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4
1부 084화
– 19 –
드디어 홍길동을 잡았다. 몇 년째 충청도 일대를 누비고 다니던 살인강도단 두목이 드디어 잡혔다! 아무래도 올해는 뭔가 일이 좀 제대로 풀리려는 모양이다. 연말에 와서 어째 좋은 일이 이토록 계속되는지 모르겠다. 약간의 불안감까지 느껴질 정도로 좋은 일이 연달아 생긴다.
“장하다! 홍길동을 붙잡은 자들에게 약속대로 후한 포상을 내리겠다.”
충청감사가 올린 장계를 보는데 감탄이 그치지 않았다. 이건 미션 임파서블이나 무간도를 보는 느낌이었다. 충청감영에서는 위장한 포교를 홍길동 일당에 잠입시킨 뒤 정보를 캐내고, 이를 바탕으로 꼬박 1년 동안 홍길동의 조직을 추적해 나갔다. 그리고 끝내 붙잡고 말았다.
“이거 라고 소설로 써도 되겠는데.”
아아, 지난 6년 동안 읽을거리도 부족했는데 내가 직접 소설로 써 볼까? 한국 문학사가 바뀌겠구나. 최초의 한글소설이 허균이 쓴 홍길동전이었는데, 내가 쓴 홍길동 추포기로 바뀌게 되는 건가.
내가 장계를 읽으며 기뻐하고 있으니 영의정 한치형, 좌의정 성준, 우의정 이극균 등 세 정승들이 입을 모아 축하를 보냈다.
“전하, 그 흉악한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 하니 신들도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백성을 위하여 해독을 제거하는 일이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청컨대 저들이 우두머리를 잃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이 시기에 그 무리들을 남기지 않고 다 잡도록 하소서.”
“이를 말이냐. 지금은 저들이 겁에 질려 머리를 숨기고 있으나, 회복할 시간을 주면 다시 우두머리를 세워 도적질을 계속할 것이다. 그대들의 말대로 저들의 잔당을 쫓아 그 씨도 남기지 말고 붙잡아야 하리라.”
나도 모르게 내 얼굴에 웃음꽃이 잔뜩 피었다, 요새 계속 좋은 일만 생기는구나!
홍길동 패거리에 속한 졸개들은 죄의 경중에 따라 장형에 처한 후 북방으로 보내서 관노로 삼겠다. 이 시대에는 이게 징역형에 속하는 셈이니까. 모은 재물은 모조리 몰수하여 충청감영에서 구휼예산으로 삼게 할 생각이다. 모두 충청도 백성들이 흘린 피와 땀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빠트리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그동안 홍길동은 부패한 고관들과 결탁하여 그 비호를 받았다. 개중에는 단순한 탐관오리들 뿐 아니라 누구라고 말하기 힘들 만큼 신분이 높은 이들도 있다 하니, 확실한 증거를 모아 벌해야 하겠다.”
‘누구라고 말하기 힘들 만큼 신분이 높은 이’는 당연히 성종의 후궁 숙의 홍씨를 가리킨다. 성종과의 사이에 7남 3녀를 낳은, 총애를 받은 후궁이다. 또한 홍길동의 적형(嫡兄), 홍일동의 2남 2녀 중 막내딸이다.
숙의 홍씨가 홍길동을 비호했다는 제보는 금위사에서 들어왔다. 일부 검증되지 않은 부분도 있으나, 전체적인 신뢰성은 매우 높았다. 홍길동 본인이 세력가 출신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잡을 수 있었는데 잡히지 않았던 여러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누군가 커버해줬을 수밖에 없다.
“죄인은 마땅히 지은 죄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 설사 도적을 비호한 자가 있어 그 죄가 밝혀진다면 고관대작, 혹은 그 이상 고귀한 신분이라 해도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리라. 경들 중에는 혹시 그리 생각하지 않는 자가 있는가?”
홍길동이 정말 좋은 시점에 잡혔다. 이제 개가금지법 무력화에 따라 수많은 반발이 몰아칠 판인데, 홍길동 체포 및 그에 따른 잔당 색출 뉴스가 그 이슈를 다 덮어버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아주아주 크고 성대하게 터트려서 개가금지법 문제를 싹 덮어버려야겠다.
“도적을 비호한 자들을, 전하께서는 어느 정도까지 벌할 생각이신지요?”
한치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태도를 보니 숙의 홍씨가 홍길동을 지켜주었음을 이미 눈치 채고 있는 듯했기에 거침없이 말했다.
“관직에 있다면 삭탈관직하고, 지금 관직에 없다면 기존에 받았던 품계를 낮추리라. 또한 도적을 도와 모아들인 모든 재산을 적몰하고 도성에서 쫓아내 낙향하게 하겠다.”
지금 내 말은 필시 숙의 홍씨의 귀에 들어가리라. 숙의 자신이 나서서 잘못을 이실직고하면서 용서를 빈다면, 일부 재산을 몰수하고 품계를 낮추는 정도로 눈감아 줄 의향이 있다. 일단 선왕의 후궁이라 아무래도 껄끄러우니 말이다.
하지만 죄를 인정하지 않고 수사를 방해하며 압력을 행사한다면 얄짤없다. 난 폐비 윤씨 건을 굳이 끌어낼 생각이 없으니 귀인 정씨나 귀인 엄씨한테 손댈 일은 없겠지만, 숙의 홍씨는 한바탕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 20 –
슬슬 겨울 준비를 하며 한해를 마무리하려는 참인데 남쪽 바다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
“조선 국왕 전하께 인사를 아룁니다.”
바다 건너에서 온 손님은 유구국, 즉 옛날 오키나와에 있었던 류큐 왕국 사신이었다. 성종 때는 수시로 위사(僞使), 즉 가짜 유구국 사신이 와서 접대를 받고 물품을 얻어가곤 했는데, 이번에 온 이들은 정말로 진짜 유구국 사신이었다.
“지난 30년간 저희 조정에서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여러 차례 사신이 왔다니, 허허….”
서로 뻘쭘한 일이기에 그냥 웃고 넘겼다. 사실 조선에서도 그동안 나타난 자칭 유구국 사신들이 대부분 일본에서 온 가짜임은 알고 있었다. 가지고 온 문서에는 여기저기 오류가 있기 일쑤였고, 오가는데 몇 달은 걸릴 텐데 같은 사람이 한 해에 두 번 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개 사자로 대접해 주었던 건 어쨌거나 대국으로서 가진 체면이 있는 데다, 그들이 조선 표류민을 송환해 오는 등 나름 성의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사품도 부족하지 않게 주었다.
“그래, 귀국에서 30년 만에 이리 먼 길을 찾아온 연유는 무엇인가?”
내 질문을 받은 정사 양광(粱廣)과 부사 양춘(梁椿)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물론 저들이 조선말을 알 리는 없으므로, 사역원에서 나온 중국어 통사가 통역을 맡았다. 유구 사신 두 사람이 모두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기 때문이다.
“저희 국왕께서 전하시는 국서를 먼저 보아주소서. 소인이 행여 뜻을 잘못 전할까 염려되옵니다. 국서를 보신 뒤 필요한 부분을 하문하시면 답하겠사옵니다.”
“오냐, 알겠다.”
국서를 펼쳐들고 내용을 죽 읽었다. 이 시대는 편하다면 편한 것이, 한문을 알면 어느 나라 글이든 읽을 수 있다. 라틴어로 대동단결하던 중근세 유럽 사회와 비슷하다고 할까. 아무튼 읽어보니, 귀국의 은혜로운 명성 어쩌고 하는 인사치레를 빼고 본 내용은 별로 길지 않았다.
“대장경을 한 부 보내주기를 원한다고?”
“그러하옵니다.”
유구국왕이 최근에 절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절에 봉안할 불경이 없으니, 대장경을 한 부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일전에 세조대왕 시절에도 대장경을 받아갔다 하지 않았는가?”
“그 대장경은 이미 절을 지어 장경각에 잘 보관하고 있사옵니다. 허나 이번에 저희 임금께서 새로운 절을 새웠기에 대장경을 한 질 더 얻고자 하여 왔습니다.”
이들은 일본 상선을 타고 왔다고 했다. 평소 유구를 자주 오가는 사쓰마 배를 타고 규슈로 간 다음 규슈에서 대마도 배를 구해 타고 동래로 온 다음 육로로 도성까지 온 것인데, 참으로 먼 길을 온 셈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유구인들 스스로는 조선까지 올 수 없는 모양이다. 배가 문제인지, 뱃길을 몰라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직항로 유지가 가능하다면 뭔가 더 많이 주고받을 수 있을 텐데.
“그대들은 도중에 해로에서 위험을 겪지는 않았는가?”
“바닷길에 일부 해적이 있어 배를 약탈하곤 합니다. 허나 저희는 좋은 배와 선인들을 만나 안전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다만 워낙 길이 먼지라 7월에 출발했는데 이제야 도착했습니다. 전하께 드리는 예물을 상하지 않고 무사히 전해드릴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과연 먼 길에도 불구하고 유구국왕이 보낸 예물은 무사히 도착했다. 다채로운 비단과 포목, 상아, 코뿔소 뿔, 주석, 약재, 후추, 향료, 칼 2자루, 술 1병 등 갖가지 신기한 물건을 받았다.
“이런 선물이 없다 해도 이웃 간에 베풀 정리로 못할 것 없는 일이다. 승지는 즉시 해인사에 전하여 대장경 한 부를 새로 찍어 보내줄 수 있도록 하라. 경전이 준비되는 동안 유구에서 온 사자들은 도성에 머무르고, 때가 되면 동래로 가는 길에 경전을 받으면 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유구 사신들은 허리를 깊이 숙여 절을 했다. 인사를 받은 뒤 승지에게 지시했다.
“먼 길을 온 손님들이다. 머무르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준비하고, 조만간 잔치를 베풀어 환영토록 하라.”
“예, 전하.”
흐음, 사신들이 나가는 모습을 보니 한 가지 구상이 떠올랐다. 유구가 강국은 아니지만, 장래 내가 일본을 공격할 때 후방을 견제해 주는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유구군이 약체라도 그 정도 역할은 할 수 있지 싶은데.
아니, 차라리 통일 일본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산산이 흩어진 전국시대 일본을 견제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겠다. 통일 일본이라면 두 방향에서 전선을 유지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지금의 일본이라면 각 다이묘들이 한쪽에서 오는 적만 상대하면 되니까.
아쉽기는 하지만 유구는 장래 남방으로 나갈 무역 파트너 정도로 한정해서 생각해야겠다. 그렇게 유대관계를 쌓다 보면 나중에 일본이 통일해서 대외진출을 시작해도 함께 견제할 수 있겠지. 어쨌든 유구는 조선과 비슷한 유교문화권이고 말이 통하는 사이니까 말이다.
– 21 –
“전하께서 이 험한 길을 어찌 오셨나이까.”
“길이 험하다 한들 나라를 위해 일하는 이들을 어찌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느냐.”
12월이다. 동지사가 육로를 통해 북경으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천추사로 갔던 사신들이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명나라 조야에서 우리가 보낸 공물에 심히 감탄하더라는 소식과 함께 내년부터 사행을 배로 보내도 좋다는 명나라 황제의 허락을 받아가지고 왔다.
“김보가 은 천 냥 어치 값은 해주었구나.”
세 차례 파견되는 사신들이 조총 천 자루를 나눠서 가지고 가려면 한 번에 삼백 자루씩은 가지고 가야 한다. 배는 세 척 정도 보내야겠지 싶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서 한 척에 백 자루씩 싣고 남는 공간에 교역할 물건과 다른 조공품을 실으면 되겠지.
사실…황제가 총만 바치면 다른 조공품은 필요 없다고 하긴 했다. 그래도 정말로 총 말고 아무것도 안 바칠 수는 없다. 이제까지 우리가 보낸 조공품 중에는 황제 말고 황후와 황태자 앞으로 들어가는 몫도 있었으니까.
황제야 제국을 위해 총이 다른 선물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황태자도. 하지만 황후도 그러라는 법은 없다. 선물을 받지 못하게 된 황후가 불만을 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황후를 우리 적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적어도 황후에게 보내던 공물은 계속 보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내년부터 공물 중 가장 중요한 품목이 총이 된 만큼, 그 총을 만드는 군기시 새 공장을 한번 둘러볼 필요는 있다 싶었다. 그래서 눈이 더 많이 쌓이고 북한산을 오르기 힘들어지기 전에 찾아온 것이다.
“지금 총포감에서는 완성품 조총 1,400정을 비축해 놓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강선을 새기지 않은 진상용 총은 200정을 만들어 놓았사옵니다.”
당연히 모두 새 설비로 만들었다. 기존에 인력으로 만들 때보다 확실히 성능도 좋고 생산 효율도 올랐다. 생산비도 조금 내려서 강선총이 정당 쌀 4석 정도라고 했다.
“좋다. 하지만 장래에는 아군보다 훨씬 많은 적을 상대로 싸울 경우도 상정해야 하는데, 한 발 쏘고 한참을 기다려야 다음 탄환을 쏠 수 있는 우리 총으로는 무리가 많다. 그래서 보완할 방안을 생각해보라 하였는데 혹시 괜찮은 안이 나왔느냐.”
아무리 강선총이라도 소총만 가지고는 장래에 명나라 대군과 싸울 수가 없다. 그래서 제일 먼저 만든 게 비격진천뢰 및 이를 발사하는데 쓸 완구였다. 사실 이건 착안만 하면 기술적으로는 하나도 어려울 것 없는 물건이기에 바로 양산할 수 있었다.
또한 내가 만든 비격진천뢰는 파편이 잘 생기게 만들려고 추가조치를 했다. 겉은 매끈했지만, 내부에는 주조할 때 금을 새겨서 터질 때 그 금을 따라 쉽게 깨지도록 했다. 금은 탄체 겉보다 속에 새기는 편이 파편을 많이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화약에 쇳조각도 섞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신속하게 적 대열에 산탄을 퍼부을 수 있도록, 후장식 불랑기포도 만들었다. 비격진천뢰는 목표를 정확히 맞히기 힘드니만큼 조준사격이 가능하고 장전이 빠른 불랑기가 필요했다. 물론 여기서는 불랑기라고 부를 수 없으니 자모포(子母砲)라고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로는 부족했다. 비격진천뢰는 탄착점을 예측하기 힘들고, 불랑기는 발사속도는 빠르지만 동급 전장포보다는 위력이 낮다. 수력 천공기로 가능한 정밀하게 깎아서 폭발 위험은 낮췄지만, 가능하면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는 연발총 종류가 필요했다.
“소인들이 중의를 모아 보았사오나, 문종화차에 승자총통을 재어 한꺼번에 쏘아대는 이상으로 좋은 방안을 생각해내지 못했사옵니다.”
“그러하냐.”
할 수 없지. 단발 화승총을 이제 막 만들 수 있게 된 이들에게 아예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라고 닦달하는 건 무리라고 인정한다. 또 내가 머리를 쥐어짜는 수밖에 없나? 이제까지 만든 것만 해도 조선 최고의 무기 덕후 임금일 텐데 이러다 뭐까지 만들게 되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