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01
3부 0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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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이후로도 한참 동안 프랑스 해군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육지에서 싸울 상대만 해도 차고도 넘치는데 바다까지 가서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해군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육군에 비하면 그 비중은 미미했다.
유럽 최강국의 지위를 확립하고, ‘대프랑스의 영광’을 진지하게 추구하기 시작한 리슐리외 추기경이 본격적으로 그 격에 맞는 함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뒤로 바로 성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계속 이어지는 전쟁과 내란 때문이었다.
“그 숙원을 이뤄낸 사람이 바로 재무대신이지. 그대는 진정 내 보물이오.”
“폐하를 위해서, 대프랑스의 영광을 위해서 한 일일 뿐입니다.”
루이 14세는 콜베르에게 재무대신과 더불어 해군대신까지 겸직하게 했다. 그리고 국왕의 기대와 지원에 힘입은 콜베르는 성공적으로 대규모 해군 함대를 만들어 냈다. 불과 20척에 불과하던 프랑스 해군은 20년 사이 270척이 되었다.
콜베르는 중상주의에 근거해서 프랑스의 국부를 증진하는 데 국가 경영의 중점을 두었다. 그러자면 상품 수출을 늘려야 했고, 수출을 확대하려면 대규모 상선단이 필요했다. 그다음 차례로 상선단을 보호할 함대가 필요해지는 건 당연했다.
“어디 그뿐인가. 상선단 자체도 군함으로 바뀔 수 있지.”
“폐하, 저는 그런 일이 되도록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이미 아르마다의 시대가 아니며, 가볍게 무장한 상선은 제대로 된 군함을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 상선은 상선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는 편이 폐하께 충성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백 년 전, 스페인 무적함대(아르마다)가 잉글랜드를 침공하던 시절만 해도 군함과 상선을 칼로 무 자르듯이 구분하지 않았다. 똑같은 갈레온이 상품 싣고 장사하러 다니면 상선이고, 대포를 좀 더 싣고 전투원을 추가로 승선시키면 군함이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잉글랜드의 메리 로즈 호 같은 전문적인 전투함이 없지는 않았다. 허나 해전에 투입되는 함선 중 다수는 여전히 징발한 상선이었다. 잉글랜드를 정복하러 출정했던 스페인 무적함대도 민간 상선을 징발해서 편성한 배가 대부분이었다.
“이제 그런 시대는 갔습니다. 적 함대를 물리치고 바다를 통제하려면 처음부터 군함으로 설계된 배가 필요합니다. 화물선에 무장만 해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사략선으로 쓸 수 있을 뿐입니다.”
콜베르는 차분하면서도 국왕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상선을 군함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자기 말이 정면으로 논박당한 셈이지만, 루이 14세는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런가? 그야 그대가 짐보다 잘 알겠지. 짐에게 중요한 건 그대가 프랑스를 위해서 아주 강력한 함대를 구축해 주었다는 사실뿐이니 말일세. 지난 20년간 바친 노력의 결과지.”
국왕의 칭찬을 받으면서도 콜베르는 표정에 별 변화가 없었다. 거, 대리석 같은 사람일세.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나오는 묘사였던가? ‘청동 심장, 대리석 얼굴’이라고 말이다. 콜베르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만.
“재무대신께서 하신 말씀이 전부 맞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폐하께 우리 조선에 조선공을 파견해달라고 부탁드린 겁니다.”
지난 74년 동안 조선 수군은 말 그대로 동아시아 바다를 제패했다. 해상에서 조선 수군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에도 막부는 두 차례 전쟁을 통해 궤멸 직전까지 몰린 선박 세력을 재건하는데 근 30년 가까운 세월을 들였다고 했다. 그것도 상선단이 중심이고 수군은 극히 미약했다. 우리한테 하도 호되게 당한 바람에 바다에서 맞설 생각은 아예 포기한 모양이다.
“막부가 보유한 왜국 수군은 내해에서 해적이 다시 설치지 않도록 억제하고 자국 연안을 지키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전선은 경인왜란 때 쓰던 배를 대부분 그대로 쓰고 있으며 양선도 일부 보유하고 있으나 그 수는 많지 않습니다.”
“알겠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일이 있는데, 을미동정 때 도망쳐서 자취를 감춘 구귀가륭(구키 요시타카)은 끝내 세상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는가?”
“소인은 들은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만한 재주를 갖춘 자가 평생 숨어서 살았을 리는 없으니, 세상이 조금 잠잠해진 뒤에 이름을 바꾸고 덕천가에 출사하지 않았을지요.”
내 수행원 중 일본 쪽 전문가가 없으니 이 이상은 무리다. 하지만 구키 요시타카는 내가 꼭 잡아 죽이겠다고 명시한 전범 중 하나였다. 을미동정 이후로 조선 눈치를 팍팍 보게 된 에도 막부가 공개적으로 기용할 수는 없는 인물이다. 아마 이형준의 말이 맞으리라.
“내 생각에도 그럴 법하구나.”
일본이 보유한 양선은 일반 상선이 더 많다고 한다. 다테 마사무네가 직접 만든 갈레온이 태평양을 횡단해 덕진성 앞바다에 나타나서 우리 관원과 백성들을 놀라게 하더니, 그 뒤로 일본 교역선이 종종 덕진성에 나타나서 물과 식량을 보급받아 가곤 한다고 했다.
“덕천 막부가 수군 제한령을 내려 각 영주는 대형선을 만들 수 없게 하지 않았던가?”
“이달(다테)은 그 배를 자기가 직접 띄우지 않고 막부에 헌납했다 알고 있습니다. 막부가 남만이나 미주에 배를 띄워 교역하면, 그 이문의 일부를 받는 형식으로 말이옵니다.”
그러니까 다테가 만든 양선을 도쿠가와가 리스해서 쓴다 이거로군. 쇄국을 포기한 막부에 유럽식 군함과 교역선이 필요하긴 할 테니 그걸 자기가 만들어 제공하다니, 다테는 정말로 감탄할 수밖에 없는 놈이다. 돈 버는 데는 정말 천재적으로 머리가 돌아간 것 같다.
그 외에 다른 이웃 나라들도 조선 수군에 비길 만한 해군력은 없었다. 아예 조선 수군이 주둔해서 지켜 주고 있는 유구는 말할 것도 없고, 청은 수군 따위 아예 조직하지도 않았다. 해안에 포대는 쌓았어도 바다는 조선 수군에 맡겨둔 상태다.
조선 수군이 적으로 삼을 만한 상대라곤 후송 수군과 남중국해를 가득 채운 해적들밖에 없는데, 이들은 모두 정크선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숫자가 지나치게 많아서 골치일 뿐이지, 일단 포착해서 전투만 벌어지면 16세기식 갈레온으로도 처바르고도 남는다.
“분명 지금은 아시아 해역에서 우리 조선 해군에 맞설 상대가 없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우리 조선이 프랑스와 손을 잡고 스페인 및 기타 국가와의 전쟁에 동참하기를 바라신다면, 조선 해군에 신형 전함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인정하셔야 합니다.”
기술은 언제나 필요에 따라 발전하기 마련이다. 조선 수군은 분명 풍부한 경험과 훌륭한 기반을 갖추었지만, 운용하는 함선은 을미동정 때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내 후계자들이 딱히 해군력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것만 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재무대신이 방금 설명했듯이, 유럽에서는 전열함이 이미 해전의 주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이 폐하의 바람을 들어드리려면 최소한 스페인 해군, 최악의 경우에는 잉글랜드 및 네덜란드 해군까지 상대해야 할 겁니다. 그러자면 최신 전함이 필요합니다.”
루이 14세는 네덜란드와 잉글랜드가 중립을 지킬 거라고 호언장담했지만 나는 절대로 그 예상을 믿지 않았다. 실제 역사에서 루이가 한 짓이 있는데 어떻게 믿나?
“브레스트에서 본 ‘솔레이유 루아얄’은 정말 훌륭한 전함이었습니다. 부디 그런 배를 건조할 수 있는 조선기사와 조선공을 조선에 파견해주시어, 조선 해군이 다음번 전쟁에서 프랑스와 함께 싸울 든든한 동맹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1670년에 완공한 솔레이유 루아얄(Soleil-Royal)은 프랑스 당국이 3년이나 걸려 만든 배로 무게가 1,630톤, 함포는 104문이나 탑재하고 있다. 판옥선 7척분에 해당하는 800명이 넘는 승무원이 필요하지만, 그만한 값은 충분히 하는 배다.
비록 지금 당장 나설 전장이 없어 항구에서 놀고 있기는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배로 함대를 편성하면 제해권은 확실하다. 참, 이 배 이름을 번역하면 ‘왕실의 태양’, 즉 루이 14세를 뜻한다. 루이 14세가 ‘태양왕’이니까.
“좋네. 내, 기꺼이 그대의 요청에 따라 숙련된 조선공 한 조를 조선에 보내서 조선 해군이 최신 군함을 갖도록 해주지.”
“감사합니다, 폐하.”
됐다. 아라미츠가 골라준 각 분야 고문관 14명에, 조선공 그룹 하나까지 덧붙여서 보내면 본국에 있는 형왕도 내가 나랏일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겠지. 고문관들에게 줄 보수가 조금 세기는 하지만, 지금 나라 형편이 그게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라고 했으니 말이다.
이형준의 이야기로는 지금 조선의 세입은 은으로 환산하면 연 3천만 냥 수준이라고 했다. 본국에서 거둬들이는 전세만 1천5백만 냥이라고 했으니, 고문관 스무 명 정도 더 고용하는 건 별 부담도 안 될 거다.
“부디 전 스페인이 폐하의 발밑에 무릎을 꿇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걸세.”
자신만만하게 말하긴 했지만, 딱히 나 때문에 본성이 바뀐 것 같지는 않으니 루이 14세는 이쪽 세상에서도 전 유럽을 적으로 돌리고 말 거다. 그리고 끝없이 전쟁을 계속하면서 기껏 콜베르가 쌓아놓은 국고를 전쟁터에서 몽땅 날려버리겠지.
종두법이나 기타 내가 미친 영향 때문에 역사에 없었던 프랑스 왕이 즉위하더라도, 지금 루이 14세가 쌓아놓은 유산은 그대로 계승될 거다. 역사에 없었던 국왕인 그 후계자는 과연 그 부채를 떠안고 어떤 프랑스를 만들어 낼까?
‘그거야 나중에 따져볼 문제고, 당장 우리 조선이 개입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의 승패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까.’
실제 역사에서 스페인 왕좌는 부르봉 가문이 차지했다. 이쪽 세계는 어떨까.
‘뭐, 여차하면 그 전쟁에서 프랑스가 지더라도 우리는 필리핀만 먹고 버티면 그만이니까.’
스페인한테는 필리핀을 탈환할 힘이 없을 테니까. 잉글랜드나 네덜란드 역시 마찬가지고. 미주 방면에서 육지로 공세가 들어와도 방어는 어렵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 상태로 시간을 좀 끌면 스페인으로서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거다.
문제는 과연 그 시점에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문제다. 제발 형왕이 내가 해외에 있는 사이에 죽지 말고, 내가 귀국할 때까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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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단 구성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하고 나자 다른 일에 신경을 쓸 여유가 생겼다. 궁정 내 사교행사는 프랑스 귀족들에게야 의무나 마찬가지겠지만 내게는 그저 여흥이므로, 매일 나가는 건 그만두고 며칠에 한 번만 나가기로 했다. 조선소 일보다 무도회가 더 피곤했다.
대신 낮에 움직이면서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다. 파리 시내로 들어가 루브르나 노트르담을 둘러보기도 하고, 파리 대학에 가서 조선에 보낼 만한 책을 고르거나 교수들의 강의를 살짝 들어보기도 했다. 혹시나 했지만 그건 역시 무리였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전하께서는 대학 강의를 듣기보다는 개인 교수를 받으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아라미츠 그대의 말이 옳기는 하다.”
대학 수업 듣기를 깔끔히 포기한 뒤에는 내가 좀 더 낫게 할 수 있는 쪽으로 일의 방향을 돌렸다. 왕실 도서관에서 열리는 과학자들의 아카데미에 참석해서 운영 방식이나 연구 주제 등을 관찰했다. 천문학, 해부학, 식물학, 화학, 물리학, 공학, 기하학, 의학 등 다양했다.
이것 역시 콜베르가 조직한 모임이었는데, 이 양반이 조선소에서 내가 벌였던 일 때문에 나한테 학을 뗀 모양이다. 참관하고 싶다고 하자 ‘모임 도중에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라는 조건을 걸지 않았겠는가.
“아니, 질문도 못 하면 회의에 참석하는 의미가 없지 않소?”
“궁금한 점은 적어두었다가 토의가 모두 끝난 뒤에 질문하십시오. 문외한인 대공 전하의 궁금증 때문에 학자들의 귀중한 토의가 방해받게 할 수는 없다는 게 각하의 엄명이십니다.”
루부아 후작의 소개로 프랑스군이 벌이는 기동훈련에 따라갔을 때도 이런 엄격한 제약을 받지는 않았다. 굴욕적이었지만 손님 입장이니 어쩔 수 없었다. 꾹 참고 조용히 있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서야 겨우 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 강의나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발표 내용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래도 21세기까지 축적된 현대과학의 유산을 웬만큼은 알고 있으니까 인문학보다는 맥락을 이해하기 쉬웠다. 의학 발표 때는 종두법 문제로 증언을 요청받기도 했고.
“조선 왕족 출신인 이혼 추기경이 만년에 증언하기를, 자신이 어렸을 때 천연두에 걸려서 생명이 위태롭던 중에 종두를 맞고 살아났다고 기록한 바 있습니다. 혹시 대공 전하께서는 그 증언에 대해 알고 계신 바가 있으신지요?”
“물론이오.”
그 사건이 몇 사람 운명을 바꿔놨던지. 그때 광해군이 상희를 보고 반한 때문에 광해군뿐 아니라 문성군부인의 인생까지 뒤집혔다. 그 사건을 어떻게 잊겠는가?
각성한 뒤에 아라미츠의 연줄을 통해 좀 알아보니, 광해군은 죽을 때까지 로마에 살면서 교황청과 조선 사이를 성실하게 중재했다고 한다. 그 공을 인정받아 교황 우르바누스 8세가 광해군을 추기경으로 서임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입이 떡 벌어졌다.
내 수행원들에게 ‘내가 광해군에 관해 물었을 때 왜 그건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제각기 다른 답을 했다. 정호찬은 자기는 광해군에게 관심이 없다고 했고, 이형준은 그까짓 교회 벼슬이 뭐가 중요하냐고 도리어 내게 반문했다. 종친 신분을 버리고 출가한 광해군의 행동이 사대부들에게는 여전히 나쁜 평을 받고 있었던 거다.
하여간 이런 일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가을이 다가왔다. 과학 아카데미 수강도 이제 제법 재미가 붙어서, 조선에 돌아간다면 관제 교육기관인 집현전과 별개로 이런 기구를 설치해서 학문 연구를 권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같아서야 여기 있는 학자들을 싹 스카우트하고 싶지만, 이 양반들이 응할 리도 없고 루이 14세가 보내줄 리도 없다. 그건 어쩔 수 없으니까, 여기서 적당한 자리를 구하지 못한 저 양반들 제자들을 데려가거나 조선에서 새로 유학생을 보내도록 해 보자.
그동안 조선에서 프랑스에 건너왔다는 유학생들은 태반이 성직자가 되려는 신학생이었지 이공학을 공부할 생각으로 건너온 놈들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이제 그쪽도 시작해야지.
그러고 보니 비슷한 성격의 기구인 영국 왕립학회도 있지? 거기도 꼭 찾아가서 구경하고 배울 점을 찾아보자. 지금 그쪽은 아이작 뉴턴이 한참 꽉 잡고 있지 싶은데, 그 양반 이쪽 세계에서도 연금술에 푹 빠져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