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05
3부 0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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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미츠와 떨어져 머물게 된 건 확실히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차마 아라미츠에게 말할 수 없는 문제를 정호찬과 허심탄회하게 의논할 기회이기도 했다.
“가서 서장관을 불러오너라. 오늘은 할 이야기가 좀 있다.”
“예, 전하.”
내 시중을 마친 박종선이 급히 방을 나갔다. 줄달음치는 발소리가 복도를 멀어져간다.
지난 1년 동안 데리고 있어 보니, 박종선은 참 충실한 시종이었다. 내 옷 손질도 나무랄 데가 없고 말도 잘 돌본다. 늦게까지 혼인을 못 해서 노모의 식사를 직접 마련하던 가닥이 있어서인지, 음식 솜씨도 좋았다.
조선 음식만 잘 만드는 게 아니다. 베르사유에서 집을 빌려 머무는 동안 고용한 프랑스인 숙수에게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워, 서양 요리도 제법 먹을 만하게 만들었다. 여러모로 보아 아주 충실하고 솜씨 있는 시종이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하나는 박종선, 하나는 정호찬이 분명했다.
“부르셨사옵니까, 전하.”
“기다리고 있었네. 거기 앉게. 부사는 무얼 하고 있는가?”
“폭음한 뒤에는 늘 그랬듯이, 죽은 듯이 쓰러져 코를 골고 있습니다.”
내가 술을 줄이자 이형준도 술을 많이 줄였다. 하지만 오늘은 예고도 없이 찾아온 손님을 집주인이 일부러 환대하는 형국이었다. 당연히 술병이 수없이 앞에 놓였고, 이형준은 잠시 번민하다가 권유를 거부하지 못하고 주는 대로 족족 받아마시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면이라면, 예전처럼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인지 취했다고 화를 내거나 고함을 지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신나게 노래를 한 곡조 뽑더니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세어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줄 이어 매여 가나 유소보장의 만인이 울며 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 바람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어찌하리….’
분명히 내 기억 속에 있는 노래였다. 정철이 옛날에 지은 〈장진주사(將進酒辭)〉아닌가! 같이 술 먹을 때마다 정철이 나서서 부르곤 했다. 이 노래는 노골적으로 아부 떠는 구절이 하나도 없어서 마음 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신나게 춤을 추다가 쓰러져 잠드는 바람에 시종 지가가 애를 먹었지. 쉬다 말고 불려와 부사를 업고 방까지 가야 했으니.”
이형준과 정호찬의 시중을 드는 지말복은 올해 스물여섯으로, 우리 일행 중 가장 어리다. 의관, 통변, 익위사 무관들의 시중을 드는 오돌천과 마찬가지로 예부 소속 관노비로, 스스로 지원한 게 아니라 강제로 뽑혀서 우리 일행을 따라오게 되었다.
“그런데 루스말로도 노래 비슷한 것을 흥얼거린 걸 보면, 아무리 싫다 싫다 해도 루스국 방문이 부사 영감께 진한 인상을 남기긴 한 것 같습니다.”
“그러게나 말일세. 정말 루스국이 부사에게 꼴도 보기 싫은 나라라면, 자기 입으로 루스국 노래를 부르기는커녕 짧은 루스말 한마디조차 입 밖에 내지 않을 텐데.”
이형준이 러시아와 어떤 사연이 있건, 본인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확인할 방법은 없다. 내일 아침에 추궁해본들, 술만 취했다 하면 말끔하게 필름이 끊기는 이형준이 그런 노래를 왜 불렀는지 사실대로 털어놓을 리도 없다.
“그 문제는 나중으로 미뤄놓도록 하세. 그보다, 어떤가. 누군지 알아냈는가?”
내 질문을 받은 정호찬이 잠자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은밀히 나누는 이야기는 바로 우리 견서사 일행 중 첩자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였다. 내가 각성한 지도 이제 1년, 첩자의 정체를 밝히지는 못해도, 윤곽이라도 잡아야 할 게 아닌가.
이 문제를 정호찬에게 털어놓고 둘이서 함께 은밀하게 탐색을 시작한 건 베르사유를 나와 셋집을 따로 얻으면서부터다. 하지만 아직 명확한 답은 얻지 못했다.
“부사 영감과 알망주 신부가 간자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부사 영감은 사람이 너무 솔직한 탓에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는 사람이고, 알망주 신부는 그런 일에 가담할 동기도, 필요도 없으니 말입니다.”
“나 역시 그리 생각하네.”
이형준은 생각하는 바가 얼굴에 다 드러나는 사람이라 끄나풀 노릇 같은 건 죽어도 못할 위인이다. 금위사건 예왕이건, 이형준을 포섭했다면 그건 정보를 뽑아내는 감시역으로서가 아니라 결정적일 때 한 방 먹이는 조커 역할일 거다.
아라미츠 신부는 외국인에다 성직자라서 황실 내 후계 분쟁 같은 데는 개입하지 않는 게 정석이다. 물론 고문단 구성과 관련해서 프랑스에서 나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이건 애초에 성격이 전혀 다른 일이다.
만약 예왕이 제위에 오르고 내 머리가 남대문 앞에 내걸린다고 해 보자. 프랑스 고문단이 대놓고 예왕에 맞서서 싸우지만 않으면 문제 될 일이 없다. 프랑스 고문단은 예왕이 조선을 통치하는 데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므로, 아라미츠는 어느 쪽이 이기든 손해가 없다.
전체 인원 중 첩자가 될 수가 없는 이형준과 첩자가 될 리가 없는 아라미츠를 빼면 남는 후보는 일곱이다. 의관 이진원, 통변 이홍석, 호위무관 홍상훈?김종건, 시종 박종선?지말복?오돌천이다. 군적 정비 때문이라지만, 노비라고 해도 일단 성은 다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의관 이진원은 올해 나이가 마흔일곱으로, 이형준을 빼면 일행 중 최연장자다. 본래 군의 출신으로, 군의라는 경력상 외과술에 능하다. 장조 때 설립한 의학교에서 외과술을 배웠고, 군의로 약 10년가량 복무한 후 가업을 이어 의원을 경영할 준비를 하다가 불려왔다.
통변 이홍석은 이미 언급했던 자혜원 출신이다. 나이는 서른넷. 이진원과 더불어서 자기 일과 관련된 말이 아니면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나는 지난 1년 동안에 이들 둘과 사적인 이야기를 단 한 마디도 나눠 본 기억이 없다.
홍상훈은 활을 쏘고 싶지 않았던 내게 자기 동개를 내주면서 정작 깍지는 넘겨주지 않은 일에서 보듯 묘하게 눈치가 없고 생각이 둔했다. 하지만 익위사 무관답게 무기 다루는 데는 익숙하다. 나이는 마흔.
김종건은 특색 없이 평범하다. 나이는 서른여섯으로 주요 수행원 중에는 정호찬 다음으로 젊다. 정호찬은 익위사 무관 셋 중 가장 젊은 서른넷이지만 나를 모신 기간은 가장 길다. 다른 두 사람은 본래 내 담당이 아니다가 견서사 출발 때 새로 배속된 무관들이라고 했다.
시종들은 박종선만 내 사노비고 다른 둘은 예부 소속의 관노비다. 지말복이 스물여섯 살, 오돌천이 마흔 살이다. 이들은 자원하지 않았고, 예부에서 임의로 뽑아 보낸 인원들이다.
“다들 석 달에 한 번은 본국에 편지를 쓰니, 편지를 보낸다는 사실만으로 간자로 간주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게나 말이네. 노비도 편지를 쓰다니.”
일행의 향수를 달래고 가족들을 안심시킨다는 명목으로 전원이 석 달에 한 통은 편지를 써서 본국으로 보내게 되어있다. 마침 성친왕이 유럽 도착 후 첫 편지를 빼먹었다기에 나도 한 번은 걸렀다. 하지만 그다음 차례인 3회차부터는 어쩔 수 없이 적당히 쓰고 있다.
이형준이 보내는 공식 보고서도 이 개인적인 편지들과 함께 본국으로 간다. 네덜란드로 보내면 동인도회사 교역선이 우편물로 싣고 가는 거다.
글을 모르는 세 노비는 통변인 이홍석이 대신 편지를 써준다. 그러니 용의자 전원이 모두 혐의받을 짓을 하는 셈이다.
“7통 모두 봉투를 뜯어 내용을 조사하더라도 확인할 수 없을 겁니다. 미리 약속한 암호로 서한을 썼다면, 간파할 방법이 없습니다.”
정호찬이 한숨을 쉬었다.
“분명히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 금위사에서 1명은 나왔을 게 확실하고, 예왕께서 손을 쓴 자도 최소한 1명은 있다고 보셔야 할 겁니다.”
임무에만 충실한 통변과 의관, 하나는 적당히 평범하고 하나는 적당히 멍청한 호위무관, 내 필요를 아주 철저히 맞추는 시종, 나를 직접 모시지는 않지만 자기 일에 나름대로 열과 성을 쏟으려고 노력하는 두 관노비. 과연 첩자는 누구일까?
“그런데 전하. 만약 소인이 예왕 전하의 사람이라면 대체 어찌하시려고 이런 논의를 모두 털어놓고 하시는 것이옵니까? 소인이 예왕 전하를 위해 전하를 해하고, 그 일을 묻어버릴 수도 있지 않사옵니까?”
의논하다 말고 정호찬이 웃으면서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아픈 곳을 찌르니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대가 이미 받들 이를 정하였다면 나로서는 대유주에서 불귀의 객이 되는 수밖에 없겠지. 예왕이 꾸미고 있을지 모르는 책모로부터 살아남자면 지금 내게는 그대를 신뢰하고 내 곁에 두는 수밖에 없네. 다른 대안이 있는가?”
“소인이 보기에는 없으신 듯합니다.”
“그래. 그러니 그대를 믿는 수밖에 없지.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야 하고. 만약 그대가 이미 예왕 편에 선 사람이라서 나중에 내 등을 찌른다 해도 어쩔 수 없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부족했다고 탄식하는 수밖에.”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내 대답을 들은 정호찬은 입술 한쪽을 일그러뜨리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전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전하를 보필하겠습니다.”
“고맙네.”
그리고 다른 일곱 사람의 언행에 어떤 수상한 점이 있는지 자기 전까지 한참을 더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중에 과연 누가 진짜 첩자일 것인가? 혹시 첩자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농담 섞인 의견도 함께 말이다.
– 5 –
베를린에서 보낸 사흘은 꽤 즐거웠다. 주인과 손님이 모두 군대라는 일치하는 관심사가 있다 보니 화제를 찾기도 쉬웠다. 4만 명에 달한다는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 상비군 중 일부가 훈련을 받는 모습도 참관할 수 있었다.
“참으로 기강이 굳게 서 있습니다. 든든하시겠군요.”
나는 칭찬하는 의도였지만 선제후의 표정은 별로 밝지 않았다. 그보다는 나를 부러워하는 기색이 명백했다.
“우리 군대는 거의 용병이라서, 매우 엄한 규율 없이는 기강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귀국에서는 옛 로마군처럼 모든 자유민이 의무적으로 군대에 복무하고, 그 의무를 또 모든 백성이 기꺼이 받아들여 수행한다지요. 참으로 부럽습니다.”
조선군의 구성과 특징은 경인란록과 을미동정록이 번역되면서 유럽에 상세하게 알려졌다.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최정예 중앙군과 각 지역 방어를 맡는 상비군 연대(병영군)가 있는 건 유럽인들에게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지만, 속오군은 확실히 놀랄 만한 조직이었다.
“그야 군주는 하늘의 뜻을 받아 만민을 다스리는 존재이고, 또한 만백성의 어버이이므로 백성 된 자로서 군주에게 충성해야 함은 당연한 도리니까요. 군졸로 복무하는 것 역시 그 일환에 불과합니다.”
다만, 경인왜란 때 전국에서 소집되던 백만대군은 지금 다시 보기는 좀 어려워졌다. 이것 역시 수행원들에게 들은 바지만, 지난 70여 년 동안 가뭄이 안 든 해가 드물 정도로 고생이 이어지면서 군비를 줄일 수밖에 없었던 결과다.
장조 시절 속오군은 매년 겨울 2달 동안 입소해서 훈련을 받았다. 대상 연령도 예전 군역 기준에 따라 16세부터 60세까지. 하지만 을미동정 이후 대규모 전쟁이 사라진 데다가, 여러 외부적인 요인으로 백성들을 군대에 오래 잡아놓기 어려워지면서 속오군 훈련도 줄었다.
18세가 되면 수행해야 하는 1년 병역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동원예비군 소집은 40세까지만 한다. 40세를 넘는 자는 병적에 올라가 있기는 한데, 실제 소집하지는 않는다. 전시에는 이들도 소집하지만, 주로 노무자나 치중대로 투입되도록 편제가 짜여 있다.
이들은 동원이 면제되는 대신 매년 은 1냥을 병역세로 납부한다. 가난해서 그게 힘들면 동원 기간만큼 노역해서 때운다. 병적에는 올라갔으나 아직 징병 연령이 아닌 16~17세는 속오군으로서의 동원소집도, 병역세도 모두 면제다.
동원소집 훈련도 기간이 대폭 단축됐다. 이제는 길어야 1년에 2주만 입영하면 된다. 30세 이하는 2주, 31세부터 40세까지는 1주다. 40세 이상은 앞에서 말했듯이 훈련 면제다.
훈련 기간이 1년에 2달에서 2주로 줄면 당연히 숙련도는 더 낮아지겠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 이제 전면전 가능성이 작아져서 대군을 동원할 필요가 줄어든 게 사실이기도 하니까.
“물론 조선에서도 호구지책으로 초모에 응하는 자들이 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유럽과 다른 점이라면, 그들도 기본적으로 임금의 백성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임금에게 충성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활을 손에 든다는 것이지요.”
“참으로 부럽습니다.”
속오군은 분명 과거보다 좀 느슨해졌다. 하지만 상비군인 경군과 각 도 병영군은 여전히 빡빡하게 돌아간다. 5년 기한으로 복무하는 지원자가 부족할 경우 각 고을에 인원을 강제로 할당해서라도 정원을 채우고 있다. 7만 명에 달하는 수군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은 소국이라, 조선처럼 할 수가 없습니다. 강제로 시킨다면 우리 백성들은 군복 따위를 입느니 모두 외국으로 도망가 버리겠지요. 그러니 백성들에게는 열심히 일해서 세금을 바치게 하고, 그 돈으로 용병을 고용하는 편이 낫습니다.”
“나라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니 어쩔 수 있겠습니까.”
프랑스에서는 재무부 관료들이 면세 따위 없는 조선 세정(稅政)을 부러워하더니, 독일에 오니까 군주가 면제 따위 없는 조선 군역(軍役)을 부러워하는구나. 이건 두 나라가 직면한 정치적 사정에 따라 다른 걸까, 아니면 국민성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
물론 조선이라고 해서 백성들이 좋아서 군역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병역 미필자들에게는 불이익을 주고 기피자는 붙잡아 족치는 국가 시스템을 만들어 철저히 운영하게 하니 어떻게 빠질 구멍이 없어서들 충실하게 수행하는 거지.
족친위만 해도 그렇다. 방계 종친들, 외척들, 고위 관료 자제들이 고생하는 게 뭐 좋다고 군대에 남아있겠는가? 하지만 벼슬을 얻어 출사하지 않는 이상, 군역을 면할 도리가 없기에 있는 거다. 그나마 요새는 족친위까지 나갈 만한 전쟁이 없어서 죽을 걱정은 없다지만.
이렇게 군대가 다들 가는 곳이 되어버리니 명확한 이유 없이 군대에 안 갔다면 사회적인 비난도 심하다. 도대체 너는 어떤 사람 구실 못 하는 병X이냐는 눈길 때문에 버티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주변에서 눈총 안 받고 군역을 면제받으려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몸이 불구거나, 동네 공인 바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아니면 일찍 과거에 합격해서 벼슬을 받든지. 아, 3대 이상 독자여도 군역을 면제해준다고 하기는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