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16
2부 5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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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이기빈이 콜카타에서 보낸 장계 내용은 모두, 정말, 완전히, 100% 사실이었다. 그리고 거기 빠져 있는 미싱 링크도 모조리 채워졌다. 본인이 벽란도에 도착해서 지난번에 보낸 요약본보다 상세한 완전판 장계를 제출했으니까 말이다.
교동도에서 처음 들어온 ‘정체불명의 선단 접근’ 보고를 받았을 때는 아연실색했다. 곧이어 개성부윤이 보낸 파발 편으로 벽란도에서 이기빈이 직접 보낸 장계를 받았을 때는 말 그대로 뒤로 자빠질 뻔했다. 편전에서 그 내용을 파악하고 나니 혼이 나갈 지경이다.
분명히 내가, 중신들이 화를 내야 하는 대목도 있었다. 모카 태수가 우리 관원을 매질하고 내 친서를 찢어발겼다는 대목에서는 분명히 조정 전체가 격분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부터 이어지는 모카 공략 논의와 그 결과를 들으니 어이가 가출을 했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시…신들도 차마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도승지가 장계를 펼쳐 든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 내용을 읽는 동안, 조정 중신들 역시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멍청하게 듣고만 있었다. 심지어 이항복조차 두 눈을 튀어나올 듯이 크게 떴다.
우리 세 사람이 그렇게 궁금해했던 ‘어떻게 요새와 포대가 지키는 큰 항구를 배 단 1척으로 점령했는가’에 대한 답도 당연히 있었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도중에 누군가가 그 장계를 손에 넣어서 개봉했을 때를 생각하면, 도저히 그 전말을 장계에 상세히 기록할 수 없었겠군…!”
혼잣말로 중얼거리긴 했지만, 두 번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기빈이 모카, 아덴, 소코트라 세 항구에서 벌인 행각은 명분을 젖혀놓고 판결하면 갈 데 없는 해적질이었다. 이기빈이 일반 상선을 몰았다면 좀 시끄럽고 말 일이지만, 문제는 관선(官船)을 몰고 그 짓을 했다는 거다.
이기빈이 어떤 방법을 써서 세 항구를 속속들이 털었는지, 그 사정이 상세히 퍼져나갔다면 문제가 심각했을 거다. 모방범이 나타나는 건 둘째 치고, 조선의 체면에까지 먹칠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수도 있다. 명분은 명분이고, 실상은 정말 둘러댈 수 없는 해적질이었으니까.
여기까지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정말 경악할 부분은 뒤에 따로 있었다.
『…이리하여 항하(恒河, 갠지스강) 하류에 있는 골가타(?茄朶)에 땅을 얻어 상관과 성채를 설치하였습니다. 또한, 현지에서 우연히 만나 회견한 무굴국 왕태자 ‘미르자 살림’으로부터는 막대한 선물과 함께 ‘옛 인연을 살려 새롭게 친해지자’는 제안도 받았습니다….』
지난번 장계에서는 상관 개설에 성공했다고만 하더니, 이건 상관 개설 정도로 줄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무굴 황태자와 친교를 맺어? 그것도 의형제를 맺고 호형호제했다고? 세상에 이게 현실이란 말인가?! 소설에서나 있을 일이잖아!!!
그나저나 ‘미르자 살림’은 또 누구야? 지금 무굴 황제가 3대인 악바르라고 했지? 그럼 다음 4대는 자한기르일 텐데? 5대가 샤 자한이고, 6대가 아우랑제브라고 기억한다. 그 뒤 황제들은 모른다만, 어차피 만날 일도 없겠지. 어쨌든 살림이라는 황제는 없었는데?
어쩌면 자한기르의 아명이 미르자 살림인지도 모르겠다. 이건 지금 당장 따져야 할 문제도 아니니 걍 넘기자.
“거짓은 아닌…듯하옵니다. 무굴 왕세자가 선물했다고 하는 코끼리 3두와 보화를 가득 실은 천축국 배 1척이 천회사를 따라온 것이 분명하니, 이를 어찌 거짓이라 하겠습니까.”
“나도 듣고 있소, 영상. 이기빈이 이룬 결과가 너무도 놀랍고 황망하여 차마 지적할 말이 없으나, 지금 벽란도에 함대가 분명히 들어와 있다고 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구려.”
이기빈 함대…는 확실히 벽란도에 있다. 출발할 때 타고 갔던 배 1척 외에 새로 획득한 배 12척 중에서 돈 주고 산 배는 1척밖에 없었다. 8척은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배를 탈취했고 2척은 해적선을 나포했다. 남은 1척이 바로 인도에서 선물로 받았다는 배였다.
500t급은 되어 보이는 이 배에는 무굴 측이 고용한 포르투갈인 항해사가 지휘하는 인도인 선원 106명이 타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타던 베트남산 코끼리보다 더 큰 인도산 전투코끼리 3마리와 상부(象夫), 기타 코끼리를 시중드는 인원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코끼리 외에도 막대한 양의 보석과 금은, 향료 등의 보물과 염초가 실려 있었다. 이기빈에 따르면, 무굴 왕세자인 미르자 살림은 먼 옛날 원나라 때부터 연원이 이어지는 양측의 인연을 언급하면서 가볍게 선물을 내주었다고 한다. 물론 정말로 공짜는 아니긴 했다.
『…‘이 정도는 별 부담도 안 되니까 편히 받으라’라면서 상자에 가득한 금은을 주었습니다. 신이 이건 너무 많다고 하자 괜찮다며, 정 갚고 싶으면 나중에 왜병을 데려오라 하였습니다. 미르자 살림은 휘하에 왜병 백여 명을 거느리고 있는데, 용맹하다 하여 무척 아낍니다….』
그래, 뭔가 대가를 바라긴 하는구나. 용병 고용 비용을 선불로 받았다고 생각하니까 차라리 마음이 편하네.
그 외에 아라비아에서 얻은 금은보석과 향료, 기타 물품까지 합치면 그 가치는 은으로 쳐서 총 180만 냥에 달한다. 그중에 30만 냥이 무굴 제국에서 받아온 선물이고 10만 냥은 진짜로 해적선을 붙잡아서 번 돈, 나머지 140만 냥이 항구 세 곳을 털어 얻은 소득이다.
여기서 70만 냥은 모카, 40만 냥은 아덴, 30만 냥은 소코트라에서 나왔다. 아덴과 소코트라 두 항구는 기습으로 점거한 모카와 달리 격전이 벌어지는 바람에 소실된 재물이 많았다.
어쨌든 무사히 가져온 180만 냥으로도 심장이 멈출 정도로 큰 액수다. 탐동사가 가져온 은 40만 냥 어치 금으로도 조정이 뒤집힐 뻔하고 온 도성이 들썩거렸었다. 게다가 이 180만 냥 어치 보물에는 금이나 은 외에도 보석과 공예품을 비롯한 온갖 사치품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 더해 데리고 온 사람도 장난이 아니다. 인도인 외에 아랍인 선원이 268명이나 있고, 투르크 노예였다가 우리 편으로 전향한 백인 병사 286명과 흑인 병사 127명이 있다. 흑인은 전원 동아프리카 출신, 백인은 대부분 슬라브인이고 소수 이탈리아 출신이 섞여 있었다.
이것도 그나마 오다가 줄어든 거다. 이기빈은 콜카타 상관에 조선인 37명과 노예병 88명을 남기고 왔다. 이들을 더했으면 조선에 온 노예병은 500명에 달했을 거다.
여자도 12명 있는데, 이들은 조금 경우가 다르다. 역시 노예였던 병사나 선원들과 달리, 이 여자들은 자의로 이기빈을 따라나서지 않았다. 이기빈이 자기 손에 들어온 노예 중에서 내게 전리품으로 진상할 미녀를 골라온 것이다. 그래서 전원 묘령의 슬라브계 백인들이다.
내가 특별히 지시했던 커피 종자도 빠트리지 않았다. 아니, 빠트리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익히지 않은 생 종자에다 화분에 심은 묘목, 커피 재배에 숙달된 농부들까지 데려왔다니 그저 입을 벌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 농부들까지, 외국인들 모두 수창궁에 임시로 대기하는 중이다.
이 모든 성과를 위해 치른 대가는 얻은 것에 비하면 솔직히 적었다. 이기빈이 데려간 군사 500명 중에서 질병과 전투 등으로 사망한 자들이 38명, 대남도에서 추가로 승선한 군사 50명 중에서는 12명이 죽었다. 겨우 50명밖에 잃지 않고 저 큰 전과를 거둔 거다.
다만 우리 편으로 넘어와서 싸우다가 죽은 노예병들이 3백 명 정도 된다고는 했다. 하지만 그건 현지에서 임시로 고용한 인원들이라 우리 손실이라고 하기도 어려우니, 일단은 계산하지 않는다. 이기빈조차 딱히 아쉬워하지 않는 데 뭐 어떤가?
마침내 장계 낭독이 끝나고 도승지가 자리에 앉았다. 편전 안에서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그러다가 이덕형이 이기빈을 비판하는 첫 포문을 열었다.
“이 일은 실로 큰 문제입니다. 나라의 배를 끌고 나간 장수가 타국의 배와 항구를 멋대로 습격하여 약탈했으니, 이 어찌 가벼이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이덕형은 조선 수군이 지켜온 관례에 덧붙여서 유럽의 관습도 인용했다. 유럽에서는 타국의 항구를 공격해서 약탈하는 일이 흔하지만, 그건 전시에만 허용되는 행위라고 말이다. 평시에 타국의 배나 항구를 습격하는 자들은 오직 해적뿐이다.
“모카 태수가 방자하게 군 일은 분명 잘못이나, 대응이 너무 과하였습니다. 이번 일로 얻은 재물이 아무리 많다 해도, 이는 법도와 도리의 문제입니다. 그대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이덕형은 이기빈에 대한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평소 국정을 처리할 때 이토록 강경한 태도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이덕형으로서는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이항복도 가세했다.
“만약 이를 용납한다면, 외지에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있는 장수들이 장차 멋대로 도적질을 벌여도 막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냥 두면 우리 군대 전체가 도적의 무리로 탈바꿈할 것이니,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천회사 이기빈을 꼭 벌하시어 군의 기강을 세우소서.”
“그대의 말이 옳기는 하다. 허나….”
이대로 이기빈에게 벌만 주고 이번 사건을 끝낼 수는 없다. 이기빈이 세운 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내가 하라고 한 일은 다 했고, 정말로 해적도 토벌했으며, 무굴 제국과도 상관 설치 정도가 아니라 아주 돈독한 우호 관계를 맺고 왔다. 이걸 어떻게 벌만 주겠는가.
게다가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장본인은 모카 태수였다. 그놈이 아니었다면 이기빈이 이렇게 폭주하지도 않았을 거다. 감히 내 친서를 찢고, 신하를 채찍질해? 찢어 죽이고도 남을 일이다. 그 일을 생각하면 분명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전하, 아니 되옵니다! 신은 천회사 이기빈을 벌함이 마땅치 않으며, 도리어 상을 내리셔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역시나 반대하는 이가 나왔다. 대사헌 정인홍이 천둥 치는 목소리로 대뜸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 목소리가 하도 우렁차서, 정인홍이 이의를 제기했다는 사실보다 커다란 목소리에 더 놀랄 지경이었다.
“애초에 죄를 지은 것은 모카를 통치하는 돌궐국 태수였습니다! 일개 지방관에 불과한 자가 멋대로 전하께서 보내신 관헌을 매질하고 친서를 훼손하였습니다. 이 어찌 놈을 붙잡아 찢어 죽여도 마땅치 않은 죄라 하겠습니까?”
내 4총은 도리어 이 상황에서 선뜻 나서지 못했다. 도리어 평소 간간이 나랑 충돌이 있었던 정인홍을 비롯한 야권(?) 신하들이 더 열을 냈다.
“그대들은 생각해 보시오! 만약 왜국 땅 영주 중 하나가 모카 태수처럼 감히 전하께서 친히 내리신 칙서를 찢고 사신을 매질했다면, 과연 지금 가만히 있었겠소? 온 조정이 당장 군사를 보내 놈이 있는 성을 불태우고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자며 아우성치지 않았겠소?”
상황을 바꾸니 일이 또 그렇게 되는구나. 확실히 이 일이 일본에서 일어났다면 앞뒤를 따질 것 없이 나부터도 삼군부에다 출동 명령을 내렸을 거다. 죽고 싶지 않은 다음에야 그런 미친 짓을 저지를 일본 영주도 없겠지만 말이다.
“전하, 가배 종자가 돌궐에서 유출을 엄히 통제하는 금제품이었다 하나, 장계에서 적었듯이 천회사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저 가격이 비싸서 흔히 유통하지 않는 줄로만 알고서 구할 곳을 수소문하였을 뿐인데, 저들이 이런 참담한 짓을 했으니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기빈은 온 조정이 들여다볼 장계에다 커피가 금제품인 줄 알면서 불법적으로 빼낼 구멍을 찾았다고 사실대로 적을 만큼 바보가 아니다. 그건 남들 모르게 내가 귀띔해준 정보였으니까.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는 그런 건 몰랐던 거다.
“가배 종자 유출이 그렇게 큰 죄였다고 해도, 돌궐 태수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잘못입니다. 엄히 꾸짖고 내치기만 해도 충분했을 것을, 감히 주상전하께서 친히 골라 보내신 관리를 자기 멋대로 매질하고 무엄하게도 친서를 훼손했습니다. 이는 죽어 마땅한 죄입니다.”
좌찬성이 된 유영경의 뒤를 이어 이조판서 자리에 오른 이광현이 열변을 토했다. 정작 외교 담당인 예조판서 홍진은 아무 말도 못 하고서 죽을상을 짓고 있다.
“더구나 모카에서는 백성들이 태수의 죄를 용서해달라며 스스로 재물을 헌납하였습니다. 이 어찌 평범한 해적과 같다 하겠습니까? 천회사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병조 기록관들 역시 일지에 같은 내용을 적었습니다. 이는 받아들임이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호조판서 송준도 이쪽 편에 섰다. 평소 인품으로 보면 해적질을 인정하자고 할 사람이 절대 아닌데, 안 그래도 가뭄으로 돈이 궁한 참에 막대한 재보를 보니 눈이 돌아간 모양이다.
“모카 공격은 모카 태수 때문이었다고 칩시다. 하지만 아덴과 지복도(소코트라)에서 벌어진 일은 어찌 설명하시겠소?”
좌의정 이원익이 나섰다. 조정 전체가 이기빈을 옹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질 조짐이 보이니, 차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모양이다.
“이미 모카에서 충돌이 벌어졌으므로 돌궐은 명백한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좌상 대감. 그렇다면 적이 추격하지 못하도록 돌궐 수군이 집결한 아덴을 먼저 쳐 제압하는 것도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일입니다. 만 리 밖 장수의 결정을 어찌 조정에서 왈가왈부하겠습니까?”
정인홍은 이기빈을 옹호하는 대열 선두에 서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강경하게 말이다.
“지복도에서는 부당한 거래를 항의하였을 뿐인데 저들이 선제공격을 가했습니다. 천회사는 이에 반격을 가해 응징했을 뿐입니다. 어찌 이것이 우리 잘못이겠습니까?”
이기빈이 쓴 장계 내용으로만 보면 확실히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냥 포격만 하고 떠나올 수도 있었는데 굳이 상륙해서 노략질을 한 건 어떻게 합리화할 수 있을까?
“후한 영평 16년, 명제가 가사마(假司馬) 자리에 있던 반초를 선선국(?善國)에 사자로 보낸 때 일을 생각해 보시옵소서. 그때 선선국 왕은 흉노 사신에게 기울어져 반초 일행을 소홀하게 대했고, 반초 일행은 자칫 흉노에게 넘겨질 수도 있었습니다.”
영평(永平) 16년은 서기 73년으로, 광무제의 넷째 아들인 명제(明帝)가 재위한 지 16년째 되던 해다. 명제는 과거 한무제 때 한때 정복했던 서역을 다시 손에 넣으려고 반초를 비롯한 사신들을 보냈었다.
“그때 반초는 휘하에 거느린 장사 36인과 함께 흉노 사신을 몰살하여 천자의 위상을 크게 떨쳤습니다. 이로써 서역 50개국이 천자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물론 이번 일로써 우리가 인도양까지 지배할 수는 없겠으나, 누구도 전하의 깃발과 이름을 모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정인홍과 일부 중신들만이 아니다. 중추원 고관들 다수가 이기빈을 지지했다. 이들은 대개 정인홍, 곽재우와 같은 조식 계열이면서 정철이 쓴 를 읽고 투르크에 대한 혐오감을 품고 있는 이들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오스만은 흉노나 다름없는 야만족이었다.
“전하를 모욕한 모카 태수를 쳐서 벌한 일이야 마땅하다고 하겠습니다만, 나머지 두 사건은 그저 물욕에 차서 저지른 범행에다 적당한 명분을 가져다 붙였을 뿐입니다. 나쁜 사례가 되지 않도록 천회사 이기빈은 단연코 벌해야 합니다. 다만 공을 보아 벌을 줄일 수는 있겠습니다.”
4총을 비롯하여 서양 국제법 맛을 본 신하 대부분은 이쪽에 섰다. 쌍방이 모두 자기 논리에 따라 치열하게 싸웠고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다만 이론의 여지 없이 잘한 일인 인도 상관 개설 문제는 화두로 오르지 않았다. 이건 딱히 문제가 될 구석이 전혀 없으니까 말이다.
“전하, 신 사헌부 장령 서인혁이 한 말씀 아뢰겠사옵니다.”
이기빈에게 벌을 줘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반대론이 하도 강해서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데 누가 나한테 직접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아까는 분명히 없었던 얼굴이 하나 있었다. 이 추운 날씨에 얼굴에 진땀이 흐르는 걸 보니, 뒤늦게 뛰어온 모양이다.
“무엇이냐?”
전에도 언급했지만, 사간원이나 사헌부는 조정 내에서 가장 강력한 사림들의 아성이다. 그 안에 있으면서 선비다운 고고함을 유지하면 계속 머무르는 거고, ‘때가 타면’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좌찬성 유영경처럼 말이다.
“신이 개성에 가서 직접 보고 왔사온데, 천회사 이기빈에게 실로 큰 죄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