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7
1부 0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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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선은 농업국가다. 가장 기본적인 산업이 농업이고, 농사를 잘 지어야만 식량도 확보하고 전쟁도 할 수 있다. 다른 산업을 아무리 성장시켜봐야 흉년이 들어 농사가 망하면 소용이 없다. 현대 한국과 달리 식량을 수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흉년을 벗어나려면 치수도 치수지만 근본적으로 농경지가 넓어야 한다. 황무지를 개간해서 농토를 넓히면 식량 생산은 자연히 늘고, 흉년이 들어도 버틸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만 개간 대상이 되는 강가 습지와 해안 갯벌에서는 생태계가 파괴되겠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자연보호는 뭐랄까, 현대에는 엄청 큰 가치를 갖는 일이지만 사방에 그 ‘자연’이 널려 있는 지금 같은 시대에는 솔직히 의식하기 힘든 문제다. 당장 호환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앞에 두고, ‘오백 년 뒤에 호랑이가 멸종할 테니 호랑이 사냥을 금지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진정 자연을 생각하려면 칭기즈 칸의 본을 따라 전 세계 인류를 죽이고 도시와 마을을 불태워야 하니 그럴 수는 없다. 평범한 인간인 나로서는 적당한 선에서 자연을 유지하면서 국가 발전을 추구할 밖에.
“삼남 지방의 각 고을에 조서를 내려 황무지를 새로이 개척한 이는 땅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고 3년간 그 땅에 대한 조세를 면해주겠다고 명하라. 이미 기존의 법이 있기는 하나, 한 번이라도 더 강조해야 땅을 개간하러 나서는 이가 하나라도 더 있을 것이다.”
북방에서는 땅보다는 사람이 부족하니 이런 조치를 강조해 봐야 소용이 없다. 사람을 보낼 궁리라면, 역시 가장 확실한 건 범죄자겠지.
“도망한 노비들을 수색해 잡아들이라는 명은 어찌 되었느냐?”
“각 도에서 추포하는 중이옵니다.”
사람을 재산으로 취급하는 노비제도는 분명히 나쁜 제도다. 하지만 내가 나쁘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간단히 폐지할 수는 없다. 노비를 소유한 자들에게 보상은 어떻게 할 것이며, 그동안 노비가 수행하던 역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해방된 노비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할 것인가?
노비가 없으면 당장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공무원’ 중 상당수가 공노비이고, 국유지 및 관유지를 경작하는 이들도 많은 수가 공노비다. 궁궐 안에 있는 궁녀들도 그 신분은 대개가 관비, 즉 공노비 출신이다. 내수사 소속 노비에 이르러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판국이니 나 한 사람이 노비제도를 나쁘게 생각한다고 해서 노비제도를 철폐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인이 노비를 잔혹하게 대하지 못하게 하고, 공노비에게는 보수와 휴가가 규정대로 주어지도록 살피는 정도였다.
또 한 가지 이점이 있다. 법을 어긴 도망노비들을 잡아서 북방에 보내면 변방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원래 주인들은 이 조치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다.
“전하. 도로 잡아온 노비들을 나라에서 부림은 옳지 않으니, 본래대로 추쇄하여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크옵니다.”
“각하한다. 노비가 도망쳤다 함은, 그 주인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노비를 대함에 있어서 주인이 충분히 은혜를 베풀어 마음으로 충심을 품게 하였다면, 노비가 어찌 그 주인을 떠날 생각을 하였겠느냐? 주인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했으니 마땅한 일이다.”
말이 좋아 은혜고 충심이다. 주인이 아무리 잘해줘도 노비 신세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는 있게 마련이다. 잘해줬으면 노비가 도망가지 않았을 거라는 내 말도 결국 정신드립, 노력드립인 셈이다. 이놈의 성리학 사회가 치는 정신드립이 정말 싫은데, 그걸 내가 써먹고 있으니 참.
“더군다나 도망친 노비를 스스로 붙잡을 노력도 하지 않은 자에게 나라가 나서서 노비를 찾아다 줌은 어불성설이다. 추포한 노비는 평안도나 함경도에 보내 10년 동안 둔전을 경작하게 한 연후에야 원 주인이 찾아갈 수 있도록 한 조치를 유지하라.”
지난 2년 동안 관청에서 붙잡아서 이렇게 북방에 보낸 노비는 ‘겨우’ 6천여 명이다. 분명히 실제 도망노비는 이보다 훨씬 많을 텐데, 주민등록이 전산화된 것도 아니고 하니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지방관들이 도망친 노비를 잡아내는 일에 열성을 보이지 않기도 하고.
“지방관들이 도망노비를 추포하는 일에 열성을 보이지 않음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양민으로 위장한 도망노비를 잡아내면 조세를 낼 이가 줄어들지 않느냐? 그러니 일을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대신에 추노관을 임명하여 각 도를 뒤지게 하면 어떻겠는가?”
“추노관이 팔도를 순회하게 되면 이를 접대하느라 각 고을에 끼치는 민폐가 엄청날 것이옵니다. 또한 진실로 무고한 이를 노비라 하여 강제로 잡아들이는 사례도 줄을 이을 것이니, 전하께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옵소서.”
파평부원군 윤필상이 조용히 간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계획을 접었다. 추노관에게 활동비를 지급하면 민폐는 줄겠지만 어차피 비용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또한 책임량이 있으면 윤필상이 말한 대로 무고한 피해자가 날 테고, 없으면 없는 대로 놀자판을 벌일 공산이 크다.
“알겠다. 하지만 북방에 백성을 사민하는 일은 계속해야 하니, 원하는 자를 모집하는 일은 계속하라. 도망친 노비라 해도 스스로 관에 고하는 자는 10년간 둔전에서 일한 후에 면천하여 양민으로 살게 하여주리라.”
아무리 서울에서 군량을 보내고 병력을 보낸다 해도 결국 중요한 건 일선 지역인 평안도와 함경도 자체가 보유한 경제력이다. 교통 사정이 개떡같은 이상 전시에 필요한 물자를 제때 보낼 수가 없으니 현지에서 생산 및 비축해야 하고, 그러자면 사람이 필요하다.
“전하, 올해 봄으로 계획한 서정을 중단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흉년으로 곡식이 부족한데 원정을 하신다 하면 평안도 군사들이 준비한 군량은 집결지로 가는 도중에 아마 다 먹어버리고 말 것이옵니다.”
그래, 이런 상황이 안 되려면 말이지. 평안도는 결국 작년 벼 수확 직전에 쏟아진 우박 피해를 극복하지 못했다. 벼농사는 결딴이 났고, 다른 농사도 피해가 컸다.
요동을 치려면 가장 유용한 전력이 평안도 토병(土兵)들이다. 북방의 기후와 풍토에 익숙하며, 그동안 국경을 사이에 두고 다퉈온 야인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다. 함경도 병사도 강하긴 하지만 그쪽 병력을 빼오면 두만강 국경이 허술해져버리니.
문제는 흉년이 준 타격 때문에 병력을 동원할 수 없다는 거다. 작년에 평안도에서 수확한 곡식으로는 아무리 계산을 해 봐도 군량이 부족했다. 도성에 있는 곡식을 보내려고 해도 경기도 및 전라도에 필요한 구휼곡을 쓰고 나니 가용 재원이 확 줄었다.
“사신행을 줄여 군비를 확보할 수는 없겠는가?”
조선에서는 매년 3차례 명나라에 사신을 보낸다. 국경을 넘어가면 명나라 측에서 체제비를 부담하지만, 압록강까지는 우리 쪽이 져야 하는 부담이다. 평안도 재정에서 상당 부분이 이 사신들이 오가면서 쓰는 비용으로 나간다.
“대국에서 일찍이 우리 조정에 이르기를, 3년1공만 해도 충분하다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1년3공, 아니 수시로 더 보내고 있으니 이 비용에서 나오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 1년1공을 기본으로 하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사신을 따로 보내도 충분하지 않겠느냐?”
사신이 갈 때는 우리 군사들이, 돌아올 때는 명나라 군대가 호송한다. 이들은 압록강을 건너 의주까지 오는데 이들을 대접하는데 드는 비용도 막대하다. 더구나 이들은 의주 백성들과 사무역도 하는데, 여기에는 요동군 고위 장수들은 물론이고 궁정의 태감들까지 얽혀있었다.
“다행히 갑인년부터 요동군이 호송을 나서지 않아 매년 양곡 1천 석을 절약했다. 허나 올해 들어 저들이 다시 강을 건너오지 않느냐? 우리 군사들이 요동에 갈 때 저들이 꼬박꼬박 요(料)를 지급하는데 우리는 대접에 소홀함도 예가 아니니, 차제에 아예 사행을 줄이도록 하자.”
갑인년은 1494년, ‘내’가 즉위하기 전 해다. 올해는 내 즉위 6년차, 즉 1500년이다. 벌써 시간이 참 많이도 흘렀구나. 난 아직도 미숙하건만.
“매년 보내는 사신의 수는 대국 예부와 협의하여 정한 것이니 우리가 임의로 줄임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신 수를 줄이고자 하면 저들은 필시 그 연유를 물을 것인데, 전하께서는 무어라 답하려 하시옵니까?”
“그야 사신 파견에 드는 비용을 아끼려 한다고 답하면 되지 않겠느냐. 저들도 우리 사신을 영접하는 비용이 줄어드니 싫다하지는 않으리라.”
온갖 스트레스로 피폐해진 내 머리는 평안도에서 나가는 쓸데없는 지출을 줄인다는 단 한 가지 목적에 집착했다. 1년에 서너 번씩 가는 사신 파견을 한 차례로 줄인다면, 관련 지출이 단박에 ¼로 줄어든다. 그만큼 평안도 재정에 여유가 생기고 이는 군사비로 전환할 수 있다.
“전하, 우리 조정이 1년3공을 한다 함은 해내(海內, 중국 본토)의 제후와 같은 대우입니다. 또한 우리 사신이 북경에 도착하면 접대와 호송을 넉넉하고 후하게 하니, 어느 번국도 그만한 황제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그러한 지위를 버릴 까닭이 있겠습니까.”
이조판서 강귀손이 차분하게 내 주장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했다. 명나라가 지배하는 동아시아 국제질서 아래서 조공국으로서 조선이 갖는 정치적 위치에 대한 강조였는데, 지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또한 사행을 줄이면 당연히 대국에서 내리는 사여품도 줄어들 것이니, 조정이 입는 손실을 어찌 메우겠습니까? 또한 나누어 보내던 조공을 한 번에 보내려면 자연히 동원하는 인마의 수가 늘고 이동기간도 늘어나니, 평안도가 부담하는 비용이 그다지 줄지도 않을 것입니다.”
윽, 그 문제가 있구나. 사신들이 이동하면서 쓰는 비용은 평안도 재정이지만 명나라에서 받아오는 사여품은 조정 수입이다. 조선이 자주 사신을 보낸 목적 중 하나도 사여품 획득이다.
게다가 명나라에서 받아오는 물품들은 고급 사치품이 많기 때문에 단순한 돈 문제로 간주할 수도 없다. 이 물품들은 다시 내가 신하들에게 내리는 하사품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즉, 김정은이 수입하는 스위스제 시계나 벤츠 승용차(…)와 정확히 같은 역할인 셈이다.
“사행을 줄이게 되면 조정이 얻는 손실이 매우 큽니다. 근래 들어 대국에서 금은이나 처녀, 환자(宦者)도 요구하지 않고 있으니 조공으로 우리가 온전히 이득을 얻고 있는데, 나서서 줄일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수로를 이용하여 조공토록 하자. 수로를 이용하면 사행에 필요한 기간도 줄일 수 있고 당연히 경비도 적게 소요된다. 수많은 마필을 동원하지 않고도 조공품을 수송할 수 있으니 그 어찌 좋지 않으냐?”
경험이 부족한 조선 뱃사람들이 바로 서해를 가로지르기는 무리일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위험부담을 무릅쓰면서 서해를 직접 건널 필요는 없다. 해안선을 따라 요동반도 끝까지 가서 가장 가까운 중국 본토인 산동으로 간다. 그리고 해안을 따라 천진으로 가면 된다.
“전하, 수로는 위험성이 크옵니다. 행여 배가 난파하면 귀한 생명을 잃을 뿐 아니라 조공까지 못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대국에서 우리가 요동의 치안이 불안하여 오가지 못하겠다고 여긴다고 받아들인다면 필시 불쾌하게 여길 것이옵니다.”
예조판서 이세좌가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음, 이 양반이 내 ‘어머니’인 폐비 윤씨를 사사할 때 사약을 가지고 갔던 사람이지. 원래 역사대로 흘러가면 4년 뒤에 1번 타자로 목이 떨어질 운명이다. 과연 이 세계에서는 어떤 최후를 맞을까.
“충분히 할 수 있는 걱정이다. 허나 숙련된 선인(船人)들을 준비하고 날씨에 주의하면 아무 탈 없이 오갈 수 있다. 먼 바다를 지날 필요도 없이, 연안을 따라 가면 충분하다. 처음에는 사고가 날 수도 있으나, 여러 번 오갈수록 뱃길이 더 익숙해질 테니 사고도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사행으로 오가는 배에 무역품을 실으면 말로 나를 때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로 무역량이 늘어날 수 있다. 예전에 명나라 사신에게 조총을 내주면서 구상했던 무역 계획이 또다시 떠올랐다. 그대로 실현할 수만 있다면!
“예조에서는 다음 사행 편을 보낼 때 명나라 예부에 이 방안을 필히 교섭토록 하라. 저들이 우리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성의를 다해 전해야 한다. 만약 전하지 않거나, 대충 전달하여 무성의한 답을 받아 온다면 용서치 않으리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조선에 오는 명나라 사신도 육로로 온다. 하지만 필요하면 저들도 얼마든지 해로로 사신을 보낼 수 있다. 실제 역사에서도 후금이 일어나 요동을 차지하면서 육로를 차단하자, 조선과 명나라는 해로로 사신을 주고받았다. 사신들의 체제비도 후금 못잖은 위협 아니겠나.
조선 사신단을 수행하면서 사무역으로 이권을 챙기던 요동군 장수들이나 태감들이 반발하리라 예상되긴 한다. 허나 이들의 반발은 아예 대놓고 무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면 해소할 수 있으리라 본다. 무역 활성화는 우리 쪽에도 이득이 되니, 나쁠 거 없는 일이다.
“전하, 평양감사로부터 급보가 도착하였사옵니다!”
“승지는 무슨 일이기에 그리 급히 외치느냐?”
회의 중에 그리 큰 소리를 지르다니, 벌을 받을 일이다. 하지만 동부승지 안윤덕은 크게 당황한 듯 상기된 얼굴로 보고했다.
“명나라 사신이 또 사전 통보 없이 국경을 넘었다 하옵니다! 다만 이번에는 작년처럼 급히 움직이지 않고, 예년과 같이 유람하듯 천천히 내려오고 있다 하옵니다.”
“무엇이라?!”
젠장! 바빠 죽겠는데 그 빌어먹을 자식들은 왜 또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