으니 투기를 발할 기회도 없었겠지만, 지금은 본처의 자리를 꿰찼으니 투기를 부리려면 부릴 수는 있겠구나.
“우상, 좀 상세히 말해 보라. 일이 어찌 되었다는 말이냐?”
“전하께서도 기억하시겠지만, 수충의 본처는 미색이기는 하되 웬만한 남자보다 키가 크고 태도가 당당합니다. 게다가 수충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으니, 수충이 주눅이 들어 지내다가 나이도 어리고 키도 작고 성품도 양순한 시녀에게 마음이 동하여 품에 안은 모양이옵니다.”
그러니까 히데타다가 ‘센 누님’ 캐릭터인 자기 마누라를 감당 못 해서 ‘작고 귀여운’ 여자를 찾았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그 말이구먼.
그래도 마누라한테 안 들키겠다고 나름 은밀하게 시도했을 텐데, 어떻게 들켜서 그 난리가 났는지 모르겠다. 설마 차차가 지 남편 옆에 닌자라도 붙여서 감시하고 있는 건 아닐 테지?
“왜인들도 첩은 두지 않느냐? 죽은 수길이 놈은 색마 취급을 받았을 정도로 첩이 많았었고, 수충의 아비인 가강만 해도 처첩이 10명은 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도 용납 못 할 만큼 역도 이진의 옛 처가 투기가 심했던 줄은 몰랐구나.”
아니, 사실 전에는 안 그랬잖아. 전에 조선에 있을 때, 차차는 임해군이 첩을 못 두게 하지 않았다고. 자기랑 혼인하기 전에 있던 조선인 첩은 몽땅 내보냈지만 자기 시녀를 하나 첩으로 줘서 데리고 지내게 했지. 그러고 보니 임해군 첩이던 그 유키란 계집애도 꽤 예뻤는데, 쩝.
“그래서, 수충은 그 시녀를 어찌하였다고 하느냐?”
“은자 한 상자를 주어 본가로 돌려보냈다 합니다.”
“쯧쯧, 가엾게도.”
쇼군의 후계자인데도 여자 하나 마음대로 못 품다니, 가엾은 중생이군. 나야 하려고만 하면 궁중에 하렘을 만들 수 있다만, 그 여자들을 일일이 다 신경 쓰기 번거로워서 일부러 후궁을 늘리지 않는데 말이다.
지금 내가 거느린 후궁은 상희 포함해서 8명…그러고 보니 이에야스랑 맞먹는구나. 그래도 그때 겨드랑이털 밀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옷 벗겼다가 후궁 목록에 추가한 2명 이후로는 더 안 늘렸다. 한동안 승은상궁이던 그 둘도 작년에는 종4품 숙원 첩지를 받았다.
상희도 지금은 종1품 귀인으로 품계가 올랐다. 상희가 입궁한 해가 을유년(1585)이고, 그간 낳은 자녀만 해도 셋이나 되니 그쯤은 받을 만하지 않은가. 상희 본인은 후궁으로 받는 품계 따위에 별 관심이 없지만, 이제 아들인 진안군 혼사를 치르면 빈으로 올려줘야지.
정유년 봄에 치른 혜정옹주의 혼사 이후로 왕실에서는 한 차례도 혼사가 없었다. 4년 내리 가뭄인데 국혼을 치르기는 언감생심이다. 다음 서열인 정혜공주가 벌써 15세이긴 한데, 장녀 정신옹주가 사노부와 혼인할 때 17세였던 전례가 이미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다.
자식 문제는 지금 거론할 게 아니니 일단 미뤄두자. 국사를 논할 때는 주제에 집중해야지.
“왜인들의 동태를 살핌은 실로 중요하다. 과거 경인년에 겪은 바와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탐보를 소홀히 하지 말라.”
경인년에 내가 당한 전략적인 기습은 길이길이 치욕으로 남을 거다. 제기랄,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절대로 그렇게 당하진 않을 텐데.
“예, 전하.”
일본 쪽 첩보망은 옛날부터 존재하던 이키섬 라인이 아직 살아있어서 명나라보다는 상세한 내용이 입수되고 있다. 하카타, 오사카에 주재하는 조선인 또는 일본인 정보원들이 꾸준하게 보내오는 정보가 차곡차곡 들어온다. 나중에 이 라인은 꼭 익문사로 편입시켜야겠다.
사실 좀 아쉬운 게…비밀경찰은 그렇다 치고 미국의 CIA나 한국 국정원 같은 정보기관들도 모두 국가원수 직속이다. 하지만 익문사는 겉으로는 조보에 실을 기사를 취재하는 조직이니, 형식상으로는 일단 예조 아래에 넣어야겠지 싶다. 조보 인쇄하는 박문국이 예조에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예조도 참 애매한 기관이다. 외교, 교육, 제례가 몽땅 예(禮)의 범주에 속해서 예조 안에 들어간다. 물론 유교적으로 생각하면야 일관성 있는 조치라고 하겠지만, 현대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6조 중에서 가장 중구난방으로 역할이 뒤섞인 조직이다.
나중에 6조 체계를 없애고 정부기구를 전부 개편할 타이밍이 오면, 예조부터 최소한 셋으로 쪼갤 테다. 외교부, 문교부(文敎部), 전례부(典禮部) 정도로 말이다. 신하들에게도 밝혔다.
외교부야 뭐 굳이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할 필요 없겠고, 문교부는 대한민국 초기에 그랬듯 문화?체육?교육 등을 모두 담당할 예정이다. 아직은 문화체육부 같은 걸 따로 만들 필요는 없어 보이니까. 전례부야 종묘제례 등등 온갖 국가 행사를 전담하는 부서로 하고.
어, 그럼 장악원 같은 곳은 문교부에 들어가야 하나, 전례부에 들어가야 하나? 전통예술을 보존하는 기구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문교부 예하겠지만, 국가 행사에 동원하는 실무부서라고 하면 전례부 소속이 맞다. 이래저래 따져야 할 부분이 많군. 신하들 의견은?
“전례를 담당하는 관청이라면 마땅히 그쪽으로 들어가야겠지요. 하지만 전하, 지금 우리가 쓰는 육조 체계는 옛 법도에 따라 만들어 전조 말부터 쓰던 것이라, 굳이 새롭게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신으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상의 말이 맞기는 하다. 하지만 이 육조 혹은 육부라는 체계도 수나라에서 처음 시작한 것이지, 그 이전에는 없지 않았는가? 옛 성현의 시대에도 없었던 제도인데, 필요에 따라 약간 변형해서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서양사 지식이야 전부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거다. 하지만 옛날 중국사 같은 분야는 원래 내가 잘 모르던 장르라 조선에 와서 새로 배운 지식도 꽤 된다. 수나라 때부터 중국에서 6부 체계가 시작되었다거나 같은 것들 말이다.
“적절한 사례라 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으나, 왜황의 조정만 해도 6개가 아니라 8개 성을 두고 필요에 따라 운영했느니라. 관제의 격을 맞추는 일은 실로 중요한 일이 맞으니 주의해야 하겠으나, 관청 숫자 같은 데 얽매일 필요는 없다.”
천자국인 중국이 육부(六部)를 쓰고 있으니 제후국인 우리로서는 격을 낮추어 육조(六曹)로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일본이야 조공체계에 편입되지 않고 제멋대로 살았으니 6부도 아니고 팔성(八省)이라는 호칭을 격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붙였던 것이고.
그러니 적어도 명나라가 나가떨어지기 전에는 이놈의 ‘조’라는 호칭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 전례부는 그냥 예조, 외교부는 외조, 문교부는 교조라고 할까? 아니, 문조가 차라리 낫겠다. 교조라고 하니까 무슨 종교 담당 관청 같다.
“전하. 관청 숫자를 늘린다고 함은 곧 녹을 받는 관리의 숫자를 늘린다는 뜻이옵니다. 이는 곧 백성들이 지는 부담을 늘린다는 뜻이니, 결정하기 전에 새삼 논의하고 또 논의하여 섣부른 결정이 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대사헌의 말도 옳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우리 영토는 무종께서 처음 즉위하셨을 때보다 5배는 족히 늘어나지 않았느냐? 지방관 숫자는 3배, 무관은 4배는 늘었다. 그렇다면 마땅히 중앙에서 이를 맡아 관리하는 관청도 늘고 속한 관공리의 수도 늘려야 하지 않겠느냐?”
조선은 지나치게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부작용을 빤히 아는 나로서는 어느 정도 큰 정부를 추구하는 게 당연하다. 내가 한 마디 던지자 이항복이 냉큼 받았다.
“지극히 옳으신 말씀입니다. 사대부들은 전하를 받들어 모시면서 나라를 위해 일할 기회가 늘어난 데 대해서 지극히 기뻐할 것입니다. 백성들도 전하께서 내리시는 명에 따라 자신들을 돌보는 손길이 많아짐을 기뻐할 것이니, 이 어찌 모두가 즐거워지는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아주아주 정곡을 콱 찌르는구나, 그냥. 이항복이 발언한 요지는 관제개편으로 6조가 8조로 늘어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관리 숫자가 30%는 늘어난다는 점에 있었다. 물론 하부 기구를 어떻게 편성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변두리 지방관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도성인 한양에 머무르는 중앙 관료 숫자가 30%나 늘어난다는 말이다. 게다가 조직 증설 과정에서 승진대상자도 폭증한다. 벼슬 한자리 차지해 보겠다고 목을 매던 사대부 수천 명이 눈이 돌아갈 만한 소식 아니겠는가?
이젠 식년시가 식년시가 아니다. 경성군 시기까지도 3년에 한 번 33명을 뽑던 대과가, 이젠 매년 합격자를 100명씩 뽑는다. 많이 뽑아서 실무에 굴리다가 싹수가 노란 놈은 바로 버리고 괜찮은 놈만 추려내자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 합격자 수가 9배로 늘어났다고 해서 전체 관리 숫자도 9배로 늘어난 건 아니다. 북방 벽지로 발령이 나면 온갖 핑계를 대고 사직하는 놈들이 많아서, 관리 숫자는 크게 늘지 않았다. 대과 합격자를 넉넉히 뽑게 된 이유에는 자진사퇴를 감안한 여유분 확보도 있다.
붙자마자 사직할지언정 한 번이라도 과거에 붙고 싶다는 자들은 끝이 없으니, 매년 대과를 시행한다는 공고만 붙으면 원서가 십만 장씩 날아든다. 이놈의 시험관리가 너무 고달파서라도 어서 예조에서 문교부(가칭)를 빨리 떼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업무가 안 되잖아!
하여튼 이 많은 지원자 중 향시를 거친 뒤에 응시하는 소과 복시 합격자가 1000명, 여기서 마지막으로 추려내는 대과 복시 합격자가 100명이다.
응시자들 출신성분을 보면 참 각양각색이다. 물론 뼈대 있는 사대부집 자식들이 가장 많이 과거를 보러 오지만, 그중에서 절반은 서얼들이다. 여유가 있는 가문에서는 적서를 불문하고 악착같이 공부를 시켜 과장에 보낸다.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도 다 합리적인 논리적 판단의 결과였다. 다른 가문은 서자를 과거에 내보내는데 자기 가문만 안 내보낸다면, 당연히 경쟁에 질 확률이 급상승하지 않는가. 가문의 위세를 지키자면 우수한 선수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고 들 수밖에 없는 거다.
게다가 상공업이 활성화되면서 과거에 응시하는 일반 상민 출신자도 늘었다.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일가에서 ‘집안에서 하나쯤은’ 과거 합격자를 내서 신분을 양반으로 업그레이드하고자 하는 시도 때문이다. 합격자 중 3% 정도가 이런 상민들이다.
이런 신흥 경쟁자들 때문에 과거를 포기하고 의시나 무과, 심지어 상공업 등으로 전환하는 사대부들을 보는 것도 만만찮은 재미다. 아직은 이런 계층 출신으로 고위직에 올라온 사례는 없지만, 이젠 그것도 시간문제가 아닐까.
“과거를 매년 열고, 합격자 수를 100명으로 늘린 것도 불과 5년이 되지 않았사옵니다. 이미 많은 관리를 뽑고 있사오니, 관제를 개편하더라도 과거 합격자를 지금보다 더 증원할 필요는 없을 듯하옵니다.”
“판중추부사 윤두수의 말도 옳다. 일단 정원을 채워 보고, 만약 인원이 모자라거든 벼슬에 올랐다가 쉬고 있는 자들을 불러들여 적당한 자리를 주는 방향으로 길을 잡도록 하라.”
중추원과 중추부는 아직 용어가 좀 혼용되고 있다.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으니 내버려 둔다. 시간이 지나면 중추원으로 통일되겠지.
예조를 셋으로 나누면 그 명칭을 각각 무엇으로 할 것인지, 그리고 그 산하에는 각기 어떤 관청을 두어 업무를 분담할지에 관한 토론은 한참을 이어졌다. 시급한 사안은 아니니, 충분한 토의를 거쳐서 진행할 일이다.
‘그러고 보니 익문사는 금위사와 어떤 관계가 될까…?’
신하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문득 아까 구상한 익문사 창설 생각이 났다. 분명히 익문사와 금위사 사이에 어느 정도 알력다툼이 있겠지? 미국 정보기관인 CIA랑 FBI도 서로 으르렁거리는데, 조선에서 그런 게 없을 리가 없잖아?
무종 때도 그랬었다. 지금은 이항복이 가진 권위 때문에 금위사 파워가 너무 강해서 갈등이 안 드러나지만, 무종 때 일을 되새겨보면 의금부와 금위사가 상당히 사이가 안 좋았다. 역모 수사라는 업무영역까지 겹치니까 말이지.
사실 명목상으로 금위사는 의금부에 속한 하위기관이다. 이항복이라는 빽 때문에 의금부가 금위사에 손을 못 대는 지금 상태는 확실히 정상적인 건 아니다.
지금이야 괜찮다. 정호찬 때도 괜찮았다. 그 외에 과거의 일은 지금 별 탈이 없는 걸 보면 별문제 없었던 듯하니 도매금으로 퉁쳐서 넘기자. 문제는 미래다.
앞으로도 정호찬이나 이항복 같은 유능하고 성실한 금위사장만 계속 그 자리에 앉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떤 이유로건 무능하거나 부패한, 혹은 사악한 놈이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있고, 시의적절한 조치로 그놈을 제거하려면 견제하고 나설 존재가 필요하다.
의금부가, 금위사가, 익문사가 업무영역을 나누어서 서로를 보완하면서 또 견제하는 구도가 역시 가장 바람직하다. 정보가 편중되면 그 자체가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수 있으니 말이다. 적어도 세 정보기관이 합심해서 반기를 들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만약 부패한다고 해도 어느 하나가 티 나게 독보적으로 부패하진 않을 거다. 그러면 다른 두 기관이 합심해서 그놈들을 제물로 삼을 테니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