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69
2부 6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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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말이면 예성강도, 한강도 녹기 시작한다. 하지만 배를 몰아서 들어가기에는 아직 때가 일렀다. 남아있는 얼음도 있을뿐더러, 겨울 갈수기에 한껏 줄어든 물이 아직 차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정준석은 새해를 맞아서 관찰사 홍윤범 대신 주상께 신년 인사를 드리러 온 참이다. 대남도 배는 외국선이 아니므로 한강 수로를 이용할 자격은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아직 물이 없어 강을 타고 움직이기 어려우니 제물포에 배를 대고 육로로 서울로 간다.
“교역항을 아예 벽란도에서 제물포로 옮기는 게 낫지 않은가? 그럼 겨울에도 막히지 않고 배가 드나들 수 있지 않은가.”
“어차피 겨울에는 바다가 거칠어지니 왕래하는 교역선도 없는 데다, 송방에서 항구를 별로 옮기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허허, 장래를 생각해야지. 장차 배는 더 커질 테고 겨울에도 배가 오가게 될 것인데. 내가 송방이라면 앞장서서 제물포에 항구를 만들고 내 소유라고 못을 박겠네.”
이번에 타고 온 배는 외수사 상선이다. 설명을 듣고 혀를 차던 정준석이 부장 최일규 쪽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정준석 대신 회회국 원정에도 출정한 심복이다.
“서양 달력으로는 지금이 3월 초라고?”
“그러합니다. 두 달 정도 차이가 납니다.”
“해가 뜨고 달이 뜨는 이치는 세상천지가 똑같은 법인데 어찌 그리 차이가 나는가 싶구먼. 뭐, 날과 달을 부르는 이름이 만고불변이었던 건 아니다만.”
중국에서도 옛날에는 지금 설날이 아니라 다른 날을 새해 첫날로 했었다는 정도는 정준석도 알고 있다. 역법(曆法)이란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달라지곤 하니 달에 붙는 이름이 바뀌는 정도는 당연할 수도 있겠다.
“오, 저거 보게. 겨울에도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배가 저기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세태를 앞서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니, 쯧.”
정준석이 손가락질을 하자 최일규가 감탄사를 발했다.
“소관이 듣기로 바깥 바다로는 잘 나오지 않는다던데, 정말 드문 일입니다.”
교동도에 본진을 둔 경기수영에는 귀선 여섯 척이 있다. 4척은 평범하게 돛과 노를 사용해 이동하지만, 2척은 기관의 힘으로 측면에 장착한 수차를 돌려서 전방으로 움직인다고 들었다. 그중 1척이 지금 강화도 남쪽까지 내려와 순항하고 있었다.
“저 배는 기관을 돌려서 1시진에 30리를 움직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바람을 탄 판옥선은 그 세 배 빠르기로 움직일 수 있으니, 비싼 석탄을 태워 움직이는 기관이라는 게 듣던 것처럼 대단한 건 아닌 모양입니다.”
“속도만 가지고 볼 게 아닐세. 기선은 좀 느린 대신 바람이 없어도 되고 격군이 지칠 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네. 연료야 탈 수 있는 물건으로 아무거나 태우면 될 게 아닌가.”
정준석은 대중성 앞 항구를 지키는데 저런 게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튼튼하기야 육지 위에 제대로 쌓은 포대가 훨씬 튼튼하겠지만, 포대는 움직일 수가 없다. 설치한 화포 사거리 밖에서 움직이는 적을 상대하려면 저렇게 떠다니는 ‘부유포대(浮遊砲臺)’ 쪽이 더 유용했다.
“나리, 망가져도 돌과 흙을 쌓아서 쉽게 수리할 수 있는 포대 쪽이 한번 가라앉으면 끝장인 귀선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말했잖나.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저런 괴물을 불태워 가라앉힐 수 있는 적이 우리 대중성에 쳐들어오기는 하겠는가?”
정준석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는 수도대장 직위에다 대중성어사(大中城御史)를 겸하고 있다. 대남도 토인들의 나라인 다두 왕국을 쳐서 무너뜨리고 세운 대중성은 호적에 오른 백성 수만 5만 명에 달하며, 이중 조선인이 1만이고 토인이 4만이다.
다두 왕국 정벌은 12년 전인 정유년 가을부터 4년간 계속되었다. 당시 관찰사였던 권준에게 받아온 코끼리 5마리와 조선인 토병 5백 명, 처가인 아타얄에서 지원받은 토인병 2천을 끌고 벌인 원정은 대성공이었다.
조선인들이 북쪽에 사는 다른 부족들을 공격해서 땅을 빼앗고 있음은 이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은 조선 배들이 어쩌다 나타나도 다두 왕국 앞바다를 통과하기만 했기에 이들은 조선인들이 자기 땅을 빼앗으러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도 토인들은 조선 배가 평소처럼 그저 지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플류트 두 척이 포를 쏘기 시작하자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다. 집과 창고가 불타오르고 바닷가에 대놓은 배가 포에 맞아 부서지자 토인들은 혼비백산해서 내륙 방향으로 도망쳤다.
정준석은 유유히 해변에 상륙해서 거점을 구축하고 원정을 시작했다. 왕궁을 불태우고 다두 왕국을 무너뜨리는 데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토인들도 직접 개간한 땅과 집을 순순히 포기하려 들지는 않았다. 유격전을 벌이는 토인들을 상대로 한 싸움은 3년을 끌었고, 끝내 토인들을 본래 살던 땅에서 계속 살게 해주는 대신 세금만 걷는 쪽으로 타협을 하고 전쟁을 끝냈다.
“그때 군사가 3천 명만 더 있었으면 강화 따위 맺을 필요 없었는데.”
“역대 관찰사들께서 계속 나리를 견제하셨으니 할 수 없지요.”
권준도, 그 후임자인 이운룡도, 현임인 홍윤범도 정준석을 크게 싫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준석이 세력을 키워 독립적인 군벌을 형성할 가능성은 극렬하게 경계했다. 군사도, 무기도 절대로 요청하는 만큼 내주지 않았다.
부친에 이어 아들까지 도성에 보내 놓았건만 그 제약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는 임금을 직접 알현하고 지원을 요청할 요량으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다. 그런데 그 계획은 배를 제물포에 대고 해안에 내려선 순간부터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미주에서 귀환한 보급선단에서, 배에 싣고 온 재물을 훔치려고 감관을 살해하고 기록관을 매수한 선장과 감관, 선인들이 처형됐다고?”
제물포에 주재하는 인천도호부 관헌에게 소식을 들은 정준석이 당황했다. 이 일은 조정에서 마음만 먹으면 자신에게도 책임을 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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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에 들어온 정준석은 용상 앞에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죄를 청했다.
“그런 큰 죄인을 미리 잡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올려보냈으니 전하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부디 신을 크게 벌하여 주소서!”
박두성의 지휘하에 귀환한 미주 보급선단은 귀항하는 길에 대중성에 들러 식수를 보급했다. 정준석은 박두성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고, 물을 떠 가도 좋다고 허가만 해주었다.
평소 남만행 항로를 지나는 배들은 대개 대중성이 아니라 관찰사가 주재하는 진남성에 들러 신선한 채소나 물 등 물자를 보충하는 게 상례였다. 하지만 정준석은 이 배들이 대중성에 온 이유를 딱히 의심하지는 않았다. 물이 일찍 떨어졌을 수도 있겠거니 했을 뿐이다.
“되었다. 놈이 죄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대남에서 수졸들을 상륙도 안 시켰는데 어찌 너희가 그 죄를 알고 놈을 포박할 수 있었겠느냐?”
뜻밖에 주상께서는 정준석을 크게 나무라지 않으셨다. 참으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증손자지만 증손자 같지 않은 저 녀석이 벌써 나이가 마흔다섯이란 말이지.
내 앞에 엎드린 정준석을 보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그동안 내 후손임을 알면서도 특별한 배려는커녕 알아서 살라고 내버려 둔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다소 미안한 생각은 든다.
본래 각 도 관찰사를 비롯한 지방관들이 도성에 직접 오거나 대리인을 보내서 새해 인사를 올리는 법도는 없다. 각자 자기 임지에서 도성 방향으로 절을 하며 예를 올리는 게 전부다. 이를 위해 동헌 안 객사에 임금의 위패를 비치해 놓는다.
다만 이 법도는 13도 5주 중에서 본국에 속한 13도에만 적용된다. 외지(外地)인 5주에서는 통치를 맡은 관찰사들이 매년 연초에 대관(代官)을 보내서 나한테 새해 인사를 올리도록 했다. 이유? 그거야 당연히 자기들이 누구 신하인지 잊지 않게 하는 한 가지 안전장치다.
도성에서 떨어진 거리가 있다 보니, 각 주 관찰사들은 아무래도 멋대로 굴기 쉽다. 더구나 외지 5주에서는 조정에 세금도 보내지 않는다. 물론 현재까지는 각 주 재정이 사회기반시설 구축비, 군사비, 산업투자비 등으로 대개 마이너스라 그런 것도 있지만 말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시행한 제도가 이 신년 하례다. 물론 관찰사들이 도성에 인사하러 온다고 몇 달씩 자리를 비울 수는 없으니 대관을 보내는 거지만, 그 뜻은 명확하다. 관찰사들에게 자기 처지를 잊지 말라고 경고하는 의미다.
‘우리가 대국에 매년 절기에 맞춰 사신을 파견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맞다. 똑같은 일이다.’
외지에 있는 관찰사들이 공물까지 약간 마련해서 보내는 이 하례는 우리끼리 벌이는 일종의 외왕내제 놀이라고 해도 되겠지. 장차 조선이 대놓고 명나라 제후국 신세를 벗어나게 되면 말 그대로 외부에서 찾아오는 신하를 우리가 거느릴 수도 있겠고.
“스스로 잘못한 바를 알겠거든, 추후 대중에 기항하는 배가 있을 시에는 그게 어떤 배이건 혹시 선상에서 불상사가 발생한 바가 없는지 탐문을 철저히 하라. 그 문제는 되었으니 이제 재론하지 않아도 좋다. 그래, 이번에 대남도에서 가져온 공물은 무엇이냐?”
“이번에 수확한 가배 첫물과 차와 장뇌와 설탕을 가져왔습니다.”
이기빈이 커피 종자와 묘목을 가져온 게 갑진년(1604) 12월이었으니 딱 3년을 채운 셈이다. 가져온 묘목 중에는 이미 여러 달 키운 것들도 있었으니, 4년생 나무에서 열린 거다.
“가배 농사를 맡은 회노(回奴)들이 말하기를, 제대로 가배를 거두려면 나무를 5년은 키워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단 그 열매가 맺히기는 하였기에 전하께 선보이고자 그중 실한 것을 골라 가져왔습니다.”
“장하도다. 하지만 일단 종자를 많이 심어서 나무 숫자를 늘리는 게 중요하니, 가배 진상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관찰사에게 그리 전해라.”
“예, 전하.”
공손히 대답하는 정준석을 보니 대남도 이주 초기에 무척 거칠고 반항적이던 녀석의 태도가 떠오른다. 변방으로만 떠돌던 부친 때문에 불만이 많았지. 그래서 이놈이 정일한을 부추겨서 반란이라도 일으키지 않나 싶어 부쩍 불안했었다.
대남도 개척사업에 종사하면서 녀석의 공격성도 가라앉은 모양이다. 아니면 나이 탓일지도? 나이를 먹고, 자식을 키우다 보면 아무래도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할 생각이 들기 쉬우니까.
“그래, 도성에는 얼마나 머물다 갈 생각인가?”
“열흘 정도 있다가 가려고 하옵니다. 무과를 준비하는 아들 녀석도 잠시 돌보아야 하기에.”
아타얄 추장의 피를 받은 정준석의 장남, 따지자면 나한테 고손자 뻘인 녀석이 지금 조부의 집에서 지내면서 무과 응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놀랍다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았다.
“아들이 몇 살인가?”
“을미년(1595) 생입니다.”
그럼 올해 열네 살이잖아. 무과를 준비하기에는 좀 빠른 게 아닌가 싶지만,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열다섯 살에 무과에 급제한 이괄 같은 사례도 있으니까. 강제로 부르는 병역 연령은 16세지만, 본인이 지원하는 과거 응시 연령에는 하한선이 없다. 능력 있으면 시험 치는 거다.
말이 나온 김에 살피면, 이괄은 미주에서 사고를 치고 돌아온 뒤에 평안북병영으로 보냈다. 만약에 북방 3주 쪽으로 보냈다가 또 토인들하고 싸움이라도 벌이면 곤란하니까 말이다. 우리 감목관들이 벌인 갑질이 무자년 난리를 촉발한 일을 내가 어찌 잊겠는가.
이괄 같은 놈들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2선에 둬야지 절대로 1선에 두면 안 된다. 이런 놈들은 딱히 그럴 의도 없이도 곤란한 상황을 자기 손으로 초래해버릴 수가 있다. 세자에게도 그런 점은 단단히 주의를 시키고 있다.
“그대의 부친은 나이도 많건만 여전히 나라를 위해서 대남도 통치에 관해 많은 제언을 하고 있노라. 그대도 만사를 게을리 말고 부친의 뒤를 이어 사직을 받들 수 있도록 하라.”
“예, 전하.”
중추원에 있는 정일한은 임꺽정과 동갑, 즉 올해 예순아홉이다. 내년이면 기로소에 들어가 평안히 휴식할 자격이 생기지만, 본인이 그 길을 선택할지는 모르겠다.
이들 정씨 일가는 어디까지나 자기들이 정호찬의 후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부디 앞으로도 ‘가문의 전통’에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나저나 이에야스 이놈은 편지를 받았으면서 왜 답장을 안 해? 답장이 와야 아민 일당을 보내지. 받아들이겠다는 편지도 안 받고 아민을 보낼 수도 없고, 아민이 옆에서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홍타이지를 사위로 들일 수도 없지 않은가.
여진기병 천 기를 보내준다고 하면 이에야스가 버선발로 뛰어오리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답장이 늦는 건 너무하지 싶다. 이 자식, 정말 받아갈 생각은 있나? 2월까지 답이 안 오면 다테한테 팔아버릴 테다. 다테 같으면 현찰로 두둑하게 값을 낼 테니.
– 30 –
이에야스가 몇 년 전부터 기거하는 슨푸 성에도 봄이 찾아오고 있다. 이에야스는 측근 신하 몇 사람을 앞에 두고 천천히 나랏일을 논의하고 있었다.
“주군께서는 조선왕이 보내준다고 하는 도이들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혼다 마사노부가 서두르는 기색 없이 물었다. 여전히 이에야스의 제일가는 측근으로서 모든 사안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받아들여야지. 그냥 놔두면 백부에게 죽임을 당할 상황이라는데 피난처를 제공해주는 정도 자비는 베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관대한 사람이니라.”
쇼군직은 내놓았으나 여전히 모든 실권을 쥔 이에야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런 말을 했다. 주변에 있는 신하들은 주군이 하는 말에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이 문제에 결론을 내리지 않은 건 고민할 점이 많아서였다.”
이에야스도 서두르는 기색 없어 천천히 이야기했다.
“이제껏 외국에서 그리 신분이 높은 이가 무리를 거느리고 우리 천하의 일원이 되겠다면서 넘어온 사례가 없다. 옛날 백제 이후 천 년 동안 말이다. 어찌 쉽게 결정할 수 있겠는가.”
“맞습니다.”
“주군께서 심사숙고하심이 옳습니다.”
아민은 일단 건주의 왕족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번 전쟁 때 임해군과 같은 격이다.
“그자가 혼자 건너오거나 임해군 때처럼 불과 수십 명을 데리고 온다면 영지를 줄 것 없이 그냥 식객으로 삼으면 된다. 하지만 정예 기마무사를 1천 기나 데리고 온다지 않느냐. 그러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과연 그만한 대우를 해주면서까지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사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마사노부나 이이 나오마사, 혼다 타다카츠 같은 최측근들과 이미 논의를 마쳤다. 지금 나머지 신하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건 요식행사일 뿐이다.
“지금 천하에서 정예 기병 1천 기를 소유한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장차 평화로워진 천하를 다스리려면 느린 보병보다는 빨리 움직여서 소요를 진압하는 기병이 필요한바, 기병 1천 기는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미리 말을 맞춘 대로 이이 나오마사가 나서서 기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른 신하들도 이 주장에 찬동하자 이에야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결론을 내렸다.
“그러하다면 저들을 받아들이고, 영지를 내려 막부의 신하로 삼도록 하겠다. 과거에 사나다 씨가 가지고 있던 우에다 영지와 누마타 영지 6만 5천 석을 저들에게 내리고, 이후 기병으로 복무하면서 충성을 바치게 할 것이다.”
사나다 영지는 그동안 도쿠가와 가문의 직할령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여기 여진인들이 와서 살게 되면 막부를 보위하는 관동 일대의 핵심 친위세력이 될 것이다.
“이제 바다도 풀릴 때가 되었으니, 조선왕에게 사자를 보내 우리 결정을 알리도록 하여라. 사자로는 후루타 시게나리와 오다 나가마스 공 두 사람을 보내겠다.”
두 사람 모두 조선 국왕과는 꽤 인연이 두터운 사람이다. 다만 나가마스야 원체 여러 차례 사자로 양측 진영을 오갔으니 그렇다 치고, 후루타 시게나리에게 조선 국왕이 호감을 보이는 이유는 이에야스로서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