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71
2부 649화
– 32 –
환구단과 용산별궁, 여기 첨부되는 대광장 건설 공사까지 완료하려면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공조판서가 일상적으로 업무를 진행하면서 병행할만한 규모의 사업이 아니고, 결국 논의 끝에 도감(都監)을 하나 새로 설치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만 제때 내려 주었으면 굳이 이런 새 기구를 설치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코끼리를 타고 공사 현장에 나오니 기분이 씁쓸하다. 젠장, 언제쯤에나 물 걱정 덜하며 왕 노릇 하게 될까. 댐 쌓고 지하수 파서 전기모터로 물을 공급하는 시절이 오면 좀 나아지려나.
“어서 오시옵소서, 전하.”
축단도감(築壇都監) 도제조 유영경이 내 앞에 달려와 고개를 조아렸다. 좌찬성, 좌참찬 등을 역임한 유능한 사림 출신 관료다.
“당장 계단을 준비하겠사옵니다.”
“서두를 것 없다. 현장을 둘러보기에는 이 위가 좋다.”
코끼리 등에 앉아 공사 현장을 둘러보니 수천 명은 될 인부들이 바삐 오가면서 언덕을 깎고 구덩이를 메우고 있다. 일단은 자재와 인력을 나르기 위한 도로 확보 작업부터 하고, 환구단 공사를 마치면 광장과 별궁 건립을 위한 공사에 들어간다.
“역군이 많구나. 일을 마치고 저화를 나눠줄 때 호패를 검사하여 역군들이 어느 고을에서 왔는지 파악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말라.”
“예, 전하”
흉년이다 보니 일당을 받으러 공사에 지원하는 사람은 부족하지 않다. 도성 내외에 언제나 넘쳐나는 품팔이꾼들만이 아니라, 경기도 일원에서 모여드는 농민들도 있다.
인부들의 출신지를 파악하는 건 어느 고을에서 생계에 위협을 받는 사람이 많은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저화 한 되라도 받으려고 도성까지 일하러 오는 사람이 많은데도 그 고을 수령이 조정에 위급을 고하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니까.
“공사에서 어려운 점은 없느냐?”
“땅도 다 녹았고, 이제 겨우 지반을 고르는 참이라 별로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가져온 계단을 밟고 코끼리 등에서 내려왔다. 이미 봄이 한창이라, 여기저기 나무에는 꽃이 피고 땅에는 푸르게 풀이 자라고 있다.
우리 달력으로는 아직 3월이지만 양력으로는 이미 4월 후반이다. 확실한 봄이라 가마 사방 벽을 열고 코끼리 등에 앉아있어도 전혀 춥지 않다. 겨울옷을 몇 겹씩 껴입고, 마차도 완전히 밀봉하다시피 해야 외출할 수 있던 겨울에 비하면 천지 차이다.
겨울 동안 몸조심을 해서인지 다행히 폐렴이 재발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미국 대통령 중에도 폐렴에 걸려 죽은 사람이 있었지? 누구였더라? 비가 오는데 무게 잡는다고 코트도 안 입고 취임 기념 연설하다가 폐렴에 걸려 취임 한 달 만에 죽은 사람이 분명히 있었는데?
비가 오면 취임식을 연기하든지, 장막을 치든지, 하다못해 코트라도 입고 ? 서양인들한테는 코트가 비옷 역할을 하니까 ? 나서든지 했어야지 그게 무슨 바보짓인가. 다 늙은 영감이 그런 멍청한 짓을 했으니 병이 나는 것도 당연하다.
“저런 크게 흔들리는 것을 타고 왕림하시면 건강에 해로울 듯합니다. 외람된 청이오나 일반 가마를 타고 다니시면 어떻겠습니까. 코끼리 없이도 현장을 둘러보실 수 있도록 망대를 하나 만들어놓겠습니다.”
“저놈 하나가 매일 먹는 물과 꼴이 전마 열 필 분량이니라. 내가 타고 다니기라도 해야지 어찌 공밥을 먹이겠느냐?”
그동안 폐사한 놈 몇을 빼고, 지금 사복시에 있는 코끼리는 열한 마리다. 그중에서 베트남 출신 여덟 마리는 애초에 작업용이었던지라, 매일 도성 근교 공사장에 나가 일을 한다. 여기 환구단 공사장에도 서너 마리가 나와서 흙을 나르거나 돌을 끌고 있다.
하지만 자한기르가 보내준 진짜 전투코끼리 세 마리는 어쩌다 행사용으로 끌어낼 때 말고는 그대로 놀고먹고 있다. 딱히 일을 시키고 싶지도 않고, 일을 시키면 화를 내기 때문에 시키고 싶어도 일을 시킬 수도 없다. 심지어 내가 타는 수레도 안 끌려고 하더라.
“천축에서 온 상부(象夫)들의 말을 들었더니, 수레를 끌고 잡역에 종사하는 코끼리는 코끼리 중에서도 천것들이라 한다. 이 전상(戰象)은 실로 고귀한 종이라 노역은 안 한다는구나.”
옘병, 코끼리 주제에 카스트 놀이라니. 인도산 코끼리라서 그런가? 동남아만 해도 태국에서 흰 코끼리에 환장하는 것만 제외하면 코끼리는 다 똑같은 코끼리로 치지, 코끼리 중에 계층을 구분하고 그러는 것 같지는 않던데.
“앞으로 얼마쯤 걸리면 공사가 끝나리라 예상하는가?”
“적어도 반년 정도는 걸릴 듯합니다.”
서류상으로 할 수 있는 만큼은 겨울 동안 다 해놓았다. 집현전에서는 옛 전례를 참고해서 환구단 설계를 완료했고 호조에서는 자금 및 인력, 자재 조달에 관한 준비를 했다. 기술적인 문제는 공조에서 채비를 마쳤다. 남은 건 실행뿐이다.
여러모로 논란이 된 환구단 규모는 200여 년 전 태종 11년(1411)에 확장한 규모보다 조금 더 크게 짓기로 했다. 기왕 짓는 거 크게 짓는 게 좋지 않겠는가?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은 옛날과 같이 12단, 단 주위 둘레는 고려 때 6장(丈, 1장은 3m)이었고 태종 때 7장이었지만 이번에는 9장으로 늘렸다. 그래도 북경에 있는 천단보다는 훨씬 작다. 천단 둘레가 33장 정도 된다고 했던가…?
단 자체는 분명 낮다. 대신 환구단을 두는 위치를 둔지산 꼭대기로 해서 전체적인 높이는 확 밀어 올렸다. 둔지산이 그렇게 큰 산은 아니지만, 주변 토지가 모두 강가에 펼쳐진 평지다 보니 겉보기 높이는 제법 높다. 이만하면 천단에 그렇게 뒤져 보이지도 않을 거다.
솔직히 말해서 되도록 준비 단계에서 끝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봄이 되도록 비가 안 내리니 어쩔 수 없다. 작업을 서둘러 완공하고, 끝나는 대로 기우제를 지내야지. 그래도 굳이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뇌신(雷神)이 비를 내려 주면 더 좋기는 하겠다.
“만약 공사 도중에 비가 내린다면 축단을 중지하시겠사옵니까?”
“3년째 계속되는 가뭄이다. 한두 번 비가 내리는 정도로는 해갈이 되지 않을 것이니, 비가 오더라도 공사는 계속 진행하여라. 어설프게 도중에 공사를 멈춘다면 도리어 하늘이 진노하여 오려던 비까지 멎을지도 모르지 않느냐?”
“예, 전하.”
하늘이 진노하기는 개뿔…짓다가 말면 그게 더 망신이니까 멈추지 말라는 거지. 무슨 일을 하든 하다가 마는 게 가장 꼴불견이다.
시찰을 마치고 다시 계단을 밟고 코끼리 위에 오르니 널찍한 부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 보자, 여기 위치가 둔지산 밑이니까 저기 남쪽 땅이 국립중앙박물관 위치겠구나.
둔지산 북쪽은 남대문 앞 개선문까지 싹 광장으로 잡고,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 용산별궁을 지으면 위치가 기가 막힐 듯하다. 한강에서도 적당히 떨어져 있으니 말이다.
별궁은 말 그대로 급할 거 없는 일이다 보니 아직 위치나 설계는 확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밀어붙일 생각이 없던 일을 이만큼이나 밀어붙였으니, 환구단 공사가 득이 된 부분도 있기는 한 셈이다.
– 33 –
대전에서 격한 회오리가 몰아쳤다. 신하들은 한 덩어리로 뭉쳐서는 내가 절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요구를 내세웠고, 나는 아득바득 거부했다.
“나는 싫다! 그대들은 왜 내가 싫다는데 자꾸 하겠다고 나서는가?”
“전하께서는 이 나라가 생긴 이래 비할 데가 없는 위업을 몇 차례나 거두신 실로 위대하신 명군이시옵니다. 신하 된 몸으로서 합당하게 받들어 모시지 않는다면 어찌 불충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대제학의 말이 실로 옳습니다. 전하께서는 종계변무를 이루셨으며 북방을 정벌하셨고 바다 건너 왜적의 침략을 막고 그 본거지를 토벌하셨습니다. 또한 사방에 사자를 파견해 외인들과 교류하시고 새 땅을 개척하며 야인들을 신하로 들이셨으니 어찌 쌓으신 공덕이 옛 성인들보다 적다 하겠습니까?”
“부디 신들의 뜻을 꺾지 말고 받아주소서. 이는 신들이 전하께 올릴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공경이옵니다.”
“됐다!”
뭘 가지고 이 난리냐고? 간단하다. 내게 존호(尊號)를 바치겠다고 이 난리들인 거다.
조정에서 처음 존호 이야기가 나온 시기는 당연히 종계변무를 달성한 그때다. 명나라 공식 기록에 잘못 기재된 왕실 족보를 수정하여 조상의 이름을 바로 세웠으니 당연히 칭송을 받을 일이었지만, 그 방법이 별로 떳떳하지 못했기도 해서 사양했다.
그 뒤로도 뭔가 큰 건을 하나씩 이룰 때마다 몇 차례나 존호를 올리겠다는 안건이 조정에서 거론되곤 했다. 하지만 나는 매번 그 요청을 각하했고, 존호를 짜서 들고 온 신하들의 보챔이 심해지면 귀를 막고 퇴청해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또 시작된 것이다.
“과인은 덕이 부족한 사람이고 세운 공이 없어 존호를 받을 자격이 없다. 더구나 아직 살아 이렇게 숨을 쉬고 있는데 존호는 무슨 존호란 말이냐?”
“전하, 존호는 시호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시호는 사람이 죽은 뒤에 올리는 것이 맞지만, 존호는 아직 살아있는 군주에게도 얼마든지 올릴 수 있습니다.”
“너희가 뭐라고 해도 나는 싫다. 과인은 존호를 받지 않겠다. 과거 선대왕들께서도 생전에 존호를 받지 않으셨는데 무슨 낯으로 내가 존호를 받는다는 말이냐?”
“전례가 분명 있는데 전하께서는 어찌 없다 하십니까? 세조대왕께서는 계유정난으로 무도한 무리를 쓸어 없애셨고, 이에 감복한 영의정 정인지 등 중신들이 ‘승천체도 열문영무(承天體道 烈文英武)’라는 여덟 글자 존호를 올린 바 있습니다.”
바로 그 하나뿐인 전례가 문제라고! 세조는 쿠데타를 일으켜 보위에 올랐고, 자기편을 택한 신하들에게 벼슬과 토지를 내려 보답했다. 그리고 신하들은 세조에게 존호를 올려 화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도적놈들 한패끼리 서로 띄워주기 쇼를 벌였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내가 일단 세조의 후손인 것으로 되어있으니만큼 세조가 벌인 찬탈을 대놓고 비판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정당성을 부정하면 세조로부터 나한테까지 이어지는 왕통 자체를 부정하는 거나 같은 일이 된다. 내가 여기 있을 수가 없다.
“세조대왕께서는 위기에 처한 사직을 구하셨다. 하지만 과인에게는 그만한 공이 없다.”
계유정난은 세조의 ‘구국의 결단’이라는 게 현재까지 조선의 공식적인 역사관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계유정난을 생각하니 세조가 뿌려 놓은 훈구 세력과 공신전이라는 나쁜 씨 탓에 골머리를 앓았던 기억이 갑자기 확 떠오른다. 사림들만큼 날 괴롭히진 않았지만, 세조 때 형성된 훈구 공신 세력들도 나를 제법 골치 아프게 했었다. 어떻게 다 수습은 해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단종은 언제쯤이면 복권할 수 있으려나. 내 생전에는 아직 무리다. 세손 정도 되면 별 무리 없이 할 수 있겠지. 그 애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종계변무는 황제께서 은총을 베풀어주신 것이고, 북방에서 일어난 난리는 도적을 진압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왜적은 군사와 백성들이 막아낸 것이다. 과인은 그 모든 사안에서 딱히 공적을 쌓은 것이 없으니, 존호를 받음은 가당치 않다.”
“아니옵니다. 전하께서 덕이 없으셨다면 어찌 그 모든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모두 전하께서 베푸신 성덕으로 인하여 가능했던 일이옵니다. 부디 신들의 뜻을 가납하여 주소서.”
“더 급하게 처리해야 할 국사가 얼마든지 있거늘, 그대들은 도대체 왜 그깟 존호 부여 문제 따위를 붙들고 내게 받아들이라 강권하는가? 그만 그치라!”
“이 나라 사직을 지키는 신하로서 어찌 임금의 이름을 존귀하게 모시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있겠습니까? 신들은 오직 전하께서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길이 남기시기만 바랄 뿐입니다. 그동안 미뤄진 것만도 큰 죄이오니, 부디 존호를 받으소서!”
아우성 속에서 이항복까지 저쪽 진영에 가담했다.
“이제까지는 그전 법도를 크게 바꾸지 않았기에 전하께 존호를 올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스스로 환구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를 올리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하늘에 이를 고하기 위해서라도 존호를 받으셔야 하옵니다.”
“받으시옵소서!”
“전하, 부디 존호를 받으시옵소서!”
존호를 받으라는 독촉은 끝없이 이어졌다. 기가 질린 나머지 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경들은 어찌하여 과인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여 안달인가! 존호는 받지 않겠다. 정 내게 존호를 올리고 싶거든 과인이 죽고 나서 마음껏 올리도록 하라!”
솔직히 작년부터 부쩍 건강에 자신이 없어진 건 사실이다. 폐렴에 걸리는 바람에 며칠 동안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고, 내가 당장이라도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기 시작한 지도 여러 달이다. 그러다가 결국 또 죽어서 다시 각성하는 악몽까지 꿨다.
하지만 정말로 죽을 때까지는 난 살아있는 거다. 나는 조선의 13번째 임금인 경성군이고 그 누구도 나를 죽은 사람으로 취급할 수 없다. 시호건 존호건 상관없으니까, 그런 건 내가 죽은 뒤에나 붙이란 말이다!
“제기랄, 막상 죽을 때가 되니 목숨이 아까워지다니….”
아직 창창하게 젊었던 경인년에는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친정에 나섰다가 적군에게 잡힐 것 같으면 자살하면 그만이라고 속 편하게 생각했다. 어차피 죽어도 또 살아날 텐데 좀 빨리 죽으면 어떠냐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기껏 적응한 이 삶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고 싶다. 내 아내들, 자식들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지내고 싶다. 평화를, 안식을 누리고 싶다. 기껏 만난 상희와 또 헤어져서 몇 년씩 찾아 헤매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
젊을 때는 그저 귀찮고 낯뜨겁고 해서 존호 받기를 거절했다. 하지만 지금은 존호를 받으면 그게 그대로 내 묘비명이 될 것 같다. 받고 나면 금방 내가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솟는다. 그 두려움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동궁 문을 들어섰다.
“할바마마! 이 시간에 어인 일이시옵니까?”
“세손 얼굴이 보고 싶어서 왔느니라.”
세손 연이가 깜짝 놀라서 뛰어나왔다. 을미년(1595)에 태어났으니까 이 아이도 벌써 열네 살이다. 손에 라틴어 교본을 든 것을 보니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에서 공부하다가 내가 와서 바로 뛰어나온 모양이다. 역시 뒤에 알라르콘 신부가 서 있다가 내게 인사를 했다.
“세손, 이리 오너라. 같이 좀 걷자꾸나.”
“예, 할바마마.”
연이는 벌써 내 코에 닿을 만큼 키가 커진지라 어릴 때처럼 번쩍 들어 안아줄 수는 없었다. 연이도 그걸 바라지는 않을 것 같아 잠시 동궁 정원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호 부여 문제로 치고받느라 흥분했던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공부가 많아서 힘들지는 않으냐?”
“습관이 되어 괜찮사옵니다.”
“네가 배울 학과를 내가 너무 늘려 놓아 미안하구나. 옛 성인의 가르침만 해도 끝이 없는데 온갖 양학(洋學)까지 추가해 놓았으니.”
“모두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옵니까? 소손(小孫)은 괜찮사옵니다.”
“너와 네 아비가 모두 내 뜻을 잘 따라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아무리 뭘 해놔도 후대에 망가뜨려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황이, 환이가 그럭저럭 유지하던 내 무종 대의 유산을 경성군이 한 방에 날려 버릴 뻔하지 않았던가.
이번 생에서도 지켜야 할 사업은 많다. 내정, 외교, 군사…그 모든 것들이 주저앉지 않도록 하려면, 더 발전하도록 하려면 후대 교육은 필수다. 아…그리고 하나 더 있었지. 아까 생각한 거.
“장차 네가 옛일을 살피다 보면 불쌍하고 가련한 옛사람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자비심을 베풀어 그런 이들을 신원해준다면 좋겠다. 네게도 공덕이 될 것이고, 네가 원한다면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연이는 적통 세자가 낳은 적통 원손, 세손이다. 조선 역사에서 이런 임금은 단 한 명, 단종 하나뿐이었다. 그 뒤로는 누구도 이런 적통으로서 보위에 오르지 못했다.
“나는 할 수가 없었다. 나라에 너무 힘든 일이 많아 거기까지 신경을 쓸 수 없었느니라. 네 아비 역시 하지 못할 것이다. 네 아비는 그 일에 관심이 없으니까. 하지만 네가 보위에 오를 때면 시일도 꽤 지났으니 괜찮을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할바마마. 그 억울함을 꼭 살피겠습니다.”
노산군을 신원하라고 콕 집어서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특한 세손은 내 말에 섞여든 몇 마디 암시만으로도 내가 누굴 염두에 두고 있는지 알아챈 듯했다.
몇 마디 더 잡담을 나누는데 빈궁이 군주(郡主, 세자의 딸) 셋과 세손의 동생인 홍인군을 끌고 급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동궁에 왔다는 소식을 좀 늦게 받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