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58
2부 6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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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을 필두로 한 견서사 일행이 근정전 앞에 꿇어 엎드려 내게 귀환 보고를 했다. 이들 일행이 벽란도를 출발한 게 계묘년(1603) 4월이었으니, 딱 만 4년 만에 돌아온 셈이다.
1차 견서사는 왕복에 3년 반쯤 걸렸다. 2차 견서사는 3년 2개월, 3차 견서사는 4년 7개월 걸렸다. 1차 때랑 2차 때는 귀신이 붙었나 싶었을 정도로 배가 빨리 움직였었으니 예외라고 하고, 4년 이상 걸리는 지금이 정상인 듯하다. 유럽에 머무는 기간은 매번 비슷하다.
“이번에도 험로에 고생이 많았다. 그리 많은 사람을 잃지 않고 무난한 성과를 거두었으니, 그대들에게 각자 공에 맞는 상을 내릴 것이니라.”
배 한 척 잃지 않고 무사히 유럽까지 다녀온 것만 해도 큰 공이다. 상은 뭐 복잡한 게 따로 있겠는가. 벼슬 주고 품계 올려주는 게 상이지.
견서사로 다녀온 일반 선원들에게도 상으로 벼슬이 나간다. 다만 이들에게 내리는 벼슬은 제대로 된 정식 벼슬이 아니라 그저 이름만 나가는 공명첩(空名帖)으로, 품계도 없다. 종9품도 아니고 아예 무품이다. 하지만 벼슬은 분명 벼슬이다.
벼슬만 주는 게 아니다. 무사히 귀환하면 그동안 일한 보수를 저화로 계산해서 일시금으로 지급한다. 이는 항해 도중에 지급하는 체류비와는 별개고, 각자 휴대한 상품을 팔아서 재주껏 버는 돈과도 별개다. 물론 그렇게 번 돈은 현지에서 다 써버리고 오는 놈들이 태반이지만.
평생 출세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을 선원들이 견서사 한 번만 다녀오면 벼슬을 받고 ‘첨지(僉知)’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막대한 돈도 받을 수 있다. 몇 번의 전례로 이런 이미지가 확실해지니 이젠 몇 년씩 걸리는 장기간의 항해라 해도 지원자가 부족하지 않을 정도다.
다만 이번에는 한 가지 변화를 주기는 했다. 이제까지 3차에 걸친 견서사는 모두 벽란도에 도착하자마자 환영식을 거행했지만, 이번에는 근정전에서 열었다. 다만 그렇게 하기로 정하는 과정에서는 약간 진통이 있었다.
“이제까지는 매번 마중을 나가셨는데 이번에는 나가지 않으시옵니까?”
“처음 세 번이면 충분하다. 이후 숱하게 사신이 오갈 터인데 어찌 매번 임금이 항구로 나가 귀환하는 배를 맞이하겠느냐? 출발할 때 환송했으니 되었다.”
괜히 잘못된 관례를 만들면 곤란하다. 이러다가 ‘경성군께서도 매번 사신이 귀국할 때마다 항구에 나가셨는데’ 운운하며 임금이 항구에 나가는 개 같은 전통이라도 생기면 나는 후대에 두고두고 원망을 받게 될 거다. 그리고 저번 환송 때도 이제는 그만두라는 소리를 들었었고.
“과인이 작년부터 부쩍 몸이 좋지 않고, 다루어야 할 국사가 많아 벽란도를 왕래하며 보낼 시간도 없다. 이번 견서사는 개성부윤이 일차 맞이하여 환영연을 베풀고, 바로 도성으로 와서 근정전에서 정식으로 귀환 보고를 올리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번 견서사에는 이덕형이 없다고 내가 마중을 안 나간 건 아니다. 절대로. 그냥 힘들어서 못 나간 거다.
하여간 근정전에서 진행된 귀환보고는 이번에도 역시 울음바다였다. 4년 만에 도성에 발을 디딘 신하들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고, 그 앞에 앉은 나 역시 괜히 콧등이 시큰거렸다.
“정사의 얼굴이 무척 핼쑥한 것을 보니 무척 힘든 여정이었던 듯하다. 푹 쉬면서 정양하고 몸을 보한 뒤에 다시 조정에 나오도록 하여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정사 이수광은 얼굴만이 아니라 몸도 수척해진 상태였다. 소라도 한 마리 내려서 실컷 먹고 몸보신하라고 해야 할 듯하다.
“경회루에 조촐히 연회를 준비했으니 가서 즐기도록 하라. 그대들이 치른 노고를 생각하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산해진미를 차려 대접해야겠으나, 또 가뭄이 드는 바람에 궁중에서 차마 큰 잔치를 열 수가 없다. 국혼도 치르지 못하고 있을 정도이니 양해해주면 좋겠다.”
올해 열여섯이 되는 희연옹주와 열다섯이 되는 숙현옹주, 두 옹주의 혼사가 가뭄 탓으로 또 밀리고 있다. 사실 나로서는 홍타이지를 사위로 받아들일 생각이 있기에, 가뭄을 핑계로 잠시 혼사를 미루는 지금 상황이 썩 나쁘지만도 않다. 상희를 설득할 시간을 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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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 위에서는 평소처럼 흥겹게 풍악을 울리지는 않았다. 식사와 주연을 나누면서 주변이 너무 조용하면 허전하니 음악만 잔잔하게 배경으로 까는 정도다.
“그래, 잉글랜드 여왕이 훙(薨)하였다고?”
붕어(崩御)는 천자가 죽었을 때만 쓰는 표현이다. 내가 죽어도 못 쓸 말인데 유럽 국왕이라 해도 붕어했다고 해줄 수는 없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라면 붕어했다고 해줄 수도 있겠다만.
나중에 혹시 조선이 칭제건원하면 유럽 국왕들에게도 붕어했다는 표현을 써줄 수도 있겠다. 걔들이 뭐 우리 밑에 들어올 일은 없으니, 우리보다 격을 낮춰서 계속 ‘훙했다’고 표현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러하옵니다. 그 질손(姪孫)인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물려받아 두 나라를 한꺼번에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개성에 있는 월터 롤리는 여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대로 쓰러져 통곡했다고 한다. 그 충격이 컸는지 개성부윤이 여는 환영연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이수광과 함께 도성으로 오라고 내가 보낸 초청도 거절했다.
“영의정이 견서사로 갔을 때, 이미 노쇠하여 명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였다는 말은 들었다. 허나 그새 생을 마쳤을 줄은 몰랐구나.”
엘리자베스 1세가 대충 지금쯤 죽은 줄이야 알았지만, 정확히 언제인지는 몰랐으니까. 물론 그게 지금 내게 큰 상관은 없다만.
“새 왕은 나이가 올해 마흔하나로, 무척 영민하며 학식도 풍부합니다. 유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 저희를 상대로 유학의 기본적인 가르침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였고, 이해도 나름 잘하는 편이었사옵니다.”
제임스 1세가 원래 똑똑한 사람이긴 했지. 같은 섬 안에 있을 뿐 전혀 다른 두 나라를 크게 혼란을 겪지 않고 무난하게 통치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나저나 성리학에 관해 우리 사신들에게 묻다니, 왕권신수설에 성리학 양념이라도 칠 생각인가.
“다만 저희가 가져간 예물 중에서 담배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국왕이 말하기를, ‘과인은 담배를 혐오하여 백성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글을 반포한 적도 있노라. 가져온 성의는 고맙지만, 담배만은 받지 않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송구하옵니다.”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 이는 조선에도 많지 않으냐. 선물로 상대가 싫어하는 물건을 준비한 건 우리 실수이니, 그대가 송구할 건 없다.”
제임스 1세가 혐연론자였던 줄은 몰랐군. 그런 면에서 영조 같은 사람인가? 그때 옆에 앉아 나와 이수광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우의정 김후원이 끼어들어 질문을 던졌다.
“내 하나 묻고 싶소이다. 숙호국(스코틀랜드)의 도읍은 ‘에든버러’라고 들었소. 그런데 어찌 왕이 치소(治所)를 잉글국 수도 ‘런던’에 두고 있는 것이오?”
“잉글랜드가 훨씬 인구도 많고 부유한 땅인 까닭입니다. 스코틀랜드는 우리 조선으로 치면 마치 함경도 같은 고장이라, 산이 많고 경지가 협소하여 백성이 가난합니다. 그러니 왕으로서 더 강한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서 잉글랜드에 치소를 둔 것이지요.”
가난한 스코틀랜드에 수도를 두고 잉글랜드에 명령을 내려 봐야 잉글랜드 귀족과 백성들은 코웃음을 칠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을 가까이에서 보살필 새로운 왕을 옹립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위험을 피하려면 제임스 1세는 런던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후원은 이수광의 설명을 듣고도 혀를 찼다. 제임스의 결정에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는 듯했다.
“그대가 한 설명이 이치에 맞음은 알겠으나, 본향을 버린 군주가 안정된 나라를 이뤄낼 수 있을 리 없소. 과거 요와 금, 원이 모두 본향을 버리고 중원으로 거점을 옮겼다가 결국 모두 망하지 않았소. 고향인 숙호국을 버렸으니, 필시 후에 그 문제로 난이 일어날 거요.”
제임스 1세의 아들 찰스 1세는 내전에 패하고 목이 잘려 죽었다. 내전을 초래한 결정적인 원인이 스코틀랜드의 반란이고, 반란의 배경은 스코틀랜드 사정에 무지한 찰스 1세의 독단적 지시였음을 고려하면 김후원은 정확한 예언을 한 셈이다. 우리랑 직접 관련은 없는 일이다만.
사실 영국은 앞으로 적어도 100년 정도는 우리와 얽히지 않고 자기들대로 발전해나갈 거다. 지금 영국은 우리한테 직접 영향을 미칠 능력이 없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니까. 내전과 혁명, 그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한 결과물이 두 나라 중간 어딘가에서 우리랑 부딪히겠지.
과연 어디서부터 충돌하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인도일지, 아메리카일지, 호주일지…그때 내가 과연 깨어나 있을지도 알 수 없으니.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잉글랜드가 개신교를 국교로 하며 국왕 자신도 개신교도이면서 선왕 시절 계속하던 천주교 탄압을 중단했다는 점이옵니다. 국내에 잔존한 천주교도에게도 억압을 완화하고, 스페인과도 조약을 맺어 전쟁을 끝냈사옵니다.”
“장기간 전쟁을 계속하면서 부담이 너무 크니 그러지 않았겠느냐? 지금 잉글랜드는 국세가 스페인만큼 강성하지 못하니, 수십 년 동안 벌여온 전쟁을 더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확실한 이득이 되지 않는 일에는 뛰어들지 않는 제임스 1세다. 나중에 30년 전쟁이 터졌을 때는 자기 사위가 당사자인데도 참전하지 않았다. ‘대의를 위해’ 빤히 보이는 손해를 감수할 위인이 아니다, 제임스 1세는.
그러고 보니 30년 전쟁은 또 조선에 어떤 영향을 미치려나. 역사대로라면 12년 뒤에 터질 텐데, 내가 과연 그때까지 살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다. 현대였으면 66세 정도는 걱정도 안 할 나이인데, 여기서는 지금 50대 중반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건강이 위태위태하니 원.
이게 다 경성군 놈이 젊어서 운동도 안 하고 섭생도 제대로 안 하면서 호색질만 한 탓이다. 젠장, 다음 생에 어떤 놈으로 눈을 뜰지 모르겠지만 되도록 어려서 각성했으면 좋겠다. 아예 처음부터 제대로 몸 만들고 건강 관리하게.
“참, 스페인에서는 아주 환대를 받았다고?”
“스페인 한곳에서만이 아니었습니다. 천회사 이기빈이 아라비아 일대를 공략한 일이 유럽 전역에 ‘메카를 함락했다’라고 와전되어 퍼지는 바람에 저희가 가는 곳마다 교회의 종을 크게 울리고 성직자들이 나와 직접 환대하며 아주 성대한 환영식을 치렀습니다.”
이기빈이 습격한 항구는 메카가 아니라 모카다. 이수광이 유럽에서 보낸 장계를 받은 내가 답을 보내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이수광도 그 진상을 알고 있었다.
“귀로에 골가타(?茄朶)에 들렀을 때, 천회사가 골가타에 남겨두고 간 관원과 장졸들에게 그 일에 관한 진상을 들었사옵니다. 또한, 대남도에 들렀을 때도 직접 참여했던 대남도 무관에게 그 일에 관해 들었사옵니다. 실로 기가 막힌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그 일은 우리가 전적으로 잘한 일이라 할 수 없기는 하다. 허나 일을 그토록 크게 만든 건 모카 태수라는 자가 벌인 무도한 행동 때문이었으니, 우리 두 나라 사이를 망쳐놓은 궁극적인 책임은 그자에게 물려야 할 것이다.”
밀수를 시도한 책임이 있으니 우리도 결백하지는 않다. 얼렁뚱땅 넘길 뿐이다.
“그런데 모카 태수는 그 뒤에 어찌 되었는지 아느냐?”
“신이 듣기로는, ‘아흐메트’라 하는 돌궐 대칸이 극도로 진노하여 모카 태수, 아덴 총독 등 십여 명이나 되는 죄인들을 수도 신로마로 압송한 뒤 혀를 뽑고, 전신의 가죽을 벗긴 뒤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지고 결박하여 3일 동안 바닷물에 담가두었다가 꺼내 목을 잘랐다 합니다.”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으냐.”
임해군을 능지형에 처했던 일을 생각하면 나도 별 차이 없는 수준인가 싶긴 하다만, 그래도 난 아편은 먹여 줬다. 하지만 오스만에서는 생으로 가죽을 벗기고 바닷물에다 처넣은 거잖아. 그런데 아흐메트? 걔는 어떤 애야? 쉴레이만 대제에 셀림 2세까지는 알겠다만 얘는 모르겠네.
“대칸은 나이가 올해 겨우 열일곱인 데다 돌궐국 관습인 ‘왕제(王弟) 처형’을 폐지할 정도로 성품이 자애로운 군주라 합니다. 게다가 그 사건이 터진 해는 대칸이 보위에 오른 바로 다음 해였으니, 과한 엄벌은 아직 젊은 대칸보다는 나이든 신하들의 뜻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다만 술탄이 그렇게 자애로운 성격이라면 시간이 지나 화가 풀린 다음에는 교류를 재개하기 쉽겠구나 싶기는 하다.
“그 일 탓에 일전까지 각오했던 스페인과의 관계가 좋아지다니, 실로 인간만사 새옹지마에 산정에서 굴린 조약돌이로다.”
‘산정에서 굴린 조약돌’은 내가 만들어낸 표현이다. 산꼭대기에서 조약돌 하나를 던지면 그 조약돌이 밑에 있는 더 큰 돌을 연달아 움직이며 산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뜻으로, 쉽게 말하자면 ‘나비효과’다. 이게 후대에 멋들어진 한자로 바뀌어 격언이 될 수도 있으려나.
“좋아진 정도가 아니옵니다. 스페인 국왕은 전하께 모욕을 가했던 광승 가르시아를 사원에 유폐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서반아 식민지로 추방해 버렸사옵니다. 인디오 토인들에게나 선교하면서 국왕을 기망한 죄를 씻으라면서 말입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아예 스페인군 일부를 보내 조선 군함에 태워서 메카를 공격하게 하자는 연합작전 구상까지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계획이다.
“스페인 장수들과 논의가 되지는 않은 모양이었으나, 왕은 매우 진지하게 그 제안을 신에게 밝혔사옵니다. 스페인 수군은 인도양까지 출정할 여유가 없으나, 육군이라면 다소간 보낼 수 있으니 조선 수군과 함께 싸우고 싶다면서 말입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제대로 교역할 수 있다면 애초에 싸우지도 않았을 터인데, 딱히 원한도 없는 돌궐과 우리가 왜 싸워야 한다는 말이냐.”
정철 때문에 조선 식자층에서 오스만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누구를 나쁜 놈으로 취급하는 것과 내 손으로 때려죽일 놈으로 간주하는 건 전혀 다르다. 오스만을 공격해서 뭘 할 건데? 이미 망한 로마를 재건해주려고? 그런 이상론자는 조선에 없다.
“그렇기에 신에게는 교섭할 권한이 없다 하여 겨우 물리쳤습니다.”
“잘하였다.”
정신 나간 녀석 같으니. 펠리페 3세 이놈도 만력제보다 나을 게 없는 놈이구먼.
“프랑스에서는 내란이 끝나고 평화가 오니 만백성이 국왕의 성덕을 찬양하면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사옵니다. 국고에는 돈이 산처럼 쌓이고 백성은 평화롭게 생업에 종사하며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앙리 왕을 ‘대왕’이라 부르며 칭송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는다면 군주로서 더 바랄 게 없지 않겠느냐?”
모든 백성에게 매주 한 번은 닭고기를 먹게 해준다는 게 앙리 4세의 계획이었지. 그건 나도 본받고 싶다. 다만 그게 꼭 닭고기일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조선인들은 늘 소고기를 제일 좋아하니, ‘매주 소고깃국 한 그릇’을 제공하는 게 현실적이겠다.
지난 20여 년에 걸쳐 신품종 돼지를 보급했다. 그 결과 돼지고기 생산은 비교하기 우스울 만큼 늘어났다. 하지만 조선 백성들은 돼지고기를 더 많이 먹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소고기를 ‘더’ 좋아한다. 이건 정말 두 손 들었다.
“또한, 프랑스 국왕은 성당 공사에 투입할 석공 30명도 더 보내주었습니다.”
“실로 고마운 일이로고.”
스페인, 영국에서는 이번에 추가로 들어온 인력이 없다. 네덜란드에서는 가톨릭 이민자 2백 명 정도가 추가로 왔지만, 이 두 나라에서는 사람이 오지 않았다. 모아서 보낼 사람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외에도 잡다한 일화가 끝없이 이어졌다. 셰익스피어 신작 극본도 잔뜩 가져왔다고 했다.
환영연은 흥청거리지는 않았지만, 여행담을 듣기만 해도 아주 즐거웠다. 아, 나도 마음 편히 유럽 여행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