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33
2부 6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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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군은 두 번째 전투에서도 대승리를 거두었다. 마림은 분명 유능한 장수였으나, 그 휘하 장수들은 좋게 말해서 평범한 인간들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겁쟁이 졸장부들이었다.
누르하치는 자신이 직접 마림을 상대하면서 다이샨을 비롯한 휘하 장수들에게는 다른 명군 장수들이 이끄는 부대를 맡겼다. 행군하느라 여럿으로 분산된 명군 부대들이 제대로 집결하지 못하게 하면서 각개격파할 계획이었다.
2만 4천 병력을 직접 이끌고 있던 마림은 방어용 울타리와 함정, 화기까지 적절히 사용해서 만주군 기병의 공격을 잘 이겨냈다. 하지만 마림과 별도로 움직이던 부하 장수들은 그렇게 잘 대처하지 못했다.
본대와 떨어져 행동하던 소부대들은 압도적인 다수로 밀어붙이는 만주 철기의 공격을 맞아 그대로 짓밟혔다. 나름대로 규모가 큰 부대를 이끌던 장수들은 당장 움직여 마림과 합류하려 시도하는 대신 웅크렸다. 그 결과는 파멸이었다.
“후퇴하는 마림을 추격하는 정홍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후위군 2천을 또 포로로 잡았고, 적에게 남은 병력은 이제 본대뿐이라고 합니다. 1만 7천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좋아. 추격은 여기서 그만둔다. 그만큼 싸웠으면 이번에는 살아서 돌아가게 해주는 아량 정도는 베풀어도 상관없지. 개원위는 다음번 차례로 공략하면 그만이다. 다이샨에게 돌아와서 나와 합류하라고 전하라.”
이번 싸움에서 대타격을 입고 패잔병만 남아 도주한 개원위가 다음 공격을 이겨낼 리 없다. 최측근 장수인 호호리 역시 마찬가지 의견을 냈다.
“개원위 산하 25개 성보(城堡) 중 태반은 이제 수비병도 없을 겁니다. 우리가 싸움을 끝낸 뒤에 군세를 정비해서 진공하면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겠지요.”
“언제쯤 가능하겠는가?”
“오늘이 8월 22일이니 내년 봄이 어떻겠습니까. 겨울이 오기 전에는 승리를 축하하며 잠시 휴식과 잔치를 즐기는 편이 좋겠고 말입니다.”
대승리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전리품까지 얻었다. 갑옷, 무기, 마필, 군량과 같은 전리품을 전공에 따라 분배하고 전사들을 쉬게 한 뒤 내년에 다시 소집하는 편이 좋다.
“당장 몰아치면 궁지에 몰린 저놈들도 죽어라 싸울 겁니다. 우리 피해도 커질 게 분명하니, 차라리 잠시 놓아두십시오. 저놈들한테 한숨 돌릴 시간을 주면 살고 싶어 탈주하는 군사들이 속출하면서 방비가 도리어 더 허술해질 겁니다.”
“일리 있는 계획이군. 하지만 너무 헛바람이 든 계획은 세우지 않도록. 아직 남은 명나라 우익군, 요동 총병 이여백과 사천 총병 유정을 서둘러 처리해 놓고 나서 개원위 공략에 관한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다.”
그동안 놓아둔 사천군은 이제 허투알라에서 기마로 이틀 걸리는 거리까지 접근했다. 하지만 뒤따르는 요동군과의 거리도 그만큼 벌어져 있어서, 만주군이 전력으로 사천군 공격에 나서도 요동군이 제때 도우러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알겠습니다. 참, 정홍기에서 추가로 획득한 포로는 어떻게 하라고 할까요?”
만주군은 마림이 보유하고 있던 4만 명 중에서 5천 명을 포로로 잡았다. 나머지 1만 8천은 거의 칼과 화살에 맞아 죽었다. 마림과 신속하게 합류하지 않고 망설인 대가였다.
“먼저 잡은 포로들과 함께 한군팔기(漢軍八旗)로 편성한다. 순순히 따르겠다는 놈은 머리를 깎고, 따르기를 거부하는 놈들은 목을 베어라.”
“예, 주군.”
이번에는 두송을 격파했을 때와 달리 포로를 죽이지 않고 처리할 만한 여유가 생겼다. 모든 포로는 한군팔기로 편제하여 보병으로 삼는다. 이들은 앞으로 벌어질 싸움에서는 만주를 위해 싸우게 되리라.
“공을 세우는 자는 만주인과 같은 대우를 받으리라고 왜군팔기를 예로 들어 두어라. 출신이 어디건, 진정으로 내게 충성하는 자는 모두 합당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예, 주군.”
한군팔기는 왜군팔기의 보조전력으로 활용한다. 앞으로는 회전보다는 공성전을 자주 치르게 될 테니, 보병이 맡은 역할이 크다. 더구나 명군 포로 중에는 화포를 다룰 줄 아는 병사들도 적잖게 있으니, 조선군만은 못해도 만주군도 화포군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내일은 사천군을 공격한다. 왜군별기는 우리가 마림을 격파하는 동안 푹 쉬었으니, 이번엔 선봉에 서서 적을 붙잡아놓게 하라.”
기병이 없는 사천군은 간단히 격파할 수 있다. 보병인 왜군별기는 적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잡아놓는 역할만 맡으면 충분하다. 그러면 기병인 팔기가 포위하고 격멸할 수 있다. 그리고 나면 이여백도 따라잡아 괴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놈이 때맞춰 요양으로 도망가지 않는다면 말이지만.”
누르하치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동안 이여백이 보인 태도를 보면 충분히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고도 남았다. 먼저 도망쳐서 강력한 성벽을 갖춘 요양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현재로서는 붙잡을 수 없다.
“주군! 도로이버일러와 함께 별군을 이끌고 가신 홍타이지 님에게서 사자가 왔습니다!”
달려온 기병 하나가 급히 말에서 뛰어내려 누르하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숨 가쁜 목소리로 보고했다.
“급보입니다! 별군이 어제 조선군과 싸워 궤멸당했습니다! 도로이버일러 전사, 야르하치 님 전사! 병력 손실, 최소 1만!”
“뭐라고!”
보고 내용은 참담했다. 슈르하치를 비롯한 휘하 장수들은 입을 크게 벌린 채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선군을 이기는 건 기대하기 힘든 일이라는 정도는 모두 알고 있었지만, 설마 5배나 되는 대군을 가지고도 일방적으로 패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상대가 평지 대신 비탈 위에 진을 치고 있었고,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목책을 세우고 호를 파서 방어 준비를 다 해놓았었다고는 하지만….”
누르하치가 신임하는 측근 중 하나인 피옹돈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옆에서 슈르하치가 잔뜩 표정을 찌푸린 채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것 보시오. 난 죽기 싫었다니까.”
보병 3천 명을 상대로 철기 2만을 밀어 넣고도 대패했다. 마지막에 있었다는 조선 기병들의 돌격은 이미 덫에 걸려 죽어가는 짐승을 잡아서 목을 딴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조심해서 대응하라고 했는데도 그따위로 굴었으니 당해도 싸지. 다들 너무 동요하지 마라. 우리 주력부대는 멀쩡하지 않으냐?”
추옌이 거느리고 간 병력은 비교적 최근에 귀순한 자들이 주축이었다. 추옌 본인이 그들을 선호한 탓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다행스러운 결과가 된 셈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잘 되었다. 조선 국왕에게도 명나라 황제 앞에 내놓을 성과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2만 대군을 격파했으니 조선왕도 면이 설 것이다.”
“하지만 조선왕의 체면을 살려 주기 위한 것 치고는 우리 손해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1만 기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손실이다. 이번에 포로로 잡은 한군(漢軍) 5천 명만 있어도 절반은 보충할 수 있고, 추가로 포로를 더 잡으면 나머지도 채울 수 있다.”
누르하치는 냉철하게 명령을 내렸다.
“우라산성이 버티고 있는 동안에는 조선군이 허투알라로 진격하지는 않을 테니까, 일단은 사천군부터 무찌르고 보자. 사천군을 격멸한 다음에는 전투를 중단하고 허투알라로 복귀한다. 조선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한 뒤에 움직일 방향을 다시 결정하겠다.”
“예, 주군.”
“내 생각보다 더 미련한 놈이었다.”
쌓아둔 모피 위에 몸을 누인 누르하치가 구름 같은 담배 연기를 뿜으면서 한탄했다. 군막 안에 있는 사람은 측근이자 사위 양굴리 한 사람뿐이다.
“많이 잃어 봐야 2천 기 정도 잃을 줄 알았더니 1만 기를 날려? 그것도 지난번 무순에서는 요동군 기병 1만 기를 그렇게 간단하게 털어버린 철기를 말이다. 그놈은 이제껏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멍청한 놈이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양굴리가 씁쓸하게 입술 한쪽을 일그러뜨렸다. 처남 추옌은 양굴리로서도 딱히 사이가 좋은 상대는 아니었지만, 이번 사태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주군께서 판을 짜서 지시를 내려주지 않으시면 활약할 수 없는 사람의 한계입니다. 그동안 매번 싸울 때마다 주군께서 계책을 짜고 지시를 내리지 않으셨었다면 도로이버일러가 어떻게 공을 세웠겠습니까? 말씀하신 지난번 무순 공격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리한 상황에서는 충분히 쓸만한 돌격대장이기는 했지.”
하지만 만주 전체를 책임질 후계자로는 매우 적합하지 못했다. 이번 출격에서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고 기량을 점검해볼 생각이었지만 그 결과는 역시 좋지 못했다.
“하지만 평안도 공격이라니, 그건 정말 미친 생각이었습니다. 만약에 실행에 옮겼으면 우리 만주는 끝장이었을 겁니다.”
“열두 살이나 어린 동생 홍타이지보다 못한 놈 같으니. 홍타이지의 말이라도 들었다면 손실 없이 대치하면서 조선군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었을 것을, 성급하게 굴다 대패하지 않았느냐? 병력은 물론이고 군마에다 갑옷 1만 벌까지 날아가 버렸다.”
말과 갑옷은 중요한 자산이다. 조선군이 전사자들의 갑옷을 다 벗겨 놓았다가 빼앗은 말과 함께 돌려줄 리는 없으니, 꼼짝없이 감당해야 할 손실이다.
“그대가 조선왕을 만나고 온 게 몇 년 전이었지?”
“주군께서 조선왕과 혼사를 맺으실 때 특사로 갔었으니, 5년 전입니다.”
양굴리는 다이샨이 희정옹주와 혼인할 때 슈르하치와 함께 조선에 갔었다. 슈르하치가 술과 잔치를 즐기며 형식상의 특사 노릇을 하는 동안, 국왕과 따로 회견하면서 화약을 조달하는 등 진짜 특사 역할을 했다. 누르하치가 다 피운 담뱃대에 다시 담배를 채우며 지시를 내렸다.
“여차하면 그대를 조선에 특사로 보내야 할 수도 있겠으니 준비해라. 가장 최근에 조선왕을 만나보고 돌아온 사람이 그대니까 말이다. 마지막 명군을 격파하고, 조선군이 보이는 태도를 살펴서 파견 여부를 결정하겠다.”
“알겠습니다, 주군.”
누르하치가 두 번째 담배를 물었다. 하지만 몇 모금 빨기도 전에 재떨이에 털고 말았다.
“오늘따라 담배 맛이 쓰군.”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누르하치의 손이 조금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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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이 작성한 상세한 최종보고가 올라왔다. 내용을 보니 확실한 압승이었다.
아군 전사자는 112명,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는 231명밖에 안 나왔다. 이에 반해 쏘아죽인 적의 숫자는 확실히 사체를 매장한 숫자만 9878명이고 붙잡은 포로는 2283명이었다. 노획한 말은 2886필, 낙타 21필과 쓸만한 무기 수만 점을 손에 넣었다. 죽은 적의 갑옷도 벗겼다.
“포로는 해하지 말고 모두 본진으로 보내라. 우라산성에 있는 적에게 포로를 보여주어 원군 따위는 오지 않는다고 알려야겠다.”
“예, 도원수 대감.”
포로를 해치지 말라는 건 다른 이유가 있다. 우라산성에 있는 적을 위협한다는 건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실제로는 숨은 배경이 있다. 장차 건주위 측과 어떤 교섭을 하게 될지 모르는 이상, 포로를 함부로 죽이거나 노비로 삼을 수는 없었다.
“정 부령이 작성한 장계는 손댈 것 없으니 그대로 도성으로 보내라. 그 참에 비승군을 빨리 보내줬으면 좋겠다는 독촉 서한도 함께 보내도록 하고.”
처음 비승군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장계를 보낸 게 사흘 전이니, 그 장계는 도성에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으리라. 하지만 적어도 2번 정도는 요청해야 조정에서 보기에도 이곳 상황이 많이 어려워 보일 게 아니겠는가.
‘싸우지 않고 허송세월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하게 될 줄은.’
이런 이유도 대지 않으면 조정에서 말썽이 있을지 모른다. 대승을 거뒀으면서도 허투알라로 바로 진격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따질 게 분명하다. 조정에서도 기꺼이 출병을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기왕 나섰으면 성의껏 싸우는 게 당연하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을 거다.
“건주위 공자 황태극(홍타이지)도 그 장계를 보내는 김에 도성으로 보내도록 하지. 전하께서 처분을 결정하시도록.”
“알겠습니다.”
홍타이지는 분명히 뭔가 다른 용건을 가지고 왔다.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데도 맏형의 목을 들고 스스로 항복한 것만 봐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놈이 스스로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여기서 잡아둬 봤자 그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다. 도성으로 보내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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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십시오, 총관 나리.”
“그래, 잘 있었는가?”
정여립이 허투알라에 오면 머무는 곳은 늘 정해져 있다. 희정옹주가 있는 다이샨의 저택이 정여립이 머무는 거점이다.
희정옹주 본인은 정여립과 별 연관이 없다. 하지만 옹주가 데리고 있는 남녀 시종 중 일부 인원은 금위사 관원이고, 이들 중에는 과거 정여립이 금위사장으로 있을 때부터 인연을 맺은 사람도 섞여 있었다.
“자네랑 알고 지낸 것도 근 20년이군. 전쟁까지 터졌는데 오랑캐 땅에서 지내는 게 힘들지 않나?”
“괜찮습니다. 대선(다이샨) 공이 옹주마마를 끔찍하게 생각하는지라, 저택 경호도 철저하게 하고 있어서 안전 문제도 없습니다. 다만 도성에 저희가 보내야 할 연락문도 내보내지 못하여 다소 곤란한 점이 있었습니다.”
연락문을 보내려면 연락책을 만나야 한다. 그런데 저택 안팎이 모두 다이샨이 새로 배치한 병사들로 둘러싸여 외부와의 접촉이 끊겼다. 옹주가 부모에게 보내는 공식적인 안부 편지까지 보낼 수 없을 정도였다. 첩보 보고가 본국에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여립이야 예외다. 다이샨과도, 누르하치와도 모두 안면이 있을 정도의 사람인 데다 조선 국왕이 보내는 사자라는 신원도 확실하니 출입할 수가 있다.
“옹주마마께서 공자를 출산하셨다는 소식 같은 것 말인가.”
옹주가 임신했음은 무순을 함락하기 이전에 옹주 스스로가 편지로 알렸다. 그 후에 연락이 두절되면서 더 이상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 말고도 알릴 게 많았습니다만….”
“뭐, 되었네. 내가 왔으니까 이참에 직접 받아가지. 그보다 지금 건주위사 노을가적은 어디 있나? 전황은 어떻게 됐고?”
“노추와 대선 공 모두 혁도아랍에 없습니다. 지금 군대를 끌고 혁도아랍 남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세 갈래 천병 중에 이미 둘을 격파했고, 이제 나머지 하나를 치러 가는 듯합니다.”
“천병이 완패한 건가.”
명나라 군대가 얼마나 형편없는지는 이미 신물 나게 보고 들었다. 하지만 20만 명에 가까운 대군을 동원해 놓고 완패하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노추의 본진에 직접 가봐야겠군. 안내인을 부탁하네.”
“예, 총관 나리. 대선 공이 남겨둔 이들에게 부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