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86
3부 004화
– 5 –
대화를 나누려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필요가 있다. 앙드레를 다시 불러 포도주와 안주로 삼을 주전부리들을 가져오게 했다. 점심을 두둑하게 먹었으니 안주가 푸짐할 필요는 없었다.
아라미츠 신부나 정호찬은 즐거운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과일과 치즈를 씹었다. 하지만 이형준은 자기 앞에 놓인 술잔에 손도 대지 않았다. 벌건 대낮부터 술을 마신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부사, 기분 좀 푸시오. 아직 우리가 함께해야 할 시간이 잔뜩 남았는데, 계속 이리 역정을 내시면 남은 여정이 어찌 즐겁겠소?”
“소인이 낮술을 즐기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어쩔 수 없지. 이 양반 기분을 풀어줄 다른 물건이 필요하겠다. 쓴웃음을 지은 뒤 앙드레를 다시 불렀다.
“여기 이 노인은 포도주가 싫다는군. 술 말고 뭐 마실 게 없겠나?”
“튀르크풍 커피와 질 좋은 대남도산 홍차가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드릴까요?”
터키 커피야 당연한 존재라 치고, 대남도 차가 프랑스까지 들어온다고? 놀라웠지만 표정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런 건 내가 당연히 ‘알고 있는’ 정보일 테니까.
“그럼 커피 한 주전자 갖다주게.”
“예, 전하.”
앙드레가 커피를 가지러 가자 정호찬이 빙그레 웃으며 내가 궁금해하는 부분을 짚어주었다. 아이고 이 고마운 놈 같으니.
“불랑국에서는 여인네들의 사치품으로 차가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사내들은 맛이 밍밍하여 영 맛이 안 난다고 별로 즐기지 않지만, 불랑국 귀족 부인들은 우리나라에서 들여온 다기를 써서 차를 마시며 사교하기를 즐긴다고 하더군요.”
“중국산 다기는 쓰지 않는가?”
명나라가 망했는지 안 망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이런 것도 조심해서 물어야지. 다행히도 내 질문이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후송 쪽에서 자기를 제법 생산하기는 합니다만, 아시다시피 질과 양에서 모두 우리 제품에 비할 수준이 되지 않습니다. 경덕진(景德鎭)의 명성도 이미 흘러간 지 오래이니, 한번 무너져버린 기반을 회복하기가 어찌 쉽겠습니까?”
후송? 후송(後宋)? 명나라가 아니고?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송나라는 금나라에 밀려 강남으로 내려갔다가 몽골의 공격으로 막을 내린 남송이다. 그 전에 존재한 잡다한 송나라들이야 딱히 신경 쓸 필요가 없었고.
명나라가 아예 망하고 청나라가 중국 전체를 차지했거나, 화북을 빼앗기고 강남에서 남명이 유지되고 있다면 안타깝기는 해도 딱히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런데 후송이라니?
“내가 본국을 떠난 지 꽤 오래다 보니 통 생각이 안 나는데, 지금 후송이 경덕진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은가?”
경덕진은 강서성(江西省), 즉 장시성에 있는 중국 최대의 도자기 제작단지다. 만력제가 나라 살림을 왕창 날려버리면서 경덕진도 꽤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내가 장조로 재위하던 시절만 해도 그 위상은 아직 굳건했다.
당시 우리 조정에서는 경덕진을 따라잡으려고 아득바득 애를 쓰고 있었다. 양응룡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명나라 도공들을 붙잡아 왔고, 주산진을 통해서도 기술자를 빼돌렸었다. 어떻게든 더 좋은 도자기를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그래도 내가 죽을 때까지는 조선산 도자기가 경덕진을 앞지르지 못했다. 따뜻한 남쪽 땅에 살던 중국인 기술자들이 추운 북방 땅의 기후에 적응하고 그 풍토에 맞도록 가마를 개량해야 했고, 경덕진과 다른 연해주의 도토(陶土)에 익숙해지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물론 기존에 생산하던 것보다는 훨씬 우수한 도자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경덕진이 전성기에 쏟아내던 수준에는 끝내 도달하지 못했는데, 그게 지금은 경덕진에서 만든 물건들을 무시하는 경지에까지 올라갔다고? 실로 세상이 뒤집혔다고 할 수밖에 없겠다.
“옛날에는 귀인이라면 경덕진에서 구워낸 잔과 그릇만 쓰던 시절이 있었는데…우리 물건이 그보다 좋아졌다는 건 다행이네만, 경덕진이 망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군.”
“중원이 셋으로 나뉘어 허구한 날 서로 싸움을 벌인지도 벌써 수십 년인데, 어찌 저들이 차분하게 그릇이나 굽고 있겠습니까?”
정호찬이 웃었다. 나도 마주 웃었지만, 속으로는 놀란 마음을 억지로 눌러 앉혔다. 중원이 셋으로 갈라졌다고? 그럼 후송은 반란세력이고, 명과 청이 따로 있는 건가? 화북을 청나라가 차지하고, 강남을 후송과 남명이 반분했나?
대놓고 질문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앙드레가 수레를 밀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어디 나무랄 데 없는 솜씨로 커피를 따르면서 시중을 들었다. 내가 정호찬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이형준이 커피를 보자 비로소 굳어 있던 얼굴을 좀 풀었다.
이 양반도 옛날에 과거 준비하면서 커피깨나 빨았었나 보다. 반촌다점도 꽤 드나들었을지 모르지. 세상 반대편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에서 그 추억이 떠오른 모양이다.
“음, 나도 한 잔. 이거, 꽤 괜찮은 커피군.”
나를 포함해서 포도주를 마시던 세 사람도 커피를 들었다. 사실 프랑스에서도 커피는 제법 귀중품이지만, 최근에 터키에서 상당한 양을 루이 14세에게 선물로 보냈다고 했다. 앙드레의 말을 들은 아라미츠 신부가 웃으며 설명했다.
“저희 왕국에서는 합스부르크를 견제하기 위해 백여 년 전부터 튀르크와 동맹을 맺었지요. 그 일환일 겁니다.”
“그러한가. 우리 조선은 그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지. 옛날 장조께서 파견하신 이기빈이 모카를 털어버린 뒤로….”
내가 슬쩍 운을 꺼내자 정호찬이 뒷부분을 보충했다.
“해성공 이기빈이 벌인 노략질 때문에 그 뒤로 돌궐국과는 냉랭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지요. 딱히 서로 공격하고 말고 할 건 아니지만, 견서사가 올 때도 돌궐국에는 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쉬울 건 없습니다. 돌궐과 굳이 사이가 좋아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요.”
이기빈의 모카 약탈로 시작된 조선과 오스만 사이의 악연에 관해, 셋이 한참을 떠들어댔다. 그러다가 본래 화제인 도자기 문제로 돌아갔다. 정호찬이 아직 커피를 따르지 않은 빈 찻잔을 하나 뒤집어 보였다.
“보십시오, 전하. 지금 시종이 가배를 담아온 주전자와 잔도 모두 해삼위에서 구운 겁니다. 여기, 해삼위를 뜻하는 인장이 찍혀 있지 않습니까.”
바닥에는 ‘해삼위제일요(海參?第一窯)’라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정호찬이 설명하기를, 지금 해삼위에는 15번 가마까지 있고 이 가마들은 각종 그릇을 각각 매년 5만 점씩 구워내고 있다고 했다. 아라미츠 신부도 끼어들었다.
“도자기는 인삼만큼 비싸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꽤 잘 팔리는 교역품이지요. 저희 예수회도 조선에서 사들인 도자기 판매로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경쟁자가 많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요. 그건 조선의 권리니까요.”
예수회가 직접 교역에 종사해서 선교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는 건 예전에도 마찬가지였다. 헌데 경쟁자를 운운하는 걸 보면, 드디어 교황청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다른 나라들이 조선에 배를 띄우고 있나 보다.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가 말이다.
셋이서 조선과 유럽 간의 교역에 관해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아시아에서 유럽과 가장 많은 교역을 하는 나라로서 조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이나 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나 일본이 서양과 전혀 교역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일단 일본은 쇄국에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 영향 밑에 있는 규슈 대신 도쿠가와의 직할지인 오사카를 개항장으로 열고, 영국과 네덜란드 상선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중국은 정치적 사정으로 제대로 된 교역 통제가 안 되고, 마카오가 중심이다.
나한테는 70여 년분의 지식이 없으니만큼 조심해서 입을 놀려야 했다. 5차부터 7차까지 세 차례 견서사에 관해서도 간략히 들었다. 크게 트집이 잡힐 실수는 범하지 않은 것 같다.
한참 지나고서야 겨우 이야기가 경덕진으로 돌아갔다. 마침내 정호찬의 입에서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이야기, 중국이 처한 정치적 사정에 관한 언급이 나오기 시작했다.
“후송의 조씨는 중원에서 가장 풍요로운 알짜배기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방에다 적을 두고 있으니 어찌 장인들이 평안히 그릇을 구워 내다 팔겠습니까?”
조씨? 송나라 황실이 조씨였다. 그럼 지금 존재하는 후송은 송나라의 후예, 또는 그 후예를 자처하는 세력이 세운 나라라는 소리로군.
“가장 풍요로운 강남땅을 차지했으니 자신감이 붙어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래 봐야 도적놈의 후손 아닙니까? 후송태조를 자처한 조승복만 해도 제 말로는 자기가 송나라 공종(恭宗)의 후손이라 주장했지만, 실은 그 근본도 알 수 없는 떠돌이에 불과합니다. 대명 태조 홍무제만큼이나 말입니다.”
중국사에서 대격변이 일어날 때 보면 꼭 그런 놈들이 있었다. 본래 출신은 미천하지만 자기 능력으로 군대를 모아 세력을 만드는 놈들. 대개는 초적(草賊) 신세로 끝나지만, 그중 최고의 성공사례가 명 태조 주원장이다. 후송도 그런 놈이 세운 모양이다.
송나라 공종은 쿠빌라이에게 항복한 마지막 황제다. 원나라 귀족으로 받아들여졌다가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공종과 함께 항복하기를 거부한 송나라 신하들이 공종의 이복형인 송 단종을 받들고 벌인 마지막 전투가 애산 전투다.
“그 때국놈들은 청국과 회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고, 서국과는 강남을 일통하겠다는 욕심에 몇십 년을 두고 싸워오고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우리 수군과도 싸우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경덕진의 도요를 제대로 운영할 여력이 없고, 기술도 퇴보했습니다.”
‘때국놈’이란 조선에서 중국 한족을 가리키는 비칭이다. ‘때도 안 씻는 놈’과 ‘대국(大國)’이 섞여서 만들어진 말인데, 장조 때만 해도 명나라를 상국으로 모시다 보니 점잖은 자리에서는 절대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거침없이 쓰네? 후송이 우리에게 갖는 위상을 알 만하군.
“하필 그때 경조께서 돌아가시지만 않으셨어도 역사가 달라졌을 텐데 말입니다. 조가 따위 도적놈이 공제의 후손이라는 명목으로 제위를 넘보다니,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정호찬 2호는 1호보다 확실히 수다스러웠다. 게다가 상상력도 풍부했다. 이 대화는 어느새 ‘역사가 우리가 아는 바와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공부가 부족한’ 사람으로 되어있어서, 입을 많이 놀릴 필요는 없었다.
“전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지난 정묘년 전후로 대명 각지에서 대규모 민란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가뭄이 계속되는 데다가 하필이면 병인년에 경조께서 붕어하셔서, 선조 건원제께서는 중원에 군사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대국에서 계속 원병을 청했는데도 말이지요.”
경조(景祖)는 성이, 선조(宣祖)는 연이가 받은 묘호였다. 그리고 연이가 처음 제정한 연호가 건원(建元). 임금이라는 호칭은 여전히 만인지상의 군주를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성이는 비교적 평화롭게 재위하며 국력 배양에 주력하다가 병인년(1626)에 54세로 죽었다. 연이는 31세로 즉위하여 임신년(1632)에 칭제건원했고, 경인년(1650)에 55세로 죽었다. 나는 연이의 손자, 즉 ‘내 고손자’였다.
조선의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성이와 연이 모두 살 만큼은 산 셈이다. 다시 만나지 못한 건 아쉽지만, 다들 살 만큼 살고 이룰 만큼 이루었다고 생각하니 크게 슬프지는 않았다. 성이는 내가 쌓은 기반을 단단히 다졌고, 연이는 이를 바탕으로 칭제건원을 했다. 딱 50년 전이다.
“그 일에 관해 전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비록 국상 중이었다고는 하지만, 건원제께서 대의를 위해 군사를 내셨어야 한다고 여기지 않으십니까?”
갑자기 이형준이 끼어들어 열을 냈다. 맛있는 커피 덕분에 기분이 좀 좋아진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호란과 왜란을 치르면서 명나라에서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은혜를 직접 체험하신 장조께서는 군사를 보내 그 빚을 갚으셨지만, 선조께서는 그만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잊은 게으른 신하들의 꼬드김에 넘어가시어….”
이형준은 차마 연이를 직접 비난하지 못하고 조정 신하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하지만 나는 연이가 왜 군사를 내지 않았는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가르친 대로, 조선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명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을 쓴 것뿐이다.
“부사, 역사가 이리되었을지 저리되었을지 상상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혼자 분개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소? 옛일을 후회하기보다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는 편이 낫지 않겠소?”
이 고리타분한 영감은 연이가 제때 반란군을 쳐부숴 줬으면 명나라가 망하지 않았으리라고 아쉬워하나 보다. 글쎄, 그랬으면 우리는 지금도 명나라를 상전으로 모시고 살아야 했을 텐데. 이쪽은 이미 역사가 바뀐 세계니까, 대체역사 속의 대체역사인가.
“어디 도리를 지키는 일뿐입니까? 양씨의 난을 토벌하고 얻은 것과 비교도 안 되는 막대한 전리품이 굴러들어왔을 테니 그 어찌 나라에 득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또한, 그 정도 공이면 우리가 명을 다시 세워 준 셈이니, 어찌 대국의 스승이 되어 그 보답을 받지 않겠습니까?”
“어허, 서장관!”
이형준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정호찬이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어째 이형준이 보인 표정이 정말 화가 난 것 같지가 않은데? 속셈을 들켜서 뜨끔한 사람 같은 태도로군. 명나라를 살렸어야 한다는 게 도리 때문이 아니라 정호찬 말대로 빨대를 꽂았어야 한다는 거였나?!
그러고 보니 박지원이 허생전에서 ‘대국의 스승’이라는 표현을 썼었지? 정호찬이 말한 대로 우리가 명나라를 구한다면, 확실히 우리 쪽에서 재조지은(再造之恩)을 베푼 셈이 된다. 그러면 명나라로서는 우리가 내미는 청구서를 웬만하면 다 들어줄 수밖에 없긴 할 거다.
“물론 그랬으면 우리는 아직 명에서 책봉을 받는 번국이기는 하였을 것입니다. 허나 약간의 명분은 버리더라도 훨씬 큰 실리가 있다면 감수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칭제하기 이전에도 우리가 하기를 원하여 못 한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형준이 약간 씩씩거리는 표정으로 서둘러 변명을 했다. 뭐, 사람에 따라서는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기에 나도 크게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렇군. 확실히 이 부사 말대로 선조 임금께서 대명을 구원하셨어도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았을 듯하오.”
삼국지 때처럼 세 토막이 난 중원이 서로 항쟁하는 동안 내 실속을 차리는 것도 괜찮으나, 한 놈이 통일왕조를 유지하는 동안 그 목줄기를 부여잡고 기름을 짜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서하나 요, 금이 송으로부터 세폐를 받은 것과 비슷하겠다.
“그래도 우리 폐하께서 누구에게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는 지금 세상 쪽이 나는 더 좋구려. 매년 서너 차례씩 빼먹지 않고 사신을 보내서 ‘천자께 문안을 여쭙습니다’ 하던 시절을 생…아니, 상상하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려고 하는걸.”
그것만이 아니다. 나는 커다란 통일 중국이 지금도 무섭다. 빨대를 못 꽂아도 좋으니, 그냥 계속 서로 싸우면서 나뉜 상태로 있어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연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