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12
3부 030화
– 18 –
얀 소비에스키는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비대한 체구에서 살이 빠지지는 않았으나 얼굴이 무척 핼쑥했다. 눈앞으로 다가온 출정 때문에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기 때문이리라.
“즈비슈코에게 이야기는 들었네. 대공은 젊은데도 거느린 병사들을 정말 잘 관리하더군. 도저히 18세 철부지 왕자로는 보이지 않아.”
“잘 배우고 자란 덕분입니다.”
“조선 왕실은 정말 왕자를 훌륭하게 가르치는 모양이군. 내 아들들을 전부 조선에 보내서 공부시키고 싶을 정도인걸.”
폴란드 왕자가 조선까지 오더라도 나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을 텐데. 무엇보다, 60년분 인생 경험을 쌓을 방법이 없지 않은가.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서 최선의 교육을 받는 편이 더 나을 겁니다. 세상 반대편, 모국과 모든 것이 다른 나라에서 성장한다면 아무리 영민한 소년이라고 해도 성공하기보다는 나쁜 결과를 얻을 공산이 더 높지 않을까 합니다.”
조기유학의 나쁜 점이 그거지. 외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공부까지 해야 하는 거.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다면 그 어려움은 한층 더 커지게 마련이다.
“그것도 맞는 말일세. 어떻게든 내 나라에서 경험을 쌓고 성장하게 해야지. 만약 조선에서 공부하고 온다면, 귀족들은 내 아들을 조선인이라고 부르며 따르지 않을 것이야.”
얀 소비에스키는 맏아들을 다음 왕으로 만들고 싶어 하고 있었다. 하지만 폴란드는 왕위 세습을 인정하지 않는 선거제 왕정 국가였고, 이 문제를 돌파하기는 쉽지 않았다. 올렝카는 이 문제로 국왕이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 내게 살짝 알려주었었다.
“아들 교육 문제는 일단 급하지 않으니 나중으로 미뤄두지. 오늘 내가 귀공을 부른 건 내 딸 때문일세.”
크라쿠프에 도착하고 거의 두 달, 드디어 이 문제가 정면으로 거론됐다.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절대 가볍게 나눌 수 없는 대화니까 말이다.
“그대는 러시아가 동진하지 못하게 하려고 러시아에 간다고 했지. 헌데 러시아가 그 힘을 동쪽으로 빼지 못한다면 서쪽에 있는 우리를 노릴 게 아닌가? 그럼 자네가 러시아에 간다면 우리 폴란드에 해가 되지 않는가?”
“그럴 걱정은 없습니다. 저는 러시아가 폴란드가 아니라 스웨덴을 노리게 할 테니까요.”
실제 역사에서 표트르가 노린 것도 폴란드보다는 스웨덴이었다. 스웨덴을 이겨야 바다로 나가는 출구를 얻고 서유럽으로 가는 문을 활짝 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폴란드를 정복해도 바다를 얻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었다.
“스웨덴이 아무리 강국이라도, 결국 소국입니다. 그 인구로는 끝도 없이 몰려오는 러시아 대군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에도 피해는 클 것이고, 스웨덴 세력을 쫓아낸 뒤에 곧바로 폴란드까지 넘볼 여력은 없을 겁니다.”
내 설명을 들은 얀 소비에스키는 동의했다. 그러면서 날 보고 18살이 아니라 마치 80살 같다는 예의 그 농담을 또 건넸다.
“어쨌든 그대가 우리 폴란드를 적대하지도, 해를 줄 생각도 않는다는 데는 안심했네. 그럼 이제는 올렝카 이야기로 넘어가야겠군.”
“말씀하시지요.”
얀 소비에스키가 한숨을 크게 쉬었다. 나는 조용히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 아이는 짐이 국왕으로 선출되기 전에 얻은 사생아일세. 짐은 그 아이를 내 아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할 수 없지. 합법적인 혼인으로 태어난 자식이 아니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그대를 따라가고 싶어 하네.”
얀 소비에스키가 얼굴을 숙이고 수건으로 닦았다.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그대는 이교도, 내 딸은 사생아…참으로 기가 막힌 조합이지. 어떤 성직자도 이런 혼배를 집전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걸세. 일이니까 억지로 한다면 몰라도. 그나마, 그대에게는 조선에 본처가 이미 있다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올렝카를 제게 주시더라도 저는 올렝카를 대공비로 맞아서 머리에 관을 씌워줄 수는 없습니다.”
얀 소비에스키는 얼굴을 수건으로 감싼 채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얼굴을 가린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역시 그 아이를 공주라고 선언하거나 작위를 내려 왕실에 속한 신분을 만들어줄 수는 없네. 우리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서 가능한 해결책은 단 하나, 올렝카에게 약간의 재산을 들려 자유롭게 떠나게 하고 그 뒷일은 그대가 맡는 걸세.”
“제가 이번 싸움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말이군요.”
소비에스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날 일선에 내보내지 않아도 전장은 충분히 위험한 곳이라면서 말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폐하. 저는 꼭 크라쿠프에 돌아올 것이고, 올렝카도 데리고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하늘에서 지켜주는 사람이니까요.”
다만 그 지켜주는 존재가 성실한 수호천사가 아니라 그 망할 천녀라는 게 유감이지만.
– 19 –
드디어 출정이다. 늘어서 있는 보병과 기병 2만 7천, 이만한 대군을 보고 있으니 이번에 내가 출전한다는 게 실감이 난다. 이런 대규모 열병식을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치렀더라.
다른 쪽을 보니 죽 늘어서 있는 대포들이 보였다. 빨리 움직여야 하다 보니 죄다 구경이 작은 경포(輕砲)다. 28문 전부 말 4필 혹은 6필이 끌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대포들밖에 없었다.
“하기야, 저거보다 큰 포를 제대로 끌고 다니려면 한참 뒤에 증기 트랙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겠지.”
내가 기억하기로, 증기 자동차를 처음 제작한 목적이 대포 견인용 트랙터였다. 18세기에 프랑스에서 만들었는데, 사람 걷는 정도 속도밖에 내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조종성이 정말 개떡 같았기 때문에 실전에 배치되지는 못했다.
“퀴뇨가 그 차 몰다가 교통사고도 몇 번 냈지 아마….”
이쪽 세상에서는 그런 교통사고까지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 자동차가 없거든.
장조 시절에 증기기관은 엄중한 국가 기밀로 취급됐다. 그래서 병기창에서 운용하는 일부 기관 외에는 내수사에서 운영하는 일부 염전과 탄광, 그리고 극히 중요한 수차 몇 군데에서 물을 퍼 올리는 데만 주로 썼다. 벽란도 조선소에서 기중기 가동에 쓰던 기관도 철거해서 외국인이 거의 안 오는 해삼위로 보냈을 정도다.
성이는 이런 내 방침을 계속 유지했다. 증기기관 제작은 군기시에서 계속 전담했고, 내가 배치하지 않은 곳에 기관이 추가로 배치되는 일은 없었다.
그런 기조가 역전된 건 연이가 즉위한 이후다. 연이는 성이보다 훨씬 진취적이었고, 비록 조부의 유지가 있었다고 해도 이미 가지고 있는 역량을 쓰지 않고 감춰만 둔다는 데 반감을 품었다.
“‘쓰지도 않을 기관이라면 그저 쇳덩이와 다를 게 무엇이냐? 쓸 수 있는 곳에는 가져다 두어 쓰게 하고, 그 얼개에 관해서는 철저히 비밀을 지키게 하면 타국에서 베낄 수 없을 게 아니냐!’라고 분부하셨다고 합니다.”
이형준의 말에 따르면, 연이는 쓸 수 있는 기술이라면 뭐든지 써서 백성들을 먹여 살리고 기근을 극복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 조선에서 할 수만 있는 일이라면 표현 그대로 뭐든지 해치웠다.
해삼위에서 1년 동안 생산하는 최고급 도자기 수량이 15만 점에서 50만 점으로 폭증했던 것도 연이 시대였다. 해삼위로 생산역량을 모은다고 폐쇄했던 본국 내 일부 도요지도 다시 열고 아직 가동하던 가마는 유지를 도왔다. 그 덕에 지금 전국에서 생산하는 도자기 수량을 모두 합치면 1년에 6~7백만 점은 넘는다.
대남도에서 재배하는 차와 커피는 내가 살아 있을 때보다 스무 배 가까이 생산이 늘었다. 수출하는 면포 양도 4배는 늘었다. 그리고 바로 이 면포 생산 증대의 결정적인 배경이 바로 증기기관 대량 공급이었다.
“선조께서 정하시기를, 면직공장을 비롯한 각 공장에 기관을 설치하여 가동케 허용하시되 절대 그 소유권은 넘기지 않으셨습니다. 기관을 관리하고 정비하는 책임은 어디까지나 공부 산하에 있는 열기창(熱機廠)에서 맡았지요.”
병기창이나 수군이 관할하는 증기선에 설치한 기관은 예전에 하던 대로 군기시가 맡는다. 하지만 내수사를 비롯하여 관과 민에서 운영하는 공장이나 선박에서 사용하는 기관은 모두 열기창에서 제작하고 관리한다. 이 구조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민간에서 운용하는 기관이 많은가?”
“전하께서는 안 보셨겠지만, 금상께서 즉위하신 무오년(1678)에 조보에 실린 바에 따르면 전국의 공장에서 가동하는 기관이 473기, 기관을 단 수차가 119기, 기관선이 84척입니다. 그와 별도로 병기창과 조선소에서 운영하는 기관이 67기, 수군의 기관선이 14척입니다.”
독점 생산이니 기밀 유지는 잘 되겠지. 하지만 경쟁이 없으니 아무래도 성능은 생각보다 비효율적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쉽다는 기색을 살짝 표했더니 이형준에게서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그 문제는 선조께서도 이미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일찍이 장조께서도 각 장인과 상단이 새로운 기술을 고안하여 부를 쌓을 동기를 주고자 특허 제도를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다만 증기기관은 특허를 낼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기술이라, 대신 다른 방법을 쓰셨지요.”
내가 만든 특허 제도는 30년 기한이 있어서 그 뒤에는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증기기관은 30년 뒤에 세상에다 풀어놓기에는 너무 가치가 큰 기술이었다. 그래서 연이는 제작기술을 공개하는 대신 장인들에게 인센티브를 주었다.
“같은 출력을 내면서 더 가벼운 기관, 더 작으면서 같은 힘을 내는 기관, 석탄을 더 적게 쓰면서 같은 힘을 내는 기관을 고안한 장인들은 황상께서 내리시는 벼슬과 상급을 두둑하게 받았습니다. 그러면 굳이 경쟁이 없어도 보다 나은 물건을 계속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옳은 말이오. 부사의 말이 옳소.”
젠장, 나도 기술이 새어나갈 위험에만 신경 쓰지 말고 일단 대량으로 만들면서 개량하는 쪽으로 갈 걸 그랬나. 기술 유출도 문제지만 무종 때 사고에 하도 학을 뗀 바람에 장조 때 증기기관 추가 개량 및 배치에 좀 소극적이었는데, 연이의 업적을 들으니 후회가 된다.
“서양인들이 기관 만드는 법을 빼가려 하지는 않았소?”
“우리 땅에 정착한 이들은 우리 백성이 되었는데 어찌 우리 재산을 함부로 빼돌려 바깥에 팔아먹으려 하겠습니까? 새로이 장사하러 건너온 이들은 이를 신기하게 여겨 빼내고자 하는 이들이 간혹 있으나, 매번 붙잡혀 태형을 당한 후 추방되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네덜란드, 프랑스 동인도회사 배를 타고 온 유럽인들이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증기기관은 항구 안에서 돌아다니는 견인선밖에 없다. 증기기관을 쓰는 공장은 대개 개항장 밖에 있고, 조선 국적이 없는 외국인들은 마음대로 개항장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 언급한 세 나라에 최초부터 조선을 왕래하던 포르투갈 배까지, 네 나라 배가 모두 드나들 수 있는 항구는 벽란도와 제물포밖에 없다. 네덜란드는 부안, 잉글랜드는 동래에다 전용 개항장을 두고 있으나 이들도 도성 인근 항구로 종종 배를 보낸다.
“항구 안에서 바람과 상관없이 오가며 배를 끌고 일하는 모습을 보고 양인들이 무척 탐을 내기는 하였습니다. 허나 겉모습만 보아서는 구조를 베끼는 재주가 없으니, 저들이 아직도 기관선을 만들지 못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이오.”
브레스트에서 만난 프랑스 조선기사들도 ‘연기를 뿜으며 수차를 돌려 움직이는 조선 배’에 관해서 들어는 보았다고들 했다. 하지만 그 내부구조를 도저히 알 수가 없으니 채용해서 뭔가 만들어 볼 시도도 할 수 없을 뿐이다.
“우리 기관선들이 바깥 바다로는 나가지 않으니, 저들이 생각하기에는 난바다를 항해하는 배에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증기선, 아니 기관선이 먼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저탄소 문제요?”
“그렇습니다, 전하. 그리고 기관선에는 돛도 못 다니 말이지요.”
석탄을 사용하는 증기선은 연료를 자주 공급받아야 한다. 그래서 석탄을 저장하는 저탄소(貯炭所)가 있는 위치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지금 조선에서 운용하는 증기선들도 저탄소 설치가 쉬운 연안항로 및 내륙수로에서만 활동하고 있다.
저탄소 문제 때문에 실제 역사에서 나타난 선종이 기범선이지만, 지금 조선에서는 그것도 힘들다. 아직 기관 출력이 부족해서, 돛대를 세우면 충분한 출력의 기관을 넣을 공간이 안 나온다고 한다.
“그런고로 우리 연안에서만 주로 움직이니, 우편물을 싣고서 요동을 거쳐 청나라로 가는 항로가 기관선이 움직이는 가장 먼 길입니다. 왜국 방면으로는 북구주까지만 갑니다.”
“유구국 각 섬에 저탄소를 설치하면 대남도까지도 갈 수 있지 않소?”
“그렇긴 합니다만, 아직은 그게 안 되었습니다. 소관도 그 이유는 모르옵니다. 제가 맡은 일이 아니었던지라.”
하기야 이형준은 본래 유학자에다 무려 6년이나 내 서연관 노릇을 하고 있었다. 자기가 직접 맡은 업무도 아니었는데 이만큼이라도 기억하고 내게 알려주는 것만 해도 땅에 엎드려 절해야 할 만큼 고마운 일이다.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재촉하지 말자.
“자, 그럼 다시 소학을 펴십시오. 어쩌다 그만 증기기관 이야기가 튀어나왔습니다만, 제가 대제학이셨던 조부님의 이름을 걸고 오늘은 소학을 떼고야 말겠습니다.”
“알겠소, 알겠다고.”
여태까지 아무도 만들 생각을 못 했는지, 수레를 끌 소나 말이 충분히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증기차는 없다. 일찌감치 증기기관의 용도를 공장과 수차, 선박용으로 규정해 버린 탓일까?
증기기관에 관한 대화는 크라쿠프에 와서 군사훈련 때문에 바빠지기 전, 포즈난에 있을 때 나눴었다. 그때 끝내 이형준의 재촉에 못 이겨 소학은 끝을 내고 말았다. 이형준은 무척 기뻐하면서 ‘이제 대학을 시작하겠다’라고 선언했다.
“빈으로 가는 길에도 부사 영감과 마주 앉아 대학을 외워야 할 판이군.”
17세기 군대는 수행원을 데리고 다니는 게 당연한 일로 되어있다. 신분이 높고, 장교거나 하면 10명에서 20명까지도 거느린다. 그러니 8차 견서사 일동 전원이 내 뒤를 따라 빈까지 가더라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소리다.
국왕 얀 소비에스키의 사열과 출전 기념 연설이 끝나고, 마침내 모여든 대군이 빈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벨 성을 나와서 서쪽으로 가는 도로로 접어드니, 시민들이 길 양편에 가득 늘어서서 꽃을 던지며 병사들에게 환호를 보냈다.
“주님의 축복이 그대들에게 함께 하기를!”
“꼭 이기고 돌아와요!”
“국왕 폐하 만세! 그리스도 만세!”
당연히 이 환성들은 모두 폴란드어였다. 그래서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하고, 대충 짐작만 했을 뿐이다. 그래도 병사들을 환송하는 사람들의 기분은 알 수 있었다. 아버지를, 아들들을 전장에 내보내는 가족들의 기분이 폴란드라고 해서 다를 리 없으니까.
“대공 전하!”
프랑스어로 외치는 귀에 익은 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말고삐를 당기며 주위를 둘러보자 눈에 잘 띄지 않는 수수한 옷차림을 한 올렝카가 연도에 늘어선 사람들 가운데서 뛰쳐나와 내 발목을 잡았다.
“차마 성내에 들어갈 수 없어서 여기서 기다렸어요. 이거, 가져가 주세요.”
올렝카가 내민 물건은 비단으로 직조한 스카프였다. 조선산 진주비단, 그러니까 국산화한 촉금(蜀錦)으로 만든 아주 비싼 물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값이 나갈 귀중품이었다.
“제 소지품 중에서 가장 좋은 물건이에요. 이걸 보시면서 절 생각해 주세요. 저는 전하를 지켜달라고 계속 성모님께 기도드릴게요.”
“고맙다. 널 생각하며 꼭 무사히 돌아오마.”
국왕이 기사를 위한 레이디 노릇을 하랬다고 정말 레이디스러운 물건을 정표로 주는구나 싶어 살짝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성의가 고마우니 답례를 해야 할 터, 말에서 내릴 수는 없으니까 말 위에서 고개를 숙여 이마에 입을 맞춰 주고 다시 말을 몰았다.
“무사히 돌아오세요!”
“염려 마라.”
뒤를 따르는 병사들이 수군거리고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미녀가 날 환송해주는 게 부러우면 너희도 마누라나 애인을 불러오지 그랬냐.
뭐가 어쨌건, 이제 전쟁터로 가는 일만 남았다. 나도, 조선에서 따라온 부하들도, 여기서 빌린 기병들도 모두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도록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