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78
2부 외전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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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로 가는 도중에 심양, 아니 성경에 들른 조선 사절은 깜짝 놀랄 소식을 전하고 갔다. 지난 40여 년 동안 조선 임금으로 재위하며 막강한 위업을 이룬 조선 국왕 경성군이 병으로 사망했다는, 실로 경천동지할 소식이었다.
“허허, 일세의 영걸이던 국왕께서 명을 달리하셨다니, 실로 슬프고도 슬프구나.”
용상에 높이 앉은 누르하치가 혀를 차며 애도를 표했다. 대전에 앉아 정사를 돌보던 중이라 평소 일상생활에서 입는 만주 복장이 아니라 명나라 황제에게 하사받은 붉은색 곤룡포를 몸에 걸치고 익선관을 머리에 썼다.
똑같이 명나라에서 내린 옷이니만큼, 형태는 조선 임금들이 입는 포와 같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옷에 붙인 장식용 보(補) 속의 용이 발톱이 4개인 사조룡(四爪龍)이라는 것, 그리고 그 배경이 검은색이라는 점이었다. 북방을 나타내는 색이 검은색이라는 이유다.
하지만 조선 임금은 보에다 오조룡(五爪龍)을 수놓고, 그 배경도 붉은색 그대로다. 조선에서 사조룡 문양을 붙이는 사람은 왕세자로, 건주 국왕은 조선 왕세자와 같은 격인 셈이다.
본래 오조룡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황제뿐이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이미 세종대왕 때부터 그 옷에 오조룡을 새겼으며, 명나라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누르하치로서는 아쉽기는 하지만 조선과 건주가 차지하는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정식으로 통보를 받은 게 아니니 조문할 의무는 없습니다. 허나 저희는 한께서 결정하시는 바에 따를 것입니다.”
누르하치는 군왕의 인수와 복장을 칙사에게 받았으면서도 ‘전하’라는 중국식 호칭은 쓰지 않았다. 여전히 ‘한’으로 칭하게 했다.
“건주와 조선은 형제지국이고, 타계한 조선 국왕은 내게 큰형님과 같은 은인이셨다. 당연히 사절을 보내 조문해야 할 일이지, 내게 무슨 가부를 묻는단 말인가?”
“한께서 품으신 뜻을 알았으니 저희가 충실히 따르겠습니다.”
‘개국오대신’ 중 최연장자면서, 또한 조정에서 가장 높은 영상(領相) 자리에 있는 호호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조아렸다. 다른 신하들도 그 뒤를 따랐다.
“세자빈께서 조선 왕녀인 것은 명나라가 아직 알지 못하나, 팔왕자께서 조선 국왕의 부마가 되셨음은 저들도 알고 있습니다. 조문 사절을 보낸다 해서 트집을 잡지는 않을 겁니다.”
“설사 트집을 잡더라도 무시하고 보내야 할 거다. 설령 혼인을 맺지 않았다고 해도, 이웃의 도리로서 국왕이 생을 마쳤다는 말을 듣고 어찌 문상하지 않을 수 있는가?”
누르하치가 엄하게 소리쳤다. 줄지어 선 신하들은 모두 고개를 숙여 동의를 표했다. 이들은 주군인 누르하치와는 달리 중국식 관복을 입지 않았다. 여전히 호복을 입고 변발을 드러냈다. 누르하치도 여전히 변발을 풀지 않았으나, 지금은 익선관 속에 말아 넣어 감추고 있다.
“조문 사절로는 누구를 보내시겠습니까?”
“장인의 장례에 사위가 조문을 가지 않는다면 예의가 아니겠지. 암바 버일러로 하여금 당장 채비를 꾸려 한양으로 떠나게 하겠다.”
질문을 받은 누르하치는 다이샨을 조문 사절로 보내겠다고 선언했다. 신하들은 모두 합당한 조치라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도리로 보나 격으로 보나, 다이샨을 보낸다는 건 최적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이샨은 아직 건주의 세자로 정식 책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누르하치의 뒤를 이을 가장 강력한 후보자로 손꼽히고 있다.
“암바 버일러의 대복진(大福晉, 정실부인 중 첫째)인 조선 왕녀도 동반해서 보내시렵니까?”
“이 겨울에 임산부가 어찌 한양까지 먼 길을 여행하겠는가. 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조문하러 한양에 가는 건 암바 버일러 혼자로 족하리라.”
“알겠습니다, 한.”
“예전에 왜국이 조선 남부에 침입했을 때 슈르하치가 ‘이 틈을 노려서 북방 3주를 빼앗자’라고 날 부추기던 생각이 나는군.”
조회를 끝낸 누르하치가 내전에서 호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기다리고 있던 양굴리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놈을 연금하지 않았으면, 조선이 국상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속말주나 부여주를 치자고 했을지도 모르지. 지난 10여 년 동안 그놈이 배운 게 전혀 없다면 말이야. 안 그런가, 병조판서?”
누르하치는 옛날부터 건주여진이 옛 몽골의 유산을 크게 물려받았다고 주장해 왔다. 예하에 있는 부족민들을 팔기(八旗)로 편제한 것도, 옛 몽골에서 운영하던 천호제(千?制)를 모방하여 설치한 제도였다. 왕실의 부인을 일컫는 ‘복진(푸진)’이라는 말부터도 몽골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군왕으로 책봉을 받고, 중국식으로 조정을 설치하면서부터는 조선을 본뜬 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조정을 육조(六曹)로 편제하고 각 조의 우두머리를 ‘판서’로 칭한 것부터도 조선식이었다. 영상, 좌상 등도 조선 명칭을 그대로 썼다.
만약 건주 왕국이 여러 여진 부족의 힘을 합쳐 연맹하는 형태로 세워졌다면 누르하치는 이 왕국에서 가장 강한 추장일 뿐,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으리라. 조정을 꾸린다 해도 지분에 따라 각 부족에 주요 관직을 배분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르하치의 권위에 도전할만한 다른 여진 부족은 이번에 죽은 조선 국왕이 모조리 쳐부숴 주었다. 누르하치 산하에 들어온 이들은 철저히 붕괴해서 혈통과 명예 외에는 무엇도 남지 않은 잔당들이 대부분이다. 그 덕분에 누르하치는 간단히 절대권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금 건주 조정에서 재상과 판서를 포함하는 모든 고위 관리는 예전부터 누르하치가 휘하에 두고 있던 심복 부하들이다. 마치 조선 조정이 임금의 뜻에 따라서 움직이듯이, 건주 조정도 완전히 누르하치의 뜻에 따라서 움직이는 실행기구가 되어 있었다.
“이 모든 기반이 이번에 타계한 조선 국왕 덕분이다. 마땅히 조문하고, 그 명복을 비는 게 옳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한.”
양굴리 역시 이번에 죽은 조선 국왕과는 면식이 있다. 그리고 국왕이 여러모로 건주를 많이 지원해 주었음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장래 입관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조선과의 관계는 좋게 유지할 필요가 있지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누르하치가 편히 앉아 담뱃대를 물며 씩 웃었다. 이번 문상은 과연 새로 왕위에 오른 조선 세자가 옛 약속을 충실히 지킬 의사가 있는지, 그 지속 여부를 확인하러 가는 길이기도 했다.
다이샨은 조선 세자와 밀약을 맺은 당사자다. 어떻게든 세자로부터 그 약속에 관해 확인을 받는 일이 어렵지는 않을 터이다.
건주가 과연 언제쯤에나 산해관을 넘어갈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명나라는 전성기와 비교하면 지금 많이 쇠약해졌다고 하나, 아직은 건주와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병력과 재물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요서에 늘어선 여러 요새와 산해관, 만리장성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조선에서 받을 도움이 많다. 그걸 마저 받으려면 우리가 할 도리를 해야지.”
누르하치가 미소를 지었다. 동그랗게 고리를 이룬 담배 연기가 허공을 향해 솟았다.
– 5 –
조정 신하들은 오늘만큼은 꼭 황제가 조회에 나타나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중대한 소식을 접했으니,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신하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야 이 사건으로 인한 영향을 평가하고 대책을 수립할 수 있을 터였다.
“폐하께서 칙명을 내리셨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무참히 무너져내렸다. 조선 국왕이 죽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으면서도 황제는 후궁 바깥으로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관 한 사람을 시켜 신하들에게 편지 한 장을 내렸을 뿐이다.
“짐은 짐의 아우나 마찬가지인 조선왕의 죽음을 마음 깊숙이 슬퍼하는 바다. 이에 조문하는 사절을 보내 내 슬픔을 전하고, 장례비용으로 은 10만 냥을 내리게 하라. 너무도 슬픈 나머지 조정에 나가 그대들을 볼 낯이 없으니, 이는 문서로 명한다.”
조정 일에 관심이라고는 전혀 없던 만력제가 글월로라도 뜻을 드러냈으니, 실로 큰 사건이 벌어진 건 맞는 셈이다. 하지만 중신들은 그런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누가 그런 말을 들어도 발언자가 천자를 비웃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00만 냥을 보내라 명하시지 않고 10만 냥만 보내라 하신 데 감사드립시다.”
10여 년 만에 이부상서로 다시 복귀한 손비양이 이를 악물고 다른 상서들을 타일렀다. 그와 함께 최근에 병부상서가 되어 조정에 들어온 이화룡도 한숨을 쉬었을 뿐, 노골적으로 황제의 지시에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지금 우리는 중원을 지키기 위해 조선의 성의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대적이 나타나서 공격해왔을 때 조선군이 지원을 거부한다면, 육군과 수군이 모두 간단히 뚫릴 상황입니다.”
이화룡은 국내외 각 방면에서 명나라가 처한 위기를 샅샅이 꿰고 있었다. 사르후에서 거둔 대패 이후 그 구멍을 메우느라 군비가 폭증했고, 그에 비례해서 민란도 늘었다. 군비 조달을 위해 증세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로 걱정하는 건 상서들 선에서 끝났다. 나라의 기둥이어야 할 황제는 지금 나라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미녀와 보물을 채운 후궁에서 주지육림을 즐기고 사람을 죽이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그리고 조선왕이 죽었을 때 칙사가 조문하러 가는 건 그동안 계속된 관례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특별히 생긴 사례도 아니니, 다들 진정하시지요.”
예부상서 양도빈이 다른 대신들이 폭발하지 않도록 급히 타일렀다. 조선왕이 죽었을 때마다 매번 칙사를 보내 시호를 내리고 상례에 필요한 물건을 일부 하사하는 건 그동안 계속 이어진 관례였다. 이번 왕이 꽤 오래 재위하면서 40여 년 동안 멈췄을 뿐이다.
“다만 은 10만 냥이라는 부의금은 확실히 전례가 없는 과한 액수입니다. 하지만 황제께서 굳이 내리라 하시면 우리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지요. 어떻습니까, 호부상서 대인. 호부에서 은 10만 냥을 염출할 수 있겠소이까?”
“가능은 합니다.”
호부상서 조세경이 한숨을 쉬었다. 상서직에 오른 지 이미 7년째, 피가 마르고 살이 찌드는 7년이었다. 정상적인 조세 수입은 줄기만 하는데 용처를 메우느라 증세를 거듭하니 백성들만 죽을 노릇이다. 조세경은 이 문제점을 알고 있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황명이니 어떻게든 쥐어짜야지요. 조선왕은 건강도 좋지 않은 몸으로 백성들을 위해 몸소 기우제를 지내고 그 후유증으로 죽었다지 않습니까. 그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폐하께서 명하신 대로 위로금을 보내는 편이 대국의 아량을 선보일 수 있는 길일 겁니다.”
“그 기우제도 문제입니다.”
공부상서 유원림이 불만을 표했다. 2년 전에 상서가 된 53세의 비교적 젊은 대신이다.
“조선왕 윤은 건방지게도 천단을 쌓고 하늘에 제를 지내 비를 빌었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직접 제사를 지내는 건 오직 천자의 권한이거늘, 어찌 제후국 왕 따위가 하늘에 빌고, 칙사를 보내 이를 칭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공부상서, 우리 대국에서는 예로부터 조선을 대할 때 다소 특별한 기준을 적용했음을 잊지 마시오.”
우울한 표정을 한 손비양이 지적했다.
“조선왕이 입는 용포에 오조룡을 새기도록 허용한 지도 160년이오. 그리고 역대 황제들께서 영토를 넘겨준 대상도 오직 조선 이외에는 없었소. 어찌 조선을 일개 평범한 제후국이라고 할 수 있겠소?”
싸워서 패했던 것도 아니고, 순전히 호의로 목단강 동쪽에 펼쳐진 광대한 땅을 조선령으로 만들어주었다. 조선 조정에 있는 자들이 사리를 안다면 그 은혜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황제께서도 조선왕이 단에 올라가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다 죽었다는 보고를 분명히 받으셨으면서도 일언반구가 없으시오.”
만약 황제가 조선왕의 행동에 대해 건방지다고 화를 냈다면 조정에서는 그에 맞춰 움직이면 된다. 하지만 황제는 이 건에 대해서 오직 조문 사절을 보내라는 명밖에 내리지 않았다. 혹시 조정에서 조선왕을 질책하는 칙서를 작성했는데 황제가 괜찮다고 하면 다 헛수고가 된다.
“폐하께서 평소 조선왕을 대하시는 태도를 보면 충분히 그리 행동하시고도 남습니다. 괜히 폐하의 심기를 거스를 짓은 하지 말고, 조문하러 갈 칙사나 뽑도록 합시다. 시호도 내려줘야 하지 않습니까.”
예부에서는 죽은 조선왕에게 내릴 시호로 ‘소경(昭敬)’을 골랐다. 황제가 예부를 닦아세운 덕분에 이례적으로 빠르게 결정됐다. 후궁에 드나드는 환관들이 수군거리듯이, 정말 황제가 자기를 유비의 환생으로 여기고 조선왕을 관우의 환생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원림은 조정 공론이 자기 뜻과 다른 데 대해서 불만이 많았다. 그가 보기에 분명 조선왕은 주제넘은 짓을 했으며, 이를 공식적으로 질책할 수 없다면 우회적으로 힐난하기라도 해야 했다.
“제를 지내다가 죽기까지 했으니, 차마 문책은 할 수 없겠지요. 그럼 조선왕의 죽음에 대해 비공식적인 소문이라도 널리 퍼뜨리면 어떻겠습니까? 제후국 군주 주제에 격에 맞지도 않는 천제를 지내려다가 하늘의 벌을 받아 죽은 거라고 말입니다.”
“그건 너무하지 않소? 결과야 어쨌건, 조선왕은 자기 백성들을 위해 비를 내리게 하려다가 죽었소. 크게 애도하지는 못할지언정 그리 모독하는 건 도리가 아니요. 게다가 귀공이 말하듯 소문을 퍼뜨려 봐야, 백성들은 귀공이 뜻한 바와는 다른 부분에 주목할 거요.”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아도, 상서 다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 ‘무위의 치’를 실현하는 명나라 황제 만력제보다 격에 안 맞는 제사일지언정 자기 백성들을 위해 지내려고 한 조선 국왕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만력제가 조선왕만큼 백성을 아끼는 군주였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명나라 백성들 역시 마찬가지다. 강제로 거둔 세금으로 혼자서만 사치를 즐기는 황제보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비를 내리게 한 조선 국왕 쪽이 당연히 더 높은 평가를 얻으리라.
“일반 백성들은 조선왕이 죽었는지도 모르게 하는 편이 낫소. 그따위 소문을 퍼뜨려 봐야,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뿐이오.”
“알겠습니다, 이부상서 대인.”
명나라 조정에서는 곧바로 누구를 조문 칙사로 보내느냐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