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895
3부 0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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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에서 보내는 화려한 프랑스식 궁정 생활도 나쁘지 않았다. 손님으로 지내고 있으니 딱히 나서서 할 일도 없고, 귀족이나 관료들과 만나 즐겁게 사교를 나누는 정도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문제는 그 ‘사교’가 쉽게 생각하듯이 편하고 재미있기만 하지는 않다는 데 있다. 사교활동은 주로 밤에 이루어지는데, 베르사유의 밤은 낮보다 더 길기 때문이다.
“국왕 폐하는 어떻게 이런 일정을 매일같이 수행하시지요?”
저녁 6시에 시작된 사교는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계속된다. 연극을 관람하고 현대 발레와 생판 다른 발레를 보고, 무도회도 참석해야 한다. 틈틈이 벌어지는 노름판에 끼어서 룰렛을 하거나 카드도 펼쳐야 했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배가 고프니 중간에 식사도 2회나 한다.
게다가 이 모든 행사는 철저한 시간표에 따라 진행되며, 그 과정에서 꼭 준수해야만 하는 엄격한 예법까지 있다. 샤를이 최선을 다해서 나를 붙들고 가르쳤지만,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나는 이방인이므로 실수를 범해도 크게 눈총을 받지는 않았다.
“9시 즈음에 방으로 돌아가 잠시 눈을 붙였다가 뜨니 어느새 시계가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더군요. 낮과 밤이 완전히 바뀐 느낌입니다.”
올렝카는 4시에도 일어나지 못했다. 그동안은 밤에 잘 수밖에 없는 어린 공주들을 수행하다 보니 제때 자고 제때 일어났는데, 요즘은 내 곁에 붙어 나와 같이 생활하다 보니 신체 리듬이 뒤엉켜서 더 피곤해하는 듯했다.
“왕의 의무는 국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지만, 더불어서 그 지위에 어울리는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 폐하께서 품고 계신 신념이니까요.”
피곤한 얼굴을 하고 손에 포도주잔을 든 중년 사내가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루이 14세가 거느린 여러 장군 중에서도 맨 앞에 서는 사람, 육군장관 루부아 후작 프랑수아-미셸 르 텔리에였다.
“폐하께서는 국사를 게을리하지 않으시면서도 낮에는 사냥과 테니스를, 밤에는 춤과 연극을 즐기시며 왕자(王者)의 위엄이란 이런 것이라고 천하에 드러내 보이고 계십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거대한 궁정을 이끌어나가는 힘이라고 할 수 있지요.”
루이 14세가 막 왕위에 올랐을 때, 궁정을 채운 신하 숫자는 겨우 6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국왕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 수는 1만 명에 달한다.
“선왕께서 왕위에 계시던 시절만 해도, 왕국의 권력은 상당 부분이 귀족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을 폐하께서 실로 굳건한 의지로 쳐부수고, 왕실의 권위를 쌓아 올리신 것이지요.”
루부아 후작은 전쟁이 터졌을 때나 겨우 소집되던 왕의 군대를 40만에 달하는 유럽 제일의 상비군으로 만들어 낸 장본인이었다. 그는 귀족들이 쥐고 있던 연대의 지휘권을 빼앗기 위해 국왕 직속인 부관을 배치해서 실질적인 지휘권을 가져온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했다.
“우리 왕국에서 귀족들이 전통적으로 보유한 기득권은 조선 귀족들이 가진 권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선왕께서도 조선 임금의 권위를 무척 부러워하시면서 본뜨려고 생각하셨으나, 귀족들의 힘이 너무 강해 도저히 달성하실 수 없었지요.”
“하기야 우리 조선에서도 신하들의 힘이 강할 때는 군주가 개혁을 시도해도 자기 이득에만 눈이 벌건 신하들 때문에 좌절되곤 했소. 우리 왕조는 아니고 이전 왕조 때 이야기지만.”
조선 국왕의 호칭은 ‘임금’으로 정착한 모양이구나, 나쁘지 않네. 그리고 내가 말한 ‘이전 왕조’란 당연히 고려 이야기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뀐 건 복잡하게 설명할 것 없이 단순히 왕조교체로 두는 편이 유럽인들이 이해하기 편하다.
“결국, 폐하께서는 즉위 초기에 대대적인 귀족들의 반란을 겪기까지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장차 조선 임금처럼 절대적인 권력과 권위를 확보하겠다고 결심하셨지요.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군대가, 그리고 군대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이쪽 세상에서도 프랑스 귀족들이 프롱드의 난을 일으켰었던 모양이군. 어렸을 때 그런 반란을 겪었다면 트라우마가 되고도 남을 만하다.
“그야 당연한 일이오.”
나도 38년 동안 왕 노릇 하면서 돈 걱정하지 않은 해가 단 한 해도 없었다. 루이 14세가 즉위했을 때가 1643년 5월 14일이라고 하니 나보다 1년 더 오래 왕으로 지내긴 했다만, 친정은 1661년부터 했다니 돈 때문에 고민한 기간은 내가 훨씬 길 거다.
“폐하께서는 전장에서는 힘으로 적들의 무릎을 꿇리셨고, 궁정에서는 권위와 위엄으로 모든 이가 스스로 폐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겨우 귀국 임금께서 행사하시는 정도의 권한을 쥐었을 뿐이니, 폐하께서 바라시는 경지까지는 아직 멀었습니다.”
루이 14세는 중국 명나라 황제 정도쯤 되는 절대권력을 쥐고 싶은 모양이다. 프랑스에 나지 말고 만력제로 태어났으면 좋았으리라. 프랑스처럼 사방에서 바글대는 온갖 봉건시대의 잔재 따위에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었을 테니.
하지만 군대를 양성하고 장려한 궁궐을 짓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내가 이 점을 들어 질문하자 루부아 후작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 문제에서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리라.
“제 일이 아니긴 하지만, 돈을 마련해야 하는 재무부에서는 죽을 노릇이긴 하지요. 그래도 지금 우리 왕국은 이 정도 지출은 감당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루부아 후작은 망해 가던 프랑스 왕국의 재정을 회복시킨 일등공신으로 재무대신 두 사람을 손꼽았다. 다만 처음 거명된 사람은 누군지 바로 알아채기 어려웠다.
“전임 재무대신 벨릴 후작은 횡령을 저지른 죄로 투옥되어 종신형 판결을 받고 옥사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왕국의 재정이 크게 개선된 건 사실이지요. 만약 벨릴 후작이 구축한 기반이 없었다면, 지금 재무대신인 콜베르 경도 신통한 성과를 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벨릴 후작이라는 건 아무래도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를 가리키는 모양이다. 부패 혐의로 제거됐고, 매우 유능했으며, 콜베르의 전임자라고 하는 등이 모두 푸케를 의미하는 특징이 맞는 듯하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작위까지는 써놓지 않았으니 알 수가 있나.
콜베르가 언급되니 그래도 할 말이 있다. 직접 만나진 않았어도 배운 바는 있으니까.
“그래도 콜베르 경이 힘써 일한 덕분에 나라 살림이 훨씬 좋아지지 않았소? 중구난방이던 도량형을 통일하고, 국내 관세를 폐지해서 상업을 진흥하고, 부패한 징세리들을 엄히 벌해서 세금 누수를 줄여 세입을 두 배 이상 늘렸다고 들었소.”
“…그렇기는 합니다.”
콜베르를 한참 깎아내리다가 내가 한마디 내밀자 마지못해 인정하는 걸 보니 루부아 후작은 콜베르를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정치적으로 갈등 관계이기라도 한가? 이거, 화제를 바꾸는 편이 좋겠군.
“그런데 의문이 하나 있소. 실례가 될지도 모르는 질문이지만, 귀공은 국왕께서 귀족들을 억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는 작업을 열심히 돕고 있지 않소? 그런데 그대도 후작 작위를 가진 귀족이 아니시오? 같은 신분을 가진 이들을 배반하는 일이라 생각하지는 않으시오?”
루부아 후작은 단박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법복귀족입니다. 돌아가신 선친께서 마자랭 추기경께 발탁되어 육군대신에 오르실 수 있었던 덕분에 저도 여기 있지요. 대검귀족 따위가 힘을 잃는 건 저와 무관한 일입니다.”
법복귀족(法服貴族)은 왕에게 큰돈을 바치고 귀족 작위를 새로 하사받은 신흥 귀족이다. 대개 부르주아 출신으로, 관료나 법관으로 봉직하는 경우가 많다.
대검귀족(帶劍貴族)은 중세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적인 귀족이다. 삼총사에 등장하는 달타냥과 그 친구들 같은 이들이 전형적인 대검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폐하의 권위가 굳건하게 다져지면, 장차 도팽께서 왕위에 오르실 때쯤엔 귀국 임금에 버금가는 왕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겁니다. 순순히 폐하의 권위를 따르기를 거부하는 옛 세력들이 아직 다수 남아 있지만, 그자들도 언젠가는 제압할 수 있겠지요.”
“잘 되기를 바랍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루이 16세 시대까지, 지금부터 100년 뒤까지도 못한 일인데 그게 과연 잘 될까 싶다. 제대로 유지되는 나라를 만들어 국정을 안정시킨다면 부르봉 왕가에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럼 이 세계에는 프랑스 혁명이 없겠지?
프랑스 대혁명이 없는 세계, 민주주의가 없는 세계…솔직히 잘 실감이 안 난다. 과연 내가 얼마나 인류 역사를 비틀어버린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섬?해졌다. 프랑스 혁명이 안 일어나더라도 민주주의 자체는 생겨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고.
이제껏 동아시아 역사를 바꿀 때는 전혀 안 들던 생각이 유럽사를 바꾸면서 들다니, 어딘가 씁쓸하다. 나도 서구중심주의자이긴 했나 보다.
– 8 –
어쩌다 만난 루부아 후작 이외에 다른 장관들과는 딱히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가 없었다. 다른 이들은 굳이 따로 만나지 않더라도 콜베르 정도는 만나보고 싶었는데, 도무지 기회가 없었다. 그 양반은 완전히 일중독자라 밤에 열리는 파티 같은 데는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다른 대신들도 볼 수 없는 건 좀 아쉽군.”
“전하께 무슨 조약을 체결할 권한 같은 게 없다는 건 저들도 알고 있으니까요.”
옆에 선 정호찬 말마따나, 나는 누가 봐도 유람이나 하러 온 젊은 왕자였다. 정책 실무를 담당하는 이들이 일부러 만나려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조선에 관한 정보는 80년 동안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서 충분히 전해졌다. 견서사가 처음 물꼬를 튼 뒤에 조선에서 찾아온 유학생도 있었고, 앙리 4세나 루이 13세가 파견한 기술자 중 귀국을 택한 이들도 있었다. 프랑스에서 조선을 구경하러 다녀온 여행가도 있었다.
두 나라 사이를 왕래하는 이들이 이용하는 주된 교통수단은 프랑스 동인도회사 교역선이다. 프랑스 동인도회사는 잉글랜드나 네덜란드처럼 자주 배를 보내지는 못했지만, 서적과 사람을 실어나르며 서로에 대한 정보를 알리기에는 충분한 정도였다.
“그러니 굳이 풋내기 왕자를 맞아 우리나라에 대해 질문을 퍼부어댈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요. 불랑국 신료들은 자신이 필요한 만큼은 이미 우리에 관해서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건 참 편하긴 한데…조금 불안하기도 하단 말일세.”
편한 건 당연히 귀찮은 일이 덜 생기니 좋다는 거지. 그리고 불안한 건 조선에 관해 저들이 오해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을 기회가 없어서이다. 분명히 프랑스 관료들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을 텐데, 저들이 질문해야 그걸 고쳐주지. 내가 나서서 막 떠들기도 좀 그렇고.
물론 조선의 ‘현대사’는 나도 모르는 부분이 꽤 있다. 하지만 장조 시절에 있었던 일까지는 확실히 알고 있고, 그 뒤에 있었던 사건들도 어느 정도는 안다. 그동안 내 수행원들에게 설명을 웬만큼은 들었거든.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은 신료들 말고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마시옵소서.”
“그건 그렇네만.”
사실, 매일 밤 파티에서는 내 주변에 사람의 벽이 생길 지경이다. 조선에 관해서, 동양에 관해서 어렴풋하게밖에 모르는 남녀노소가 몰려들어 질문 공세를 던져 대니 정신이 없다.
“하지만 그네들이 하는 질문이란 태반이 한심하기가 짝이 없단 말일세. 그런 질문을 끝도 없이 받고 있다 보면 귓속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어오고, 그저 눈앞에 가득한 여인네들의 하얀 속살과 부풋한 가슴만 두 눈에 들어오니….”
“전하, 부사 영감께 품행을 단정히 하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사실, 내 주변에 몰려들어 꺅꺅거리는 관중 중에는 은근슬쩍 추파를 던지는 여인네들도 꽤 섞여 있다. 그래서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매일 침대를 바꾸더라도 별 탈이 없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내가 내 발목을 묶었다.
“으흠, 그러긴 했지.”
올렝카를 내 옆에 들어앉히는 조건으로 다른 여자들한테는 더 손 안 대겠다고 이형준에게 약속했었지, 쳇.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여정 내내 내 정치적인 방패가 되어줄 이형준에게 밉보이는 행동을 계속할 수도 없으니, 올렝카를 건진 대가로 조용히 참는 수밖에 없다.
어느새 휴식시간이 끝나서 다시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니 사방에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또 몰려온다. 이제 또 한심한 질문 공세가 시작되겠구나.
“전하는 프랑스에 얼마나 머물 예정이신가요?”
“조선 왕실에서는 왜 프랑스에 자주 왕자를 보내지 않으시나요?”
“활 쏘는 모습 좀 보여주세요!”
아무래도 뭔가 좀 고상하고 품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들만 골라서 대화를 나눠야 할 모양이다. 괜히 들떠서 나한테 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막지 않고 받아줬더니 내가 버티질 못하겠다.
“성친왕 대공 전하, 오를레앙 공작께서 잠시 만나기를 청하십니다.”
“기꺼이 가겠소.”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라면 루이 14세의 동생, 왕제(王弟)다. 나와 같은 신분인 셈이다. 단, 나이는 나보다 한참 위니까 일단 윗사람 대접은 해줘도 좋겠지. 이 짜증 나는 상황에서 나를 구해주는 것만 해도 고개 숙여 절할 정도 가치는 있고말고.
“안녕하시오, 대공. 내가 잠시 어디를 다녀오느라 처음 만나는구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하.”
오를레앙 공의 작위는 일단 공작이니 각하라고 불러야 하나 싶긴 한데, 그럼 나보다 낮은 격으로 부르게 된다. 게다가 국왕의 동생이고 하니 그냥 전하라고 칭하기로 했다. 이것 참 예법이라는 게 은근히 골치가 아프구먼. 이럴 때면 그냥 내가 내 주변에서 지존이고 보스던 시절로 돌아가고프다.
“그래, 베르사유는 어떻소?”
“무척 장엄한 곳입니다. 말 그대로 제왕의 거처로서 위엄이 돋보입니다.”
필리프는 마흔두 살, 아직 꽤 젊은 미남이었다. 남자치고는 무척 화려한 복장에다 값비싼 장신구도 무척 많이 착용하고 있는 게 좀 거부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화술도 뛰어난 데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무척 정중해서 편안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놀란 건, 오를레앙 공작은 여성적인 옷이나 장신구 취향과는 달리 이미 상당한 군사적 성취를 이룬 바 있다는 사실이었다. 몇 차례나 전장에 나가 승리를 거뒀다고 했다.
“그럼 지금도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가십니까?”
“5년 전에 네덜란드 전쟁에 출전한 게 마지막이오. 다음 전쟁에 나갈 수 있을지는 폐하께서 결정하실 일이지만.”
전쟁터에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여성적인 복장에 대한 거부감이 확 사라지네. 옷차림만 저런 거지, 멋진 남자잖아?
나도 신이 나서 경인왜란 때 친정에 나섰을 때 이야기를 했다. 물론 내가 나섰다고 할 수는 없으니 ‘고조할아버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라고 바꾸긴 했지만, 오를레앙 공작은 내가 전하는 이야기를 무척 흥미 있게 들었다.
“90년 전에 양군 15만이 뒤엉키는 격전을 치렀다니. 그 시절 유럽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대격전이오. 요즘은 그때보다는 군대 규모가 커졌지만.”
그리고 오를레앙 공작은 한껏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가 치른 네덜란드 전역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야, 이거 여자들한테 둘러싸여 잡다한 질문이나 받는 것보다는 훨씬 즐거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