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25
2부 6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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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평은 본래 옛 금나라의 수도 터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만포진 바로 건너에 있는 꽤 넓은 평지임에도 조선에서는 굳이 강을 건너 여기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여진족들이 무척 신성하게 여길뿐더러, 형식상으로는 명나라 영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상감께서도 그동안 이곳 황성평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신 적이 없으셨다고 했는데….”
도원수 종사관 장유는 투덜거리며 비석 주위에다 발판을 세우는 역군들을 감독했다. 높이가 스무 자가 넘는 이 비석은 실로 온 조선에 유례가 없을 만큼 거대했다. 무덤에다 이런 커다란 비석을 세우다니, 옛날 금나라 황제들은 정말 위세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도대체 금나라 황제 무덤에 새긴 비문 따위를 탁본해다가 어디다 쓰시려는 건지.”
19세의 나이로 향시에 붙었을 뿐, 아직 대과에 급제하지 않은 장유가 종사관으로 종군한 건 스승 이항복의 꼬드김 때문이었다. 이항복은 이번 출병에 종사관으로 종군하면 올해 겨울에 시행하는 속오군 훈련을 빠질 수 있다고 꼬드겼다.
“두 달 동안 줄 맞추어 걷고, 손동작 발동작을 맞추고, 눈밭을 뛰고, 온갖 잡놈들과 뒤엉켜 먹고 자면서 보내겠느냐, 아니면 편안히 말을 타고 도원수를 수행하면서 겨울이 오기 전에 두 달 동안 북쪽에 다녀오겠느냐?”
“저도 속오군 훈련에 빠지고는 싶사오나…소생은 아직 벼슬이 없는 백두(白頭)이온데, 어찌 종사관이 되겠습니까?”
“본래 종사관이란 장수가 자기 마음에 드는 이를 골라 뽑으면 되는 것이다. 전첨 김류 공은 어디 과거에 붙어서 경인년에 서기관으로 전장에 나갔더냐?”
전첨(典籤)은 종학에 등록한 종친을 관리하는 직책이다. 수업을 제대로 듣는지, 꾀병을 부려 나라 제사를 빼먹지는 않는지, 족친위에 등록된 이가 훈련에 빠지면 무슨 연유인지 확인하는 것도 모두 전첨이 맡아서 하는 일이다. 나름 중요한 일이라 정4품이다.
“도원수 김시민 공은 내 장인인 삼군부 도총사 대감과 막역한 사이고, 나와도 가깝다. 내가 부탁하면 너 정도는 데려가 줄 것이니라.”
그게 정말 좋은 일인지 확신하기도 전에 스승 이항복은 가버렸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았다. 이항복은 장유 자신뿐만 아니라, 역시 과거를 보지 않고 있는 이시백도 똑같은 말로 꼬드겨서 종사관으로 집어넣었음을 말이다. 견서사로 떠나지 않았으면 최명길도 끌어들였으리라.
그렇게 얼떨결에 종사관이 되어 종군하게 되니 엉뚱한 지시가 또 떨어졌다. 압록강을 건너 황성평에 가면 아주 커다란 비석이 서 있을 테니까 그 비석의 탁본을 떠서 도성으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비문이 상하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떠야 한다는 당부까지 붙었다.
“상감께서 금나라 황제 무덤 같은 데 무슨 관심이 있으신 거요?”
“어찌 그 깊으신 뜻을 내가 알 수 있겠는가.”
잠시 도원수 막사에 다녀온 이시백이 한숨을 쉬었다. 25세로 장유보다 6세 연상이지만 별 의식 없이 친하게 지내는 처지다. 공부는 즐기지만, 유독 관직에는 별 뜻이 없다.
“이 비석이야 이미 태조대왕께서 동녕부를 치러 가실 때도 보신 것이고, 성종대왕 시기에는 평안감사 성현이 직접 와서 보고 ‘제릉(帝陵)에 세운 비’라 하지 않았는가. 만약 이것이 우리 삼한의 옛날 비라면 마땅히 내용을 밝혀 널리 알려야겠으나, 그것도 아니니….”
두 젊은이는 이해가 안 되는 업무를 수행하게 된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어명, 그것도 스승을 통해 은밀히 내려진 어명이니 안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 일에 관해서는 김시민에게도 뭔가 귀띔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들이 도원수 종사관이건만 김시민은 딱히 다른 일을 시키지 않았고, 탁본을 떠서 도성으로 보내는 일까지 성공적으로 다 마친 뒤에나 먼저 서쪽으로 간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탁본을 다 뜨고 나면 전하께 올리기 전에 일단 우리가 한번 읽어봅시다.”
“그러세나. 무슨 내용인지 알기나 하고 보내야지. 보아하니 예서로 쓴 비문이라 딱히 읽기 어려울 것도 없겠군.”
한나라 때부터 유행한 예서(隷書)는 반듯하고 품위가 있어 인기가 좋다. 글을 배운 사람이면 예서를 못 읽는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어서 발판을 완성하라고 역군들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들 자신이 비문 내용에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한 탓이었다.
– 13 –
압록강 북안에는 적이 없었다. 건주위에 속한 야인들이 사는 마을이 점재해 있기는 했지만, 조선군이 강 건너에 모인 것을 보고 도망쳤는지 모든 마을이 텅 비어 있었다. 사람도, 가축도, 재물도 찾을 수 없었다.
빈 마을을 불태우고 근처 산에 매복한 복병이 없는지 살피면서 정충신은 진군을 계속했다. 황성평에서 파저강이 압록강과 합류하는 초산진 대안까지 무사히 서진하고, 기다리던 수군과 합류한 뒤 계획대로 파저강을 따라 북상하기 시작했다.
“나오는 야인 마을마다 뒤져도 주민은 하나도 없습니다.”
“알겠다. 그래도 탐색을 게을리 마라.”
왜인여진 기병으로 구성된 첨병중대를 맡은 정위 이괄이 군례를 올리고 다시 대열 앞쪽으로 말을 몰아 달려갔다. 이괄의 중대는 본대보다 5리(2km) 앞서 진행하면서 혹시 앞쪽에 위험한 요소가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이괄의 성정이 난폭한 편이라는 이야기는 정충신도 들었다. 본래 미주에 남을 뻔했었으나 토인들과 하도 사이가 좋지 않아 도로 끌고 왔다는 말까지 접했다. 하지만 아직 젊은이니까, 잘 인도하면 충분히 좋은 자질을 발휘할 수 있어 보였다.
이괄의 직속상관인 참령 남이흥도 같은 생각이었다. 남이흥은 경군 기병까지 합쳐 모두 1천 5백 기에 달하는 정충신 휘하 기병 전체를 지휘하고 있다. 그 주된 구성은 왜인여진 1천 기, 비호군 2백 기, 강철군(오도리) 2백 기, 골응군 1백 기다.
“우리 앞에 나타날 건주 군사가 얼마쯤 될 것 같소?”
“많으면 1만 기 안팎이 아니겠습니까?”
남이흥은 정충신과 동갑으로, 경인왜란과 을미동정에는 참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응룡의 난 진압에는 참여했으며, 골응군 기병들을 인솔하고 실로 큰 용명을 떨쳐 황제로부터 비단을 상으로 받기도 했다.
남이흥 역시 처음 정충신이 상관으로 부임했을 때는 경험 없는 상관이 배경만 믿고서 온 줄 알고 다소 불안해했다. 하지만 깊이 대화를 나눠 보고 정충신에게 명성만큼의 실력이 있음을 믿게 되자 충실히 따랐다.
“아무래도 저들이 상대해야 할 주적은 우리가 아니라 천병이지요. 요동에 집결한 천병 수가 30만이라 하였는데, 어찌 우리 쪽으로 그 이상 돌릴 여유가 있겠습니까. 근래 천병이 아무리 형편없는 군대가 되었다고 하나, 30만 대군이라면 무시할 수 없습니다.”
중과부적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강력한 군대라 해도 압도적으로 많은 적과 싸우다 보면 언젠가는 패한다. 옛날 그 강하던 고구려도 수와 당이 연달아 펼치는 수십 년에 걸친 공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망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천병에는 정강한 군사가 아직 꽤 남아있습니다. 이번에 동원된다고 한 사천 군사만 해도 무척 강하고 정예한 군사들입니다.”
남이흥은 싸우는 모습을 자신이 직접 목격한 사천 장창병, 백납수(白蠟樹)라는 나무로 만든 창을 쓴다고 해서 백간병(白杆兵)이라 불리는 군사들을 크게 칭찬했다.
“백간병이 쓰는 창은 길이가 우리 장창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어떤 적군과 맞서도 물러서지 않을 만큼 용맹하지요. 건주 철기가 돌진해도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돌진하는 대신에 그 주변을 돌며 활을 쏜다면 대책이 없을 듯하네만. 거리를 두고 조총을 쏘아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조선군은 적이 장창병을 내밀면 그대로 돌격하지 않고 적의 진형이 무너질 때까지 포와 총, 활을 쏘아 공격한다. 정충신이 본 유럽에서의 전술도 비슷했다.
“건주는 우리가 동정(東征)할 때 함께 갔으니 우리가 왜군 장창대를 부수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겠지. 우리 전법을 건주위가 그대로 모방한다면 사천병이 아무리 정예라 해도 막아내기는 어려울 거요. 물론 홀로 움직이지 않고 조총과 포, 기병의 지원을 받는다면야 다른 문제지.”
창병들이 방진을 이루고 방어하며, 다가와서 사격을 가해오는 적군 기병대는 이쪽 포병이나 조총부대가 가하는 사격으로 전열을 와해시킨다. 그러다가 적이 지리멸렬해지면 아군 기병이 반격에 나서서 마지막 일격을 가해 마무리한다.
“남 참령도 알고 있겠지만, 훈련도감 도제조께서 무자년에 달자 철기 수만 기를 섬멸하셨을 때 사용하신 전법도 이와 거의 같소. 대유주에서 쓰는 전법은 수많은 경험을 통하여 병법서로 정리한 것이라, 좀 더 다듬어진 것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강계에서 부대가 집결을 마치고 보름 동안, 정충신은 자기 휘하에 들어온 4천 명에게 모두 네덜란드식 훈련을 시켰다. 이미 비슷한 방식으로 훈련한 경험이 있는 경군은 잘 따라왔지만, 향군 군사들은 아무래도 서툴렀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되오. 우리 역시 건주 기병들과 마주치면 그렇게 싸워야만 할 테니까 말이오.”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요.”
조선군이 북방에서 마지막으로 야인 기병들과 대규모 전투를 벌인 무자년은 벌써 17년이나 지났다. 그 뒤로 북변에서는 쭉 목책을 지키거나 기병으로 도적들의 뒤를 쫓는 소규모 교전만 있었다. 그때처럼, 이번에 치를 것처럼 수천 명이 뒤엉키는 싸움은 없었다.
“그래서 훈련해야 하는 거지. 옛 전훈을 되살려서.”
정충신 휘하에 있는 경군이건 향군이건 전열을 이루고 대규모 여진기병과 싸워본 적이 없는 건 똑같다. 그나마 매년 겨울 시행하는 제식훈련 덕분에 대열을 구성하는 연습 자체는 향군도 익숙하다는 게 다행이었다. 거기에 약간의 변형만 가하면 되었다.
“보고드립니다!”
또 전방에서 이괄이 달려왔다. 거느린 기병들을 보내도 될 것을 꼬박꼬박 자기가 직접 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보고가 중간에 왜곡될까 두려운 모양이었다.
“우라산성(于羅山城 : 오녀산성으로 알려진 고구려의 첫 수도성을 가리키는 조선시대 명칭입니다)에 적이 모여 있습니다! 규모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천 단위는 되는 듯합니다.”
“알겠다. 수고했다.”
만포진에서 강을 건넌 뒤 나흘 만에 적과 접촉했다. 고개를 끄덕여 치하한 정충신은 이괄을 다시 앞쪽으로 보냈다. 어떤 방침을 정하건 정찰은 계속해야 했다.
“우라산성은 과거 태조께서 전조의 장수셨던 시절, 요동성을 공격하러 갈 때 함락하신 적도 있는 중요한 성입니다. 게다가 이곳에서 혁도아랍으로 올라가는 중요한 경로이기도 하니까 꼭 함락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군사만 가지고 저 험준한 성을 어찌 함락하겠소.”
이제 두 사람의 눈에도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우라산성(于羅山城)의 모습이 보였다. 높이가 백 길은 될 듯한 절벽, 무턱대고 기어올라서는 도저히 공략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다.
하지만 과거에 이 성을 친 이성계는 정말 간단히 함락했다. 저 높은 성벽 위에 있는 원나라 병사 70명 이상을 화살 한 대로 얼굴을 쏴 죽였다. 군사들은 겁에 질렸고, 성주는 가족까지도 버리고 혼자서 밧줄을 타고 도망갔다. 남은 수비군은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밑에서 사람을 쏘는 거야 포수대를 동원하면 어렵지 않습니다만, 놈들이 웅크리고 머리를 내밀지 않으면 도리가 없습니다.”
정충신 휘하 함경도 군사 중 5백 명은 두만강 일원에서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포수들이다. 이들은 소집된 뒤에 새로 강선총을 받았으며, 보름 동안 새 총을 직접 쏘아보면서 그 특성에 제법 익숙해졌다. 워낙 총에 익숙한지라 적응도 빨랐다.
“어쩔 수 없지. 일단은 진군을 멈추고, 도원수께 보고를 올린 뒤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도록 합시다.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으니.”
정충신은 쓴웃음을 지었다. 평지에 있는 성이라면 네덜란드에서 배운 공성전술을 써먹어 볼 텐데, 깎아지른 절벽 위에 쌓은 우라산성은 지금 거느린 병력으로 공성을 시도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고 수천이나 되는 적을 후방에 두고 갈 수도 없는 일이다.
참모장을 불러서 보고서를 준비시킨 정충신은 군사들에게 어서 숙영 준비를 시작하게 했다. 울타리를 세우고 참호를 파서 제대로 된 숙영지를 만들려면 서둘러야 했다.
– 14 –
연락을 가지고 온 기병이 급히 퉁화에 있는 추옌의 진중으로 달려 들어왔다. 추옌이 군막 밖으로 나서자 말에서 뛰듯이 내린 기병이 급히 소리쳤다.
“만포에서 강을 건넌 조선군이 우라산성까지 도달했습니다! 구원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우라산성에는 노약자나 어린애로 구성된 병력 3천 명밖에 없다. 적이 제대로 공격하면 오래 버티지 못할 전력이지만, 허장성세를 벌이기엔 부족하지 않다.
“알겠다.”
추옌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압록강과 송화강 일대에 모두 조선군이 들끓어 도무지 어느 곳에서 침입해올지 알 수가 없었는데, 드디어 공세 방향이 확실해졌다. 이제 움직여서 놈들을 처치하기만 하면 된다.
더구나 조선군은 자기들이 싸우기 유리한 넓은 평야가 아닌 싸우기 불편한 산길을 택해서 움직이고 있다.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좁은 산길은 조선군이 자랑하는 화력을 펼치는 공간을 제약한다. 화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옆으로 늘어선 횡대 대형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횡대의 폭이 좁아진다. 대열이 앞뒤로 길게 늘어서면 뒤쪽 열은 총포를 쏠 수 없으니 무용지물이다.
“나타난 조선군의 규모는?”
“지금 나타난 숫자는 4천 명 정도 됩니다. 그중 기병은 절반이 안 되고, 화포는 말 네 필이 끄는 작은 것으로 20문이 안 됩니다.”
보고는 비교적 자세했다. 추옌이 적의 규모를 추산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도로이버일러, 우라산성에 나타난 적이 4천이라 하니 우리는 1만 기만 동원해도 충분하오. 일단 병력 절반은 여기 남겨서 예비로 삼고, 나머지 절반만 출격함이 어떻겠소? 그래야 만약 불상사가 생겨도 사태에 대처할 수 있소.”
숙부 야르하치가 제안했다. 조선을 믿지 않는 야르하치는 저 병력은 미끼고 속말주 방면에 배치된 다른 조선군이 건주위를 노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전군이 압록강 방면에서 출현한 조선군을 상대하러 나간 사이 속말주 주둔군이 출격하면 곤란한 일이 생길 터였다.
“조선 속말주 주둔군이 경계를 넘어오면 그대로 허투알라까지 갈 수 있소. 조선군 기병들은 우리와 다를 게 없는 놈들이라서 물자 보급을 받지 않고서도 5주야 정도는 내달릴 수 있고, 그럼 허투알라까지 곧장 도달할 수 있소.”
“숙부님, 허투알라에도 성벽은 있습니다. 늙고 어린 약병들이기는 해도 수비를 맡은 병사도 3만 명이 넘으니까, 기병 몇천 정도가 들이친다고 함락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적이 허투알라에 도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대의 임무는 완전히 실패한 거요. 형님께서는 그대에게 ‘맞서 대응하라’라고 하셨소. 그럼 적을 붙들어야지. 하나라도 통과시키면 되겠소?”
추옌은 숙부의 충고를 듣고 코웃음을 쳤다. 조선군과 싸워본 적은 없어도 그 나름대로 제법 많은 전투를 경험한 데다가, 조선군이 어떻게 싸우는지는 어른들에게 익히 들었다. 어떡하면 맞서 물리칠 수 있을지, 이미 머리를 짜 놓았다.
“싸우기 싫어서 엉덩이를 빼는 조선군이 두 방향에서 군대를 동원하는 따위 모험을 벌일 리 없습니다. 속말주에서 나오는 조선군은 없을 테니, 지금 오는 놈들만 제대로 잡으면 됩니다.”
싸울 방향이 정해지면 방법이 남는다. 그 점에서도 추옌은 생각이 있었다.
“소규모 병력으로 들이쳐 보았자, 화포에 쓸려나갈 뿐입니다. 이기려면, 대병력을 동원해서 일거에 쳐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대열 선두는 탄환에 맞아 쓰러지더라도 2열부터는 적진으로 제대로 뛰어들 수 있습니다.”
지지부진한 전투를 할 게 아니라 전력을 집중해서 조선군 선봉부터 격멸한다. 그리고 바로 후퇴하면 적은 만주군의 반격을 대비하느라 섣불리 진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2만 기가 모두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혼자 힘으로 조선군을 쓸어버리고 나면 만주를 통치할 다음 지배자의 자리는 분명히 확보할 수 있다. 꼴 보기 싫은 동생 따위는 여편네와 함께 조선으로 추방해 버리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