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95
2부 573화
– 21 –
모카 시내는 비명과 고함으로 가득했다. 주민들 대부분이 아직 잠들어 있는 동안 느닷없이 포성이 천지를 뒤흔들기 시작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 혼란 속에 조선군 최정예 60명이 발을 내디뎠다. 맨 먼저 단정에서 뛰어내린 홍상훈 정위가 목청껏 외쳤다.
“잊지 마라! 태수가 있는 관아가 우리 목표다! 돌궐병을 제압하고 태수를 붙잡아 끌어낸다!”
홍상훈이 지휘하는 정예병들은 본선을 출발하자마자 미친 듯이 노를 저었다. 이들은 이번에 출항을 맞아 새로 증원된 군사들이 아니고 본래부터 도척에 배속되어 있던 등선군으로, 모두 이기빈과 홍상훈 밑에서 고락을 함께하며 뼈가 굵은 이들이다.
“수사또께서 군사를 운용하심이 실로 사심이 뚝뚝 묻어나십니다.”
“그래서 싫은가, 송 참위?”
“하하! 싫을 리가요!”
이기빈은 모카를 습격할 계획을 짜면서 목표를 셋으로 나눴다. 첫째, 포대. 둘째, 도척 인근 해상에 정박한 회회국 상선. 셋째, 태수 관저.
모카 점거를 위해 필수적으로 차지해야 하는 존재가 항구 남북에 있는 포대 2개다. 여기는 18근 포로 신나게 두들긴 후 각각 등선군 40명을 투입한다. 정면으로 하는 공격이라면 턱도 없을 숫자지만, 동틀 녘의 기습이니만큼 이 정도 인원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북쪽 포대는 도척에서 가까운 표적이니 벽 자체를 포격으로 부수고 돌입한다. 산을 오르며 적과 싸우는데 익숙한 대남도 군사들이 이쪽을 맡았다.
남쪽 포대는 도척이 정박한 자리에서 정확하게 포격하기에는 좀 멀다. 그래서 함포는 적이 응사하지 못하도록 제압만 하고, 훈련도감에서 특별히 파견된 ‘돌격공병(突擊工兵)’들이 포대 벽에 폭약을 설치해서 직접 뚫고 돌입한다. 그 뒤에 하는 일이야 같다.
두 번째 목표인 상선들은 도척의 선창을 노략품으로 채우면서 외부에 구원을 청하지 못하게 하려면 꼭 나포해야 하는 대상이다. 여기에는 출항 전에 증원된 통제영 소속 등선군과 왜별기 군사들 100명이 투입됐다. 박골을 지휘하는 이중현 참령도 본래 이쪽 등선군 지휘관이다.
세 번째 목표이자 가장 중요한 목표는 모카 관아다. 단지 관아만 함락하면 되는 게 아니다. 관아를 장악하면서 관아 내전에 있을 태수까지 산 채로 붙잡아야 한다. 그놈이 범한 불경죄에 대한 값을 치러야 할뿐더러, 모카 전체가 항복하게 하려면 태수가 필요했다.
모카를 둘러싼 성벽은 육지인 동-남-북 세 방향만 지킨다. 바다에 면하는 서쪽에는 성벽이 없고, 양쪽 끝자락이 바닷속으로 30보(36m) 조금 안 되게 뻗어서 적이 우회하지 못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홍상훈 일당이 해안에 배를 대고 곧바로 관아를 향해 달릴 수 있었다.
홍상훈 역시 이기빈과 마찬가지로 강무관에서 전사(戰史)를 배웠다. 그리고 적의 우두머리를 붙잡았을 때 얼마나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지, 숱한 사례를 통해 철저히 익혔다. 상대방이 권위적이며 후진적인 체제를 가지고 있을수록 우두머리를 붙잡았을 때 조직이 마비되기 쉽다.
“절대 태수를 죽여서는 안 된다! 반항하는 군사나 하인들은 죄다 죽여도 좋지만, 태수는 꼭 사로잡아라!”
그동안 확인한 바로는 모카에는 요새가 3개나 있다. 항구 남쪽, 북쪽에서 항구를 방어하는 작은 포대 이외에 남문 바깥에 있는 큰 요새가 육지 쪽에서 오는 적을 막는 주력이다. 당연히 이 남문 쪽 요새에 배치된 돌궐군 병력이 가장 많다.
하지만 조선 측으로서는 해안도 아닌 내륙에 있는 요새까지 한꺼번에 공격하기에는 병력이 모자랐다. 포대와 상선부터 먼저 장악하는 동안에 그 요새에서는 전투를 준비할 것이고, 여기 제대로 맞서려면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 했다. 그래서 살아있는 태수의 입이 필요하다.
“모두 관아를 향해 뛰어라! 다시 말하지만, 태수는 생포해야 한다! 절대 죽이지 마라!”
“예, 정위 나리!”
이기빈은 새로 증원한 군사들을 이 중요한 임무에 쓰지 않았다. 홍상훈을 비롯해 여기 내린 장졸들은 전원이 예전부터 도척에서 복무하던 군사들이었다. 가장 빛나는 임무, 가장 큰 공을 본래부터 거느리고 있던 자기 부하들에게 몰아준 것이다.
‘수사또께서야 특기와 능력에 맞춘 합리적인 배치라고 주장하셨지만.’
벽을 타고 오르는 데는 대남군이 가장 낫다. 폭약으로 벽을 부수고 뛰어드는 건 돌격공병이 할 일이다. 육지에서 빠르게 뛰어들어 적의 본거지를 덮치는 건 도척이 해적을 소탕할 때 늘 하던 일이다. 적선에 뛰어들어 나포하는 건 수영 소속 등선군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분명 각자 보유한 특기에 맞는 역할을 받았다. 하지만 적의 우두머리를 붙잡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이기빈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자기 부하들 몫이라는 사실에서, 송희선 참위가 꼬집었듯이 ‘사심이 들어간 군사 운용’이라는 말을 들어도 무리가 아니다.
“자, 가자!”
군사들은 재빨리 단정에 싣고 온 무기를 들었다. 흑각궁을 든 홍상훈은 부하들의 준비가 다 끝나자마자 길 안내를 맡은 군사들을 따라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태수가 있는 관아는 바로 지척에 있어서 금방 닿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홍상훈은 부하들을 독려하기를 잊지 않았다.
“놈이 도망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도중에 재물에 욕심을 내지 말고 태수만 쫓아라!”
군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올렸다. 굳이 싸움 도중에 개인적인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충분한 공을 세운다면 이기빈이 적절한 포상을 주리라는 신뢰감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흥분한 군사들은 우왕좌왕하며 앞길을 가로막는 주민들을 발로 걷어차고 밀쳐 넘어뜨리면서 힘차게 뛰어갔다. 태수가 도망치기 전에 어서 잡아야 했다.
– 22 –
관아 위치는 이기빈을 호위하면서 드나들던 군사들이 확인해 놓았다. 홍상훈과 부하들이 막 관아에 도착했을 때, 정문 앞에는 돌궐군 10여 명이 조총을 들고 모여 있었다. 서로의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홍상훈이 거세게 외쳤다. 돌궐군 무장도 아마 같은 뜻일 고함을 발했다.
“쏴라!”
20보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서 총격을 교환했지만, 양쪽 모두 쓰러진 사람은 몇 없었다. 아직 해가 덜 떠서 주변이 어둡고 워낙 급작스럽게 마주친 탓에, 제대로 겨냥하지도 못하고서 급히 쏜 탓이다. 코앞에서 탄환을 재장전할 여유도 없으니, 다음 차례는 당연히 백병전이었다.
“그러기 전에 먼저 하나!”
홍상훈이 허리춤에 찬 시복에서 뽑아 메긴 화살이 하얀 섬광처럼 날아갔다. 쇠사슬 갑옷과 투구를 착용해서 몸을 보호한 돌궐군 무장은 홍상훈이 날린 화살에 그만 목을 맞았다. 햇빛도 아직 제대로 비치지 않고, 조총 일제사격으로 초연이 피어오르는 중에 말이다.
대장이 쓰러졌으니 남은 돌궐군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적이 멈칫하는 사이 다른 궁수들도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으아악!”
“사람 죽는 비명은 어디든 비슷하군.”
나머지 돌궐 군사 중 절반이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남은 자들은 총을 팽개치고 몸을 돌려 관아 안으로 도망쳤다. 문을 제대로 닫아걸지도 못하고 말이다.
“모두 겁에 질려 숨으려던 것을, 이 무관이 억지로 끌고 나왔던 모양입니다. 정위 나리께서 단발에 목을 쏘아 꿰뚫지 않으셨으면 꽤 질기게 버텼을 겁니다.”
소수라고 해도 좁은 문을 지키면서 버티면 쉽게 뚫기 어렵다. 이쪽은 남문 밖에 있는 적군 수백 명이 나타나기 전에 태수를 붙잡아야 한다는 부담까지 지고 있다. 하지만 홍상훈이 먼저 적장을 쏘아 쓰러트린 덕분에 정문을 쉽게 돌파했다.
“내가 앞에 선다! 모두 따르라!”
길잡이로 온 군사들은 늘 여기 정문 앞에 붙잡혀 있었기 때문에 관아 내부 구조는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직접 들어가 본 이기빈은 자기가 지나간 길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고, 태수 체포를 맡은 홍상훈에게 약도까지 그려 가며 태수의 내실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홍상훈은 시위에 새 화살을 물린 채로 정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다른 군사들도 모두 무기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반항할 기색을 보이는 자가 있을 때마다 총성이 울리고 화살이 날았다. 비명과 신음이 건물 안을 채웠다.
“나와, 이 돼지새끼야!”
시복에 든 화살은 이제 여섯 개밖에 남지 않았다. 앞을 막는 사내 모습을 한 자들은 모조리 쏘아 넘기며 여기까지 달려온 홍상훈이 내실 문을 걷어찼다. 가벼운 나무로 만든 문은 발길질 한 번에 그대로 부서져 구멍이 뚫렸다.
내실로 뛰어든 홍상훈의 눈에 대도를 들고 달려드는 덩치 큰 흑인이 비쳤다. 홍상훈은 살짝 몸을 틀어 피하면서 화살촉을 적의 몸에 갖다 대다시피 하고 한껏 당긴 시위를 놓았다. 바로 코앞에서 발사된 장전(長箭)이 거의 중간쯤까지 박혔다.
흑인 시종은 화살이 갈빗대 사이를 파고들자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가슴 근육이 아무리 단단하더라도 강철 화살촉을 버텨낼 도리는 없으니, 피를 뿜으며 엎어질 수밖에 없다. 화살촉이 폐를 뚫었으니까, 자신의 피가 폐에 차서 질식하게 될 거다.
“나와라, 이놈! 나오지 않으면 당장 네놈의 머리를 부숴 놓겠다!”
침대 위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사람 하나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성큼성큼 다가간 홍상훈이 이불을 홱 낚아채자 벌거벗은 여자 하나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중얼거리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손바닥을 비비는 걸 보니 뭐라는 건지 알 만했다.
“너 따위는 관심 없다. 태수 그 돼지새끼는 어디 있나?”
여자는 돌궐인이 아니라 머리가 노랗고 파란 눈에 피부가 흰 백인이었다. 태수의 노예 첩인 모양인데, 스페인인은 아닌지 홍상훈이 스페인어로 질문하는데 전혀 답을 하지 못했다.
“나리! 포도아어를 할 줄 아는 놈을 잡았습니다!”
“데려와!”
끌려온 사내는 포르투갈 상인들과 모카 관리들이 회견할 때 통역을 맡는 노예라고 했다. 이 사내가 홍상훈의 뜻을 전하자 백인 여자가 반색하더니 곧바로 방 한편에 있는 벽을 가리켰다. 당장에 호령이 떨어졌다.
“도끼로 벽을 부숴라!”
판자가 쪼개지자 안에 숨겨진 밀실이 드러났다. 허술한 옷가지만 걸친 태수가 그 안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있다가 끌려 나왔다. 헌데 아직도 잠이 덜 깼는지, 눈이 풀려 있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새 몸을 가린 여자가 빠르게 중얼거렸다.
“하시시를 잔뜩 피우고는 밤새도록 자기 몸을 탐하다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시종들이 아무리 깨워도 깨지를 않아서 밀실에 처넣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함께 도망가지 않고 굳이 골방에 처넣은 이유를 알 만하다.”
홍상훈이 보니 태수는 체중이 200근(120kg)은 족히 나갈 듯했다. 이렇게 무거운 놈을 업고 가려다가는 침입한 조선군에게 붙잡히기에 십상일 테니, 시종들로서도 목숨을 건지자면 다른 도리가 없었으리라.
“수사또께 알려라! 태수를 잡았다고!”
“예, 정위 나리!”
정원으로 나간 송희선 참위가 가져온 신호용 중신기전에 불을 붙여 하늘로 쏘았다. 하늘로 치솟은 신기전이 터지자 붉은 연막이 주변으로 퍼졌다. 총성과 포성이 아직도 사방에서 잔뜩 울리고 있었다.
– 23 –
정오가 되기 전에 모든 싸움이 끝났다. 번개처럼 움직여 기습한 조선군은 남북에서 항구를 지키던 포대 둘을 모두 공략했고 태수를 생포했으며 정박해 있던 상선 14척을 직접 나포, 17척은 항구 안쪽에 가둬버렸다. 불에 타서 가라앉은 배는 7척이었다. 탈출한 배는 없었다.
탈출을 시도하는 배가 두어 척 있기는 했다. 하지만 박골이 빠르게 움직이며 불화살을 날려 모조리 붙잡았다. 탈출을 시도하던 배들은 불타 가라앉았고, 선원들은 사살당했다.
수비병 400명이 있던 남문 밖 요새는 목에 칼이 들이대진 태수의 명령에 따라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이기빈은 이들이 소지한 무장을 해제하면서 목숨은 절대로 해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해주었다. 하지만 부하들에게는 이렇게 지시했다.
“죽이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가두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붙잡은 포로들과 함께 모두 묶어서 북문 밖에 모아두어라.”
“예, 사또.”
쏘아죽인 적의 수는 약 200명. 붙잡은 포로는 500명이 넘었다. 성문 바깥 벌판에 방치하는 대신에 제대로 가둬놓고 싶어도 도저히 가둘 만한 곳을 찾아내기 힘들 만큼 많은 수다. 그중 가장 중요한 포로는 당연히 태수 본인이다.
이에 비해 아군의 손실은 전사자가 7명, 부상자는 경상자까지 19명에 불과해서 총 30명도 안 된다. 워낙에 기습적으로 들이치는 바람에 돌궐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덕을 보았다. 정면으로 싸웠다면 이런 일방적인 전투 결과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모카 시가지는 전혀 피해를 보지 않았다. 이기빈이 엄명을 내려 모카 시가지에는 불화살도, 대포도 쏘지 못하게 한 때문이다. 물론 직접적인 공격 이외에도 상륙한 병사들이 함부로 불을 지르는 것도 금지했다.
이런 조치는 당연히 1만 명에 달하는 모카 주민들이 괴로움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모카에 사는 이들은 대개 회회국인이고, 본국 백성도 아니니 전화에 휘말려 죽건 말건 이기빈이 알 바 아니다. 그런데도 시가지를 공격하지 않은 데는 확고한 이유가 있었다.
“군함과 화포가 부족했던 탓이 아닙니까?”
“그럴 리가 있는가. 본관은 그저 아까운 보화가 불타고 노비가 될 자들이 죽어 나자빠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을 따름일세.”
국체가 모욕당한 분풀이로 모카 시가지를 통째로 불타는 장작더미로 만든다고 치자. 저지른 순간에는 물론 속이 시원하겠지만, 도시를 불태워 잿더미와 시쳇더미만 남게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이득은 전혀 없다. 말짱하게 남겨두는 편이 훨씬 낫다.
“그보다 먼저, 태수 놈을 처리해야지. 놈을 여기로 끌어내라.”
모스크 앞 광장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였다. 이기빈은 말이 통하는 포로들을 시켜 지금 누가 도시를 장악했는지 알리고, 광장으로 나오지 않으면 재미없을 거라고 알리게 했다.
태수는 이제 완전히 제정신을 찾았다. 그리고 모카 시가지 전체가 조선군에게 넘어갔음을 알고 땅바닥에 이마를 짓찧으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저놈이 뭐라고 하는 거냐?”
“자기 상관인 총독이 이 사태를 알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며, ‘꼭 총독께서 와서 너희를 징치하실 거’라고 합니다.”
“천 리 밖에 있는 총독이 언제쯤 소식을 듣고 응원군을 데려올 수 있을지 궁금하군. 하지만 총독이 오더라도 널 구하기는 이미 늦었을 거다. 네놈은 지금부터 죗값을 치러야 할 테니까.”
이기빈이 크게 소리쳤다. 형리들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저놈을 발가벗기고, 몸에 난 털이라는 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 오라기도 남기지 말고 싹 밀어버려라!”
태수를 죽이면 여기서 용도가 끝난다. 하지만 모욕만 가하고 살려두면 더 써먹을 수 있다. 포로는 활용할 수 있는 한 활용해야 하는 법이다.
이기빈이 일부러 지시 내용을 통역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태수는 입에 재갈이 물리고 옷이 벗겨질 때까지 자기한테 주어진 운명을 알지 못했다. 삭도(削刀)를 든 형리가 자기 눈앞에 선 모습을 본 다음에야 경악했지만, 이미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뒤였다.
“우리 관원의 수염을 밀었으니 네 털도 밀어야지. 회회국에서는 수염이 없는 남자를 제대로 된 남자가 아닌 못난이로 본다던데, 수염은 물론이고 머리털에다 거시기 털까지 깎이고 없는 네놈이 과연 어떤 취급을 받을지 궁금하구나.”
온몸에 비누 거품이 칠해진 모카 태수는 털을 밀리면서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이기빈은 그 진기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한껏 크게 웃었다. 이만하면 저 무도한 태수 놈에게 합당한 처벌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자, 이게 끝나고 나면 뒷수습을 시작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