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57
2부 6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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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홍이 사자후를 토하기는 했지만, 조정 신료 대다수는 환구단 문제를 미루고 싶어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명나라 쪽에서 그 문제로 난리를 쳐도 실력으로 무시해 버리면 된다고는 하지만, 무력 충돌 대신 해금령 재개로 무역을 틀어막아 버리면 그것도 곤란한 문제다.
지금 명나라와 교역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없게 되는 건 현대 대한민국이 미국-일본-중국 세 나라와 일시에 무역이 끊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의 타격이다. 조선에서 가장 큰 수출시장도, 가장 큰 수입처도 모두 명나라란 말이다.
“대국에서 해금령을 내린다 해도 교역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주산진만 단단히 쥐고 있으면 됩니다.”
“금제가 없을 때와 비교하자면 매우 어렵고 힘들 것이다. 가뜩이나 흉년이 들어서 대국에서 많은 양곡을 수입해 와야 하는데, 그 길을 일부러 어렵게 만들 건 없지 않으냐.”
이 논의는 일단 미루게 했다. 이거부터 끝내고 다른 일을 하려고 했다가는 올해 내내 아무 일도 못 할 테니까.
“환구단 문제는 당장 결론을 낼 수 있는 안건이 아니다. 기우제가 급하기는 하나, 제후국인 우리가 천제를 지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칼로 무 자르듯 결론을 낼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 않으냐? 일단 미뤄두고 다른 시급한 국사부터 논하고 나서 논하도록 하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환구단 건을 일단 물리친 뒤 받아들인 건은 황성평 개명 문제였다. 거기다 붙일 새 이름을 공모하는데 응모한 신료들이 제출한 제안서가 내 앞에 죽 쌓였다. 편전에 출석하는 고관들만 제출한 게 아니고 일반 유생부터 무관, 심지어 종친부 종친도 의견을 냈다.
“어디, 종친부에서 나온 의견부터 하나 볼까.”
인평군 이석환이 낸 의견서부터 손에 들었다. 이석환은 진성대군의 적장손인 정2품 군으로, 하성군 항렬에서는 가장 맏형이다. 딱히 모난 행동은 하지 않고 조용히 살았기에 그동안 별 존재감은 없었다.
“고구려의 길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고길동(高吉洞)…이라 하자고?”
이런 환장할 작명이 있나! 나도 모르게 박장대소를 터트려 버렸다. 이거, 상희한테 알려주면 둘이서 신나게 웃을 거리가 되겠다. 어떻게 여기서 고길동이 나와, 고길동이?
차마 황성평에다 붙일 수는 없는 이름이다만, 나중에 다른 고을 이름으로는 어디 활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 정말 그럴듯한 동네 이름이잖아.
웃으면서 다른 제안서들을 보니, 그 땅이 본래 고구려 땅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작명이나 광개토대왕 개인과의 연관성을 강하게 드러낸 작명이 많았다. 광개토대왕비문에 있는 문구를 일부 따서 지은 이름이 다수였다.
“옛 이름인 통구성이나 국내성을 그대로 쓰자는 의견도 좋기는 하나, 새로운 기상으로 새 지평을 세운다는 의도에는 조금 맞지 않는 듯하다. 병조좌랑 황의옥(黃義玉)이 낸 ‘영복성’과 홍문관 교리 고조수가 낸 ‘영락성’ 둘이 가장 마음에 드는구나.”
황의옥은 영광을 회복한다는 ‘榮復’과 영원한 행복을 뜻하는 ‘永福’ 두 가지 표기를 적어서 제출했는데 내 눈에는 둘 중 전자가 좀 더 나아 보인다. 고조수는 영원히 즐거움을 누린다는 ‘永樂’을 제시했다. 광개토대왕이 연호로 삼은 바로 그 ‘영락’이다. 음, 이게 좀 더 낫군.
그 외에 ‘당나라에 대한 분노를 잊지 않는다’라는 의미라면서 ‘분당(憤唐)’을 제안한 의견이 있었는데 참으로 아쉬웠다. 평양성이라면 모를까 국내성은 일단 당나라와 별 관련이 없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반중화의식을 선동하려고 한다는 오해를 사기 딱 좋은 이름이기도 하고.
다른 것들도 보니 꽤 재미있는 발상들이 많다. 개중에는 내 본래 이름과 같은 ‘이재석’이란 이름으로 제출된 것도 있었다. 지금 벼슬은 정5품 사헌부 지평이다.
다만 이 많은 아이디어를 하나하나 나열하며 평가하려니 시간이 없는 게 유감일 따름이다. 내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라고 신랄하게 까면 그건 또 그거대로 미안한 일이고.
“하오나 전하, ‘영락’은 광개토왕이 쓰던 연호인데 대국 성조께서 쓰시던 연호 또한 ‘영락’입니다. 대국 조정에서 이를 알게 되면 불경하다 질책하지 않겠습니까? 분명 광개토왕이 먼저 쓴 연호이니 우리가 억울하기는 하오나, 마땅히 피휘를 하여야 하리라고 사료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로다. 길 영(永)자를 꽃 영(榮)자로 바꾸어 ‘영락(榮樂)’이라 정하면 새로 짓는 이름으로 적당하겠다. 우리 조선이 앞으로도 크게 번영하리라는 의미와 함께 그 땅의 옛 주인인 광개토왕을 기리는 의미가 되니 좋을 듯하다. 이로써 그 고을을 ‘영락군’이라 하자.”
다만 ‘영복성(榮復城)’ 쪽도 아주 포기하기는 힘들다. 헌데 생각해보니 그 이름을 쓰기 아주 좋은 용처가 있었다.
“옛날 고구려 시절, 국내성과 이어진 외성으로 환도산성(丸都山城)이 있었다. 환도산성 터를 보수하여 새로이 성채를 강화하고, 그 성을 영복성(榮復城)으로 명명하면 좋겠다.”
환도산성의 고구려 문화유산이 파괴되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당장 현실적인 용도로 성을 사용해야 하니까. 고구려 때 축성한 유적을 해체해서 석재를 재활용하지 못하게 금하고, 되도록 그 위에 새 구조물을 증축하는 정도로 작업하라고 해야겠다. 아니면 그냥 덮어두거나.
“그럼 환구단 문제 때문에 논의가 중단되었던 미주 사민 문제를 좀 보자. 대미주로 이주할 용의가 있다고 스스로 자원한 백성은 얼마쯤 되느냐?”
“2만 명은 족히 되옵니다.”
“보낼 인원은 1천인데 지원자는 2만이라…이판, 역시 가뭄 탓인가?”
“그러하옵니다. 그동안 가뭄이 하도 빈발하니 지친 백성들이 다른 땅을 찾는 목소리가 무척 높사옵고, 또한 갑진년(1604)에 원동개척사가 귀환하면서 보여준 재보에 혹한 자들이 또 잔뜩 있사옵니다.”
홍가신이 고개를 숙이며 세간의 목소리를 전했다.
“바다 건너 미주에는 강바닥 모래가 다 금이랍디다!”
“산에는 산짐승이, 바닷가에는 담비보다 비싼 해달이 널려 있대요!”
“높이가 백 장(丈)이나 되는 나무가 수없이 솟아 있는 숲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대요!”
“미주에는 겨울이 없고, 단 한 번도 쟁기질하고 씨를 뿌린 적이 없는 옥토가 눈길이 닿는 끝까지 펼쳐져 있답니다!”
“미주 야인들은 술 한 병만 주면 뭐든지 다 내놓을 만큼 어리숙하대요. 독한 술 한 병, 베 한 필만 쥐여주면 여편네까지 내놓는다니까요!”
“그건 좀 지나치게 과장된 소리 아닌가? 백 장짜리 나무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단 말이냐? 그리고 술 한 병, 베 한 필에 처를 내놓는다니 미주 야인들을 지나치게 머저리로 취급하는 게 아니냐?”
“사실이 아닌 것은 신도 아옵니다. 그저 세간의 소문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1장(丈)이 10자, 3m다. 고로 100장짜리라고 하면 키가 300m나 되는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는 소리다. 세상에서 제일 키가 큰 나무가 북아메리카에 있기는 하지만, 그거 아무리 커도 120m가 안 됐을 텐데?
“미주에 갔던 배는 이제 한 번 돌아왔을 뿐입니다. 백성들이 신기하게 여기고 온갖 낭설을 꾸며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니 이해하소서.”
홍가신은 그 자신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 출신이다 보니 평생 온갖 오해와 편견을 잔뜩 뒤집어쓰고 살았다. 무릉도에 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백안시하면서 온갖 모욕적인 질문을 던져댔고, 홍가신은 그런 대우에 익숙했다.
“바다 건너 대미주도 무릉도와 마찬가지입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그곳에 관해 온갖 해괴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많은 백성이 오가고 그 땅에 관해 잘 알게 되면 그런 과장된 소문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알겠다. 하지만 사민할 백성을 많이 모집하려면 어느 정도는 그런 헛소문을 방관할 필요도 있으니 고민이로다.”
아메리카가 진실로 풍요로운, 기독교식 표현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생각해야 저 큰 바다를 건너갈 생각이 스스로 들지 않겠는가. 스스로 떠나려는 사람을 모으려면 어느 정도 과장된 시각을 갖게 할 필요가 있기는 있다.
“그나저나 지금 저쪽 상황은 어찌 되었을지 모르겠구나. 2년 전 을사년 5월에 야인 송환을 겸해 출발한 보급선들이 어떻게 되었을지도. 호판, 그 배들이 올해 가을에 돌아올 예정인 게 맞는가?”
“그러하옵니다, 전하.”
2년 전에 파견한 보급선은 총 4척이다. 캄차카와 알래스카를 들러서 캘리포니아로 내려가는 북방 루트 2척, 태평양을 그대로 가로질러 시애틀까지 직행하는 동방 루트 2척이다. 단독으로 보내지 않은 건 역시나 사고 위험 때문이다. 여차하면 요선(僚船)이 구조해야 하니까.
생각 같아서야 1차 탐험대 때처럼 3척 정도는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만사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때그때 동원할 수 있는 배 숫자에는 한계가 있고, 재작년에 내가 보낼 수 있는 배는 8백t급 2척과 3백t급 2척을 각기 1척씩 짝지어 보내는 게 한계였다.
“웅연포, 귀궤탁, 덕진성, 지선성에 두고 온 군사들을 다시 데려오고 교대할 이들을 보내는 데야 그 정도면 충분하였다만…올해는 사민할 백성 1천 명을 태워 보내기로 했으니 그 정도면 넉넉하다 할 수 없겠다. 동쪽으로 보낼 배만 해도 6척, 합쳐서 4천 톤(?)은 되어야겠다.”
아무래도 나한테는 덕진성이니 웅연포니 하는 새 지명보다 현대 지명이 익숙하다. 페트로파블롭스크, 코디액, 시애틀, 샌프란시스코가 훨씬 입에 맞고 귀에도 쏙 들어온다. 이쪽 세상은 나와 상희 외에는 누구도 그런 이름들을 전혀 모르고 살겠지만.
“전하께서 말씀하신 규모라면 필요한 짐을 다 싣기에 부족함은 없을 듯합니다. 필요한 배는 외수사에서 직접 보유한 배와 용선한 배를 합쳐 7월까지 모두 마련해 놓겠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민선이 사람만 달랑 태우고 갈 수는 없다. 전가사변 때는 옷가지만 챙겨 맨몸으로 가게 했지만, 그거야 북방에 가축과 식량?농기구까지 다 있으니 그랬던 것 아닌가.
미주 사민은 다르다. 땅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보고 필요한 물건 전부를 가져가야 한다. 미리 갖다 놓은 물자는 수비대 인원들만 쓰기에도 빠듯하다고 봐야 할 테니까 말이다.
가져갈 짐은 많다. 이주민들이 확실히 정착할 때까지 소모할 식량과 가축과 생활용품, 현지 인디언들에게 제공할 하사품과 교역품, 요새 수비대에 공급할 보급품과 교대 인력도 실어가야 한다. 그럼 8백t급 5척 정도는 준비하는 게 맞는다. 연락선 용도로 3백t급 하나 붙는 거고.
북방으로 가는 배는 저번처럼 2척이면 된다. 북쪽으로 죽 돌면서 캄차카와 코디액 요새에다 인원과 물자를 보급하고 원주민들과 교역으로 모피, 사금 등을 구해서 돌아오면 북방 루트도 임무 완료다. 귀로에는 늘 그렇듯 시애틀, 샌프란시스코에 들러 본대와 함께 귀환한다.
“미주 야인들에게 얻은 교역품이나 공물, 우리가 직접 채취한 금과 모피를 가져오면 충분한 수익이 되리라. 이쪽에서 가져갈 물품으로는 무엇보다도 철과 화약이 중요한데, 호조에서는 철을 충분히 준비했느냐?”
화약은 병조 창고에서 꺼내기만 하면 된다. 관건은 철이다.
“예, 전하. 동래 철점(鐵店)에 있는 잉글인들이 새로 철을 녹이는 용광로(鎔鑛爐)를 만들어 생산하는 철이 아주 막대합니다. 기존에 우리 철장(鐵匠)들이 만들어내던 양에 비하면 몇 배나 늘어났습니다.”
동래에 건설한 잉글랜드식 제철소는 수영강에 쌓은 사력식 댐, 회동보(回東堡)에서 용수를 얻고 거기서 흘러내리는 물로 물레방아를 돌려 동력을 공급받는다. 철광석은 주로 양산에서 배로 공급받고, 석탄은 규슈 치쿠호 탄광에서 역시 배로 실어 온다.
“양산 일대는 옛날 수로왕이 다스리던 시절부터 좋은 철이 나는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지금 철점이 자리가 잡히면서는 매년 생산하는 철이 20만 관에 달하며, 실로 조정에서 필요로 하는 철을 모두 이곳에서 충당할 수 있을 지경입니다.”
20만 관이면 750t이다. 현대 한국에서 포스코가 하루에 만 톤 단위로 쇳물을 생산해내는 걸 생각하면 연산(年産) 750t이 별거 아니겠지만, 지금은 17세기 초다. 정말 막대한 양 맞다.
이것도 계속 시설을 추가로 증설하는 중이다. 조만간 동래에서 생산하는 철재만 해도 연산 1천t을 돌파할 수 있을 듯하다.
“철이 많이 생산되는 건 좋으나, 여태 주철 대포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건 아쉽구나. 시험 도중에 포가 터지는 꼴을 보면 꼭 무종대왕 시절 증기기관 터지듯 하니….”
주철 대포 생각을 하니 절로 탄식이 나왔다. 조선산 철광석에 부족한 인 함량을 늘리느라고 뼛가루를 넣는 실험을 한 건 좋았는데, 이게 과다하게 들어가니 도리어 경도가 올라가서 쇠가 딱딱해지고 취성(脆性)이 올라가서 더 잘 깨지는 포가 나와버렸다.
“잉글인 철장들도 뼛가루 양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사옵니다. 조만간 성과가 있을 것이니, 부디 너무 노여워하지 말고 기다려 주십시오.”
현대 시각으로 보면 묘한 일이지만, 조선에서 철 생산은 공조가 아니라 호조에서 담당한다. ‘산업’으로서 철 생산을 보는 게 아니고, 정부에서 필요한 철을 ‘조달’하는 차원에서 생산자를 관리하기 때문이다.
공조에서는 토목공사, 공예품 제작, 산림 관리 같은 분야를 담당한다. 장차 공조가 대한제국 농상공부 같은 조직으로 개편되면 철 생산 같은 분야도 그쪽으로 옮겨가야겠지. 그때가 되면 정부에서 필요한 철을 직접 공납 받는 대신 돈을 주고 매입할 테니까 말이다.
“알겠다. 당장 급한 일은 아니니, 너무 조급하게 굴다가 혹시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 가면서 일을 진행하라고 이르라.”
증기기관 제작 초기에 사람깨나 잡아먹었지. 나도 시험장에 구경하러 갔다가 폭탄이 터지는 광경을 보고 식겁했었다. 처음 만든 시작품(試作品)은 무식하게 두껍게 만들어서 도리어 잘 안 터졌는데, 선박용으로 쓰려고 가벼운 개량형을 만들기 시작하니 무섭게도 터져 댔다.
“헌데 잉글인들은 매우 교만하여, 재물을 빼앗거나 처자를 구타하며 횡포를 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관청에서 나서려 하면 철 생산을 하지 않겠다면서 배짱을 부립니다. 저들을 잘못 건드려 국가의 대사를 망가뜨리지 않을까 하여 동래부사가 힘겨워하고 있으니 살펴 주소서.”
“아니, 그런 고얀 놈들이 있나?”
갑자기 짜증이 확 치솟네. 펠리페 2세나 앙리 4세가 보내준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독일 기술자들은 그렇게 성실할 수가 없는데 영국놈들만 왜 그래? 내 눈에서 멀다고 그런가?
“전하, 이는 사람을 뽑는 근원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던 탓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옵니다.”
그 영국인들을 조선에 데려온 장본인인 영의정 이덕형이 그 원인을 분석했다.
“서반아, 도이치, 불랑국 등에서는 국왕이 직접 장인들을 선발하여 우수하고 성실한 이들을 골라 보냈습니다. 내달국에서는 저희 관원들이 직접 대면하고 그 사람됨을 살핀 뒤에 데려올 이를 골랐으며, 또한 가족을 함께 데려왔기에 저들이 성실하게 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확실히 그렇다. 그런데 영국놈들은?
“잉글국에서는 우리가 사람을 뽑지 않았고, 잉글국 조정에서 뽑아준 것도 아닙니다. 대사로 온 롤리 공 개인이 사재를 털어 사람을 급하게 모았으니, 온갖 무뢰배가 그 안에 섞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동안 조용했다 해도 지금 그 본성을 드러냄이 수상하지 않습니다.”
“확실히 그러하다. 영상의 말이 옳다.”
롤리가 머릿수를 채우느라 어중이떠중이를 긁어모아 그런 꼴이 났다는 거군. 좋아, 그럼 그 해결책도 간단하다.
“자고로 미친개는 매가 약이라 하였다. 동래부사에게 일러 무도하게 구는 양인은 법에 따라 처결하고 결과만 보고하라 일러라. 이미 호패도 받은 놈들이 무슨 배짱으로 지방관을 우습게 본다는 말이냐?”
조선에 이주한 유럽인들은 정착지에 보내지자마자 모두 호패부터 받았다. 조선인으로서 이 땅에서 살려면 거쳐야 하는 당연한 절차다. 법 규정대로 하면, 양인이라 해도 호패가 없으면 전가사변이다.
“행여 양인들이 반발하여 철 생산을 거부하거나 만들어내는 철에다 장난질을 칠 경우,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알려라.”
조선의 몽둥이도 잉글랜드의 채찍질만큼은 아플 거다. 여기가 어딘지 아직도 모르고 자기가 해야 할 바를 제대로 하지 않는 놈은 패서 가르치는 수밖에.
“전하, 교동도에서 급한 파발이 왔사옵니다.”
잉글랜드 껄렁패들 처리 이외에 다른 현안들을 처리하고 있는데 승정원에 있던 우부승지가 급히 편전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몇 년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쁜 소식이 드디어 도착한 참이었다.
“견서선 3척이 모두 무사히 들어오고 있다 합니다! 교동도 상공 비승군에서 관측하였으니, 곧 도성으로 들어오리라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