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07
3부 0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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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쿠프는 폴란드 왕국의 두 번째 수도였다. 90여 년 전부터 바르샤바가 실질적인 수도 노릇을 하고 있지만, 지금도 법적으로는 크라쿠프가 수도다. 6월 15일, 안내인을 따라 찾은 크라쿠프는 중세의 유산을 간직한 아름다운 도시였다.
사실 현대에서는 크라쿠프에 관해 별로 알지 못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유명한 영화 중 하나가 크라쿠프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 그리고 중세 시기 폴란드 왕국 수도가 크라쿠프에 있었다는 정도였다. 후자도 소설에서 배운 지식이다.
“이곳 크라쿠프는 몽골군에게 한번 짓밟히기는 했으나 곧 재건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대학이 설립되는 등 번영을 누려온 곳입니다. 위대한 군주 카지미에시 대왕께서 지도력을 발휘하신 결과였지요.”
도시 앞에서 우리를 맞이한 폴란드 기사는 ‘즈비슈코’라고 했다. 즈비슈코라면…내가 옛날 중학생 시절에 읽은 폴란드 역사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 이름이랑 비슷한데? 프랑스에서는 삼총사에 나오는 것 같은 양반들을 만나더니 이번에는 폴란드 소설 속 인물이라….
즈비슈코는 프랑스어는 전혀 할 줄 모르지만, 독일어는 구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중간에 이홍석의 통역을 거치면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혹시 코페르니쿠스라는 천문학자가 그 대학 출신이 맞나?”
“미코와이 코페르니크 주교라면 이곳 대학에서 공부하신 분이 맞습니다.”
기사라고 칼만 쓸 줄 아는 사람은 아닌 모양이네. 코페르니쿠스도 알고.
“저기가 크라쿠프의 왕성입니다.”
크라쿠프의 중심지인 바벨 언덕에 우뚝 솟은 바벨 성을 즈비슈코가 손으로 가리켰다. 이 성은 역사가 무려 7백 년 가까이 된 옛 왕궁으로, 크라쿠프가 처음 수도가 되었을 때 쌓은 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수리와 증축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국왕께서는 지금 저 성에 계신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즈비슈코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더니 열심히 바벨 성의 연원에 관해서 설명했다. 처음에 초석을 놓은 건 누구이며 언제 어디를 증축했는지 등등. 그런데 그 설명을 듣다 보니 자꾸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뭔고 하니, 이번 여행에서 나는 자꾸 소설 속 등장인물과 이름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는 거다. 이러다가 혹시 러시아에 가면 바보 이반, 잉글랜드에 가면 로빈후드를 만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엉뚱한 상상을 하는 사이 바벨 성 정문이 열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즈비슈코가 하는 폴란드에 대한 소개와 자기 나라 자랑은 끝나지 않았다.
“폐하께서는 튀르크군이 다가오면 바로 영격하기 위해 여기 크라쿠프에만 군대 2만 명을 준비해두고 계십니다. 적이 우리 방어태세를 얕본다면,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겁니다.”
“그렇겠지. 귀군은 유럽 최강의 기병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일세.”
지금 폴란드군은 동유럽 최강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내가 폴란드에 와서 듣기로, 80여 년 전 윙드 후사르 2,500기가 스웨덴군 1만 2천 명과 싸워 단 1백 기를 잃고 스웨덴군 9천 명을 죽였다. 그 뒤에는 오스만군 1만 5천 명을 겨우 3백 기로 격퇴한 전적도 있다고 했다.
30여 년 전에는 폴란드 지배에 반항해서 반란을 일으킨 코사크와 타타르 연합군 20만을 상대로 8만 병력이 출동하여 3만 명이나 되는 적군을 죽이고 대승리를 거뒀다. 이 전투에서 폴란드군 손실은 고작 7백 명에 불과했다.
“10년 전에 벌어진 코침 전투에서는 우리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군 3만 명이 튀르크군 3만 5천 명을 상대로 결전을 벌여 2만 명을 쓰러트리는 대전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정말 대승리였지요. 제가 너무 어려서 참가하지 못했던 게 유감일 뿐입니다.”
그 싸움에서 폴란드 측이 입은 피해는 부상자까지 전부 합쳐도 2천 명이 안 됐다고 한다.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귀하는 이번 전투를 무척 기다렸겠구려?”
“물론입니다.”
이제 스무 살이라는 젊은 기사가 두 눈을 빛냈다.
“코침에서 튀르크인들을 대파하신 국왕 폐하께서 여기 계십니다. 마땅히 폐하를 받들어서 이교도들을 물리치고 우리 연방을 지켜야만 합니다.”
얀 소비에스키가 국왕으로 선출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코침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덕분이었다고 했다. 그러니 이 기사가 그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할 만도 하다.
즈비슈코의 자랑을 들으며 성으로 들어가니 갑주를 차려입은 기사와 병사들이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출동할 것 같은 기색이 완연했다.
“전하, 설마 저들과 함께 돌궐군을 향해 돌진할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크라쿠프를 향해 출발하면서부터 낯빛이 좋지 않던 김종건이 좀 머뭇거리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내 곁에 있는 익위사 무관 세 사람 중, 유일하게 크라쿠프행을 꺼리던 사람다웠다.
“우리는 친교를 다지러 대유주에 왔지 전장에 나가 싸우려고 온 게 아니지 않은가. 괜한 걱정은 하지 말아라.”
정호찬은 지금 상황을 재미있어하고 있고, 홍상훈은 그냥 내가 가자니까 아무 생각 없이 잘 따라오고 있다. 하지만 김종건한테서는 여행이라면 몰라도 싸움에는 절대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태도가 은연중에 비쳐 나온다.
‘베르사유에서 놀 때는 신나게 잘 놀더니….’
자기 목숨부터 챙기려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니, 이놈이 예왕의 첩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서 나를 해치운 공적을 인정받고 부귀영화를 누려야 하는데, 남의 나라 전쟁에서 죽기는 싫겠지.
하지만 생각 없이 잘 따라오는 ‘것처럼 보이는’ 녀석이 의외로 범인일 수도 있다. 어이구,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라더니, 이거 갈수록 사람 보는데 의심만 늘어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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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국왕 얀 소비에스키는 갑옷 차림으로 나를 맞았다. 국왕부터가 당장이라도 출전할 기색이니, 바벨 성 정원을 메운 병사들이 죄다 당장이라도 말안장을 얹고 달려 나갈 기세인 게 어색하지 않다.
“흠, 그대는 아시아인이면서도 타타르인들하고 똑같이 생기지는 않았군.”
인사를 나눈 뒤 얀 소비에스키가 입 밖에 낸 첫마디는 이런 소리였다. 내가 눈이 좀 크고 콧대도 조선인치고는 높은 편인 데다, 피부도 꽤 희면서 얼굴도 약간 갸름하다 보니 자기가 늘 보던 타타르인들과는 전혀 달라 보이나 보다.
사실 프랑스 궁정에서 의외로 시끄러웠던 가십 하나가 ‘조선 왕족과 귀족 중 일부는 원래 백인이 아니냐’라는 이야기였다. 유럽에서도 먹힐 만큼 미남이었던 이덕형의 얼굴이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고, 내 얼굴도 그런 인식을 더 보탰다.
견서사로 오는 인원들이 전부 그런 얼굴이었다면 아예 조선인이 모두 백인이라는 소문이 돌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기들이 보기에도 잘생긴 얼굴은 극소수에 불과하니 일부만 백인 혈통이라는 소문이 돈 거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는 조선과 일찌감치 접촉한 스페인이나 로마에서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오직 다른 나라에 비해서 조선과의 접촉이 더 늦었고, 그 깊이도 얕은 프랑스 귀족 일부에 국한된 현상이었다. 내 입으로 부정해도 그 소문은 도통 사라지지를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짐의 딸들과 함께 프랑스에 다녀온 시녀들이 귀공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지. 동방에서 온 백인 왕자라고 말이오. 설이 다양하더구려.”
“보시다시피 사실이 아닙니다.”
…그 헛소리에 넘어간 멍청이들이 여기까지 퍼졌군. 그 시녀들이 올렝카한테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었으면 조선 황실에 유럽계 혈통 따위는 하나도 섞이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텐데. 다들 제대로 관심을 품지 않았군.
“그야 피가 섞였다면 설명이 되지. 사라진 열 지파의 후손이라는 주장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따라 아시아를 정복했던 그리스 병사들의 후예들이라는 설, 파르티아에 포로로 잡힌 크라수스의 군단병들이 남긴 자손이라는 설도 있다던데?”
“전부 말도 안 되는 낭설입니다. 우리 조선인들은 수천 년 전부터 그 땅에서 살아왔으며, 유럽 혈통은 최근까지 전혀 섞이지 않았습니다.”
조선 이주 유럽인 1세대는 스페인 군사고문단이었지. 로드리고랑 세바스티안, 그리고 또 다른 이들. 정호찬이 알려주기로는 그 후예들도 나름 무가(武家)로 꽤 명망이 높다고 했다. 물론 덕수 이씨, 이순신네 집안 같은 레벨은 아니다.
이순신은 내가 죽은 뒤에도 여러 군직을 잇달아 역임하면서 육군과 수군을 가리지 않고 군제 개편 및 보완에 힘을 쏟았다. 평시에도 전력을 손상 없이 유지하고 유사시에는 곧바로 전력을 동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느라 말이다. 그리고 정말 군신(軍神)으로 남았다.
이순신이 죽은 해는 신유년(1621), 향년 76세였다. 당연히 바로 무묘에 배향됐고, 11년 뒤에 연이가 칭제건원할 때는 ‘충무대왕(忠武大王)’에 봉해지기까지 했다. 신하로서 받을 수 있는 예우란 예우는 정말 모조리 받았다. 삼남 각지의 사당에 신으로 모셔진 건 덤이다.
걸출한 무공에다 왕실과 혼사까지 맺었으니, 덕수 이씨 집안은 지금 조선 최고 명문가 중 하나다. 황태후, 즉 내 ‘어머니’도 덕수 이씨라면 할 말 다 했지 뭐. 물론 내 사위였던 이면 쪽 후손은 아니고, 이순신의 장남 이회의 손녀라고 했다. 아이고, 또 엉뚱한 데로 빠졌군.
“우리 조선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조상으로부터 비롯된 천손(天孫)의 후예라는 전승을 물려 내려오고 있습니다. 유럽인의 피는 전혀 흐르지 않습니다.”
“흠, 알겠소.”
고개를 끄덕거려 이해를 표한 소비에스키가 화제를 돌렸다.
“프랑스에 있을 때 내 자식들은 만나보셨소? 언니인 아델라이드 루드비케는 10살, 동생인 테레사 쿠니군다는 6살밖에 안 됐었으니 별로 대공과 친하게 지낼 나이는 아니었겠지만.”
“지나가면서 몇 번 뵈었을 뿐입니다.”
폴란드 공주들은 나이가 어리다 보니 밤에 열리는 사교 행사에서는 볼 일이 없었다. 낮에 뭘 할 때도 나랑 어울릴 상대들이 아니었고. 그리고 올렝카가 은근히 나와 자기 이복동생인 공주들 사이에서 철벽을 쳤다. 꼭 나를 뺏길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델라이드는 천연두로 죽을 뻔했다가 종두를 맞고 나았다오. 조선 덕분이라면 덕분이지. 하지만 대공과 어울리기에는 너무 어리긴 하오. 더 성숙한 여자가 되기 전에는….”
계속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얀 소비에스키가 갑자기 입술을 살짝 일그러뜨리면서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 뭐야. 이거 혹시 자기 딸 건드렸다고 날 패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잠깐 나가시겠소? 둘이서 진지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
“그러시지요.”
얀 소비에스키는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므로 통역은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 둘은 시종들을 몽땅 떼어놓고 방 옆에 딸린 2층 베란다로 나갔다. 얀 소비에스키는 대화를 길게 끌 생각은 없는 듯,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꺼냈다.
“폴란드에는 왜 왔소? 혹시 올렝카를 데리러 온 거요?”
군인 출신이라 그런지, 딸 가진 아빠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소비에스키는 정면으로 나한테 돌직구를 날렸다. 설마 얀 소비에스키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기에, 일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제 용건은 예수회를 통해서 전달받지 않으셨습니까? 러시아로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가 가려 했을 뿐이라고 말씀을 전했을 텐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귀공이 그저 러시아에 갈 생각이라면 25년 전 그대 나라 사신들이 했듯이 배를 타고 발트해를 가로질러 가는 편이 훨씬 편하고 빠를 게 아니오. 배가 멈추는 겨울도 아닌데 굳이 우리 폴란드를 지나려 하는 다른 이유가 분명히 있으리라고 생각하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거, 뭐라고 대답해야 현명한 대답이 될까?
“곧 벌어질 튀르크군과의 전투를 제 눈으로 보고 싶어서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세상 반대편에서 싸움 구경을 하러 일부러 왔단 말이오?”
소비에스키가 알고 있기로, 조선은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이웃 나라였다. 게다가 이 조선 왕자는 자기 입으로 러시아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러시아를 위해서 폴란드군을 정탐하려고 찾아왔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우리는 러시아와도 사이가 좋지 않소. 우리나 그쪽이나 모두 튀르크 때문에 잠시 싸움을 멈추고 있지만, 놈들이 훔쳐 간 우크라이나를 되찾는 것도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목표요. 그대가 모스크바 대공을 위해 우리 상태를 조사하러 온 거라면, 쉽게 보여줄 수는 없소.”
“폐하, 저는 러시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조선에서 러시아를 좋아하는 사람 숫자는 아마 소돔에 있는 의인(義人) 숫자와 비슷할 겁니다. 제가 러시아에 가려는 이유는 러시아인들이 우리 국경을 넘지 못하게 경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두 번째 질문에 대답했다.
“폴란드에 들른 건 폐하의 싸움을 옆에서 보고 싶어서입니다. 오스만의 대군이 곧 빈으로 밀려갈 텐데, 폐하 외에 그 누가 빈을 구원하는 선봉에 서겠습니까?”
소비에스키는 별로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하기야 내가 생각해도 억지스러운 핑계인데 이 말 한마디로 소비에스키가 고맙다고, 환영한다면서 내 팔을 잡고 흔들어주기라도 하면 말이 안 되는 거지.
“조선은 가톨릭을 믿지 않잖소. 일부 신자가 있기는 해도 대부분 평민이고, 귀족은 소수에 왕실에는 거의 신자가 없다고 알고 있소. 그런데도 우리가 이기기를 바랄 이유가 있소?”
지금 조선에서 가톨릭 신자의 수는 약 80만이라고 한다. 이는 ‘조선인’만 따진 게 아니고, 탄압을 피해 북구주 3주로 도망쳐온 일본인 신자와 만주 ? 이쪽 세계에서 만주를 만주라는 지명으로 지칭하는 사람은 이제 나 하나뿐이겠군 ? 일대에 있는 여진족 신자를 합친 수다.
북방에 있는 여진족들에게 가톨릭을 처음 퍼뜨린 사람은 알라르콘 신부였다. 무자호란때 종군신부로 따라가서 씨를 뿌렸는데, 그게 어떻게 싹이 터서는 죽지 않고 자랐다.
청나라에 신자가 약 5만, 후금에는 약 20만이라고 하니 합치면 극동에 있는 신자만 해도 적어도 100만이 넘는 셈이다. 아마 실제 역사에서 가톨릭이 이만한 신자를 얻었다면, 로마 교황이 열흘쯤 금식기도라도 드리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았을까.
다만 선교사들이 바라마지않는 것처럼 동북아시아 전체가 개종하여 한꺼번에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격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두 나라에서도 조선과 마찬가지로 국가권력에 의한 강제적인 집단 개종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칸 홍타이지가 세례를 받은 후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홍타이지는 애초에 진실로 교리에 감화를 받아서가 아니라 선교사들을 끌어들여 국력 강화에 활용할 생각으로 허울만 신자가 되었고, 권세를 잡자 이를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 계승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조선은 튀르크와 사이가 좋지 않은지 무척 오래되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폐하께서 승리를 거두시기를 바라는 건 그 원한을 풀어주시기를 바라서이기도 하지만, 폴란드가 우리 조선과 인연이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대들과 무슨 인연이….”
소비에스키가 막 질문하려는 참에 밑에서 먼지를 피워올리며 급히 달려오는 말 한 마리가 보였다. 잠시 후 건물 안에서 왕을 찾는 고함이 크게 울렸다.
“폐하, 폐하! 급보입니다, 폐하!”
소비에스키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는 그 연락문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