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65
2부 6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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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서 몇 차례나 격론이 벌어진 끝에 환구단 건립에 관한 건이 합의를 보았다. 친행기우 실패 시 겪어야 할 정치적 부담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고, 나는 물론 조정 중신 다수도 그 위험을 피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일을 서두르는 중추원과는 다르다.
“내가 친히 기우제를 지내지 않더라도 혹시 겨울에 눈과 비가 넉넉히 내려 해갈이 될 수도 있으니, 굳이 지금 단을 쌓을 필요는 없다. 이미 11월인데, 한겨울에 땅을 고르고 또 새로이 단을 쌓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냐?”
서둘러 공사한답시고 삽질했다가, 언 땅이 봄에 녹으면서 겨울 동안 만든 게 몽땅 내려앉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물론 내려앉을 만큼 뭔가 대단한 걸 만들어놓을 건 아니지만.
“4월이 되면 터를 닦고 석재를 마련하는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자금을 염출하고 필요한 인력 규모를 산정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공판에게 맡겨두겠다. 혹시 그전에 비가 넉넉히 오거든 다 그만둬도 좋다. 우리가 제단을 준비하는 모습만 보고도 하늘이 감동하여 비를 내릴 수도 있는 게 아니겠느냐?”
“예, 전하.”
당연한 이야기지만, 새 별궁 건설까지 이참에 한꺼번에 끝내려는 건 아니다. 별궁은 일단 터를 잡고 기반을 다지는 정도까지만 한다. 터를 다지고 환구단을 세우고 광장을 깔고 나서야 본격적인 별궁 건설이 시작되지 싶다. 애초에 모래땅에 짓긴 뭘 짓냐고.
“전하, 의주감영에서 급한 파발이 왔습니다.”
“의주에서?”
본래 평안도 감영은 평양에 있었다. 하지만 전국의 도 수를 13개로 늘리면서 평안도는 남북 두 도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평안북도 감영은 의주에 자리를 잡았다. 중국과 이어지는 중요한 육상 교통로면서 압록강 하구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강계에 감영을 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강계에서는 구련성에서 건너오는 명나라 측과 바로 연락하기 곤란했다. 게다가 그 당시에 최대의 가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건주위가 의주 방면을 향해 쳐들어온다면 제대로 막을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제 명나라 세력은 요동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의주는 여전히 평북감영 소재지고, 요동을 장악한 건주와 호시(互市)를 열어 점점 그 세를 키우고 있다. 건주로서도 속말주나 부여주와 교역하는 것보다는 의주에 오는 게 훨씬 남는 게 많은 까닭이다.
“급한 파발이라면 뭐냐. 요동을 헤매던 대국 잔병이 또 구원을 청하러 오기라도 했느냐?”
사르후에서 참패한 뒤, 생존한 명군 잔여 병력 대부분은 요서로 도망쳤다. 도망치지도 못한 자들은 거의 포로가 되었다. 누르하치는 이들을 한군팔기로 편성했는데, 내가 파악하기로 그 숫자는 지금 3만 명쯤 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는 현재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탈영하는 놈들이 꾸준히 나온다. 처음에는 요서나 금주위로 주로 도망가다가, 누르하치가 경계선 감시를 엄중히 하니 이제는 조선으로 넘어온다. 압록강 물이 줄어드는 겨울이 놈들이 주로 넘어오는 계절이다.
“간단한 신상 조사만 하고, 대구 대명동으로 보내 그쪽에서 함께 지내게 하라. 혹시 한인이 아니라 위장한 여진인이 아닌지만 살펴라.”
아직 그런 놈이 적발된 적은 없지만, 중국인으로 위장하고 침입하는 건주 첩자가 없으라는 법도 없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대명동(大明洞)은 명나라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천 출신이건 어딘가 다른 지역 출신이건 조선인들 눈에는 다 명나라 사람일 뿐이니까.
“전하, 이번에 들어온 자들은 천병이 아닙니다. 구련성을 지키던 건주 장수 아민이 휘하에 거느린 군사 1천 기와 함께 의주부로 건너와 투항했다 합니다!”
“무엇이? 아민이?”
아민(阿敏)은 슈르하치의 둘째 아들이다. 부친이 건주의 이인자인 데다 본인도 유능해서, 그 세대에서는 꽤 유력한 선두주자 중 하나였다. 차기 건주군왕 자리를 놓고 다이샨과 아바이와 삼파전을 벌였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아민이 왜 의주로 망명했다는 말이냐?”
“건주왕이 왕제 서이합제를 역모죄로 몰아 감금하고, 그 일족 전부를 처형하였다 합니다.”
이런 일이 언젠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별다른 전조가 없었던 참이라서 놀랍기는 하다. 요즘 조용히 지내나 했더니 결국 누르하치가 칼을 뽑았구나.
– 19 –
《삼가 북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아뢰옵니다.
건주왕은 최근 할하 부 달자들이 방비가 허술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4만 대군을 소집하여 원정을 감행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헌데 그 군사가 모이자마자 왕제인 우도독 서이합제가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고 선언하고 할하 토벌에 앞서 그 일족 전부를 추포하라 명하였습니다.
서이합제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들들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혁도아랍으로 왔다가 붙잡혀 곧바로 투옥되었습니다. 붙잡힌 아들들은 백부인 건주왕의 명으로 곧바로 모두 처형당했으며, 손자들 역시 처형되었다 합니다. 일족 여자들은 여러 왕족과 장수에게 분배되었다고 합니다.
일족 중에서 건주왕에게 잡히지 않은 자는 구련성주로 임명받아 구련성을 지키고 있던 둘째 아민 하나뿐으로, 부친이 투옥됐다는 급보를 받고 잠시 당황하다가 바로 강을 넘어 의주부에 의탁하였습니다. 신이 거느린 군사들이 바로 출동하여 무장은 해제하였습니다.
지금 아민은 무기를 버린 채 전하께 자비를 청하고 있습니다. 어찌 처결하면 좋을지, 부디 명을 내려 주시옵소서.》
“내 그놈이 했다는 짓거리를 듣고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게 진즉에 행동을 좀 조심할 것이지.”
슈르하치는 공이 무척 크다. 이여송을 버린 일처럼 형이 시켜서 했거나 일본에서 제철공과 조총 제작 기술자들을 주워온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우연히 세운 공이 많기는 하지만, 그것도 분명 공적은 공적이다.
무엇보다 전사 백 명? 하여간 먼지나 다름없이 미미하던 건주위를 지금처럼 키워낸 공적의 절반, 아무리 에누리한다고 해도 ⅓은 슈르하치의 몫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건주가 몇백 명도 동원하기 어렵던 시절, 늘 선두에서 적진에 뛰어들었던 용사가 누구였던가?
“그러니 건주왕도 왕제의 목숨만은 붙여둔 게 아니겠습니까.”
“서이합제 혼자 숨이 붙어 있으면 무엇을 하느냐? 자손이 모두 죽어 대가 끊기고 집안을 다시 일으킬 가망도 없는 것을. 그러니 진즉에 형왕(兄王) 앞에서 언행을 조심해야 했다.”
슈르하치는 자신감이 지나쳤다. 아니, 어쩌면 그만큼 형에 대한 신뢰가 굳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 정도 불평은 해도 될 줄 알았겠지.
“아무리 공이 큰 왕제라 해도, 면전에서 형왕의 권위를 떨어트리는 행동을 한 것은 잘못된 행동이었다. 안됐기는 하나, 우리가 개입할 일은 아니다.”
슈르하치는 우리와 어떤 연계도 없다. 따라서 구해줄 의리도 없다. 그 뻣뻣한 상남자 놈이 자기 형처럼 내 비위도 맞추고 나한테 좀 살랑거리면서 살갑게 굴었으면 나도 그놈과 관계를 좀 더 진전시킬 수 있었을 텐데.
“죄지은 신하를 벌함은 군주가 마땅히 할 일입니다. 그에 개입할 수 없다는 전하의 말씀도 지극히 옳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귀순해온 구련성주 아민을 처리하는 데 집중함이 옳겠습니다.”
이항복의 말이 옳다. 고개를 끄덕거린 뒤에 평북감사가 보낸 전령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계를 직접 가져온 전령은 의주부 소속 군관으로, 감사 휘하 측근이라고 했다.
“놈들의 태도는 어떤가?”
“매우 절박합니다. 제발 조선에 머무르게 해 달라며, 전하께서 받아만 주신다면 오도리처럼 열심히 전하를 위해 싸우겠노라고 몇 번이나 거듭해 맹세하고 있습니다.”
군관의 보고에 따르면 무장을 해제할 때도 반항하는 태도 없이 활과 화살, 칼과 창을 모두 순순히 내놓았다고 한다. 우리 군사들이 칼을 빼 위협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건주왕으로부터는 아무 요구가 없었는가?”
“신이 의주를 출발하기까지는 아직 건주왕의 군사가 구련성에 당도하지 않았었습니다. 지금 사정은 어찌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실시간 정보 전달이 아쉽다. 전보나 전화가 발명될 때까지는 어쩔 수 없겠지.
“건주왕은 필시 아민을 송환하라 청할 것이옵니다. 역적의 일당이 군사를 끌고 도망쳤으니, 당연히 추포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형조에서는 원론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대책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정인홍은 여진족이 천 명 정도 죽거나 말거나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과거 전조 시절, 평안도에서 난을 일으킨 조위총 일당이 금나라에 붙으려 하자 금나라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사자를 잡아 묶어 전조 조정에 송환한 전례가 있습니다. 건주는 금나라의 후손이니 그때 전례에 따라 아민과 그 수하들을 송환함이 옳지 않을까 합니다.”
예조판서 홍진은 간단히 일을 끝내자고 했다. 공연히 건주 내정에 개입해서 골치를 아프게 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평북감사에게 명하여 아민 일당을 송환하면 간단히 끝납니다. 저들은 이미 무장을 해제한 상태고, 무기를 일부 숨기고 있었다 해도 우리 군사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겁니다. 쉽게 제압하여 돌려보낼 수 있으니, 그리하소서.”
“목숨을 건지고자 날아든 한 마리 새를 어찌 독수리 앞에 내던진단 말입니까.”
뜻밖에 병조판서 홍여순이 반박하고 나섰다. 다소 감상적인 표현까지 써 가면서 말이다.
“전조 때, 금나라가 조위총을 받아주지 않은 것은 조위총이 금나라 군사를 청해다가 조정과 싸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민은 건주왕과 맞서려고 군사를 청하러 온 것이 아니고, 그저 귀순하여 목숨을 건지고자 할 뿐입니다. 어찌 이를 똑같이 취급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내가 조용히 듣고 있으니 다른 중신들도 홍여신의 말을 끊지 않았다.
“또한 아민은 그 부친을 닮아서 무재가 뛰어난 장수입니다. 나이도 이제 겨우 스물셋이니, 적절히 활용하면 우리나라에 많은 공을 세워 보탬이 되리라 봅니다.”
“기껏 항복을 받아주었더니 내부에서 난을 일으키는 맹달 같은 자가 될지도 모르지요.”
우의정 김후원이 삼국지를 예로 들었다. 아무리 내가 삼국지를 좋아한다지만, 툭하면 조정 논의에서 삼국지가 튀어나오는 상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맹달이 위와 촉 사이를 오가면서 박쥐 노릇을 한 건 역사적 사실이긴 하니 그나마 괜찮다만.
“신이 보기에, 아민을 받아들임은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 듯합니다. 장수 하나와 기병 1천 기를 얻는 것은 이득이겠으나, 건주왕이 원한을 품을 것이고 우리를 경계할 것입니다. 그 후과는 달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위 고조(高祖), 즉 조비가 받아들인 여러 항장 중에서 하필 배반한 맹달을 예로 든 데서도 의도를 알 만했지만, 우의정 김후원도 예조판서 편에 섰다. 옹주까지 시집보내면서 기껏 좋은 관계를 수립한 건주의 비위에 어긋나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면서 말이다.
“혹시 그 기병 1천 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마음만 먹으면 정예 철기 10만 기를 동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작 기병 1천 기를 탐내어 이웃과 맺은 화의를 무너뜨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슈르하치가 완전히 억울하다면 또 모른다. 하지만 슈르하치가 한껏 방자하게 굴면서 형왕이 가진 권위에 흠집을 내온 사실은 조선에도 익히 알려져 있다. 누르하치에게는 동생을 제거할 명분이 충분히 있는 셈이다.
조정의 중론은 굳이 받아줄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흘렀다. 나도 딱히 누르하치하고 아민을 놓고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슈르하치 본인이 와서 살려달라고 빈다면 을미동정 때 얼굴을 본 적도 있고 하니까 혹시 모르겠지만, 아민은 얼굴 한번 본 적이 없으니 그럴 정도 없다.
“전하, 신 영돈령부사 유성룡 아뢰오.”
“말해 보라.”
“목숨을 구해 달라 찾아온 이들을 바로 돌려보내 죽이는 것은 차마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반신(叛臣)으로 규정된 이들을 받아들인다면 건주왕이 항의할 것도 분명합니다. 당장에 군사를 몰아 쳐들어오지는 않겠으나, 필시 앙심을 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는 어찌하면 좋겠는가?”
내 질문을 받은 유성룡은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받아들이되 곧바로 내보내어 우리 땅에 머물지 않게 하소서. 저들을 원하는 땅에 보내시면 전하께서는 덕을 베푸시고, 아민은 목숨을 구하며, 건주왕은 반적을 쫓아버리게 되어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사옵니다.”
“저들은 우리나라에 귀부하고자 했는데 어디 원하는 땅이 따로 있어 그리 보낸단 말인가?”
“신이 아뢴 말은 저들‘이’ 원하는 땅이 아니라 저들‘을’ 원하는 땅에 보내자는 뜻이옵니다. 바다 건너 왜국으로 보낸다면 어떻겠습니까?”
“왜국으로?”
일본에 여진 기병을 보낸 전례가 없는 건 아니다. 다테 마사무네가 연해주에서 귀환했을 때 해서 기병 1천 기를 딸려서 보냈었다. 그 뒤에 전투에서 소모된 끝에 지금은 다테 휘하에 2백 기, 다른 영주들 휘하에 1백 기 정도 남았다고 들었다.
“왜국에는 제대로 된 기병이 없습니다. 정이대장군 가강은 요즘 기강을 다지며 휘하에 있는 영주들을 제압하기 시작하였으니, 정예 여진 기병 1천 기를 얻게 된다면 충분한 대가를 치를 게 분명합니다.”
“으음, 하긴 왜인들도 우리와 싸우면서 기병이 부족한 대가를 철저히 치르긴 하였지.”
더구나 여진기병은 확 뚫린 평야가 아니라 산과 숲이 우거진 요동 일대를 누비고 다니는 데 익숙하다. 전반적인 일본 지형도 요동과 딱히 다를 게 없다. 여진기병을 일본에다 풀면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는 이미 몇 차례나 결과로 입증했다.
“하지만 아민과 그 무리는 우리 노비가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중간에서 저들에게 왜국행을 주선할 수야 있겠으나, 어찌 우리가 그 대가를 받을 수 있다고 보는가?”
기왕 일본에 보낼 거라면 이에야스한테 넘기기보다 구주에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유성룡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 영역에 머무르게 하면, 훗날 우리가 아민을 앞세워서 건주 내정에 개입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품게 할 겁니다. 그러니 대국에 넘길 수도 없습니다. 대국에서 요동을 치는 명분으로 삼으려고 아민을 앞세울 수 있으니 말입니다.”
고로 아예 우리 손을 떠나게 하는 편이 가장 낫다는 게 유성룡의 결론이었다. 그래야 우리 군대가 적어도 아민을 앞세워서 건주를 공격하려 들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누르하치에게 줄 수 있으리라면서 말이다.
“덤으로 실제적인 이득을 얻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 과연 가강이 치르리라는 그 대가가 무엇인가?”
“사람입니다.”
“사람? 왜병? 그거야 구주에서도 구할 수 있지 않은가.”
지금은 필요가 없어서 안 모으지만, 통보만 하면 만 단위 병사쯤은 간단히 소집할 수 있다. 양응룡의 난 때 재미를 톡톡히 본 규슈 영주들은 내 연락을 받기만 하면 병사를 내놓을 거다.
“하지만 그 용병들은 건주에 보낼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건주에 보내 왜군팔기로 편성할 군사가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규슈에서 지원하는 용병들은 돈을 벌어서 고향에 돌아가는 게 목표다. 하지만 누르하치는 자기 밑에 말뚝을 박고 건주의 일원이 될 자들을 원한다. 게다가 규슈 병사들이 원하는 만큼, 즉 명군 수준으로 급료를 지급할 능력도 없다. 그것도 평생을? 불가능하다.
“근래 들어 왜국 본주(혼슈)에서는 가강의 명에 잘 따르지 않는 영주들을 개역하면서 본래 영지에서 쫓겨난 무사들, 가강의 권한에 맞서다가 사찰이 폐쇄되어 떠돌이가 된 승병들 등 별 돈 들이지 않고 고용할 수 있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런 자들을 받아올 수 있습니다.”
유성룡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노예를 팔고 그 대가를 받자는 게 아니다, 건주인들의 망명과 재정착을 도와주고, 그들을 새 신하로 받아들이는 이에야스에게 감사의 표시로 왜노를 받자는 거라고 말이다.
“그야말로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겠사옵니까? 여진 기병이 왜국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는다고 해도 우리한테는 아무 위협도 안 되고 말이옵니다.”
“그렇기는 하다.”
여진기병을 보고 배워서 일본이 기병 10만 기를 양성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우리 기병들이 정면에서 그대로 발라버릴 수 있다. 혹시 기병이 없으면 화포와 장창병대로도 충분하다. 그래, 유성룡의 제안을 듣는 편이 좋겠군.
“예조에서는 건주에 사자를 파견하여 우리 조정의 결정에 관해 알리도록 하라. 우리는 아민 일파를 왜국에 넘기고 대신 왜병을 받아 건주에 넘기는 데 활용하려고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정말 서이합제 일가가 몰살당했는지도 알아보아라.”
“예, 전하.”
“이조에서는 의주에 명하여 아민 일파의 무장을 해제한 채 도성으로 올려보내라 하라. 내가 술 한 잔을 베풀어준 뒤 바로 동래로 보낼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동안 이에야스한테 보낼 편지를 기초해야겠다. 거래 제안서를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