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68
2부 6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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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대 본부는 도성 한복판, 병조 내부에 있다. 나중에 주변의 이목이나 인권을 좀 더 신경 쓰게 되는 시대가 오면 북한산성이든 어디든 내보내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지금이야 대놓고 죄인을 고문하는 의금부나 금위사, 전옥서가 다 도성 한복판 종로에 있는 시대 아닌가.
아무리 요즘 시대가 범죄자의 인권을 신경 쓰지 않는다지만, 대역죄를 적용할지도 명확하지 않은데 불문곡직하고 초장부터 고문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심문의 첫 단계는 어디까지나 말로 하는 심문이다.
“항해일지는 어찌 되었더냐?”
“좌선에 있던 일지는 배와 함께 없어졌고, 불비를 비롯한 나머지 세 척에는 일지가 무사히 있습니다. 일지에 적힌 일정을 조사해 보니 항해에 소요한 일자 자체는 박두성이 자복한 바와 일치합니다. 물과 식량이 빠듯해졌다는 말도 사실이었습니다.”
태평양 횡단 항로에서 필리핀에 도착하기는 쉽다. 그냥 서쪽으로 쭉 오면 필리핀이다. 1차 귀환 때 선택한 귀로였던 유구 쪽으로 오려면 괌 ? 지금 조선에서는 스페인어 이름을 직역한 구도(寇島, 도둑섬)라고 부른다 ? 에서 북서쪽으로 틀어 직진해야 한다.
유구로 직행하면 암초가 많은 필리핀 연안을 피할 수 있고,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스페인 측과의 충돌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전체적인 이동 거리 자체도 더 짧아진다.
필리핀과 유구 모두 괌에서는 비슷한 거리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또 조선으로 올라오기보다 유구에서 조선으로 오는 거리가 압도적으로 가까운 건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두 경로 모두 전체적인 일정에는 큰 차이가 없사옵니다.”
“나도 알고 있다.”
유구 경유 경로가 가깝다는 건 거리만 따졌을 때 이야기다. 괌에서 필리핀으로 가는 항로는 북적도 해류를 탈 수 있지만, 유구로 가는 항로는 그 해류에서 벗어난다. 자연히 항해에 드는 날짜가 더 길어질 수밖에 없고, 전체 일정에서는 생각한 것보다는 이득이 적다.
게다가 해류를 못 타기 때문에 바람이 안 불면 꼼짝 못 하고, 방향을 잘못 잡기라도 하면 아예 엉뚱한 방향으로 가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까 충분한 물과 식량이 없는 상태라면 안전을 위해서 필리핀을 경유해서 돌아오는 것도 할 법한 선택이다.
문제는 그로 인해 빚어진 결과다. 배가 난파한 거야 재수가 없으면 터질 수 있는 일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 뒤에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비효율적인 수색을 하고 시간을 끌어야 했던 이유는?
“덕진성에서 공이안에 적재한 화물과 그 목록을 비롯한 모든 문서가 사라졌습니다. 귀환한 수졸들이 증언한 바를 보면 덕진성에 있는 군사들이 직접 모은 것과 토인들에게 사들인 것을 합쳐서 수량 미상의 사금과 모피가 실려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파선한 공이안에서 건진 건 승무원 일부밖에 없었다. 1차 귀환 때 가져온 분량을 감안하면 적어도 수천 근은 될 금과 수천 장은 될 모피가 사라졌다. 불비가 싣고 온 양만 해도 금 1천 근에 모피가 2천 매라 했으니, 공이안에 실려 있던 양은 그 이상일 터이다.
“길게 끌 것 없다. 이런 사고는 국내에서도 종종 발생한 전례가 있지 않으냐? 조운선을 몰 때 일부러 배를 바다에 처넣고 곡식을 횡령하는 자들이 숱하게 있지 않았냐 말이다.”
세곡을 운반하는 조운선에는 관선과 사선이 있다. 평년작을 기준으로 잡은 전체 수송량에서 대략 6할 정도는 관선이 맡아 나르고, 나머지 4할은 사선이 맡는다.
전량을 관선에 맡기지 않는 건 관리비용 절감 차원이다. 흉년에는 세곡 운송도 줄어드는데, 배를 건조하고 유지하는 비용을 굳이 감수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노는 배는 적을수록 좋다.
사고를 조작해서 실려 있는 곡식을 횡령하고 배 건조비용까지 보상하라고 요구하는 건 주로 사선 선주들이 벌이는 짓이다. 물론 관선 선원들도 곡식을 빼돌리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배를 가라앉혀버리는 일을 생각보다는 자주 벌인다.
이런 짓을 시도하다가 적발되면 당연히 범인이 뱃값을 몽땅 변상해야 함은 물론이고 일가는 전가사변 행이다. 그래도 잊을 만하면 한 건씩 적발되는 걸 보면, 들키지 않고 넘어가는 ? 즉 진짜 사고로 위장하는 데 성공한 ? 놈들이 꽤 있다는 소리겠지.
“철저히 문초하여 진상을 밝혀내라. 박두성 그놈 이외에, 필요하다면 수졸이나 선원 중에서 의심이 가는 자들을 골라 군기대로 압송한 후 심문해도 좋다. 서로 말을 맞추지 못하도록 다 다른 옥에 넣고, 순순히 자백하면 벌을 감함은 물론 은상이 있으리라고 암시도 주어라.”
철저히 문초하라고 해서 압슬을 가하거나 주리를 틀라는 지시는 아니다. 혐의가 확인되기도 전에 인간을 병신으로 만들어놓을 수는 없지 않나. 그저 사실대로 자백할 때까지 규정에 따라 심문하라는 뜻이다. 추후 수복 가능한 수단으로.
주리를 틀거나 압슬을 가하고 인두로 지지는 등, 완전히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어놓는 유의 고문은 법전에도 없을뿐더러, 혹시 시행하더라도 오직 의금부에서만 할 수 있다. 이런 고문은 금위사에서도 하지 않는다.
“예, 전하.”
병조판서 홍여순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현직 무관이 걸린 일이니만큼 형조에 넘기지 않고 병조 휘하에 있는 군기대에서 수사를 계속하게 했다. 자, 이제 밀린 연말 업무를 처리하면서 수사 결과를 기다려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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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들을 다 처리하는 동안에도 다른 업무는 계속 진행했다. 미주에서 벌이는 식민사업에 관한 정리도 그 하나였다.
“연역주, 빙주, 알루토, 귀궤탁 등 북쪽 지방 토인들은 매일 정계비에 절을 올리며 전하께서 세상에 계심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신들이 가져간 포목과 일용품 등 하사품을 나눠주자 매우 감읍하며 모아둔 모피와 상아를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전하께 이름을 받은 대미주 다섯 부족 역시 같았습니다. 전하께서 추장들을 통해 하사하신 많은 물품을 받고 그 은혜에 감읍하여 눈물을 흘리며,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한 충성을 거두지 않겠다고 약조하였습니다.”
박두성이 군기대에 갇힌 상태니만큼 이 보고는 차차선임 지휘관인 연락선 두 척의 선장들이 와서 했다. 이들은 두 사람 모두 종4품 부령으로, 수군에서 뼈가 굵은 성실한 무관들이다.
“토인 아낙네를 처로 맞은 자들은 화목하게 지내고 있던가?”
“예, 전하. 그런 이들 대부분은 교대병이 도착했는데도 귀국하기를 거부하고 미주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며 바다 건너에 남았습니다. 토인들도 자기 여자들과 결혼한 우리 군사들을 같은 일족으로 받아들여 대우하고 있습니다.”
아주 바람직한 결과다. 인디언들이 진짜 조선 백성으로 귀순하려면, 저들이 충성을 바치고 내가 은혜를 베푸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전면적인 혼혈이 꼭 필요하진 않다. 하지만 원하는 자들이 혼인했을 때 차별을 받지 않는 분위기는 필요하다. 순수 조선인들이 혼혈인들을 구박하고 차별할 거야 불을 보듯 빤한 일이지만, 적어도 인디언들 쪽에서는 걔들을 받아줘야 하니까.
“귀로에 그런 불상사만 터지지 않았으면 아주 완벽한 귀환이었을 뻔했다. 그대들은 훌륭히 임무를 완수하였으니 합당한 포상을 내리겠다. 당분간 푹 쉬며 조정에서 다시 불러 일을 맡길 때를 기다리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우리끼리 사고가 터졌을 뿐이지 미주에서는 모든 상황이 순조롭다. 원주민들과는 물론이고 멕시코에 있는 스페인 당국과도 원활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스페인 총독부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우리 식민지를 인정했고, 우호관계 유지를 약속했다.
외부적인 일은 이 정도면 됐다. 헌데 내부적인 보완사항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호조판서에게 묻노라. 그대도 들어 알겠지만, 대유주에서는 배가 출항하기 전에 전주(錢主)에게 보증금을 내면 사고가 났을 때 그 선가와 화물의 가치에 맞춰서 보상금을 지급함으로써 손해를 보충하게 하는 보험제도가 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도 그 제도를 시행하면 어떤가?”
지금까지 발생한 여러 해난사고는 대개 선주와 투자자가 투자한 자본 전액을 날리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보험제도가 제대로 운영된다면 항해에 나설 때 지는 부담이 훨씬 줄어들 것은 분명하다. 어떤 제도든, 필요를 느낀 뒤에라야 쉽게 도입되는 법이다.
작년 여름에 출발한 미주행 1차 이민선단은 여러 곳에서 자금을 모으기는 했다. 하지만 그 항해는 합자회사에 가깝지, 보험에 가입한 건 아니다.
“송방과 협조하여 제도를 고안해 보겠습니다.”
“그러도록 하라. 강상 쪽도 교섭해 봄이 좋을 것이다.”
송방에서는 앨런비랑 협력하는 잉글랜드계 자본이, 강상에서는 네덜란드계 자본이 보험업에 종사하게 되겠지. 어느 한쪽이 독점하는 것보다는 양쪽이 경쟁하는 편이 낫다. 그 틈바구니를 파고들어 성장한 토종 자본이 성장할 수도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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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수사 같은 거 가지고 일일이 손대지 않은 지도 꽤 오래됐다. 옛날 무종 때는 살인범을 잡는 일에 내가 직접 나서서 동분서주하기도 했는데 말이지. 그때 상희한테 도움도 받았었고. 아, 상희가 남자인 줄 알았던 40여 년 전 그 옛날.
종종 생각한 거지만, 상희가 남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상희가 남자였으면 지금처럼 서로 아끼는 관계 같은 건 절대로 안 생겼을 테니까.
물론 남자끼리라고 해도 서로 우정을 나눌 수는 있다. 원래부터 알던 사이라면 그러기가 더 쉽겠지만, 처음 보는 사이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위험한 건, 시간이 흐르면서 역할이 고정된 어느 한쪽이 이런 생각을 품게 되는 거다.
‘똑같은 현대인인데 왜 저놈은 몇 번을 살면서 계속 왕이고 나는 신하야?’
한쪽이 이런 불만을 품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끝이다. 나라고 해도 그런 불만을 가질 거고, 그렇게 관계가 깨지고 난 뒤 각성할 때마다 왕이 된 내가 첫 번째로 수행할 과제는 ‘그 새끼’를 찾아서 죽이는 일이 될 거다. 상희가 여자라 그러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그래, 결과가 어이 나왔는고?”
“역시 금을 빼돌리려고 한 수작이었사옵니다.”
배가 파선한 것 자체는 사고가 맞았다. 하지만 그 뒷일은 모조리 박두성이 수작을 부렸음이 수사 결과 확인되었다.
보고에 따르면, 박두성은 좌선 공이안이 풍랑에 휘말려 파선하고 마침 뱃전에 서 있던 수사 윤형욱이 바다에 빠져 실종되자 좌선에 실려 있던 금과 모피를 빼돌릴 계획을 세웠다. 무사히 귀환한 뒤에 받을 합법적인 포상보다 그게 훨씬 두둑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많은 금을 챙기려면 먼저 입을 줄여야 한다. 윤형욱이 실종되면서 가장(假將)을 맡게 된 박두성은 소선 두 척은 주변 섬을 수색하러 보내고, 자기 부하들만 써서 난파한 좌선에서 금과 모피를 꺼냈다. 그리고 좌선에서 구출한 이들도 회유했다.
박두성의 계획에 동참을 거부하는 생존자들은 곧바로 다시 바다에 처넣었다. 말을 맞추기가 어려운 미주 귀환 교대병들은 설득을 시도하지도 않고 바다에 던져버렸다. 자기 배에 있었던 귀환병들은 수색에 인력이 많이 필요할 거라는 이유로 몽땅 소선에 태워 보내서 떼어놓았다.
좌선 소속 감관도 일단 구조되었다가 총에 맞은 뒤 바다에 던져졌다. 박두성의 배에 있던 감관과 기록관에게는 자기 다음으로 크게 몫을 챙겨주겠다면서 회유하는 한편으로 위협했다. 금에 혹한 기록관은 이 일을 일지에 적지 않았고, 감관도 입을 다물기로 동의했다.
근처 섬으로 흘러간 생존자를 찾으러 갔던 소선들이 돌아온 건 이들이 말을 맞추고 건져낸 재물을 선창 깊숙이 은닉한 다음에 배까지 불태운 뒤였다. 이후 귀항할 때까지 박두성은 자기 부하들이 절대로 다른 두 배에 탄 장졸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면서 기밀을 지켰다.
“박두성은 끝까지 사실을 부인하였으나, 기록관 이원정이 먼저 사실을 실토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선인이 자복하였고, 배 바닥에 실은 저중물 사이에서 금 보따리까지 찾아내자 더 버티지 못하고 비로소 박두성도 자복하였습니다.”
저중물(底重物)은 중심을 잡기 위해 싣는 밸러스트(ballast), 바닥짐을 말한다. 여기서 미주 쪽으로 건너갈 때는 철괴를 채워서 가고, 귀로에는 돌을 채워서 온다. 금자루를 은닉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장소인 셈이다.
“이가가 자복할 때까지 얼마나 형문을 가했는가?”
“법도에 따라 허벅지를 서른아홉 대 때린 연후에야 실토하였습니다.”
‘수복이 가능한’ 심문 방법이라면 솔직히 매질 외에도 여러 가지 많다. 하지만 군기대에서는 좀스럽게 손톱 따위 째지 않는다. 그냥 자백할 때까지 팰 뿐이다. 사실 법전에서 허용한 고문 방법은 허벅지를 매로 때리는 것 하나밖에 없다. 나머지는 다 불법 고문이다.
금위사의 전매특허였던 손발톱 쪼개기도, 그 뒤에 도입한 거꾸로 매달기나 물고문도 절대로 합법이 아니다. 금위사에서는 신체에 직접적인 상해를 가하지 않는 수많은 심문법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어느 방법도 법전에는 실려 있지 않다.
한 가지만 예로 들면 잠 안 재우기가 있다. 금위사에서는 죄인을 밤새 심문할 때가 있는데, 이때 존다고 해서 때리거나 소리를 지르는 저급한 수단은 쓰지 않는다. 죄인의 손목과 발목을 묶어서 사람 키만큼 큰 장독 안에다 세워놓고, 턱에 닿을 만큼 물을 채워놓을 뿐이다.
“아바마마, 저들에게 어떤 벌을 내리시겠사옵니까?”
박두성 일당에 대한 심문이 진행되는 동안 해가 바뀌었다. 올해부터는 세자도 종종 편전에 나와 회의에 참석하고 가끔 내가 묻거든 의견도 말하게 하고 있다. 그때 꾼 꿈에서처럼, 만에 하나 내가 유언을 남길 틈도 없이 급사하더라도 문제없이 국정이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다.
“너는 어떤 벌이 적당해 보이느냐?”
이미 생각한 바가 있었던 듯, 성이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박두성은 재물에 눈이 어두워 숱한 장졸을 죽였습니다. 마땅히 그 죄는 죽음으로 갚아야 할 것이고, 재산은 모조리 몰수하여 그놈에게 살해당한 군사들의 가족에게 보상하는 재원으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놈 하나만 죽일 수는 없다.”
이 정도 사건에서 겨우 한 놈 처형하고 끝낼 수 있나. 최소한 열두 명은 죽어야지. 보고를 받고 보니 누구를 죽여야 할지 명단이 눈앞에 쫙 펼쳐진다.
“이는 일벌백계로 처리하여 추후 다시는 이런 짓을 벌일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해야만 한다. 박두성과 놈에게 협력한 감관 이춘성은 경인년에 수길에게 했듯이 소금물이 든 물병을 물리고 십자가에 매달아 말려 죽여라! 동료 선인들을 죽이는데 앞장선 놈의 수하 10명은 오마분시에 처하라. 맨 먼저 자복한 기록관 이원정은 특별히 참수형에 처한다.”
감관이라는 놈이 도둑놈 편에 붙었으니 한층 더 가혹한 벌을 받아 마땅하다. 빨리 자백하지 않았으면 기록관 녀석도 세 번째 십자가를 세워서 매달았을 거다. 아, 다행히 매달릴 두 놈은 천주교 신자는 아니다.
“아바마마, 너무 관대하신 듯하옵니다. 열두 놈 모두 매달아버리심이 합당해 보입니다. 비록 상관이 교사했다 하나, 앞장서서 동료 군사를 살해했으니 어찌 그 죄를 가볍다 하겠습니까? 가담한 정도가 약한 자들은 이미 추리고 추려낸 뒤에 죄가 중한 자 열을 남긴 것이니, 마땅히 박가와 같은 중죄로 벌함이 옳습니다.”
“음, 세자가 한 말이 옳다. 열두 죄인 모두 십자가에 매달고, 기록관 이원정만 참수하도록 하라.”
혹시 후대에 이게 순교자 12명 어쩌고로 와전되는 건 아닐 테지. 그놈들 중에 천주고 신자 하나라도 섞여 있으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미리 확인시켜야겠다.
“혹시 그중에 천주교도가 섞였다면 십자가에는 매달지 말고 가로대 끝에 거꾸로 매달아라. 그리하면 나중에 혼동을 줄 일은 없을 것이다.”
“예, 전하. 하온대 종범(從犯)으로 가담한 나머지 수졸들은 어찌 처분하시겠습니까?”
“금이 좋다니, 모두 북변으로 보내 흑룡강 일대 관영 채금장에서 금을 캐게 한다. 죄인들만 보낼 게 아니라, 그 가족들도 모두 전가사변에 처해 금꾼 노릇을 하게 한다. 박두성과 이춘성 두 놈은 특별히 그 삼족을 모두 전가사변에 처하라!”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짓을 꿈꾸지 못하게 할 모범이 된다. 임금에게 돌아올 금을 훔치면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화가 미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젠장, 겨우 미주행 두 번 만에 이런 되지도 않는 사건이 터질 줄이야. 앞으로는 감관도 각 배에 두 명씩은 태워서 상호 감시가 이루어지게 해야겠다. 기록관도 더 조심해서 자질을 살펴 고르도록 하고. 아예 금위사 요원을 따로 태워 보낼까?
“허면, 박가가 꾸민 악행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그에 가담하지 않은 나머지 두 배에 승선한 인원들에 대한 처우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무고한 데도 한 달 동안이나 집에 돌아가지 못했으니, 그에 대한 보상도 필요하리라. 먼저 억울하게 갇혀 있었던 데 대해 내 이름으로 유감을 표하고, 갑진년(1604)에 귀환한 첫 선단에 속한 선인들에게 주었던 보상에 5할을 가증하여 내주어라. 다만 개선식은 없다.”
제대로 일한 놈들에게는 제대로 보상을 줘야지. 그래야 다음 항해에 나갈 놈들도 자칫하면 집안을 통째로 날려버릴 도둑질 대신 성실하게 임무를 마치는 데만 열중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