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09
3부 0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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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에서 이긴 덕분에 당당하게 폴란드군 지휘관의 한사람으로 인정받게 된 건 좋다만, 돌이켜보니 참 중세적인 시합이기는 했다. 요즘 세상에 유럽 어느 천지에서 주스트를 한단 말인가?
유럽 기사도의 꽃이라고 하던 프랑스에서도 앙리 2세가 시합 중에 벌어진 사고로 사망한 이후 거의 맥이 끊겼다. 거의 120년 전이다. 잉글랜드에서는 제임스 1세 시대까지도 했다고 하지만 역시 사라진 지 60년이다. 활도 그렇고. 잉글랜드는 묘하게 옛 문화가 오래 남았다.
요즘은 구경거리로는 집단으로 펼치는 마상군무 ? 그러니까 마상재(馬上才) – , 기마술 훈련으로는 장애물 경주, 창술 훈련용으로는 끈으로 매단 고리 관통하기 같은 연습을 한다. 사고 위험이 크고 실전적 가치가 떨어지는 주스트는 정말 소설책에서나 나오는 이벤트다.
“이제 프랑스 기병들은 기껏해야 흉갑을 걸칠 뿐, 투구도 쓰지 않습니다. 기병창도 손에서 놓은 지가 오래고요. 이런 세상에서 상대가 시대에 뒤떨어진 마상창시합을 제안한다고 선뜻 받아들이시다니요, 너무하셨습니다.”
아라미츠가 폴란드군은 정말 후진적이라며 혀를 찼다. 하지만 폴란드와 프랑스는 군사적 환경 차이가 크다. 아라미츠를 진정시키느라 내가 아는 범주에서 되도록 간단히 설명했다.
“갑옷이 사라진 결정적인 배경은 결국 총포 아닌가? 아무리 갑옷이 두꺼워도 총알을 막지 못하니 서유럽에서는 기병이 갑옷을 벗었지. 하지만 동유럽에서는 서유럽보다 화포도 적고 경무장한 적을 상대로 하는 경우가 많으니, 갑옷을 착용한 기병이 아직 유효하지 않겠나.”
덤으로 내가 당한 모욕도 갚은 셈이고. 아, 자기가 제안한 방법대로 붙어서 내가 멋지게 이겨버리니까 날 얕보다가 코가 납작해져 할 말을 찾지 못하던 차르니에츠키. 그놈 얼굴을 보는 게 얼마나 통쾌하던지!
“주적인 튀르크나 러시아가 보유한 총포는 수량과 성능이 서유럽보다 뒤떨어지고, 병력의 질도 낮으니 폴란드에서는 아직 갑옷이 충분한 가치가 있겠지. 그리고 이건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세.”
“옳으신 말씀입니다. 우리 대한에서도 같은 상황이지요.”
정호찬도 내게 동의를 표했다.
“천하가 큰 전쟁 없이 평화를 누린지 수십 년입니다만, 우리 군사들은 언제나 장차 싸울 적이 누구인지 생각하며 대비하고 있습니다. 주변국 중 누가 적으로 돌변하더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비호군은 아직 충분히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조선발 군사혁명은 동북아시아 각국의 군사 현황을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르게 만들었다. 모든 나라에서 총화기로 무장하는 비율이 실제 역사에서보다 올라가고 갑옷이 빈약해졌다. 아니, 아예 갑옷을 걸치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하지만 조선, 일본, 중국 중 어디서도 냉병기로 무장한 보병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총포를 사용하기 어려운 장마철이 존재하다 보니 냉병기를 아예 없앨 수가 없다.
이중 가장 많은 수는 기병을 저지하기 위한 장창병이다. 총을 능가하는 연사력과 은밀성, 적은 유지비 ? 양성비가 아니다 – 때문에 궁수도 다수 유지한다.
그리고 우리 비호군은 동북아 최정예라고 명성이 드높던 일본군 장창진을 돌파한 전력이 있다. 보병 방어진을 정면으로 부술 수 있는 기병이라는 의미다.
“물론 충분한 화포가 있다면 굳이 기병이 없어도 적진을 짓뭉갤 수 있지요. 하지만 쓰고 싶을 때마다 언제나 화포가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비호군은 적 기병을 칠 때도 아주 유용합니다. 사실 이쪽이 적 보병진을 정면으로 들이치기보다 더 긴요하지요.”
“맞는 말일세. 사실 적이 먼저 장창병으로 진을 쳤다면, 이를 돌파하는 데는 비호군보다는 강철군이나 골응군이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
강철군은 기총(騎銃)을, 골응군은 활을 휴대한다. 적의 창이 닿지 않는 안전한 거리에서 사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총은 장조 말기부터 지급한 총신이 짧은 기병용 소총이다.
오도리에게 지급하는 권총부터 시작했던 수석총 지급은 이제 100% 완료되어, 정규군에서 보유하는 총은 모두 수석총이 되었다. 화승총은 이제 군용으로는 안 쓰지만, 가격이 훨씬 싼 덕분에 민간에서는 아직 많이 쓰고 있다.
“불랑국도 그렇지만, 우리 역시 다양한 무장을 갖춘 보병과 기병, 포병이 골고루 있으므로 상황에 따라 적절히 운용할 수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여건에 따라 다르게 말입니다.”
“특히 북방에서는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라도 기병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물론입니다.”
북방 5주 ? 요동주, 영락주, 속말주, 부여주, 연해주 ? 에 주둔하는 병력은 번병(番兵, 징집병) 외에 상비군만 5만 3천이다. 현재 조선 상비육군 146,600명 중에 ⅓이 넘는 수지만, 북방 5주가 얼마나 넓은 땅인지 생각하면 보병 중심 군대로는 방어도, 치안 유지도 힘들다.
지금 조선군의 기본 교리는 적 주력부대와의 결전에서는 우세한 화력으로 적을 제압하고 적이 물러나면 기병으로 추격하여 섬멸하는 거다. 결전을 벌이기 전에도 기병이 먼저 나가 적을 견제하며 그 세력을 줄이고, 앞에 나간 저격수는 사르후 때처럼 지휘관을 저격한다.
경보병을 겸한 저격수를 가리키는 명칭은 선방포수다. 원래는 총 잘 쏘는 포수들을 따로 모았다고 해서 ‘선방(善防)’포수였는데, 지금은 본진보다 앞에 나가서 적을 막는다고 ‘선방(先防)’포수라고 부른다고 했다. 수군에서도 선방포수라고 하고, 강선총도 이들만 쓴다.
다만 이는 양쪽이 다 보병 대군을 동원했을 때 이야기다. 북방 동토의 숲속이나 북방 5주 평원, 대남도 정글 등 환경이 다른 전장에서는 당연히 다른 전술을 쓴다. 비록 80년 가까이 대규모 전면전은 없었지만, 학습할 과거의 전훈이나 타국의 전쟁 정보 등은 잔뜩 있었다.
유럽에 주재하는 익문사 관원들이 보내는 정보도 정치 및 교역에 관한 내용이 중심이다. 이를 통해서 군사기술 변화에 대한 정보도 꾸준히 유입되었고, 강무관에서 연구도 했다. 그 성과를 실제로 적용해볼 일이 일부 국지전 외에는 거의 없었을 뿐이다.
“그런 전투라도 자주 일어나는 방면이 북방이지요. 수시로 말을 타고 나타나 날뛰는 온갖 도적놈들을 잡으려면 우리도 기병을 두고 그중 상당수를 비호군으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 사견이지만, 현제공이 다시 살아나서 마상에서도 쉽게 장전할 수 있거나 한번 장전해서 여러 번 쏠 수 있는 마상총을 만들 때까지는 말입니다.”
“맞는 말일세. 언제쯤에나 그런 총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정호찬이 내놓은 소요에 딱 맞는 총은 뇌관식 리볼버부터 시작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한 19세기 중반에 가서야 나올 수 있었던 총이다. 아, 나도 연발총 만들고 싶다.
문제는 뇌관 만들 수 있는 약품을 내가 뇌홍밖에 모른다는 건데…그 뇌홍 만드는 방법을 알아야 말이지. 수은과 질산이 반응하게 해서 만든다는 것만 알지 그 이상은 모른다. 사실 질산을 만드는 방법도 모르니까 이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어서 화학이 발달해야 하는데.
“전하, 훈련에 나가실 시각이 다 되었사옵니다.”
밖에 있던 호위무관 홍상훈이 들어와서 9시가 됐다고 알렸다. 생각이 단순하고 요령 따위 피울 줄 모르는 양반이다 보니 시간 같은 거 맞춰서 알리라고 할 때는 최적이다.
“알겠네, 나가지. 여봐라, 환복을 도와라.”
“예, 전하!”
곁방에 있던 박종선이 얼른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내게 홍상훈이 입은 것과 같은 후사르 갑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훈련을 나갈 시간이 되었으니 옷을 갈아입어야 하지 않겠는가.
– 12 –
정면에 움직이는 적진이 보인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폴란드어로 크게 외쳤다.
“돌격!”
내 호령이 떨어지자 윙드 후사르 300기가 일제히 돌진했다. 나는 그 선두에 서서 돌격을 이끌어야 했다.
차르니에츠키는 분명 내게 먼저 시비를 걸었다. 게다가 전쟁을 눈앞에 두고 나를 이용해 굳이 국왕의 체면을 깎아내리려고 드는 그 심보가 괘씸하기도 해서 기꺼이 놈이 제안한 그 시합을 받아들였고, 무난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일단 승부가 나자, 차르니에츠키는 군말 없이 자기가 약속했던 조건을 이행했다. 자기 영지에서 데려온 최정예 윙드 후사르 300기를 정말로 내게 내주었고, 병력 관리와 내 보좌를 맡을 노련한 무관 한 사람도 붙여 주었다. 차르니에츠키도 나름 상남자였다.
“기병 돌격은 정확한 시점에 정확한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적이 취약점을 드러낸 바로 그 순간에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면, 기병 지휘관으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알겠네.”
문제는 이 시점부터 내게 또 한 번의 고생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과거 내가 수십만 대군을 직접 지휘해서 친정에 나섰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직접 군대를 지휘한 게 아니었다. 장군들에게 전략적인 구상을 밝히면 장군들이 내 지시를 실행했을 뿐이다.
전술적인 지휘는 이론상으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로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덕분에 내 66년 생애 동안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전술 지휘관, 기껏해야 대대장 노릇을 처음으로 해보게 되었다. 차르니에츠키가 보낸 부관 유란드 경은 나를 아주 혹독하게 가르쳤다.
내 가장 큰 문제는 실전 경험 부족 탓으로 전술적인 지시를 필요한 시점에 정확하게 내릴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데 있었다. 유란드가 나를 가장 조여댄 부분도 바로 거기였다.
“대공 전하께서는 실전 경험이 전혀 없으시니까, 실수를 범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출진한 뒤에도 그러시면 병사들이 공도 못 세우고 개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물론 전체적인 지휘는 국왕 폐하께서 하실 겁니다만, 전하께서도 상황을 이해하실 수는 있어야 합니다.”
유란드는 극렬 반왕파인 차르니에츠키의 신하다. 그러면서도 국왕의 장군으로서의 능력은 확고하게 신뢰했다. 그리고 국가의 대적인 오스만과 맞서는 동안에는 충실하게 그 지휘를 따를 준비가 되어있었다. 여러모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명령을 내리시는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더 붙으셔야 합니다.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병사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망설이는 지휘관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유념하겠네.”
여기에다 짧은 구령 정도는 통역 없이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는 덤이었다. 덕분에 ‘앞으로 가!’, ‘속보!’, ‘전속력으로!’, ‘정지!’,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나를 따르라!’ 같은 폴란드어 명령문도 배워야 했다.
“후퇴할 때는 뭐라고 하는가?”
“우리 기병들에게 후퇴란 없습니다.”
아니, 후퇴라는 표현이 아예 없는 언어가 어디 있나 이 양반아? 유란드 이놈도 자기 주군 못지않은 상남자일세 이거. 혹시 이홍석이 원래보다 더 무뚝뚝하게 통역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드는데.
그렇다고 안 배울 내가 아니다. ‘후퇴’는 즈비슈코에게 물어서 배웠다. 즈비슈코는 국왕을 따르는 기사지만, 내가 반왕파인 차르니에츠키 손에 있는 게 신경이 쓰였는지 국왕이 자주 내게 보내 상황을 살피게 했다.
그래도 내가 좀 나아지는 모습은 보였나 보다. 며칠째 이어진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유란드에게 이런 말을 들었으니까.
“훈련을 시작했을 때보다는 많이 나아지셨습니다만, 제대로 된 기병대장이 되려면 아직 모자라십니다. 언제 출전하게 될지 모르는데, 빨리 기량을 닦도록 하십시오.”
박종선이 가져온 미지근한 커피를 말에 탄 채로 마시면서 칭찬인지 재촉인지 모를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러다 진짜 전군의 선두에 서서 터키군 한복판으로 돌진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정말이지 처음에는 그냥 관전이나 할 계획이었는데.
하지만 직접 기병들을 거느리고 출정 준비를 시작하니, 정말 출전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역시 잘 해내기만 하면 본국에서 점수를 딸 기회란 말이다. 충격에서 회복하고 안정을 찾은 이형준 역시 그 점에서는 나와 생각이 같았다.
게다가 지금 서둘러서 러시아에 가 봤자, 표트르하고 이야기가 안 통할 거다. 알아봤더니, 그놈 이제 겨우 만으로 11살밖에 안 됐더라.
“출정은 언제인가? 이미 빈이 포위되었다고 하던데.”
어차피 복귀하는 길, 투구를 벗어 박종선에게 건네며 물었다. 머리가 장발이니 땀이 차서 너무 힘들다. 나와 함께 훈련을 받는 익위사 무관 세 사람도 상투를 작게 틀었으면서도 꽤 더워하던데, 이참에 이발사를 불러다 넷 다 머리를 단발로 확 쳐 버릴까 보다.
‘그러면 이형준이 기겁하겠지.’
이형준은 기술지식 도입 같은 데는 별 거부감이 없다. 새로운 것을 배워서 익힌다면 좋은 일이고, 우리에게 이미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해도 서로 비교하고 연구하다 보면 보다 새로운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주의다.
하지만 근본이 유학자라서 그런지 개인의 품행 같은 데는 엄청나게 신경을 쓴다. 만약에 내가 머리를 안 묶는 정도를 벗어나서 아예 짧게 치면, 분명히 좋은 소리는 안 할 거다.
“출정 일시는 아직 모릅니다.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빈에서는 구원군이 도착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텐데….”
빈이 튀르크군에 포위된 날은 여드레 전인 7월 17일이다. 황제인 레오폴트 1세는 당연히 적군이 도착하기 전에 도망쳤고, 빈에 남은 병력은 채 2만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격하는 튀르크군은 약 15만에서 20만, 비율로는 7배에서 10배에 달한다.
“그런 대군을 상대로 우리만 갈 수는 없습니다. 주변에서 모을 수 있는 만큼 원군을 모아 함께 빈을 구원하러 가야지요.”
“그건 나도 알고 있네.”
비록 지금은 스웨덴이나 러시아가 폴란드를 건드리지 않고 있지만, 얀 소비에스키가 모든 병력을 끌고 빈으로 가면 저들이 빈집털이를 시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오스만 역시 헝가리에서 별동대를 내보내서 폴란드 본토를 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려면 폴란드군은 되도록 적게 동원하고 독일 쪽에서 많은 원군을 모아 구원군을 편성해야 한다. 이미 사전에 어느 정도 조율이 되어있긴 하지만, 실제로 실행해야 할 때가 오자 역시 수많은 연락과 교섭이 필요했다.
지금 얀 소비에스키는 수많은 독일 군주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빈을 구하러 나설 원군을 모으고 있다. 그 일에 얼마나 몰두하고 있는지, 어쩌다 나랑 마주쳐도 올렝카 얘기 따위는 꺼내지도 않는다.
‘그걸 옆에서 봤으면 더 도움이 될 텐데. 벌써 한 달 가까이 훈련장에만 있으니 외교가 진행되는 상황을 알기 너무 어렵군.’
지금 하는 훈련도 나한테 도움은 된다. 하지만 군주가 정말 해야 할 일은 창을 쥐고 직접 적진에 뛰어드는 게 아니니 말이다. 만사를 조율하고 결정하는 솜씨 쪽이 더 중요하다.
물론 내가 두 번씩이나 왕 자리에 있으면서 그런 일을 안 해본 게 아니다. 그렇지만, 나 외에 다른 사람이 일하는 방식을 한 번이라도 더 보면 그만큼 내게 도움이 된다. 배울 점이 있으면 배우고, 배울 게 하나도 없으면 그냥 넘기면 되니까.
“전하, 전하!”
바벨 성으로 돌아와 말에서 내리려는데 놓고 갔던 시종 지말복이 허겁지겁 달려와서 납작 엎드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호들갑이지? 드디어 출정 지시가 내려왔다면, 이 녀석이 아니라 즈비슈코가 와서 알릴 텐데.
“마님이 오셨습니다, 마님이요!”
“누구? 마님? 마님이라고?”
이놈이 여기서 마님이라고 부를 사람이라면…올렝카! 다음 순간 나는 피로도 잊고 오추마 등에서 뛰어내리다시피 했다. 그리고 갑옷을 입은 채로 단박에 3층 내 방으로 가는 계단을 뛰어올랐다. 벌컥 문을 열자 의자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는 올렝카가 보였다.
“아, 대공 전하….”
달려와 내 품에 안긴 올렝카의 두 눈은 녹색 에메랄드처럼 빛나고 뺨에는 유리구슬 같은 눈물이 흘렀다. 9달 만에 나누는 포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