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65
2부 5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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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뭐라고 해?”
상희는 팔베개를 한 채로 내 이야기를 들었다. 롤리와의 회견이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 알고 싶어 재촉하는 목소리에 피식 웃고 대답해주었다.
“어쩌긴, ‘예,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였지. 지금 롤리 상황에 ‘그건 싫다’라고 거절하고 잉글랜드로 돌아갈 수 있겠어? 웬만큼 나쁜 조건이 아니고서야 수락할 수밖에.”
19세기 조선이 개항을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조선에 처음 들어온 일본 공사관은 서대문 밖 청수관에 있었다. 그 뒤에 들어온 공관들이야 도성 안에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거야 대한제국 측에서 거부할 능력이 없었던 탓이니까.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서양 열강에게 북경에 공관을 설치하고 외교관을 주재시켜도 좋다고 청나라 정부가 허락한 건 2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해 베이징 조약을 맺은 후였다.
“사실 롤리를 쫓아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 처음 우리랑 접촉했을 때부터 친해지려고 애 많이 쓴 건 나도 아니까. 셰익스피어 작품도 구해다 주고 말이지.”
물론 롤리가 처음 보내온 건 희곡이 아니라 시집이었지만, 그거야 뭐 고의는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수완이 좋아도 원작자가 써놓지도 않은 작품을 구해올 재주는 없지 않겠는가.
“종교 문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랑 하느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어. 자기는 절대 조선에서 개신교 선교 안 하겠대. 본국에서 선교사 불러오지도 않을 거고. 개신교 금교(禁敎)에 관한 법은 지킬 테니 자기와 자기 가족이 집안에서 영국 국교회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만 허용해 달라더군.”
집안에서 가족들끼리만 드리겠다는 예배까지 못 보게 할 이유는 없다. 금지해 봐야 몰래 할 텐데, 공연히 서로 감정만 상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상희도 그 점에서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건 좋은데, 스페인에서 화낼 것 같다. 자기들은 안 된다고 하면서 영국 외교사절은 여기 머물러도 좋다고 허락했잖아.”
“스페인이 상주공관을 두게 해달라는 정도 부탁만 했으면 아마 조정에서도 다 찬성했을걸. 그런데 하필 그런 정신 나간 광신자를 보내서 도발을 걸어댔으니 전부 폭발했지.”
가르시아 일당은 지금 마닐라를 향해 가고 있겠지. 짜디짠 조선간장에 조밥만 열흘쯤 먹고 있을 테니 아마 지금은 반쯤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겠다. 객사에 감금되고 처음 사흘 동안은 아예 한 입도 안 먹었던가? 그래도 간장은 따로 종지에 담아줬다. 밥에 비벼주진 않았다고.
“상징적으로야 도성 인근에 대사관을 두고 싶겠지만, 실제적인 이득으로 보면 벽란도가 더 낫지. 롤리 본인한테도 말이야.”
윤두수가 지적했듯, 제대로 외교관 노릇을 하긴 어렵다. 롤리 자신도 돈을 버는 게 급하다. 그럴 거라면 교역 중심지인 벽란도에 머무르는 편이 도성에 오는 것보다 훨씬 낫다. 실제적인 도움을 받기에도 현저히 유리하다. 벽란도에 정착한 선배(?)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이미 언급했듯, 2차 견서사 때 건너온 제임스 앨런비는 스코틀랜드인이라 잉글랜드를 무척 싫어한다. 하지만 곧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좌에 오를 예정이고 보면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롤리랑 싸우지는 않을 거다. 이미 나를 알현하는 준비도 도와주지 않았는가.
앨런비는 롤리의 장사에 협력할 뿐만 아니라 정착도 도와줄 거다. 송방과 협력해서 공관 겸 상관으로 사용할 집도 구해줄 수 있고, 교역에 필요한 자본도 대줄 수 있겠지. 요즘 중국으로 가는 교역선에 투자해서 은행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도성에는 영어가 제대로 통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함께 데려온 영국인들도 도성이 아니라 동래 쪽에 정착할 예정이니 더더욱 어울릴 상대가 없다.
“스코틀랜드 용병들은 내금위에 편입해서 서울에 정착하잖아? 그 사람들도 말동무쯤은 해줄 수 있을 거 아냐.”
“그 하이랜더들, 대장 말고는 영어 하나도 못하더라. 대장은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까지 다 하지만 부하들은 자기네 스코틀랜드 말밖에 모르던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용병들의 대장인 ‘맥클로스키’라는 자는 자기네 말을 ‘아일랜드어’라고 불렀다. 스코틀랜드 토착어는 ‘게일어’ 아닌가? 웬 아일랜드? 어쨌건 영어는 아니다.
“걔들은 조선에 눌러앉는다고 그런지 오면서 조선말도 꽤 열심히 배웠더라. 그런데 안위가 가르쳐서 그런지 어째 말투들이 좀 장난스러워.”
다들 무기를 드는 게 익숙하고, 체구도 조선인보다 큰 편이라서 좌우에 거느리고 다니면 꽤 위풍당당한 분위기가 난다. 게다가 갖가지 색깔의 눈과 머리카락까지, 조선인과는 전혀 다른 외모를 가졌기에 더 그렇다.
보병인 이들 40명에게도 남만갑을 입혀서 프랑스인 맹서군 20기와 함께 거느리고 거리를 행진해 보았다. 정말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래서 효종이 하멜 일행을 호위병으로 썼구나 싶더라고. 아무래도 위세가 다르니까.”
외국인이라면 펠리페 2세가 보내준 무어인이나 나레쑤언이 보내준 태국인도 있다. 하지만 이들을 근위병으로 쓸 생각은 이제까지 해본 적이 없었다. 분명히 이국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목마장과 궁궐 부엌에서 더 쓸모가 있는 자들을 굳이 병영에 처박을 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저거 재미있어? 중세영어일 텐데 용케도 읽네.”
내가 책상 위에 펼쳐진 책을 가리키자 상희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침소에 들어오기 전에 읽고 있던, 셰익스피어가 직접 필사한 『한여름 밤의 꿈』이 중간쯤에서 펼쳐놓은 채로 그대로 있었다. 그 옆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둘이 야식으로 먹다가 남긴 족발 접시가 놓여 있다.
“그래, 셰익스피어 시대 영어니까 사실 못 읽어야 정상이지. 쓰는 것도 못 쓰겠거든. 그런데 일단 눈으로 읽고 난 다음에 머릿속으로 되새기면 신기하게도 내용이 내 머릿속에서 이해가 돼. 우리, 이 시대에서 대화가 되잖아? 내 머릿속에서 생각만 해도 그게 대화로 인식되나 봐.”
그래, 우리 둘 다 이쪽 세상에 떨어지자마자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 천녀한테 받은 특혜라면 특혜다. 이 시대 언어로 소통하는 능력. 난 할 수 있는 언어가 조선말 말고는 영어뿐이지만, 상희는 일본어도 가능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외국어 공부를 좀 하긴 해야 하는데…이번 생애까지야 괜찮지만, 다음에 각성했을 때 처지를 생각하면 불안하다. 그 시대에는 임금이 갖추어야 할 교양으로 라틴어와 프랑스어, 미적분이 추가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차라리 아예 어릴 때 눈을 뜨면 배우기나 자연스럽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임금이 바보가 되었다’는 눈총을 또 받게 된다면 견디기 힘들 것 같다. 그런 취급은 연산군으로 눈 떴을 때 3년 동안 겪었으면 충분하다. 절대로 반복하고 싶지 않다.
“너무 심각하게 걱정하지 마. 그러다 천녀가 ‘그런 걱정 안 하게 해줄게’ 하면서 남태평양에 보내서 섬나라 추장 같은 거로 전생시키면 어쩌려고.”
내 긴장을 풀어주고 싶은지 상희가 농담을 건넸다. 웃기는 했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 망할 천녀가 나랑 상희한테 저지른 짓을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 걸 봤는지 상희가 화제를 돌렸다.
“다점 옆에 상설극장 하나 세울까 봐. 영국인들 동래로 떠나기 전에, 목수들 시켜서 영국식 극장 하나 짓게 해도 돼?”
“품삯만 챙겨준다면야 안될 거 없지. 설마 거기서 셰익스피어라도 공연하려고?”
난 농담이었다. 하지만 상희는 농담이 아니었다.
“대본만 준비된다면. 배우는 있으니까, 적당히 번안한 대본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조선에 그런 연극을 할 수 있는 배우가 어디 있냐는 내 질문에 대한 상희의 답은 간단했다.
“내 전력 잊었어? 남사당패 재주꾼들 동원하면 돼. 남사당패도 짧은 촌극 같은 건 상연하니 셰익스피어 공연도 못 할 리 없어. 물론 그대로는 안 되고, 적당히 고친 대본을 줘야지.”
그건 확실히 그렇겠다. 아직 판소리나 탈춤이 체계화되지는 않았지만, 떠돌아다니는 사당패 공연은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나도 암행을 나갔다가 마주치면 가끔 구경하곤 한다. 상희를 처음 만났을 때 생각도 나는, 나름 추억어린 구경거리다.
“그럼 대본 고쳐 쓰는 건 내가 허균한테 시켜 보지. 마침 반촌이 대학로 자리니까, 거기에 극장을 지으면 재미있기는 하겠다. 우리 둘밖엔 알아보지 못할 재미지만.”
다점에 커피 마시러 왔다가 연극 공연을…아니, 공연 보러 왔다가 공연을 평가하면서 차 한 잔씩 마시는 문화가 생길 수도 있겠다. 잠깐, 그러자면 커피만 가지고는 아쉬울 것 같은데.
“당연히 아쉽겠지. 그래서 추가사업 생각하고 있어. 그건 다음에 올 때 설명해 줄게. 오늘은 많이 늦었고 간만에 힘도 세 번이나 쓰셨으니 주무셔야죠, 나이 드신 상감마마?”
하긴, 상희 말대로 쉰이 다가오니까 몸이 쉽게 피로해지긴 한다. 상희가 계획하고 있다는 추가사업이 뭔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오늘은 이만 자는 편이 좋겠다. 내일 있을 ‘베토벤’과의 회견에서 피로한 기색이라도 보이면 좋을 게 없으니까.
– 9 –
내 앞에 선 ‘베토벤’ – 베이트호번 대령은 꽤 기분이 좋아 보였다. 호남대로를 거쳐 부안을 왕복하는 여정이 무척 유쾌했던 모양이다. 도중에 있는 모든 역과 원에서 극진히 대접하도록 명을 내려 두었으니, 얼마나 즐겁게 여행을 즐겼겠는가.
“조선에도 유럽에서 타던 수준의 마차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부안에 있는 그대들의 동포가 만든 것이니라.”
조선에도, 중국에도 수레는 있으나 승차감은 유럽제 마차에 비길 게 못 된다. 지금 가도를 달리는 역마차는 거의 부안에 거주하는 네덜란드 마차 제조공의 손을 거친 게 많다. 나중에는 이들에게 기술을 배운 조선인 공장(工匠)들이 스스로 생산할 수 있으리라.
“국왕께서 저희 동포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천여 명이나 되는 동포가 잘 정비된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음을 제 눈으로 확인했으니, 본국으로 돌아가면 총독님께 확실히 보고드리겠습니다. 조선은 저희의 우호국이라고요.”
잉글랜드도, 프랑스도 저 말을 잊지 않았다. 당연히 그 뒤에 따라오는 제안도 다 비슷했다. ‘합스부르크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을 제안했다. 네덜란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페인은 끝이 없는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미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버릴 줄을 모르지요. 마치 병 속의 열매를 잔뜩 움켜쥔 채 손아귀를 풀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말입니다.”
“손만 풀면 병에서 손을 뺄 수 있는데 빼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스페인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런 돌직구를 던지는 건 역시 세 나라 중 네덜란드가 가장 격하게 스페인과 충돌하고 있는 탓이리라. 영국은 아무래도 바다에서만 싸우고 있다 보니 긴장감이 덜하고, 프랑스는 최근에 스페인과 평화조약을 맺었으니 말이다.
“스페인군이 유럽 최강이라고 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럽 최강이 아니라 세계 최강의 군대라 해도 급료와 식량이 지급되지 않으면 싸울 수 없습니다. 스페인의 재정은 거의 파산에 직면한 상태로, 급료는 수시로 체불되며 군량 공급은 여차하면 끊깁니다.”
“펠리페 국왕이 가진 영토가 얼마나 넓은지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전왕인 펠리페 2세 때도 몇 차례나 파산선언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포기할 부분을 빨리 깨닫고 버려야 하는데 저들은 전혀 영리하게 굴 줄 모릅니다. 저희로서는 그 멍청이들이 더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때까지 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쓰러지지 않을 테니까요.”
대령은 네덜란드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네덜란드는 발달한 상공업으로 전쟁 중에도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덕분에 스페인처럼 전비가 부족해져 곤란에 빠질 일은 없다는 거였다.
“심지어 스페인 정부가 저희 네덜란드의 은행에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저희가 재정적으로 안정되어 있음은 전 유럽에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는 이덕형의 보증이 있었다. 이덕형은 1년 이상 유럽에 머무는 동안 유럽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한 상세히 파악해서 돌아왔다. 스페인 정부가 적국인 네덜란드에서까지 돈을 구하느라 필사적이라는 건 사실이었다.
“스페인 육군은 강력하지만, 저희 본국에 즐비하게 늘어선 도시와 요새를 모두 점령하기엔 힘이 부족합니다. 해군 역시 우리 본국을 봉쇄하지도 못하며, 우리 배들이 스페인과 포르투갈 연해를 지나 인도양을 거쳐 태평양으로 오는 길도 막지 못합니다.”
아프리카, 인도양 일대는 엄밀하게 말하면 스페인이 아니라 포르투갈의 영역이다. 본래가 스페인과는 다른 나라지만, 지금은 동군연합(同君聯合) 상태인지라 같은 왕 아래 있으니 협력해야만 한다. 즉, 스페인과 전쟁 중인 나라 선박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
정치 외에 상업적으로도 포르투갈인들에게는 경쟁자인 네덜란드 상선을 막아야 할 이유가 있다. 독점하고 있는 항로에 끼어드는 자가 자꾸 생기면 원래 주인이 거둬들이는 수익이 대폭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배들은 자유롭게 아시아를 왕래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우수한 배와 항해술, 지리적 지식입니다.”
스페인 군함과 바다에서 마주친다 해도 빠른 속도로 도주하면 그만이다. 아프리카 연안에는 배 몇 척 정도 숨어들 포구가 얼마든지 있고, 네덜란드인들은 이런 장소를 찾아 물과 식량을 보급하며 은밀히 동방을 향한다. 그리고 값비싼 상품을 잔뜩 싣고 유럽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전 유럽 상인들이 저희 상품을 사들이기 위해 모여듭니다. 이런 풍부한 자금원이 있는 이상 저희는 절대 지지 않습니다. 국왕께서도 이기는 쪽 말에다 돈을 거시는 편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실 것이라고 감히 진언하는 바입니다.”
대령의 요구는 명확했다. 네덜란드 편에 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제안이 들어왔다 해서 선뜻 응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귀국이 스페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리라는 예상은 나 역시 하고 있다. 두 나라의 사정을 확실히 안다면 누구든 그런 판정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그 전쟁에 우리가 끼어들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얻는 것 없이 싸움에 나선다면 우리 백성들의 원망만 커질 일이다.”
굳이 베이트호번 대령 앞에서 ‘사불가론’을 털어놓으며 우리 사정을 다 드러낼 필요는 없다. 10년이나 이어진 전쟁을 최근에 겨우 끝냈고, 흉년으로 크게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이 완전히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정도면 족했다.
“저희 총독께서도 희생만 크게 치르고 이득을 얻지 못하는 전쟁에 조선을 끌어넣을 생각은 없으십니다. 필리핀 공략이 조선에는 큰 비용을 치르게 하면서 저희에게는 무용지물임도 알고 계십니다.”
필리핀 수비군은 워낙 소규모인 데다 필리핀에 못 박혀 있을 수밖에 없는 병력이다. 그래서 전멸하더라도 스페인 본국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 아니다.
게다가 본국에서 너무 멀기 때문에 패전 소식이 본국에 도착하고 구원병을 파견할지 논의를 거쳐 실제로 병력이 출동하기까지도 아주 오래 걸릴 게 뻔하다. 게다가 스페인이라고 조선의 전력을 모르는 게 아니니, 여차하면 그냥 필리핀을 포기하고 말아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국왕께서 저희를 돕고자 하신다면 굳이 군대는 동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에 유럽에 보낼 교역품을 마닐라 갈레온 대신에 저희 교역선에 실어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곧 저희가 새로 조직한 동인도회사 배들이 조선에 당도할 겁니다.”
스페인을 노골적으로 적대하지 않으면서 네덜란드와 끈을 만들자는 제안이라…이거 괜찮은 것 같은데. 한번 받아들여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