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32
2부 6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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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탈과 골짜기가 온통 죽은 말과 사람으로 덮였다. 초연 냄새와 피비린내, 말과 사람의 배가 터지면서 흘러나온 창자와 배설물의 썩은 내가 살아남은 군사들의 체취와 뒤엉켜 사방을 맴돌고 있었다. 냄새를 견디기 힘든 군사들이 여기저기서 지연을 피워물었다.
지연(紙煙)은 최근에 내수사가 만들어 팔기 시작한 종이담배다. 잘게 썬 담배를 종이에 말아 피우는 것으로, 담뱃대를 휴대하기 번거로운 군졸들이 애용한다. 불을 붙일 때는 조총 화승을 점화하는 데 쓰던 밤톨만 한 작은 화로를 사용한다.
하지만 고갯마루 위에 선 김응서는 담배 따위 물지 않았다. 한껏 숨을 들이쉬며 그 냄새를 그대로 빨아들였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전장의 냄새, 목숨을 걸고서 철과 피로 승부를 겨루는 진정한 사나이들만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도우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원수 영감.”
어느새 아래쪽 비탈에서 올라온 정충신이 그 앞에 서서 군례를 올렸다. 군사들을 지휘해서 전장을 정리하다가 김응서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올라온 참이었다.
“너무 늦게 와서 유감일 따름일세. 그대는 어떤가, 다치지는 않았는가?”
“괜찮습니다.”
약간 지친 기색은 있어도 정충신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위장(衛長)인 그가 굳이 일선에 나서야 할 만큼 상황이 나빠지지는 않았던 덕분이다. 싸우는 도중에 날아든 화살은 두어 개쯤 맞았지만, 모두 갑옷에 맞고 튕겼다. 총알도 튕겨내는 갑옷이다 보니 화살 정도는 가벼웠다.
“전과가 궁금하군. 아직 정리가 덜 끝난 것 같기는 하네만, 오늘 싸움에서 쏘아죽인 적도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가?”
“건주 기병 2만을 맞아 대략 1만 기를 쏘아 쓰러트렸고 2천 기를 포로로 잡았습니다. 남은 8천 기는 모두 흩어져 도주했습니다.”
경군 기병대가 대열을 돌파하면서 적은 완전히 무너져 패주했다. 장도를 휘둘러 말과 위에 올라탄 사람을 한 번에 토막 내며 싸우던 왜인여진 군사들도 적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자 말을 타고 비탈을 짓쳐 내려갔다.
“동등한 조건으로 싸웠다면 건주 놈들도 왜인여진과 백중세로 싸울 정도는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총포와 화살에 맞아 워낙 피해를 크게 입은 데다, 이미 후방에 있는 본진이 비호군과 강철군에게 짓밟히는 광경을 보았으니 제대로 맞서지 못하고 금방 손을 들었습니다.”
아군 기병들이 들이친 건 적 좌군이다. 하지만 좌군이 박살 나고 있음을 알자 우군도 괜히 버티는 대신 항복하거나 줄행랑을 쳤다. 도망친 적병 대부분은 우군에 있던 놈들이다.
“그리고 사살한 적이 1만이라지만, 그중에 적어도 수천은 낙마했다가 자기네 패거리가 타고 달려드는 말발굽에 밟혀 죽었을 것입니다. 시신이 워낙 많이 상해서 결정적인 사인이 분명치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우리 군사들은 얼마나 상했는가?”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기록관이 집계한 숫자를 봐야겠습니다만, 소관이 보기에 전사자는 1백 명이 좀 넘었고 부상자는 2백 명가량 되었습니다. 적이 워낙 많았고 보니, 다가붙기 전에 미처 다 쏘지 못하여 그만 우리 군사들도 좀 상하였습니다.”
정충신의 간략한 보고를 들은 김응서가 호쾌하게 웃었다.
“우리 군사 하나가 당할 때마다 적군 40명씩을 죽이거나 붙잡은 셈이니 그만하면 충분하네. 다섯 배나 되는 적, 그것도 건주위가 자랑하는 철기와 싸워 태반이나 쓰러트렸으니 저놈들은 다시는 이쪽 길에 나타나지 않겠지. 정 부령, 귀공은 실로 훌륭한 장수일세.”
김응서는 구원군으로 기병 3천 기를 끌고 왔다. 구원 요청을 받고 바로 출발했지만 이제야 도착하는 바람에 싸움에 끼지는 못했다. 그래서 무척 안타까워하는 중이다.
“그나저나 한 시진, 아니 두 시진만 더 앞서서 도착했으면 본관이 돌격을 선도할 수 있었을 것을. 정말 오랜만에 야인들을 상대로 한판 벌일 수 있었는데 아쉽네그려.”
다른 장수를 보내지 않고 김응서가 굳이 직접 온 이유가 바로 그거였다. 심심하기 그지없는 우라산성 포위군을 빠져나와서 신나게 한판 벌여 볼 자리를 찾아온 참이었다. 하지만 도착이 늦어 전투에는 끼지 못하고, 데려온 군사들도 시체 정리나 돕게 되었다.
고갯마루에 선 김응서가 매우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자 정충신이 길을 안내하며 계면쩍게 웃었다.
“이수일 정령이 지키는 혁도아랍 쪽에서도 곧 적이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그쪽은 강을 낀 넓은 평지라 기병으로 결전을 벌이기도 좋을 터인데 그쪽에서 기다려 보시지요.”
“안 와. 아무도 안 오네. 70리 앞까지 척후가 나갔다 왔는데, 아직 피난하지 않은 부락은 몇 개 있었지만 건주 군사라고는 씨알머리도 안 보이더라고 했네.”
아무도 도중에 막아서지 않아서 허투알라까지 그냥 달려가도 될 정도였다고 했다. 감군으로 따라간 군관들이 목덜미를 잡고 끌고 오다시피 귀환하지 않았더라면, 정찰을 맡은 왜인여진 군사들은 정말로 허투알라 코앞까지 갔다 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참모부에서는 정말 우라산성에 엄청난 대군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네. 그런 배경이 없고서야 어찌 혁도아랍으로 가는 길을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하는 거지.”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본진에 있는 정충신의 군막 쪽을 향했다. 여기저기에 땅바닥에 주저앉아 어포와 강정으로 늦은 끼니를 때우는 군사들이 보였다. 정충신이 변명했다.
“싸움이 워낙 격렬했던 탓에, 화병(火兵)들이 제대로 식사를 마련할 틈이 없었습니다.”
“아니, 잘하고 있는 걸세. 아무리 주변이 구역질 나는 상태라고 해도 군사들은 밥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법이지. 전하께서도 누누이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군사들을 굶기는 장수는 장수 노릇을 할 자격이 없다고 말일세,”
상감께서는 군량을 준비하지 않고는 절대 싸움을 시작하지 않으셨다. 지원이 끊어진 상태로 한 달 정도 버틸 수 있는 군량을 각 군이 지참하게 하는 건 기본이다.
“자, 그럼 자네들이 이번 싸움을 어떻게 치렀는지 상세한 자초지종을 한번 볼까.”
정충신의 군막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은 김응서는 기록관이 정리한 전투상보 초안을 펼쳤다. 정충신을 따라온 기록관 곽천호(郭天豪)는 처음 겪는 전투가 무서워서 떨면서도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전투가 시작해서부터 끝날 때까지, 일목요연하게 그 과정을 정리해 놓았다.
오늘 전투는 10시부터 14시까지 ? 요즘 군대에서는 전통적인 자시~해시 구분보다 서양식 시계로 따지는 24시간 구분이 정착되고 있다 ? 벌어졌다. 곽천호는 그 치열했던 전투 과정을 철저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김응서는 감탄하며 한 장씩 넘겼다.
“참으로 세심한 대응이 이루어졌군. 적이 다가오는데 따라서 포를 쏘고 총과 활을 쏘며 또 백병전으로 맞서는데, 그 대처가 매번 아주 시기적절하게 이루어졌네. 최초에 가한 일제사격 이후에는 각 소대장 판단에 따라 발포하도록 조총수들 사격 통제도 잘 진행됐군.”
“과찬이십니다. 군사들이 모두 출정 전에 훈련을 열심히 한 덕분입니다.”
조총 일제사격을 하면 연기와 소음 때문에 전체 병력 통제가 어렵다. 소대 단위로 사격하면 훨씬 효율적인 사격이 가능하다. 물론 자연스럽게 움직일 정도로 체화(體化)가 되어야 한6다.
“왜인여진이나 함경도 군사들도 제 역할을 잘 해주었습니다. 방어전이라서 전술이 단순했던 덕도 좀 보았지요. 군사들에게 모두 자기 자리만 철저히 지키라고 지시하면 되었으니까요.”
정충신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김응서가 피식 웃었다.
“하기야 공세로 나가고 싶어도 귀공에게는 그럴 병력이 없었지. 확실히 적을 쫓아가서 치는 상황이었다면 일이 좀 어려웠을 수 있겠으나, 달려드는 적을 막아내며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싸우기만 하려면 지휘가 조금 더 단순해지긴 하니까.”
김응서는 계속 장을 넘기며 전투상보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직 완전히 작성되지 않은 부분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이중로 부위가 지휘하는 백두산 포수대는 활약이 어땠는가?”
“여진 장수들을 주로 노려 쓰러트림으로써 적진을 한층 더 혼란스럽게 하고, 이로써 저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데 공이 컸습니다. 건주 우군(右軍)이 무너지는데 가장 큰 공이 김수길이라 하는 포수가 적장 아이합제(야르하치)를 쏘아 맞힌 데 있었습니다.”
야르하치가 살아서 지휘를 계속했으면 적 우군은 계속 저항하거나 최소한 제대로 부대 꼴을 유지하면서 물러났으리라. 하지만 야르하치가 죽고 산등성이 너머의 좌군은 조선 기병들에게 무너지니, 우군도 결국 지리멸렬하게 흩어져 도망가고 말았다.
“자네가 장계를 어찌 쓰느냐에 달려 있겠지만, 그만한 공이라면 능히 전하께 포상을 받을 만하겠지. 어디, 그럼 이제 그대가 오늘 잡은 오랑캐 중 가장 큰 고기를 만나보세.”
“예, 부원수 영감.”
정충신이 지시하자 군관들이 홍타이지를 데리고 들어왔다. 전투가 끝나고 조선군에 포로로 잡힐 때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기 때문에 홍타이지의 몸에는 작은 상처 하나 없었다. 홍타이지는 제법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두 장수에게 절을 했다.
“소인, 이런 불미스러운 자리에서 두 분을 뵙게 되어 진실로 송구하고 부끄럽습니다. 부디 하해와 같으신 마음으로 용납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홍타이지가 능숙한 조선말로 인사를 마치자 김응서가 준엄한 얼굴로 꾸짖었다.
“우리는 그대들과 국혼을 하여 사돈을 맺었다. 그런데 어찌 군사를 거느리고 우리를 공격해 해하려 한다는 말인가?”
정충신은 작게 헛기침하며 짐짓 시선을 돌렸다. 굳이 따지자면 이번 싸움에서 먼저 군사를 움직인 쪽은 조선이었으니까 말이다. 조선과 건주, 둘만 따로 놓고 봤을 때 말이다.
이 전투 전까지만 해도 건주위 군대와 조선군이 직접 충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선군은 먼저 압록강을 건너와서 건주위 영역에 진입했으며 우라산성을 포위했다. 그동안 선봉에 서서 움직인 사람이 바로 정충신 자신이었다.
“저희가 어찌 조선과 싸울 생각이 있겠습니까. 이 문제를 해명하고자 하니, 부디 조선군을 지휘하는 도원수 나리를 만날 수 있게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그럴 참이다. 정 부령, 나는 일단 이 건주위 공자(公子)를 데리고 도원수께 가야겠네. 내가 데리고 온 군사들은 놓고 갈 테니 수습에 쓰도록 하고, 장계는 완성되는 대로 파발을 띄워 본영에 보내도록 하게.”
“예, 영감.”
김응서는 우라산성 앞 본영으로 돌아가기 전에 고갯마루로 올라가 살육이 벌어진 골짜기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포로로 잡은 건주 병사들이 왜인여진 군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사체를 묻을 거대한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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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이 거둔 대승리에 관한 보고는 무료한 포위를 지속하는 원정군 본영 장졸들에게 꽤 큰 즐거움을 주었다. 4천 병력으로 2만이나 되는 적을 대파, 절반을 살상하고 나머지는 거의 흩어버렸으니 실로 통쾌한 승리가 아닐 수 없었다.
군사들은 김응서를 따라온 홍타이지를 보고 휘파람을 부는가 하면 주먹을 들어 육방망이를 먹이며 희롱했다. 혀를 내밀며 펄쩍펄쩍 뛰는 자가 있는가 하면, 바지춤을 내리고는 엉덩이를 보란 듯이 흔들어대는 놈도 있었다.
“어허, 세상에 저런 고얀 놈을 봤나! 군기대! 저놈이 알볼기를 맞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니, 당장 붙잡아다 곤장 6대를 치렸다!”
“예, 부원수 나리!”
그 운 없는 자는 흥을 참지 못하고 지나치게 날뛴 죄로 졸지에 매를 맞게 되었다. 그 꼴을 본 홍타이지는 피식거리고 웃음을 참으며 김응서의 뒤를 따랐다.
“왜 그리 무모한 싸움을 시도했는가? 골짜기에 묻혀 썩어갈 너희 군사들에게만 못 할 짓을 저지르지 않았나.”
김시민은 자기 군막 안에 홍타이지를 세워놓고 질문을 던졌다. 이번 출병에 있는 외면적인 명분을 생각하면 절대 의자를 내줄 수는 없었고, 원정군에서 자신과 부원수, 참모장 김충선 외에는 정여립만 알고 있는 진짜 목적을 생각하면 차마 무릎을 꿇릴 수는 없는 까닭이다.
“부원수께도 오는 도중에 말씀드렸지만, 저희가 어찌 감히 조선과 싸울 생각을 품겠습니까? 저는 물론 제 부친도 전혀 그럴 의사가 없습니다. 이웃과의 애호를 중시하는 저희 만주가 왜 이웃이자 사돈인 조선과 굳이 싸우고자 하겠습니까?”
홍타이지는 우라산성에 있는 군사들이 급히 구원을 청했기 때문에 구원군을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얼토당토않은 변명에 김시민이 인상을 찌푸렸다.
“너희가 감히 먼저 상국을 쳤으니 어찌 우리가 방관할 수 있겠는가?”
“그건 오해입니다. 저희는 명나라가 갑자기 별다른 명목도 없이 군사를 일으켜 우리를 치려 하는 것을 알고서 깜짝 놀랐고, 살아남고자 마주 군사를 일으켰을 뿐입니다.”
홍타이지는 무순 공격은 자위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고 강변했다. 건주위가 먼저 천자에게 반기를 든 게 아니라,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토벌당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공격 시점을 조금이라도 늦추고자 일을 벌였을 뿐이라고 말이다.
“저희는 지금이라도 천자께서 군사를 물려주시기만 하면 기꺼이 폐하 앞에 사죄사를 보내서 무릎을 꿇을 뜻이 있습니다. 조선과 싸울 의사도 없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순전히 자기 멋대로 미쳐 날뛴 맏형 탓이지 저희가 원한 바가 아닙니다.”
홍타이지는 지휘권을 쥔 맏형 추옌이 전공을 세워서 친조선인 둘째 다이샨을 압도할 욕심에 숙부와 동생을 겁박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패색이 짙어지자 먼저 도망치려고 했고, 그 와중에 가슴도 아닌 등에 조선군이 쏜 화살을 맞고 죽었다면서 말이다.
“부친인 건주위사께서는 명군과는 싸울 각오를 하셨으나, 조선군이 압록강을 넘어온다면 그 경우에는 싸우지 말고 적절히 대응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맏형은 제가 말리는데도 무턱대고 싸우려고만 들어 그 참극을 빚었으니, 어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일부러 형을 치고 그 목을 팔아서 안전을 보장받고자 꾸며낸 말은 아닌가?”
“의심스러우시면 허투알라에 사자를 보내 부친을 꾸짖어 보시옵소서. 분명히 소인과 똑같은 말을 할 겁니다. 천자께 반역할 뜻은 없으며, 조선과 우호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 증거로, 둘째 형 대선과 혼인한 옹주께서는 편안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계십니다.”
홍타이지의 입을 통해 다이샨이 희정옹주에게서 적장자를 얻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다. 다이샨에게는 만주인 처첩들이 낳은 자녀가 이미 몇 명 있지만, 조선인들이 보기에는 정처가 아닌 부처(副妻)들이 낳은 자손은 모두 서자였으니 말이다.
“혹시 상감께서 받아들여 주신다면, 이 사실을 한양에 가서 제가 직접 상감마마께 고하고자 합니다. 어렵겠습니까?”
“본관이 확답을 줄 수는 없다. 도성에 장계를 올리면 먼저 전하께서 조정의 공론을 들은 뒤 결정하실 일이니까.”
건주위 측 의도에 관해 몇 가지 더 물어본 김시민이 요구사항을 하나 꺼냈다.
“그대가 우리를 적대하지 않는다면, 순순히 항복하지 않고 며칠째 버티고 있는 우라산성을 개성(開城)하게 해 보라.”
“그건 어렵습니다. 저는 저 성을 지키는 장수가 누구이고 병력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며, 안다 해도 항복하라고 명령할 권한이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가까이 가도 성에서는 화살을 쏠 겁니다.”
“알겠다. 그럼 당분간 포위를 더 지속해야겠군. 막사를 하나 내줄 테니 그대는 일단 가서 쉬고 있도록.”
“감사합니다.”
“소관이 노을가적을 직접 만나러 다녀오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우라산성이 함락되지 않는 이상, 도원수께서는 여기를 떠나기 곤란하실 테니까요.”
김시민과 홍타이지가 나누는 대화를 끝까지 옆에서 듣기만 하던 익문사 총감 정여립이 불쑥 제안했다. 잠시 생각하던 김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오늘 밤에 은밀하게 출발하여 혁도아랍으로 가게. 그리고 놈들의 진의를 파악하도록. 전하께서도 지금 건주와 싸울 뜻은 없으시니까 말이네. 그리고 가는 김에 천병이 맡은 싸움은 어떻게 됐는지도 알아보고.”
“예, 대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