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79
2부 외전 3화
– 6 –
슨푸 성에도 찬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하지만 이곳의 추위는 조선이나 건주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에야스는 화로의 불을 쬐며 한가로이 입을 열었다.
“역시 기우제는 교토에 있는 공경들에게나 맡겨야겠다.”
“그런 일이나 하라고 그 밥벌레들에게 영지를 남겨준 게 아닙니까?”
조선에서는 이에야스에게 직접 사절을 보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선 조정에서 보낸 관리가 오사카까지 와서는 오사카 주재 조선 관원들에게 국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달했다. 은밀하게 전하지 않고 동네방네 떠들었기 때문에 곧바로 슨푸성까지 전달되었다.
“본래 천황과 조정에서 하는 일이 하늘에 빌고 제사를 지내는 일이지요. 주군께서 굳이 그 힘든 일을 맡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혼다 마사노부의 말대로였다. 예로부터 무사들이 조정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빼앗아 직접 왕이 되는 대신에, 굳이 막부를 새로 세우고 천황과 조정을 허수아비 상태로나마 그냥 놓아둔 이유가 그런 귀찮은 일들을 떠넘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쇼군으로서 치러야 할 의식만 해도 한둘이 아닌데, 기우제 따위까지 맡아야 한다면 업무가 너무 과중하지 않습니까. 이번에 조선 국왕이 보여주었듯, 절대로 제명에 죽지 못할 겁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그 쇼군으로서 치러야 할 의식조차 히데타다에게 모조리 떠넘겨 버리고 오고쇼로 물러앉은 이에야스가 한가한 소리를 했다.
애초에 옛날 천황들부터도 일찌감치 후계자에게 양위, 자기는 상황(上皇)이 되고 골치 아픈 의례 따위는 몽땅 후계자에게 떠넘겨 버리는 사례가 숱했다. 그리고 그들도 지금 이에야스와 마찬가지로 실권만 자기가 잡았다.
“기우제를 정 지내야겠다고 해도 그렇게 추운 날에 지낼 건 또 뭐란 말이냐. 생각보다 날이 추웠으면 날짜를 미루든가, 옷을 좀 두툼하게 껴입든가, 제단 주변에 장막을 치거나 했어야지. 조선왕은 꽤 현명한 사람이라더니,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젊어서 객기를 부린 탓일 수도 있습니다.”
조선 국왕 경성군은 이에야스보다 8살 아래다. 젊다고 말하려면 젊은 나이다.
“그나저나, 조문 사절은 보내시겠습니까? 진서에서는 아소 고레미츠 본인이 직접 조문하러 간다고 합니다만.”
조선 관리들은 고레미츠에게는 들렀다. 일본국왕 겸 진서대장군의 치소가 조선령 북부 규슈 한가운데 있는 다자이후이기 때문이다. 규슈에 들렀다가 오사카로 오면 그 중간에 자연스럽게 다자이후를 거칠 수가 있다.
하지만 에도에는 직접 올 수 없다. 이제까지 조선 왕실에서 국상이 있을 때 사신을 보내서 일본 측에 조문을 요구한 전례가 없는 탓이다. 그러니 조선관에 와서 소식을 알리면서 사방에 소문을 퍼뜨려 간접적으로 전달되게 한 것이다.
“아소 고레미츠는 어릴 때 조선에 망명하여 몇 년을 조선 도성에서 보냈다. 자기를 돌보고 지금의 자리에 앉게 해준 조선 국왕이 죽었다고 하면 직접 달려가서 조문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
“맞는 말씀입니다. 허나 우리에게는 직접 통보가 온 게 아니니까 조문할 의무는 없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조선과 계속 잘 지내려면 사신을 보내 조문하고 새로 즉위한 국왕과도 친분을 다지는 편이 좋을 것 같기는 합니다.”
“내 생각도 그렇기는 하다. 음, 이에토시 녀석을 사자로 보내기는 좀 그러려나.”
이에야스는 망명해 온 아민에게 자기 서녀를 시집보내 사위로 받아들이고 마쓰다이라(松平) 성을 내렸다. 이름도 본래 쓰던 ‘아(阿)’ 대신 자기 이름의 ‘가(家)’를 넣은 ‘이에토시(家敏)’를 쓰게 했다. 외래자가 단박에 유력 가신으로 떠오른 셈이다.
“건주에서도 분명 조문 사절을 파견할 텐데, 이에토시 공과 한양에서 맞닥뜨리게 해서 좋을 건 없을 겁니다. 그냥 나가마스 공과 후루타 공, 이이 나오마사 공을 보내십시오.”
“확실히 그편이 좋겠군.”
고개를 끄덕인 이에야스가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였다.
“조선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게 있다지? 준마를 한 필 골라서 즉위를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새 임금에게 보내라고 하여라. 꼭 말로 답례를 받을 건 아니지만, 이런 선물을 받고도 답례를 잊을 정도로 저들이 무례하지는 않을 거다.”
일본에도 큰 말은 있다. 물론 재래종이 아니라 최근 남만인들을 통해서 새로 들여온 아랍산 대형마다. 이에야스는 이 외래종 말과 건주에서 온 기병들을 활용해서 강력한 친위기병대를 육성할 참이었다.
“알겠습니다.”
마사노부가 고개를 조아린 뒤 나가려는 참에 또 한 가지 지시가 따라붙었다.
“일전에 자네와 의논했던 히데타다의 처 문제를 결론지어야겠다. 그 아이는 너무도 사치가 심하고 성격이 나빠서 쇼군의 아내로서 적당하지가 않아. 오늘부로 그 자리를 물러나 적당한 절에 들어가서 심신을 다스리게 하라. 그 소생 외아들인 나가마루 역시 계승권을 박탈한다.”
“알겠습니다, 주군. 헌데 쇼군께서 반대하지는 않을까요?”
히데타다는 열 살 이상 나이가 많은 차차에게 12년 동안 꽉 쥐여서 살았다. 차차가 처음에 히데타다의 방에 숨어들어 유혹한 이래, 둘 사이의 주도권은 늘 차차에게 있었다.
“그 녀석도 이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주관이라는 게 좀 생겼겠지. 늙어서 예쁘지도 않고 배경이 될 친정도 없는 주제에 강짜만 부리고 사치까지 심한 여편네를 두고 내게 반항할 생각은 하지 않을 거다. 혹시 따를 수 없다면 처와 같이 물러나면 그만이다.”
이에야스에게는 아직 쇼군 자리에 앉힐 수 있는 아들이 얼마든지 있다. 4남이자 히데타다의 동복동생인 타다요시(忠吉), 5남 노부요시(信吉), 6남 타다테루(忠輝) 등이 이미 다 장성했다. 셋 다 다른 가문에 양자로 가 있기는 하지만, 이에야스가 마음만 먹으면 불러들이는 건 쉽다.
“히데타다에게 가서 분명히 일러라. 쇼군 자리를 지키고 싶거든 그 망할 계집애를 순순히 버리라고.”
사실 마사노부는 요즘 이에야스가 아니라 히데타다의 옆에서 주로 일하고 있다. 이에야스는 히데타다를 도울 겸, 감시할 겸 해서 쇼군 직위와 함께 마사노부를 히데타다 옆으로 보냈다.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자신의 측근으로는 마사노부의 아들 마사즈미를 두고 있다.
“차차는 분명 재수가 없는 여자다. 첫 남편이던 임해군도, 계속 차차를 흘깃거리며 모녀를 두고 연심을 불태우던 하시바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 계집이 도쿠가와 가문의 앞길도 막아버리기 전에 일찌감치 없애버려야 한다.”
차차는 혈통으로도 격이 뒤떨어진다. 노부나가의 ‘조카’인 차차보다 ‘딸’인 아이히메 쪽이 훨씬 좋은 피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에야스로서는 노부나가의 피를 자기 가문에 섞기 위해 차차를 계속 데리고 있을 필요도 없다. 아이히메 하나면 충분하다.
더구나 아이히메는 성품도 무척 곱고, 아이도 차차보다 훨씬 많이 낳았다. 순수한 여자로서 따져도 아이히메 쪽이 차차보다 훨씬 낫다.
“나가마루 님의 계승권까지 박탈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일단 적장자인데….”
옆에 있던 마사즈미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우에스기에서 데리고 있는 조선 유학자 강항과 교류하더니 너도 조선 물이 들었냐며 이에야스가 핀잔을 주었다.
“나가마루가 만약 쇼군이 된다면, 제 어미가 덜되어 처먹은 년인 건 모르고 복수에만 미쳐 날뛸 거다. 백여 년 전 조선 무종대왕도 폐위된 자기 모후의 복수를 하겠다면서 자기 조정을 피바다로 만들지 않았느냐? 그런 일이 생기면 막부가 흔들린다. 절대 안 된다.”
권력을 안정되게 유지하려면 명분과 능력을 모두 갖춘 후계자가 필요하다. 적장자라는 이유 하나로 후계자를 정할 수는 없다. 전국시대를 살아온 최후의 승자로서, 이에야스는 실력 없는 명분만큼 허무한 가치도 없음을 잘 알았다.
조선이라면, 전국의 신하와 백성이 임금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조선이라면 그런 행동을 벌여도 좋은 여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는 그런 여유가 없다. 막부를 지켜야 할 근친 일가와 신하들을 모친의 복수라는 명분으로 탄압하는 건 곧바로 분열과 반란을 부른다.
이에야스가 만들고자 하는 체제는 도쿠가와 가문 전체가 하나로 단결하여 안정을 유지하는 데 있었다. 차차처럼 해악만 끼치는 씨앗은, 그리고 그 씨앗에서 생긴 열매는 모조리 뽑아서 퇴비 더미에 던져야 했다.
– 7 –
거친 겨울 바다를 뚫고 내려온 연락선은 깜짝 놀랄 소식을 가져왔다. 배에서 내린 선전관이 입을 열자 진남성 전체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전하께서 승하하시다니!”
관찰사 홍윤범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주상께선 아직 환갑도 되지 않은 나이라, 정양만 잘하신다면 몇 년은 충분히 더 사셨을 터였다. 게다가 그동안에 딱히 큰 병을 앓은 적도 없으시지 않은가.
“기우제를 지내느라 찬 바람을 지나치게 쐬신 것이 폐를 상하게 했다 합니다.”
“허허, 본국에 있는 중신들은 전하를 제대로 모시지 않고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
홍윤범이 혀를 찼다. 하지만 답답해하고만 있을 여유는 없었다. 곧바로 남쪽을 향해 떠나야 하는 선전관 일행에게 물과 식량을 급히 보급해야 했다. 필요한 지시를 내리고 나니 기다리고 있는 문제가 있었다.
“교서에 따르면 모든 관리는 상복을 입고 북쪽을 향해 절을 올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되겠습니까? 대관(代官)을 보내 전하의 영전에 절을 올리게 하셔야 하지 않을지요?”
대남도 관찰사는 본국에서 온 이주민과 토인, 왜노까지 합쳐 40만 백성을 다스린다. 이들은 모두 임금의 자녀이고, 당연히 국상을 맞아 슬퍼하며 예를 바칠 의무가 있다.
“이곳 대남에도 빈소는 차릴 것이고, 대남 백성들도 빈소를 찾아 전하의 영전에 절을 올릴 것이네. 그런데 굳이 대관을 보내자는 말인가?”
홍윤범은 본래 융통성이 좀 부족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 밑에 있는 아전들은 상관과는 조금 달랐다. 왜 대관을 보내야 하는지 열심히 설득했다.
“대행대왕께서는 5주 관찰사가 매년 초 대관을 보내 도성에서 새해 인사를 올리는 법도를 정하셨습니다. 안 해도 상관없는 새해 인사도 꼬박 올리게 하셨는데, 주상께서 훙거(薨去)하신 큰 사태를 맞이하여 어찌 빈전에 달려가 무릎을 꿇지 않겠습니까?”
“다른 관찰사들이 아무도 보내지 않는데 나만 대관을 보내서 조문한다면, 조정에서 본관을 일컬어 아부꾼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사또,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하는 것이 어찌 아부이겠습니까? 더구나 우리 대남은 본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주인지라, 늦게 소식을 듣고 우물거리는 사이 이미 다른 4주에서 대관을 보냈을 수도 있사옵니다.”
진남성 아전들은 어떻게든 홍윤범의 등을 떠밀어 대관을 보내게 하려고 필사적이었다. 조문 건으로 좋은 평을 받아야 대남이 조정에서 사민하는 백성이나 물자, 자금 등을 지원받을 때 조금이라도 다른 주보다 유리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국에 돌아가기 위해서도 공적을 많이 세워야 했다. 관찰사와 그 예하에 있는 인원 일부를 제외한 다른 관리들은 대부분 전가사변을 당한 죄인들이고, 공을 세우지 않으면 죄인 신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면 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대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대관을 보내는 것이 옳기는 하겠구나. 헌데 지금은 아직 12월이라 본국 인근은 바다가 꽤 거칠 것이고, 북풍을 안고서 올라가야 하니 뱃길이 힘들 것이다. 보내더라도 한두 달 뒤에 신년 하례사가 가는 시기에 보내도 되지 않는가?”
바다 사정 때문에 대남도에서는 신년 인사차 상경하는 대관도 1월 말이나 2월 초에 도성에 도착하는 게 상례다. 국상은 5개월 동안 치르는 게 법도고, 상감께서 11월에 돌아가셨으므로 4월까지만 도착하면 장례일 전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아전들은 홍윤범과 생각이 달랐다. 당장 보내야 한다고 난리였다.
“북방 3주는 육지로 연결되므로 늦어도 1월까지는 모두 대관을 보낼 겁니다. 곧바로 바다를 건널 수 있는 구주에서는 더 빠르겠지요. 우리도 당장 보내야 다른 주와 비슷하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사또께서는 새 임금께 불충한 자로 낙인찍히고 싶으십니까?”
세자, 아니 새 임금은 효성이 지극하다고 명성이 높다. 조보에서도 ‘세자 저하께서 부왕께 시를 지어 바치셨다’ 같은 기사가 종종 실리곤 했었다. 그러니만큼 홍윤범이 선왕의 장례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여서 손해가 될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알겠다. 그러면 누구를 보내는 게 좋겠는가?”
“수도대장, 대중성주 정준석으로 하시옵소서.”
아전들이 입을 모아 정준석을 추천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준석은 도성에 자주 오간 바 있으며, 초대 관찰사 정일한 대감의 아들로 지금 대남에서 사또를 제외하면 가장 지체가 높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또를 대신해서 국상에 참여할 사람이니, 마땅히 지체 높은 이를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보기에는 그대들이 눈꼴신 자에게 위험부담을 떠넘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만….”
근래에는 다소 부드러워졌지만, 대남도 개척 초기에 관찰사인 부친을 배경으로 둔 정준석은 성품과 행동이 거칠기 짝이 없었다. 당연히 그 패악을 곧바로 감당해야 했던 아전들은 지금도 정준석에게 별로 감정이 좋지 않았다. 홍윤범도 그건 알고 있었다.
“아닙니다. 대중성주가 가장 적절한 대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흠….”
사실 홍윤범으로서도 정준석은 눈에 좀 거슬리는 존재였다. 무엇보다 대중성과 거기에 사는 5만 백성을 사실상 자기 속민(屬民)인 것처럼 보유하고 있는 호족이나 마찬가지 존재라는 게 문제다.
그렇다고 제거할 수도 없다. 정준석은 중추원 중진인 부친 정일한을 통해 중앙에도 연줄이 있고, 현지에서는 아타얄과 얽혀 있다. 후환을 생각하면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다.
하지만 만약에 정준석이 도성에 조문 사절로 가다가 난파해서 죽는다면? 그럼 장차 화근이 될지 모르는 호족을 간단히 제거할 수 있다. 그 자리도 어렵지 않게 메울 수 있다.
대중성은 그 대신 다스릴 관리와 군사를 보내면 되고, 아타얄과도 새로 관계를 맺어 이어갈 수 있다. 잘 도착해서 장례에 잘 참례하고 돌아오면 그건 그거대로 상관없다.
“좋다. 당장 대중성으로 배를 보내서 대중성주를 불러오라. 도성에 가는 데 쓸 배는 우리가 보유한 비류선으로 하도록 하자.”
“예, 사또.”
아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람만 하나 달랑 보낼 것이 아니라 국상을 치르면서 사용할 수 있을 이런저런 물품도 마련해 보내야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