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88
2부 56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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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서사를 환송하고 도성으로 돌아오니까 한 가지 논제가 조정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방금 마치고 온 견서사 환송 문제였다.
“전하, 이제 견서사 파견도 특례가 아니라 상례가 되었습니다. 처음 한두 번이야 괜찮다고 하겠으나, 매번 사신을 파송할 때마다 전하께서 굳이 벽란도까지 친히 나가 배웅하지 마시고 도성에서 배웅을 그치소서. 옥체 미령하실까 신들은 지극히 저어되옵니다.”
함께 개성에 다녀온 예조판서 홍진이 조심스레 진언했다. 아무래도 외교와 관련된 사안이니 홍진이 먼저 나서 입을 여는 모양이다. 음, 그러고 보니 예조를 셋으로 나누기로 한 관제개편 조치는 언제쯤 실행에 옮길 수가 있을까. 아직도 논의가 진행되는 중이니.
“대국에 가는 사신도 도성 바깥까지 전하께서 전송하지 않으시는 것이 본래의 법도입니다. 특별히 중대한 임무를 맡은 신하가 외지로 나갈 때도 기껏해야 사대문 바깥에서 전송하시는 것이 관례인데, 견서사만 특별히 우대하신다면 형평에 어긋납니다.”
중추원 지사 조헌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원래 역사에서라면 10년 전에 죽었을 사람이지만, 지금은 아주 팔팔하게 살아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내가 옳지 않은 일을 행하려고 하는구나 싶으면 당장 한달음에 도끼를 들고 뛰어와 대궐 문 앞에 엎드린다.
‘행장은 경인년에 이 땅을 덮친 왜적의 선봉장인데, 어찌 그 구차한 숨을 계속해 붙여두려 하십니까? 전란의 전말을 기록하기 위해 다소 집행을 유예함은 가하다 하겠으나, 사서 편찬이 다 끝난 뒤에도 그 숨을 붙여둠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어서 베소서!’
고니시를 살려줬다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가자마자 당장에 또 그 지부상소를 했다. 경인년에 남원성에서 왜장의 머리를 빠개던 바로 그 도끼를 들고 와서 말이다.
조헌의 도끼는 하라다 가문의 거성인 치쿠젠 다카스 산성에 보관되어 있다가 을미년에 우리 원정군에게 하라다 가가 항복할 때 다시 우리 편으로 돌아왔다. 그 도끼에 대해 보고를 받고 나는 바로 조헌에게 돌려보내게 했다. 그건 조씨 집안 가보로 물려내려야 마땅한 보물이니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건 그 물건이 경인왜란 이전에 조헌이 지부상소를 올릴 때도 들고 왔던 바로 그 도끼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자기 도끼를 돌려받은 조헌은 아주 빛이 나게 잘 닦아서 ‘자기가 옛날에 쓰던 그 용도’로 다시 쓰기 시작했다.
‘전하, 간악한 행장의 목을 베소서! 아니면 이 도끼로 제 머리를 쳐 주소서!’
새내기 유생들이 겁도 없이 그런 시위를 벌이면 달랑 들어다 의금부 뇌옥에 처넣으면 된다. 하지만 환갑이 다 된 노인에다 남원성을 지키며 엄청난 전공까지 세운 양반이 전란 때 휘두른 도끼를 들고 왔으니, 이걸 무시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 요구가 전혀 부당한 것도 아니다.
갖은 애를 쓴 끝에 성당 공사장에서의 노역형이 절대 가벼운 벌이 아니라고 겨우 납득하게 했다. 연해주 벌목장에 보내서 도형(徒刑)에 처하는 처벌과 다를 것이 없고, 석방 기한이 없는 무기형이며, 단지 일하는 장소가 도성일 뿐이라고 말이다.
“조 지사. 그대의 말이 틀리지 않으나, 임금이 된 몸으로서 만 리 밖으로 떠나는 신하들을 배웅하는 일이 어찌 허물이 되겠느냐? 임금이 되어 신하들을 고생하게 만들면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면 그것이 훨씬 큰 잘못이리라.”
“문제는 우리가 지켜야 할 법도입니다. 천자를 알현하러 가는 사신도 궁궐 문에서 배웅이 끝나는데, 머나먼 서양 오랑캐 군주를 예방하러 가는 사신을 더 성대하게 전송하신다면 이는 서양 군주들의 격을 천자보다 위에 놓는 행동이 됩니다. 어찌 옳다 하겠습니까?”
명나라의 위상은 옛날보다 많이 하락했다. 하지만 아직은 분명한 천조(天朝)이며 상국(上國)이다. 유럽을 명나라보다 높게 치는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 들킨다면 좋은 말은 안 나오리라.
“또한, 전하께서 견서사를 너무 중시하시는 태도를 보이시면 이것이 또 조정의 균형을 깨는 결과가 됩니다. 견서사는 멀고도 고생스러운 길을 오가므로 분명 어느 정도 포상하실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지나치게 우대하시면 견서사 경력을 가진 이들만 목소리가 커지고 조정에서 권신이 될 것이니, 이 어찌 옳은 일이겠습니까?”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군. 조헌이 지적한 거, 실제 역사에서 삼사가 밟은 코스 그대로잖아. 삼사에 들어가 청요직(淸要職)을 맡은 관리들이 요직을 독점하고 실권을 장악한 게 조선 후기 정국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주요 원인 중 하나였으니까.
물론 견서사에 뽑힐 정도면 실무에 완전히 깜깜한 깡통들은 아니지만…이건 모르는 일이다. 나중에는 정치적 영향력으로 견서사에 선발된 주제에 견서사 경력을 내세워 으스대는 무능한 자들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전하께서 한번 행차하시면 그 행차가 아무리 가볍다 해도 연도(沿道)의 백성들에게는 심히 부담이라는 점도 고려하시옵소서. 가뜩이나 올해는 봄 가뭄이 심한데 전하를 따르는 사람과 말을 돌보고 재우는 수고를 모두 개성 백성들이 감당하니, 어찌 민폐가 아니겠습니까?”
“그건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개성은 여러 대방이 왕실의 보호에 힘입어 번성하고 있는데, 그런 자들이 임금을 위해서 마초와 음식을 조금 마련하는 일이 무슨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란 말이냐?”
“법률에 정해진 조세라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공납도 모두 폐지된 마당에 특정 고을에서만 전하를 위해 정기적으로 재물을 바친다면 이것이 뇌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젠 내가 내 백성에게 식사를 대접받는 것도 뇌물이 되는 세상이 왔구나! 개성은 돈 많은 동네니까 관례대로 각 상단이 진상하는 음식물을 받아 수라상을 차리게 했는데, 이젠 그것도 중단해야 하려나 보다. 이런 소리를 듣다니.
슬슬 배알이 꼴리기 시작하려는 참인데 조헌의 4번째 지적이 이어졌다.
“전하께서 지방에 행차하시는 동안 조정은 조회도 열지 못하고 쉬게 되니 이 역시 적절하다 할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견서사 환송은 전하께서 꼭 가지 않으시면 안 되는 사안도 아니니, 조정 대사가 중단 없이 계속되기 위해서라도 가지 마시고 예조판서만 보내시옵소서.”
예조판서가 항구까지 가서 전송하는 것만 해도 엄청난 특별대우라는 조헌의 주장도 사실은 사실이다. 뭐라고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잠자코 있다가 한마디 했다.
“또 있느냐?”
“원행을 반복하시다 보면 옥체에 해가 미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무엇보다 크오나, 이미 예조판서가 진언하였으니 신은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이건 완전히 조헌 버전 ‘사불가론’이로구먼. 오늘은 조헌이 작정하고 총대를 멘 모양이다. 분위기를 보니 다들 동감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조헌이 혼자 멋대로 나선 것도 아니다. 조정 전체가 공감하는 상황이다.
신하들이 무슨 의도로 이런 상소를 하는진 알겠다. 네 가지 이유도 전부 진심이고, 조금씩 늙어가는 내가 바깥으로 맴돌다 사고라도 당할까 봐 걱정도 되겠지. 하지만 나도 개성에 그저 놀러 가는 건 아니지 않나.
“그대들의 충언은 잘 들었다. 하지만 견서사 전송은 머나먼 10만 리 길을 떠나는 신하들을 격려하는 일이자 효를 행하기 위해서다. 과인이 개성에 들를 때마다 신의왕후께서 계신 제릉, 정종대왕께서 계신 후릉을 참배하고 있음은 어찌 거론하지 않느냐?”
이 두 무덤은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평소 자주 찾기 힘들다. 이런 기회에 찾지 않으면 일부러 참배할 시간을 낼 수가 없다. 정말 핑계 없는 무덤이 없는 셈이다.
“정종대왕께 묘호를 드렸다 하여 내가 할 도리를 모두 마친 건 아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찾아뵈는 것이 어찌 묘호보다 중요하지 않겠는가?”
정종은 선대 임금 중 유일하게 묘호 없이 명나라가 책봉한 ‘공정왕’이라는 왕호만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새해를 맞이하면서 드디어 종묘에 고하고 제대로 된 묘호를 올렸다.
단종? 단종은 지금 왕조차 아니다. ‘노산군’이지. 단종을 신원하는 건 실제 역사에서도 숙종 때나 가능했다. 이쪽 역사에서도 아직은 어렵다. 우리 원손 연이가 임금이 될 때쯤은 되어야 단종을 신원해 주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허나, 그대들이 왜 그리 내게 권하는지 그 충정을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다음 견서사 파송 때는 나도 기력이 달릴 테니, 굳이 중신들이 말리지 않아도 나가지 못할 듯하다. 그러니 이 문제는 그만 논해도 되겠다.”
이번처럼 7년 간격으로 파견한다면 다음 견서사 파송은 1610년, 그때는 내 신체나이가 쉰아홉이다. 외출이 지금보다는 무척 힘들겠지? 조선 평균수명은 아득히 넘은 나이지만,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건강을 유지할 수는 있다. 어디, 한번 잘 버티도록 해보자.
– 3 –
3월에 견서사 일행이 닻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올해 형편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내 치세를 관통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또 고개를 들었다.
“가뭄도 심한데 홍수에 메뚜기? 지금 그 세 가지 재앙이 한꺼번에 덮쳤다는 거냐?”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야? 중국도 아니고, 북미대륙도 아니고, 이 좁아터진 한반도 땅덩이에 뭐 뜯어먹을 게 있다고 3대 재앙이 한꺼번에 닥쳐?
“그렇지 않아도 바람이 너무 심해서 곡식이 제대로 맺히지 않는 판인데….”
재작년 신축년(1601)에 가뭄이 전국을 휩쓸었다. 작년 임인년은 형편이 좀 나았지만 그래도 비가 넉넉히 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또 봄부터 비가 제대로 오지 않았고, 하늘을 보는 내 가슴 속도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그래도 가뭄만이라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솔직히 홍수가 나서 땅 위의 모든 것을 다 휩쓸어버리는 피해에 비하면 가뭄은 뭐라도 남긴 남으니까. 하지만 여기에 강풍, 홍수, 우박, 메뚜기라니?!
“4월에는 강원도에 큰 우박이 내렸지. 경상도는 바람이 심해 곡식이 맺히지 않고. 이번 달 초에는 황해도와 함경도에 폭우가 쏟아져서 홍수가 났고, 그런데 그 두 도에 이번에는 메뚜기무리까지 생겨나 곡식과 초목을 휩쓸고 있다 하니, 이 무슨 횡액이란 말이냐?”
예전에 어릴 때 읽은 과학책 생각이 난다. 확실한 사실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메뚜기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가 마른 땅에 갑자기 큰비가 내리는 거라고 했었다. 새로 난 풀을 먹고 갑자기 잔뜩 불어난 메뚜기들이 먹이를 찾아 한꺼번에 이동하는 거라고 말이다.
어쩌면 이번에 발생한 메뚜기떼도 그 탓일까? 그나마 감자가 보급된 덕분에 메뚜기 피해가 적어서 다행이다.
“가뭄 때문에 담저를 많이 심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메뚜기가 담저는 못 먹으니 말이다.”
벼야 말할 것도 없고 옥수수나 기장, 메밀은 메뚜기들한테 싹 털렸다. 하지만 감자는 잎과 줄기는 뜯겼어도 땅속에 있는 뿌리, 아니 덩이줄기는 그대로 남는다. 그러면 충분하지 않은가.
“함경도와 황해도는 담저 외에는 올해 수확을 거의 기대할 수가 없을 듯합니다. 올해는 두 지방 모두 조세를 면해 주심이 어떨까 합니다.”
“호조판서의 말대로 하라.”
제대로 건질 수 있는 수확이라야 감자뿐인데 감자는 조세로 거둘 수가 없다. 너무 무겁고 금방 썩어버린다. 평년에도 감자밭에 대한 조세는 현물이 아니라 저화로 걷을 지경이니, 올해 같은 해는 차라리 인심이나 쓰고 치우는 게 낫다.
“황해도는 이참에 계획했던 둑과 보를 증축하면서 노역에 나온 백성들을 구휼하라. 필요한 곡식은 일단 곡간에 든 관곡을 쓰고, 강남 오가를 통해 곡식을 수입해서 다시 채운다.”
지금 전국의 창고에 든 곡식은 3백만 석. 자꾸 가뭄이 드니 비축분을 쌓을 수가 없다. 조금 모았나 싶다가도 가뭄으로 농사를 망치면 구휼곡이 나가고 조세를 줄여 주느라 수입이 준다. 게다가 바로 작년에 되를 줄여 주지 않았는가? 올해 세수가 실질적으로 격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반가운 이야기도 있었다. 해산물이 증산되고 있다는 보고다.
“신 공조판서 아뢰오. 연해주와 함경도에서 내달인들의 지도에 따라 어선을 많이 건조하여 고기를 잡는 양이 늘었으니, 기근은 완화될 것입니다. 어선을 조사하여 어세(漁稅)를 철저하게 물리면 줄어든 조세도 벌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 함경도, 연해주 앞바다에는 한류를 타고 오는 명태와 청어가 많이 난다. 청어는 서해 황해도 일대에도 풍부하다. 기근 해소에 충분히 도움이 될 만큼 말이다.
청어와 명태잡이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떠오른 네덜란드인들은 먼저 건너와 해삼위에 정착한 플랑드르 조선공들 ? 펠리페 2세가 파견했던 기술진들 ? 의 협력까지 받아 동해 일대의 어장 구성까지 파악했다. 그리고 어선단을 띄워 원산을 비롯한 주요 항구에 생선을 쏟아내고 있다.
명태는 내가 명태라고 이름을 지었다. 귀찮아서 의미는 굳이 부여해서 알리지 않았다. 아마 후대의 어떤 할 짓 없는 서생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어원을 추측해 넣겠지.
보존하려면 고기가 담백한 명태는 배를 째서 말리고, 기름기가 많은 청어는 항아리에 넣어 소금에 절인다. 청어 어획이 늘면서 이렇게 소금 소비가 증대되니까 내수사 염전에서 올리는 매출도 늘어났다.
어획량 증가에서 오는 파생 효과로 또 이득을 본 게 있다. 먹이로 쓰는 생선내장이 원활히 공급되면서 동해 연안에서 내수사가 운영하는 담비 농장이 늘었다. 그 담비 모피가 명나라에 건너가 은과 쌀로 바뀌어 돌아오니, 어업 발전이 기근 해소에 이중으로 도움이 되는 셈이다.
함경도에 주로 소재하는 내수사 농장이 기근으로 타격을 입은 손해가 이렇게 벌충이 되는 것도 묘하다. 이것도 나름대로 새옹지마인가?
“그래야겠다. 땅에서 거두는 조세가 수확물의 2할을 걷는 것이 기본이니, 바다에서 거두는 조세는 어획량의 1할로 하면 어떨까 한다. 농사를 짓다가 땅에 묻혀 죽을 일은 없으나 고기를 잡으러 나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는 잦으니, 세라도 줄여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전하, 어찌 그 많은 어선이 매일 고기 몇 마리를 잡았는지 관원이 나가 세고 있겠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배 크기에 따라서 납세할 액수를 정하고 이를 각자 고기로 내게 하소서.”
“알겠다. 그 적절한 양은 호조에서 논의해 올리도록 하라.”
그건 어세(漁稅)보다는 어선세(漁船稅)로군. 어쨌든 바다에서 고기 잡고, 관곡 털고, 중국에 가서 식량 수입하고, 괜히 돈 쓸 일을 삼간다면 백성들이 대량으로 굶어 죽는 사태는 피할 수 있겠구나.
공연히 돈 아낀다고 식량 수입 없이 관곡만 털지는 말자. 만약 그런 짓 하다가 혹시 내년에 또 가뭄이 들기라도 하면 정말 제대로 신세 망치는 길이니까.
– 4 –
가뭄과 홍수, 메뚜기가 지방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으니 도성에서도 그 영향이 눈에 보인다. 반촌다점과 주점, 극장에도 작년과 비교해서 손님이 부쩍 줄었다.
“사헌부에서는 전하께 금주령(禁酒令)을 내려 달라고 청하려 한다고 하오. 식량 사정이 다소 좋지 않으니, 곡식을 아껴야 한다는 거지요. 안남미나 보리라도 말이오.”
“그러게 술 대신 가배를 마셔야 한다니까.”
이덕형의 말을 들은 이항복이 느긋하게 커피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두고 다니는 전용 잔으로 마시는 특제 커피다. 잔을 비운 이항복이 손짓하자, 밝은 갈색 머리를 한 체코인 다녀 한 사람이 다가왔다. 이항복이 간단한 체코어로 주문하자 바로 잔을 다시 채워 왔다.
“금주령이 내려도 가배는 상관없지. 곡식을 쓰지 않으니까.”
“하지만 가배를 수입하는 대신 같은 은으로 더 많은 양곡을 들여오자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잖소. 형도 안심하실 수는 없을 거요.”
“가배 판매가 중단되면 대간들부터 못 견딜 텐데? 가배에 맛을 들이면 끊기가 쉽지 않네.”
이덕형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이항복의 눈길은 커피를 따르고 간 다녀의 뒷모습을 쫓았다. 잠시 그 눈길을 살피던 이덕형이 화제를 바꿨다.
“5년 동안 두고 가면, 형이 한 명 정도는 들어 앉히는 데 성공할 줄 알았소. 헌데 하나도 못 건지다니 어찌 된 거요? 도로테아 그 아이도 형이랑은 별 진전이 없었다고 했고.”
본래 다점에서 간판 노릇을 하던 롤리타의 스페인인 시녀들은 모두 다녀 일을 그만두었다. 몇몇은 조선 남자와 혼인하면서 나갔고, 남았던 몇 사람도 여주인이 여행에서 돌아오자 모두 여주인을 모시러 롤리타의 집으로 돌아갔다. 혼인한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점에서는 그 자리에 조선인 다녀를 추가로 채우는 대신에 부안에서 올라온 체코 처녀들을 고용했다. 체코인 아낙네들은 주점에서 맥주를 빚고, 그 딸들은 다점에 나와서 다녀로 일하는 셈이다. 새로운 얼굴들을 보겠다고 몰려든 손님들로 다점이 터져나갈 뻔한 건 물론이다.
“혹시 형수님이 펄펄 뛰셔서 첩으로 들이지 못한 건 아니오?”
“어허, 못 한 게 아니고 안 한 걸세. 내가 그 아이들한테 손을 대면 자네 얼굴을 봐서라도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할 거 아닌가? 그런데 유럽에 갔을 때 직접 보니, 유럽 여인네들은 젊을 때는 봐줄 만한데 나이가 드니 볼품이 확 없어지더군. 그래서 얘기나 나누고 말기로 했네.”
“거 참. 그래서 내 집에 있는 아이들은 놔두고 부담 없이 만만한 아이들을 노리는 거요?”
이덕형이 어처구니없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항복은 유쾌하게 웃었다.
“편하게 말 잘 통하던 아이들 대신 새 처녀들과 안면을 트느라 고생하긴 했지. 라틴어보다 어려운 체코어까지 익혀가면서 말일세. 아직 어린애 수준이지만.”
껄껄거리고 웃은 이항복이 화제를 바꿨다.
“출발한 지 넉 달이니까, 지금쯤이면 견서사가 말라카는 넘어갔겠지. 그쪽은 벌써 여러 번 다닌 길이니까 크게 걱정은 안 되는데, 동쪽이 걱정이네. 무사히 바다를 건넜을까?”
“나도 모르겠소, 통 소식이 없으니. 이미 시간은 마음만 먹으면 왕복할 만큼 흘렀잖소.”
이덕형은 지금 정승 중 유일하게 태평양을 건너본 사람이다. 누에바 에스파냐에도 꽤 오래 머물렀다. 견서사를 세 번이나 다녀오지 않았으면 정문부 대신 그 자리에 앉았을지도 모른다.
“벌써 1년이 지났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했으니, 잘 있겠거니 해야겠군.”
이항복이 조용히 커피잔을 기울였다. 여기서 어떻게 걱정한들 바다 건너에서 진행하는 일이 잘 풀리진 않을 터이다. 마음 편히 기다리며 후속 조치를 준비하는 편이 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