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04
3부 0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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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횡단하는 동안에는 대체로 조용히 움직였다. 일단 나부터도 공연히 주목받을 일을 저질러 발목을 잡히고 싶지 않았고, 이형준도 그 점에서는 나와 생각이 같았다. 다만 나와 다른 점은 우리 일행의 물리적 안전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나도 안전 문제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우리 신분을 드러내면 훨씬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럴 건 없겠다’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이형준은 우리 신분이 드러나면 더 위험하리라고 생각했다. 종교 문제 때문이었다.
“굳이 번거롭게 그럴 생각은 없네만, 우리가 신분을 드러내면 도중에 있는 군주들이 자기 위신 때문에라도 영내를 통과하는 동안에 호위대 정도는 붙여 주지 않겠는가? 우리 대한이 가진 위상이 그 정도는 되지 않는가.”
내 말을 들은 이형준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 대한에서는 천주교를 우대하고 있는데, 북도이치 지방은 반주교가 대세를 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난번 유주대란으로 관군에게 막대한 피해까지 입었으니 당연히 그 한이 하늘에 뻗칠 터, 전하께서 자기들 땅을 지나시는 줄 알면 전하를 붙잡아 반주교로 개종하고 우리나라에 반주교를 널리 전교하라고 핍박할지도 모릅니다.”
반주교(叛主敎)는 조선에서 개신교(프로테스탄트)를 가리키는 통칭이다. 가톨릭교에 항의(protest)하면서 시작된 게 개신교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부정확한 명칭은 아닌데, 현대 한국 개신교도들이 들으면 마구 화낼 것 같은 이름이다.
유주대란(遺洲大亂)은 30년 전쟁을 뜻한다. 조선에서는 양 지역이 교류를 시작한 이래로 유럽에서 터진 가장 큰 전쟁인 이 전쟁을 유주대란, 즉 유럽대전으로 부르고 있다.
의도야 달랐지만, 어쨌든 우리 둘 다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게 좋겠다는 데는 동의했다. 그래서 아라미츠의 일행으로 따라온 보통 조선인들인 척하면서 독일을 횡단했고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베를린에 도착할 때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어찌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인가?”
“제 본의는 아니었습니다, 전하.”
분명히 베를린에서도 예수회에서 소개받은 숙소를 이용할 계획이었다. 이 도시를 수도로 삼고 있는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은 분명 개신교 국가지만, 교류가 많은 이웃 나라 폴란드는 독실한 가톨릭 국가다. 지낼 곳은 많았다.
그런데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기도 전에 영주인 대선제후(大選帝侯) 프리드리히 빌헬름 공이 직접 사자를 보낸 거다. ‘조선 대공께서 부디 본인의 베를린 궁전에 묵어 주십사’라고 청하는 정중한 전갈을 가지고 말이다.
“여기 집주인이나 하인배 중에 입이 좀 가벼운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송구합니다만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이니, 지금은 어쩔 수 없겠습니다.”
아라미츠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뭐, 여기 브란덴부르크만 지나면 폴란드니까 말이다. 거의 다 온 셈이다. 그리고 조선과 얽힌 인연도 별로 없는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나한테 해를 끼칠 리도 없다.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은 개신교 국가지만 30년 전쟁에서 세 번이나 편을 바꾸었을 만큼 종교적 광신성과는 거리가 멀다. 열렬한 반가톨릭 세력도 아니고, 멀쩡하게 지나가는 외국인을 이교도라고 때려잡을 광신자들은 더더욱 아니라는 이야기다.
“괜히 걱정하지 말고 가 봅시다, 부사. 별일은 없을 거요.”
“…알겠습니다, 전하.”
칼뱅파 신교도인 선제후의 처지를 고려해서 아라미츠는 원래 숙소로 정한 폴란드 상인의 집에 남기로 했다. 며칠 안에 폴란드로 출발할 테니 그때 합류하면 그만이리라.
– 3 –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의 군주 호엔촐레른 가문의 거성(居城) 베를린 궁전은 도시 중심부를 흐르는 슈프레강 가운데 있는 섬 위에 지어져 있었다. 센강 가운데, 시테섬 위에 있는 옛 프랑스 왕궁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 궁전 주인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는 올해 나이가 63세, 내게는 할아버지뻘이며 벌써 브란덴부르크 공으로 즉위한 지는 43년이나 되었다. 선제후는 역사가 무려 240년이나 되었다는 베를린 궁전 정문에서 나를 맞이했다. 음, 경복궁보다는 새 궁궐이군.
“동방에서 오신 귀한 손님을 맞이하게 되어 기쁩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공적인 지위도 없는 이 몸을 이렇게 환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유서 깊은 명가인 호엔촐레른 가문을 방문하게 되어 저로서도 영광입니다.”
호엔촐레른 가문은 본래 독일 서남부인 슈바벤 지방 출신의 귀족이다. 11세기부터 시작된 가문으로 무려 그 역사가 600년에 달한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지위를 얻은 시기는 270여 년 전,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이 가문 출신으로는 무려 11대 선제후다.
그런데 본가인 브란덴부르크 공가는 오래전에 칼뱅파로 개종했지만, 본향인 호엔촐레른에 남아있는 분가는 여전히 가톨릭이다. 이게 브란덴부르크 공국이 가톨릭을 지나치게 심하게 적대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 정도는 될 법하다.
“멋진 성입니다. 옛 모습이 잘 살아있군요.”
안으로 들어가면서 내가 감탄하자 대선제후 ? 정치를 잘한다고 백성들이 ‘대(大)’를 붙여 불렀다지만, 그 자신의 풍채만 가지고도 ‘대’를 붙여도 될 만큼 당당하다 ? 는 겸연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역사는 깊지만, 지금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지요. 조만간 철거하고 다시 지을 예정입니다. 프랑스 국왕이 지었다는 새 궁전만큼 거대하지는 못하겠지만, 실질은 뒤떨어지지 않을 만한 물건으로 말이지요.”
단순한 사치 대결이 아니다. 그만큼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국력이 커졌음을 국내외에 드러내 보이기 위한 상징으로서 새 궁전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브란덴부르크 공국은 30년 전쟁 당시 가톨릭군과 신교도군에게 모두 짓밟혀 인구의 반을 잃었다고 할 만큼 혹심한 피해를 봤다. 아직 전쟁이 진행되는 중인 1640년에 선제후 직을 계승한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국력을 회복하는데 진력했고, 지금의 베를린이 그 성과였다.
“우리 브란덴부르크가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전 유럽에 알리기 위한 궁전입니다. 그저 추억과 향수를 위해 옛 궁전을 보존할 이유는 없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나도 똑같은 이유로 장조 때 탕춘대 별궁을 지었고, 용산별궁을 지을 생각이었으니 쉽게 이해가 갔다. 다만 나는 새 궁전을 지으려고 경복궁을 철거하지는 않았지만, 그야 서로가 가진 관점과 처지가 다르니 당연한 일이겠지.
잠시 방에서 휴식한 뒤 연회장으로 갔다.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은 출발하기 전에 선정한 방문대상국이 아니었고, 당연히 형황이 쓴 친서 같은 것도 준비가 안 됐다. 그러니 순전히 내 말주변으로 외교적인 절차를 때워야만 했다.
“사실 폐가 될 것 같아서 말씀드리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러주시니, 송구스럽습니다.”
저쪽은 소국 ? 지금 조선에 비하면 브란덴부르크가 솔직히 소국 맞지 뭐 ? 이라고는 해도 일단 일국의 군주다.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자 선제후가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동방의 강국인 조선 왕자께서 우리 공국을 지나가신다는데 어떻게 대접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우리 공국과 조선 사이에 과거에 좋은 인연이 있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는 좋은 관계를 이루어나가야지요.”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은 아직 국제적으로 왕국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선제후는 내게 꼬박꼬박 존대하면서 정중한 어투를 썼다.
평범한 인사치레였지만 그중 한 대목이 귓구멍을 확 파고들었다. 조선이랑 브란덴부르크 공국 사이에 안 좋은 과거가 있었다고? 그럴 일이 뭐가 있었어?
“지난번 대규모 전쟁 ? 30년 전쟁 ? 시기, 황제군에 속해 있던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 휘하 군대에 조선인 장교가 몇 명 있었습니다. 황제군이 우리 브란덴부르크에 진주했을 때 그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지요.”
“아…들은 기억이 납니다.”
6차 견서사에 수행무관으로 나갔던 이괄 이야기다. 나는 이괄이 미주에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바람에 문책하고 북방에 처박았었는데, 그 뒤에 북방에서 도적 토벌로 꽤 공을 세워 복권한 모양이었다. 그러다 성이 눈에 들어서 견서사도 나갔던 거고.
다만 6차 견서사가 유럽에 도착한 해는 을축년(1625), 막 덴마크가 전쟁에 개입하면서 내란이 국제전으로 비화하는 시기였다. 이괄은 정사였던 이이첨에게 승인을 받고 수하 무관 세 사람과 함께 전장에 갔다. 일단은 ‘관군’인 황제군 편에 동행하는 관전장교 격이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이괄은 8년 정도 유럽에 체류하다가 갑술년(1634)에 네덜란드 상선 편으로 귀국했다. 유럽에 있는 동안에는 황제군 측에서 구경꾼 노릇을 했을 뿐 직접 실전에 참여하지는 않았다는 게 조선 측에 있는 공식 기록이라던데…아닌가?
“당시 우리 군과 황제군은 휴전 상태였기 때문에 교전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영지에 주둔한 황제군이 영민(領民)들을 약탈할 때는 그 조선인 장교도 한 몫 끼었었다고 하지요. 물론 우리는 그 장교의 이름도 모르긴 합니다만.”
아이구야,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이괄 그놈이 지구 반대편에 와서도 본성을 못 감췄구나 싶다. 어차피 독일은 견서사가 자주 오는 곳도 아니니 함께 남은 패거리들만 입을 다물면 아무 문제 없다 싶었겠지.
이쯤 되면 실전에 참여 안 했다는 기록도 신빙성이 확 떨어진다. 이괄 휘하에 있던 군관 셋 중 한 사람은 병사해서 돌아오지 못했다고 이형준이 그랬는데, 그게 실은 전사한 거였을 수도 있겠구먼.
슬쩍 눈치를 보니 역시나 이형준은 처음 듣는다는 듯 황망해 하고 있고, 정호찬은 그까짓 일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느긋하게 소시지를 씹고 있다. 통변 이홍석은 마치 녹음기마냥 통역에만 충실할 뿐 자신의 감정은 전혀 안 드러내고 있고. 이 녀석도 꽤나 강심장이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우리 장수가 세상 반대편까지 와서 기껏 한 일이 귀국에 폐를 끼친 일이라니, 유감입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어차피 용병이란 그때그때 보수를 주는 편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존재 아닙니까? 겨우 그런 일로 귀국에 유감을 품지는 않으니 염려 마십시오.”
음, 선제후는 이괄과 부하들이 유럽에 용병 뛰러 왔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그럼 됐다. 뭐 굳이 깊게 파고들어서 이러니저러니 변명할 필요 없겠다.
“그나저나 실례가 안 된다면 어디를 목적지로 하시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장차 두 나라가 한층 더 가깝게 지낼 기반으로 삼아볼까 합니다.”
선제후는 나라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상공업 진흥에 주력하는 중이라고 했다. 강한 나라, 그것은 강한 군대가 만드는 것이고 강한 군대는 많은 돈을 써야 유지할 수 있다. 조선에서 수출하는 여러 상품이 베를린으로 들어온다면 이 나라가 훨씬 부유해질 터였다.
“저는 조선이 부럽습니다. 제가 듣기로, 조선은 반쯤은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된 땅이라서 방어에 여유가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 공국은 대륙 한가운데 있습니다. 사방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생존하려면 싸울 수밖에 없지요.”
“그 심정 절실하게 이해합니다.”
그런 환경이니 후대에 그 군국주의 국가 프로이센이 나온 거겠지. 그 프리드리히 대왕이 이 양반 손자인가, 증손자인가 그럴 텐데. 조선이 프로이센과 이웃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군, 다행이고말고.
“저 역시 저희 국경을 안정시키고자 해서 말입니다, 지금 러시아에 가는 길입니다.”
선제후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런 데 뭐하러 가느냐는 의문이 얼굴 전체에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러시아라고요? 200년 전까지 타타르인들에게 지배받던 저 야만인들 말입니까?”
“네. 러시아와 우리 조선은 먼 동쪽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육로로 가면 대략 2년쯤 걸리는 거리지요.”
“육로로 2년이라….”
선제후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교역로로 써먹을 만한 길은 아니겠다고 판단한 듯했다.
“러시아인들이 우리 변경을 넘어오며 주민을 괴롭힌 탓에, 한동안 분쟁을 벌이다가 25년 전에 부황께서 국경조약을 맺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러시아 측이 조약을 준수할 의무를 잊지 않도록 차르에게 한 번쯤 다짐을 받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그러셨군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러시아에 가서 모스크바 대공을 만나시더라도 딱히 신통한 결과는 없을 겁니다. 대공보다는 섭정을 만나셔야 할걸요.”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깜짝 놀랄 설명이 돌아왔다. 아, 모스크바 대공이란 독일을 포함한 서유럽에서 러시아 차르를 부르는 호칭이다. 자기는 차르(황제)라고 하는데, 국제적으로는 황제는커녕 왕 취급도 못 받는 거다.
“저희는 러시아에 별 관심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지금 대공이 너무 어려서 대공의 이복누이가 섭정을 맡아 러시아를 통치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폴란드에 가실 테니, 그쪽에서 더 정확히 알아보십시오.”
표트르가 그렇게 어린가? 이복누이라면 소피아…소피아겠군. 내가 정말 국경회담을 하러 러시아에 가는 거라면 지금 만나는 사람이 소피아여도 상관없겠지만 그게 아니잖은가. 나는 표트르 대제를 만나서 친구가 되려고 왔지, 권력욕에 찬 섭정공주를 만나러 온 게 아니다.
‘게다가 그 소피아가 딱히 미인이라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고….’
권력욕에 찬 곰 같은 러시아 아줌마와 마주 앉아 국경 문제를 논한다…딱히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을 게 뻔하다. 소피아가 프랑스어는 할 줄 알까?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제가 용무가 있어서 폴란드까지는 꼭 가야 하니, 폴란드에 도착한 뒤에 러시아 쪽 상황을 살펴보고 움직여야겠습니다.”
“그러십시오.”
러시아에 관한 대화는 여기서 끝내고, 조선과 브란덴부르크 사이의 관계를 증진하는 방법 쪽으로 대화 방향을 돌렸지만 별 진전은 없었다. 나한테 권한이 없는 건 둘째 치고, 서로를 연결할 방법이 마땅찮은 게 명백했기 때문이다.
육군 증강도 벅찬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에는 네덜란드처럼 동인도회사를 설립할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조선이 발트해까지 배를 보낼 이유도, 필요도 없다. 두 나라가 깊은 관계를 맺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선제후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겠군요. 하지만 먼 훗날, 더 쉽게 두 나라가 왕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다리며 깊은 우정을 쌓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라면야. 그러면 나중에 프리드리히 대왕이 유럽을 휩쓸고 다닐 때 우리 장교들을 프로이센으로 유학 보내서 전술을 익히게 하기도 좋겠지.
“물론입니다, 선제후 전하.”
우리는 일체의 부담을 털어내고 편안히 식사와 한담을 즐겼다. 군대를 좋아하는 선제후는 식사에 동석한 자기 군대의 총사령관 게오르크 폰 데어플링어(Georg von Derfflinger)에게 예전에 전장에 나간 이야기를 시켰다. 올해 77세가 된 노장의 무용담은 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