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68
2부 546화
– 14 –
“태풍철이 완전히 지나간 뒤에 그대들이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저희도 그러고 싶사오나, 어서 돌아가서 조선에 관해 보고를 올려야 하니 어쩌겠습니까.”
경회루에서 여는 잔치는 준비가 늦어지다가 그만 본의 아니게 서양 사신단을 위한 송별연이 되었다. 롤리야 조선에 눌러앉지만, 베르트랑과 ‘베토벤’은 유럽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돌아가는 배편은 프랑스 배 1척, 잉글랜드 배 6척, 우리 교역선 1척이다. 우리 배는 상품만 운반하는 게 아니라 네덜란드 사절단을 본국으로 데려가는 역할까지 맡는다. 가르시아가 벌인 무례한 행동을 펠리페 3세에게 항의하는 서한도 이 배편으로 일단 보내기로 했다.
“기왕이면 올 때처럼 함께 가는 편이 편리하지 않은가? 잉글랜드 선단만 굳이 따로 움직일 필요는 없지 싶은데.”
“저희 잉글랜드 항해사들도 솜씨가 네덜란드 항해사 못지않습니다. 올 때야 항로를 몰라서 뒤를 따라왔지만, 온 길 그대로 돌아가는 거라면 저희끼리도 갈 수 있습니다. 대선단이 함께 움직이려면 이래저래 불편한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니, 따로 가겠습니다.”
이놈들 태풍이 불어오는 동아시아의 여름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모양인데. 물론 6월이면 동중국해 쪽 태풍은 일단 가라앉는 계절이고, 설사 바다 한가운데서 태풍을 만나더라도 모든 배가 침몰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뭔가 다른 의도가 있어 보인다.
“혹시 십여 년 전에 귀국의 드레이크 경이 그랬듯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평화로운 항해라고 공표한 다음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상대로 해적질을 벌일 생각인 것은 아니겠지?”
“하하,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상황이 전혀 다른 것을요.”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1577년에 함대 5척으로 세계를 일주하는 약탈여행을 나섰을 때, 공식 출항 사유는 ‘미지의 남방대륙 탐험’이었다. 그리고는 습격을 예상하지 않고 있던 태평양 연안 스페인 식민지들을 약탈하여 30만 파운드가 넘는 재보를 노략질했다고 들었다.
어쩌면 롤리도 비슷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까? 마닐라를 공격해서 약탈하고 필리핀 일대의 스페인 선박을 습격하려고 일부러 따로 움직이는 건 아닌가?
“국왕께서 걱정하시는 바는 이해합니다만,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그 재보를 주로 얻습니다. 마닐라에는 별다른 보물도 없지요.”
마닐라는 가난한 동네가 맞긴 하다. 금을 조금 캔다고 했던 것 같긴 하지만 아직은 금보다 구리만 나온다고 했지 싶은데. 자체적으로 뭔가 생산하기보다는 멕시코와 중국 사이를 오가는 마닐라 갈레온의 터미널 역할이 더 큰 곳이다. 잠깐만, 마닐라 갈레온?
이 해적 놈들, 혹시 인도양을 거쳐서 귀국하는 대신에 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멕시코부터 페루까지 태평양 연안 스페인 식민지를 싹 훑을 계획인 건 아닐까? 20년 전 드레이크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했던 것처럼?
만약 잉글랜드 선단이 귀환길에 태평양 연안 스페인 식민지를 휩쓴다면 나도 손해다. 내가 직접 싸움에 말려들 일이야 없지만, 마닐라 갈레온 출항이 중단되면 당연히 교역에서 거두는 수입이 줄어든다. 명나라 역시 마찬가지 타격을 받는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지금 한참 스페인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게다가 오늘만 살고 내일을 모르는 전형적인 저 해적 놈들이, 과연 그런 우리 사정을 배려해서 스페인령 약탈을 포기하고 고이 본국으로 돌아갈까?
“국왕께서 걱정하시는 바는 이해하나, 저희는 지금 스페인을 공격할 의사가 없습니다. 물론 아직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세상 어느 바다에서건 저들에게 타격을 가할 필요는 있으나, 지금 저희 선단은 조선에서 실은 짐부터 어서 본국에 가져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잉글랜드 배들은 동래에 이주민들과 이들의 짐을 내려놓고 돌아와서 지금은 예성강 하구에 정박하고 있다. 이들은 동래에서 도자기 100만 점, 모피 4만 장을 싣고 왔다. 그 옆에 있는 프랑스 배는 최고급 면포 3천 필을 실었다. 양쪽 다 빈 자리에는 차를 채웠다.
세 차례 견서사에서 매번 차는 다른 상품의 완충재이면서 또 활력을 주는 신기한 음료로도 소개되었다. 이젠 차를 찾는 고객도 나오기 시작했고, 충분히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다.
값비싼 화물을 이만큼 실었으면 공연히 엉뚱한 짓을 벌이기보다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는 게 상례다. 하지만 인간이란 얼마든지 정신 나간 짓을 벌일 수 있는 존재다. 아무래도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단지, 8척이나 되는 배가 함대를 이루어 함께 움직이기가 쉽지 않으니 서로 편하게 가자는 것뿐입니다. 올 때와는 달리 저희도 항로를 확실히 익혔으니까요. 행여 저희 때문에 스페인과 사이가 더 나빠지지 않을까 같은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롤리야 그럴 의사가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귀환길에 나서는 선장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느냐가 문제 아닌가.
“뱃길이란, 여러 척이 함께 출발해도 도중에 흩어져 따로 도착하기 일쑤입니다. 국왕께서는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베르트랑 신부가 위로를 건넸다. 이 양반은 진짜 이번에 외교 한번 제대로 했다. 조선에서 프랑스 이미지 확 띄워놓고 가니까.
조선말은 서툴러도 조정 중신들이나 종친들과 꽤 여러 번 만나서 인맥도 두루두루 쌓았다. 앙리 4세가 예수회를 싫어해서 거리를 둔다더니 얼마 안 가서 예수회 선교사들하고도 긴밀히 오가면서 잘만 지냈다. 조선인들과 만날 때 예수회 선교사가 동석해서 통역해줄 정도였다.
베르트랑 신부는 국내 정치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필요에 따른 타협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 아마 리슐리외 추기경이 젊을 때 저러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그 양반도 지금 한참 젊은 나이겠네. 지금 몇 살이나 됐으려나.
“조선군도 숙련도가 제법 높더군요. 스페인 테르시오와 정면으로 창을 맞댄다면 상대하기가 아직은 어렵겠으나, 사격전으로 제압한 이후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들 합니다.”
“그렇겠지. 우리 조선은 예로부터 멀리서 활과 포를 쏘아 적을 제압하는데 능하였다.”
‘베토벤’ 대령은 훈련도감과 강무관에서 우리 장졸들을 교육하는 네덜란드 고문관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두 달 전부터 시작한 강습은 상당히 원활한 진도를 보이는 중이다.
의외지만 양측 사이의 의사소통은 스페인어로 하고 있다. 네덜란드 교관단이 아직 조선어가 능숙하지 못하고, 조선에서 네덜란드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탓이다.
“스페인 교관들과의 갈등은 없는가?”
“본국에서였다면야 싸웠겠지만…여기는 조선이니까요. 사이가 좋다고 할 수는 없으나, 먼저 임관한 선임자로 간주하여 존중하고 있습니다.”
거짓말. 네덜란드 장교들이 스페인군 실력 은근히 깎아내리고 뒤에서 험담하는 거 다 안다. 금위사가 허수아비인 줄 아나.
나도 장차 신전술의 대세는 네덜란드라고 생각했기에 그쪽에서 교관단을 고용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미 10년 넘게 조선에 머무르면서 사실상 내 충실한 신하가 되어 봉직하는 스페인인 교관들을 토사구팽하고 숙청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가르시아 수사의 망발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는 선왕이신 펠리페 2세 폐하께서 품으신 뜻을 도리어 모욕하는 행동입니다. 그런 자를 사신으로 파견하다니, 본국 궁정은 지금 간신배들로 가득한 게 분명합니다!’
내게 대한 스페인 교관들의 태도는 로드리고의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펠리페 2세가 그들을 여기에 보낸 이상, 그 명을 충실히 따르는 게 충성인 것이다.
새 왕이 부왕의 유지를 제대로 따르지 않고서 멋대로 군다면, 선왕의 뜻을 받들어 반기를 드는 것도 일종의 충성이다. 충성의 대상이 국가가 아니라 국왕이라는 개인일 경우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저들은 십 년 이상 내 신하로 봉직하면서 우리 조선군을 강화한 주역 중 하나다. 그대들이 선임자에 대한 존경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행여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이르겠습니다.”
‘베토벤’은 별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 최소한 겉으로라도 상대를 존중하라고. 대놓고 까불다가 충돌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난 의리 때문에라도 스페인 출신 교관들 편을 들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그 조선식 머리 땋기…상투라고 하는 그것은 없앨 수 없습니까? 적어도 군인들에게만이라도 머리를 짧게 자르도록 허용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유럽 군사들처럼 머리를 짧게 깎지는 않으나, 지금도 군사나 장수들은 예전과 비하면 매우 상투를 작게 튼다. 투구를 조금만 높게 만들면 되는 것을, 옛 조상의 습속을 함부로 없애기는 어렵다.”
을미동정 때 결의를 다지기 위해 군사들에게 머리카락을 잘라 유품으로 남기게 하고 남은 머리만 가지고 상투를 트니 상투가 무척 작아졌었다. 아무래도 상투는 작을수록 관리하기 더 편하게 마련이라, 그 뒤로도 각 군영에서는 작은 상투가 표준이 되었다.
이 상태로 시간이 더 흐르면 아예 상투를 잘라버리는 것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조선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구한말 단발령처럼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단발을 선택한다는 조건이 붙은 연후에 말이다.
“그대의 잔이 비었구나. 자, 들라. 70년이나 묵었다고 하는 사천의 명주니라.”
“감사합니다. 국왕께서 내리신 이 술의 맛을 잊지 않겠습니다.”
술잔이 오가면서 분위기가 흥겨워지자 나와 서양인들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기가 조심스러워 지켜보기만 하던 신하들도 입을 열어서 이것저것 화제를 꺼내기 시작했다. 장악원 가희들의 춤과 노래가 더해지자 경회루 위는 완연한 잔치 분위기가 되었다.
앞으로는 이렇게 여러 나라에서 보낸 사절이 한꺼번에 오는 일은 없으리라. 아니, 과연 내 이번 생에서 유럽 사신을 또 만날 날이 있기는 할지부터 확신이 없다. 열흘 뒤면 이들도 모두 떠날 테니, 있는 동안 즐기도록 하자.
– 15 –
예성강 앞바다를 메우고 있던 갈레온 8척이 일시에 빠져나가자 무척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내 체통도 있고 하니까 개성까지 가서 배웅하지는 않았지만, 따로 강화도에 가서 서양인들이 떠나는 모습을 망원경으로 보기는 했다. 궁궐로 돌아와 이덕형을 불렀다.
“어떤가, 우상. 또 가고 싶지는 않은가?”
“세 번이면 충분하옵니다.”
그래, 몇 년씩 걸리는 유럽 파견을 3번이나 보내 놓고 또 가라고 하면 이덕형이 사직해도 내가 할 말이 없지. 세 차례 견서사 기간을 다 합산하면 이덕형이 조선을 떠나 있었던 기간은 12년을 거의 채운다. 여기에 덤으로 명나라와 일본에도 다녀왔다.
이덕형의 나이가 올해 만으로 딱 마흔이니, 아주 어릴 때를 빼고 전 인생의 ⅓을 해외에서 보낸 셈이다. 과거에 급제한 경진년(1580) 이후로만 따지면 더 심하다. 국내에서 벼슬에 있던 기간보다 국외에서 일한 기간이 50%나 더 길다.
이덕형과 함께 견서사 3번을 간 사람은 선원이나 역관까지 탈탈 털어도 6명이 안 된다. 다 한두 번씩은 쉬었다. 아니면 죽었거나. 그만큼 이덕형이 고생을 많이 한 셈이다.
“그래도 이번 견서사는 할만하지 않았는가? 숙부인도 함께 다녀왔으니.”
“송구하옵니다.”
이덕형의 얼굴이 빨개졌다. 에휴, 둘이 가서 넷이 올 줄은 내가 또 몰랐지. 아들을 임신한 것도 숨기고 배를 탔던 롤리타는 오는 길에 또 배 위에서 딸을 낳았다. 귀족 아가씨답지 않게 아주 건강한 체질을 타고났는지, 그런 여행을 하고서도 산모도 아이도 팔팔하다.
“숙부인을 견서사에 동행시켜서 그대도 좋았겠지만, 우리 조정으로서도 무척 좋은 효과를 보았다. 보통 소식을 전할 수 없는 규방에 우리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무척 상세하게 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베갯머리 송사보다 강한 건 없다.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다른 관심사를 갖고 있게 마련이고, 롤리타는 그 틈을 아주 잘 파고들어 주었다. 꾸미는 기색 없이 자연스럽고 천진하게 조선이란 어떤 나라인지 보여주는 것, 롤리타의 역할은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 파주 땅에 간 토적사만 돌아오면 밖에 나간 이들이 모두 돌아온다. 그러면 이제 모두 평화를 만끽하며 우리 자신을 돌볼 수 있으리라.”
며칠 전에 도착한 장계를 보니, 궁지에 몰린 양응룡은 두 첩과 함께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한다. 우리가 잡아서 목을 베었어야 만력제한테 점수를 더 땄을 텐데, 좀 아쉽다.
반란이 완전히 진압된 덕분에 이제 우리 군사들도 귀환할 수 있게 되었다. 사천에 간 우리 수군 파견대와 오공충이 동원한 상선들이 열심히 장강을 오르내리면서 우리 군사들과 포로들, 군마와 병기 등등을 주산진으로 모으고 있다. 검역 때문에 40일은 거기 머무를 거다.
군사들은 검역이 끝나는 대로 순차적으로 본국으로 귀환할 예정이다. 왜병들에게도 상으로 주는 노비를 우리 군사들에게는 못 줘서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천자를 위한 봉사였으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고 하고, 늘 그랬듯 저화라도 쥐여주는 수밖에.
“양인들 말이다. 저들이 싣고 가는 곶감과 건대추가 도중에 떨어지지 말아야 할 터인데.”
“분명히 떨어질 것이옵니다. 그러면 도중에 채소와 과일을 구해 먹고, 정 안 되면 녹차라도 타서 마시는 수밖에 없겠지요.”
곶감과 건대추는 그저 군것질거리로 싣는 게 아니다. 괴혈병을 막기 위한 예방약으로 싣는 거다. 문제는 약이라기에는 맛이 너무 좋아서 훔쳐먹는 놈이 꼭 나온다는 데 있었다. 이덕형 역시 왕복하는 도중에 대추가 떨어져서 잇몸에서 피가 흐르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바다 한가운데라 채소도 구할 수 없으니, 생각다 못해 끓여 식힌 물에 가지고 있던 찻잎을 우려서 그냥 마셨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하게도 잇몸에 생긴 부기가 가라앉았습니다. 실로 신묘한 일이었습니다.”
녹차에 그렇게 비타민C가 풍부한 줄은 몰랐다. 괴혈병 치료제로 레몬주스 대신 싣고 다니게 해도 되지 않을까? 조선에는 레몬은 없지만, 녹차는 있으니까. 녹차 자체가 비싼 상품이라는 문제가 걸리기는 하는데, 어디 사람 목숨값이 차 한 상자만 못할까.
웬만한 사람들은 아는 일이지만, 지금 시대에 항해를 나갈 때 통에 담아가는 물은 얼마 못 가서 썩는다. 그래서 대항해시대 뱃사람들은 물보다 술을 더 많이 싣고 다니고 물 대신 술을 마셨다. 상한 물을 소독하기 위해서 독한 술을 타서 마시기도 했다.
이건 유럽인들이 유독 술고래여서가 아니라 기술적인 한계에서 비롯된 일이라, 우리 배들도 물 대신 술을 잔뜩 싣고 나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덕형은 술을 별로 즐기지 않았고, 롤리타가 술을 마시기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 전용으로 따로 녹차를 가져갔었다.
“더러운 물을 마시지 않으려고 가져간 차가 괴혈병을 낫게 하였으니 참으로 하늘이 내려준 복이었습니다. 선의를 시켜 병에 걸린 선인(船人)들에게 먹이며 관찰해보니, 뜨거운 물로 달인 차는 효험이 없고 찬물에 천천히 우린 차만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또한 묘한 일입니다.”
“내 의학은 잘 모른다만, 뜨거운 열이 찻잎에 든 생기를 멸하는 탓이 아니겠느냐?”
녹차에 든 비타민C가 열에 파괴되니까 그런 거겠지, 뭐 다른 이유가 있으려고. 내의원에다 시키면 한의학 이론에 따른 이론적인 근거를 만들어줄 거다. 실제 과학적 사실과 부합하지는 않겠지만, 현재 시점에서 통하려면 그게 더 낫겠지.
“저들에게도 여차하면 배에 실은 녹차를 아픈 선인에게 먹이라 권하였으나, 받아들여 믿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동의보감을 보낸 일이 아무래도 헛수고가 될 듯하다.”
동의보감을 베네치아에 배송한 장본인이 여기 이덕형이다. 아마 지금도 한참 번역하는 중이 아닐까? 분량이 웬만큼 많아야 말이지.
동의보감 때문에 특별히 의학을 좀 아는 자를 특별히 뽑아 번역요원으로 파견했다. 그래야 제대로 번역이 될 테니 말이다. 헌데 괴혈병 방지를 위한 우리 처방도 안 받아들이는 저놈들 태도를 보니, 거기 실린 처방이라고 과연 신뢰할지 심히 의문스럽다.
뭐, 책을 준 이상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그걸 안 믿는 건 자기들 자유니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 그보다는 곧 귀환할 군사들을 귀가시키고 공을 세운 자들에게 상을 주는 일이나 더 신경 써야겠다. 그리고 사적으로는 내 집안일도.
“이항복이 잘 타일러놓은 모양이니, 진안군이 돌아오면 진지하게 앉아 얘기를 해봐야겠다.”
내 혼잣말은 아무도 듣지 못했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