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66
2부 644화
– 20 –
소 잡는 천궁(天宮) 안이 아직 비어 있었다. 안을 들여다본 임꺽정이 혀를 찼다.
“오늘 들어갈 소를 아직도 안 잡았단 말이냐? 곧 군영에서 고기를 가지러 올 텐데.”
임꺽정의 집안은 본래 백정이다. 임꺽정이 전장에서 적을 휩쓰는 동안에도 나머지 가족들은 집안 대대로 이어온 소 잡는 일을 계속했다. 벼슬을 그만둔 임꺽정은 터가 넓은 마장동에다가 넓은 목장이 딸린 현방(懸房, 고깃간)을 짓고 일가를 이리로 옮겼다.
“거기 쇠망치 이리 내라. 내가 잡으마.”
임꺽정이 재촉하고서야 소 한 마리가 끌려왔다. 고기를 내줄 귀한 소다.
“자, 어서 소님을 보내드려야지.”??
부하가 소가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비끄러매자 임꺽정이 소 잡을 때 쓰는 철추(鐵鎚)를 높이 들었다. 잠시 후 철추가 미간을 후려치자 소가 그 자리에 푹하고 쓰러졌다. 역시 사람을 잡을 때보다는 이 일을 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신성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예로부터 흉년이면 금지되는 일 중 하나가 소 도살이다. 당장 양식이 조금 부족하다고 소를 잡아먹으면 다음 해 농사에 심각한 지장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에서 소고기 금제(禁制)가 엄격히 유지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소고기는 조선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고기였고, 제사를 지낼 때도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간소하게 제물을 줄이더라도 종묘나 성균관, 양반가에서 소고기 없이 제사를 지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 보니 도성에는 소를 잡아서 고기를 파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현방 ? 고기를 매달아 놓고 판다고 해서 ‘현방’이다 ? 만 30개나 있다. 돼지고기를 파는 돈방(豚房)은 훨씬 적어서 겨우 20개다. 아무래도 돼지고기는 선호가 낮은 탓이다.
더불어 군영 역시 중요한 소고기 수요처다. 도성 주변에 주둔하는 경군 5만 ? 당연히 도성 인근에 이 많은 숫자가 몽땅 모여 있는 건 아니다 ? 병력이 한 달에 소비하는 소고기 분량만 해도 100마리분은 족히 된다. 금군은 또 별개다.
“대감마님! 들어가는 소 마릿수는 분명히 오군영이 더 많은데 군사들 입에 들어가는 소고기 분량은 내금위가 네 배나 많으니, 정말 부럽습니다.”
소를 끌고 온 일꾼이 너스레를 떨었다. 일꾼이라고는 하지만 본래는 임꺽정 밑에서 꽤 오래 복무한 옛 도감군 출신 군사다. 지난번 전역식 때 임꺽정과 함께 제대했다.
임금은 임꺽정에게 그동안 전장에서 세운 공에 대한 포상으로 금은보화를 내리지는 않았다. 대신 금군에다 소고기를 납품하는 독점적인 권한을 주었다. 너무 많은 업자가 관계하고 있는 경군 전체 납품권은 곤란하지만, 금군에만 공급하는 정도라면 어렵지 않았다.
“오군영 군사들은 매달 소고기 반 근, 돼지고기 한 근, 생선 두 근이 나오는데 금군에는 딱 네 배가 아닙니까요. 부러울 만하지요.”
“그것도 고마운 줄 알아. 그게 부러우면 그놈들도 무예를 닦아 내금위에 들어가라지.”
고기반찬만 좀 더 나오는 게 아니다. 급료도 훨씬 높다. 애초에 금군은 말이 좋아서 군사지, 실제 품계는 정4품 정령에서 종7품 참위에 걸친 군관급이다. 오군영에 소속된 일반 군사들과 비교하면 대우가 좋을 수밖에 없다.
“아버님, 책은 안 쓰시고 또 천궁에 와 계십니까?”
넷째 아들이 부리나케 달려와서 한참 소가죽을 벗기고 있는 임꺽정을 잡아끌었다. 임꺽정이 투덜거리며 칼을 놓고 일어섰다.
“내가 안 오면 일이 안 되는데 어쩌란 말이냐.”
남은 생은 소 잡는 일에 전념할 생각으로 지은 저택이다. 조선 십삼도에서, 북방에서 오는 소들을 잡을 때까지 풀어놓기 위해 목장도 붙였다.
“아버님이 안 계시는 동안에도 큰형님이 잘만 하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안 오시면 광이 놈이 성내로 돌아가 버린단 말입니다.”
넷째는 투덜거리는 부친을 잡아끌면서 사랑채로 갔다. 일가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글을 아는 조카가 집에 있는 동안 부친의 저술을 끝내야 했다.
“자, 부르는 대로 어서 적어라. 소를 잡아 살을 바를 때는 먼저….”
“할아버지, 말씀이 너무 빠르십니다.”
“일단 적어라. 공부했다는 놈이 어찌 한 번에 완벽한 책을 쓸 생각을 하느냐? 일단은 적을 수 있는 대로 적은 다음에 나중에 손을 보는 게 확실하지 않으냐?”
임꺽정이 데리고 있는 수하 중에는 본래 백정이 아닌 자들도 있었다. 본래 백정 일은 어릴 때부터 가친에게 배워 몸에 익는 것인데, 그런 경험이 없는 자들이 도구를 잡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실수투성이였다. 이를 바로잡기에 진력이 난 임꺽정이 책을 쓰기로 작정한 것이다.
“평생 내 뒤를 따라오겠다는 거야 고맙다만 소뿔 한번 안 만져본 놈들이 소를 잡겠다니 원. 하여튼 책으로 정리하면 내 후손들이 배우는 데도 도움이 되겠지.”
임꺽정이 투덜거리는 동안 스무 살 난 손자 임대광은 겨우 받아적기를 마치고 조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임대광은 임꺽정의 둘째 아들이 낳은 장남으로, 임꺽정의 집안에서 유일하게 관청에서 문관 노릇을 하는 사람이었다. 비록 서리(書吏)이긴 하지만 말이다.
“적을 준비가 다 됐느냐? 그럼 이어서 써라. 사슴을 쏠 때는 배를 쏴서는 안 된다. 옆에서 어깨를 노리고 쏴라. 그래야 화살이나 탄환이 폐나 심장에 맞는다. 배를 쏘면 내장 속에 있던 더러운 것들이 흘러나와 고기에 묻는데, 그러면 고기에서 구린내가 나서 못 먹는다.”
“할아버님, 소를 잡아 각을 뜨는 이야기를 하다가 사슴 쏘는 이야기로 가시면 어떡합니까. 자꾸 이러시면 제가 제대로 정리할 수가 없습니다.”
“네가 나중에 모아서 정리하면 될 게 아니냐. 음, 그러고 보니 총으로 사슴을 쏴서 잡으면 가죽이 상하지. 가죽이 상하지 않으려면 그물로 잡아야 하느니라. 그물을 치려면 먼저 사슴이 다니는 길을 알아야 하는데….”
대광이 투덜거리며 조부의 구술을 받아적고 있는데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대감마님! 서 참장 영감께서 마차를 타고 오셔서는 대문 밖으로 나오라 하십니다!”
“마차를 타? 그새 어디 병신이라도 됐나? 그런데 그놈이 왜 날 보고 나오래?”
“나와 보시면 안다고 하십니다.”
“나보다 벼슬도 낮은 놈이 날 보고 오라가라 하다니, 말세로구나.”
임꺽정은 정2품 상장, 서림은 종2품 부장을 마지막으로 벼슬을 내려놓았다. 서림도 그동안 세운 공이 적지 않았지만, 자기 손으로 직접 쳐죽인 적이 워낙 많은 임꺽정의 공훈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임꺽정은 대감이지만 서림은 영감이다.
“음, 그놈과 돼지발을 뜯던 생각이 나는군. 돼지발을 잘 씻어서 간장과 설탕, 향료를 넣어서 만든 국물에 푹 졸이면 꽤 괜찮은 맛이 나지. 전하께서 어찌 그런 천한 요리를 즐기시는지는 통 모르겠지만 말이야. 마침 주방에 졸이라고 시켜둔 돼지발이 있으니 그거나 같이 뜯을까.”
어찌 존귀하신 임금님께서 돼지 정육(精肉)도 아니고 발 따위를 먹겠다고 생각하셨는지 통 모르겠다고 뇌까리며 임꺽정이 대문 밖으로 나갔다. 대광은 소 잡는 방법에서 사슴 사냥하는 법, 돼지발 요리법 등으로 중언부언하는 조부의 구술을 어찌 정리해야 하나 머리를 싸맸다.
“아이고, 전하! 이 추운 날씨에, 이 누추한 곳에 어인 발걸음이시옵니까!”
집안을 뒤흔드는 조부의 고함이 들렸다. 깜짝 놀란 임대광이 붓이고 뭐고 몽땅 다 팽개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었다.
– 21 –
임꺽정의 위명은 건주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20여 년 전에 북방을 휩쓸었던 위대한 전사의 이름으로 말이다. 남만갑을 입고 대검(大劍)을 든 임꺽정이 말을 몰아 질주하면 그 뒤에 남는 것은 바닥에 깔린 시체들뿐이었다.
망명객 신세가 된 아민은 자기가 태어났을 즈음부터 전설이 되었던 임꺽정을 직접 만나더니 감격을 금치 못했다.
“백정 장군 나리를 뵈었으니 조선에서 제가 더 이룰 건 하나도 없습니다. 감사히 머물다가 남쪽으로 떠나겠습니다.”
건주에서는 임꺽정을 백정 장군이라고 부르나 보군. 어째 센스가 다 비슷하냐.
사람 천 명과 말 천 필이라면 엄청난 대규모 일행이다. 이미 12월인데 이만한 인원을 바다 건너로 무사히 보내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마장동에 있는 양마장에 천막을 치고 겨울을 나게 하고, 봄이 오면 보내기로 했다. 임꺽정의 집 바로 옆이다.
마침 임꺽정 놈은 새집을 지었으면서 나를 모시고 집들이도 안 했다. 그래서 거하게 한 상 받아먹을 겸 서림을 앞세우고 찾아가서 대접을 받았다. 미행(微行)을 나간답시고 말도 아니고 마차를 타고 나가다니, 이젠 정말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는 수 없었다.
내 음식 취향을 잘 아는 임꺽정은 무종계와 부대탕, 족발, 내장탕 따위로 거하게 차린 상을 내왔다. 다른 재료는 전부 집에 있었지만, 내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오는 바람에 돼지고기를 준비할 틈이 없어서 삼겹살은 굽지 못했다고 했다.
반주로는 맥주와 호주가 덧붙었고, 서림까지 셋이서 신나게 술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이번 겨울이 지날 때까지 아민 일당을 데리고 있어 달라는 내 부탁을 임꺽정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물론 1천 기 전부 임꺽정의 집에 두는 건 당연히 아니다. 아민을 비롯하여 지휘관급 열 명 정도만 여기 두고, 나머지는 아까 말했듯 양마장에 천막을 치게 한다고 했다.
‘도성 인근에서 힘으로 위압하지 않고서도 그놈들을 얌전히 있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대 하나뿐이로다.’
‘염려 놓으시옵소서. 도성 백성들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는 놈이 있으면 모가지를 몽땅 뽑아버리겠사옵니다.’
동의도 받고, 실컷 먹고 마시고, 거나한 기분이 되어 궁궐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민 일당이 도성에 도착하자 바로 마장동에 보냈다. 그리고 자리가 조금 잡힐 때쯤 되어 위로주를 낸다는 핑계로 찾아온 참이다.
“백정 장군께서는 적 천 명을 쓰러트리는 위대한 전사이자 관대한 주인이시기도 합니다. 이 한 몸이 백정 장군 휘하에 머무르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플 뿐입니다.”
아민을 비롯한 건주 지휘부는 임꺽정을 둘러싸고 찬탄을 그치지 못했다. 그 광경을 웃으며 보고 있으려니 그때…오이라트 사절단이 임꺽정을 만나고 호들갑을 떨던 일이 생각났다. 이거 북방에서는 임꺽정이 나보다 더 유명하겠는데.
“나도 안타깝다. 하지만 그대들에게는 새 천지가 기다리고 있으니 새로운 포부를 크게 품기 바란다. 새 천지에서 새 주군을 받들어 모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아민에게 위로연을 베풀어준 건 마지막 자비이자 기쁜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내가 편지를 띄운 양자 중에서 이에야스에게서는 아직 답이 오지 않았지만, 누르하치에게서는 답이 왔다. 아민을 건주로 송환하지 않고 일본으로 보내도 상관없다는 전갈이었다.
『…죄인의 일족이라 해도 값없이 죽이기보다는 쓸모 있게 활용하는 편이 훨씬 낫겠지요. 제 조카와 조카가 거느린 기병들은 나름대로 정예입니다. 하나당 보병 스무 명 정도 가치는 있을 겁니다. 왜국 땅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이건 기병 천 명 값으로 왜병 2만 명은 받아야겠다는 청구서로군. 과연 이에야스가 적당한 가격이라고 생각해 줄는지 모르겠다. 일본에서 소멸한 거나 마찬가지인 기병 전통을 부활하게 해줄 와일드카드라고 생각하면 낼 것 같기도 하고.
“모두 전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 덕분입니다. 백부의 칼에서 목숨을 구해주시고 새로이 살 터전까지 구해주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민은 조선말을 못 한다. 통변을 통해 들으니 무척 정중한 언사로 들리지만, 과연 그럴까. 사실은 원망하는 투가 섞여 있는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대의 모친과 아우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으리라.”
“전하의 은덕에 감사드립니다.”
금위사 라인 ? 건주가 왕국이 되었으니 이제 익문사로 소속을 변경해야겠지 ? 으로 급송한 누르하치의 답장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죽은 슈르하치 쪽 사람은 슈르하치의 장남 아이통아(阿爾通阿), 삼남 자사크트(紮薩克圖) 두 사람뿐이었다. 체포에 저항하다가 죽은 것이다.
죄인을 ‘쓸모 있게 활용’한다는 누르하치의 말은 아민의 동생과 조카들에게도 모두 똑같이 적용됐다. 이들은 모든 권세를 잃고 각 기에 분산되었고, 공을 세워 지위를 회복하기 전에는 일개 병사로 지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관원들이 보낸 보고를 봐도 이 해명은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슈르하치 쪽 병사 몇십 명이 주인을 지키려고 싸우다 죽은 것도 있기는 했다. 아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겠지만.
“처음 전해진 소문이 헛소문이었으니 다행이다. 허나 그대가 돌아오면 모두 죽이겠다 하니, 아무래도 본래 예정대로 왜국으로 떠날 수밖에는 없겠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여기 머무는 동안 편히 지내다 가라. 내 술 한 잔 받고.”
조선과 건주가 일종의 형제지국(兄弟之國) 비슷한 사이가 되었으니 ? 당연히 내가 형이다! – 굳이 따지자면 아민도 내 조카인 셈이다. 아버지를 잃고 모험을 떠나는 조카에게 술 한 잔 못줄 건 또 뭐겠는가. 이놈이 그동안 조선에 뭐 해코지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 22 –
아민 일당 덕분에 이에야스가 기병을 갖게 되는 건 별로 두렵지 않다. 일단 여진기병은 그 수준이 우리가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정도인 데다, 이에야스가 기병을 그다지 대규모로 양성할 여건도 안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전국시대는 끝났다. 일본에서도 이제 슬슬 군비를 축소해야만 할 거다. 그런데 돈 잡아먹는 귀신인 기병을 양성해 봐야 얼마나 하겠는가? 고작해야 친위기병대 몇천일 거다.
“그나마도 우리 군사들과 맞붙을 일은 없을 겁니다. 저들이 건너오더라도 우리 수군이 몽땅 바다에 처넣을 테니 말이옵니다.”
“덕풍부원군의 말이 옳다.”
이순신이 말하듯이 해군력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 수군이 약해지거나 일본 수군이 강해져서 일본군의 상륙을 막을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하냐고? 글쎄, 그쯤 되면 일본군에 기병이 있건 없건 상황이 어려워지는 데 아무 영향이 없을 것 같은데.
“그보다 다른 문제가 있다. 이 중개역을 맡아 우리 손해가 너무 큰 것 같다, 쿨럭.”
기침이 난다. 마장동 임꺽정네 집에는 마차로 다녀왔는데도 기침이라니, 정말 내 몸이 많이 약해졌구나.
“1천 기나 되는 기병을 넉 달이나 먹여 살리고 일본에 보내준다. 그 반대급부로 오는 수천 명일지 수만 명일지 모르는 왜병들을 건주까지 보낸다. 그동안 필요한 체류비와 운송비 역시 우리 주머니를 털어야 한다. 우리한테는 너무 손해가 아니냐.”
처음에는 아민이 불쌍하기도 하고 덕을 베푼다는 데 으쓱해져서 선뜻 받아들였는데, 작업을 시작하고 보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우리도 흉년이라 힘든데 양쪽 두 나라를 돕는데 그런 막대한 지출을 해야 하다니.
“간단합니다. 우리 몫을 떼시지요.”
“가강이 보내는 왜병 일부를 우리가 갖자는 말인가?”
내 반문을 받은 좌의정 이원익은 고개를 저었다.
“가강이 보낸 왜병들이 도착하면 곧바로 건주에 보내지 말고 바다를 메우고 둑을 쌓는 일에 쓰소서. 저들이 밥값을 충분히 했다 싶을 만큼 부리다가 건주로 보내시면 우리로서도 중개한 대가는 받는 셈이고, 노역에 나설 우리 백성들의 수고도 덜 수 있사옵니다.”
“그것도 괜찮겠구나.”
아예 일부를 빼돌리면 누르하치가 의심할 수도 있겠지. 좋은 병사만 내가 빼돌렸다고. 전부 노역에 쓰다가 한꺼번에 보내면 그런 오해도 피할 수 있겠구나. 좋다, 그렇게 가자.
그러고 보니 이제 12월이다. 내년을 준비해야 한다. 과연 내년에는 비가 얼마나 올까? 봄이 되어도 비가 안 내린다면 환구단 공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을 텐데….
아직 돌아오지 않은 미주 귀환선도 걱정이다. 보급 마치고, 교대한 인원들을 태우고 10월 중에 귀환했어야 할 배들이 안 오고 있다. 혹시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