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17
2부 59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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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언급했지만, 사헌부와 사간원에다 사림들을 몰아두는 건 이유가 있다. 이들이 남의 흠을 잡아내는 솜씨는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사대부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를 어기는 자들은 걸리는 족족 이들의 밥이 되었다.
다만 옛날 이들의 손에서 맹위를 떨쳤던 무기인 풍문거핵(風聞擧劾, 소문만으로 고위관료를 탄핵할 수 있다)과 불문언근(不問言根, 자신이 주장한 근거를 대지 않아도 된다)은 폐지된 지 오래다. 그래서 서인혁도 직접 개성까지 뛰어갔다 온 거다. 터뜨릴 ‘거리’를 찾아서 말이다.
두말할 것도 없겠지만 조선 최강의 수사기관은 금위사다. 하지만 정호찬 시절에도 그랬듯이 역모 방지라는 본연의 임무에 너무 충실하다 보니, 금위사는 부패나 횡령 같은 비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보고하더라도 어쩌다 한번 몰아서 하지 실시간 보고 같은 건 안 한다.
하지만 사헌부와 사간원은 그런 쪽으로는 전문가가 다 되어있다. 옛날처럼 입으로만 하는 고발도 아니고, 발로 뛰면서 증거도 직접 모은다. 마치 감사원에 공수처를 섞어놓은 것 같은 이 두 관청이 있기에 굳이 금위사에 공직자 비리 수사를 안 시키는 거기도 하다.
“그래, 이기빈에게 얼마나 큰 죄가 또 있기에 그리 급하게 달려왔는가?”
‘또’ 있냐고 한 건 아라비아에서 벌인 약탈이 일단 죄는 죄기 때문이다. 그거 말고 뭐 죄가 될 게 있는 걸까? 그때 이항복이 한 예상대로, 무고한 상선을 노략질하고 장계에서 누락한 걸 밝혀내기라도 했나?
“지금 들으니 이기빈이 장계에서 회회국에서 얻은 미녀 12인을 진상한다고 하였던데, 신이 개성에 가서 보니 1명이 더 있었습니다. 13명이 맞습니다.”
서인혁은 남의 잘못을 찾아내느라고 눈이 벌게진 자들만 모여 있는 사헌부에서 뼈대가 굵은 관리였다. 장령이면 정4품이니 사헌부에서도 꽤 높은 자리에 있다. 당연히 이런 일에 도가 튼 자인데 고작 오자(誤字) 하나를 들고 와서 죄라고 하니 맥이 빠졌다.
“그래? 하지만 1명 정도야 적다가 실수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그게 그렇게 큰 죄였더냐?”
한자로 ‘二’와 ‘三’은 줄 하나밖에는 차이가 안 난다. 적다가 뭔가 착각해서 잘못 적는 일은 물론이고 실수로 줄 하나 덜 긋고 더 긋는 정도 실수는 얼마든지 범할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공문서를 작성할 때도 무종수가 어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아닙니다. 분명 1명을 고의로 빼돌린 것입니다.”
서인혁의 눈에서 광채가 일었다. 이거, 뭔가 확실하게 캐내긴 한 모양이다. 편전을 채우고 있는 신하들의 시선이 어느새 이 까무잡잡한 중년 관원에게 집중되었다.
“그 1명은 기빈이 이미 탐하여 멋대로 자기 첩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어전에는 내놓지도 않을 생각이라 하니, 이 어찌 임금을 속이는 기군망상이 아니겠습니까?”
“무엇이라? 빼돌려서 첩으로 삼아?”
포로 빼돌리기, 그거 박원종이 잘하던 짓이었지. 그것도 미색이 뛰어난 여자 포로만. 어쩌면 그렇게 인간들이 하는 짓은 변하지를 않을까?
어쨌든 정말 복음 같은 반가운 소식이다. 사헌부가 또 한 번 밥값을 제대로 했구나. 이기빈 이놈한테 벌을 내리긴 해야겠는데, 도대체 어떤 명분으로 벌을 내릴지 정말 고민이었는데 잘 됐다. 마침 딱 적절한 죄목이다. 간만에 연기 좀 하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모든 포로는 일단 내가 확인한 후 장졸들이 세운 공적에 따라 처분하는 법이거늘, 일선에 선 장수가 멋대로 포로를 빼돌리다니?”
현장에서 적당히 데리고 즐기다가 버리고 왔으면 차라리 문제가 안 된다. 아무도 모르니까. 하지만 본국에 데려오기까지 했으니 이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이번에 기빈이 세운 공을 감안하면 잡아 온 양녀(洋女)를 하나쯤 상으로 내려주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내게 보고도 없이 멋대로 차지해 첩으로 삼았으니 기빈이 임금을 속이지 않았다 할 수 없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러하옵니다.”
신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전후가 너무도 명백한 일이니 반박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여태까지 이기빈을 극력 옹호하던 정인홍은 물론이고, 다른 신하들도 이 문제로는 입을 열지 못했다. 망설일 것 없이 곧바로 판결을 내렸다.
“기군망상은 대역죄에 준한다! 본래라면 마땅히 참형에 처해야 하겠으나, 이번에 이기빈이 세운 공이 지극히 크니 당분간 백의종군에 처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다른 벌을 더 내리지는 않겠으니, 집에 있으면서 스스로가 지은 죄를 되새기며 잘못을 깨달을지어다.”
사실 백의종군은 그렇게 중한 벌이 아니다. 가벼운 보직해임 정도일 뿐이라, 백의종군 중에 임무를 맡아 수행할 수도 있고 전선에 나갈 수도 있다. 실제 역사에서 이순신도 백의종군 때 시전부락 토벌전에 나가지 않았던가.
정인홍을 비롯한 신하들의 뜻에 따라, 이기빈이 장수로서 한 일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고 넘어갔다. 하지만 일단 벌은 내리긴 했으니 국제파(?) 신하들의 의견도 들은 셈이다. 이기빈에 대한 처분이 결정되자 나머지는 금방 끝났다.
“비록 기빈에게 벌을 내리기는 했으나, 군사들은 죄가 없으니 탐동사의 예에 따라 상여금을 주도록 한다. 또한, 적에게서 나포한 선박과 재물의 절반을 수졸들에게 분급하는 제도에 따라 이번 원정에서 귀환한 장졸 500명에게 75만 냥을 공적에 따라 분배하도록 하라!”
거둬들인 재물의 총액은 180만 냥이지만, 그중에서 무굴 황태자가 ‘조선 임금에게’ 선물한 30만 냥 어치는 내 몫이니까 분배 대상에서 빠진다. 나머지 150만 냥만 ‘전리품’으로 인정해 분배 대상으로 삼은 거다. 여기서 또 절반은 국고로 들어가고, 나머지만 장졸들에게 준다.
이번에 분배받을 인원이 500명이니 평균을 내면 1인당 1500냥이지만, 모두 이만큼 받는 건 아니다. 현재 전리품 분배 규정으로는 50%가 국가 몫, 5%가 수사 몫, 5%가 선장 몫, 10%가 군관들 몫, 나머지 30%가 수졸들 몫이다(판옥선이면 여기서 ⅓인 10%를 격군에게 할당한다).
수졸들은 숫자가 많으니까 30%라고 해봐야 각자에게 돌아가는 액수는 많지가 않다. 그래도 이번 항해에서 거둔 재물이 워낙 많아서, 1인당 5백 냥은 주게 될 듯하다. 하지만 이것도 쌀 몇 석 받는 게 보통이었던 왜란 때 포상금에 비하면 천지개벽할 액수다.
“이기빈은 수사인 셈이니 7만 5천 냥을 받게 됩니다. 이는 실로 유례가 없는 거액인데, 그 큰돈을 그대로 지급하시겠습니까?”
“공은 공이고 과는 과이니 법에 따라 줄 것은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다만 이는 이번 일이 워낙 황당한 사건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니, 추후 다른 자가 흉내를 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일로 생각이 확실히 굳어졌다. 나는 앞으로도 사략선 같은 건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사략선이 해적으로 바뀌는 건 정말 한순간이고, 그렇게 생겨난 조선구들은 외국선만 터는 게 아니라 조선 배도 털 거다. 욕심에 미친 인간들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지금도 해적이 널렸는데 더 늘릴 필요는 없다. 우리 손으로 해적을 양산해놓고 나중에 다시 토벌하느라 애를 먹느니, 처음부터 생길 소지를 없애야 한다. 적선을 공격할 수 있는 권리는 앞으로도 군선에만 허용한다. 민간선은 자위력을 확보할 정도로만 무장하면 족하다.
“본래대로라면 나포한 배를 판 값도 수졸들에게 분배해야 하나, 이번에는 얻은 재물이 워낙 많으니 배는 뺀다. 그 돈으로 천회사 출발에 들인 경비 충당에 쓰고, 우리에게 귀부한 회회군(回回軍) 460명에게 일부 나누어주어 각자 조선에 정착하는 밑천으로 삼게 하라.”
수군이 나포한 배는 보통 공매해서 상선으로 처분한다. 이번에는 선물 받은 배 1척을 빼고 팔아치울 배만 11척이나 되니, 그 액수도 만만찮다. 한 10만 냥은 나오지 않을까.
선원들은 병사들과 대우가 다르다. 포상금 같은 거 없이 그냥 배와 함께 패키지로 묶어놓고 새 주인 밑에서 일하게 한다. 이건 왜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하, 이기빈이 몰래 챙긴 양첩은 어찌하시겠나이까.”
“기빈이 법도를 어기기는 하였으나, 기왕 맺은 인연이니 집에 들이도록 특별히 허락하겠다. 단 개선식에 다른 양녀(洋女)들과 함께 데리고 나와 내게 보이기는 해야 할 것이다.”
다른 노예들과 함께 모카에서 빼앗았다고 치면 한 1년 데리고 산 셈이다. 그 정도 지났으면 여자 쪽에서도 웬만큼 정이 들었을 테니 억지로 갈라놓지는 않겠다. 다만 그전에 이기빈이 내 앞에 와서 잘못을 빌고 용서받는 형식은 갖춰야겠지.
“지난번 탐동사 때 그랬듯이, 천회사가 동반한 사람과 물화(物貨)는 도성으로 가져와 행진케 하라. 도성 백성들에게 신기한 구경을 시켜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규모가 좀 크긴 하다만 한강이 덜 녹았으니 다 육로로 운반해야겠지. 지난번처럼 개성부에 있는 수레를 싹 긁어모으면 닷새쯤 후에 개선 행진을 벌일 수 있을 듯하다. 그날이 마침 섣달 그믐날이니, 도성 백성들은 정말 신기한 구경을 하고서 을사년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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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를 기다려서 신하들과 광화문 문루에 올라서니, 남대문에서부터 시작되는 행진 대열이 한눈에 들어왔다. 탐동사 때도 그랬지만, 승전 축하 행사로 벌이는 개선 행진과는 좀 다르다. 서울을 동서로 횡단하는 1차 행진은 생략하고 남대문으로 들어와 육조대로만 행진한다.
“더운 데서 온 자들이 고생이 많겠구나.”
오늘은 음력으로는 섣달 그믐날, 12월 30일이지만 양력으로는 겨울이 슬슬 끝나가는 2월 17일이다. 12월 17일이 입춘이었으니까 분명 봄이 오고 있기는 하지만, 인도나 아프리카에서 온 자들에게는 아직도 충분히 추운 날씨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탐동사 때보다는 날씨가 많이 풀렸사옵니다.”
“그래서 백성들도 더 많이 나온 것인가.”
언뜻 보아도 지난번보다 더 많은 관중이 몰려나왔다. 이번 천회사 행렬이 탐동사 때보다 더 규모가 크기도 하고, 며칠 전부터 조보를 통해 행진 날짜를 공지하고 항해 성과를 홍보했으니 더 많은 구경꾼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한성부에서 관리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막사 주위에 얼마나 많이들 모여드는지.”
개성에서 오는 짐과 사람을 수용하면서 행진 준비를 하느라 용산에 임시 숙영지를 지었다. 조보를 통해 천회사가 거둔 성과를 접한 도성의 호사가들은 호기심이 차올랐고, 뭔가 좀 더 구경할 게 없나 하며 너도나도 성벽 밖으로 나갔다.
이런 사태를 예상한 한성부에서는 숙영지 둘레에 가림천을 쳐서 가리고, 주변에는 포졸들을 풀어 접근을 막았다. 그래도 개성에서 들어오는 수레와 사람의 행렬은 주변을 메운 백성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온 도성이 계속 그 문제로 떠들썩했다.
가장 눈길을 끈 존재는 회회군 소속 흑인 군사들이었다. 백인이야 이미 도성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흑인은 보기 어려운 탓이다. 기껏해야 강화도 목장에 있는 무어인들뿐이니까.
“도성에 올라오는 중에는 그냥 평범하고 허름한 옷을 입었다 하였지. 오늘 제대로 진면목을 보여주겠구먼.”
개성에서 올라올 때는 이틀 내내 걸어야 하니 다들 편하게 입혔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이기빈은 구경하러 나온 백성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최대한 화려하고 웅장한 행진 대열을 만들어 보이겠노라고 했다. 어디, 기대해 보자.
선두에는 이기빈이 데리고 갔던 우리 군사들이 섰다. 주변에 늘어선 백성들을 향해 두 팔을 내젓고 고함을 지르며 자랑스럽게 공적을 과시했다. 흐뭇한 광경이었지만 질서 있는 행진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아직 바다 위에서 멋대로 지내던 버릇이 몸에 남은 모양이옵니다.”
신하들이 혀를 찼다. 나도 동감이다만, 뭐 봐주기로 했다. 저놈들도 지금 오죽 기쁘겠나.
“이번에는 회회군이옵니다.”
460명이나 되는 건장한 흑인과 백인 장정들이 내갑의 위에 투르크식 경번갑을 걸치고 열을 맞추어 당당하게 걸어왔다. 밤새 닦았는지 갑옷도, 칼도, 창도 번쩍이며 빛났다. 전부 은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육조거리가 환성으로 가득 찼다.
“그대들이 도성 거리를 돌아다닐 때보다 환성이 더 크군.”
“갑옷과 숫자 때문입니다.”
광화문 문루 위에 나와 함께 서 있던 내금위장 ? 내금위장은 3명이다 – 맥클로스키가 다소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과 똑같은 외국인 용병인데 자기들보다 눈길을 끄는 모습을 보니 배가 아픈 모양이다. 참, 맥클로스키는 이제 맥구로(貊究櫓)라는 조선 이름도 있다.
“저렇게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서, 수백 명이 행진하는데 어떻게 눈길을 끌지 못하겠습니까? 전하께서 저희 숙호위 정원을 300명으로 늘려주신다면 저희도 저런 모습을 얼마든지 선보여 보겠습니다.”
숙호위(宿虎衛)는 내금위 내에 조직한 스코틀랜드인 소대를 말한다. 현재 정원은 37명으로, 스코틀랜드를 칭하는 이름인 숙호국(?戶國)과 음이 같은 한자를 가져다 이름을 지었다.
“너무 그러지 마라. 저들도 모두 그대 밑에 편성할 테니.”
너무 눈에 띄는 외국인 병사들은 전선에 내보내기 어렵다. 일단 주력부대와 제대로 섞여서 움직이기도 어려운 놈들을 어떻게 싸움터에 보내나? 내 근위병으로 삼아 도성에서 장식품으로 쓰는 편이 훨씬 낫다.
저들을 모두 내금위에 넣고, 맥클로스키에게 내금위 내에 있는 외국인 부대를 총지휘하게 한다. 맹서군의 장 미셀은 기병만 챙기기도 바쁘니, 겸사복에서 따로 놀게 하면 된다.
다시 한번 봐도 번쩍이는 갑옷 대열이 볼만하다. 두툼한 내갑의 덕인지 흑인 병사들도 별로 추워하지 않는 듯하다. 백인들이야 동유럽 출신이니 이 정도 추위는 끄떡도 없는 모양이고.
“코끼리이옵니다!”
“저것이 천축에서 온 진짜 전상(戰象)인가….”
다음 차례가 인도에서 온 전투코끼리 3마리였다. 예전에 내가 데리고 있던 인도차이나 출신 코끼리들과 비교해서 어깨가 한 자는 족히 높았다. 우리 코끼리가 애초에 반쯤은 작업용으로 쓰는 용도였던 것과 달리, 이놈들은 정말 전투용으로만 훈련받은 진짜 전투코끼리라고 했다.
전신에서 번쩍이며 광채를 발하는 갑옷도 수준이 달랐다. 을미동정 때 우리 손으로 적당히 얼기설기 만들었던 코끼리 갑옷은 여기에 견줄 수도 없었다. 코끼리의 몸에 꼭 맞도록 재단한 철판 수천 조각을 엮어 만든 갑옷이 온몸을 보호했다. 조총탄 정도로는 뚫지도 못할 듯했다.
“저런 것을 몰고 돌진하면 뚫리지 않을 적진이 없겠사옵니다. 장창진도 밀어젖히고 돌입할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아니, 상대가 대포가 없다면 모르겠으나 저것도 대포에 맞으면 죽을 것이다.”
아무리 든든한 갑옷을 입혀도 대포 앞에서는 쓸모가 없으리라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다음 차례가 왔다. 막대한, 정말 막대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갖가지 보화를 실은 수레 수십 대가 코끼리들의 뒤를 따랐다.
코끼리가 지나갈 때만 해도 신기해하며 환호성을 지르던 백성들은 보물을 잔뜩 실은 수레 행렬을 보고서는 떡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긴, 탐동사 때보다도 더 휘황찬란한 모습을 보았으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영상, 저들 중에서 다수는 자기들도 바다를 건너가 보물을 얻겠다고 꿈꾸고 있겠지?”
“그럴 것입니다.”
이 소문이 퍼지면 수군에서 신병을 모집하기는 정말 쉬워지겠구나. 인도양에만 가면 보물이 기다리고 있다고 잔뜩 부풀려진 소문이 돌겠지. 게다가 적어도 은 500냥씩 분배받은 수졸들이 집에 돌아가면,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집에도 돈이 들어가면 더더욱.
본래 나포 포상금은 살아서 돌아온 수졸들에게만 주는 게 관례다. 전사한 이들에게는 전사 보상금이 따로 나가기 때문이다. 이중보상을 막자는 의도는 아니고, 나포 포상금이 있건 없건 전사 보상금은 일정하게 지급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죽어서 돌아오지 못한 50명에게도 살아남은 동료들이 받은 만큼의 나포 포상금을 가족에게 지급하게 했다. 저화 10섬밖에 안 되는 전사 보상금으로 끝내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건 호조에서 선납하고 선박 공매 대금에서 떼기로 했다.
선박 공매로 벌어들일 10만 냥 중에서 3만 냥이 사망자들 몫의 나포 포상금으로 나가고, 노예병들에게 정착비로 100냥씩 준다. 나머지는 천회사가 왕복하느라 소비한 경비를 벌충하는 데 쓰면 아귀가 딱 맞을 듯하다.
보물 수레들이 대열 뒤쪽에서 정지하자, 그 뒤를 따라오는 가마 열세 대 쪽으로 자연스럽게 눈길이 옮겨갔다. 웬 가마냐며 백성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기빈의 아름다운 꽃들이 오는군.”
입가에 저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며칠 전 이기빈과 주고받은 대화가 생각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