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05
2부 583화
– 1 –
각지에서 올라온 장계가 책상 위에 산처럼 쌓였다. 수십 년째 반복되는 광경이다 보니 이젠 슬슬 진력이 나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집어던질 수도 없다. 내 일이니까.
하지만 이 장계 무더기는 다른 것도 아니고 가뭄 보고서다. 30년 이상 임금 노릇을 하면서 가뭄을 몇 해나 겪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올해도 또 가뭄이다. 그것도 2년 연속이다.
그나마 작년이 올해보다 나았다. 작년에는 가뭄에 홍수에 메뚜기까지 닥쳐서 한반도 북부를 휩쓸었다지만, 올해는 아예 본국 전역에 가뭄이 들었다. 가뭄이 대체 왜 이리 연속으로 드는 거지? 정말로 환장할 지경이다. 임금 자리 손 놓고 어디 처박혀버리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여기서 내 나이는 이제 겨우 50대에 갓 접어들었으니, 대리청정으로 세자한테 일을 떠넘기기에도 아직 좀 이르다. 성이가 임신년(1572)생이니까 지금 성이 나이가 서른셋, 한참 일하기에 좋은 나이이기는 한데…아니, 잠깐. 가만있자, 선례가…?
“여봐라, 도승지. 세종대왕께서 보령이 몇이실 때 문종대왕께 대리청정을 명하셨느냐?”
“마흔다섯이셨사옵니다, 전하.”
엥? 그렇게 젊어서였었나? 아, 맞다. 세종대왕이 겨우 쉰셋에 죽었고 역대 조선왕조 임금들 평균수명이 마흔 몇이었지 참. 그나마 자기 혼자 80대까지 산 영조하고 또 혼자서 70대까지 산 태조, 폐위당하고도 살기는 오래 산 광해군 등이 그 평균을 왕창 끌어올린 결과다.
지금 내가 쉰둘인데, 내 선왕 12명 중에서 나보다 오래 산 사람은 태조(74세)?정종(68세)?태종(56세)?세종(54세)밖에 없다. 내 아들인 인종(황이, 53세)은 몇 달 안에 바로 따라잡겠고, 세조(52세)가 나랑 타이기록이다. 과연 이쪽 세상 왕실에서는 평균수명이 얼마나 되려나.
“세종대왕께서는 워낙 몸이 좋지 않으셔서, 대리청정을 일찍 시작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하께서도 부디 섭생에 주의하시어 만수무강하시옵소서.”
“알겠다. 내 영상의 말을 잊지 않고 주의하겠노라.”
세종대왕도 나처럼 고기깨나 좋아했지. 태종이 자기 상 치르는 동안에 고기 먹어도 좋다고 허락할 만큼. 그런데 고기는 많이 먹으면서 운동은 안 하니 비만에 당뇨까지 왔고, 골골대다 그만 오래 못 살았다.
대리청정으로 일 좀 일찍 떠넘기겠다고 일부러 고질병 환자가 될 수도 없는 일이니, 나도 요즘은 술도 고기도 전보다는 좀 줄이고 운동도 다시 꾸준히 하고 있다. 매일 반 시진 정도는 말을 타고, 반 시진 정도는 활을 쏜다. 활쏘기도 은근히 힘이 드는 운동이다.
그런데 마침 태종이 세종대왕에게 양위했을 때 나이가 딱 52세였다. 그 전례를 부활한다면 임금 자리는 성이에게 넘기고 나는 태종처럼 딱 군권이랑 외교권만 쥐고 상왕으로 물러앉는 것도 지금 당장은 나쁘지는 않겠다. 아니면 대리청정이나.
다만 그런 짓을 했을 때 조정이 상왕파와 현왕파로 갈라져서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한 부작용이겠다. 자칫하면 또 사화가 벌어지고 피바람이 불 수도 있겠지. 재수가 없으면 갈등 끝에 성이가 수양제나 태종화(化)해서 내란이 일어날 수도 있겠고.
하지만 조정 분위기 한번 떠보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내가 왕위에 오른 지도 벌써 35년 ? 경성군 시절 15년 포함 – 인데, 분위기 한번 다잡을 때도 됐잖아?
“그대들은 들으라. 이 나라의 옛 전례를 돌이켜보건대, 일찍이 태종대왕께서는 쉰둘이 되자 보위를 세자인 세종대왕께 양위하시고 상왕으로 물러나셨던 예가 있다. 세종대왕께서도 역시 마흔다섯에 문종대왕께 대리청정을 맡기셨노라.”
편전에 줄지어 앉아있던 신하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상감이 멀쩡히 일하다 말고 갑자기 웬 엉뚱한 소리를 하시나 싶은 모양이다.
“하여, 국초의 선례에 따라 과인도 그만 임금 자리를 내놓을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자는 이미 수차에 걸쳐 대리청정을 시행하며 능력을 보인 바가 있고, 나이도 지금 서른둘이라 한창때며 원손까지 보았으니 후계도 든든하다. 그대들이 보기에는 어떠한가?”
편전 안에는 씻은 듯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원체 예상치 못한 발언이라서인지 누구도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이건 아닌데…하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중신들이 바닥에 엎드렸다.
“전하! 부디 말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전하께서 아직 강건하신데 어찌 양위하신단 말씀이시옵니까. 아니 되옵니다!”
폭풍 같은 반대 속에서 이덕형의 차분한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전하께서 그리 분부하신다면 신들은 죽고자 해도 죽을 곳이 없어질 것입니다. 나라에 아직 이루고 보살펴야 할 일이 많은데 전하께서 그리 분부하신다면, 조정에 입시한 선비 중 목숨을 부지할 자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내가 슬슬 머리에 백발이 생기고 기력이 쇠하는 것이, 물러날 때가 되어가는 듯하다. 너무 늙어 추한 꼴을 보이기 전에 젊은 세자에게 일을 맡기고 물러나도 좋지 아니한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신하들이 그사이에 뭐라고 하기 전에 얼른 한마디 더 던졌다. 사람이 체면이 있지, 아무리 뻥카였다고 해도 간만 보고 바로 물러설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근래 들어 자꾸 가뭄이 들고 홍수와 황충(蝗蟲)이 닥쳐서 백성들이 횡액을 겪고 있지 않으냐. 이는 과인이 덕이 없어 하늘이 내리는 벌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과인이 물러나면 이 화도 그치지 않을까 한다.”
비장한 표정을 연출하면서 발언을 끝냈다. 하지만 반대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조판서 유영경, 호조판서 송준 등이 잇달아 나서서 선위를 검토하겠다는 내 발목을 붙들고 늘어졌다.
“국사가 여전히 다망한데 어찌 조금의 틈인들 만들겠습니까. 부디 성지를 굳게 정하시어 이 나라가 그 근본을 지켜나가도록 해주시옵소서.”
“전하께서 이리 지치신 것은 모두 신들이 전하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니 민망하여 신들 모두 전하의 용안을 차마 뵐 수가 없습니다. 부디 조정에서 무용한 자를 내쫓고 실력 있는 선비를 등용하시어 국정을 새로이 하소서.”
“어허, 그래도 이미 선대에서 선위하신 전례가 수차 있지 않으냐.”
못 이기는 척 한마디 더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좌의정 이원익이 조용히 반례를 제시했다.
“인종대왕께서도 쉰셋에 훙(薨)하셨으나, 그전에 세자이시던 선왕께 선위하거나 대리청정을 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종대왕께서 그러하셨듯이 신병(身病)으로 고달프지 않으시다면 보위를 지키심이 마땅합니다. 신들이 더 잘 보필하겠으니 망극한 말씀은 부디 거두어 주시옵소서.”
하긴 황이는 양위 안 했지. 그 애도 비교적 건강하다가 갑자기 자리에 눕더니 얼마 안 가서 눈을 감았다고 했다. 그것도 나름 복 받은 죽음이다. 아차, 상황 마무리해야지.
“내 몸은 늙어가고 머리는 둔해져서 사리 판단이 힘들어질 때가 많으나, 그대들이 그토록 애써서 간언하니 당분간은 자리에 더 앉아있도록 하겠다. 전쟁을 다섯 번이나 치른 이 늙은 몸이 언제쯤 편안히 쉴 수 있을지 생각하니 슬프기만 하구나.”
등에 댄 방석 위에 몸을 기대고 짐짓 한숨을 쉬었다. 눈으로는 앞에 엎드려 있는 신하들을 쓱 훑었다. 모두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어서, 눈이 마주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전하께서 그러한 전교를 내리시게 만든 신들의 죄가 너무도 크옵니다!”
“그런데도 분부를 거두어 주신다고 하니 신들은 감읍하여 흐르는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 외에도 이런 발언이 한참을 더 이어졌다. 내 선위를 말리며 충성경쟁을 펼치는 신료들을 보고 있으려니, 선조가 이 맛에 그렇게 숱하게 양위소동을 벌였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 2 –
“왜 그랬어? 진짜로 지금 왕 그만둘 생각도 없으면서.”
내가 오후에 벌인 짧은 ‘양위소동’은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성이가 달려와서 부디 그 분부를 거두어달라며 내 침전 앞에서 석고대죄하는 것으로 완전히 끝났다. 낮에만 잠깐 말을 꺼냈다 바로 그만뒀으니 큰 파문은 일으키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당연하지. 만약에 세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도 가만히 있으면 천하의 불효자에다 반역자로 낙인이 찍힐 텐데. 자칫 세자 자리가 떨어질 수도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 얼른 달려와 무릎 꿇고 빌어야지.”
상희 말이 맞기는 하다. 내가 세자였다고 해도 부왕이 선위를 언급했다는 사실이 내 귀에 들어오면 만사 제치고 나는 듯이 달려와서 석고대죄했을 거다. 더구나 부왕이 숙청을 서슴지 않고 피 보는 일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세자가 어떻게 그 이야기를 들었지? 한 2각(30분) 정도 떠들썩하다가 말았는데.”
“궁궐에 귀가 몇 개인데…내 귀에 들어온 이야기가 어떻게 세자 귀에 안 들어가겠어. 지금 중전마마도 아마 네가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꺼냈는지 물어보려고 잔뜩 벼르고 계실걸. 너도 그거 알고 여기 와 있는 거 아냐?”
사실 그래서 중궁전으로 안 가고 여기 와 있는 게 맞다. 원래 오늘은 중궁전에 들기로 한 날이라 그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들이닥친 세자 때문에 취소했다. 그 자리를 수습하고 나니 이거 중전이 가만 안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상희 처소로 튀었다.
“그런데 정말 왜 그랬어?”
“그냥 좀…힘든 참에 내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었달까.”
내 앞에 엎드려 ‘아니 되옵니다, 분부를 거두어 주소서!’를 연발하는 신하들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딱히 별다른 건 아니었다. 내가 아직 권력을 확실히 쥐고 있구나, 신하들이 내 눈치를 보는구나, 내 자리를 넘보는 놈은 없구나 하고 확인하는 데서 오는 쾌감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냥 신하들 놓고 충성심 테스트한 거잖아.”
대놓고 돌직구를 던지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으려니 상희가 두 팔을 뻗어 내 머리를 자기 품에 꼭 끌어안았다. 매끄러운 비단 속옷이 얼굴을 부드럽게 마찰했다.
“너 요즘 많이 힘들었구나? 그런 일까지 하면서 위안을 얻을 정도로. 내가 뭔가 제대로 된 도움이라도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거밖에 없네.”
상희는 이젠 수학에서도, 의학에서도 거의 손을 뗐다. 혜민서에서 왕실 비빈들이 참가하는 봉사활동 같은 건 계속하고 의학교에서 외과술 수업도 듣지만 그게 전부다. 이제 상희가 아는 정도는 조선에서 당연한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상희가 가르친 관상감 관원들이 이제 상희만큼 수학을 한다. 본래 관상감에 속해 있던 산학 관원 중 일부와 종학에서 솜씨를 발휘한 종친 일부를 모아 산학교를 새로 만들었다. 여기서 좋은 성적을 얻은 이들이 올해부터 각 감영 소재지에 있는 향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물론 아직은 향시건 대과건 과거시험에 수학이 들어가진 않는다. 하지만 밑에서부터 수학 교육이 시작되면 적어도 한 세대 뒤에는 그렇게 될 거다. 수학 공식을 외우느라 머리를 감싸 쥐는 응시생들이 과장(科場)을 가득 채우게 되겠지.
의학도 마찬가지다. 상희가 아는 바를 동의보감에 전부 털어 넣고 나자, 상희가 의학계에서 차지하는 입지는 당연하게도 줄어들었다. 상희가 아는 지식이 자연스럽게 책을 통해 사방으로 널리 퍼져나갔으니까 말이다.
동의보감이 퍼진 범위는 조선 내부만이 아니다. 내가 확산시킨 동북아시아 교역망을 통해서 동의보감은 중국, 일본까지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갔다. 세 나라 모두 한자문화권이니까 굳이 번역이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이 그냥 펼치고 보면 되는 탓이다.
동의보감을 처음 출판할 때부터 이 문제는 당연히 예상되었지만, 조정에서 딱히 논란거리도 되지 않았다. 이미 천여 년도 전부터 동아시아 삼국 사이에는 각종 서적이 중요한 교역품 중 하나였고, 그 안에는 의서도 당연히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저지를 때조차 의서는 태우지 않았다. 그 뒤로 의서가 금서가 되거나 반출이 금지된 적도 없다. 실제 역사에서도 동의보감이 중국이나 일본에 가서 팔리는 데 어떤 제약도 없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물론 워낙 권수가 많고 비싸니까 아무나 들여놓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광범위하게 지식이 퍼진 건 사실이고, 자연스럽게 상희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졌다. 수학에서와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아직은 내가 원조라고 해서 존중을 받지만…다음 생에 또 조선에서 태어나면 그땐 뭘 하게 될까 싶어. 수학도, 의학도 전부 남들 하는 만큼 하는 게 고작일 텐데. 영재라는 취급 정도는 받을지 몰라도, 나는 미래지식 말고는 그냥 평범한 여자가 될 거야 아마.”
내 뒤통수를 어루만지는 상희의 목소리가 쓸쓸했다.
“그래도 넌 나처럼 되진 않을 테니까 힘내. 그리고 힘들고 쉬고 싶으면 나한테 와. 언제든 안아주고 쉬게 해줄 테니까.”
“고마워.”
고개를 들어 상희와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이미 30년은 족히 함께했고, 앞으로 또 얼마나 함께 있을지 모르는 동반자다. 새삼 편안한 기분과 여기 있어 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 너 선위하면 안 되는 이유 하나 더 있어.”
갑자기 상희의 눈에 장난기가 돌았다. 나도 웃으며 반문했다.
“뭔데?”
“천녀. 천녀가 너 왕 시켜준다고 약속했잖아? 그러니까 네가 양위하고 옥좌에서 내려오면 계약 깨졌다고 바로 죽여 버릴지도 몰라. 그러면 난 또 혼자 남잖아. 그러긴 싫어.”
아, 그 생각은 내가 미처 못 했다. 천녀한테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건강 관리 열심히 하면서 죽어라 버텨야겠다.
– 3 –
양위소동은 간단히 끝을 맺었지만, 내 스트레스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흉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2년째 닥치는 가뭄이고 보니, 각처에 있는 관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휼하는 수밖에 없었다.
“올해 구휼에 쓰고 나면 남는 곡식이 3백만 석이 되지 않을 듯합니다.”
“어쩔 수 없다. 곡식을 쌓아두고 백성을 굶주리게 할 수는 없으니, 적절히 방출하여 기근이 닥치지 않도록 처분하라.”
가뭄이 닥쳤지만, 그 피해가 큰 지역은 본국뿐이다. 대남도는 가뭄이 뭔가요 하는 수준이고 구주 역시 평안하다. 북방 3주도 비교적 피해가 적은 편이다.
“평소 술을 빚는 데 쓰던 잡곡과 담저를 모두 식량으로 돌리니, 북방에서는 주민들이 딱히 기근을 겪지 않고 있습니다. 북방에 여유가 있는 잡곡 일부를 함경도와 평안도로 돌리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라.”
평시에 술 생산을 늘려 잉여곡물을 만들어두었다가 기근 때 식량으로 돌린다는 아이디어가 이렇게 빨리 성공을 거둘 줄이야. 성공하고도 뒷맛은 찝찝하다만.
“지난달부터 미수(尾宿 : 이십팔수(二十八宿) 별자리 중 동방 청룡에 해당하는 별자리. 전갈자리의 일부에 해당함)분야에 객성(客星)이 나타났는데, 객성은 적성(賊星)입니다. 실로 이 환란은 모두 객성이 나타남으로써 비롯되었으니, 이 어찌 평범한 횡액이라 하겠습니까.”
관상감에서는 객성, 그러니까 손님별이 나타났다고 지난달부터 난리다. 아마 어디선가 새로 터진 초신성인 모양인데, 나로서는 그까짓 게 뭐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다. 하지만 이 시대는 동서를 막론하고 별이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는 시대니 뭐 어쩌겠는가.
“그래서, 하늘이 과인이 부덕하다고 별을 통해 재앙을 내렸단 말인가?”
“아, 아니옵니다! 신은 단지 올해 운수가 좋지 않고 객성은 그저 그 조짐을 알리는 징조일 뿐이라는 말씀을 올리고자 하였을 뿐입니다. 신의 언사가 전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다면 부디 벌을 내리소서!”
예조참판 최광현이 납작 엎드려 부들부들 떨었다. 아무래도 지난번 양위소동 이후 신하들이 부쩍 내 눈치를 더 보는 것 같다. 물론 이항복이나 정인홍처럼 평소랑 다를 거 없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만.
“되었다, 일어나라.”
최광현을 일으켜 세우고 나니 문득 그 말이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야 점성술 같은 거 안 믿지만, 어딘가 책임을 떠넘기고 싶은 심정은 있다. 그 객성은 앞으로도 골치 아픈 일이 뭔가 더 생기리라는 전조가 맞을까? 가뭄 말고 뭐가 또 터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