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920
3부 038화
다른 동물들 뒷이야기도 만만찮다. 그때 이항복이 가져온 짐승 중 가장 바람직하게 퍼진 건 금계다. 관상용과 약용으로 퍼져 제법 많이 키워서, 닭이나 비둘기처럼 흔하지는 않아도 행세깨나 하는 집이면 과시하려고 몇 마리씩 기르는 그런 새가 되었다.
가장 골치 아픈 존재가 된 건 역시 원숭이였다. 별 쓸모도 없는 것이 자꾸 수는 불어나고 시끄럽기만 하니, 조정에서 논의한 끝에 우리를 열고 원숭이를 몽땅 내쫓아버렸다. 하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원숭이들이 멀리 가지 않고 인왕산에 정착해버린 탓이다.
“원숭이도 영물이라 해서 죽이지는 못하고 쫓게만 하니, 인왕산 밑에 사는 백성들은 죽을 맛이었지요. 그렇게 근 40년 동안 골머리를 앓았습니다만, 지난 대기근 때 굶주린 백성들이 모조리 잡아먹어 버리면서 비로소 원숭이 문제가 끝났습니다.”
“사람도 잡아먹을 판이었다던데 원숭이라고 못 먹었겠는가.”
아무리 전국에서 도성이 식량 사정이 가장 나았다고 하지만, 눈앞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고기가 있는데 거절할 사람은 없다. 더구나 그 짐승이 예전부터 자기 집을 드나들면서 온갖 음식과 잡물을 도적질했다면 더더욱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지금 응방에는 원숭이가 딱 열두 마리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응방에 오는 구경꾼들이 세 번째로 몰리는 동물이지요. 수가 너무 늘지 않게 세심히 살피고 있다 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로 구경꾼이 몰리는 짐승은 뭐였지?”
“잊으셨습니까? 장조께서 타시던 전상(戰象)과, 오성부원군이 사천에서 잡은 대왕자라가 있는 두 우리 앞은 언제나 구경꾼으로 붐비지 않습니까. 전하께서도 분명 가보셨는데요.”
“그랬던가? 여러 해 지나고 보니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자한기르가 보내준 그 코끼리? 그게 살았다고? 그놈의 새끼라면 혹시 몰라도 그놈이 여태 살아 있을 리는 없는데. 그놈이 아직도 살아 있다면 적어도 90살은 넘겼을 텐데, 코끼리가 그렇게 오래 살던가? 아무래도 뭔가 잘못 전해진 모양이다.
그 대왕자라가 아직도 살아 있는 건 별로 놀랍지 않다. 자라야 원래 오래 사는 동물이니 말이다. 어쩌면 내가 이번에 죽을 때까지도 살아 있을지 모르지.
아, 그때 이항복이 잡아 온 악어도 여태 살아서 응방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원숭이 처리 문제로 조정에서 논란이 있었을 때 ‘남아도는 원숭이를 악어 먹이로 활용하면 어떻겠냐’는 의견도 나왔었지만, 그건 너무 끔찍하다고 해서 기각되었다는 야사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지금 응방에서 사육하면서 백성들에게 보여주는 짐승들은 대략 30마리쯤 된다고 했다. 대왕자라와 코끼리, 원숭이 외에도 악어와 코뿔소, 물소, 호랑이, 불곰, 반달곰, 멧돼지, 사슴 여러 종류 등이다. 누구나 찾아와서 볼 수 있지만, 공짜는 아니다.
“한 가족당 살아 있는 개나 닭, 다 자란 토끼 한 마리 정도는 내야 하니 싼값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응방에 있는 짐승들도 자기 밥값은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맞네. 풀을 먹는 짐승이야 꼴과 콩을 먹이면 되지만 그놈들은 고기를 먹어야 하지. 음, 응방도 이제 좁은 인왕산을 벗어나 아예 도성 바깥에 터를 넓게 잡아서 새로 지으면 어떨까 싶구먼.”
제대로 된 동물원으로 미리 터를 잡으면 수백 년 뒤에는 그것도 명물이 될 거다. 은나라 주왕이 동물원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이미 있으니 동양 최초의 동물원이 될 수는 없겠지만,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동물원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날 사냥에서 올린 가장 큰 성과는 뭐니 뭐니 해도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었지. 여보게, 김 군관!”
“예, 전하!”
김종건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우리 일행이 유럽에 온 지 3년이 넘었지만, 그도 정호찬과 마찬가지로 아직 소매가 좁은 철릭을 입고 있다. 완전히 서양 옷만 입고 다니는 건 지금도 나 하나뿐이다.
“지금 서장관과 그대 이야기를 하고 있었네.”
“예? 제가 무슨 실수라도 저질렀습니까?”
“아니. 사냥에서 그대를 잡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아…그….”
잠시 얼굴을 붉힌 김종건이 겸연쩍게 웃었다. 하긴, 그날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그로서도 멋쩍기는 하리라.
“전하. 소관, 전하께 고백할 일이 있사옵니다.”
“무엇이기에 그러는가?”
무관 세 사람만 데리고 들소 사냥에 따라갔던 그 날, 어쩌다 보니 김종건과 둘이서 따로 떨어졌다. 이때까지는 그럴 일이 없었다.
왕궁에 있는 동안에는 늘 올렝카가 내 옆에 붙어 있었다. 올렝카가 없을 때는 이형준에게 수업을 들을 때뿐이다. 밖에 나갈 때는 정호찬이나 이홍석이 늘 동행했다.
김종건과 단둘이 있게 된 건 빈 포위전 이후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자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뜬금없는 소리를 꺼낸 거다.
“소관, 실은 전하를 해하라는 명을 받은 자객이었…사옵니다.”
“무엇이라?!”
이놈이었어? ‘자객이었다’라고 스스로 밝히는 걸 보니 금위사 쪽은 아닌 모양이고, 예왕이 심은 놈이었나보다. 하지만 넘겨짚기보다는 일단 진술을 끝까지 들어보는 게 좋겠다.
“그대에게 본왕을 죽이라 사주한 자는 누구인가?”
“어둠 속에서 은밀히 접하였기에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옵니다. 다만 황금 50냥을 슬쩍 건네주면서, 소관이 견서사로 나가 있는 동안 본국에 있는 가족과 편지 왕래가 있을 것이니 그편으로 지시가 내려오면 전하가 귀국하지 못하시게 하라 하였을 뿐입니다.”
“그 검으로 나를 죽이라는 뜻인가?”
“그건 아니옵니다. 무슨 수단을 쓰건 상관없으니 귀국하시지 못하게만 하라 하였습니다. 비수건, 밧줄이건, 독이건, 뱃전에서 밀건…. 그리고 본국에 돌아가서 일을 무사히 마쳤음을 확인하면 50냥을 더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누가 시켰는지는 모른단 말이지.”
“예, 전하. 부디 자비를 베풀어 소관을 용서해 주시기만 빌 뿐이옵니다.”
바닥에 엎드린 김종건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흘러내린 눈물, 콧물이 차가운 겨울 날씨에 얼어붙었지만, 김종건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돈 욕심 때문에 그 더러운 일을 받아들이고, 대유주에 오는 동안 전하께서 하시는 양을 보고 정녕 못난 친왕이라고 여겼사옵니다. 그리하여 전하께서 마음을 고쳐먹으신 연후에도 본성이 어디 가겠느냐며 근 1년을 속으로 업신여겼는데, 전하께서는 이를 눈치채셨으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소인을 구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소인이 감복하지 않겠습니까?”
김종건이 투덜거리는 걸 알면서도 놔둔 거야 쳐내버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지. 부하를 숙청하는 것도 그 자리를 대체할 인원이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사치다. 노비까지 합쳐도 단 9명밖에 없는 부하를, 겨우 좀 투덜거린다고 해서 없앨 여유가 나한테는 없었다.
“누가 그대에게 수작을 건넸는지 모른다…그럼, 일을 해치운 뒤에 잔금을 제대로 받는다는 보장은 어디 있었는가?”
“귀하신 분의 약속이니 절대 깨질 일은 없으리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선금으로 받은 황금 50냥만 해도 적은 돈은 아니었던지라 잔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겠다. 그럼 지령이 떨어지면 나를 죽이러 나서고, 지령이 오기 전에는 내 동태를 살펴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본국에 알리게 되어있었나?”
“아닙니다. 동태를 살피라는 지시는 없었습니다. 지령이 오면 전하를 해하라는 명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이건 나 혼자 판단하기는 좀 그렇다. 아무래도 의논할 머리가 하나 더 필요하다.
“서장관, 이리 나오게!”
화살을 메긴 활을 든 정호찬이 천천히 아름드리 나무둥치 뒤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나를 찾아오다가 이 현장을 보고, 이야기 중간쯤부터 나무 뒤에 숨어서 엿듣고 있었다.
김종건은 그제야 뒤를 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발소리가 눈에 묻힌 데다, 땅바닥에 한껏 고개를 처박고 있느라 정호찬이 다가온 줄 몰랐던 모양이다.
“그대가 듣기에는 어떤가. 김 군관의 말이 사실 같은가?”
“사실인 듯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꾸며낼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흉행을 사주한 배후는 아무래도 예왕 전하이실 듯합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예왕 형님밖에 없겠지.”
“예. 만약 금위사였다면 대유주에 계시는 전하의 동태를 감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임무였을 텐데, 전하께서 하시는 일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오직 본국의 지령에 따라 흉수를 쓰라는 지시만 있었습니다. 금위사가 그렇게 사람을 쓸 리가 없습니다.”
형황이 내게 품은 인상대로라면, 유럽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리기보다는 본국으로 끌고 가리라. 그리고 만천하에 조리돌림을 시킨 뒤에나 귀양을 보내건 처형하건 할 것이다. 하지만 예왕 측 시각에서는 내가 아예 귀국하지 않는 편이 가장 깔끔하고 확실하다.
“금위사고 예왕 전하고 저는 모릅니다. 저는 그저 재물에 혹한 평범한 무부일 뿐입니다.”
김종건이 부들부들 떨었다. 정호찬이 아직 활대에 걸고 있는 저 화살이, 당장이라도 자기 등을 꿰뚫을 것 같은 모양이다.
“제게 흉행을 사주한 간악한 자가 누구라고 판관 앞에서 밝힐 수는 없습니다. 모르니까요. 하지만 다른 흉수가 전하를 해하려 한다면, 소관이 몸으로 막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소관의 목숨을 구해주셨을 뿐 아니라, 진실로 왕자로서의 성품을 드러내셨습니다.”
“다른 흉수라 하였는데, 우리 일행 중에 너처럼 도적에게 매수되어서 지령을 받으면 나를 죽이려고 나설 이가 또 있다는 뜻이냐?”
“그건 소인도 모르옵니다. 소인에게 금을 건넨 자는 다른 이와 같은 거래를 했다는 말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혹시 다른 일로 전하께서 위험에 처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말씀드린 것입니다.”
“알겠다.”
내가 불귀의 객이 되었을 때, 유일하게 이득을 보는 사람은 예왕이다. 태자와 경친왕, 두 황자 다음 계승서열이 나고 그다음이 현왕과 예왕이기 때문이다. 만약 궐위 상태가 된다면 현왕은 모친의 신분 탓에 후보에서 탈락할 공산이 크고, 예왕이 제위에 오르게 되리라.
“귀국령이 내린다고 하면, 황상께서 옥체가 크게 나빠지신 시기일 겁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전하께서 사라지시는 편이 예왕께는 어쨌든 유리합니다.”
그런데 정호찬이 이야기하다 말고 갑자기 씩 웃었다.
“만약 전하께서 양매창에 걸리신다면, 제위를 이으실 수 없으니 예왕께서도 아마 전하를 굳이 죽여 없앨 생각은 하지 않으실 겁니다.”
“끔찍한 소리 하지 말게!”
내가 만든 법이지만 고자가 되기는 싫다! 차라리 유럽에서 수은 치료를 받는 게 고환을 칼로 까서 고자가 되는 것보다는 낫지. 하지만 성친왕이 하던 대로 살았으면 정말 매독에 걸려 귀국령이 떨어져도 못 가는 신세가 됐을 수도 있겠다.
“김 군관, 그대가 말해주어 고맙네. 그대가 이제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그 흉한들에게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 그동안 해왔듯이 편히 생활하다가 본국에서 본왕을 없애라는 지령이 날아오거든 바로 본왕에게 알려주게. 그렇게 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예왕이 날 죽일 필요가 생겼다는 건 본국에 변고가 생겼다는 의미다. 내가 어디에 있건, 가능한 준비를 모두 갖추고 당장 본국으로 날아가야만 한다. 그래야 보위를 얻고 내 목숨도 지킬 수 있다. 거의 2년 만에 예왕이 박아놓은 비수를 뽑아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게나 말이옵니다. 그날 사냥에서 잡은 가장 큰 포획물이 김 군관이었지요.”
우리 셋은 같이 웃었다. ‘잡힌’ 처지인 김종건도 함께 말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한마디가 그의 입에서 덧붙었다.
“아직 하나는 더 있을 텐데요…금위사 사람이 말입니다.”
김종건의 우려 섞인 질문에 정호찬이 여유 있는 태도로 답했다.
“소관의 짧은 생각입니다만, 금위사 사람이라면 그냥 놓아두어도 될 것 같습니다. 금위사 임무라면 암살보다는 감시일 테고, 전하께서 얼마나 새사람이 되었는지 가장 충실히 폐하께 전할 사람이 그 금위사 끄나풀입니다. 그러니 굳이 캐려 하지 말고 놓아두시지요.”
“그럴까.”
“누구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면야 물론 나쁠 게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기 정체를 알고 있음을 행여 그자가 알게 되면, 그 상황은 또 그 상황대로 문제가 생길 공산이 있으니 섣불리 건드리면 아니 건드리느니만 못하게 될 겁니다.”
“그럼 일단은 우리 셋만 그 문제에 관해 알고 있는 것으로 하세.”
그래도 이런 비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하나 늘어서 다행이다. 나머지 전원과도 이런 이야기를 나눌 날이 오기는 할까?
다른 이들에게도 되도록 친절하게 대하며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다. 시종으로 따라온 노비 세 사람에게도 함부로 막말을 내뱉거나 하지 않고 최대한 인간적으로 대우하며 지내는 중이다. 사람 사이의 일이라는 게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니까.
그러고 보니 내 옆에 있는 금위사가 내 편으로 기울어질 사람이 아닌 편이 차라리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왕 옆에도 분명히 금위사에서 심은 끄나풀이 있을 텐데, 행여라도 그놈이 예왕 편에 붙어버리면 정말 큰일 아닌가!
그러느니 차라리 어느 편도 들지 않는 편이 낫다. 부디 금위사가 200년 세월이 무색하지 않게, 상하 전체가 정쟁에 개입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