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8
1부 0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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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에 고생하시었소.”
“아닙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드디어 명나라 황제가 보낸 칙사 김보(金輔)가 모화관에 들어섰다. 김보는 압록강을 건넌 후 한 달이나 걸려 느긋하게 도성에 들어왔는데, 덕택에 그가 지나는 평안도 각 고을들은 접대를 하느라 죽어났지만 도성에서는 영접 준비를 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오랜만에 고국을 찾으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조선에서 제 일가를 후히 대접해주어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김보는 조선 출신 환관이다. 그가 명나라에서 출세하자 조선에 있던 부친과 형, 조카들도 모두 벼슬을 살았다. 부친 김순복은 명나라에서 출세한 아들 덕분에 성종 시기에 종2품 고위직인 동지중추부사까지 올랐다. 이후 연로하여 사망한지 10년이 좀 넘었다고 알고 있다.
“당연히 해야 할 도리가 아니겠소. 칙사께서 황제께 이 나라를 늘 좋게 말씀해 주시니 그에 보답할 뿐이오.”
이번에 온 칙사들, 정사인 김보와 부사인 이진(李珍) 두 사람은 모두 조선 출신 태감이었다. 아직 명나라가 처녀와 환관을 많이 요구하던 시절에 명나라에 보내졌고, 비교적 순조롭게 출세하여 높은 지위에 올랐다.
명나라도 원나라처럼 조선에 보내는 사신으로 조선 출신 환관들을 보낼 때가 많았다. 이들 역시 여러 번 사신으로 조선에 왔고, 지난번에 내가 성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을 때 즉위를 승인하는 책봉 사절로 온 이도 바로 김보였다.
“지난 5년 동안 전하께서 조선 땅을 무난히 다스리셨음을 황제께서도 익히 알고 계십니다. 남으로 왜적이 준동치 못하게 하고 북으로 야인들이 설치지 못하도록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직 약관의 나이시건만 훌륭히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고 치하하셨습니다.”
어이, 명나라 홍치제도 이제 겨우 서른 살인 거 다 알아. 별로 나이 차이도 안 나는 양반이 어디 남 젊다고 칭찬하고 그래?
“그저 어리고 모르는 것이 많아 부끄러울 뿐이오. 자, 이제 궁으로….”
사실 김보와 이진은 세조 때부터 워낙 자주 사신으로 와서 딱히 예식을 거행하는 장소를 안내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형식은 형식이니 내가 직접 칙서를 전달받을 예식 장소인 경복궁으로 안내했다. 이 인간들 비위를 맞춰 놔야 앞으로 몇 년이 편할 테니까.
『태조께서 나라를 여신 이래로 조선은 대국을 지키는 번신으로써 충의를 다해 왔다. 남방으로는 왜적을 진압하여 대국 해안에 출몰하지 못하게 하였고, 북방으로는 요동의 야인을 진압하여 준동치 못하게 하고 피로인(被擄人)을 구출하여 송환함으로써 신하의 도리를 다하였다. 근년에는 새로이 개발한 병기를 헌상하여 천병(天兵)이 유용하게 사용케 한 바, 그 공을 인정하여 깊이 포상코자 한다. 이에 태감 김보(金輔)를 정사(正使), 이진(李珍)을 부사로 명하여 칙서와 함께 은자(銀子)와 사라(紗羅) 등 물건을 가지고 가서 조선국 왕을 포상하는 것이다. 번방(藩邦)의 직책으로 위를 섬기고 아래를 돌보는 일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왕은 이를 조부 이래 성실하게 실천해 왔다. 지금 황은을 베풀어 물건을 포상으로 내리니, 왕은 짐이 품은 뜻을 깊이 되새겨 앞으로도 좋은 병기를 만들면 기꺼이 헌상토록 하라. 그래야만 대대로 나라를 누리며 선대에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니, 조심할지어다. 그러므로 깨우치는 것이다.』
칙서 내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구였다. 이건 뭐지? 뭐 뜯어가려고 온 게 아니었단 말이야? 나뿐만이 아니었다. 신하들도 당황한 티가 역력했다.
“여기 황제께서 내리시는 하사품 세목이 있습니다.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여러 종류의 비단이 3천 필, 은자가 3천 냥, 산호와 비취?진주 같은 보석이 세 상자입니다.”
세상에.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야? 뭐에 대한 포상? 벼, 병기라고 했지? 그럼, 서, 설마 작년에 보낸 조총 값인가? 겨우 그 멍텅구리 조총 세 자루 값으로 이 막대한 보물을 준 거라고?
“칙사, 과인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소. 과인은 작년에 급하게 온 칙사에게 겨우 병기 세 자루를 건넸을 따름이오. 그 값으로 이리 후한 회사품을 주신단 말씀이오?”
바보 같은 표정을 지은 건 나 하나가 아니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지금 강선을 새긴 조총 한 자루 생산비가 겨우 쌀 5석인데 ? 내 기억으로는 이거보다 쌌던 것 같은데, 강선 새기는 비용 때문에 아무래도 돈이 더 드는 모양이다 ? 그보다 싼 활강조총 세 자루에 이만한 돈이라니!
“전하, 이 늙은 몸이 서서 이야기하기는 힘이 듭니다. 적당히 앉아서 이야기할 자리를 마련해주시지 않으시겠사옵니까?”
“아, 마, 마땅히 그러리다. 태평관에 잔치 준비가 되어 있으니, 그리로 안내하겠소.”
남대문 안쪽에 있는 태평관은 중국 사신이 왔을 때 첫 연회인 하마연(下馬宴)을 베푸는 지정 장소였다. 급히 그리로 이동할 채비를 지시하면서도 얼떨떨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은자 3천 냥에 비단 3천 필이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로또야?
태평관에서 열린 연회는 흥겨웠다. 장녹수가 나와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과거 김보와 이진 두 사람이 사신으로 왔을 때 좋아했던 음식들과 마음에 들어 했던 명주(名酒)들이 상에 놓였다. 술잔이 오가며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었다.
“칙사, 부디 들려주기 바라오. 칙서에 언급한 그 병기라는 것이 작년에 헌상한 조총을 가리키는 것이 맞소?”
이제 말을 꺼내도 될 때라고 생각했다. 슬쩍 떠보는 말을 꺼내자 술이 올라 얼굴이 붉어진 김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합니다, 전하.”
김보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행이다. 조선 출신 환관들 중에는 자신의 남성을 거세하고 중국에 ‘팔아넘긴’ 조선 조정을 증오해서 해꼬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 김보는 그런 궁리를 하지 않을 만큼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소 무엄한 소리가 될지 모르겠으나, 칙서는 사정을 상세히 적지 않아서 그 연유를 도대체 알지 못하겠소. 그러니 칙사가 들려주시오. 도대체 대국에서 우리가 바친 총을 가지고 어떻게 하였기에 이리 많은 사여가 내린 것이오?”
김보가 싱긋 웃더니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이야기하자면 조금 깁니다.”
– 6 –
반란을 일으켰다는 달단(??, 달단. 당시 몽골인들을 멸시해서 부르던 이름)인들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반란군을 찾으러 다니는 기병들처럼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지는 않지만, 군량을 나르는 치중대에게도 여정은 힘겨웠다. 그 힘든 하루가 조금만 더 가면 끝이었다.
휘하 병력 2천을 이끌고 전방으로 군량을 나르던 참장 장위덕은 한숨을 쉬었다. 전쟁이 일어났으니 마땅히 군사를 이끌고 적을 물리쳐야 하건만, 전공을 세울 수가 없었다. 출정하라는 명을 받고 군사들을 철저히 조련했는데, 막상 전지에 오니 싸울 기회 자체가 오지 않았다.
“대인! 적이 나타났습니다!”
“응? 적이라고?”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적이 나타났다고! 장위덕은 급히 안장 위에서 몸을 곧추세워 주위를 살폈다. 어디? 어디야?
“서쪽입니다! 달자(?子, 이것도 몽골인을 비하하는 호칭) 천여 기가 햇빛과 바람을 등에 지고 맹렬히 달려오고 있습니다!”
전령이 말고삐를 당기며 급히 보고했다. 장위덕은 휘하에 있는 얼마 안 되는 기병을 모두 주변에 척후로 보내 놓고 있었다.
“놈들은 우리에게 기병 지원이 없고, 특히 화포가 없는 것을 보고 절호의 먹잇감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대인!”
“주절대지 마라!”
장위덕은 희열이 넘치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 운이 이렇게 트이는구나! 내가 적을 찾으러 다니지 못하니까, 적이 내게 직접 찾아와 주다니!
“모든 장수들은 들으라! 서쪽에서 달자들이 달려온다. 즉시 진형을 재편하여 적에게 맞서라! 수레를 늘어세워 적들이 돌진할 수 없도록 방벽을 만들고, 그 사이 틈과 양 측면은 방패를 든 병사들로 메워라!”
“예, 대인!”
현장에 오고 나서 예상치 못한 치중 임무를 받았지만, 장위덕은 출정 전부터 휘하 군사들에게 전투훈련을 지독하게 시켰다. 그리고 이제 비장의 한 수가 나갈 참이었다.
“조총대는 수레를 방책으로 하여 발포 준비를 하라!”
장위덕 휘하 군사들에게는 올해 새로 지급된 신무기, 조총이 있었다. 이 작은 화포는 기존에 쓰던 화창과 달리 들고, 겨냥하고, 쏘는 동작이 모두 간편했다. 그리고 60보 떨어진 사람을 문제없이 맞힐 수 있고 맞으면 확실히 죽었다. 조총수 1천 5백 명이 일제히 탄환을 쟀다.
“전, 중, 후 3열로 서라! 훈련한 대로 하라!”
군량과 마초를 실은 수레 2백여 량이 늘어선 뒤로 조총수들이 달라붙었다. 전열은 마차 바로 뒤에 서고, 중열과 후열은 그 뒤에 줄을 지어 앉았다. 어느새 몽골 기병들이 5백보 앞까지 달려오고 있었다.
“달자들이 달려온다! 모두 화승에 불을 댕겨라!”
3열 횡대로 늘어서 있던 군사들이 일제히 불씨를 꺼내 심지에 불을 붙였다. 지금 정면에는 천여 명에 달하는 달단 기병들이 달려오고 있었지만 군사들은 침착했다. 이들이 잘 훈련된 정예병이라는 증거였다. 눈 깜짝할 사이 적이 1백 보 앞까지 달려왔다.
“전열은 총을 쏘아라!”
장위덕이 구령을 내리자 세 열 중 전열에 있던 5백 명에 달하는 군사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화약이 터지면서 나온 매캐한 연기가 주변을 가렸지만 마침 불어오는 강한 서풍에 날려서 곧 사라졌다.
“바로 재장전하라! 중열 쏘아라!”
또 호령 소리가 울리면서 중열에 있던 군사 5백 명이 일제히 일어서서 앞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역시 구름 같은 초연이 주변을 덮었다. 사선 저편에서 말과 사람이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이 보였다. 그 사이 전열에 있던 군사들은 급히 다시 탄환을 쟀다.
장위덕은 급히 적진을 살폈다. 달려오다가 총에 맞아 쓰러진 말과 사람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부상을 입은 말들이 울부짖으며 다리를 버둥거렸다. 신나게 달려오던 달단인들은 연기와 굉음에 놀라 급히 말고삐를 당겼으나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해 당황해하고 있었다.
“후열! 쏘아라!”
또 수백 개에 달하는 탄환이 적 대열을 향해 날아갔다. 말이 그대로 기수와 함께 나뒹굴고, 마상에서 몸을 곧추세웠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뒤이어 재장전을 마친 전열이 또 한 차례 총탄을 퍼붓자 이번에도 숱한 달단인들이 말에서 떨어져 뒹굴었다.
네 차례나 총격을 받고서야 적은 이쪽이 방패와 수레에 몸을 숨기고 총포를 쏘고 있음을 깨달았다. 분노한 적들은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어 화살을 퍼부어댔다.
“중열! 쏘아라!”
말을 달리면서 쏘는 화살은 조총보다도 유효사거리가 짧았다. 정확하게 화살을 날리기 위해 근접하던 적 기병들은 연달아 집중사격을 받았다. 적 대열이 흩어지면서 사격은 점점 질서를 잃고 제각각이 되었지만 우세는 확연했다. 날아오는 화살도 대개 수레나 화물, 방패에 박혔다.
“침착하게 쏘아라! 저들은 우리 총화에 당할 수 없느니라!”
마침내 남아 있는 적병들이 말머리를 돌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저들은 눈치가 빠르다. 수레벽 뒤에 총을 들고 숨어 있는 명군을 제압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장위덕 역시 저들이 꽁무니를 빼고 있음을 알아챘다. 혹여 자기 휘하 군사들이 실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한 장위덕이 힘을 주어 외쳤다.
“지금 적이 도망친다 하여 절대 추격하지 마라! 우리는 보병이니 적을 따라잡기 힘들다. 달자들이 언제 다시 공격해올지 알 수 없으니, 모든 군사들은 대열을 흐트러트리지 말고 바로 이동하라!”
만약을 위해 주의하라고 하긴 했지만, 결과를 보면 언뜻 보아도 대승리였다. 죽거나 다친 아군은 십여 명에 불과한데, 달단인들은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는 숫자만 백여 명 이상에 달했다. 노획한 말이 삼십여 필, 열일곱 명이나 되는 포로도 잡았다.
사방에서 명군을 포위할 수도 있었을 달단인들이 서쪽에서만 달려든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마 햇빛으로 눈을 부시게 하면서 먼지를 날려 보내 시야를 확실히 가릴 셈이었겠지만, 바로 그 서풍을 이용하려던 계획이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기병도 대포도 없는 수송부대라고 얕보고 덮치려던 게 근본적인 실수였다. 덕분에 달단인들은 참패를 맛보았다. 조총이 거둔 첫 쾌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