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20
2부 5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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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나무 방패를 세운 방패차 수십 대가 성벽을 향해 접근했다. 방패 뒤에 숨어서 총만 내민 조총수들이 성벽 위에 있는 수비군 병사들을 향해 총탄을 퍼부었다.
흙을 채운 자루로 만든 급조 방벽도 성벽을 향해 계속 뻗어 나갔다. 성에서 쏘아대는 화포 사격으로부터 몸을 피하면서 성벽으로 접근할 수 있게 참호를 파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했다.
“역시 왜병들을 팔기로 편입한 효과가 있구나. 우리 군사들이 저런 재주까지 부릴 줄 알게 되었다니, 생각도 못 한 일이 아니냐.”
누르하치는 성벽에서 쏘는 탄환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전장을 둘러보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듯 입맛을 다시며 한마디 덧붙이기를 잊지 않았다.
“조선군 것과 같은 큰 화포만 있으면 바랄 게 없겠군.”
예전에는 성을 공격하는 전법이라면 성벽에 사다리를 걸치고 기어오르는 방법밖에 몰랐다. 이제는 새 병사들 덕분에 전과 다른 전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조선군에 비하면 아직 많이 미흡했다. 조선군이 공성전을 어떻게 치르는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화포를 곧 가지게 될 겁니다, 아버님.”
왼쪽에서 말을 몰고 있던 둘째 다이샨이 부친을 위로했다. 하지만 오른쪽에서 뒤를 따르던 맏아들 추옌이 버럭 화를 내며 끼어들었다. 추옌의 나이는 올해 26세, 동생인 다이샨보다 3년 연상이다.
“너는 어찌 그리 생각이 짧으냐? 우리 만주는 예로부터 빠르게 움직이는 기병을 주력으로 하였는데, 어찌 거추장스럽게 화포를 끌고 다니겠는가? 화포를 가지면 화약과 포탄을 운반할 수레와 이를 지킬 보병도 편성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군대를 느리게 만들 뿐이다.”
그간 추옌은 해서부 잔당이나 몽골 침입자들을 상대로 하는 전투에서 용명을 떨쳐 부친에게 도로이버일러(多羅貝勒, 다라패륵)라 하는 봉작을 받고 용맹하다는 뜻의 홍(洪) 바투루(巴??, 파도로)라는 칭호도 받았다. 당연히 조선에서 ‘놀다 온’ 다이샨을 얕보았다.
다이샨도 지지 않았다. 자신을 비난하는 추옌을 서슴없이 맞받았다.
“하지만 버일러께서는 화포 없이 큰 성을 어찌 치겠습니까? 그리고 보병은 지금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저기 있는 왜군팔기는 보병이 아닙니까?”
팔기로 편제한 만주인 정규 병사는 모두 기병이다. 하지만 과거 슈르하치가 일본에 출정해 잡아 온 왜병 포로 4천 명이 ‘왜군팔기(倭軍八旗)’로 편제되어 보병으로 싸움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지금 공성전을 벌이는 주력이고, 말에서 내린 일부 만주인 병력이 이들을 돕고 있다.
누르하치는 조선이 수십 년 세월을 거쳐서 만들어낸 왜인여진을 유심히 관찰한 바 있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조선이 왜인여진을 만들 수 있었다면, 자신이 ‘왜인만주’를 만들어내지 못하리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조선이 했던 그대로 한다. 슈르하치가 끌고 온 왜병들을 노예로 만드는 대신 자유민 신분을 주고, 아내를 주어서 정착시킨다. 어차피 여자는 지금도 남아돌고 있다. 조선과 함께 해서부를 무너뜨리고 그 모든 잔당을 흡수한 여파다.
은혜를 모르는 몇몇 왜인들은 도망쳤다. 하지만 대부분 왜병은 누르하치에게 충성하며 총과 장창을 다루는 만주족 보병 전력의 중핵이 되어있었다. 공성전술 역시 이들이 일본에서 하던 방식을 충실히 선보이는 참이다.
“저들은 행군할 때는 말을 타고 전장에서만 도보로 전투하니 기병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느려터진 화포 따위를 엄호하는 데 기병을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적을 빠르게 들이쳐야 하는 기병을 화포 옆에 묶어둘 수는 없다.”
추옌은 그동안 쭉 부친 옆에서 성장하면서 군사를 이끌었다. 정예 기병을 이끌고 바람처럼 움직이며 적을 몰아치는 데 익숙했고, 한곳에 머물러 싸우는 일을 천하게 여겼다. ‘조상들께서 싸우던 방법이 아니다’라는 게 그의 입버릇이었다.
“너는 조선에 너무 오래 있었다. 우리는 어설프게 조선의 흉내를 낼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조상들께서 싸워오신 방식을 따르는 게 나아!”
“앞으로도 쭉 몽골 도적들이나 상대할 거라면 말이겠지요.”
형제간의 다툼은 다이샨이 조선에서 돌아오자마자 시작되었다. 지난 세월 동안 추옌은 부친 누르하치의 장자로서 후계자 경쟁에서 다른 동생들보다 확실히 한 발짝 앞서 있었다. 그러던 참에 갑자기 돌아온, 그것도 조선 왕녀를 아내로 데리고 온 동복동생이 반가울 리 없었다.
건주위 내에서 확보한 세력으로만 따지면 다이샨은 추옌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에는 조선 국왕이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고, 자연히 누가 우위라고 섣불리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다만 누르하치는 그 상황을 빤히 알면서도 어느 한쪽을 드러나게 지지하지 않았다.
“버일러께서는 조상을 거론하시는데, 옛날 대금(大金)을 건국한 우리 조상들도 분명 화포를 쓰셨습니다. 그때 지금 조선군이 가진 것처럼 큰 화포가 있었다면 그것도 쓰셨을 겁니다!”
“됐다, 그만해 두어라.”
부하들 앞에서 두 아들이 언성을 높일 기미가 보이자 누르하치가 제지했다. 하지만 그다지 강한 어조는 아니었다. 당면한 전투에 집중하라는, 가벼운 나무람이었다.
“나중 일은 나중 일이다. 너희는 지금 맡은 바에 집중하라. 추옌에겐 명나라 구원군 저지를, 다이샨에겐 성문을 뚫은 후 성내 제압을 맡겼을 것이다. 각기 실패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라.”
성을 함락했을 때 가장 영광스러운 임무는 당연히 성문을 뚫고 들어가서 적장의 목을 베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복잡하고 혼란에 빠진 성내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래서 추옌은 별 불평 없이 부친의 지시에 따랐다. 명나라 구원군과 결전을 벌이는 쪽이 훨씬 구미에 맞았다.
“예, 아버님.”
잠시 불려왔던 두 아들은 다시 자기 휘하 군사들에게로 돌아갔다. 뒤에서 그 모습을 차분히 지켜보던 측근 장수 호호리가 다가왔다.
“도로이버일러께서 아우와 충돌이 좀 심하신 것 같습니다. 주군께서 조금 손을 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이샨에게는 버일러 호칭이 아직 없다. 건주로 돌아온 뒤에 크게 세운 공은 없는 탓이다. 을미동정 때 싸운 공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버일러 칭호를 내리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일각에서 조심스레 나왔지만, 추옌이 벌컥 화를 내며 몽땅 뒤집어버렸다.
‘고작 3백 기를 데리고 조선군의 뒤만 졸졸 따라다닌 아이가 뭘 했다는 거요?’
그 자리에 있었던 다이샨의 얼굴이 곧바로 싸늘하게 굳어졌다. 누르하치는 태연한 표정으로 추옌에게 조용히 하라고 할 뿐이었고, 버일러 칭호 부여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 버렸다. 그 일 때문인지, 두 아들 사이의 감정 대립은 그 이후로 더 심각해졌다.
호호리 같은 중신들은 이 막중한 시점에 형제간의 다툼이 만주를 약화할 위험을 걱정했다. 하지만 정작 형제의 부친인 누르하치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나 자신도 이 나이가 되도록 아우들과 다 화합하지 못하는데 내 자식들인들 어찌 그러기를 바라겠는가?”
누르하치에게는 동생이 네 명이나 있다. 그중에서 둘째 무르하치(穆爾哈齊)와 막내 바야라(巴雅喇)는 이복동생인 데다 순종적이라 크게 경계할 필요가 없다. 이들 둘은 누르하치의 명에 따라 군사를 이끌면서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있다.
하지만 동복동생인 셋째 슈르하치는 다르다. 슈르하치는 한때 누르하치와 필적하는 규모의 세력을 거느렸고, 지금도 일본 원정에서 거둔 성과를 통해 사실상의 2인자로써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은가. 넷째 야르하치(雅爾哈齊)는 여전히 두 동복형 사이에서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내 후계자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 공을 세우고 살아남는 자가 내 자리를 이을 것이다.”
“누구를 후계자로 정하시든 신은 따를 것입니다.”
누르하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성벽 쪽에서 환호성이 올랐다.
“뚫렸다!”
조총을 든 왜병들이 제압사격을 퍼붓는 밑으로, 사다리를 든 왜병들이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 사다리로 성벽을 기어올라 총격 때문에 성가퀴 위로 머리를 내밀지 못하는 명나라 군사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삽시간에 성벽 위에 피바람이 불고 절규하는 비명이 메아리쳤다.
만주인처럼 머리를 깎았고 만주식 갑옷을 입었지만, 왜군은 역시 왜군이었다. 성벽 위에서 벌어지는 칼싸움은 일방적이었고 명나라 수비병들은 삽시간에 피보라를 뿜으며 나가떨어졌다.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성문이 안쪽에서 활짝 열렸다.
“돌입하라!”
다이샨이 지휘하는 정홍기(正紅旗) 병력이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돌진했다. 대열 가운데 선 다이샨이 부하들에게 호통치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맞서는 자는 모조리 베어라! 항복하는 자는 베지 마라!”
수비군을 몰살시키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명군이 모아둔 식량과 화약이다. 모두 허투알라로 가져가거나 불태워야 한다. 무순은 요동부에서 건주위를 견제하는 최일선이니, 여기 남겨두어 명나라 원정군이 사용하게 할 수는 없었다.
만주인들 역시 작년에 가뭄으로 흉년을 겪었다. 명군의 군량을 약탈하는 건 명군의 출진을 방해하는 사전조치면서 자신들에게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는 길이기도 했다. 화약 문제는 굳이 언급하고 나설 필요도 없다.
“포로는 절대 죽이지 말라고 다시 한번 명해라. 빼앗은 물자를 운반하려면 일손이 넉넉하게 필요하다.”
“예, 주군.”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다소 손실되는 건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노획하고서도 일손이 없어 운반하지 못한다면 더 속이 터질 일이다. 적진에 있는 물자야 얼마든지 불태워도 상관없지만, 일단 손에 넣은 시점부터는 내 재산이 아닌가.
“주군, 그런데 이 일로 정말 조선왕이 분격하지 않겠습니까?”
“조선왕이? 왜?”
누르하치는 불길과 함성이 오르는 무순성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대꾸했다. 걱정하는 태도가 분명한 호호리와는 전혀 달랐다.
“소인이 아무리 생각해도 조선왕은 우리 보고 황제께 맞서지 말고 고개를 숙이라고 권한 게 맞는 듯합니다. 그런데 사죄는커녕 무순에 선공을 가해버렸으니, 어찌 분격하지 않겠습니까?”
“조선왕이 바라는 건 명나라의 전쟁에 끌려 나오지 않는 거다. 그러려면 이게 최선이야.”
누르하치가 웃음을 터트렸다.
“황제가 토벌령을 철회하려면 슈르하치 녀석의 목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그놈이 순순히 목을 내놓을까? 그대가 생각하기에도 그럴 리는 없지? 그럼 명군이 출동하는 시기를 늦추는 방법은 이거 한 가지뿐이지 않은가.”
“조선왕을 막다른 골목으로 모는 길이기도 합니다.”
명군이 선공할 때까지 참는다면 건주위는 천자에게 오해를 산 억울한 신하로서 자리매김할 수가 있다. 그러면 조선 국왕으로서도 훨씬 넓은 행동의 자유를 가지게 된다. 이번에는 몰래 시도한 중재를 공공연하게 시도할 수도 있고, 대놓고 출병을 말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쳐버리면, 충돌하는 시기는 늦어질지언정 조선왕에게도 출병 이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명군과 싸우는 건 피할 수 없다고 해도, 굳이 적을 늘어나게 할 건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조선군입니다.”
만주가 먼저 군사를 일으켜 선공하면 명백한 역신(逆臣)이 된다. 그러면 명나라의 제후국을 자처하는 조선으로서는 토벌군에 합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더 치열하게 싸울 것이다.
“이미 때늦은 후회이긴 합니다만, 역시 방어할 준비만 해두고 조선왕에게 적극적인 중재를 요청하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명이 우리를 토벌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준 것부터가 선공으로 제압하라고 암시를 준 거나 마찬가지다. 그럴 생각이 없었다면 밀사를 보내지도 않았으리라. 저런 저런, 아깝게도.”
누르하치는 인상을 크게 찌푸리며 무순성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서 불길이 새로이 오르고 있는데, 방어하는 명군이 지른 불인지 공격하는 만주군이 지른 불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조선군이 명군과 합세하여 공격해오면 또 어떠냐? 그것 역시 우리가 저들을 맞아 어떻게 싸우는가에 달려 있다. 결국, 일은 사람이 이루기 나름이다.”
“주군께서 이미 거기까지 고려하고 계시다니, 저는 더 이상 참견하지 않겠습니다.”
호호리가 예를 올리고 물러갔다. 누르하치는 불타는 무순성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다이샨이 조선에서 배워온 관용구 흉내를 내자면, 이 사건으로 이제 만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제 그 건너편 대안에서 영광과 번영을 찾아야 할 차례였다.
– 3 –
“대감, 큰일입니다! 요동 최일선 성채인 무순성이 건주위에게 함락되고, 급하게 구원에 나선 요동군도 참패하는 바람에 요동에서 모두 합쳐 2만에 달하는 군사를 잃었다고 합니다!”
북경 주재 익문사 관원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와 외쳤다. 책상에 앉아 본국에 가져갈 문서를 정리하던 유성룡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무엇이? 그것이 정말인가?”
유성룡은 겨우 명나라 조정에서 새 칙서를 받았다. 덤으로 건주위를 토벌할 명군의 상세한 출동 계획서까지 받았는데, 여기에는 당연히 조선군이 담당할 몫까지 명시되어 있었다.
출병은 여전히 6월이다. 본국에 이 횡액을 어찌 전하면 좋을지 걱정하며 귀국을 준비하던 참에, 난데없이 싸움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받았으니 기절초풍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 노추(奴酋)가 정말로 일을 저질렀구나!”
유성룡은 주상께서 누르하치에게 밀사를 보내 천자께 죄를 빌도록 권한다는 계획을 세웠을 때 이미 이런 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을 예견했었다. 다만 겨울이 다 지나가도록 별다른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어쩌면 자신이 오판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어찌 저들이 이런 짓을 벌였느냐? 이상한 소리를 하는 자는 없었느냐?”
혹시 조선에서 정보가 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까? 정승의 재촉을 받은 주재관은 허겁지겁 대답했다. 다만 그도 명나라 병부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를 급하게 듣고 달려온 참이라, 상세한 현지 사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소관도 다는 모르옵니다만, 병부에 들어온 생존자의 보고에 따르면 건주위에서 3만 대군을 동원하여 무순성을 단 사흘 만에 함락했다 합니다. 화포는 참호를 파서 피하고 화살과 탄환은 수레에 방패를 세워 막고 흙자루를 쌓아 막으면서 성에 근접했다 하옵니다.”
“실로 왜병들다운 전법이로구나.”
경인왜란 당시 유성룡은 도체찰사로서 대구성 방어를 총지휘한 바 있었다. 당시에 대구성은 노부나가가 지휘하는 일본군 본대로부터 맹공격을 받았고, 이로 인해 조선 역사상 최대규모의 공성전이 벌어졌었다. 조명 조정에서 유성룡만큼 일본식 공성전술에 익숙한 사람도 없으리라.
“그런데 놈들이 어이하여 무순을 쳤다 하던가?”
“대국에서 건주위 토벌을 나간다는 이야기는 이미 봄부터 온 천하에 파다했습니다. 무순에 군량을 집적하고 군사를 집결시킨다는 소문이 퍼진지 오래이니, 어찌 저들이 모르겠습니까?”
명군의 기밀 준수는 엉망진창이었다. 처음 병력을 새로 모아 훈련할 때만 해도 시중에서는 원정 목표가 할하 몽골인 줄로만 알았지만, 얼마 안 가서 누군가로부터 건주 토벌이 목표라는 사실이 누설되었다. 시중에 퍼진 그 소문은 건주위에도 필시 흘러 들어갔으리라.
“이제 전쟁은 정말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도 군사를 낼 수밖에 없겠구나.”
누르하치가 무순을 친 것은 고구려 영양왕이 수나라가 고구려를 치기 전에 미리 요서를 친 사건과 다를 바가 없다. 누르하치는 이로써 명나라와 완전히 관계를 끊겠다고 천하에 선포한 셈이었다.
“귀국은 연기다. 수레를 준비해라! 예부에 찾아가야겠다!”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으니 그대로 조선에 돌아갈 수는 없게 되어버렸다. 일단 예부에 가서 예부상서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을 표하고, 확실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은 뒤에 본국에 가서 전하께 알려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