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48
2부 6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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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정월 보름이다. 1606년 2월 21일, 병오년 정월 보름. 전쟁도 잘 끝난 데다 작년에는 농사도 꽤 결과가 괜찮았던지라 훨씬 마음이 느긋하다.
오늘 훈련원에서는 대대적인 대보름 행사가 열렸다. 백성들이나 하는 쥐불놀이나 널뛰기를 하는 건 아니다. 도성에 있는 각 군영, 오군영에 금군(禁軍)까지 해서 총 6개 군영이 치열하게 기량을 다투는 대항전이다.
이런 행사는 1년에 3번 한다. 대보름, 단오, 추석이다. 이 체육대회 날이면 경기장인 훈련원 주변이나 살곶이 벌판에는 구경하러 오는 백성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행상들도 모여든다.
매번 시행하는 종목에는 약간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경마 같은 건 장소 문제에 말과 사람 모두 다칠 위험이 커서 대보름에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말을 타고 재주를 부리는 마상재와 활쏘기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 둘은 조선에서 무관이라면 당연히 익혀야 할 재주가 아닌가. 역시 두 가지 전부 금군이 최고로군. 저 활솜씨를 보게.”
“전국에서 가려 뽑은 군사들이니,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금군청(禁軍廳) 예하 금군에는 겸사복(兼司僕), 내금위(內禁衛), 외금위(外禁衛)의 세 부대가 있다. 겸사복은 예전부터 내가 아껴온 최정예 기병들이고, 내금위와 외금위는 전부 보병이다. 내금위에는 조선인만 남기고 외국인 병사들을 따로 빼내서 외금위를 별도로 만들었다.
물론 전투력은 내금위가 더 강하다. 이들은 말 타는 솜씨가 겸사복보다 좀 떨어질 뿐 다른 무예는 조선 최강인 군사들이다. 하지만 외금위는 외국인들이라서 특별한 존재일 뿐, 그 점을 빼면 힘과 덩치 말고는 딱히 우수한 점이 없으니 말이다.
기병만 있는 겸사복에는 맹서군이 1백기, 그리고 고르고 골라서 뽑은 최정예 기병 3백 기가 있다. 일반 조선인, 백정, 오도리, 번호 출신 여진인에다 강화도 목장에서 근무하던 무어인도 끼어있다. 말 그대로 말을 자기 몸처럼 다루는 조선 최정예 기병들이다.
“마상재(馬上才)와 마상궁술은 역시 겸사복을 능가할 자들이 없습니다. 이 대회를 시작한 지 3년째이지만, 다른 군영에서 도저히 따라잡지를 못합니다.”
권율의 후임으로 삼군부 도총사를 맡은 황진이 상당히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자신 조선에서 제일가는 기병 지휘관이지만, 부대로서의 전투력과는 별개로 병사 개개인의 기량은 오군영이 금군에 미치지 못함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무리를 지어서 하는 군기에서는 금군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합니다. 다들 너무 잘난 탓에 따로 노니 말이지요.”
군기(群技)는 무리를 지어서 하는 단체경기를 뜻한다. 축구, 줄다리기 같은 게 군기다. 각자 기량을 다투는 개인경기는 단기(單技)라 하고, 활쏘기나 씨름?말타기가 여기에 속한다.
“군영이 설립된 목적 자체가 다른 까닭이니, 어쩔 수 없는 차이입니다.”
내 옆에 선 이순신이 차분하게 지적했다. 파트너인 권율은 노환으로 은퇴했지만, 이순신은 지금도 수군제조 겸 훈련도감 도제조로 재직하고 있다. 권율은 벌써 칠순이 정말 코앞이지만, 이순신은 이제 겨우 환갑을 넘었을 뿐이니까.
이순신의 환갑은 작년 3월 8일이었다. 재작년에도 가뭄이 들었던 까닭으로 성대하고 화려한 회갑연을 열어주지는 못했지만, 나름 적절한 선물로 예우는 충분히 했다.
“금군은 전하를 모시기 위해 존재하는 군영입니다. 그러니 교련할 때도 진법을 익히기보다 시위(侍衛)에 필요한 재주에 중점을 두게 되고, 단기로 하는 시합은 뛰어나도 군기에서는 다른 군영보다는 조금 약한 모습을 종종 보입니다.”
이순신은 각 군영이 보이는 성향 차이에 관해 차분하게 설명했다. 오군영 중 훈련도감을 뺀 나머지 네 군영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금군과는 확연히 다르다면서 말이다.
“전하, 조직력에서는 훈련도감을 따라갈 군영이 없사옵니다. 다른 네 군영에서도 늘 훈련에 매진하고 있으나, 훈련도감은 아무리 해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황진이 부러운 듯 끼어들었다. 나도 데운 술로 몸을 덥히면서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 지금도 축구 시합에서 훈련도감 군사들이 공을 일단 손에 넣으면 절대 놓치지 않는 모습을 보니 그 재주를 알 만하다.”
난 처음에 군영별 축구 대항전을 시작하면서 외금위가 당연히 우승할 줄 알았다. 일단 신체 스펙부터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아프리카에서 온 진짜 ‘흑형’들이 백여 명이나 포진한 군영이 외금위다. 거기에 축구장에서 태도가 거칠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스코틀랜드 병사들도 있다. 당연히 이쪽이 이긴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훈련도감 군사들은 내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하지만 매번 시합에서 훈련도감이 승리를 거두었지. 이게 다 덕풍부원군이 군사들을 엄히 조련한 덕이 아니겠는가? 어허, 지금 또 공이 들어갔구나.”
훈련도감 선수들은 조직력에서 전국 최강이다. 구경하러 온 백성들이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훈련도감 선수들이 보내는 송구(送球, 패스)는 빗나가는 법이 없다. 상대가 중간에 가로채는 경우야 물론 있지만, 공을 받아야 할 자기편이 없는 곳으로는 절대 가지 않았다.
기본기에도 충실하다. 단적인 예로, 훈련도감 선수들이 날리는 발구(發毬, 슛)는 백이면 백 정확하게 구문(毬門, 골대)을 파고들었다. 절대 횡목(橫木, 크로스바)을 넘기는 뻥축구 따위는 하지 않았다. 물론 상대편 수문장(골키퍼)이 막고 못 막고는 별개 문제다.
“과찬이시옵니다. 그저 시합에 임하여 준비를 충실히 할 뿐입니다.”
이순신은 칭찬을 받으면서도 차분했다. 고개를 저으며 감탄하는 사이 훈련도감은 어영청을 상대로 또 승리를 거두면서 7연속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점수 차이는 3대2, 구경하던 백성들이 환호하며 지르는 함성에 훈련원 지붕이 들썩거리는 듯했다.
“내 그동안 보자니 수비군이 너무 많아서 공이 잘 들어가지 않는 듯하다. 인원을 지금보다 대폭 줄이면 어떻겠느냐?”
한 팀이 19명이나 되다 보니 수비수가 너무 많아서 돌파하기 쉽지가 않다. 역시 현대 축구 규칙으로 11명을 한 팀으로 규정한 게 괜히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출전하는 인원이 줄어드는 만큼 남은 이들이 더 많이 뛰어다녀야 할 것이옵니다.”
“그래. 그렇게 좀 많이 뛰어다녀야 볼 맛이 나지 않겠느냐. 인원이 너무 많으니 공을 차려 발을 뻗다가 사람을 차서 난투가 벌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어전에서 하는 시합임에도 발길질과 주먹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석전꾼들이 쓰는 것 같은 새끼줄로 만든 투구를 씌우고 팔다리에 가죽 보호대를 차게 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랬다가는 미식축구가 되겠지. 그것보다는 인원을 줄이는 편이 낫겠다.”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지막 시합인 축구경기까지 끝났으니, 내려가서 우승자들에게 시상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직접 출전한 군사들에게는 은자와 비단이, 소속 군영에는 술과 고기가 포상으로 내려졌다. 이 비용도 만만찮지만 뭐 어쩌겠는가, 뿌리는 게 있어야 거두는 것도 있지.
“마상재는 겸사복, 줄다리기는 외금위, 활쏘기는 수어청, 축구는 훈련도감이라. 금군청이 두 종목에서 이겼으니 종합우승을 거둔 셈이군. 어떤가, 임 부장. 씨름이 없어서 아쉽지 않은가?”
내금위장 자리를 내려놓고 훈련도감 별장으로 옮긴 임꺽정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날이 춥고 장소가 협소하니 경마와 씨름은 겨울에는 삼가는 것이 이미 관례입니다. 소장은 즐거이 봄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군사들에게 웃통을 벗고 샅바를 잡으라고 명령하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다. 그저 내가 그게 한겨울에 시킬 짓이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지. 애초에 대보름에 씨름하는 풍속도 없고. 씨름은 원래 단오나 추석에 하는 거다.
단오나 추석에는 살곶이 들판에서 판을 크게 열고 경마, 씨름, 택견 시합까지 한다. 경군이 아닌 지방군에서도 대표가 올라오고, 우승하면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귀환하곤 한다. 다 조보에 결과가 실리니 자랑스러워할 만도 하다.
다만 석전은 금지다. 민간에서는 단오에 석전을 많이 하지만, 군대에서는 금지다. 돌 던지고 몽둥이 휘두르다가 누가 빡쳐서 총이나 칼을 들고 뛰어나올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10년 전만 같았어도 그대가 씨름판을 휩쓸었을 것을, 세월은 어쩔 수 없구나.”
“송구하옵니다.”
임꺽정도 예순일곱이다. 요즘은 훈련도감에서 군사들에게 검술을 가르치는데, 다만 그것이 ‘자,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잘 봤지? 해봐!’ 하는 식이라 보통 군사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게 조금 아쉬운 점이다. 나름 훈련도감에서 검술서로 정리하려는 것 같긴 하다만.
임꺽정 친구인 서림이야 뭐 여전히 강무관에서 사격 교관 노릇을 하고 있다. 노안으로 인해 솜씨가 떨어진 지금도 오군영 전체에서 따라갈 사람이 몇 안 되는 명사수다.
“전하, 연을 올리겠습니다!”
시상식을 다 마친 뒤에는 연날리기 행사가 열렸다. 올해 한 해 닥칠지 모르는 액운을 전부 연에 달아 날려 보내고자 하는 전통적인 대보름 놀이다.
“오늘이 지나면 이제 겨울이 올 때까지 연을 날리지 못한다. 다들 많이, 그것도 큰 놈으로 날리도록 하여라.”
여기서도 각 군영은 크고 화려한 연을 띄우는 경쟁을 벌였다. 나도 흡족하게 연들이 연달아 떠오르는 모습을 감상했다.
“총융청이 만든 연이 가장 웅대하구나. 상으로 술 서른 독을 내리도록 하여라.”
“예, 전하.”
고개를 돌려 훈련장 구석을 보았다. 한참 불을 피워 열기구를 올리는 중이다. 올해부터는 이 경쟁에 나도 통 크게 한번 끼기로 마음먹었다.
“바람이 강하구나. 연을 날리기에는 좋다만, 기구가 괜찮겠느냐?”
“예, 전하. 오래 붙들고 띄울 것이 아니니 괜찮습니다.”
비승군 군관들이 호기롭게 대답했다. 잠시 후, 과연 커다란 열기구가 두둥실 떠올랐다. 그 측면에는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는 글자를 잔뜩 붙여 놓았다. ‘액연(厄鳶)’이 아니라 ‘액기구(厄氣球)’인 셈이다.
“줄을 끊어라!”
열기가 차고, 기구가 수십 미터쯤 떠오르자 작업을 통제하던 비승군 군관이 굵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온갖 색동천과 색종이, 색유리를 붙여서 화려하게 장식한 기구가 하늘 위로 천천히 솟아올라 남서쪽 하늘로 멀어졌다.
조정 중신들이 모두 내 옆에 모여 그 광경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올해는 부디 별다른 큰일 없이 만사가 잘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특별히 초청한 총병 유정 역시 어두운 얼굴로 하늘 저편, 기구가 사라져 가는 서쪽을 쳐다보았다. 오늘따라 어떻게 풍향이 참.
“아마 해가 저물 때쯤이면 어딘가에 떨어지겠지요. 그때쯤이면 열기가 다 식을 것입니다.”
“맞소, 영상. 아, 내가 그대에게 아침부터 할 말이 있었는데 그만 깜박 잊고 있었구려.”
“무슨 분부이시옵니까, 전하?”
“내 더위 사시오.”
이덕형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지 잠시 눈만 깜박거렸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건넨 말의 의미를 깨달은 이덕형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으음, 역시 이런 장난은 이항복한테나 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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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날 서쪽 하늘을 바라보던 유정의 모습을 생각하니 아직 명나라에 미련이 많이 남아서 돌아가고 싶어 함을 알 수 있었다. 이덕형 역시 그 점을 확인해주었다.
“일전에도 보고드렸지만 총병 유정은 아직 우리 조정에 귀부할 뜻이 없다 하였습니다. 역시 동지사로 간 오성부원군이 대국 조정의 뜻을 확실히 파악하고 돌아와야만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듯하다.”
심영권이 가지고 온 이항복의 전언에 따르자면 분명 상황이 좋지 않다. 하지만 이는 명나라 조정에서 확정한 방침이 아니라 그냥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암시일 뿐이라,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 만력제가 마음을 돌릴 수도 있고.
“혹시 황제께서 저들을 용서하고 다시 기용하실 수도 있지 않으냐? 그럼 저들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패전 직후에는 분노하셨더라도 지금은 생각이 바뀌셨을지도 모르니, 꼭 붙들려고 하지 말고 가고 싶다면 보내주도록 하자.”
더구나 진양옥 같은 경우는 매일 절에 가서 죽은 남편을 위해 향을 사르며 극락왕생을 빌고 있는 지경이다. 정여립이 특별히 마천승의 시신을 수습해서 금위사 라인으로 보냈는데, 이걸 묻지 않고 도성 바깥 절에다 맡겨놓았다. 사천에 가서 매장하겠다면서 말이다.
진양옥의 행동에 관해서는 중전에게 들었다. 실로 탄복할만한 열녀다. 신하들에게도 그대로 전하면서 남편의 유해를 고향에 묻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저들은 정녕 충신이자 열녀가 아니냐. 되도록 본국으로 돌아가게 해줌이 가하다고 본다.”
돌려보내서 내가 뭔가 덮어쓸 일은 없다. 혹시 만력제가 정말 정신이 나가서 이들을 죽인다 해도 욕을 먹는 건 만력제지 내가 아니다.
하지만 이 중국인들이 조선에 눌러앉으면 불안감에 떠는 건 내 몫이 된다. 명나라와 외교적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건주위와의 관계가 이들에게 들키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하니까.
“익문사 총관 정여립이 장계를 올려 보고하기를, 지금 건주는 개원과 요양을 손에 넣었으며 심양을 포위하고 있다 하였다. 또한 요양 남쪽에 있는 여러 위소도 계속 항복을 받아서 손에 넣고 있다고 했다. 그럼 대국에서 장수를 하나라도 더 필요로 하지 않겠느냐?”
사르후에서 탈출에 성공했던 마림도 결국 이번 싸움에서 죽었다. 정여립이 마천승의 시신을 보내면서 알려온 바에 따르면 마림은 왜병 셋과 싸우다가 칼을 맞고 죽었다고 했다. 이여백에 마림까지 죽었으니, 요동에는 정말 장수가 없다.
“그런 상황이라면 황제께서 총병 유정을 용서하여 다시 기용하실 공산도 크다고 본다. 괜히 수작을 부리다가 귀국한 유정이 ‘조선에서 내게 귀순하라고 권했다’라고 보고하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천장을 빼돌리려 했다는 추궁을 받게 될 게 아니냐?”
까짓 명나라, 여차하면 손 끊어버리면 그만일 테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아직 명나라와 관계를 유지하는 쪽이 끊는 것보다 우리한테는 이득이라는 판단도 있지만, 조선에서 오래 살다 보니 나도 생각보다 명나라를 의식하고 사는 버릇이 든 모양이다.
“아닙니다, 전하. 물론 전하께서 예측하신 대로 죄를 용서하고 기회를 주겠다고 하실 수도 있으나, 황제께서는 급박한 상황일수록 일벌백계로 남은 장병들의 기강을 굳게 다져야 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속단은 삼가시옵소서.”
“알겠다.”
유정과 사천병이 명나라와의 외교 마찰 및 건주위와의 은밀한 관계가 드러날 각오를 하고 받아줘야 할 만큼 가치 있는 존재들일지는 나도 모르겠다. 물론 인도적으로 보자면 억울하게 죽게 된 사람을 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하겠다만.
“만약 그대들이 예견한 대로 유 총병이 죄인으로 처형될 게 분명하다면, 조선에 눌러살도록 허락하되 그 거소(居所)는 도성이 아니라 삼남 어딘가쯤으로 하는 게 좋겠다. 그래야 대국에서 칙사가 와서도 그 존재를 알지 못할 것이고, 저들도 또 우리와 건주 사이를 모를 게 아니냐.”
“실로 현명하신 판단이옵니다.”
덤으로 일본을 상대하는 삼남 쪽 병영군 전력을 강화하는 의미도 있다. 전투경험이 풍부한 정예 장창병 3천이면 지방군 전력이 얼마나 뛰냐 말이다.
어전회의를 마저 진행하며 정여립이 보낸 보고서를 계속 읽었다. 그랬더니 이번에 건주위가 새롭게 손에 넣은 요동 백성 중에 ‘고려인’이 꽤 있다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음, 전조 시절에 심양왕이 다스리던 그 백성들이로구나.”
고려 때 심양과 요양 일대에는 꽤 많은 고려인이 이주해서 살았고, 이들을 맡아서 지배하는 군주의 봉호가 심양왕(瀋陽王), 또는 심왕(瀋王)이었다. 그 후예들이 아직 한인으로 동화되지 않고 조선 풍속을 유지하며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이씨 일가도 그런 집안이었지.
“노을가적에게 이들을 돌려받을 궁리를 해보아야겠다. 어떤 수단이 좋을지 논의하라.”
“예, 전하.”
포로를 돌려받는 값으로 사람을 치르겠다고 했었지. 어쩌면 녀석이 포로 값으로 내놓겠다던 그 ‘사람’이 이 ‘심양 고려인’들일지도 모르겠구나. 그 시점에서는 아직 손에 넣지 못했던 게 맞으니 아마 정확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