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30
2부 608화
– 27 –
주먹만 한 철환이 날아가 말의 목을 날리면서 타고 있던 이의 배를 관통했다. 몸을 둘이나 뚫고 나서도 힘이 남은 철환이 그 뒤를 따르던 말의 가슴에 맞았다. 흉곽을 통째로 짓부수고 난 철환은 세 번째 말의 발목을 으스러뜨리고 나서야 땅에 박혀 움직임을 멈췄다.
한꺼번에 발사된 철환 18개 중 이 녀석만큼 운이 좋은 철환은 또 없었다. 하지만 달려들던 말 중 적어도 서른 마리는 타고 있던 사람과 함께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만약 기병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 내달렸다면 다음 포격이 가해지기 전에 첫 번째 목책 앞에 도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화포가 불을 뿜는 광경을 본 해서 기병들은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말고삐를 당겼다. 그리고 부리나케 물러났다.
“천세! 천세!”
“오랑캐 놈들아, 맛이 어떠냐!”
조선군이 지르는 함성과 비웃음이 그들의 뒤통수에 따라붙었다. 하지만 여진 기병들은 이를 모두 들었으면서도 멈춰서지 않았다. 화포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려고 줄달음칠 뿐이었다.
“그놈들을 모두 죽여버릴 테다!”
추옌이 길길이 날뛰었다. 그다지 큰 손실을 낸 것도 아닌데 포격 한 번에 겁을 먹고 모조리 도망쳐온 군사들이 용납이 안 됐다.
“그놈들은 만주에 귀부해서 보낸 세월이 얼마인데, 아직도 조선군을 보면 벌벌 떠는 해서부 잔당처럼 군단 말인가!”
“우리가 이틀만 일찍 왔으면 조선군이 진지를 구축하기 전에 이 고개를 통과할 수 있었겠지 싶습니다. 안타깝군요.”
옆에서 천연덕스럽게 날짜를 세는 열두 살이나 어린 동생 홍타이지도 밉살스러웠다. 녀석은 도중에 ‘쓸데없는 논란’으로 공연히 이틀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이런 장애물을 피할 수 있었을 게 아니냐고 은연중에 비아냥거리는 게 분명했다.
“도로이버일러, 일단 화를 푸시고….”
“내가 지금 화를 풀게 되었느냐!”
추옌이 욕지거리를 퍼부으면서 눈앞에 서 있는 해서 출신 장수 낭가하이의 뺨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입안이 터져 피와 침이 튀고 부러진 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낭가하이는 추옌의 주먹에 맞아 비틀거리면서도 땅바닥에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시 중심을 잡고 서서 풀죽은 목소리로 변명했다.
“저희는…조선군이 화포까지 준비해 놓은 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포격이 쏟아지니 놀라 물러났을 뿐입니다. 부디 다시 기회를 주십시오.”
“암, 다시 가야지! 다시 가야 하고말고! 너희가 비겁한 행동으로 내 얼굴에 먹칠했으니, 그 죄는 당연히 네놈들의 피로 갚아야 하지 않겠나! 저까짓 작은 화포 몇 문 가지고!”
“그 말이 옳습니다. 저건 ‘야포’라 하는데, 조선군 화포 중에서 가장 작은 대포입니다. 너무 큰 포를 가지고 산길을 움직이기 어려우니 작은 것만 골라서 가져온 듯합니다.”
잠시 선두에 나가 적진을 훑어보고 온 야르하치가 끼어들었다. 야르하치는 과거에 조선군이 화포만 사용해서 해서군을 완전히 묵사발로 만드는 광경을 목격한 바 있었다.
“조선군에게 저런 야포는 어린애 장난감 같은 겁니다. 놈들이 화포를 제대로 쓰려고 마음을 먹으면 사내 머리통만 한 쇳덩이를 쏘는 거포도 끌고 올 수 있습니다. 그 속에 쇠구슬을 잔뜩 채워서 쏘면 한방에 수백 명을 쓸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광경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추옌에게는 숙부의 설명이 막연하게만 들릴 뿐이다. 하지만 옆에 있는 해서 출신 장수, 병사들에게는 자신이 실제 겪은 과거였다. 모두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목덜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서, 지금 조선군이 그런 거포를 가져왔다는 겁니까, 숙부?”
“큰 게 있으면 큰 것부터 쏘았겠지요. 조선군이 야포부터 쏜 건 지금 보유하고 있는 무기 중 야포가 가장 멀리 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단 놈들의 전력을 조금 더 탐색해보시지요.”
“좋습니다, 숙부. 그렇게 하지요.”
추옌이 이를 앙다물었다. 눈앞에 있는 조선군이 그렇게 약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처음처럼 성급하게 구는 대신 시간을 조금 들여 적의 세력을 파악할 필요도 있다.
“낭가하이. 네놈이 거느린 군사들을 시켜서 적진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을 찾아내라. 그리고 조선군이 보유한 화포 크기 및 숫자, 위치까지 전부 상세히 파악하라. 이 산도 확실히 뒤져서 양쪽 기슭의 안전을 확인하라.”
추옌 군이 내려온 넓은 길은 여기서부터 둘로 나뉜다. 하지만 능선 하나로 나뉠 뿐 어차피 같은 고개를 향하는 나란히 놓인 길이다. 뻔히 뚫린 두 길 중에 한쪽으로만 이동할 멍청이는 여기 없고, 그러자면 가운데 있는 능선은 확실히 장악해야 한다.
“예, 버일러.”
얼굴이 피로 얼룩진 낭가하이가 고개를 숙여 절한 뒤 물러갔다. 그 뒤로 욕지거리를 퍼붓던 추옌이 고개 위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조선군이 고개 위에다 게양한 어기(御旗)가 북풍을 받아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 28 –
정충신은 머리 위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보며 마땅찮은 표정을 지었다.
“맞바람이 불어서 초연을 날리는 건 좋지만, 적이 날리는 화살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건 싫군. 그게 아무리 미미하다 해도.”
“만사 일장일단 아니겠습니까. 우리 쪽에서 적을 향해 바람이 불었으면, 초연이 우리 앞을 가려 사격에 방해를 받았을 테니 말이지요. 그렇다고 측풍이 불면 아예 조준이 빗나가서 역시 방해가 되었을 것이고요.”
옆바람이 불면 화살이 조준선에서 어긋난다는 건 누구든지 안다. 하지만 ‘화살보다 빠르게’ 표적을 향해서 날아가는 조총이나 화포 탄환도 바람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들이 많다. 정충신 휘하 총통군을 지휘하는 참령 오윤성이 자신감을 표했다.
“측풍이 어느 정도 세기로 불면 어느 정도 포탄이 빗나가는지, 훈련도감에서 다 맞춰보기는 했습니다. 순풍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역풍이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도 모두 직접 측정해서 사표(射表)를 만들었지요. 아직은 야포뿐입니다만, 조만간 모든 포에 사표가 비치될 겁니다.”
이제껏 포를 쏘아 명중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건 포수의 경험과 감이었다. 물론 화약 넣는 양에 따라 사거리가 어느 정도 조절된다는 지침 정도는 있었지만, 바람이 부는 방향이나 고도 차이 같은 것은 고려가 되지 않았다. 이는 전적으로 포수의 실력에 달려 있었다.
“덕풍부원군 대감께서 주도하여 만드신 사표 제작에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지?”
“그렇습니다. 수천 발이나 되는 화포를 직접 쏘아가며 조건에 따른 탄도 변화를 관측했고, 관상감에서 산학에 능한 관원들을 데려다 계산을 시켜서 검증했습니다. 그 이후로 훈련도감에 아예 산술반(算術班)을 따로 운영할 정도입니다.”
지금 조선군에는 못 맞추는 표적이 없을 만큼 포술이 뛰어난 포수들이 남아돈다. 하지만 그 성과는 공으로 얻어진 게 아니었다. 계미년(1583)에 벌어진 니탕개의 난부터 시작해서 을미년(1595) 동정까지, 근 12년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피로써 얻은 성과다.
“전란을 직접 치른 포수들과 그 선임들에게 바로 배운 포수들이 물러나면 지금 익힌 포술도 사라지겠지요. 아무래도 평소에는 전시만큼 포를 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화약이 땅 파서 나오는 물건이 아니긴 하지. 요즘 포군은 1년에 포를 몇 번쯤 쏘는가?”
“실제로 화약과 탄환을 넣고 방포하는 훈련은 분기(分期)마다 1차례, 각 포가 3발씩 쏩니다. 덕풍부원군께서는 이정도로는 장차 포군이 전력을 유지할 수 없으리라고 염려하시어 사표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똑같은 포를 쏘아도 누가 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다. 하지만 사표가 완성되면 실전 경험이 부족한 포수들도 사표를 활용해서 훨씬 쉽게 표적을 명중시킬 수 있다. 포를 다루는 기본기를 확실히 익혔다는 전제는 필요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제가 데려온 포수들은 사표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숙련된 이들입니다. 아까도 솜씨를 보셨으니, 믿어주십시오.”
정충신이 고개를 끄덕이는 참에 파수병이 고함을 질렀다.
“오랑캐가 다시 옵니다! 이번에는 수십 기씩 한 무리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가볍게 찔러 보면서 우리 약점을 찾는 것입니다. 쏘지 말고 기다리라 하시지요.”
참모장 이윤원이 조용히 조언했다. 평안도에서 잔뼈가 굵은 무관으로, 건주위를 비롯한 각 여진 부족의 습관에 정통한 장수다.
“알겠다. 본진에 접하는 포수대에서만 오(伍) 단위로 일제사격하고 총통군은 발포하지 마라. 화포는 적이 대군으로 밀려올 때 쏜다. 조총과 활도 쏠 준비만 하고 기다려라.”
전령들이 바삐 흩어졌다. 이윤원이 부대별로 포진해 있는 군사들을 내려다보며 부러운 듯 중얼거렸다.
“경군은 불씨를 관리하지 않아도 되어서 참으로 좋겠습니다. 향병들은 이렇게 기다려야 할 때면 화승에 붙은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고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말입니다.”
“조만간 향군도 수석총을 받게 될 거요. 병기창 네 곳에서 새로 만들거나 화승총을 개조해 만드는 수석총이 이제 매달 1천 자루를 넘어가니까 말이오.”
각 병기창에서는 전국에서 거둔 화승총에 격발기를 달아 수석총으로 바꾸고 있다. 돈도 꽤 드는 데다 급할 것 없다고 천천히 추진하다 보니, 이제 겨우 경군 조총병들이 들고 다닐 총을 다 바꿨다. 오도리는 진작에 수석총을 썼으니, 경군은 이제 수석총만 쓰는 셈이다.
“화승총도 가끔 불발이 나지만 수석총은 불발이 더 잦아서, 그거 한 가지가 고민이오. 쓰는 모습을 보니 명중률은 괜찮구려.”
정충신이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총성이 연달아 울리자 포화를 피할 셈으로 흩어져서 돌진해오던 여진기병 20여 기 중 절반 가까이가 잇달아 땅바닥을 굴렀다. 쓰러진 말 중 서너 마리는 다시 일어나서 뛰었지만, 나머지는 주인과 함께 버르적거릴 뿐 일어나지 못했다.
“역시 날아가는 새도 조총으로 맞힌다는 함경도 포수들이구먼. 아무리 강선총을 들었다지만 150보는 족히 되는 거리에서 목표물 절반을 맞히다니.”
유럽에서 만난 도이칠란트인 강선총 사수들도 저렇게 먼 거리에서, 그것도 빠르게 움직이는 표적을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그 반 정도 거리에서 서 있는 사람을 맞히는 정도가 한계였다.
“저놈들이 우리를 약 올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저놈들을 가지고 노는 상황이 되었군. 과연 저놈들이 물러날까, 들이박을까? 참모장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저놈들도 우라산성에 있는 자기들 패를 구출하러 왔을 테니 가만히 있지야 않겠지요. 이곳 지리를 보면 물러나 봤자 두만강이나 혁도아랍 쪽으로 한참 돌아서 가지 않으면 우회할 길이 없습니다. 분명히 들이박을 겁니다.”
“역시 그렇겠지. 장수들에게 일러 군사들에게 다시 한번 각오를 단단히 시키도록 하시오.”
정충신은 방어선 앞 평지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3백 기 가까운 여진 기병들이 말과 함께 쓰러져 땅바닥을 덮고 있었다. 제대로 화살을 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온 놈들도 있었지만, 목책과 참호로 방비 태세를 갖춘 아군에게는 별 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적이 총공격을 가하면 아무래도 상황이 달라지리라.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아, 참모장. 우리 저놈들의 기세를 꺾을 짓을 하나 해 봅시다. 혹시 생각대로 안 되더라도 딱히 손해가 될 일은 없을 거요.”
문득 재미있는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평양군 신립의 위명이 왜인여진 군사들에게 아직도 저만큼 크다면, 과연 건주위 오랑캐들에게는 어떨까? 그놈들 역시 신립을 알지 않는가?
– 29 –
추옌은 미쳐 날뛰었다. 조선군에게 거의 피해를 주지 못하고 아군 병력만 줄줄이 땅바닥에 처박히는 결과를 빚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추옌에게 얻어맞고 다시 싸우러 나간 낭가하이까지 조선군의 총에 맞아 목책 앞에 널브러져 있다.
“탐색전은 이걸로 됐다! 저놈들이 총을 쏘는 숫자를 보니 총을 가진 놈들은 한 3백 명밖에 안 되는 모양이고, 포는 화약이 부족해서 쏘지 않는 듯하다. 고로 저기 진을 친 조선군 3천여 명은 죄다 창과 칼로 무장했다는 뜻이니, 우리 2만 기가 돌진하면 일거에 격멸할 수 있다!”
장수들을 다그치는 추옌의 얼굴에는 광기가 어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군의에 참석한 장수들은 머리를 움츠렸다. 하지만 홍타이지는 여전히 처음처럼 태연했다.
“이 어리석은 동생이 버일러께 짧은 소견을 아룁니다. 평범한 산비탈이라면 우리 기병들이 쉽게 달려 올라갈 수 있겠지만, 저 산비탈에는 적어도 10겹으로 된 목책이 있습니다. 그 뒤에 있는 조선군이 허리 아래는 보이지 않는 걸 보면 호도 파 놓은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 기병들이 비탈을 달려 올라가다 목책에 길이 막히고 호에 빠져 쓰러지면 아주 간단히 저들에게 붙잡힐 겁니다. 죽어 쓰러진 말과 사람이 산비탈을 덮을 텐데, 어찌 그 위를 밟고서 계속 오를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얼른 허투알라로 돌아가 수성군에 가세하지요.”
“닥쳐라! 한 줌밖에 안 되는 적이 눈앞에 있는데, 비참한 패배자가 되어 돌아가자고?”
추옌이 뭔가 더 욕을 퍼부으려는 참에 갑자기 적진에서 엄청난 호통 소리가 들렸다. 조선군 진영 한가운데 둔덕 위에 올라선 사내 하나가 크게 소리를 지르는데, 조선 리로 반 리 가까이 떨어져 있는 이쪽 진영에서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목소리가 컸다.
“무도한 오랑캐 놈들아! 너희들은 호랑이 병마사를 기억하느냐? 호랑이 병마사 신립 대감의 아드님께서 여기 너희 목을 치러 오셨다! 너희가 스스로 물러간다면 용서할 것이로되, 주제를 모르고 방자하게 굴면 모조리 쳐 죽일 것이다! 알아서 결정하라!”
신립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여러 장수, 병사들을 움찔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둔덕 위에서 소리를 지르는 놈 옆에 오도리들이 입는 눈부신 은빛 갑옷을 입고 어깨에 호피를 걸친 장수가 하나 서서 칼을 흔들고 있었다.
“이분이 바로 호랑이 병마사의 아드님이시다! 당장 무릎을 꿇거나, 어서 꺼져라!”
장수들이 갈팡질팡했다. 떨리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정말 호랑이 병마사 아들인가?”
“그러고 보니 체구도 비슷하고, 얼굴도 닮은 것 같은데…?”
“새끼 호랑이도 분명히 호랑이는 호랑이지….”
어수선한 분위기를 본 추옌이 갑자기 폭발했다. 조선군이 ‘신립의 아들’을 내세워 도발하고, 휘하 군사들이 그에 휘말려 흔들리는 모습을 보자 조금이나마 싸움을 망설이던 태도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놈들이 우리를 희롱해도 분수가 있지!”
집어던진 투구가 바닥을 굴렀다. 격분한 추옌이 명령을 쏟아냈다.
“네놈들은 10년도 더 전에 죽은 호랑이의 이름에 눌려 도망칠 셈이냐! 당장 말에 올라라! 그리고 적진을 들이쳐 새끼 호랑이를 잡아 가죽을 벗겨라! 걸리적거리는 목책은 네놈들 말로 부딪쳐 부수고, 구덩이는 조선군의 시체로 메워라!”
추옌은 숙부 야르하치에게 오른쪽 길로 진격할 1만 기를 맡기고 자신은 왼쪽 길을 맡았다. 이대로 달려들어 저 산비탈을 아군의 시신으로 덮어서라도 돌파하고 말 작정이었다. 조선군이 화포와 조총을 재장전하는 사이 후속부대를 계속 밀어 넣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홍타이지. 너는 뒤로 물러나라. 일선에 나가기에는 네가 어리다.”
“예, 형님.”
이제 겨우 14살이라지만, 이 녀석 역시 경쟁자다. 선봉에 서서 공을 세울 기회 따위는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좌군과 우군을 합쳐 1만여 기가 일시에 돌격하자 골짜기는 삽시간에 먼지로 뒤덮였다. 그 먼지구름 사이에서 조선군 화포 20여 문이 일제히 연기를 토해내는 모습이 보였다. 곧 포성이 울렸지만, 말발굽 소리에 묻혀 크게 들리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