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53
2부 5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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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을 지나치는 권율은 어딘가 표정이 들떠 있는 듯 보였다. 십여 년을 고이 키운 아들이 장가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 같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도원수가 며느리를 하나 더 들이는 날인 것 같군.”
내가 피식 웃으며 농을 건네자 권율이 계면쩍게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굽혔다.
“아, 아니옵니다. 신이 어찌 그런 무엄한 생각을 하겠나이까.”
“내 딸이 그대가 키운 이에게 시집을 가니 며느리라고 생각해도 틀린 건 아니지 않은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아, 이게 벌써 몇 번째야? 무종 때 황이 장가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게 정말 아쉬웠는데, 그 보상인지 몰라도 이번 생에는 정말 질리도록 혼사를 치르고 있다. 어디 보자, 성이부터 시작해서 오늘이 벌써 12번째 혼인식이구나. 그것도 이번엔 한꺼번에 두 명.
오늘 혼인하는 두 아이 중 좀 더 비중이 큰 쪽은 열여섯 살 난 정혜공주다. 중전 소생인 네 자녀 중 막내면서 경성군이 아닌 ‘내’ 첫 자식이다. 사실 이 아이가 진안군보다 한 살 위니까 혼인도 한참 먼저 치러야 했지만, 가뭄이 계속되는 바람에 미루다 보니 그만 늦어졌다.
정혜공주의 신랑은 송희원, 나이는 공주보다 한 살 위다. 송상현, 송희립과 같은 여산 송씨 출신이라고 한다. 부친은 경성군 시절 호조판서, 공조판서를 역임하고 지금은 물러나서 쉬고 있는 송정선이라는 사람이다.
예식은 절차에 따라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본래대로라면 이번 생에서 낳은 ‘내’ 첫 자식의 혼인날이니만큼 무척 감흥이 깊었어야 했다. 하지만 봄에 먼저 혼인한 진안군이 의도치 않게 새치기를 해서 식을 치르는 바람에 약간 김이 빠지고 말았다.
그래도 기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한 기분은 변하지 않았다. 먼저 시집을 보낸 다른 공주, 옹주들보다는 아무래도 더 진한 감정이다. 역시 ‘내 친자식’이라는 조건 때문이리라.
“신첩은 이제 다 이루었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내 옆에 앉아 울먹이는 중전의 눈가가 촉촉하다.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웃으며 속삭였다.
“무슨 말씀이시오. 공주가 데려오는 손자, 손녀도 보아야 하지 않소.”
두 손에 총을 잡지 않았을 뿐, 중전은 외할머니 다지의 젊은 시절처럼 강철 같은 여자였다. 각성 초기에 중전과 주고받았던 날 선 대화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하다. 당시 중전이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나를 뒤흔들고도 남았으니까.
그때 우리는 일종의 암묵적인 동맹을 맺었다. 중전은 내가 보위를 굳건히 지키도록 돕는다, 나는 세자의 지위를 건드리지 않는다. 이 약속은 지난 18년 동안 굳게 지켜졌다. 그리고 우리 둘은 서로에게 적응하면서 마치 본래부터 부부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지냈다.
“나처럼 부족한 사람을 만나 중전도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내가 중전께 고마워하는 마음이 다 전해지지 않는 듯하여 갑갑할 뿐이오.”
“어찌 그리 서운한 말씀을 하십니까? 전하를 받들어 모시는 일은 신첩의 가장 큰 의무이고 기쁨입니다.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중전이 촉촉해진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중전도 어느덧 마흔일곱, 나하고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20대였는데 어느덧 4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끈하기만 하던 양 눈가와 이마에 살짝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는 모습이,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나이가 들었어도 미모는 여전하다 보니 그 눈가의 주름도 부드럽게 다가온다. 지난날의 그 날 선 강철에는 이제 햇솜처럼 포근한 껍질이 씌워졌다. 그녀의 모든 것인 자식들이 위험에 처하는 사태가 생기지 않는 한, 그 폭신한 외피를 찢고 발톱을 드러낼 일은 없을 것이다.
그저 세월이 그녀를 그렇게 변화하게 만든 건 아니다. 네 자식을 모두 무사히 키워냈다는 안도감이 암사자 같던 이 여인을 이토록 부드럽게 변화시켰으리라.
가끔은 상희를 다시 만나지 못했어도 이번 생애가 많이 외롭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중전은 내게 충분히 과분한 여자였고, 내조도 훌륭했다. 내가 힘들거나 불편하지 않게 중전의 자리를 지키며 나를 잘 받쳐주었다.
“하온데 전하, 신첩이 전부터 여쭙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오늘은 꼭 답을 내려주시옵소서.”
한껏 기분이 좋은 참이다. 웃으며 받았다. 무슨 질문일까?
“무슨 일이기에 그러오, 중전?”
“혼인하는 날은 평생 단 하루뿐인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이옵니다. 그런 날을 둘에게 따로 맞이하게 하지 않으시고 어이하여 정혜공주와 희정옹주에게 같은 날 혼인하게 하셨는지요?”
한껏 들떠 있던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등골에 차가운 땀방울이 흐른다. 전에도 분명히 이 질문을 받고 그때 답했던 것 같은데….
“아, 그건…관상감에서 오늘이 가장 좋은 길일이라고 하기에, 기왕이면 옹주도 공주와 같은 행운을 얻게 하고 싶어서 그리하였소.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셨군요…알겠사옵니다.”
약간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중전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속으로 나도 안도의 한숨을 몰래 쉬었다. 역시 중전에게는 모든 것을 드러내고 말할 수는 없다. 상희에게는 굳이 숨기지 않는 일이라고 해도, 중전에게는 차마 밝힐 수 없는 일이 많았다.
어떻게 중전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가 있겠는가? 함께 혼인하는 두 번째 신부, 열세 살 먹은 희정옹주의 신랑이 누르하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명나라 조정으로부터 숨기려고 일부러 같은 날에 혼사를 치르는 거라고 말이다.
“정혜공주를 혜원이 가리는 방패로 쓰는 거야?”
“표현이 너무 험하다. 같은 말이면 좀 좋게 해주면 어때? 그냥 공주가 혼인하는 날에 같이 혼인해서 주목을 좀 피하겠다는 거지.”
“그게 그 이야기잖아.”
희정옹주 본명이 혜원이다. 상희도 자기 딸과 공주를 같은 날에 혼인시키기를 내키지 않아 하는 점에서는 중전과 다를 바 없었다. 임금의 모든 자녀는 중전의 자식으로 간주하니 후궁인 상희가 드러내 개입할 일은 아니지만, 내게는 혼인식 전에 솔직하게 서운함을 토로했다.
“혼인 상대가 본인이 원하지 않는 외국인인 것만 해도 미안한데 혼인날에 받는 관심도 둘로 나뉘는 게 안타깝네. 기왕 외국 왕자와 하는 결혼이라면 온 왕실과 도성 전체가 주는 축하를 받으면서 가게 해주고 싶었는데.”
이 혼사를 내가 속으로 계획한 건 벌써 여러 해 전부터다. 처음 계획했을 때부터 상희에게 털어놓고 동의를 구했고, 희정옹주가 열 살 먹었을 때부터 본인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조금씩 시키게 했다.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는 못하고 좀 막연하게만 말이다.
내가 제시한 전망 때문에 승낙하기는 했지만, 상희도 이 혼사를 진심으로 반기지는 않았다. 소중한 딸을 요동으로 떠나보내야 한다는 데서 오는 아쉬움이 가장 컸다. 그나마 정신옹주와 혼인한 사노부는 조선에 정착했지만, 다이샨은 언젠가 건주위로 돌아갈 사람이 아닌가.
“몇 년 동안 조선에 와서 잘 지내는 모습 봤잖아? 괜찮은 녀석이라는 거 욱이한테도 여러 번 들었을 거고. 능력도 좋고 세자나 욱이랑 어울리면서 친분도 많이 쌓았어. 잘나가는 오빠 친구인 셈이니까, 남편 노릇도 잘할 거야.”
상희는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다. 진안군의 혼사를 치를 때 품계가 빈으로 올라 상빈(常嬪)이 되었지만, 늘 그렇듯 품계가 오르는 건 상희에게 별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네가 결정하고, 네가 밀어붙인 혼사야. 나도 동의했었지만, 막상 눈앞에 다가오니 두렵네. 아마 나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은 뒷이야기가 또 있을지 모르지만, 인제 와서 캐묻지는 않을게. 너 나름대로 판단해서 결정한 일일 테니까….”
상희라도 가만히 있어 줘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야인 중에서 신분이 높다 한들, 왕녀를 야인에게 시집보내다니 될 말이냐고 조정이 발칵 뒤집혔었으니까.
사노부를 이미 받아들였으면서 왜 난리냐고 하면, 다이샨을 부마로 들이는 데는 사노부와는 질적으로 다른 장애물이 있다는 말로 답하겠다. 바로 명나라의 존재다.
사노부도 일개 지방 영주 출신이 아니라 쇼군의 아들이나 일본 황자였다면 아마 혼인을 못 했을 거다. 그 결혼을 매개로 해서 조일동맹을 맺고 명나라를 치려고 한다는 의심을 샀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저 그런 소영주의 아들이었기에 나중에 알고도 상관하지 않았다.
다이샨 역시 요동 구석 어디에 있는 작은 소부족 출신이었다면 괜찮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70만 인구를 자랑하는 유일한 여진족 독립세력이 된 건주위의 둘째 왕자이니, 이 혼인 사실이 명나라에 들어가면 의심을 살 확률은 높고도 높았다.
더불어서 ‘왜’ 이 혼사를 치러야 하는지를 놓고 신하들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았다. 여기에서 또 사노부가 거론됐는데, 사노부는 조선으로 귀화하여 내 신하가 되었지만 다이샨은 건주위가 볼모로 맡겼을 뿐이라는 게 문제였다.
‘전조에서 비롯된 중국에 공녀를 바치는 제도를 선왕들께서 얼마나 고생해서 없애셨습니까? 그런데 옹주마마를 대국에 보내는 것도 아니고 건주위의 야인에게 하가(下嫁)시키시겠다니, 이 어찌 선왕들께서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실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벌떡 일어날 선왕 중 적어도 한 사람이 할 말은 내가 안다. ‘무종대왕’께서는 절대 놓치지 말고 꼭 혼인시키라고 하실 게다.
신하들이 옛 전례를 들어 반대하니 내 반박 논거도 옛 전례에서 끌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전조 시기 달자들이 천자의 자리를 범했을 때, 달자들은 황족의 딸들을 전조 임금들에게 배필로 주어 전조를 감시하고 억제하는 데 활용하였다. 우리 역시 옹주를 통해 건주위가 혹시 무도한 짓을 벌이지 못하게 견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하께서는 그리 말씀하시지만, 그저 인질을 내줄 뿐이지 않겠습니까?’
‘내가 자비를 베풀 때 알아서 따르지 않고 감히 옹주를 인질로 삼아 불측한 짓을 꾸민다면, 우리 철기가 먼저 건주를 짓밟고 누르하치의 목을 베어 천자께 바칠 것이다. 누르하치는 이를 모를 만큼 어리석지 않으니, 그런 짓은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건주가 정말 엉뚱한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대국에서는 분명 의심할 것인데, 이는 어찌하실 생각이시옵니까?’
‘그러니 더더욱 양응룡을 진압하는 군사를 보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천자를 거스를 뜻이 없음을 대국에 보이는 것이다.’
다이샨과 희정옹주의 혼인에 신하들이 동의하게 만드는 건 파병안을 통과시키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사노부 때처럼 이건 순전한 내 집안일이라고 우길 수도 없었다.
이 험난한 논의 동안에 다이샨에게 무슨 해가 가지 않도록 보호하느라고 권율이 마음고생이 심했다. 오늘 내가 권율에게 농을 건넨 건 그간의 수고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자기 집에서 아들처럼 9년을 돌본 공도 있지만 말이다.
결국, 금위사를 동원해서 누르하치로부터 ‘이번 혼사로 인해 어버이의 나라인 조선 왕실의 존귀한 피를 자기 후손들이 물려받게 됨을 너무나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 조선 국왕께 더 많은 존경과 신의를 보내겠다’라는 각서를 받아오고서야 반대가 수그러들었다.
다만 이 각서의 해석에는 약간 장난질이 있었다. 누르하치가 ‘차자(다이샨)가 앞으로 전하께 충실한 신하가 되게 하겠다’라고 한 부분을 ‘다이샨이 귀화할 것이다’라고 아전인수로 해석한 부분이다. 뭐, 지금도 조선 이름 쓰면서 족친위에 있으니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합의가 오간 결과로 저쪽 장막 아래는 슈르하치를 비롯한 건주위 요인들이 한 무리 앉아서 웃으며 혼례식을 구경하고 있다. 명나라 눈치를 보느라고 다이샨의 부친인 누르하치가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숙부인 슈르하치가 형 대신 신랑 측 가족대표로 온 것이다.
“도승지, 서이합제(舒爾哈齊, 슈르하치)는 근신 중인 것으로 되어있다고 하였지?”
“그러하옵니다, 전하.”
슈르하치는 몽골 원정 때 이여백을 버린 사건으로 명나라 조정에서 역적 취급을 받았다. 그 문제는 형인 누르하치가 부상 핑계를 대면서 막대한 뇌물로 무마했지만, 그렇다고 슈르하치가 태연하게 요동을 누비는 모습을 이씨 일가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이성량이 보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지….”
이성량은 부패가 심하다고 탄핵을 받아 신묘년(1591)에 은퇴하고 북경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장남 이여송이 몽골군에게 전사하고 이여백이 대패, 구사일생으로 귀환하면서 요동이 뒤흔들리자 급거 요동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세력을 회복하려고 말 그대로 발악하고 있다.
그 눈에 뜨였다간 재미없을 게 확실하니, 슈르하치는 ‘불가항력이긴 했으나 황제께 불충한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니, 잘못을 뉘우치며 근신한다’라는 핑계로 우리 국경 근처에서 유유히 노닥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조카가 혼인하게 되자 하객으로 넘어온 것이다.
“전하, 이제 예식이 다 끝났사온데….”
“준비한 대로 잔치를 열도록 하라. 종로 거리에 상을 펼치고 도성 백성이라면 누구나 와서 실컷 먹고 마실 수 있게 하여라. 조정 중신들과 건주에서 온 객(客)들은 창덕궁에 따로 마련한 자리로 안내하여라.”
“예, 전하.”
오늘 여는 잔치는 일거오득을 노린 거다. 전쟁과 흉년으로 고생한 도성 백성들에게 모처럼 임금이 한 방 쏜다는 의미도 있고, 막내딸을 하가시키는 중전을 축하하려는 의도와 큰딸을 곧 외국으로 보내야 할 상희를 위로하는 뜻도 있다.
여기에 손님으로 찾아온 건주위 일행에게 내 부유함을 과시하면서 내가 그만큼 건주위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드러낼 필요도 있고, 공주의 혼례를 크게 치렀을 뿐이라고 소문을 퍼뜨려 명나라 측의 시선에서 다이샨을 가리려는 의도도 있다.
다만 이번 잔치 비용으로 나가는 돈이 저화로 5만 석쯤 된다고 하니, 매번 왕실에서 혼인을 치를 때마다 이런 큰 잔치가 기본이 되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아무래도 아직은 만사 간소하게 하는 게 조선인들의 관점에는 합당하니 말이다.
“이성량이 가진 위명도 이제 예전 같지 않습니다. 요동 지방에서 대국의 권위는 급하락하는 중입니다.”
슈르하치는 껄껄거리며 술잔을 들었다.
“우리 만주의 백성은 이미 70만, 그리고 더 늘어날 겁니다. 조선에서 넘어오는 사람은 물론 없지만, 요동부나 코르친에서는 계속 귀부하는 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명나라에게 대승을 거둔 체첸 칸이 이 기회에 명이 추후로는 몽골을 건드릴 엄두도 못 내게 만들겠다면서 날뛰고 있다고 한다. 병력과 물자를 끝없이 요구하는 통에 이를 모두 받아내기 힘겨운 중소부족들이 하나하나 건주위로 넘어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모두 전하께서 저희를 살펴봐 주신 덕입니다. 춥고 척박한 북방에서도 잘 자라는 농작물을 주셔서 저희가 심어 먹게 하셨고, 간교하고 흉맹한 해서부 놈들을 쳐부수어 암습당할 염려가 없이 살게 해 주셨습니다. 거기에 이제 핏줄까지 이어 주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슈르하치는 연이어 건배를 외치며 술잔을 들이켰다. 일본에서 이여백 때문에 고생한 일을 위로할 겸 귀환하는 길에 열어준 술잔치 때 이미 한번 봤지만, 내 생전에 저렇게 술을 물처럼 목에다 들이붓는 녀석은 처음 봤다. 젊은 임꺽정이 와서 대작해도 상대가 안 될 듯하다.
“전하! 제 조카 다이샨의 혼인을 여기서 치르신 뜻은 저희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조카도 가족이 있는 이상, 가족들이 있는 고향에서 만주 방식으로도 혼인식을 한 번 치름이 좋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보내주시겠지요?”
“물론이다. 다만 이미 10월인데 지금 올라가면 도중에 겨울이 될 게 아니냐. 옹주가 북변의 추위를 견디기 힘겨울 듯하니, 봄이 오면 올려보낼까 한다. 그대의 형인 만주 추장에게 그리 전하고 양해를 구할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따뜻한 도성에 있던 옹주마마께서 갑자기 만주에 오신다면 당연히 춥겠지요. 봄에 오셔서 천천히 날씨에 몸을 맞추심이 제 생각에도 좋겠습니다.”
슈르하치가 껄껄거리며 또 술잔을 들이켰다. 그래, 실컷 먹고 마셔라. 저쪽에 있는 양굴리(揚古利) 녀석하고 진짜 회담은 이미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