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47
2부 6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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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 있는 형개가 보낸 서신은 북경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병부, 예부, 이부 가릴 것 없이 모든 관청에서 대혼란이 벌어졌다.
“건주위가 요양과 개원을 함락했습니다! 심양을 제외한 요동도사 영역 전체를 잃었습니다!”
“총병 조필성은 반란을 일으킨 요동병들에게 참살당했고, 총병 마림은 끝까지 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고 합니다!”
“개원성이 함락되자 개원위에 속한 25개 성보 모두가 적에게 항복했습니다!”
이런 충격적인 보고를 관청 담장 안에 가둘 수 있을 리 없다. 파발이 달려오면서도 중도에 입을 놀렸다. 당연히 소문은 삽시간에 도성 전역에 퍼졌다.
쏟아져 들어오는 비보에 조정에서는 넋을 잃었다. 이건 작년 여름 사르후에서 겪은 패배를 능가하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모두 침착하시오! 아직 요동 전체가 놈들의 손으로 넘어간 건 아니오! 남쪽에 있는 해주위, 개주위, 복주위, 금주위 등은 아직 완전히 누르하치의 손에 들어가지 않았소.”
지금 건주 측 병력이 모여있는 지역은 요양, 심양, 개원 등 요동 중부 이북이다. 십만 명을 헤아리는 대군이 심양을 둘러쌌고, 유군(遊軍) 수만이 요양 일대에 진을 치고 요서에서 들어올 명나라 원군을 기다리고 있다. 나타나면 영격할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이부상서 양시교가 지적했듯 요동 남부는 아직 적의 손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 지역을 잘 활용하면 적의 배후를 찌를 수도 있지 않으냐며 양시교는 열변을 토했다.
“이부상서 대인, 그건 어렵습니다! 남쪽 땅이 아직 적도에게 넘어가지 않았으면 뭐합니까? 우리 역시 그쪽에 군사가 없는데요! 그쪽에서도 지난번 원정에 동원할 병력을 다수 차출했고, 지금 남은 군사들은 성 하나 당 백여 명 정도밖에 안 됩니다.”
병부시랑 이화룡이 피를 토하는 표정으로 항변했다. 상관인 병부상서 소대형이 요동에서 온 보고에 너무 큰 충격을 받고 졸도해 버려서, 혼절한 소대형 대신 이화룡이 다른 상서들 앞에 나와서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대인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직 건주위가 요동 전역을 직접 장악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곧 넘어갈 겁니다. 지킬 군사가 없는 성이 적을 맞아 어찌 버티겠습니까?”
“심양에 있는 우리 4만 군사가 나서서 포위를 뚫을 수는 없소?”
“총독 형개가 거느린 군사는 죄다 보병이고 화포도 부족합니다. 수성전이라면 어떻게 치를 수 있어도, 성문을 나와 들판에서 적과 회전을 벌일 수는 없습니다.”
적은 기병 중심이다. 지금 형개가 성문을 열고 나선다면 기병을 주축으로 하는 십만 대군을 상대로 혈전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그 결말은 분명 무참한 패배일 것이다.
“요서에도 군사가 있잖소. 원병을 보낼 수 있지 않소?”
“산해관과 요서 일대 각 성보(城堡)에 주둔하는 병력이 5만 명은 됩니다만, 그걸 다 모으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 병력이 빠지면 요서가 비어버립니다. 할하 부 놈들이 눈치를 채면 산해관이 위태롭습니다.”
병력이 없다는 건 이미 누차에 걸쳐 소대형이 토로한 사실이다. 상서들도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럼 북경에 있는 군사 4만이라도 일단 보냅시다. 지방에서 조달한 원병 4만 명이 북경에 이미 도착해 있잖소. 그 군사들이 이동할 때 먹을 군량도 호부가 이미 요서에 보내두었고.”
이 병력은 봄이 되기 전에 요동으로 보낼 계획이었다. 적군이 한두 달만 공세를 늦췄어도, 요동에 있는 각 성채를 더 강화할 수 있었으리라.
이 병력은 최정예는 아니다. 하지만 나름 쓸만한 군사들을 모아들여 그럭저럭 싸움에 나설 정도로는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화룡은 이 안에 대해서도 고개를 저었다.
“요동에 무사히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우리 군사들이 요동으로 들어가려 하면, 지금 요양에 있는 적 유군이 즉시 영격에 나설 겁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심양을 포위하고 있는 적 본군까지 합세하면 원군도 전멸할 뿐입니다.”
“그럼 어쩌란 말이오!”
노호성이 귓가를 울렸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양시교가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더니 쓰러지듯이 의자 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리 대명(大明)이 어찌 이런 굴욕을….”
양시교는 소대형보다 한 살 연상으로, 여섯 상서 중에서 가장 연장자다. 올해 일흔여섯이나 되는 노신이 흐느끼기 시작하자 열 살 가까이 연하인 다른 상서들은 차마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쉰셋으로 그들보다 훨씬 젊은 이화룡 역시 고개를 숙였다.
한참을 울다가 얼굴에서 손을 뗀 양시교가 새빨개진 눈으로 탄식했다.
“이 판국에 폐하께서는 아무 분부가 없으시오. 도대체 이를 어찌해야….”
“그게 차라리 다행이지요. 폐하께서 지금 조정에 나타나 노발대발하신다면 사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만력제는 오늘도 후궁에 처박혀 있다. 환관들이 보고서를 들고 들어가기는 했지만, 언제 그 보고를 읽고 반응을 보일지는 알 수 없다. 읽더라도 아무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중신들로서는 황제의 태만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셈이었다. 이 짧은 여유 동안에 어떻게든 상황을 호전시켜야 이들의 목이 무사할 수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다면, 이 도독 대인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없겠소이다.”
당장이라도 적이 심양을 함락하고 요서를 향해 짓쳐들어올지도 모른다. 충분한 군대를 바로 파견할 수 없는 이상 이 수밖에는 없었다. 예부상서 이정기가 무겁게 입술을 떼었다.
“이 도독에게 중재를 청합시다. 본관이 따로 이 도독을 만나 교섭을 청하겠소이다.”
원병을 청하는 거라면 차라리 위신이 덜 상했을 것이다. 원병도 얻지 못하고 중재를 청하는 신세라니,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이게 유일하게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생각에 무력감이 크게 솟아올랐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적이 심양을 함락하고 요서를 향해 짓쳐들어올지도 모르는 판이다. 당장 충분한 군대를 파견할 수 없는 이상, 이 수밖에는 없었다. 이화룡이 동참하고 나섰다.
“예부상서 대인 혼자 어찌 그 힘든 일을 하시겠습니까. 소관도 함께 가겠습니다.”
“고맙소. 병부시랑이 같이 임석해 준다면 나도 한결 든든하겠소이다.”
뭔가 꿍꿍이가 숨어있다고 의심하여 끝까지 조선에게 중재를 맡기는 데 반대하던 이부상서 양시교도 마침내 뜻을 꺾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나도 동석하겠소. 그동안 해명을 아니 들은 건 아니나, 마지막으로 이 도독 본인의 입으로 약속을 받아야겠소.”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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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선은 건주위와 어떤 결탁도 하지 않았습니다. 건주위로부터 영토나 재물을 얻기로 따로 밀약을 맺은 것도 아닙니다. 천지신명께 맹세합니다.”
회견 장소는 예부 관아 안, 상서 이정기의 집무실이었다. 이정기, 양세교, 이화룡 세 사람이 이항복 한 사람을 마주하고 탁자에 나란히 앉았다. 이항복은 명나라와 건주 사이에 들어와서 중재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이 이득을 취하려는 게 아님을 약속하는 중이었다.
“건주는 예로부터 우리 조선과 좋은 사이를 유지해 왔습니다. 주변 이적을 다스리는 대국의 방침에 어긋날 수 없으니 양자가 직접 사절을 보내 교류하지는 않았으나, 국경에서 장을 열어 가축과 잡물을 교역하며 꾸준히 우호를 유지했습니다.”
이항복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어차피 명나라에서는 다이샨이 조선에서 볼모로 꽤 오래 머물러 있었음도, 희정옹주와 혼인했음도 알지 못한다. 다이샨이 원체 어렸을 때 건주를 떠났다가 은밀히 돌아간 탓이기도 하다.
다이샨이 희정옹주와 함께 건주위로 돌아간 뒤에, 요동에서 풍문을 입수한 명나라 예부가 사실 여부를 추궁한 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조선 사신들은 당황하지 않고 그에 대해 황제 앞에서 이렇게 간단히 답했다.
‘저희 임금과 온 조정이 정신이 나가서 제대로 사리를 판단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런 혼사를 하겠습니까?’
이에 만력제도 흔쾌히 맞장구를 쳤다.
‘지극히 옳은 말이다! 어찌 조선왕이 건주위 추장 따위와 혼사를 맺겠느냐? 그대들은 말도 안 되는 추궁으로 조선 사신을 괴롭게 하지 말고, 그 일은 다시는 재론치 말라.’
만력제가 따지지 말라고 했으니, 조선 왕녀가 건주위로 시집을 갔다는 소문을 공개적으로 파고들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몇몇 관리들이 조선과 건주 사이가 수상하다며 꾸준히 상소를 넣었지만, 공론화되지는 못했다. 상소문은 모두 환관들 손으로 파기되었다.
“마침 건주에는 노을가적의 아우 서이합제가 있습니다. 서이합제는 을미년 동정 때 소관과 안면을 익힌 사이니, 그 인연을 되살려 건주가 천자께 사죄사를 올리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실제로 협상을 진행할 상대는 누르하치나 다이샨이다. 하지만 명나라 대신들 앞에서 조선이 건주위 핵심부와 연계를 맺고 있다고 대놓고 폭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은 만만한 상대인 슈르하치를 슬쩍 끌어다 대는 편이 낫다.
“만약에 저들이 귀측의 중재 제안을 거부하면 어쩔 거요? 만주군왕이라는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군사를 일으켜 요서를 공격하고 산해관을 노린다면 어쩌겠소?”
양세교는 질문하면서도 계속 의심에 찬 눈으로 이항복을 노려보았다. 이항복은 그 날카로운 눈길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저들이 주제를 모르고 도가 지나친 태도를 보인다면, 그때야말로 저희 주상께서 투입할 수 있는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건주를 짓밟으실 것입니다. 그 점은 심려치 마십시오.”
이항복은 건주위가 지금 요서까지 세력을 확장할 생각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누르하치 본인도 속으로는 그 이상 나가려는 꿍꿍이를 품고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당장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을 터이다.
‘새로 얻은 요동 땅에서 완전히 지배를 굳혀야 하니까.’
고로 조선군이 건주위를 토벌하러 나설 필요는 없다. 적어도 몇 년 동안은. 그리고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라면 건주가 전쟁을 다시 시작해도 조선이 나서서 토벌할 필요는 없다. 건주를 막아주기로 약속한 기한은 이미 지난 것이다.
“저희 전하께서는 분명히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건주가 약속을 어기고 요서까지 탐낼지 모른다는 기우는 접으십시오. 상서께서 두 눈을 뜨고 노려보고 계시는 한, 건주 철기가 산해관을 향해 달려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약속은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벌써 여든이 다 되어가는 이부상서가 살아봐야 얼마나 살겠는가? 이항복은 분위기를 바꿀 심산으로 가지고 온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 내용물을 세 사람에게 권하며 미소를 지었다.
“대남도에서 수확한 설탕으로 제조한 서반아식 당과(糖菓)입니다. 단것을 먹으면 기분이 좀 풀리곤 하니 세 분께서도 드시고 마음을 푸십시오.”
대남도에서 운영하는 사탕수수 농장은 확장을 거듭한 끝에 지금은 매년 흑설탕 2만 근을 거둘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커졌다. 더 많은 땅을 개간하면 수확은 더 늘어나리라.
하지만 강남에서도 사탕수수를 심으니 명나라에서 설탕은 그렇게까지 귀한 물건은 아니다. 이항복 역시 상서들에게 설탕을 팔 생각은 아니었다. 진짜는 따로 있다.
“요즘 저희 조선에서는 이 당과와 같이 즐기기에 참 좋은 가배라는 서양 차가 유행입니다. 종래에 마시던 엽차와 달리 독특한 맛이 있으니 조선관에 왕림하시면 대접하겠습니다.”
이제까지 커피는 조선 국내에서 소요되는 양을 수입하기도 벅찼다. 하지만 이기빈이 가져온 커피 묘목과 씨앗이 대남도에서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렸고, 앞으로 커피 농장을 만들 수 있을 기미가 보였다. 이제 커피 수출도 슬슬 생각해 볼 때가 온 셈이다.
이항복은 커피의 맛과 효능에 관해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양세교가 이항복에게 이번 회견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달았다.
“새 음료도 좋소만, 협상을 전적으로 대인께 맡길 수는 없겠소. 우리 쪽 사람이 함께 가서 저들이 품은 진의를 확인하고 교섭 조건을 조정해야 하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누구를 보내시겠습니까?”
“지금 요서에 있는 감찰어사 웅정필이요. 그 재주가 뛰어나고 또 현지 사정도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니, 그대를 수행하기 충분하리라 생각하오.”
“좋습니다.”
웅정필은 이여백이 자살하고 이씨 형제들이 압송될 때 함께 금주(錦州)까지 왔다가 거기서 계속 머무르고 있다. 이항복이 요동으로 간다면 도중에 합류하면 된다.
“언제 출발하시겠소?”
“빠를수록 좋으니, 이틀 뒤에 출발하겠습니다. 제가 건주위에서 보낸 사죄사를 데리고 왔을 때 기분 좋게 가배를 한 잔 대접하지요.”
이항복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여립이 아직 건주 진영에 머물고 있었으면 좋겠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굳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웅정필을 골라 딸려 보내는 이부상서의 옹졸함을 속으로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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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정필에게는 군권이 없다. 무관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금주(錦州)가 속한 광녕위(?寧衛) 방위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감찰어사라는 지위를 가진 덕분으로, 그는 권한이 없음에도 이일 저일에 마음대로 끼어들 기회를 얻었다.
“웅 어사 대인! 경사(京司)에서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군관 한 사람이 성벽 밑에서 크게 고함을 쳤다. 성벽 위에서 화포 손질이 미숙한 군사들을 꾸짖던 웅정필은 알았다는 표시로 손을 흔들어 보인 다음 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적진에 사자로 다녀오라고….”
칙서는 은밀하게 전해졌다. 웅정필 본인과 직속상관인 광녕 총병 진복선에게만 통지된 칙서 내용은 건주위에 가서 조선 사신의 도움을 받아 협상하고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목표는 건주 오랑캐가 이여송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하는 모든 불상사에 대해 사죄사를 내게 하는 것이다.
“이런 중대한 일을 맡기다니, 조정에서 그대가 무척 높이 평가받은 모양일세.”
진복선은 진심으로 탄복했다. 하지만 웅정필의 생각은 달랐다.
“저로 인해 비롯된 일이니 책임을 지라는 것이겠지요.”
웅정필이 상소를 올려 이여백의 죄를 고발하지 않았다면 이씨 일가는 여전히 요양을 지키고 있었을 것이고, 개원이 함락되더라도 심양이 포위되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요동이 흔들리는 원인을 웅정필에게 두고 싶은 욕망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만약 제가 요양에 머물러 있었다면 조 총병 대인과 함께 이미 죽었겠지요. 지금 적진으로 들어가면 아마 마찬가지 위험을 겪게 될 겁니다. 조 총병을 살해한 반도들이 적진에 있으니까 말입니다.”
“후회되지는 않는가?”
“이 전 총병을 고발한 일 말입니까?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 총병은 분명 죄를 지었고, 소관은 어사로서 마땅히 그 죄를 고발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웅정필의 얼굴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리고 태연한 표정으로 자기가 대표로 선정된 이유에 관한 한 가지 추측을 덧붙였다.
“소인은 감찰어사라 하나 고작 7품입니다. 겨우 7품관을 사자로 보냄은 저들을 모욕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을 것입니다. 함께 가는 조선 사신의 낯을 보아서라도 소인을 죽이거나 협상을 깨려 들지는 않겠지만, 건주 오랑캐들은 무척이나 기분이 나쁘겠지요.”
“과연 그렇군.”
진복선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자기가 뭔가 도울 일이 없겠는지 물었다.
“쓸만한 부장을 딸려줄까 하네. 아까 자네를 데리러 갔던 군관은 어떤가? 아직 직급이 낮아 겨우 소기(小旗)지만, 젊은데도 무척 영특하니 데려가 보게나.”
소기(小旗)는 병사 10명을 지휘하는 하급 무관이다. 조선군으로 따지면 분대장에 해당한다.
“알겠습니다. 그 군관의 출신이 어찌 되는지요?”
“성은 원(袁)씨로, 광동 사람일세. 본래는 척가군에 속한 군관이었지만, 출신이 유자(儒子)라 행군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이곳에서 낙오한 것이 전화위복이 되었지. 본대와 함께 갔으면 사르후에서 죽었을 테니까.”
“저와 같군요, 허허.”
우연히 목숨을 건진 두 사람이 함께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셈이다. 웅정필은 각오를 단단히 했다. 어차피 지금은 적과 맞서기에 전력이 부족하다. 칙서까지 받았으니, 교섭을 꼭 성공시켜 황은에 보답해야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