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70
2부 548화
– 18 –
“주점이라고? 무슨 술을 팔려고?”
“맥주. 호프집 열려고 해. 공연 보고 나온 관객들이 한잔하면서 공연 내용이나 배우 이야기 나누는 장소가 되는 거지. 차 한잔할 사람은 다점에서, 맥주 한잔할 사람은 주점에서.”
“맥주…? 어디서 구하게?”
“부안에서 가져와야지.”
지금 조선에서 맥주를 파는 곳은 부안 일대뿐이다. 전주감영 바로 앞에 맥주를 파는 주막이 들어선 외에 개항장이 들어설 군산과 내강(내달-경강)상단의 중심지인 경강에도 거품이 이는 맥주를 파는 주막이 들어섰다.
맥주는 확실히 부안 일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지역 특산품이 되어 가고 있다. 독하기로만 따진다면야 막걸리랑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지만, 이제까지 조선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었던 ‘거품을 내는 탄산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그 알싸한 느낌은 단연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도성에서도 맥주 맛을 아는 사람들은 꽤 생겼다. 소문을 듣고 강경, 전주까지 가서 맛보고 온 한량들이다. 개인적으로 사서 가져오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은 맥주를 파는 술집은 없다.
일단 맥주를 빚을 줄 아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가격도 절대 싸지 않다. 맥주 한 되에 저화 한 되는 되는데, 쌀과 보리의 가격 차이를 고려해도 비싼 값이다. 여기에 운반비를 추가하면 가격은 더 뛴다. 심지어 내강 상단이 독점한 독점상품이기까지 하다.
“내강 상단에서는 외지에서 맥주 안 팔잖아. 독점가치 유지하고 네덜란드인 인구 분산 안 되게 한다고. 그런데 어떻게 맥주를 조달할 거야? 매번 배로 실어오려고? 운반비가 제법 많이 들 텐데.”
뭐하다면 뭐한 이야기지만, 부안에 있는 네덜란드 공동체는 조선에 동화되어 유럽인으로서 자기들이 갖는 정체성이 소멸하면 어떡하나 하는 문제를 상당히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들은 ‘조선에서 살러’ 건너온 거지 ‘조선인이 되려고’ 건너온 건 아니니까 말이다.
이주할 때 저들이 서약한 내용만 봐도 그렇다. ‘조선 국왕에게 충성하겠다’라고만 약속했지, ‘조선 풍속을 받아들이겠다’라고 하지는 않았다. 종교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네덜란드에서처럼 살 수 있게 해준다는 보장도 우리 쪽에서 분명히 해줬었다.
1천여 명이라고 하면 확실히 많아 보이는 숫자이긴 하다. 그런데 여기서 선원, 상인, 어부, 기술자 등 마을 밖에 나가 있는 숫자를 빼면 상주인구는 크게 줄어든다. 게다가 맥주 양조에 종사하는 인구는 거의 여자들이라, 밖으로 내보내기 불안한 것도 당연하다.
만약에 바깥에 내보내는 사람 숫자를 줄이겠다고 대리점 운영에 현지인(조선인)을 고용하면, 100% 제조법이 유출된다. 내강 상단이 보유하는 독점상품으로서의 맥주의 지위는 흔들리고, 사방에서 짝퉁 맥주가 판을 치게 되리라. 물 탄 말오줌 같은….
나라면 차라리 맥주 빚는 방법을 라이센스 받고 팔고, 정식으로 우리와 계약하지 않은 맥주 양조장은 모조리 특허권 침해로 걸어버리는 쪽을 택할 텐데. 아마 그 누구더라, 내강 상단의 아직 젊은 양반 출신 행수는 그게 현실적이지 않다고 보는 모양이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내강 상단은 자기네 독점상품인 맥주 제조법이 새나가는 것도 막을 겸, 인구 유출도 막을 겸 해서 아예 맥주 양조는 부안에서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디에서 사는 누구건, 맥주가 마시고 싶으면 직접 그쪽으로 가든가 사람을 시켜 사와야 한다.
물론 왕명으로 도성에 와서 맥주를 팔라고 강제하지 못할 건 없다. 하지만 딱히 이런 문제 때문에 권력을 남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본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안 하겠다는데, 그걸 내가 억지로 풀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나야 그냥 사다 마시면 되는걸.
“우리가 개인적으로 마시는 거야 뭐 운반비 붙어도 별 부담 안 되지만, 주점에서 팔 정도면 너무 비싸져서 힘들걸. 그래서 아직도 도성에 맥줏집이 하나도 없는 거고. 그나저나 난데없는 술집은 왜 시작하겠다는 거야?”
상희에게도 돈은 충분히 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재산에, 다점 수익도 짭짤한 편이다. 딱히 돈이 궁하지도 않을 상희가 왜 극장에 술집까지 열려는 걸까?
“애초에 다점을 시작했던 것도 딱히 돈 벌려고 했던 게 아니고 반쯤은 재미로 연 거였잖아. 취미로 경영할 거라면 다점 하나만 해도 충분할 텐데, 갑자기 웬 극장에 호프집이야?”
상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왜 망설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여튼 기다렸다.
“욱이…때문이야.”
“욱이? 걔가 왜?”
내 반문을 받고도 상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한숨을 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욱이는…이제 뭔가 지위를 얻을 수가 없어. 그리고 그 아이가 과연 내 바람대로 의원이 될 생각이 있을지, 본인이 의향이 있다 해도 그만한 능력이 있을지는 몰라. 그럼 그 애의 장래를 위해서 내가 남겨줄 수 있는 건 재산뿐이야.”
“재산은 나도 줄 수 있어. 충분히 한몫 줄 수 있다고.”
“4대 뒤에 종친 신분 상실하면 도로 나라에 바쳐야 하는 그 재산 말이야?”
할 말이 없었다. 종친들이 종친 신분을 상실하면 왕실에서 받은 모든 재산을 도로 반납해야 한다는 법을 제정한 장본인이 바로 나 자신이었으니까. 만들 때야 나랑 인연이라고는 1그램도 없는 밥벌레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서였지만, 이제 내 아들이 그 적용을 받게 된 거다.
진안군 후손들에게만 예외를 적용할 수는 없다. 예외가 하나가 되고 둘이 되다 보면 모두가 그 제약에서 벗어나는 건 시간문제니까.
“아버지인 왕에게 받은 재산은 4대 뒤에 반납해야 하지만, 내가 물려준 재산은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거 맞지? 이 가게 3개만 제대로 가지고 있으면 욱이랑 욱이 자손들이 생활에 곤란을 겪을 일은 없을 거야.”
한양 최초의 극장, 최초의 카페, 최초의 맥줏집…확실히 계속 유지하고 있으면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게 될 것 같기는 하다. 20세기쯤 가서 프랜차이즈만 내줘도 돈을 왕창 긁어모으지 않을까? 하지만 다른 의문도 생겼다. 왜 하필 극장과 술집을 물려주려는 거지?
“조선에서 재산이라고 하면 보통 전답이잖아. 극장이나 술집 같은 걸 가지고 있으면 체통에 어긋난다고 4대 뒤에 종친 지위를 벗고 관로에 나갈 때 사회적으로 백안시당할지도 몰라.”
“만약 필요하면 그때 가서 가게를 팔면 되지. 역사성이 있는 가게니까 프리미엄도 높을걸? 그리고 솔직히 벼슬 그만두고 그냥 사업가로 살아도 돼. 지주랑 다를 거 있어? 지금도 상단에 굴려달라고 돈 맡기는 양반들이 한둘도 아닌데.”
더구나 토지는 면적이 한정되어 있다. 누군가의 몫을 늘리려면 다른 이가 보유하는 토지를 줄이는 수밖에 없고, 진안군에게 토지를 만들어주려고 하면 그 과정에서 누군가 피해를 보게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상희는 그 점을 지적했다.
“극장, 다점, 주점을 가지고 있으면 욱이가 손가락질은 받을지 몰라도 남한테 피해는 안 줘. 그게 욱이한테도 훨씬 안전하지 않아?”
상희가 진안군의 안전 여부를 거론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죽은 뒤에 진안군이 혹시 세자에게 제거할 대상으로 꼽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을 지금 드러낼 생각은 없어서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맥주는 어떻게 할 거야? 부안에서 맥주 항아리를 줄줄이 배에 싣고 오려고?”
조선에서 맥주를 담는 용기는 커다란 항아리다. 영화 같은 데서 많이 보던 나무 술통 쪽이 내게도 더 익숙하긴 하지만, 조선에서는 옹기항아리가 나무통보다 훨씬 싸다. 재사용도 쉽고, 통 자체가 부패할 일도 없는 데다 내용물이 새나갈 위험성도 적다. 깨질 수는 있지만.
항아리가 나무통보다 좋은 결정적인 장점은 제작에 걸리는 시간이다. 나무통은 나무를 몇십 년을 길러서 베고 널빤지를 만든 다음 또 몇 달씩 말려서 통을 짜야 하지만, 항아리는 그런 귀찮은 절차가 필요 없다. 흙으로 빚은 뒤 며칠 말려서 구워내면 바로 쓸 수 있다.
물론 포도주나 위스키를 만들게 되면 숙성용으로는 나무통을 써야겠지. 하지만 맥주 따위에 나무통이 꼭 필요하진 않다. 포도주나 위스키 통에 담아 숙성시키는 맥주 제품이 있었다고는 알고 있지만, 그런 건 현대에 나온 프리미엄 맥주 아닌가?
“아니. 주점에서 직접 빚을 거야.”
“내강 상단을 설득했어? 양조기술자 보내 달라고?”
“그럴 필요 없었어. 내강 상단에 속하지 않으면서 맥주 빚는 법 아는 사람들 있잖아.”
상희가 활짝 웃었다. 거북한 이야기는 끝내버리기로 한 모양이다.
“체코인들. 부안에 사는 체코인이 20호(戶) 조금 안 되지? 그 사람들은 네덜란드인들이랑 힘 안 합치고 자기네끼리 그냥 조용히 살고 있어. 그 사람들 도성으로 이주시키고, 체코 맥주 양조해서 공급해달라고 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야.”
아, 체코인들…워낙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서 그만 잊어버리고 있었다. 체코 남자들이 죄다 광산기술자라서 마을에 잘 붙어 있지를 못하니까, 여자와 아이들만 관아에서 지급하는 물자를 받아 그저 자기들끼리 조용히 살고 있다. 당연히 내강 상단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
“그 사람들은 꼭 부안에 살아야 할 필요도 없었어. 도성에 따로 살게 하면 너무 외로우니까 같은 유럽인들이랑 살라고 부안에 보낸 거잖아. 네덜란드 사람들이야 농사짓고 고기 잡으려고 거기 간 거고.”
하지만 이제는 도성에도 프랑스인 마을이 생겼으니까, 그 옆에서 같이 살면 훨씬 적응하기 쉬울 거다. 1천 명이나 되는 네덜란드인들 사이에서 지내기보다는 프랑스인들 1백 명 옆에서 사는 쪽이 더 지내기도 편할 거고.
“괜찮겠다. 사실 체코인들은 광산 업무 때문에라도 호조를 자주 드나들어야 하니까, 도성에 집이 있는 편이 좋긴 하지. 전부 불러올려야겠네.”
네덜란드인들에게는 ‘너희 2진이 정착할 공간을 마련해주려는 조치’라고라도 말해주는 편이 좋으려나 싶다. 음, 그런데 프랑스인 100명은 전부 남자들뿐인데 체코인들을 이 양반들이랑 이웃하게 해도 괜찮을까? 아무래도 체코 여자들한테 치근덕대느라 난리가 날 것 같은데.
“맥주는 체코 맥주고, 안주는?”
“안주는 평범하게 가야지. 치킨, 소시지, 족발 같은 거. 전부 예전보다는 흔해진 음식들이니 조달하기도 쉽잖아? 피자도 좋을 것 같아. 돼지 통구이 같은 거창한 음식도 괜찮을 거야.”
“피자?! 피자라고?!”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래졌다. 상희가 웃으면서 자기 계획을 이야기했다.
“부안에서 이제 치즈를 꽤 많이 만들잖아. 토핑은 고추, 버섯, 햄, 소시지 같은 거로 얹으면 되겠지? 감자나 고구마를 얹어도 되겠고. 마늘만 얹은 피자도 괜찮을 것 같아. 오븐이야 그 프랑스인 빵장수들한테 시켜서 만들면 되는 거고….”
앙리 4세가 보내준 숙련공 100명 중에는 제빵공이 4명 섞여 있었다. 나는 분명히 대성당을 짓는 데 필요한 기술자들을 보내 달라고 했는데 제빵공이 섞인 걸 보고 처음엔 실수가 아닌가 했다. 벽돌 대신에 바게트를 사용해서 벽을 쌓을 것도 아니잖은가?
그런데 내막을 알고 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그 제빵공들은 성당 건축에 참여할 기술자들이 먹을 빵을 만들기 위해 따라온 인원들이었다. 앙리 4세가 이렇게 세심했다.
과연 똑같은 맛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식 빵 제조법이 이렇게 조선에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피자용 오븐이랑 프랑스식 빵 굽는 오븐이 똑같지야 않겠지만, 못 구울 것도 없겠지?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이민을 데려온 나비효과가 이런 쪽으로 굴러가는구나! 그동안 딱히 아쉬울 건 없어서 잊고 지냈는데, ‘피자’라는 말을 들으니 거의 40년 만에 피자를 먹게 되나 하는 생각에 입에 절로 군침이 돌았다.
한데 모인 극장과 카페와 호프집이라…시대를 500년 앞선 복합공간 출현이군. 기왕 이렇게 나간다면, 극장에서 셰익스피어만 공연할 게 아니라 진짜 사당패나 장악원 가희들이 나오는 공연까지 선보여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그게 더 조선 사람들 눈높이에도 맞을 거다.
“그건 확실히 그럴 거야. 조보에다 광고를 내면 전국적으로도 유명해지겠지. ‘반촌극장’에서 무대에 몇 번이나 올랐느냐가 예인(藝人)들에게는 레벨을 나누는 기준이 될 거고….”
“그래 봐야 신분이 올라가지는 못할 거야. 여전히 천민이겠지.”
“여전히 천민이지만, 더 많은 걸 이룰 수 있어.”
상희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신분제 사회의 굴레를 아예 벗어던지지는 못하지만, 그 굴레를 찬 상태로라도 하늘을 날게 해주고 싶다는 태도가 엿보였다.
“그래, 일단 스타가 되면 신분은 그대로라도 대우가 달라지긴 하지.”
신분상으로는 천민인 기생도 황진이 같은 일패기생은 양반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는다. 장차 극장에서 일하는 배우들도 역할에 따라, 성취에 따라 얼마든지 복록을 누릴 수 있으리라.
– 19 –
마침내 양응룡의 난을 진압하러 출동했던 우리 군사들이 완전히 돌아왔다. 사령부가 포함된 마지막 철수대열이 벽란도에 들어왔다. 2천 명에 달하는 병사와 말들이 당당하게 관서대로를 행진해 도성에 도착, 용산에서 기다리고 있던 병력 8천과 합류했다.
이들이 참석한 개선식은 도성 한가운데서 성대하게 열렸다. 규슈로 돌아간 왜군 외에 의군 중에도 바로 귀향한 군사들이 많다 보니 1만 명만 참가했지만, 이 정도 병사만으로도 광화문 앞에서 남대문까지 일직선으로 뚫어놓은 대로를 가득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육조거리 옆에는 도성 백성들이 빽빽하게 서서 이들의 행렬을 구경했다. 명나라까지 가서 천자를 도와 반적들을 소탕하고 돌아오는 길이니, 돌아온 이들이나 환영하는 이들 모두 한껏 흥이 올라 있었다. 박수와 함성이 도성 하늘을 채웠다.
“옳은 의를 행하는 우리 용사들에게 천지신명께서 함께하셨으니, 1년여에 걸친 고생이 실로 헛되지 않았도다. 우리 군사들은 감히 천자를 거역한 역도들을 토벌하여 천하에 올바른 도를 널리 퍼뜨렸으니, 이 조선의 이름을 이제 누구도 가벼이 보지 못하리라.”
선전관이 우렁차게 외쳤다. 그놈 목소리 참 좋구나.
우리 파견군은 1년 반에 걸친 파병기간 동안 총 4천 명을 잃었다. 전사자가 893명, 병사자 수효가 2천 8백여 명이다. 나머지는 배가 파선하는 등 사고로 죽은 인원들이다. 나머지 병자, 부상자들은 모두 각자의 본향으로 돌아갔다.
전사자는 대남도 토인병들이 가장 많다. 아무래도 갑옷이 허술한 데다, 게릴라전과 정찰을 전담하다시피 하다 보니 충돌도 가장 잦았던 탓이다. 대신 이들에게는 병사자가 거의 없었다. 아주 쌩쌩하게 잘들 돌아다녔다.
왜병들은 왜별기와 왜노병을 불문하고 대열을 갖추고 창병으로 접전에 투입된 경우가 많아 대남도 토인들 다음으로 사상자가 많다. 병사자도 많고.
조선군은 조총수나 궁수, 기병으로 투입된 이들이 다수라서 전사자는 거의 없다. 대신 병에 걸려 죽은 군사 대부분은 조선군이다. 혹시 다음에 또 출병하게 되면, 이번에 군사들의 건강 관리 문제로 겪은 고난을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
“그대와 주요 장수들이 병들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로다.”
“전하께서 염려해주신 덕분이옵니다.”
거의 1년하고도 반년 만에 보는 이항복이다. 검게 탄 얼굴만 봐도 그가 중국대륙을 누비며 얼마나 바쁘게 돌아다녔는지 알 만했다.
“그대들이 천자를 위하여 분투함이 실로 하늘에 닿았으니, 필시 이 조선 땅에 무궁한 복이 내릴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이항복이 손을 들어 뒤에 선 진안군을 가리켰다.
“그동안 보낸 장계에서도 적었지만, 진안군께서는 이번 토벌 기간에 실로 일취월장하시어 장래 나갈 바를 정하셨습니다. 다만 이는 국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적인 일이오니, 나중에 천천히 들으시도록 하옵소서.”
“알겠다.”
당연히 나중에 들어야지. 부자간의 중대사가 아닌가.
다른 장수들이 연달아 앞으로 나오고, 그 공적을 선전관이 소리쳐 알리고 포상이 내려졌다. 공을 세운 군사들에게도 포상이 있었고, 정준석이나 무네시게처럼 외병(外兵)을 거느리고 온 장수들에게도 공에 따라 상이 나갔다.
“그런데 토적사, 저 포장을 씌운 수레는 무엇인가?”
대열 중간에 포장을 씌운 네모난 상자형 수레가 대여섯 대 보였다. 안도 보이지 않아서 그 안에 무엇을 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하께 드릴 특별한 선물입니다. 대령할까요?”
“가져와 보라.”
내 윤허가 떨어지자 이항복이 씩 웃더니 신호를 보냈다. 곧 소가 끄는 수레가 천천히 자기 자리를 떠나 앞으로 나왔다. 이항복이 지시를 내리자. 군사들이 포장을 벗겼다.
“어? 저, 저게?”
입을 딱 벌린 채 미처 말을 잇지 못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신하들도, 도성 백성들도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크게 뜬 눈을 깜박이지 못했다. 생긴 모양은 분명 곰이되, 털 색은 희고 또 검은 저런 짐승은 아무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항복, 저 양반은 도대체 무슨 재주로 판다를 가져온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