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9
1부 079화
– 7 –
“황상께서는 일찍이 조선에서 조총을 헌상하자 황궁 뜰에서 시연하게 하셨습니다. 그 성능에 심히 탄복하시어 즉시 장인들을 모아 본을 떠서 똑같이 만들라 명하셨고, 지난 가을 달단과 충돌이 일어나자 시험 삼아 1천5백 자루를 보내신 바, 대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김보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시종일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공을 세운 양 기분이 좋아 보였다.
“사실 참장 장 모가 조총수들을 거느리고 군량을 호송하고 있었던 건 고위 장수들이 조총의 효용을 의심해서였습니다. 헌데 평원 한가운데서 불시에 쳐들어오는 적 기병을 만나고도 굴하지 않고 번갈아 총을 쏘아 쳐부수기까지 했으니, 그 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정말 대단하다. 척후가 적의 접근을 알아채고 미리 알렸다고 해 봐야 10여 분 정도 여유밖에는 없었으리라. 병력이 2배였다고는 하나, 평원 한가운데서 몽골 경기병들에게 기습을 당하면 2배 정도 숫자의 보병을 보유한들 아무 의미가 없다.
게다가 병력을 셋으로 나눠서 연속으로 사격하게 함으로써 쉴 새 없이 탄환을 퍼붓다니, 그건 이 시대 사람으로서는 정말 놀라운 전술적 고안…잠깐, 그거 삼단철포잖아? 명나라 군대가…그걸 최초로 실전에서 해치웠다고? 세상에, 젠장!
그동안 내금위 군사들을 거느리고 직접 실습해보던 수많은 전술대형들이 떠올랐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건, 처음 내가 생각한 것처럼 원거리에서 적에게 일제히 조준사격을 퍼붓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라인배틀을 할 수 없다는 소리다.
이유는 뜻밖에도 허망했다. 흑색화약을 쓰는 전장식 총기에서는 내 생각보다 많은 초연이 나왔다. 맵고 따가운데다 짙기까지 해서,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적어도 1,2분은 표적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사격에 방해를 받았다. 여러 명이 동시에 총을 쏘는 이상 피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나는 선형대형으로 적에게 일제사격을 퍼붓는 대신 흩어져 싸우는 산병(散兵)전술을 조총대가 기본적으로 구사하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교대로 하는 일제사격과 라인배틀에도 미련은 있었는데, 그걸 누군지도 모르는 명나라 장수가 먼저 해치워버린 것이다.
“조를 나누어 교대로 조총을 쏜다면 분명히 간단(間斷) 없이 총탄을 쏠 수 있겠소. 장 참장은 어찌 그런 방식을 착안해 내었다고 하오?”
솔직히 궁금하다. 어떻게 그렇게 할 생각을 했지? 나야 미래에서 왔으니 그걸 알지만, 이 시대 중국인이?
“황제께서도 장 참장을 치하하시며 어찌 그런 생각을 하였는지 물으셨습니다. 장 참장이 아뢰기를, 송대 병서에서 노궁을 장비한 군사들을 삼열로 서게 하여 장전과 발사를 교대로 반복하게 한 부분을 원용하여 군사들을 조련했다 했습니다.”
그래! 노궁(쇠뇌)과 소총은 기본적으로 조준하고 격발하는 시스템이 거의 같다. 때문에 노궁수를 소총수로 바꾸는 것도 쉽다.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노궁을 일제히, 교대로 쏘는 전술이 있었으니 총으로 같은 일을 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젠장, 인정할 수밖에 없군.
하지만 이런 연속사격은 앞서 말했듯이 초연으로 인한 시야 문제와 사수가 받는 스트레스 문제 등으로 지속이 거의 불가능하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초연을 날려 줄 때나 쓸 수 있다. 이번 전투에서도 수레를 엄폐물로 삼고 있지 않았다면 명군 쪽에도 꽤 피해가 났을 거다.
굳이 내가 이런 문제점들을 가르쳐줄 필요는 없겠지? 자기들도 깨달아 가면서 개선할 테니까. 그보다 김보가 한 이야기에서 내가 가장 신경이 쓰인 부분은 그 다음에 나온 대목이었다.
“황제께서는 장 참장이 거둔 전과에 크게 기뻐하시어 올해 안에 총 3만 정을 만들어 군영에 배치해서 적도들과 싸울 때 활용할 수 있게 하라 명을 내리셨습니다. 고국에서 만든 총이 그 위력을 인정받으니 저로서도 매우 기쁩니다.”
젠장, 성능 좋다고 칭찬을 받은 건 좋다만 초도양산이 한 해에 3만 정이라니! 이쪽은 초기에는 한 해에 300정 만드는 것도 힘겨웠구먼. 역시 스케일 차이가 크다. 대륙의 기상은 나 한 사람이 어떻게 커버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전하, 저희가 지난 1년간 생산한 조총의 양이….”
“입 다무시오, 병판.”
아무리 낮게 속삭인다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그런 말 하지 마라. 김보가 혹시라도 들으려면 어쩌려고? 저 작자가 핏줄은 조선인이라 해도 지금은 엄연히 명나라 신하란 말이다.
명나라가 조총을 대량으로 제조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앞이 깜깜했다. 이거, 자칫하면 나중에 총으로 무장한 만 단위 명군과 천 단위 조선군이 맞붙고 이러는 거 아닐까? 아무리 활강총 대 강선총이라지만 열 배 이상 병력 차이가 난다면 상대가 될까?
이런 식으로 중국이 조총을 대량생산하고 단가를 떨어트린다면, 만약에 필요할 경우 신속하게 무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중국제 조총을 수입해서 강선만 파서 쓰는 것도 한번 생각해 볼까 싶다. 어차피 미니에탄을 쓰니까, 구경이 조금 맞지 않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명나라에는 이미 갖가지 화기가 충분히 있기에 우리 조선에서 보낸 총 같은 것은 큰 의미가 없으리라 생각했소.”
“아닙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화창 같은 것은 적에게 겁을 주는 데 그치고 커다란 화포는 운반하기 불편하지만, 조총은 개인이 편히 휴대하면서도 적을 확실히 노려 쏘는 데 적합합니다. 실로 훌륭한 병기입니다.”
화창(火槍)은 창에다가 화약통을 달고 이 안에 화약과 탄환을 넣은 중국식 화약무기다. 불을 붙여 쏘면 적에게 불길과 함께 탄환을 퍼붓는데, 명중률은 솔직히 형편없다. 게다가 지금은 이미 낡은 것이라 많이 쓰지는 않는다.
대형 화포는 야지에서 끌고 다니며 사용하기 불편한 게 당연하다. 제대로 된 포가를 만들지 못했으니 말이다. 동양에서는 서세동점 때까지 결국 쓸 만한 야포를 만들지 못했다. 우리가 만드는 야포는 절대 중국에 넘기지 말고 확실하게 숨겨야겠다. 뭐라도 우세한 게 있어야지.
“황제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면서 이 총을 헌상한 조선 왕에게 큰 포상을 내리라 하셨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또 좋은 병기를 만들면 망설이지 말고 바치라, 또 후한 은상을 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그 은혜에 감사드릴 뿐이오.”
언뜻 생각하면 겨우 다운그레이드한 총 세 자루를 가지고 명나라 황제를 등쳐먹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라이센스비라고 생각하면 많은 돈도 아니다. 당장 올해만 3만 정을 만든다지 않는가! 조총 10정을 만들면서 겨우 나한테 은 1냥 주는 거다. 아, 갑자기 열 받네.
여기에 보석에 비단까지 쳐 봐야 황제한테는 푼돈일 뿐이다. 그리고 매년 주지도 않을 게 빤하니 절대 이건 많이 받은 돈이 아니다.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말이다.
에휴, 일단 오늘은 그만 고민하자. 어쨌건 총 세 자루로 생산비 몇 천 곱절이나 되는 횡재를 한 기쁜 날이니까.
“알겠소. 앞으로도 뭔가 좋은 병기를 또 만들어내면 꼭 황제께 올리도록 하리다. 자, 칙사! 여기 내 술 한 잔 받으시오.”
“영광입니다, 전하.”
풍악이 흥겹게 울렸다. 마침 날씨도 좋고, 잔치를 즐기기에는 괜찮은 날이다.
– 8 –
교통, 통신이 불편한 시대다. 사신이 한 번 오면 쉽게 가지 않는다. 서너 달씩 머무르다 가는 건 일상이다. 물론 조선 조정이 제공하는 접대와 선물은 기본이다.
“금강산 유람이라도 다녀오지 그러시오.”
그저 이 부담스러운 존재가 하루라도 도성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김보는 뭘 염탐할 생각인지 몰라도 도통 도성을 떠나지 않았다. 모화관에 머무르며 도성 인근을 슬슬 유랍하고 다닐 뿐이었다.
“금강산은 이미 혜장대왕 시절에 왔을 때 다른 사신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나이까지 먹은 늙은 몸으로 굳이 또 다녀올 일은 없습니다.”
‘혜장’은 명나라에서 내려준 세조의 시호다. 따라서 우리가 명나라에 보내는 국서에는 세조라고 안 쓰고 혜장왕이라고 쓴다. 조와 종의 묘호는 명나라 황제만 대외적으로 쓸 수 있는 거니까 말이다. 명나라에서 세조라는 묘호를 쓴 황제는 있었던가, 없었던가.
“그보다 다른 문제로 논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아직 황명으로 확정되지 않은 문제라 칙서를 받아오지는 않았습니다만, 황제께서 크게 관심을 두고 계시는 문제입니다.”
“아…혹시 황제께서 공녀라도 원하시오?”
공녀, 화자(火者, 내시). 중국에 요구하는 공물들 중 가장 부담스러운 사안 두 개. 강제로 사람을 잡아다 가족과 떼어내 먼 이국으로 보낸다. 가서 출세를 하건 말건, 그건 나중에 따질 일이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강제로 사람을 끌어낸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그건 아닙니다. 현 황제께서는 후궁도 전혀 두지 않을 만큼 검박하시며, 소인과 같이 이미 대국 신하가 된지 오래인 이들에게는 정을 베푸시지만, 새로이 데려옴으로써 혈육과 헤어지는 슬픔을 또 만들지는 않으려 하십니다.”
존경할 만한 황제로세. 예전 세상에서도 홍치제가 명나라 마지막 성군이라고 듣긴 했지만 당대에 와서 보고 듣는 건 역시 또 다르구나. 으음, 조총 만드는 기세도 그렇고, 적어도 홍치제가 제위에 있는 동안에는 가능한 명나라와 부딪히지 말아야 하겠다.
“그럼 무슨 문제요? 부담 느끼시지 말고 칙사께서 편하게 말씀해 보시오.”
김보가 살짝 웃었다. 옆에 앉아 있던 이진도 미소를 지었다.
“공녀는 아니나, 조공과 관련된 문제임은 맞습니다. 전하, 전하께서는 지금 바치는 조공품의 물목과 수량이 부담되지는 않으십니까?”
조공으로 바치는 물품 중 가장 부담스러운 사람과 금은은 이제 빠졌다. 하지만 해동청과 같은 진귀한 동물이나 말, 비단, 가죽, 포목, 의복, 종이, 서화, 해물, 문방구 등 각종 물품을 조달하는 건 꽤나 힘들고 귀찮은 일이었다. 물론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다.
“대국에 예로써 올리는 일인데 무엇이 힘들겠소? 마땅한 도리로써 행하고 있소.”
김보가 웃었다.
“그리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다 압니다. 또한 소인과 같은 사신들이 개인적으로 잡물을 챙기는 행동이 부담을 줌도 알고 있습니다. 허나 저희도 그저 욕심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닙니다. 대국에 돌아가면 그 물건들을 각계에 바쳐야 하니 어쩌겠습니까? 양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래, 정읍현감이 백성들을 착취해서 얻은 차를 각계각층에 뿌려댄 것과 스케일만 다르지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행동이다. 다만 제발 좀 덜 긁어가 줬으면 할 뿐이지.
“황제께서는 이에 자비를 베푸시어 앞으로 조선에서 바치는 모든 공물을 면해 주시는 방안을 고려하고 계십니다. 다만.”
나도 모르게 만세를 부를 뻔했다. 그 지긋지긋한 공물 모으기를 안 해도 된다고? 물론 사여품으로 받아오는 은이나 사치품이 없어지는 건 그것대로 문제지만, 지금 당장은 공물 때문에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그 이야기만 들어도 기뻤다. 그런데, 다만?
“조공을 아예 폐하시겠다는 건 아닙니다. 조공품을 바꾸면 어떨까 고려하실 뿐이지요.”
“황제께서 생각해두신 물품이 무엇이오?”
뭐지?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사람은 아니라고 하고, 금은은 이미 폐지한지 오래고, 기존 품목을 없앤다니 그 안에 들어가지 않는 물품일 텐데. 혹시?
“황제께서는 조선에서 총을 더 보내준다면 다른 조공을 모두 폐해줄 의사가 있으십니다. 전하께서도 전국 각지에 명을 내려 조공할 물목을 모으기보다 한양에 공방을 설치하고 총만 만들어서 바치게 되면 훨씬 편해지지 않으시겠습니까?”
역시! 그걸 말이라고 하냐? 됐다! 총 장사! 헌데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칙사, 그런데 의문이 있소. 방금 황제께서 해내에서 총 3만 정을 제조하라 명하셨다 하지 않았소? 그런데 굳이 우리 조선에, 기껏해야 1년에 수백 정밖에 만들지 못할 우리에게 총을 받아가려 하는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소.”
“당연히 그러실 것입니다. 한 가지 털어놓자면, 중국 공인(工人)들이 부어서 만든 조총은 5발에서 10발만 총을 쏘면 거개가 터져 버렸습니다. 허나 조선에서 진상한 총은 백여 발을 쏘아도 터지지 않고 멀쩡하니, 어찌 대국에서 욕심을 내지 않겠습니까.”
명나라 조총이 왜 그리 약한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가 보낸 총을 모델로 삼아서 만들었는데 겨우 5발 쐈다고 총신이 터졌다고? 우린 한 300발 쏴도 괜찮았는데?
잠시 생각하다가 김보가 한 말에서 답을 알았다. ‘부어서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총열을 주조해서 만들었으니 단조해서 만든 우리 총보다 강도가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그건 좀 심한데. 위력 약해지더라도 화약을 좀 적게 넣지. 아, 중국총 수입 계획은 이걸로 취소.
“황제께서는 전하께서 매년 조총 1천 정을 바치신다면 다른 조공은 모두 폐해주겠다 하셨습니다. 또한 희사도 넉넉히 내려주실 것이고요. 어떻습니까, 황제께서 명하시는 대로 조총을 바칠 수 있으신지요? 약속을 했다가 지키지 못하면 더 곤란하니, 힘들면 지금 말씀하십시오.”
바로 대답할 수는 없었다. 작년 한 해 동안 군기시에서 생산한 조총은 모두 합쳐 7백 정. 명나라에서 요구하는 대로 총을 바치려면 생산량을 다 털어도 모자란다. 그만한 양의 총을 만들려면 공장을 크게 확장해야만 한다. 좋다, 다른 요구조건과 연계해서 한 번 걸어보자.
“우리가 비록 소국이지만, 황제께서 바라시는데 총을 바치지 못할 이유는 없소. 다만 총을 가지고 사행을 갈 때 육로가 아닌 해로로 가도록 해주셨으면 하오.”
“해로는 위험하지 않습니까. 어찌 해로를 원하십니까?”
“칙사께서도 알다시피 총은 쇠로 만들어 무겁소. 육로로 나르면 인마의 피로가 심할뿐더러, 소모하는 경비도 크오. 게다가 중도에 도적들에게 빼앗기기라도 하면 큰 우환이 될 거요. 그보다는 수로를 통해 바로 천진으로 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오.”
잠시 생각하던 김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전하의 말씀대로 야인들에게 총포를 하나라도 넘겨서는 안 될 일이니, 폐하께 상주해 예부에서 논의토록 하겠습니다. 동지사(冬至使)가 올 때면 가부간 결론이 날 겁니다.”
됐다! 서울에서 천진까지 직항로 개설!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명나라 조정에서 받아들이기만 하면, 난파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배를 여러 척 보내야겠다. 되도록 큰 배로! 총 싣고 남는 공간에는 상품 실어야지! 가능한 잔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