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36
2부 6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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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이 무겁다. 전신의 힘을 쏟아 가까스로 눈을 살짝 뜨니 그간 눈에 익은 내 방 천장이 보인다. 정신은 차렸으나 아직도 머리가 어지럽다. 목이 마르다.
“정신 들어?”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어루만진다. 의식이 없는 동안 애타게 찾아 헤맨 목소리, 상희다. 고개를 돌리니 부드럽게 미소짓는 상희가 보인다. 입술은 웃고 있지만, 눈동자 속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오늘…며칠이야?”
“8월 25일. 너 사흘 만에 눈 뜬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혹시 의식 회복 못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조마조마했어. 다행히 오늘 아침부터 열 내리더라. 중전마마는 잠시 중궁전에 가셨어.”
상희의 부축으로 몸을 일으킨 다음 꿀물 사발을 받아들었다. 살짝 목을 축이며 상희가 밖에 있는 내관에게 내 쾌유를 알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전하께서 의식을 차리셨네. 어서 중궁전에 고하시게.”
“예, 상빈마마.”
“전하께서 이리 쾌차하셨으니 오늘 신첩은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실로 천지신명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다 중전이 염려해주신 덕분이오. 참으로 고맙소.”
중전은 내가 혼절한 사흘 동안 상희와 둘이서 대전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했다. 내 주치의를 겸한 셈인 상희를 제외하고, 다른 후궁들은 감히 끼어들지 못했다.
“내가 국사를 손에서 놓은 지 열흘이 되었구려. 세자는 일을 잘하고 있소?”
“그러하옵니다, 전하. 전하께서 거시는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훌륭하게 국사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곧 부왕께 문안을 드리러 올 것입니다.”
이번에 내가 자리보전하고 눕게 만든 병은 폐열(肺熱), 그러니까 폐렴이다. 8월 초부터 감기 증세가 있었는데, 이게 얼른 낫지 않더니 폐렴이 되었다.
처음에는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다. 하지만 증세가 너무 심해지는 바람에, 견디다 못해 열흘 전에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명하고 대전에 드러누웠었다. 그런데 상태가 자꾸 나빠지면서 지난 사흘 동안은 아예 의식불명 상태였다고 했다.
“중전께서는 사흘 동안 꼬박 밤을 새우셨사옵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옥체에서 열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서야 잠시 중궁전으로 돌아가셨으니 서운해 마옵소서.”
“상빈이 전하 곁을 지키니 어찌 안심하지 않겠습니까. 신첩이 상빈만큼 젊었으면 주상께서 눈을 뜨실 때까지 신첩도 옆에서 모셨을 것을, 안타깝습니다.”
두 사람이 사이가 좋은 걸 보려니 절로 입가에 내 미소가 흐른다. 임금이 총애하는 후궁과 중전이 사이가 좋기는 쉽지 않을 텐데, 이들 두 사람이 다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아무리 상희가 중전 자신이 꽂아준 후궁이라지만 말이다.
어제도 밤을 새웠으니 그만 가서 쉬라고 중전을 다시 중궁전으로 보내고, 잠시 상희와 둘만 남았다. 부드러운 무릎을 베고 누우니 한결 푸근하고 편안했다.
“내가 늙긴 늙었나 봐. 감기 따위를 못 이기고 폐렴을 만들다니.”
“항생제가 없으니까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 있잖아, 내가 한의사가 아니라 양의사였으면 항생제도 만들 수 있었을까? 그건 역시 무리였겠지?”
상희가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살짝 손을 들어 뺨을 어루만지며 위로해주었다.
“그건 어려워. 현대 화학산업이 발달한 뒤에나 가능했던 게 항생제 생산인걸. 너 혼자 그런 큰일을 어떻게 하냐.”
약도, 기구도 없는 현대 의사가 조선에 와서 뭘 할 수 있었겠나. 한의사인 상희조차도 자기 손에 익은 현대식 기구가 아닌 조선식 의료도구에 적응하느라 한참 애를 먹었다는데 말이다. 환자들에게 놓는 침만 해도 현대식 침과 조선식 침이 생긴 모양이 다르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새로 환생할 기회가 아직 여러 번 남았다면, 그렇게 깨어날 때마다 노력한다면 항생제가 실제 역사에서보다 좀 더 빨리 나오게 만들 수는 있겠지. 종두법처럼 말이야.”
우두 접종은 지금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100% 다 맞으려면 아직 멀었다. 우두를 접종한 인구 비율은 지금 대략 50% 정도 된다.
“웃기지? 정작 종두법이 효과를 내니까 사람들이 안 맞는 게 말이야.”
“사람들 심리가 그렇지.”
우두 접종이 시작된 이래, 두창이 대규모로 유행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병이 유행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두려움도 잊어버렸는지, 병도 안 도는데 우두 같은 거 굳이 안 맞아도 되지 않느냐는 사람이 은근히 많았다.
그나마 가뭄이 들었을 때는 접종을 받으면 한 되씩 주는 저화를 받으려고 오는 백성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올해 날씨가 좋아서 농사가 잘될 것 같으니까, 요즘은 자기 발로 우두 맞으러 오는 이들이 별로 없다. 과거 급제자나 군대 신병들은 강제접종을 하고 있지만….
“그러다가 한번 피를 봐야 다들 종두 고마운 줄 알지…젠장.”
사실 냉정하게 보면 우두 하나로 사망률이 격감하고 인구가 폭증하지는 않았다. 사람 잡는 병이 천연두 하나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인구 증가에는 충분한 식량 공급도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천연두에서 살아남아봤자 기근으로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천연두에 걸려 죽었을 특정 개인이 종두법 덕에 살아나서 역사를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다른 요인 없이 종두법 하나로 인구가 급증하지는 않는다. 지난 20여 년 동안 보위에 앉아서 직접 체험하며 깨달은 결과다.
“전하, 세자 저하 입시이옵니다.”
“들라 이르라.”
상희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성이가 왔다 하니, 이제 내가 국정에서 손을 떼고 있던 지난 열흘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들어볼 차례다. 상희도 이제 가서 좀 쉬라고 하고.
“가을을 맞아서 전국에서 오곡이 순조롭게 무르익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추수를 준비하며 아바마마의 성덕을 찬양하고 있사옵니다.”
“날씨는 하늘이 주시는 것이지 내 덕이 무슨 보탬이 되었겠느냐? 그보다 건주위를 치러 간 우리 원정군은 어찌 되었느냐?”
“도원수 김시민이 지휘하는 건주위 토벌군은 지난 13일에 만포진 앞에서 무사히 압록강을 건넜으며, 우라산성을 포위하고 공성할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성이는 중요한 장계 몇 개를 골라 가져왔다. 하나씩 읽어보니 김시민이 압록강을 건너면서 보낸 것, 우라산성에 도착해서 보낸 것 외에도 평안도나 속말주에서 보낸 것들이 여럿 올라와 있었다. 혹시나 하고 걱정했던 우리 영토에 대한 반격은 없었다. 아직은.
“국경은 평화롭습니다. 연변(沿邊) 지역 백성들이 약간 불안해하기는 하나, 건주위가 국경을 넘어 공격해오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안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들이 궁지에 몰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명군이 공격해온다고 해서 건주위가 조선으로 쳐들어오는 건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할 만큼 누르하치가 멍청이는 아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불의의 사고로 누르하치가 죽은 뒤 그 자리를 다른 놈이 물려받아 바보짓을 할 수도 있으니까.
“우라산성에 있는 도원수는 비승군과 거포를 보내달라 하였다고?”
“그러하옵니다. 소자가 생각하기에는 비승군 한 조와 거포 2~3문 정도는 보내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사옵니다만. 좋은 훈련이 되지 않겠습니까?”
잠시 생각해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우라산성은 애초에 공략할 예정도 없었던 성이다. 그런 성을 공격하기 위해 원병을 보낼 필요는 없었다.
“비승군은 바람이 약한 평탄한 지형에서 운용하는 편이 안전하다. 우라산성 앞은 골짜기와 산줄기 사이로 바람이 세게 부는 곳이 아닌가? 그런 곳에서 기구를 띄우다가는 추락할 위험이 있으니, 삼가는 편이 좋겠다. 이미 몇 기 잃어버리고 사람이 상하지 않았느냐?”
그동안 전투 중에 추락한 기구는 없었다. 하지만 훈련 중에 추락한 기구는 총 4기다. 20년 가까이 운용하면서 겨우 4기밖에 잃지 않았다면 무척 양호한 수치라고 생각한다만, 조심해서 운용해야 하는 물건인 건 사실이다.
“거포도 보낼 필요 없다. 운반이 어려울뿐더러, 우라산성에 거포를 보내려면 기존 포대에서 포를 하나 빼내야 하는데 빼낼 만한 포도 없지 않으냐.”
우라산성은 오녀산성이지. 그런 고성(高城)을 공격하려면 지금 쓰는 대완구보다 더 강력한 구포(臼砲)가 필요하다. 사실 대신기전을 쏴도 되겠지만…뭐, 지금 당장 적당한 화포가 없기도 하니까 군기시에 하나 개발하라는 명령을 내려야겠다. 내가 자리 털고 일어나거든 말이다.
“그럼 우라산성은 어찌하라 하시겠습니까?”
“당분간은 포위만 하고 상황을 살피도록 하라. 대국 조정에서 우리에게 명한 바는 건주위의 주의를 끌라는 것이기도 하니, 우라산성을 포위하고 위세를 과시하는 것도 괜찮겠지.”
위세를 과시하며 주의를 끈다고 말은 했지만, 우리가 개입하지 않으면 승패는 빤하다. 물론 이번 전투로 명군이 궤멸당한다고 해도 건주위에는 산해관을 돌파할 힘은 없지만 말이다.
명나라 군부에도 바보만 가득한 건 아니다. 건주위 토벌을 위해 정예병을 끌어모으면서도 만리장성과 산해관을 지킬 최소한의 병력은 남겨두었다. 그 정도는 당사자인 누르하치도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성이는 약간 의구심이 있는 모양이다.
“아바마마. 만약 우리가 방관하는 동안 건주가 산해관을 뚫는다면 어찌 대응함이 좋으리라 생각하시옵니까?”
“대국은 아직 강성하다. 그런 일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만.”
“언젠가, 만약에 말이옵니다.”
“딱 언제라고 확정할 수 없는 시기에 혹시 그런 일이 생기면 어쩌느냐는 말이지.”
이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눈 것도 꽤 오랜만이군. 예전에는 늘 막연하게 끝내긴 했다만.
“그때 우리가 어떤 사정에 처해 있을지를 모르니 지금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건주위가 황제를 거스르고 입관(入關)하여 화북을 점하는 상태가 된다면, 강남으로 밀려난 천조와 힘을 합치고 북적(北狄)들을 한패로 끌어들여 사방에서 견제함이 가할 것이다.”
“우리가 직접 토벌하지는 않고 말이옵니까?”
“천조가 아직 강남에서 살아있는데 왜 우리가 중원에 군사를 보낸단 말이냐. 수군과 기병을 운용해서 저들의 뒤를 불안하게 하고, 천병이 반적을 토벌할 수 있도록 배후에서 돕기만 하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실제 역사에서도 청나라는 끝내 자력으로 산해관을 돌파하지 못했다. 성벽을 살짝 넘어가는 약탈원정은 여러 차례 벌였지만, 제대로 침공을 개시한 건 오삼계가 관문을 열어준 후다.
“중원에서 내란이 일어나 천자의 위가 쓰러지고 천하가 혼미해진 상태라면 어떨지요?”
“그러하다면 그때 상황을 보고 결정해야겠지. 누가 강성함이 우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살펴 주변의 이적들을, 또는 갈라진 중원의 여러 세력 중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자와 연계를 강화하여 우리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아바마마.”
성이도 나름대로 누르하치가 중원을 차지할 경우를 대비해서 계획을 세우는 모양이다. 이런 정도 준비성은 있는 세자라 다행이다. 내가 후계자 교육은 나쁘지 않게 시킨 것 같네.
“그리고 견서사가 서반아에서 장계를 보냈사옵니다만….”
4차 견서사는 2년 전, 계묘년(1603) 4월에 조선을 떠났다. 28개월이 지났으니까 유럽에서 보낸 첫 장계가 도착할 때가 되긴 했다.
“하필 내가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동안 그 장계가 오다니, 절묘하긴 하구나. 그래, 무엇이라 고하였더냐?”
“아뢰기가 실로 황당하오니 직접 읽으시는 편이 좋을 듯하옵니다.”
“어디, 내놓아 보아라.”
기운은 아직 없지만, 종잇장 하나 직접 못 들 정도는 아니다. 황당한 내용이라니, 아무래도 가르시아 추방 건으로 크게 한바탕 붙은 모양이로구나. 펼쳐보기 전에 일단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부터 차분히 가라앉혔다. 그리고 두루마리를 펼쳤다.
“초반에는 별 내용이 없다만….”
1년이나 걸려 바다를 건너온 장계를 손에 들고 죽 읽어보니, 항해 과정에 관한 내용이 한참 이어졌다. 그리고 스페인 궁정에 들어가 펠리페 3세를 알현하고, 이제 막 한바탕 붙었겠구나 하는 참에 어처구니없는 내용이 튀어나왔다.
“뭣? 서반아 국왕이 말하기를, 우리 수군이 회교의 성도(聖都) ‘메카’를 불태웠다고 하면서 극진한 환대를 베풀었다고?”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와 궁정 귀족들은 ‘사악한 이교도들의 심장을 쳐서 타격을 준’ 조선 용사들을 칭송하면서 연이어 연회를 열어 견서사 일행을 대접하였고, 훈장을 수여하는가 하면 내게 갖다 주라고 선물 보따리를 안겨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어서 장계를 다시 한번 읽어봤지만, 분명히 ‘메카’라고 적혀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하는 순간 문득 그런 소문이 퍼진 이유를 깨달았다.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억눌러 참고 성이를 보니, 성이 역시 웃고 싶은 기색이 얼굴에 가득했다.
“세자도 알겠는가?”
“예, 아바마마. 아무래도 천회사 이기빈이 모카를 친 일에 관한 소문이 중도에서 와전되어 ‘모카’가 ‘마카’, ‘메카’가 되어 대유주에 전해진 듯하옵니다.”
성이가 그만 피식거리며 웃었다. 나도 폭소를 터트렸다. 너무 인간적인 유언비어가 아닌가!
이기빈이 박살을 내고 온 곳은 아라비아반도 남쪽 끝에 있는 ‘모카’다. ‘메카’를 공격하려면 홍해를 따라 한참 북상해야 할뿐더러, 메카 자체는 항구도시도 아니다. 지금 내가 기억하지는 못하는데, 메카에 갈 때 이용하는 항구가 분명히 따로 있다.
“하려고 하면 메카를 불태우지 못할 것도 없지.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전 세계에 퍼진 수천만 회회교도 전체에게 불구대천의 원한을 살 터인데, 왜 그런 바보짓을 한다는 말이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슬람교도들에게 메카가 어떤 의미인지는 성이도 알고 있다. 조선에 들어온 이슬람교도는 이기빈이 원정에서 데려온 동아프리카 출신 흑인 병사들이 사실상 전부지만, 선교사들이나 내 입을 통해서 배울 만큼은 배웠으니까 말이다.
“본래 풍문이란 퍼지다 보면 전혀 엉뚱하게 바뀔 수도 있는 법이다. 모카가 메카로 바뀌는 정도라면 그래도 양호하다고 할 수 있지. 내버려 두도록 하자.”
“사실을 알리는 교서를 내려 오해를 풀도록 하심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어느 쪽으로 소문이 퍼지건 우리에게는 그리 피해가 올 것도 없다. 잘못 퍼진 소문 덕분에 우리 사신들이 융숭하게 대접받았으니 이것도 괜찮은 일 아니냐? 그리고 지금 승정원에 알려 교서를 내리게 해 봐야 그 교서가 도착할 때쯤이면 견서사는 이미 유럽을 떠났을 것이니라.”
상대가 제때 받지도 못할 게 빤한 편지를 공들여서 써 봐야 가지고 가는 사자들만 괴로워질 뿐이다. 차라리 안 보내는 편이 모두 편하다. 유럽에서 오해하고 있다면 오해한 대로 놔두지 뭐. 어차피 우리 이미지를 좋게 하는 소문인 데다가, 완전한 허위도 아니지 않은가.
장계를 마저 읽어보니 가르시아에 대한 언급이 뒤쪽에 있기는 있었다. 예수회에 대한 시기 때문에 국왕에게 허위보고를 올렸다고 해서, 맹비난을 받고 수도원에 칩거하고 있다고 했다. 꼴 좋네.
“내년이면 견서사가 돌아올 테니, 그때 사실을 알게 해주면 족하다. 유럽에서 이런 소문이 돌았다고 춘추관에 일러 기록이나 해 두게 하면 되느니라.”
“예, 아바마마.”
건주위 토벌이 끝나고 이기빈이 돌아오거든 이기빈한테도 들려줘야겠다. 무척 재미있어하지 않을까? 셀린이랑 마주 앉아서 그 이야기를 하며 웃어댈지도 모르겠다. 셀린은 자기 친구들을 만나러 궁궐에 가끔 들어오는데, 이기빈을 무척 기다리는 듯하더라.
“그래,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맡아본 덕분인지 임금 노릇을 제법 괜찮게 하는구나. 내가 지금 눈은 떴으나 완전히 기운을 차리려면 아직 시간이 좀 필요하니, 당분간 세자가 대리청정을 계속하도록 하라.”
“알겠사옵니다, 아바마마.”
기왕 쉬는 거, 좀 더 쉬자. 성이에게는 군사와 외교에 관련된 일이 아니면 재량껏 결정해도 좋다고 말해 두었다. 설마 그동안에 뭔가 엄청난 사태가 터지지는 않을 테니, 한 보름 정도는 천천히 몸보신이나 하면서 푹 쉬어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