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64
2부 6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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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울에는 대한제국 시대 환구단 유적이 있다. 조선호텔 자리가 본래 환구단이 있었던 자리인데, 이건 사실 옛 법도를 따라서 지은 게 아니었다.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
환구단 자리에는 원래 청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남별궁(南別宮)이 있었다. 고종은 자주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그 중국풍 궁전을 헐고 그 자리에 환구단을 지었다. 독립협회가 독립문을 세울 때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영은문을 철거하고 그 앞에다 지은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애초에 남별궁이 없으니까. 그 터는 본래 태종의 둘째 딸 경정공주가 살던 ‘소공주댁(小公主宅)’이다. 지금은 그 후손들에게 다시 사들여 영창대군이 분가할 때 주었다.
게다가 만약 거기가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장소였다고 해도 없앨 이유는 없다. 호란으로 굴욕을 준 청나라와 국초부터 받들어 섬긴 명나라를 어떻게 같은 비중으로 취급하나? 명나라 황제가 지금 얼마나 머저리건, 과거부터 이어지는 명나라와의 인연은 보존할 만한 거다.
“환구단은 옛 남단 자리에 쌓도록 함이 좋겠다.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전하께서 말씀하신 바가 옳사옵니다.”
환구단은 원래 남문 밖에 쌓는 게 법도다. 영락제가 지은 명나라 천단(天壇)도 북경성 내성 남문 바깥에 있고, 개성에 있는 고려 때 환구단도 남문 밖에 있다. 태조 이성계 때 처음 쌓은 환구단도 남대문 밖, 용산에 있었다. 지금의 남단(南壇), 또는 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이다.
“옛 단을 해체하되, 그 돌과 흙을 함부로 다루지 말고 모두 다시 사용하여 새 단을 쌓도록 하라. 규모는 환구단으로서 마땅한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면 족하다.”
조선 초기 환구단 유적도 나중에 가면 뭔가 보물이 되겠다만, 무슨 나이테도 아니고 사람이 살면서 모든 흔적을 후대에 남겨둘 수는 없다. 뭐 하나 지을 때마다 보존하고 그 옆에 새로 짓다 보면 나중에는 빈 땅이 안 남을 거 아닌가? 그럼 길은 어디 내고 농사는 어디 지어?
“그리고 기왕 역사(役事)하는 김에 용산에 광장과 별궁을 짓도록 하면 어떨까 한다. 천병이 주둔할 때 정리한 군영 부지가 그대로 비어 있으니, 그 땅에 토대를 올려 광장을 깔고 별궁을 짓겠다. 이는 그 남단에서 환구단에 제를 올리기 위함이니 그리들 알라.”
일단 받고, 레이스 들어간다. 네놈들이 ‘기우제, 기우제, 환구단, 환구단’ 노래를 불러댔으니 들어는 준다만, 그럼 내가 바라는 것도 너희들이 받아줘야지. 가뭄 때문에 주변 눈치 보느라 미루던 용산 도시계획의 첫 삽을 이참에 떠야겠다.
언젠가 이 용도로 쓰려고 사천병이 머무르던 주둔지 부지에다 그동안 농사를 짓거나 건물을 올리지 못하게 했다. 일단 뭔가 하기 시작하면 그 땅을 재차 수용해서 내 마음대로 뭘 만들기 어려워지니까 말이다.
“전하, 그것은 옳지 않사옵니다. 경지정리나 수리시설 구축, 식림사업 같은 것은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 가뭄이 들었다 해도 마땅히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궁실(宮室)을 짓고 성을 쌓는 것은 하등 피해야 할 사업입니다. 공연히 국고를 낭비하게 되는 일을 피하소서.”
그래도 돈 낭비라고는 할지언정 ‘백성들을 괴롭힌다’라는 비판은 나오지 않았다. 토목사업은 공공근로고 일하는 백성들한테 일당은 꼬박꼬박 주니까. 강제로 끌어내는 부역이 아니라고.
“그대들이 바라는 대로 단을 쌓고 제대로 하늘에 비를 청하려면 마땅히 그에 걸맞은 준비가 필요하다. 과인이 하늘에 제를 올리려면 마땅히 격에 맞는 자리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신하들은 내 의견에 제꺽 동의하지 않았다. 평소 내가 펼친 논리 그대로 반박했다.
“전하께서는 평소 제물의 양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고, 제관의 정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준비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광장과 별궁 같은 불요불급한 것을 지금 만들려 하십니까?”
“그럼 나도 묻겠다. 그냥 아무렇게나 제를 지내도 된다면 환구단은 왜 필요한가? 내가 직접 강가나 산꼭대기에 가서 향을 피우고 절하면 그만이지 왜 굳이 단을 쌓아야 하느냔 말이다!”
하늘에 제를 올리기 위해 환구단이 필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쳐 댄 신하들이다. 그럼 그 격에 맞는 부대시설을 짓겠다는데도 당연히 동의해야 할 게 아닌가.
“제대로 격식을 갖춰 제를 올리자면 마땅히 궁에서 행렬을 이루어 제를 올리러 내려가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남대문에서 개선문을 지나 환구단에 도착하는 길과 광장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또한, 제사 전에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다스릴 별궁도 있어야 한다.”
내가 말한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광장은 이런저런 용도로 다양하게 쓸 수 있다. 이를테면 군대가 출정할 때 출정식을 열면서 예전처럼 한강 모래사장에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또 개선식을 치를 때도 좁은 성내에서만 복작거리지 않아도 된다.
별궁 역시 마찬가지다. 말이 좋아 별궁이지, 용산에 지을 새 궁궐은 사실상 정궁이다. 장차 인구가 도시로 몰리면서 사대문 밖으로 서울이 확장될 것을 생각하면 사대문 밖 한강 기슭에 번듯한 새 궁궐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사대문 안에 있는 옛 궁궐들은 조선 전통 양식으로 지었으니 용산에 지을 궁전은 유럽식의 석조건물로 짓는다. 마침 앙리 4세가 석공 30명까지 더 보내줬으니, 프랑스식 궁전을 지어도 되겠다. 필요한 석재, 벽돌, 목재, 유리 같은 자재도 이젠 전부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으니까.
궐내를 장식할 미술품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 안토니오와 안토니오가 키운 제자들이 유럽식 조각이나 그림을 제작하고, 조선 화공들도 서화류 정도는 내놓을 수 있다.
그뿐이랴? 각종 무구류도 훌륭한 장식품이다. 원래 조선에서라면 턱도 없는 일이겠지만, 이 조선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가 직접 제작한 전통 갑옷이나 신식 남만갑, 경인년에 잔뜩 노획한 왜군 갑옷 같은 것도 전시할 수 있다. 노부나가 갑옷 같은 거 꺼내와도 된다.
이런 것들을 모아놓으면, 나중에는 별궁을 박물관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홀 하나하나마다 주제를 정해서 전시품을 정리하면 멋질 거다. 루브르나 베르사유, 에르미타주 같은 유럽 여러 박물관이 본래 왕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계획이다.
“물론 나도 당장에 전국에서 인부를 모아 별궁을 짓기 시작하라는 건 아니다. 제단을 쌓는 과정에 병행해서 터를 닦기 시작하라는 것이고, 완성에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니라.”
지금 용산은 반쯤 모래땅인 데다가 홍수가 나면 수시로 물이 넘치는 곳이다. 여기다 별궁을 지으려면 일단 터부터 높직하게 돋워야 하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기반을 다져야 한다. 물론 이건 시중에 돈을 뿌리는 대규모 공공사업이기도 하다.
이런 건 내가 시작해놔야 한다. 요즘 내 몸 상태를 보면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완성하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일단 시작을 해놔야 성이가 ‘부왕의 유업(遺業)’이라는 명분으로 계속해서 밀어붙일 수 있다. 그 필요성에 관해서는 몇 번 운을 띄워놓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신하들은 대뜸 알겠다고 수그리지는 않았다. 역시나 조선 조정답게 과연 이 시국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궁궐을 신축할 필요가 있는지를 놓고 격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반대하는 쪽이 좀 더 우세했지만, 나로서는 그래도 아쉬울 게 없다. 왜냐고?
논란이 길어지면 그만큼 환구단 조성이 늦어질 뿐이니까. 아예 내가 죽고 나서 환구단 조성 공사가 완료되면 더 좋겠다. 내가 환구단에 올라가서 기우제를 지냈는데도 비가 안 내린다면 그 망신을 어떻게 감당하냐?
그래도 짓는 중에 비가 오면 가장 좋을 것 같다. 하느님이 그렇게 배려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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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하치는 아직 수도를 성경, 즉 옛 심양으로 옮기지 못했다. 웅장한 궁궐을 완성한 뒤에 당당하게 천도할 계획이었는데, 두 해 연속으로 흉년이 들다 보니 궁궐 건설에 필요한 비용을 넉넉하게 조달할 수가 없었다.
“명나라나 조선에 원조를 청할까요?”
“됐다. 분명히 그놈들도 돈이 없다고 할 거다.”
두 나라 내부 사정은 필요한 만큼 알고 있다. 명나라는 장차 건주가 배반할 경우를 대비해 요서회랑을 요새화하느라고 가용한 자금을 몽땅 쏟아붓고 있고, 후방에서는 그로 인한 반란이 빈발하고 있다. 조선은 흉년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다.
“그러는 와중에도 황제라는 큰 돼지는 사치스러운 우리 속에서 비싼 짚을 깔고 맛난 여물을 실컷 먹으며 암퇘지들에 둘러싸여 희희낙락 살쪄가고 있다지.”
명나라 황제가 가진 것 같은 넓은 영토와 많은 백성,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막대한 세금. 만약 자신이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누르하치는 가끔 그런 공상을 즐기곤 했다.
“유감스럽게도 내게는 자금성에 비하면 오두막이나 다름없을 궁궐을 하나 짓는 것도 너무 힘겹구나.”
“한께서 궁궐 따위를 지으면서 사치를 부리기보다는 전사들에게 베풀기를 즐기시는 관대한 주군이시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측근 신하인 피옹돈이 점잖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누르하치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한께서는 농사를 망친 마을마다 식량을 보내시고, 무장이 부족한 부대에는 무기를 마련할 비용을 보태주어 전장에 나가는 데 지장이 없게 하고 계십니다. 어찌 이를 보면서도 관대하고 자비로운 주군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조선 임금의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본래 여진에서는 모든 전사가 자기가 사용할 무기와 갑주를 스스로 마련하는 게 관습이다. 사내라면 무기 정도는 직접 마련해야 한다는 관념도 있지만, 추장에게 비싼 무구를 대량으로 공급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르하치는 군왕으로 즉위하면서 이 체제를 바꾸었다. 20년 가까이 조선군을 관찰한 누르하치는 그들이 강한 이유 중 하나가 모두 통일된 무장을 쓰는 데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전사들에게 직접 무기를 공급하고, 대신 관리할 책임만은 각자가 지도록 했다.
“군대를 정비했으면 사용해야겠지. 각 기에 영을 내려 전사 4만 명을 소집하라. 할하 부를 공격한다.”
무기를 제공하는 만큼 더 당당하게 목숨도 요구할 수 있다. 스스로 무기를 마련하는 자는 그 스스로 전사지만, 군주에게 무기를 받는 자는 군주의 노예다. 무기를 들었을 뿐이다.
“조선왕에게는 군량이 없어 출정할 수 없다고 통보하지 않으셨습니까?”
“할하까지 갈 식량도 없는 건 아니지 않나. 각자 겨울 식량을 덜어서 나오라고 하라.”
지금은 10월, 월동을 준비할 시기다. 월동을 준비할 시기가 되면 약탈원정을 나가는 건 옛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오랜 관습이다. 다만 지금은 그때처럼 조선이나 명나라 변경을 공격해 약탈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놈들도 겨울맞이 준비를 하고 있을 터, 가서 전리품을 털 만큼 털어 돌아온다. 양식으로 보태는 외에 궁궐 건설에 쓸 자금도 마련할 수 있을 거다.”
“명나라 황제한테 절반을 바쳐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는 게 정말 절반인지 그놈들이 알 게 뭐냐.”
명나라에서 감관이랍시고 보낸 환관은 조용히 방에 틀어박혀 있다. 처음 당도했을 때는 좀 위세를 부려 보려고 했지만, 누르하치가 아무 말 없이 손짓하자 호위병 하나가 화살을 쏘아 감관이 손에 든 부채를 그대로 날려버렸다.
얼굴이 창백해진 감관은 그대로 준비해 준 숙소로 도망쳤고, 숙소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그게 벌써 1년이 다 되었다.
“놈은 우리가 원정을 나간대도 따라오지 않겠지. 그러니 나가서 빼앗은 가축과 사람 중에서 사람 백 명, 가축 천 마리만 황제에게 보내기로 한다. 나머지는 모두 우리가 갖는다.”
“그럴 거라면 아예 안 보내도 되지 않겠습니까?”
“아바이, 전리품을 아예 안 보낸다면 우리가 황명에 따라 할하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 우리가 충실한 신하임을 입증해야 황제에게 은을 하사받을 게 아니냐.”
누르하치는 그저 가축 몇 마리 때문에 할하 부를 치려는 게 아니었다. 새 궁궐을 짓고 휘하 군사들에게 우수한 무기를 쥐여주는 데 쓸 은을 얻기 위해 원정을 나가려는 거다. 할하 부와 싸워 승리를 거두면 만력제에게 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이 그랬듯이.
“황제가 예물을 받고서도 우리가 원하는 만큼 은을 주지 않으면 어쩌지요, 아버지 한.”
아바이(阿拜)는 누르하치의 셋째 아들이다. 다이샨보다 두 살 아래로, 다른 동생들과 관계는 아바이가 더 좋다. 다이샨은 홍타이지 외에는 크게 친한 동생이 없고, 그나마 조선에 갔다.
“황제로서 대우를 받고 싶다면 마땅히 푸짐하게 베풀어야 할 터, 놈이 그러기 싫다면 다음 원정부터는 전리품을 나눠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어려울 게 뭐가 있느냐?”
전리품을 상납받지 못한 황제가 화를 내더라도 두려울 게 없다. 조공을 받고 그에 답례하는 건 당연한 도리인데 그걸 지키지 않은 건 명나라니까 말이다. 명군이 토벌에 나서더라도 싸워 쳐부수면 되니 전혀 두렵지 않았다.
“사람, 말, 갑옷, 병기, 화약 등 막대한 전리품을 거둘 수 있을 테니 싸우는 편이 훨씬 남는 장사겠구나. 황제를 도발해서 요서군이 요동으로 쳐들어오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안 그러냐?”
“아버지 한, 아무리 잘못이 명나라 쪽에 있다고 해도 저들을 너무 크게 쳐부수면 조선군이 출동할지도 모릅니다.”
“농담이었다, 암바 버일러.”
부친이 전혀 웃지 않으면서 농담이라고 하니 다이샨은 잠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누르하치는 개의치 않고 화제를 돌렸다.
“홍타이지 놈이 서양 천주교 선교사를 받아들이자고 하는데 너희는 생각이 어떠한가?”
“저는 좋습니다.”
다이샨이 먼저 나섰다.
“홍타이지가 주장했듯, 조선의 놀라운 재주 중 서양 선교사들이 전한 것들이 꽤 많습니다. 우리 역시 그런 재주를 익힐 수 있습니다. 저들은 자기들의 신앙을 퍼뜨릴 수만 있으면 다른 조건 없이 자신들이 아닌 지식을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자면 문수보살을 버려야 하지 않느냐.”
누르하치는 독실한 불교 신자다. 누르하치뿐만 아니라 다른 여진인, 아니 이제는 만주인들 대부분은 불교를 믿는다. 만주라는 이름 자체가 문수보살에서 기원한 것이다.
“조선 임금께서도 천주교 선교는 허용했지만 스스로는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역시 천주교 선교를 허용한다고 해서 우리가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이샨은 이 문제에 관해서 홍타이지와 미리 의논한 바가 있었다. 사실 어찌 보면 간단하고 또 간단한 계획이다.
“상당수 몽골 놈들은 과거에 십자가를 받들었었지요. 그놈들에게 선교하라고 하면 됩니다. 제가 조선에 있을 때 선교사들을 만나 몇 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옛날 대원 시절 유럽에서 중원까지 찾아와 천주교를 전한 선교사들이 있었다면서 그 위업을 매우 부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그때 못한 선교를 해 보고 싶다고 하더냐?”
“그러더군요.”
“그렇다면 나쁘진 않겠구나.”
만주인이 아니라 몽골인들만을 대상으로 선교하게 한다. 선교사들을 불러들여 당장에 무슨 구체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건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조선과 공통점이 하나라도 더 생기는 것만 해도 나쁠 건 없는 일이다.
“일단 우리 지배하에 있는 몽골인들부터 믿게 하는 겁니다. 언젠가 모든 몽골인이 천주교를 믿게 한다면, 우리는 몽골을 티베트로부터 완전히 떼어낼 수 있습니다.”
“그건 마음에 드는군.”
지금 몽골인 대부분은 티베트에서 전래한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티베트 불교는 몽골인뿐만 아니라 티베트에서 몽골에 걸친 지역에 사는 유목민 다수가 믿고 있어서, 만약에 티베트에서 어떤 정치적 사건이 일어나면 죄다 휩쓸려 들어가기 일쑤다.
“몽골인들이 서양 천주교로 믿음을 바꾸면 티베트 놈들이 무슨 지랄을 치건 그 소란에 얽혀 들어갈 이유가 없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성공한다면요.”
어차피 티베트를 정복할 수 없는 이상, 누르하치로서는 자기 밑에 있는 몽골인들이 티베트 불교를 믿는 데서 오는 어떤 이점도 없었다. 그럴 바에는 아예 인연을 끊어버리는 편이 훨씬 편할 것이기는 하다.
“당장 추진할 건 아니지만, 고려해 볼 만한 일이긴 하구나. 일단은 할하 원정부터 해치워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참에 걸리적거리는 문제 하나를 해결해야 했다. 누르하치는 아들들, 그리고 측근 신하들 앞에서 선언했다.
“그동안 내 심사를 거스르는 문제가 있었다. 이제 요동 정세도 웬만큼 안정되었으니 문제를 해결하여 우리 배후를 든든히 해야겠다. 그리고 난 뒤에 할하로 출병한다.”
“예, 한!”
신하들, 아들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이들 모두 누르하치가 누구를 치려고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