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63
2부 541화
– 5 –
“신은 전하께서 저들을 너무 관대하게 처분하셨다고 생각하옵니다. 조밥과 간장을 먹이는 정도로 그칠 게 아니라, 주범은 거열형에 처해서 사지를 찢고 종범들은 모조리 참형에 처하는 정도 처벌은 가했어야 했습니다.”
벌써 사흘째 그 이야기가 조정을 떠나지 않는다. 만사를 제쳐 놓고 가르시아 문제만 붙들고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안건을 전부 처리하고 회의가 끝날 때쯤 되면 누군가가 꼭 그놈 이야기를 꺼냈다.
“그 서반아 중놈들은 지금도 객사 안에서 호통을 치며 난동을 부린다 들었습니다. 하다못해 장형(杖刑)이라도 내려 저들이 이 나라 국법의 지엄함을 깨닫게 하소서!”
“이미 논의가 끝난 일이다.”
난 지금 스페인하고 전쟁을 벌이고 싶지 않다. 물론 필리핀 주둔 스페인군 따위야 우리한테 상대도 안 되는 규모인 데다, 유럽에서 증원군이 온다고 해 봐야 우리 군대하고 비교도 안 될 숫자일 걸 내가 안다. 그 펠리페 2세도 못 한 아시아 원정을 그 형편없는 아들놈이 한다고?
싸우면 분명 이긴다. 하지만 안 싸우고 싶다. 스페인군이 먼저 나를 공격해온 것도 아니고, 미친놈 하나가 지랄했을 뿐인데 그걸 가지고 굳이 전쟁을 시작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지금 전쟁을 피해야 할 이유는 내가 싸우기 싫다는 것 외에도 최소한 넷은 된다. 신하들과 의논하여 내린 결론도 있고, 나 혼자 속으로 생각한 것도 있지만 하나같이 명백한 사실이다. 이것도 일종의 ‘사불가론(四不可論)’이다.
첫째, 우리는 그동안 전쟁을 너무 오래 치렀다. 자그마치 십 년 이상을 어디선가에서 계속 싸우면서 보냈고, 그만하면 충분하다. 한동안 쉬면서 전력을 보충하고 내실을 다질 시간이다. 게다가 스페인전은 명나라가 도와주길 기대할 수 없다. 순전히 우리 돈으로 치러야 한다.
둘째, 지금 당장 필리핀을 빼앗아 봐야 그다지 의미가 없다. 부여주와 대남도에 널려있는 미개척지도 아직 제대로 경영이 안 되는데, 수천 개나 되는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을 지금 얻은들 뭐하겠는가. 제대로 관리할 수 있겠는가.
셋째, 열대지방인 필리핀에서는 전쟁이 어렵다. 파주에서 양응룡 군과 싸우면서 깨달았지만, 우리 본국 병사들을 남방에 보내면 비전투손실이 너무 크다. 그래서 대남도 병사를 동원해야 하는데, 동원할 수 있는 대남도 토인병 대부분이 양응룡의 난을 진압하러 가서 병력이 없다.
필리핀 주둔 스페인군이 1천 명 정도밖에 안 되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스페인인 부대 외에 원주민 보조병만 해도 1만 명은 되고, 내가 팔아먹은 왜인 노예병도 3천은 된다. 그만한 수를 확실하게 제압하려면 우리도 3만 명은 동원해서 공격해야 한단 말이다!
수군을 동원해서 필리핀을 봉쇄하고 마닐라를 불태우는 건 쉽다. 마닐라 요새 함락도 쉽다. 하지만 그 뒤에 정글로 도망친 적 잔당을 추격해서 소탕하려면 지난한 토벌전을 펼쳐야 한다.
원주민 보조병들이 펠리페 3세에 대한 충성을 얼마나 이어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놈들이 항복할 때까지는 지리에 익숙한 원주민 병사들이 정글을 무대로 게릴라전을 펼칠 텐데, 거기 들어가는 비용과 손실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필리핀에서 베트남전을 치르란 말인가?
넷째, 상업적으로 손실이다. 마닐라는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마닐라 갈레온의 종점으로, 현재 태평양을 왕복하는 유일한 무역의 중계점이다. 그 마닐라를 내가 불태워버린다면 멕시코에서 오는 마닐라 갈레온이 운항을 중단할 것이고, 나는 쏠쏠한 수입원을 하나 잃게 된다.
지금 유럽으로 가는 우리 수출품은 거의 전량이 마닐라 갈레온에 실려 동쪽으로 가고 있다. 인삼, 모피, 종이, 가구, 도자기, 장신구 등 견서사가 유럽에서 선전한 온갖 상품이 마닐라로 운반되고, 거기서 배를 갈아탄 다음 바다를 건넌다. 그리고 멕시코를 거쳐 유럽으로 간다.
장차 네덜란드나 잉글랜드 동인도회사가 자기네 무역로를 개설하거나, 우리가 직접 상품을 보낼 확실한 루트를 얻으면 마닐라에 기대서 유럽과 교역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황으로는 스페인이 마닐라를 계속 확보하면서 교역선을 유지해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닐라 갈레온이 끊기면 손해를 보는 건 우리만이 아니다. 명나라로 들어가는 은도 끊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사정이 나빠져 은이 부족한 명나라에서, 마닐라를 통한 막대한 멕시코은 공급이 중단되면 대재앙이 일어난다. 그 원망이 모조리 우리를 향할 거다.
“그깟 광인의 광태에 분노하여 이런 네 가지 곤란한 점을 무릅쓰고 서반아와 전쟁을 벌여야 할 이유는 없다. 단지 교에 너무 깊이 빠지면 그자들처럼 광증이 드러날 수 있음을 명심하고, 어떤 교를 신봉하건 적절히 자제하며 중용을 지켜야 할 것이다.”
기독교만 광신자가 있는 건 아니지.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어디나 광신자들은 있고 그 존재 자체로 주변에 막대한 폐를 끼친다. 성리학은 어디 안 그런가? 실제 역사에서도, 그리고 내가 살았던 두 번의 생에서도 ‘성리학 광신자’들은 골칫거리였다.
이제껏 조선에 온 예수회 선교사들이 말 그대로 모범적인 사대부처럼 처신한 덕분에, 이번 사건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단 자체가 그런 미친놈들의 집단이라는 인식까지는 아직 생기지 않았다. 예수회 측도 도미니코회와 자신들의 차이를 강조하며 최선을 다해 수습하고 있다.
덕분에 가톨릭과 유럽 문화에 대해 별 호감이 없는 신하들도 적어도 이 건에서는 가르시아 개인의 허물로 취급하지, 가톨릭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앞으로 계속 유럽과 교류해야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사흘 뒤에 대남도로 가는 배편이 있다 했으니, 그 미친 수도사 일당들은 그 배로 마닐라로 추방하리라. 그때까지 계속 조밥과 간장만 먹으면서 잘못을 되씹어보라고 하여라. 예조에서는 마닐라 총독에게 보낼 편지를 어서 초하여 올리도록 하라.”
스페인 사절의 무례는 조밥과 간장을 먹이는 조치만으로 끝낼 일이 물론 아니다. 본국에도 항의할 필요가 있다. 그게 펠리페 3세에게 통하든 안 통하든, 그건 나중에 걱정할 일이다.
다만 공연한 위험을 감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가르시아 놈은 왕에게 자기를 고발하는 내 편지를 갈가리 찢어 바다에 던져버리고도 남을 인간 같다. 그렇다고 항의서한을 휴대한 우리 관리를 딸려 보내는 것도 위험하다. 사람까지 바다에 던져질지도 모르지 않는가.
“서반아 왕에게 직접 보내는 항의서한은 다음 견서사 편으로 전달하도록 하겠다. 굳이 그 방자한 놈의 손에 들려 보낼 수는 없는 일 아니냐.”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펠리페 3세에게 직접 보내는 편지는 없다. 하지만 마닐라 주재 스페인 총독인 프란시스코 데 텔로 데 구스만(Francisco de Tello de Guzman, 데 텔로는 부계 성씨, 데 구스만은 모계 성씨)에게는 이번 사건의 전말을 상세하게 쓴 편지를 주고, 국왕에게 나 대신 보고해 달라고 요구할 생각이다.
데 텔로는 제법 말이 통하는 친구다. 한양과 마닐라 사이가 이제껏 원활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도 데 텔로의 매끄러운 일 처리 덕분이다. 가르시아의 미친 짓에 관해 데 텔로에게 알리면 분명히 펠리페 왕이 잘 알아듣도록 중개하리라고 믿는다.
“전하, 다음 견서사는 언제 보내실 예정이시옵니까?”
“본래 마음먹은 대로 5년 주기로 보낸다면 올해 보내야 하겠으나, 긴 가뭄으로 인한 피해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2년쯤 더 있다가 보내면 어떻겠는가.”
유럽 왕복에 소비하는 시간만 3~4년이니, 5년 주기로 보내려면 자칫 먼저 보냈던 사절단이 귀환하기도 전에 다음 견서사가 출발해야 한다. 다녀온 성과를 제대로 정리하기도 전에 다음 팀이 나가는 것도 무리가 있으니까, 이참에 주기를 좀 늘리기로 하자.
아, 물론 이건 제대로 된 ‘견서사’ 파견 주기가 7년이라는 거다. 순수하게 장사하려고 가는 무역선에는 파견주기 같은 거 없다. 최대한 빨리, 자주 가는 거다. 배와 선원만 충분히 갖추고 나면 1년에 열 척이라도 보내야지.
– 6 –
“스페인 놈들은 전부 제정신이 아닙니다. 아무리 선교가 중요해도 그렇지, 어찌 위대하신 동양의 대군주 앞에서 그런 예의에 어긋난 망발을 부릴 수 있단 말입니까? 정말이지 미친 게 틀림없습니다.”
베르트랑이라는 프랑스인 신부는 내 앞에서 인사를 마치자마자 가르시아에 대한 맹비난을 퍼부었다. 자신이 입은 검은 신부복은 도미니코회의 흑백 수도복과는 전혀 다르다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그건 좋은데 라틴어를 프랑스어처럼 빠르게 지껄이는 바람에 우리 역관이 쩔쩔매며 진땀을 흘릴 정도였다. 우리한테 프랑스어 통역이 없을까 봐 라틴어가 능숙한 성직자를 사자로 보낸 것까지는 좋은데, 저렇게 빠르게 지껄이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물론 저희도 조선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고 조선인들이 주님의 품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은 할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듯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과정에서는 현지의 풍습을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 교황이 조선의 제사를 인정한 조치 역시 그런 관점에서 나온 결정이라는 주장은 우리 신하들이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했다. 베르트랑 신부는 가르시아와는 달리 우리 대신들의 비위를 잘 맞추면서 매끄럽게 대화를 끌어나갔다.
1차 회견 후 바로 2차 회견을 진행하지 않고서 한참 간격을 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우리도 한 차례 회견이 끝나면 내용을 정리할 필요가 있고, 저들도 딱히 서두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과보고에 2년은 걸리는데 며칠 더 늦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
돌아가야 하는 다른 세 사람과는 달리 조선에 눌러앉을 작정인 롤리는 순서를 정할 때 가장 나중으로 밀렸다. 기나긴 내전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두고 파리를 차지한 일을 축하할 겸 해서 프랑스가 2순위가 되고, 그만한 이벤트가 없는 네덜란드는 3순위가 되었다.
3순위가 된 ‘베토벤’은 별로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순위가 뒤로 밀리자 반기며 요청을 하나 했다. 나와 정식으로 회견하기 전에 부안에 있는 네덜란드인 마을을 방문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듣고, 기꺼이 순서를 다시 조정해서 네덜란드를 맨 뒤로 밀어주었다.
앙리 4세가 파견한 베르트랑 신부와의 회견은 가르시아가 마닐라행 플류트의 선실에 감금된 채로 벽란도를 떠나던 날이었다. 덕분에 양측 모두가 한층 후련한 마음으로 회견에 임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여러분께서 오해하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가톨릭 성직자가 그 정신 나간 스페인인처럼 구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저들은 아메리카에서 힘없는 야만인들을 마구 학살하며 개종을 강요하던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한 겁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붙들고 개종과 죽음 중 선택하라던 스페인 콘키스타도르들의 행각이야 나도 안다. 그러고 보니 프란체스코 피사로가 잉카 제국에 들어가서 황제 아타우알파를 잡아 인질로 삼았을 때, 현장에서 공격명령을 내린 사람도 도미니코회 소속 성직자였지 아마.
영리한 베르트랑 신부는 비난 대상을 ‘스페인 왕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자기 수도회의 세력 확장에만 주력하는 도미니코회와 그런 사악한 자들에게 마구 휘둘리는 무능한 스페인 왕’으로 국한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와 반대되는 태도를 보이는 앙리 4세를 열심히 추켜세웠다.
“저희 국왕께서는 모든 종파가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원하십니다. 프랑스에서는 가톨릭이건, 위그노건 앙리 4세 폐하께 충성하기만 하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스페인처럼 교회가 휘두르는 종교재판의 철권을 염려하지 않고 누구든 평화와 자유를 만끽할 수 있지요.”
지금이야 낭트 칙령 직후니까 당연한 일이겠지. 루이 14세가 낭트 칙령을 폐지한 게 80년 정도 뒤였던가? 그래도 지금 시대에는 프랑스가 스페인보다는 종교적으로 숨통을 좀 터준 건 사실이긴 하다. 국가적으로 이단 심판 같은 걸 열지도 않았고.
더구나 프랑스는 자국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놀랄 만큼 유연한 태도를 보여줄 수도 있는 나라다. 합스부르크 왕가를 견제하기 위해 이슬람교도인 오스만 제국과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동맹을 맺었고, 아직 안 일어난 30년 전쟁에서는 가톨릭 국가이면서 신교도 편에 가담했다.
또한 프랑스 왕실은 외부 전교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실제 역사에서 활발히 선교 활동을 펼친 파리 외방전교회는 교회 내에서 프랑스인 사제들을 선발해 만든 조직일 뿐이지, 프랑스 왕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정치적 목적으로 선교한다고 의심할 필요가 적다는 이야기다.
“어떤 종교를 신봉하건, 충성을 서약하기만 하면 신하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프랑스 국왕 역시 나와 같구나.”
“물론입니다. 하지만 다른 공통점도 있습니다.”
뭐가 같다는 거지? 나한테 앙리 4세와 무슨 공통점이 있는지 생각해 보려는데 베르트랑이 한껏 미소를 지으며 그 까닭을 설명했다.
“저희 앙리 폐하께서는 직접 군대를 지휘하여 기즈 가문의 신성동맹군과 스페인군을 연달아 격파하셨습니다. 조선 국왕께서도 북방의 타타르인들과 남방의 일본인들을 상대로 친정하시어 대승을 거두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찌 위대하신 두 군주께서 흡사하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음, 성격이 좀 다르긴 다를 텐데. 앙리 4세는 말 그대로 군대를 ‘지휘’했지만, 나는 상징적 존재로 전선에 나갔을 뿐이다. 물론 전체적인 전국을 살피면서 전략적인 결정은 일부 했으나 전술적인 지휘는 전선에 나서는 장수들에게 일임했다. 어쨌건 전쟁에 나간 건 같긴 하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백성들의 생활과 직접 연관되는 공통점이 또 있습니다.”
“그게 뭔가?”
“닭입니다.”
“닭이라고?”
맹세코 어리둥절해 한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역관이 전하는 말을 들은 신하들 모두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야,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닭이 왜 나와?
“앙리 폐하께서는 오랜 내란과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에게, ‘프랑스의 모든 가정이 매주 일요일이면 닭요리 한 접시쯤은 먹을 수 있게 하겠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조선 국왕께서도 ‘무종 대왕의 닭’이라는 튀긴 닭요리를 백성들한테 보급하신다니, 어찌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이 양반, 객관에서 무종계 좀 대접받고 거기서 무슨 상상의 나래를 펼친 걸까. 조선에서는 닭튀김이 전혀 일반적인 요리가 아니다. 요즘 땅콩이나 섬유용 아마나 목화 재배하는 면적이 대폭 늘면서 식용유 공급이 늘었지만, 기름은 여전히 꽤 비싼 물건이다. 가공도 번거롭다.
아마씨를 압착해서 짜내는 아마인유는 아마씨에 있는 독성 때문에 생으로 먹으면 죽는다. 그래서 짜기 전에 볶아서 독성을 없애야 한다. 면실유는 목화씨에 단단한 껍질이 있어서 먼저 껍질부터 까서 벗겨야 한다. 이것도 시행착오 엄청나게 겪었다.
젠장, 그나마 아마씨유는 서양에서 종자 받아오면서 안전한 기름 채취법도 배운 덕에 별로 곤란을 안 겪었다. 하지만 목화씨 껍질을 대량으로 벗기는 건 어려웠다. 면실유는 아직 세상 어디서도 안 쓰는 기름이라, 껍질 벗기는 법까지 내가 최초로 발명해야 했으니까.
공조에 있는 기술자들에게 현상금까지 내건 결과 겨우 쓸만한 목화씨 까는 기계가 나왔다. 이가 맞물리는 톱니를 판 목제 기둥 두 개를 마주 돌아가게 하고, 그 사이에 솜을 싹 제거한 씨를 붓는다. 갈리고 난 결과물에서 떨어져나온 껍질과 기름기가 풍부한 속을 체로 분리한다.
종자로 쓸 분량을 빼고는 사료로나 쓰던 목화씨까지 기름 채취에 쓰게 되자 식용유 공급은 확실히 그전보다 많이 늘었다. 다만 아직은 아무나 쉽게 튀김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싸지지는 않았고, 그러다 보니 튀기기보다는 삶는 게 아직은 가장 익숙한 요리법이다.
기름을 쓰는 요리를 하더라도 튀김보다는 부침개, 전 쪽이 훨씬 흔하다. 비싼 기름을 적게 소모하면서도 기름 맛을 쉽게 볼 수 있는 조리법인 탓이다.
기름도 기름이지만 닭고기 역시 조선에서 크게 선호하는 고기는 아니다. 토종닭은 자라는 속도가 느린 데다, 풀어 키운 닭은 튀기면 가죽같이 질기다. 그리고 조선에서 가장 선호하는 고기는 뭐니 뭐니 해도 쇠고기와 꿩고기 아닌가. 닭의 가치는 고기보다 계란에 더 있고.
결과적으로 조선에서 아직 어린 연한 닭고기를 튀겨먹을 여유가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된다. 아무래도 이 양반이 조선 식문화를 조금 잘못 알았거나, 의도적으로 내 비위를 맞추고 있거나 둘 중 하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