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14
3부 032화
– 1 –
눈 앞에 펼쳐진 강물은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만큼 푸르고 아름답지는 않았다. 내가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으니 정호찬이 간단히 감상을 드러냈다.
“똥물이군요, 전하.”
“…근래에 비가 많이 온 탓이겠지.”
오늘은 1683년 9월 6일. 크라쿠프에서 출발한 지 딱 22일 만에 도나우강까지 도착했다. 그동안 행군한 거리는 하루 평균 25km쯤 되는 듯하다.
사실 오는 도중에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선율을 떠올리면서 내 눈으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직접 볼 수 있지 않을까 희망했는데, 기대가 깨졌다. 17세기면 공장폐수도 없고 생활하수도 별로 많지 않을 테니까 늘 푸른 강물이 흐를 줄 알았는데.
다행스럽게도 폭이 250보(300m)는 될 것 같은 강물 속으로 우리가 직접 뛰어들 필요는 없었다. 도하지점 건너편에는 툴른(Tulln)이라는 도시가 있었고, 폴란드군이 온다는 연락을 이미 받은 시 당국에서는 나룻배를 충분히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빈까지는 남동쪽으로 80리(32km)가 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빠른 말로 달리면 1시간이면 당도할 수 있으니, 이제 언제 돌궐군과 조우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야 할 겁니다. 설마 그놈들이 송양지인을 실천하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기회가 온다면야 절대 사양하지 않겠지. 하지만 폴수국왕은 경험이 풍부하니, 적이 보는 코앞에서 도강할 리는 절대 없네.”
툴른은 황제군 수비대가 지키고 있다. 게다가 독일 방면에서 오는 원군 5만 명이 이미 강 건너편에 도착해서 합류할 준비를 마치고 있다. 여기에 폴란드군 2만 7천과 브란덴부르크군 3천이 합류하면 8만 명, 충분히 한번 붙어볼 수 있는 전력이다.
“저도, 홍 군관과 김 군관도 실전 경험은 북변에서 도적들과 싸워본 적밖에 없는지라 좀 긴장이 됩니다. 과연 잘 싸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난 그나마도 없지 않은가. 그대들은 내 옆만 지켜 주면 되네. 너무 무서워하지 말게나.”
만약 내 연대가 튀르크군 진영에 돌격하게 되면 홍상훈이 내 왼편, 김종건이 내 오른편, 정호찬은 내 뒤에서 달리기로 했다. 그편이 가장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싸우다가 김가나 홍가가 내게 칼을 휘두르려 하면 뒤에 있는 정호찬이 바로 저지할 수 있으니까.
물론 정호찬이 내 등을 찌른다면 답이 없다. 하지만 정호찬조차 믿지 않는다면 이 세계를 버텨낼 수가 없다. 7년, 아니 이제 8년 동안 나와 함께 있었던 ‘친구’를 믿지 않는다면 내가 대체 누굴 믿을 수 있겠는가.
“전하! 우리 연대 차례입니다! 승선하랍니다!”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는 기사 하나가 전령으로 달려왔다. 이홍석의 통역으로 그 내용을 전달받으면서 진작에 이홍석한테 독일어를 좀 배워둘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랬으면 한결 지휘가 편했을 텐데…이제부터라도 좀 배울까?
나 때문에 참전했다는 브란덴부르크군 쪽 입장표명도 이홍석을 통해 들었다. 동방에서 온 이방인인 나도 빈을 지키려고 튀르크인들과 싸우는데, 자기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는데 그게 말이 되느냐는 생각만 든다. 그래도 일단 우군인데 굳이 따지기는 좀 난감하고.
“전군, 이동!”
내 구령이 떨어지자 기병 3백 기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에서 내려 고삐를 잡고 걸어서 배에 오른다. 혹시라도 말에 탄 채 배에 올랐다가 배 위에서 말이 날뛰기라도 하면 그대로 내팽개쳐져 도나우강의 물고기 밥이 될 테니, 주의할 일이다.
– 2 –
바이에른, 슈바벤 등 남부 독일에서 온 지원군과도 순조롭게 합류했다. 규모가 작긴 해도 보헤미아와 헝가리, 왈라키아에서도 원군이 왔다고 했다. 이로써 신성동맹군이 조직되었고, 이제 빈을 향해서 진격하는 일만 남았다.
“이미 빈을 둘러싼 성벽은 군데군데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포위를 뚫고 나온 전령의 보고에 따르면 지금 빈은 함락 직전입니다!”
튀르크군 주력이 빈에 도달한 날은 7월 14일이었다고 한다. 총대장인 오스만 재상 카라 무스타파 파샤는 항복하라고 권했지만, 사령관 슈타렘베르크 백작은 당연히 응하지 않았다. 사흘 뒤에 빈이 완전히 포위되면서 전투가 시작됐다.
방어하는 오스트리아군은 튀르크군보다 대포 숫자가 많았고 사거리도 더 길었다. 게다가 수비군은 이미 성벽 앞에 있는 가옥을 모조리 철거해서 성벽에서 퍼붓는 포화로부터 적이 몸을 숨길 수 없게 해 두었다. 그래서 포격전에서는 오스트리아군이 우세했다.
화력에서 밀린 튀르크군은 빈을 봉쇄한 상태로 군량공세를 펼쳤다. 그렇다고 수비대 측이 굶주려서 항복할 때까지 지켜보고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포화를 피하려고 참호를 파면서 성벽으로 접근하고, 땅굴을 파서 성벽을 폭파하려고 했다.
성벽 밑에까지 갱도를 파서 침입한 뒤 지뢰를 묻고 터뜨려 성벽을 무너뜨리는 건 성채를 공격하는 기본적인 전술 중 하나다. 오스만은 기독교 측의 요새를 공격할 때마다 이 전술을 숱하게 사용했고 큰 성과를 얻었다.
“적은 우리 구원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공세를 서두르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적이 묻고 있는 지뢰가 터지면 성벽 어디가 날아갈지 모릅니다. 구원이 시급합니다!”
“만약 우리가 늦어서 튀르크군이 내부 성벽까지 넘어간다면….”
“불바다가 된 도시 안에서 시가전이 벌어지겠지요.”
두 달 동안 굶주림을 참으며 버텨 온 빈 시민들과 수비대에게, 20만이나 되는 튀르크군과 시가전을 벌여 도시를 지켜낼 힘이 있을 리 없다. 성벽이 무너진다면 이는 곧 빈 성벽 위에 초승달과 별이 그려진 튀르크의 깃발이 휘날리게 됨을 의미했다.
“옳소. 구출을 서둘러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일에는 지켜야 하는 순서가 있는 법, 먼저 빠른 경기병부터 내보내 빈을 포위한 튀르크군의 상태를 살피고 취약점부터 찾도록 합시다.”
54세의 노련한 백전노장인 얀 소비에스키는 빈이 함락 직전에 처한 위기에서도 침착했다. 이럴 때 성급한 호들갑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며, 적세를 살피지도 않고 움직이는 행동은 패배를 불러올 뿐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그였다.
“동의합니다.”
“찬성입니다.”
폴란드 국왕의 용기와 현명함, 지도력은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빈이 적에게 함락될지도 모르는 위기인 만큼, 총사령관의 지도에 혼연일체가 되어서 따라야 했다.
“그럼 은밀하게 움직이는 데 능숙한 타타르 기병을 풀어 적세를 정찰하게 하겠소. 나머지 부대들은 일단 대기하되, 경계를 허술하게 하지 말고 이동 준비를 갖추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 3 –
얀 소비에스키가 주재하는 작전회의에는 나도 참석할 수 있었다. 겨우 기병연대 하나를 인솔하는 지휘관으로서는 자격이 없었지만, 조선의 왕자라고 특별히 자리를 하나 내주었다. 다만 참석자가 죄다 독일인이라 회의도 독일어였으므로 이홍석을 통역으로 데려가야 했다.
내 존재는 당연히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다들 나와 면식은 없었지만 ? 베를린으로 가는 길도 일부러 북독일로 잡았으니 ? 조선이라는 나라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는 다들 알고 있는 덕분이다. 쿨름 시장 관저에서 회의가 끝난 뒤 열린 조촐한 연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기병은 아주 강력하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튀르크 놈들은 벌벌 떨다가 도륙이 나는 일만 남았군요! 아, 조선군을 데려오신 게 아니라고요? 폴란드 기병을 지휘하시나요? 그럼 상관없죠. 폴란드 기병도 유럽 최강이니까요.”
이런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몇 사람에게 들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일본과 치른 두 차례 전쟁에 관한 기록이 퍼지면서, 조선 기병의 명성도 따라 올라간 덕분이다. 기병을 활용해서 적에게 결정타를 먹인 단밀현 전투와 논산 전투의 성과다.
“자, 적당히 즐겼으니 각자 진영으로 돌아가도록 하시지요. 정찰대가 돌아오면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싸움을 치러야 할 테니, 일찍 진영으로 돌아가 푹 쉬도록 하십시다.”
총사령관인 얀 소비에스키가 나서서 한마디 하자 연회는 곧 끝났다. 애초에 ‘아무리 전쟁 중이라고 하지만 형식상 차릴 것은 차려야 한다’라고 해서 마련한 자리라, 처음부터 비교적 간소한 연회였다.
“대공, 그대도 돌아가서 푹 쉬도록 하게. 내일부터는 정말 전투를 준비해야 하니, 이제껏 행군하면서 쌓인 피로를 풀어 둬야 하네.”
“예, 폐하.”
사실 나는 그렇게까지 피로하지는 않았다. 내 발로 걸어온 것도 아니고 말을 타고 왔는데 딱히 힘들 이유가 없었으니까. 무관 세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라미츠도 과거에 쌓아둔 경력이 있어서인지 말을 타고 잘만 움직였다.
수레를 타고 온 나머지 인원들, 문관이나 시종들은 그래도 좀 더 편하게 온 편이다. 다만 이홍석은 본래 문관이나, 내 통역 때문에 다른 이들처럼 수레를 못 타고 말을 타고 내 뒤를 따라다녀야 했다. 그리고 수레를 탔어도 고생한 사람이 여기 하나 있다.
“그러니 크라쿠프에 남아있으라 하지 않았소, 부사.”
“전하께서 나라의 굴욕을 갚기 위해 싸움에 나가시는데 어찌 소인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달구지를 타고 생쌀을 씹을지언정 전하께서 가시는 뒤를 따름이 마땅합니다.”
부사 이형준은 괜히 힘들게 움직이지 말고 바벨 성에 남아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는 내 권유를 딱 잘라 거절했다. 자기 역할은 그게 아니라면서 말이다.
“이미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폐하께서는 제게 견서사 부사 직을 내리시면서 ‘성친왕이 오늘날과 같이 된 것은 그대의 탓이 크다. 꼭 바르게 고쳐놓으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제 겨우 전하께서 바람직한 왕자(王者)로서의 태도를 보이시는데, 어찌 옆을 떠나겠습니까?”
이형준은 내가 처음에 결투한다고 했을 때는 반쯤 기절했었다. 전쟁터에 나간다니까 진짜 혼절했다가 겨우 깨어났다. 하지만 내가 단순한 객기로 이러는 것도 아니고 올렝카를 얻을 생각으로 그 부왕에게 호감을 얻으려고 하는 행동도 아니며, ‘80여 년 전 장조께서 당하신 무례를 갚아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듣자 고심 끝에 동의했다.
“지금 전하께서는 이 나라가 열린 이래 어느 왕자, 황자께서도 하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계십니다. 그러니 이 늙은 몸을 갈아서라도 마땅히 뒤를 따라야 합니다.”
이형준이 이런 태도로 자기도 싸움터에 가겠다 선언했으니, 정호찬 이하 다른 8명에게는 반대할 기회도 없었던 셈이다. 김종건 한 사람만은 낯빛이 창백해져서 ‘남들 싸움’에 끼어들 필요가 없지 않으냐고 했지만, 이형준이 일갈하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대는 장조께서 당한 모욕을 갚는 일보다 그대 목숨이 중요하단 말인가!”
일이 이렇게 되면 조선인 일행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단 본인이 동행을 거절하면 강요할 수는 없는 사람이 하나 있지만, 그 역시 반대하지 않았다.
“전하의 안위만을 생각한다면 제지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번 싸움은 이교도의 침략에서 유럽 문명을 지키는 성전이니, 차마 가지 마시라고 권하지 못하겠습니다. 총사의 피가 아직 성직자로서의 제 심장 속에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8차 견서사 일행 11명은 모두 함께 빈을 향해 떠나는 폴란드군 대열에 합류했다. 무관 세 사람은 나와 함께 수십 일에 걸쳐서 훈련도 받았다. 그렇게 쌓은 노력이 이제 결과로서 눈 앞에 펼쳐지려는 참이었다.
“알망주 신부는 어디 갔는가?”
연회장에서 숙소로 돌아오자 박종선이 나와 맞이했다. 그에게 말을 맡기고 안에 들어오니 정호찬 혼자 거실에서 일기를 쓰고 있었다. 이홍석부터 침실로 보내고 질문을 던졌다.
“다가올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하께서 무사히 귀환하시기를 비는 기도를 드리겠다며 시내 성당에 갔습니다.”
“부사는?”
“한잔하고 곯아떨어졌습니다.”
내가 잠시 움찔하는 태도를 보이자 정호찬이 웃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말 한 잔밖에 안 마셨습니다. 오늘도 힘들었다며, 푹 자려면 술이 필요하다고 잠자리술로 살짝 마셨을 뿐입니다. 이 의관이 허락한 만큼만 마셨으니 전하께서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출발 전에 이형준이 보인 기세는 좋았지만, 짐수레를 탄 장거리 여행이 편안할 리 없다. 이진원이 저녁마다 침과 뜸, 지압 등으로 돌봐주지만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가 참으로 부사에게 입은 은혜가 크네. 이 은혜를 갚자면 정말 새사람이 되어 부사가 나를 가르친 일을 후회하지 않게 하는 수밖에 없겠군.”
각성 직후에 나는 이형준을 귀찮은 꼰대라고 여겼었다. 성친왕 때문에 해외로 쫓겨났다고 짜증을 마구 내는 영감쟁이, 내가 저지른 일을 수습해줄 이, 책임을 떠넘길 사람, 여차하면 써먹을 정치적인 방패막이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5개월 동안 함께 지내보니, 이형준을 그따위로 생각한 나는 벼락을 맞아도 싼 놈이었다. 이형준은 철부지 성친왕을 사람 만들어 보겠다고 정말 지극정성으로 매달린 참 스승이었다. 정말 이런 사람 찾기 쉽지 않다고 내가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지금은 나도 이형준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정성껏 대하고 있다. 술 이야기에 움찔한 것도 혹시나 주사(酒邪) 때문에 주변에서 비웃음을 샀을까 봐 그런 거지, 다른 의도는 없다.
“다른 이들은?”
“이 통변은 방금 전하께서 방에 보내셨고, 이 의원도 이미 자고 있습니다. 모처럼 제대로 지은 집에서 제대로 된 침대를 만나니, 피로가 주체가 안 되는 모양입니다.”
크라쿠프를 출발한 뒤로 잠자리는 대부분 땅바닥이었다. 내 명으로 이형준만 수레 위에서 자게 하고, 다른 이들은 전부 모포 한 장 깔고 맨바닥에서 잤다. 그렇게 20일을 행군하다가 오늘은 내 신분 덕분에 특별히 지붕이 있는 숙소를 받은 거다.
“홍 군관과 김 군관은?”
“그동안 친해진 폴수국 무관들과 술을 마시러 나갔습니다.”
“내일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그러니 오늘 마셔야지요.”
내 수하 무관들은 유란드가 시키는 훈련을 끔찍하게 여겼다. 아무리 내 신변 호위만 맡을 거라고 해도, ‘본대를 따라잡아야 전하의 호위도 할 것이 아니냐’면서 폴란드 기병들과 같은 수준으로 뛸 때까지 굴렸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고.
정호찬과 홍상훈은 별 불평 없이 훈련에 임했다. 하지만 김종건은 이 문제로도 꽤 심하게 투덜거렸다. 그랬으면서 막상 싸울 때가 되니 폴란드인들하고 같이 술을 마시러 나갔다는 걸 보니, 같이 구르면서 서로 동질감 같은 게 생기긴 했나 보다.
“그대는 왜 안 자고 기다렸는가? 그대도 피곤할 텐데.”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정호찬이 웃으며 일기장을 덮었다. 나도 웃으면서 물었다.
“묻게나. 내가 답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답하지.”
“그럼 염치 불고하고 여쭙겠습니다. 전하, 그 금강석 가락지는 대체 누구에게 주려고 그리 소중히 품고 다니시는 것이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